제 인생에 답이 없어요 - 크리에이터 선바의 거침없는 현생 만담
선바 지음 / 위즈덤하우스 / 2019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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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아가다 보면 아무 말이고 물색없이 툭툭 내던지는 사람을 적어도 한두 명쯤 만나게 된다. 그런 사람에 대한 우리들 대부분의 평가는 '도대체 저 사람은 생각이 있는 거야 없는 거야?'이거나 '도무지 배려라고는 눈곱만치도 없는 사람이네'와 같은 비난 일색이 아닐까. 그러나 아무런 생각도 없이 나오는 대로 툭툭 내던졌다고 생각했던 말들도 나중에 곰곰 생각해보면 '쉽게 말한 듯해도 깊은 뜻이 담겨 있었구나'라고 생각될 때가 종종 있다. 물론 다 그런 건 아니지만 말이다. 실없는 소리나 하는 대책 없는 사람이라고 여겼던 사람이 달리 보이게 되는 순간이라고 말하지 않을 수 없다. 우리는 다만 상대방에 대해 깊이 알 수 있는 순간을 만나지 못했을 뿐 생각 없이 살아가는 사람은 이 세상에 존재하지 않는다는 걸 비로소 깨닫게 되는 순간이다.

 

유튜브 크리에이터 선바의 <제 인생에 답이 없어요>도 그런 책이다. 예컨대 '내가 살고 싶은 인생--> 돈이 많고 여유로움, 주변 사람들 인생--> 돈이 많고 바쁨, 내 인생--> 가난한데 바쁨'과 같은 식이다. 가볍고 쉽게 내뱉은 말인 듯한데 생각하면 생각할수록 고개가 끄덕여지는 폭이 커진다. 인정하기는 싫지만 사실이다. 오랫동안 유지되었던 우리네 생각의 관성은 그런 사람을 철저히 무시하거나 아무리 옳은 말을 해도 '네가 뭘 알아?'라는 말 한마디로 단숨에 제압하도록 길들여져 왔다. 고개를 끄덕이거나 인정하면 안 되는 것이다. 고개가 끄덕여질지라도 그저 속으로만 생각하고 못 들은 체 돌아서야 하는 것이다. 우리는 그렇게 배워왔고, 그런 식으로 살아야만 한다고 가르쳐왔던 것이다. 상대방에게 '꼰대' 소리를 들을지언정.

 

"듣는 사람이 기분 나쁘면 오지랖이다. 상대가 기분 나빠 한다면 조언해주고 싶은 마음을 참는 게 좋을 것이다. 네? 내가 진짜 큰 관심과 사랑을 가지고 조언을 해준 건데 어떻게 기분 나쁘게 이걸 오지랖이라고 말할 수가 있냐고요? 저도 그렇게 말하는 분들에게 관심과 사랑을 가지고 조언을 한 건데, 앞으로는 참도록 하겠습니다." (p.104 '조언과 오지랖의 차이')

 

과거에는 능히 '4차원'이나 '또라이'라는 별명을 귀가 닳도록 들었을 사람들이 존중받고 누구보다도 인정받는 사회가 되었다. 그럴 리가 없다고 부정하거나 단지 일시적인 현상이라고 애써 부인한다고 해도 달라질 건 크게 없어 보인다. 오히려 쿨하게 인정하는 편이 정신건강을 위해서도 좋지 않을까 싶기도 하고 말이다. 그렇다면 우리 모두가 '또라이'가 되거나 적어도 '또라이'와 근접한 삶을 살아야 하는 것일까?라는 물음에 직면하게 된다. 그러나 그런 세상은 오지 않을 것이라고 믿는다. 그렇게 되어서도 안 되고.

 

"내가 생각하는 1인 크리에이터로서의 성공이란 별것 아니라 그냥 딱 그것만 해도 생계를 해결할 수 있는 상태이다. 사실 별것 아닌 게 아니라 엄청난 것이긴 하다. 구독자가 몇 명이니 조회수가 몇이니 그런 것보다도 내가 하고 싶은 것을 지속할 수 있는 것. 그게 성공이다. 여기엔 경제적으로 성공했다는 의미뿐 아니라 내가 좋아하는 일을 하면서 시간을 보내며 산다는 의미도 있다." (p.136 '1인 크리에이터로서의 성공이란?')

 

과거와는 달리 요즘 초등학생의 장래희망 순위를 살펴보면 유튜버가 1위를 차지하는 걸 심심찮게 보게 된다. 선생님과 의사는 2위, 3위로 밀려난 지 오래되었다. 그 뒤를 차지하는 게 연예인인 걸 보면 자신의 끼와 재능을 통해 생계를 해결하고, 평생 하고 싶은 일을 하면서 살고 싶어 하는 요즘 세대의 인생관이나 가치관을 엿볼 수 있다. 그러나 거기에도 한계는 있다. 아프리카 TV 신생 BJ가 1억 2천만 원 상당의 별풍선 120만 개를 받음으로써 논란의 중심에 섰지만 그 후폭풍도 만만치 않아서 여러 루머와 악플에 시달렸던 것이다.

 

"사랑받으면서도 불안할 때가 있다. 나도 유튜버를 시작하면서 분에 넘치는 사랑을 받아 행복하기도 하고 또 행복한 만큼 불안하기도 했다. 내가 받아도 되는지 모를 것을 받게 되면 불안하기 마련이다. 하지만 이 불안은 내가 앞으로도 계속 큰 사랑을 받고 싶은 욕심에서 비롯됨을 알았다. 앞으로도 항상 이런 사랑을 받고 싶으니 불안한 것이었다. 그런 욕심을 버리고 현재에 집중하니 굉장히 행복해졌다." (p.186 '행복과 불안')

 

그렇다. 지혜는 무욕의 다른 말이다. 욕심을 내려놓으면 제삼자의 시각으로 나를 볼 수 있는 까닭에 지식은 없을지언정 지혜로운 사람은 될 수 있다. 자책과 회한이 그리움의 다른 표현인 것처럼 지혜는 무욕과 쌍을 이루는 말이다. 1인 크리에이터가 된다는 건 겉보기에는 여유롭고 행복한 듯 보이지만 그의 인생관이 지나친 욕심으로 가득 차 있다면 그는 결코 행복에 이를 수 없다. 이와 같은 현상은 다른 직업과 크게 다르지 않다는 걸 저자도 말하고 있다. <제 인생에 답이 없어요>의 저자 선바는 분명 별종의 세상을 꿈꾸는 사람일 테다. 그러나 나는 그의 독자 중 한 사람으로서 그는 분명 자신의 분수를 아는 지혜로운 사람이라고 평가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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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상의 마지막 오랑캐
이영산 지음 / 문학동네 / 2017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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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년 6월에 몽골을 향해 떠난 친구가 있다. 여행사를 하면서 한국과 몽골을 수시로 오가던 친구는 KOICA가 진행하는 공모사업에 선정되어 지난달에 몽골을 향해 떠났다. 3년을 기한으로 낯설고 물선 이국땅에서 타국 생활을 시작한 친구는 이따금 sns를 통해 몽골의 사진이나 소식을 전하고는 있지만 그의 말 한마디 한마디에는 왠지 쓸쓸함이 묻어나는 느낌이다. 몽골 생활을 시작한 친구를 생각하며 읽었던 책이 이영산이 쓴 <지상의 마지막 오랑캐>이다.

 

"오랑캐로 태어나 오랑캐의 삶을 살아온 비지아는 만난 지 이십 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틈만 나면 몽골 초원과 알타이산을 노래한다. 어느 때는 학자 같고 어느 때는 악동 같지만, 언제나 초원을 가까이 느끼고 다시 그곳으로 돌아가는 삶을 꿈꾸는 사내. 이 책은 내가 만나본 최고의 사내, 알타이산의 마지막 오랑캐와 지낸 행복했던 초원 이야기이다." (p.27)

 

이 책은 지상의 마지막 오랑캐로 살아온 '비지아'의 눈을 통해 몽골의 문화 전반을 말하고 있다. 물론 몽골의 자연환경이나 문화에 대해 소개하는 글이나 영상 등 몽골을 발견하기 위한 다양한 시도는 이전에도 많았고 앞으로도 많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그러나 제삼자의 눈으로 그 나라의 모든 것을 알 수는 없는 노릇이다. 모든 것은커녕 반의 반도 알기 어렵다는 게 내 솔직한 심정이다. 제삼자의 시각은 늘 신기함과 호기심의 충족일 뿐 깊고 장구한 문화의 흐름에는 도무지 관심이 없는 것이다.

 

<지상의 마지막 오랑캐>는 제목에서 오는 낯선 느낌만 아니라면 꽤나 좋은 책이다. 작가의 유려한 문장도 문장이려니와 오리앙카이족 출신의 비지아로부터 전해들은 그와 그의 친지들의 실제 경험을 바탕으로 몽골 유목민의 출생에서부터 성장, 사회생활, 결혼과 장례풍습에 이르기까지 총 아홉 개의 장에서 유목민의 일대기를 보여준다. 게다가 저자와 비지아가 함께 여행하며 찍은 몽골의 풍경 사진 역시 이국적인 느낌을 더한다.

 

사실 한 민족의 문화적 성숙도는 그 민족이 가진 물질적 부가 결정하는 게 아니라 삶과 죽음에 대한 민족 전체의 통일된 견해가 존재하느냐 그렇지 않느냐에 따라 그 등급이 나뉘는 게 아닌가. 적어도 나는 그렇게 생각한다. '그리운 사람일수록 바람에 새기는 거'라는 유목민의 풍장(風葬) 풍습은 '바람 속에 살던 삶 그대로 바람 속으로 사라지는 것'이라는 그들의 수준 높은 의식 수준을 보여주는 게 아닌가.

 

"유목민들은 조상의 묘를 찾아, 부모의 고향을 찾아 천릿길을 떠나지 않는다. 그들에게 과거는 지나간 시간에 불과하다. 과거는 흘러갔다. 새로운 사람을 만나고, 새로운 초지를 찾고, 새로운 방목을 시작해야 한다. 삶도 죽음도 전쟁의 승리도 실패도 모두 그렇다. 과거를 버리지 못하면 분노와 복수심에 발목이 잡혀 한 발도 앞으로 나아갈 수 없다. 알타이산이 이동한다는 것, 마음속에 성산을 두고 산다는 것은 고향을 몸으로 찾지 않고 마음으로 찾는다는 뜻이다. 유목민의 고향은 바람 속이다." (p.325)

 

'시간관념이 철저하면서도 시간을 붙잡지 않는 것이 유목민의 자세'라고 저자는 쓰고 있다. 그러므로 유목민은 생일도 없고, 그것을 기념하는 잔치도 없으며, 시간은 그렇게 쌓이지 않고 흘러가는 것이라고 믿는다. 노인이 이삿길에 함께하지 못할 정도의 나이가 되면, 죽음을 앞둔 노인 앞에 잘 차려진 음식상을 내어놓고 잔치를 벌인다. 술자리가 무르익을 무렵, 잔치상의 머리맡에 정좌를 하고 앉은 노인에게 양의 엉덩이 비계를 입에 넣는다. 그리고 걸음마를 막 뗀 어린 손자가 입에 문 양의 넓적다리뼈를 툭 쳐서 비곗덩어리를 목구멍 안으로 밀어 넣으면 비계가 숨길을 막아 노인은 순식간에 죽음을 맞는다고 한다. 유목민으로 살았던 한 사람의 삶은 시간이 지배하지 않는 다른 세상으로 그렇게 이동하는 것이다.

 

저자는 비지아와의 이별에서 자신의 소망을 적고 있다. '신에게서 자유를 찾아오고, 가난에서 돈을 얻었으며, 질병에서 건강을 가져온 인간이, 그리하여 스스로 신이 돼버린 인간이 배타적인 시선으로 그를 보지 않기를 바랄 뿐'이라고. 우리는 대개 우리와 다를 수밖에 없는 타민족의 문화를 그 민족의 절대적인 시각에서 바라보는 것이 아니라 우리의 문화에 견주어 얼마나 다른지, 얼마나 미개한지, 얼마나 무지몽매한지를 따지고 그 문화를 배척하거나 우리 문화의 아래에 두려는 경향이 있다. 그런 까닭에 타민족의 문화를 소개할 때는 으레 우리 문화에서는 결코 찾아볼 수 없는 것, 과학에 근거하지 않은 주술적인 것 등을 우선적으로 말한다. 그 저변에는 독자들의 일시적인 호기심을 충족시키기 위한, 그럼으로써 독자들의 시선을 사로잡고 지속적인 관심을 유도하기 위한 상업적 의도가 깔려 있다. <지상의 마지막 오랑캐>에서는 저자의 그런 의도가 엿보이지 않아 좋았다. 얼마 전에 보내온 친구의 소식은 나담 축제로 도시가 조용하다고 했다. 다들 짐을 싸서 축제가 열리는 시골의 초원으로 떠난 까닭에 혼자서 사무실을 지키고 있다는 것이다. 그의 귓가에도 초원에서 불어오는 바람의 소리가 들려오겠지. '살면서 듣게 될까/언젠가는 바람의 소리를'로 시작되는 가수 조용필의 노래 '바람의 노래'가 생각나는 저녁. 몽골로 떠난 친구도 그곳에서 한 3년쯤 살다 보면 바람 속에 살다간 많은 사람들의 음성을 듣게 될까. 한 점 바람도 없었던 어느 여름날 몽골로 떠난 친구를 생각하며 <지상의 마지막 오랑캐>를 읽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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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제 있었던 팀K리그 VS 유벤투스FC 친선경기로 인해 울분을 토로하는 사람들이 어찌나 많은지 하루가 지난 지금까지도 경기를 주최했던 회사와 회사의 대표가 실시간검색어 순위에 오르내리고 있습니다. 물론 사건의 발단은 세계적인 축구선수 크리스티아누 호날두의 노쇼에서 기인한 것이지만 말입니다. 경기장을 찾은 관중들은 K리그 선수들과 유벤투스 선수들의 멋진 플레이를 기대했었겠지만 무엇보다도 호날두의 멋진 슛과 전매특허나 다름없는 골 세리머니를 보고 싶어 했을 듯합니다. 그러나 그는 팬 사인회에도 나타나지 않았을 뿐만 아니라 경기가 열리는 90분 동안 단 한 번도 경기장을 밟지 않았습니다. 관중들의 야유와 함성 속에서도 아랑곳하지 않고 묵묵히 자리를 지키다가 퇴장하면서 K리그 선수들 몇몇과 셀카를 찍었던 게 그가 대한민국에서 보여준 팬서비스의 전부였습니다.

 

텔레비전을 통해 경기를 보았던 나로서는 그닥 불만은 없습니다만 티켓을 사서 경기장을 찾았던 관중들은 꽤나 화가 났을 듯합니다. 제가 그 입장이었어도 단단히 화가 났을 테니까 말이죠. 예정되었던 시간에 경기가 열린 것도 아니고, 비가 내리는 궂은 날씨를 참아가면서 기다렸는데 보고 싶었던 선수마저 나타나지 않았으니 정말 화가 났을 테죠. 저는 TV를 통해 그 상황을 지켜보면서 프로 선수는 감정이 있는 한 사람의 인격체가 아닌 그저 한 명의 선수, 더 심하게 말하면 축구 로봇에 불과하구나, 하는 생각이 문득 들었습니다. 그것에 대한 대가로 그 많은 연봉을 받는 것일 테고 말이죠.

 

축구선수와 같은 공인이 된다는 건 쉬운 일이 아니구나 새삼 느끼게 되었던 경기였습니다. 그런 의미에서 국회의원을 비롯한 정치인들도 다르지 않을 듯합니다. 전국택배연대노동조합과 전국택배노동조합으로 구성된 택배노동조합기본권쟁취투쟁본부가 선언한 '유니클로 배송 거부 운동'에 대해 무소속의 이언주 의원은 "다른 소비자들의 선택권과 경제적 자유를 왜 짓밟는 것이냐"며 "일을 하기 싫으면 그만두고 다른 사람들이라도 일하게 두라."고 했다 하니 공인으로서 그녀는 이미 자격을 상실하지 않았나 싶습니다. 국민 대다수의 의사에 반하는 말을 하고 싶으면 공인이 아닌 개인의 자격으로 돌아와야 하지 않을까 싶은 것이죠. 국회의원직을 내려놓고 개인이라면 개처럼 멍멍 짖든 닭처럼 꼬꼬댁거리든 누구 하나 시비 걸 사람이 없을 테니까 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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직지 2 - 아모르 마네트
김진명 지음 / 쌤앤파커스 / 2019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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직지 1권이 사회부 기자 김기연을 주축으로 라틴어 교수 전형우의 기괴한 살해 사건을 추적하는 과정을 담았다면 직지 2권은 전혀 다른 분위기에서 이야기가 펼쳐진다. 더구나 1권은 상황이나 역사적 사실 또는 사건의 배경이 되는 여러 인과관계를 설명하느라 다소 느리고 답답한 전개가 이어질 수밖에 없었는데 그러한 부담감에서 벗어난 작가는 자신이 독자들에게 전하고자 했던 주제를 2권에서 마음껏 펼쳐낸다. 직지에 얽힌 작가의 상상력과 그 근거가 마치 역사의 현장을 자세히 목도한 후 자신이 본 것을 그저 한 편의 이야기에 담아 독자들에게 전해주는 것처럼 생생하게 그려진다. 그리고 1권에서 겨우 이름만 비쳤던 카레나의 흔적이 2권에서 드러난다. 카레나는 조선 세종 때 유럽으로 건너간 여성으로 금속활자를 유럽에 가져갔을 뿐 아니라 세종대왕이 백성을 위해 글자를 만들었다는 사실을 독일의 신학자 니콜라우스 쿠자누스에게 전달한 인물이었다. 

 

"카레나와 쿠자누스의 알려지지 않은 이야기는 직지의 역사적 진실과 더불어 기연의 가슴에 강한 울림으로 다가왔다. 기연은 자신이 그 시절의 카레나였으면 어떻게 했을 것인가 곱씹으며 1400년대로 돌아가 상상의 날개를 펼치기 시작했다." (p.14)

 

이야기는 이제 1400년대 세종 시대로 옮아간다. 한글을 창제하던 당시의 시대 상황과 비밀리에 운영되던 주자소가 그려진다. 그리고 주자소의 책임자인 양승락과 그의 여식 '은수'는 한글을 창제하려는 세종의 비밀 조력자와 다름이 없었던 바 이 사실이 명의 사신단에게 알려짐으로써 양승락은 죽임을 당하고 '은수'는 사신단으로 왔던 유겸에 의해 구명된다. 사신단과 함께 명으로 갔던 '은수'는 유겸의 양녀가 된다. 그 후 죽을 고비를 무사히 넘긴 '은수'는 명나라에 와 있던 사제들과 함께 유럽으로 향한다. 로마에 도착한 '은수'는 죄수들의 이야기를 들어주는 봉사활동을 한다. 그 과정에서 '은수'는 죄수들의 이름에서 모음의 차이만으로 사형이 뒤바뀔 수도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되고, 이를 시정하기 위한 해결책으로 필사보다는 인쇄를 위한 금속활자를 만들어 보여준다. 이를 본 교황과 추기경 등은 새로운 기술에 충격을 받게 되지만 그것으로 인해 자신들의 권위가 하락할까 염려한 그들은 '은수'를 마인츠로 보낸다.

 

"은수는 이제 금속활자를 내놓을 때가 되었다고 생각했다. 쇳물을 끓일 용광로를 구하고, 철이든 청동이든 납이든 금속을 구하고, 철제 주형틀을 만드는 건 보통 일이 아니라 은수 혼자 할 수 없었다. 바티칸에는 없는 없었을 뿐 아니라 교황의 명에 따라 마음껏 지원을 받았기에 한 달 만에 끝낼 수 있었지만 마인츠의 상황은 열악하기 그지없었다." (p.133)

 

마인츠에서 '은수'는 금속활자를 선보이지만 대주교에 의해 마녀로 몰려 화형에 처할 위기에 처한다. 미래를 장담할 수 없는 절체절명의 위기 상황에서 '은수'가 만난 사람이 쿠자누스였다. '은수'는 금속활자를 만드는 기술을 쿠자누스에게 전한다. 그리고 그 기술은 쿠자누스의 절친이었던 구텐베르크에 의해 세상에 빛을 보게 된다. 소설에서 작가는 비약이 없어 보이는 이 이야기를 기연이 하는 상상으로 그려내고 잇다. 그리고 상상에서 깨어난 기연은 다시 전 교수의 살해 사건을 추적하는데...

 

"기연의 기사는 폭발적 반응을 불러일으켰다. 특히 직지의 금속활자가 구텐베르크에게 전달되었다는 외국 학자들의 구체적 검증방법과 논거에 대한 사회의 관심은 뜨거웠다. 그간 미국 앨 고어 부통령의 인사말이나 구텐베르크 초상화, 또 다큐멘터리 영화 <직지코드> 등을 통해 직지의 유럽 전파에 대한 주장이 나오곤 했었다. 하지만 그 주장에 대한 판단이 어려울 수밖에 없는 상황에서, 전자현미경을 통한 과학적 검증을 소개한 기연의 기사에 쏟아지는 관심은 당연한 것이었다." (p.236)

 

작가는 한국 사회의 주체성 결여를 강하게 비판하면서 "주체성은 현대 국가로 이행하기 위해 필요한 요소이지만 우리에겐 부족하다. 아직도 외국에서 인정해줘야만 훌륭하다고 생각한다."고 지적했다. 일본과의 경제전쟁을 벌이고 있는 요즘, 우리 사회의 곳곳에는 아직도 일본이 마치 우리보다 몇십 배 또는 몇백 배 뛰어난 민족인 양 떠들고 숭상하는 일베스러운 사람들이 있다. 이제라도 늦지 않았으니 우리 대한민국 국민의 능력은 전 세계 최고라는 사실을 소설 <직지>를 통해 배웠으면 좋겠다. 일본은 이제 두려운 존재가 아니라 함께 협력하거나 대등한 위치에서 경쟁하는 국가일 뿐이라는 사실을 깊이 깨우치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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돌팔이 의사
포프 브록 지음, 조은아 옮김 / (주)태일소담출판사 / 2019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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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일 밤 어느 방송국의 교양 프로그램에서는 피부과 의사 행세를 해온 연극배우의 실체를 파헤쳤다. 출연했던 작품만 40여 편에 달하는 중견 배우였던 홍 씨는 직접 극본을 쓸 만큼 재능이 많았던 사람인데 어느 날 홀연히 사라졌다가 사람들은 그가 필리핀에 가서 공부를 했던 것으로 알고 있었다. 이후 홍 씨는 레이저기 납품업체 직원들을 졸라 작동법을 배워 근무했던 병원의 의사 몰래 불법 시술을 하기도 했다. 그렇게 의료기기의 작동법을 배운 홍 씨는 불법 시술을 넘어 피부과를 개업하기에 이른다. 병원이나 의원은 의사만 개업할 수 있지만 의료생협은 의사만 고용하면 일반인도 개업할 수 있다는 법의 허점을 이용하여 2016년 부산에서 병원을 개업한 홍 씨는 원장 행세를 하면서 다수의 환자에게 무면허 의료 시술을 했다는 게 골자였다. 이날 방송에서는 그로부터 시술을 받고 부작용에 시달리는 피해자들도 등장했다.

 

인터넷으로 확인해도 쉽게 알 수 있는 21세기 대한민국에서 어떻게 그런 어처구니없는 일이 벌어질 수 있었던 걸까?  그것은 아마도 더욱 젊고 예뻐지고 싶어 하는 대중의 욕구를 어느 사기꾼이 교묘히 파고든 결과가 아닐까 싶다. 욕구가 강하면 강할수록 두들겨보는 돌다리의 숫자도 적을 뿐 아니라 숫제 점검도 없이 사기꾼의 말 한마디에 쉽게 넘어간 피해자도 다수일 터, 과학이나 제도가 아무리 발전해도 인간의 여러 욕구가 존재하는 한 그 욕구를 이용하여 다른 계획을 획책하거나 도모하려는 사기꾼은 언제든 발호할 수 있다는 걸 기억해야 한다.

 

20세기 초 미국에서도 이와 비슷한 사기 행각이 있었다. 피해 규모로 본다면 홍 씨는 뻔뻔한 사기극의 주인공 '존 R. 브링클리'에 비할 바가 못되지만 대중의 탐욕을 그 표적으로 삼았던 것과 연기와 언변이 탁월했던 점은 유사하다.

 

"물론 의료 사기는 어느 시대, 어느 문화에서나 번성했었다. 대부분의 사기가 탐욕을 표적으로 삼지만, 그중에서도 특히 의료 사기는 칼 융의 명제인 '죽음에 대한 공포와 기적에 대한 갈망'을 깊숙이 파고든다. 게다가 날이 어두워지면 사람들은 대체로 바보가 된다." (p.23)

 

논픽션 작품의 대가 포프 브록이 쓴 <돌팔이 의사>는 '미국 역사상 최악의 연쇄살인마는 아니겠지만 시신의 숫자로 따지면 결선까지 오를 수 있을' 정도의 의료 사기를 저지른 천재 악마 '존 R. 브링클리'와 그를 끝까지 뒤쫓은 '피시바인'의 이야기를 담고 있다. 브링클리는 시들어가는 정력을 회복시켜주겠다며 염소의 고환을 제거해 사람의 음낭에 넣는 외과수술을 시행했다. 미국 역사상 처음으로 염소 고환 이식술을 통해 발기부전 치료의 돌파구를 찾았다는 그의 터무니없는 주장을 듣고 수천 명의 사람들이 그에게 몰려들었다. 그는 상상도 할 수 없는 부자가 되었다. 당시 미국 의사들 수입이 7,000달러에도 미치지 못했었는데 그는 자그마치 1,200만 달러를 벌어들였다.

 

그는 단순히 의료 사기꾼에서 그치지 않았다. 상상력과 창의력이 뛰어났던 그는 광고를 위해 라디오 방송국과 송전탑을 짓고, 컨트리 뮤직을 처음으로 라디오에 도입하기도 하였다. 브링클리는 라디오 방송을 통해 의학적인 조언을 함으로써 수많은 가정을 병들게 했을 뿐만 아니라 염소 고환 이식술을 통해 많은 남자들을 죽음에 이르게 했다. 그럼에도 그에 대한 사람들의 맹목적인 믿음으로 인해 그는 주지사에 출마하기도 했다.

 

"'돈을 벌기 위한 계산'과 '자신을 신과 혼동하는 사고'가 섞인 브링클리의 특이한 기독교관에는 반유대주의 요소가 늘 도사렸다. 브링클리는 1932년 주지사 선거에 출마했을 때, 위치타의 목사였던 제럴드 B. 윈로드의 지지를 받았다. 그는 대부분의 국제문제가 유대인 음모론이라 지적했고, '전통적이고 신을 두려워하며 자녀를 둔 미국인들'만을 축복해주었다. 암울했던 1930년대에 유럽에서 파시즘이 폭발하자, 미국에서도 이와 비슷한 사상들이 마치 배수관의 뱀처럼 출몰했다." (p.325)

 

현재의 시점에서 과거를 되돌아보면 모든 게 어리석고 황당하게 여겨진다. '아무리 회춘도 좋지만 염소의 고환을 자신의 음낭 속에 집어넣음으로써 젊음을 되찾을 수 있다고 믿는 게 말이나 돼?'라고 반문할지도 모른다. 그러나 그런 것도 현재의 상식과 기준에서 바라보기 때문은 아닐까. 의학 박사라는 타이틀을 가진 사람이 당시의 의학적 수준을 뛰어넘는 획기적인 시술법을 개발했다고 한다면 그의 말에 반문을 제기할 사람이 과연 몇이나 될까. 게다가 죽음에 대한 인간의 숙명적인 공포를 완화하기 위한 자구책이 될 수도 있는 회춘에 대한 인간의 탐욕이 더해진다면 그 믿음은 충분히 짐작하고도 남음이 있다. 21세기 대한민국에서도 저렴한 가격에 예뻐질 수 있다고 광고를 하면 면허도 없는 가짜 의사에게 수천 명이 달려드는 판이니... 인간의 탐욕을 파고드는 사기꾼의 행태는 예나 지금이나 달라진 게 없는 듯하다. 회춘과 아름다움에 대한 인간의 탐욕도... 사기꾼에게 속지 않는 비결은 자기 스스로에게 언제나 '나의 탐욕은 안전한가?'라고 묻는 것밖에 달리 방법이 없는 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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