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보 직장인을 위한 엑셀 & 파워포인트 & 워드 & 아웃룩 & 원노트
장경호 지음 / 영진.com(영진닷컴) / 2019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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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판절판


당연한 일이지만 누구에게나 신입사원 시절이 있다. 물론 대학을 졸업하는 순간 창업을 하거나 부모로부터 물려받은 재산을 탕진하며 호의호식하는 일부 족속도 존재하기는 하지만 말이다. 그러나 대한민국을 이끌어가는 대부분의 직장인들은 모든 것에 서툴렀던 신입사원 시절부터 계단을 오르듯 차근차근 단계를 밟아 올라오지 않았을까.

 

나 역시 다르지 않았다. 내가 초보 직장인이던 당시만 해도 인터넷이 크게 발전했던 것도 아니었고, 선후배와의 관계가 지금처럼 자유롭지도 않았다. 그런 까닭에 업무의 많은 부분은 컴퓨터가 아닌 수작업에 의존할 수밖에 없었고, 서열이 엄격했던 당시의 직장 분위기 상 부서의 가장 막내인 신입사원의 역할은 차고 넘칠 수밖에 없었다. 야근은 말할 것도 없고, 때로는 밤을 꼴딱 새워도 다 처리할 수 없는 과중한 업무가 주어지기도 했다. 그럼에도 불만은 있을 수 없었다. 위계가 존재하는 군대문화가 판을 치던 시절이었고, 나도 언젠가 대리가 되고, 과장이 되고, 차장 부장을 거쳐 직장인의 꽃이라는 이사가 되는 꿈을 꾸면서 힘든 신입사원 시절을 벗어나려 했다. 사수와 부사로 지칭되던 직장 내 선후배 관계는 그야말로 군대 문화의 연속이었다.

 

당시에 서류 작성을 위한 기본적 수단이자 필수적 도구가 되었던 게 엑셀과 한글이었다. 지금에 비하면 아주 초보적인 수준이었지만 말이다. 그러나 세월이 가면서 한글이나 엑셀의 프로그램도 끝없이 진화하는 것처럼 직장인의 지식이나 스킬도 진화하는 게 마땅하지만 사실은 그렇지 않다는 데 문제가 있다. 대부분의 직장인들은 선배로부터 배운 지식을 바탕으로 조금쯤 진화하거나 그 수준에서 머물러 있는 게 보통이다. 시간도 없고, 자기 계발의 여력도 없지만 직장 내 업무라는 게 늘 쓰던 것만 쓰게 마련이고, 새로운 것을 시도하기에는 위험성이 높다는 데 그 원인이 있지 않을까 싶기는 하지만...

 

장경호의 <초보 직장인을 위한 엑셀&파워포인트&워드&아웃룩&원노트>를 읽으면서 느꼈던 건 나의 업무 스킬이 신입사원 시절에서 크게 나아지지 않았다는 사실에 대한 반성과 부끄러움이었다. 그동안 나는 뭘 하면서 그 많은 시간을 보냈던 것일까. 총 6개의 파트로 구성된 이 책은 PART 01 '초보 직장인이라면 반드시 알아야 할 엑셀편', PART 02 '초보 직장인이라면 반드시 알아야 할 파워포인트편', PART 03 '초보 직장인이라면 반드시 알아야 할 워드편', PART 04 '초보 직장인이라면 반드시 알아야 할 아웃룩편', PART 05 '초보 직장인이라면 반드시 알아야 할 원노트편', PART 06 '초보 직장인이라면 반드시 알아야 할 공동 기능과 연동편'에서 보는 바와 같이 초보 직장인이 알아야 할 전반적인 지식들이 수록되어 있다.

 

자기 계발에 시간을 투자하지 않는 사람들의 공통적인 특징은 필요성을 핑계로 배움에 소홀하다는 점이다. 예컨대 '이거 쓰지도 않는데 뭐하러 배워?' 또는 '필요도 없는 일에 왜 쓸데없이 시간을 투자해?' 하는 질문은 그들이 공통적으로 갖는 생각이다. 어떻게 그리 잘 아느냐고? 내가 그렇기 때문이다.

 

"이 책은 프로그램별로 핵심 기능을 우선 전달하고, 기능표와 인덱스를 통해 원하는 기능을 빠르게 찾을 수 있도록 구성했습니다. 또한, 실제 업무에서 사용할 수 있는 예제를 바탕으로 자유롭게 활용할 수 있습니다. 혹시 몰라서 버전별로 테스트해서 모든 버전에서 사용이 가능하도록 했으며, 최신 기능도 빠짐없이 담았습니다. 무엇보다 아웃룩과 원노트를 배우고 싶었지만 적절한 책이 없어 망설인 분들에게 이 책이 단비가 되길 바랍니다." (p.3 '머리말' 중에서)

 

많이 알수록 업무 효율이 높아지고 칼퇴근의 가능성이 높아지는 게 사실이다. 덤으로 직장 상사나 동료들로부터 능력을 인정받기도 한다. 하다못해 엑셀 프로그램이나 워드의 단축키만 외워도 퇴근 시간을 얼마나 앞당길 수 있던가. 이 책에서도 역시 도서 구매시 단축키가 적힌 마우스패드를 선물로 주고 있다. 마우스 패드를 보면서 단축키를 자주 사용하다 보면 어느 순간 저절로 외워지리라고 본다. 업무를 모두 마치고 홀가분한 마음으로 퇴근을 준비한다는 건 얼마나 가슴 뿌듯한 일인가. 발걸음도 가볍고 콧노래가 절로 나오지 않을까. 생각만 해도 한 뼘쯤 하늘이 높아질 것만 같은 이 가을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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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세대 류석춘 교수의 망언이 우리에게 주는 교훈은 우리나라 주류 세력들 중 다수가 우리나라 역사를 자신들의 이해에 영합하는 쪽으로 끝없이 변질 왜곡해왔다는 사실이다. 일본 극우파의 주장을 그대로 옮겨와도 누구 하나 뭐라고 할 사람이 없었기 때문이다. 그들에게는 전체 국민이 아닌 오직 자신들만을 위한 국가 권력이 존재했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자신들의 이익을 위해서라면 모국의 역사마저 부정할 수 있다는 그들의 사고방식에 대해 작금의 우리는 다른 어떠한 일보다 더 분개하고 있지만 정작 우리가 분노해야 하는 건 국가는 충성의 대상이 아니라 몇몇 권력자들의 이익을 옹호하는 도구이자 수단으로 치부되어 왔다는 사실이 아닐까.

 

이영훈을 추종하는 이우연, 류석춘 등 친일 반민족주의자들이 국민들의 분노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고개를 꼿꼿이 들고 거리를 활보할 수 있는 것도 자유당을 비롯한 국가기관에 잔존하는 일부 세력들이 자신들의 신변을 잘 돌봐줄 거라는 믿음이 존재하기 때문일 터, 현충원에 묻힌 친일 반민족 행위자들이 우리의 역사 속에서 영웅으로 군림하는 한 그들의 방약무인한 태도 역시 결코 사라지지 않을 것이다. 자신의 수업을 듣는 여학생을 향해 궁금하면 매춘을 해보라는 성희롱성 발언을 서슴없이 내뱉을 수 있었던 것도 그와 같은 자신감에서 비롯되지 않았을까.

 

'서술하되 지어내지 않는다(述而不作)'는 공자의 말은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역사학의 오랜 원칙으로 인식되어 왔다. 그럼에도 우리나라와 일본의 역사학자들은 왜 자국의 역사를 끝없이 지어내고 있는가 생각해 볼 문제이다. 나치 세력의 유대인 학살은 옹호하지 못하면서 일본 제국주의 세력의 만행만 극구 옹호하는 것은 그들의 망언을 강력하게 처벌할 법적 장치가 부족하고 평화를 사랑하는 전 세계인의 비난 여론이 비등하지 않기 때문이다. 우리는 같은 민족이라고 말하기도 부끄러운 그런 사람들과 함께 동시대를 살아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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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여름, 그 섬에서
다이애나 마컴 지음, 김보람 옮김 / 흐름출판 / 2019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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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을 좋아하는 사람들도 책을 읽고 난 후 언제나 그 느낌이 비슷한 것은 아니어서 매번 처음인 양 새로운 것을 경험하게 된다. 그래서 책을 더 좋아하게 되는지도 모르지만 말이다. 물론 각각의 책들이 다 다른 내용을 품고 있지만 같은 책을 연거푸 다시 읽어도 그 느낌이 매번 다르다는 건 다른 일에서는 결코 경험할 수 없는 게 아닐까. 아무리 책을 많이 읽어도 넌더리를 내거나 책만 보면 고개를 외로 트는 경우를 보지 못했으니까 말이다.

 

"캘리포니아에서 잘 지내고 있었는데 갑자기 그의 단짝 친구가 쉰한 살의 나이로 세상을 떠났다고 했다. 그는 유쾌한 농담을 할 줄 아는 친구였다. 일평생 사랑을 외친 남자. 매니의 말에 따르면, 친구는 쉰한 살에 죽어서는 안 되는 남자였다. 매니는 장례식에 참석했으나 울지는 않았다. 그런데 어찌 된 영문인지 자신의 몸이 마치 생명을 잃어버린 목석이 된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 집으로 돌아온 그는 아내 메리에게 그동안 늘 얘기만 했던 아조레스로 돌아갈 때가 마침내 온 것 같다고 말했다." (p.229)

 

퓰리처상 수상자 다이애나 마컴의 자전적 에세이 <그 여름, 그 섬에서>는 읽을 때보다 읽고 난 후의 느낌이 더 좋은 책이다. '로스앤젤레스 타임스'의 취재기자 다이애나 마컴은 어느 날 캘리포니아 외곽에 위치한 아조레스 이민자들을 만나게 된다. 물론 취재가 목적이었지만 그들은 세대를 넘어 고향에 대한 깊은 그리움을 달래기 위해 그들이 정착한 새로운 땅에서 아조레스의 문화를 그대로 재현하면서 살아가고 매년 여름이면 아조레스로 돌아간다는 사실에 깊은 감명을 받는다. 그러나 저자는 대서양 한복판에 위치한 포르투갈령 아조레스 제도에 대해 아는 바가 없었다. 아홉 개의 섬으로 이루어진 아조레스 제도의 어떤 매력이 이주민들로 하여금 매년 그들을 불러들이는지... 저자는 그해 여름 자신들의 고향으로의 초대에 흔쾌히 응한다.

 

"9월이 왔다. 나는 식탁보 한가운데서 보았던 감자같이 생긴 테르세이라 섬으로 향하는 비행기에 올라타 있었다. 내가 탄 비행기는 그해 여름 아조레스로 가는 마지막 비행기였고, 나는 그 비행기에서 딱 하나 남은 좌석을 차지했다." (p.53)

 

아조레스 제도는 투우와 축제, 연보랏빛 수국과 푸른 바다, 푸른 들판과 언덕이 펼쳐진 아름다운 곳이었다. 그러나 우리의 삶에서도 그렇듯 행복의 이면에는 슬픔이 깃든 것처럼 아름다운 자연 풍광 뒤에는 슬픈 역사가 숨겨져 있다는 걸 우리는 안다. 아조레스 역시 다르지 않았다. 대항해 시대의 첫 번째 행선지였던 아조레스 섬은 독재와 냉전 시대를 겪어내기도 했고, 화산 폭발의 자연재해를 입은 곳이기도 했다. 그리고 사람 사는 곳이면 어디든 상실과 이별의 아픈 사연이 이어지고 있다. 저자는 이곳에 사는 사람들로부터 들은 갖가지 사연에 흥미를 가지기 시작하였고, 그들의 이야기를 기록하기에 이르렀다.

 

"떠날 날이 얼마 남지 않은 어느 날이었다. 하늘에는 설핏 가을빛이 돌았다. 내가 카르도주 부인을 처음 만났던 때에 비하면 150센티미터는 더 자란 옥수숫대 위로 노란 금빛이 반짝거렸다. 무지근한 통증이 퍼지는 걸 느끼며 마을을 거닐고 있었다. 혹시 이게 사우다지의 초기증상이 아닐까, 싶은 생각이 들었다." (p.174~p.175)

 

이민자들이 고향을 그리워하는 마음을 '사우다지(saudade)'라고 한다. 우리말로 풀자면 향수 또는 깊은 그리움에 가깝지만 포르투갈어가 아닌 다른 언어로는 그 의미를 온전히 전할 수 없다. 파두의 애절한 가락에 담긴 그 깊은 의미를 다 알 수 없는 것처럼. 물질적으로 부족한 게 없을지라도 디아스포라의 삶은 언제나 영혼 한구석에 남겨진 상처와 갈망, 좌절과 그리움이 혼재한다. 기자로서의 직업적 호기심에서 비롯된 아조레스 방문은 저자로 하여금 자기 안의 상실과 갈망을 마주하도록 했다. 오래전에 부모를 잃고 외딴섬에 남겨진 것처럼 느껴왔던 것도, 아르메니아인 일가와 가족같이 지내왔던 것도, 오랜 시간 운명의 상대를 만나고 싶어 했지만 제대로 된 연애를 이어가지 못했던 것도 가슴 깊이 묻어둔 상실감과 무엇인가에 대한 갈망이 치유되지 않았던 까닭임을 비로소 깨닫게 된다.

 

오늘 할 일을 내일 할 수 있다면 굳이 왜 오늘 해야 하느냐고 묻고, 당장 해야 할 일을 앞에 두고 있지만 투우 관람이 더 중요하며, 모든 것을 잃은 순간에도 무슨 일이든 일어날 수 있음을 믿는 등 시종일관 유쾌하고 긍정적인 사람들이 사는 곳 아조레스 섬. 그들이 들려주는 이야기에서 저자가 발견한 것은 다른 누군가의 삶이 아니라 바로 자기 자신이었다. 자신이 누구인지, 어떤 사람인지에 대해 천천히 깨달아가기 시작하는 저자는 자신이 찾던 진정한 상대가 누구인지에 대해서도 조금씩 알게 된다.

 

우리의 삶도 어쩌면 '열 번째 섬'을 찾는 끝없는 여행인지도 모르겠다. '떠나 있어도 마음은 머물게 되는 곳'이라는 의미의 '열 번째 섬'. 저자 자신의 경험담이자 아조레스 이민자들의 이야기를 담은 이 책이 책을 읽는 순간보다 책을 다 읽고 책의 내용을 되새김질하는 순간에 더 많은 의미를 깨닫게 되는 데에는 다 이유가 있지 않았을까. 우리의 삶이 경과하는 동안에는 알지 못했던 것들도 죽음을 눈앞에 둔 순간 확연히 깨닫게 되는 것처럼 이 책 역시 우리의 삶을 닮아 있기 때문일 터였다. 17호 태풍 타파가 지나가고 있다. 태풍이 지나가며 남긴 상처는 작든 크든 시간이 흐르면 아물겠지만 우리들 각자가 만든 마음속 태풍은 언제쯤에나 잦아들까. 도무지 알 수 없는 게 인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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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 달 넘게 지속되는 조국 장관에 대한 언론 보도로 인해 사람들의 짜증이 급속도로 높아지는 느낌이다. 나부터도 요즘에는 숫제 뉴스를 보지 않는다. 조국, 아프리카 돼지 열병, 화성 연쇄살인 사건, 이 세 가지 뉴스로 전체 뉴스 시간의 80%이상을 써버리는 듯해서 뉴스를 보는 건지 재방송을 보는 건지 도무지 종잡을 수가 없는 것이다. 게다가 있지도 않은 교수들의 가짜 시국선언 낭독 등 여론을 왜곡하거나 조작하려는 세력들의 가짜 뉴스마저 아무런 검증도 없이 보도하는 통에 언론의 공정성마저 땅에 떨어지고 있다.

 

지난 며칠 동안 제천과 단양을 다녀왔는데 그곳 사람들 역시 뉴스를 도외시하기는 마찬가지였다. 전통적으로 보수색이 짙은 그곳 사람들마저 뉴스와 멀어졌으니 진보적 성향이 있는 사람들이야 오죽할까. 심지어 제천 시내의 한 식당에서 만났던 어르신 한 분은 저녁 뉴스 시간에 등장한 자유당 인사들의 삭발 현장을 보시고는, "저것들이 다 공천을 받으려고 저 지랄들이지 누구 하나 나라를 생각해서 머리를 깎는 놈이 있느냐?"고 목소리를 높이셨다. 그러자 그 옆에 있던 중년의 한 분이 "머리도 깎았으니 이제 절로 들어가면 쓰겄네요." 하면서 웃으셨다. 코미디도 이런 코미디가 없다.

 

조국 장관을 다루는 언론 보도가 대통령을 다루는 소식보다 많으니 언론이 미쳐도 한참 미친 듯하다. 자유당의 당대표가 머리를 깎고 출가를 했다면 뉴스거리가 될지 모르지만 한 달만 기르면 웬만큼 자랄 머리 조금 깎았다고 그게 어디 나라가 망할 일인가. 나라가 편안하니 별게 다 뉴스거리가 된다. 오죽 뉴스거리가 없으면 알지도 못하는 사람의 이발 소식까지 전하고 있으니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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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를 건너 너에게 갈게 - 제8회 문학동네청소년문학상 대상 수상작 문학동네 청소년 39
이꽃님 지음 / 문학동네 / 2018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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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침 공기가 사뭇 차가워졌다. 한 발도 뒤로 물러서지 않겠다는 듯 마냥 기세가 등등하던 여름도 어느새 과거 속으로 저만치 멀어진 느낌이다. 틈만 남기고 살짝 열어두었던 창문도 새벽이면 으스스한 추위에 놀라 완전히 닫게 된다. 거역할 수 없는 시간의 법칙, 어쩌면 가질 수 없는 것에 대한 그리움이나 환상으로 인해 우리는 자신이 흘려보낸 시간에 대해 그리워하거나 더없이 아름다운 환상을 품게 되는지도 모른다. 그러나 가능하지도 않은 소설 속 판타지로 인해 때로는 마음속 상처가 덧나기도 하고 잊었던 기억이 되살아나기도 하는 까닭에 나는 시간을 거스르는 이야기는 가급적 멀리하곤 했다. 히가시노 게이고의 소설 <나미야 잡화점의 기적>을 건성건성 간신히 읽어냈던 것도 그와 같은 이유였다.

 

이꽃님 작가의 소설 <세계를 건너 너에게 갈게>의 내용에 대한 주변 사람들의 언질이나 약간의 귀띔만 있었어도 나는 이 소설을 읽지 않았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어떤 책이든 일단 책을 손에 잡으면 다 읽기 전에는 놓지 못하는 고약한 습관 탓에, 혹은 편지 형식으로 쓰인 스토리 전개가 읽는 이의 감성을 자극한 탓에 나는 이따금 눈물을 훔쳐가며 끝내 다 읽고야 말았다. 서로 다른 시공간을 살아가는 두 명의 은유가 편지를 주고받으면서 서로에 대해 알게 되고 나아가 우리 모두가 관계를 맺고 있는 가족의 인연에 대해 생각하게 된다는 내용의 이 소설은 동등한 입장에서 기성세대와 청소년의 입장을 이해하도록 돕는다.

 

"네 엄마 물건을 15년 만에 다시 꺼내 봤단다. 그땐 네 엄마를 보낼 준비가 되지 않아 유품조차 제대로 챙기지 못했더구나. 엄마의 다이어리 속에 미처 발견하지 못한 편지가 있었다. '은유에게'라고 적힌 걸 보니 아마도 네게 보낸 듯하다. 엄마는 마지막 순간이 다가올 때까지 끝까지 널 놓지 않았으니까." (p.215)

 

산 자와 죽은 자 사이에 오가는 편지를 통해 이야기의 서사가 만들어지는 소설의 구성이나 형식으로 볼 때 약간의 작위적인 느낌은 지울 수 없지만, 이 소설이 '제8회 문학동네 청소년 문학상 대상' 수상작이라는 걸 감안할 때 이 세상에서 가장 소중한 엄마를 잃은 은유가 비록 편지 상의 만남이지만 시공간을 초월하여 엄마와 생각을 나눈다는 발상은 읽는 이로 하여금 가슴 밑바닥으로부터 치미는 뭉클한 감동을 자아내게 한다. 그런 의미에서 이 소설은 소중한 사람을 잃은 채 이 세상을 살아가고 있는 모든 이들을 위로하는 위로의 편지가 되는 셈이다.

 

"어쩌면 우린 너무 많은 기적을 당연하게 생각하면서 사는지도 모르겠어. 엄마가 딸을 만나고, 가족이 함께 밥을 먹고, 울고 웃는 평범한 일상이 분명 누군가한테는 기적 같은 일일 거야. 그저 우리가 눈치채지 못하고 있을 뿐이지." (p.217)

 

소설은 싱글 대디인 은유의 아빠와 은유가 바닷가 카페에서 느리게 가는 우체통에 넣을 편지를 쓰는 것으로 시작한다. 은유의 아빠는 곧 재혼을 앞두고 있다. 엄마의 얼굴도 모르는 채 15살이 된 은유는 처음으로 가지게 될 새엄마의 영 껄끄럽고 마뜩잖다. 그런 은유에게 1년 뒤의 자신에게 보내는 편지를 써 보라는 아빠의 제안은 불만투성이의 은유로 하여금 가출 서약서를 쓰게 만든다. 그러나 억지로 쓴 은유의 편지는 1년 뒤 자신에게 배달된 것이 아니라 34년이라는 시간을 거슬러 올라가 1982년의 또 다른 은유에게 전해진다. 2016년의 시간대를 사는 15살의 은유와 1982년의 시간대에 사는 초등학생 은유의 편지 교환은 그렇게 이루어졌다. 2016년의 은유는 자신에게 배달된 편지가 누군가 보낸 장난편지인 줄로만 알고 화를 내지만 1982년의 은유가 보낸 500원짜리 행운의 동전을 받은 후 오해가 풀린다.

 

현재의 은유와 과거의 은유 사이에는 시간의 속도가 다르게 존재한다. 2016년의 은유가 1년을 살아가는 동안 1982년의 은유는 20년의 세월을 살아가는 식이다. 시간이 흐르는 속도의 차이로 인해 두 사람 사이에 오가는 호칭 역시 변해간다. 초딩이 동생으로, 다시 너로, 언니로, 이모 아닌 언니로... 그렇게 호칭이 변해가는 동안 두 사람 사이에는 특별한 믿음이 싹트고 서로의 고민을 털어놓게 되고, 급기야 2016년의 은유가 보낸 정보를 바탕으로 평생 궁금해하던 '엄마'의 존재를 찾아주기로 한다.

 

두 사람 사이의 편지는 2002년 은유가 태어난 해까지 계속된다. 그리고 엄마의 비밀을 밝혀줄 아빠의 편지와  유품으로 찾아낸 은유 엄마의 마지막 편지가 펼쳐진다. 현재의 은유가 태어난 날이 과거 은유의 기일이 될 수밖에 없었던 특별한 인연. 비록 서로가 서로의 얼굴을 확인할 수는 없었지만 엄마의 과거도, 딸의 미래도 이보다 더 명확하게 알 수 있는 방법은 없었으리라. 내가 태어나기 이전의 엄마가 나에게 보낸 편지, 나를 낳기도 전의 엄마에게 사춘기의 내가 보낸 편지. 은유는 단 한 번도 만난 적 없는 엄마의 편지를 오래도록 다시 읽게 될지도 모른다.

 

"다행히 나이를 먹어서 좋은 점도 있긴 있더라고. 그게 뭐냐면 다른 사람의 감정을 조금은 더 이해할 수 있다는 거야. 나이를 먹는다는 건 어쩌면 다른 사람의 마음을, 감정을 이해하려고 연습하는 시간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어." (p.175)

 

밖에는 지금 다가오는 17호 태풍 타파를 예감하려는 듯 추적추적 가을비가 내리고 있다. 결코 가질 수 없거나 알 수 없는 것들에 대한 환상이나 그리움이 때로는 누군가의 손에서 한 편의 소설이 되기도 하고, 그리움이 무르익어 터질 듯한 슬픔으로 맺히기도 하겠지만, 분명한 것은 우리가 그리움을 통해 시간을 배우고 환상을 통해 호기심과 모험 정신을 키워왔다는 사실이다. 우리는 그렇게 각자의 마음속에 시간을 쌓아가면서 두고두고 그리움을 키우게 된다. 어쩌면 소설 속 은유처럼 더 이상 오지 않을 편지를 한평생 기다리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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