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페퍼로니에서 왔어
김금희 지음 / 창비 / 2021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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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거의 기억이라는 건 언제나 쓸쓸함을 전제로 한다. 그것의 들추어짐에서부터, 그리고 들추어진 기억이 자신의 머릿속에서 맴맴 맴을 돌거나 두서없이 타자에게 말해지거나 혹은 흐릿한 생명력으로 문자화되는 순간에도 거리의 낙엽처럼 부서질 듯 메마른 쓸쓸함은 삶의 덧없음 속으로 끝없이 유영한다. 물론 그 쓸쓸함의 기원은 대개 되돌릴 수 없는 시간여행자의 운명에서 비롯된 것이지만 과거를 끝없이 되새김질하는 인간 종의 비애를 한껏 드러내곤 한다. 과거의 기억과 그 쓸쓸함에 대한 헌사, 그것이 곧 김금희 소설의 원천이라고 나는 늘 생각해 왔던 것이다. 어쩌면 그것은 쓸모도 없이 무작정 쌓여만 가던 어느 가을날의 낙엽 더미와 매캐한 연기와 함께 스러지던 시간의 흔적들처럼 무상한 느낌을 쓰고 또 지우게 하는 연례행사와 같은 것이었는지도 모른다. 김금희의 소설을 읽는다는 것은...


"어느 밤, 그렇게 흰 가지를 보고 있는데 바람이 불었고 어딘가에서 누가 종이 같은 것을 태웠고 한동안 잊고 있었던 소리들이 연상되었다. 기대와 상관없이 발생하고 의식이 수면 아래로 가라앉으면 저절로 소멸했다가 다시금 떠오르던 어떤 것들이. 그렇게 해서 복기한 밤의 소리는 엄마의 투명으로 한동안 나를 쥐고 있던 죽음의 세계와는 전혀 다른 것이었다. 슬프게도 그것이 사실이었다."  (p.174 '우리는 페퍼로니에서 왔어' 중에서)


김금희 작가가 들려주는 슬픈 서사는 대개 주인공의 젊은 시절에 '발생'했던 사랑과 그로 인한 상처와 좌절, 그리고 그 기억이 쥐고 흔드는 현실의 뿌리들로 요약할 수 있다. 작가가 말하는 사랑은 개인의 의지나 삶의 계획과는 상관없이, 자연발생적인 어떤 것이며, 돌이킬 수 없는 커다란 결과를 떡하니 안겨주고 홀연 사라지는 삶의 불청객과도 같은 존재이지만 인간의 삶이란 결국 자신이 선택한 사랑의 파문임을 인식할 때, 각자에게 주어지는 다른 문양의 사랑을 우리는 모두 자신의 운명처럼 받아들여야만 하는지도 모른다.


"나는 평소에는 크게 관심도 없는 사랑의 면면을 왜 이 여름 이렇게 고심해야 하나 생각했다. 리애씨도 선생님도 모두 나보다는 근 십수년은 위인 여자들, 그러니까 더 늙고 경험 있는 연륜 있고 스펙 있는 여자들인데 인생의 중요한 마디마다 여전한 의문을 풀지 못한 채 살고 있는 듯했다. 어쩌면 신화에서 인간이 판도라의 상자를 열었을 때 다 날아가고 남은 건 희망이 아니라 의문이 아니었을까."  (p.206 '기괴의 탄생' 중에서)


표제작인 '우리는 페퍼로니에서 왔어'를 비롯하여 '우리가 가능했던 여름', '크리스마스에는', '마지막 이기성', '기괴의 탄생', '깊이와 기울기', '초아' 등 일곱 편의 단편을 묶은 이 소설집은 일곱 편 모두 작가가 사십대에 쓴 작품이라고 한다.  사십대! 자신의 인생에서 결코 많지도, 적지도 않은 나이. 이제 막 인생의 반환점을 돌았을 그 나이에 이르면 삶의 무상함이 차츰 그 색깔을 더해가게 마련, 과거의 아름다웠던 기억들마저 쓸쓸하게 느껴지곤 한다.


"김금희의 소설은 매일의 나날과 축척을 같이하는데 부질없이 확대된 '나날들'의 지도에서 실패는 지루하고 패배마저 흐리멍덩하다. 어설픈 흔적처럼 존재하는 그것들은 작은 비고란에 기록될 법하지만 비고란이란 대개 비어 있기 마련이다. 그러나 남모르는 울분이 있고 지워지지 않는 느낌이 있고 잦아들 수 없는 발버둥이 있고, 요컨대 어쩔 수 없는 고군분투가 있다."  (p.307~p.308 '해설'(황정아) 중에서)


2주째 대체공휴일이 이어지는 3일간의 연휴. 이따금 추적추적 가을비가 내렸고 잊혔던 기억들이 마른 낙엽처럼 흩날렸다. 우리의 삶이 우연처럼 주어진 사랑의 파문(派紋)이라면 운명처럼 찾아오는 사랑의 순간들을 우리는 과연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까. 그 결과가 암울한 불행으로 끝날지라도 우리는 다시 또 새로운 사랑을 시작해야 할까. 관객을 대상으로 끝없는 자기 검증을 반복하는 어느 연극의 시나리오처럼 우리는 매번 주어지는 사랑을 마다하지 않고 내 삶의 자기 검증을 이어가야 할까. 사랑이 깊어질수록 어쩌면 단조로운 일상들이 내 삶의 무늬 속에  굵은 밑선처럼 드러나겠지. 마치 단풍이 들듯 말이다. 김금희 작가의 소설집 <우리는 페퍼로니에서 왔어>는 석양 무렵 어느 농부의 낙엽 태우는 손길처럼 익숙하거나 때론 뭉근하다. 어쩌면 작가는 지난날의 사랑을 낙엽처럼 태우고 있었는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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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디서 살 것인가 - 우리가 살고 싶은 곳의 기준을 바꾸다
유현준 지음 / 을유문화사 / 2018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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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본주의 체제하에서 살고 있는 우리는 원하는 물건을 선택하고 구매하는 데 있어 그 기준은 항상 구매력, 즉 자신의 경제적 형편에 달려 있는 듯 보인다. 불행하지만 어쩔 수 없는 현실이다. 그럼에도 우리는 좀 더 나은 선택을 하기 위해 노력하고, 자신의 구매력을 높이기 위해 투잡, 쓰리잡도 마다하지 않으며, 때로는 도시를 떠나 이거고 저거고 모든 걸 포기한 채 자연 속에서 유유자적하고 싶다는 생각도 하게 된다. 그게 어디 나 혼자만의 생각일까마는 작게는 아주 소소한 기호식품의 구매에서부터 크게는 가족 전체가 살기 위한 주택의 구매에 이르기까지 모든 선택의 기준이 하나에서 열까지 모두 돈이라고 생각하면 머리가 지끈거리곤 한다.

 

건축가 유현준이 쓴 <어디서 살 것인가>는 자신 살 곳을 고르는 데 있어 모든 사람이 천편일률적으로 제시하는 돈이라는 기준에서 벗어나도록 돕는다. 그렇다고 이 책이 배산임수를 논하는 풍수지리서도 아니요, 자녀의 교육과 교통, 의료와 문화 시설에 대한 접근성 등을 따지는 부동산 관련 서적도 아니다. 인류 문화를 탄생시킨 요람으로서의 공간이 가진 기능과 그 역사를 살펴봄으로써 오직 돈에 매몰되어가는 현대인의 기준을 벗어나 우리는 어떤 공간에서 행복을 느끼며, 어떤 주변 환경이 우리를 더 풍요롭게 하는지, 물질적 풍요가 아닌 사람과 사람 사이의 관계는 어떠해야 우리는 행복한 삶을 영위할 수 있는지, 그러자면 우리는 어떠한 공간에서 어떻게 우리 아이를 성장하도록 해야 하는지 등 삶의 주체로서 우리가 자신의 삶을 가치 있게 변모시키기 위해 우리는 어떠한 선택적 대안을 제시하고 발전시켜야 하는지에 대한 제반 문제를 공간과 결부지어 이야기하고 있다.

 

"필자는 건축을 즐긴다. 건축을 공부했기 때문에 다른 도시로 여행을 가거나, 식당을 고르거나, 카페에 가거나, 길을 걸을 때 비전공자보다는 조금 다른 관점에서 볼 줄 알게 되고, 음악을 자꾸 들으면 귀가 만들어지듯이, 독자 여러분이 이 책을 통해서 건축을 맛보고 느낄 수 있는 감각이 조금이나마 키워졌기를 바란다. 왜냐하면 건축을 느끼면 인생이 더 풍요로워지기 때문이다. 결국 인생은 행복하기 위해서 사는 것이고 다른 많은 것과 마찬가지로 건축도 우리의 행복을 더하는 데 일조할 수 있기 때문이다." (p.372)

 

이 책에서 저자는 다양한 주제에 대해 이야기한다. 교도소를 닮은 현대 학교 건축에서부터 시작된 이야기는 힙합 가수가 후드티를 입는 이유와 쇼핑몰에는 왜 멀티플렉스 극장이 존재하는지, 파라오와 진시황제가 싸우면 누가 이길지, 현대인이 SNS를 많이 하는 이유는 무엇인지 등 건축과 상관도 없는 듯한 이야기들로 전개되다가 위기와 발명이 만든 도시를 통해 서울의 얼굴로 이어지고 자연스레 도시의 미래를 이야기한다. 그리고 저자는 벽, 창문, 기둥, 지붕, 길, 다리 같은 각각의 건축 요소를 통해 건축가의 시선에서 공간에 대한 생각들을 들려준다.

 

저자의 이야기를 따라가다 보면 건축은 일종의 인류 문화의 총체, 인간 정신의 구체적 발현처럼 느껴진다. 집이란 그저 다 늦은 저녁에 하루의 피로를 풀기 위한 장소 그 이상도 그 이하도 아니라고 생각하는 현대인의 인식을 바로잡으려는 듯 저자는 우리가 사는 세상에서의 공간이 우리의 삶을 어떻게 구획하며 어떤 방식으로 이끌어가는지, 삶이 진행되는 시간에 따라 우리는 어떠한 공간을 선택해야 하는지 과거와 현대를 넘나들며 다양한 이야깃거리를 통해 설득하고 있다. 책을 읽는 독자는 마치 한 편의 다큐멘터리를 보는 듯한 착각에 빠지기도 하고, 할머니의 무릎을 베고 누워 구수한 옛날이야기를 듣는 듯한 기분에 빠지기도 한다.

 

"<죽은 시인의 사회>라는 영화 속 주인공 키팅 선생님은 자신이 가르치는 학생들에게 책상 위에 올라가라고 요청한다. 작지만 수십 센티미터 커지는 그 시점의 변화가 엄청난 생각의 변화를 가져온다. 일상에서 그 변화를 체험할 수 있는 곳이 계단이다. 어린아이들은 계단을 오르락내리락하는 것을 재미있어하는데 어쩌면 키가 작은 아이가 어른보다 커지는 체험을 할 수 있는 곳이 계단이어서일지도 모르겠다." (p.222)

 

사물에 대한 인식의 변화는 기실 우리의 사고만 변화시키는 게 아니다. 작게는 우리의 느낌을, 우리의 행동을 변하게도 하고, 크게는 우리의 가치관을, 인생관을 변화시킴으로써 우리들 삶 전체를 바꾸기도 한다. 가을 늦더위가 한풀 꺾인 오후, 옅은 침묵을 배경으로 드문드문 가을 우수가 빗방울처럼 흩어지는 주말 휴일에 나는 도서관 한켠에 앉아 이 글을 쓴다. 도서관을 방문할 때마다 나는 번잡한 도시의 한 공간에 위치하면서도 도시의 소음이나 경쟁으로부터 멀찌기 떨어져 있는 듯한 느낌을 받게 된다. 책들이 빽빽하게 꽂힌 서가의 숲을 거닐다 보면 왠지 모를 슬픔과, 아련한 추억과, 내가 좋아하는 작가와, 오래전에 읽었던 많은 작품들이 주마등처럼 스쳐 지나간다. 도서관 공간이 주는 묘한 여운이 나의 생각에 화답하듯 멋진 화음으로 응답하는, 사람들의 책장 넘기는 소리가 마치 어느 동굴의 메아리처럼 울려퍼지는 그런 오후. 지금껏 돈에 대한 맹목적인 추종자로서의 빈껍데기 삶을 살아왔던 내가 건축가 유현준의 <어디서 살 것인가>를 읽고 모든 게 달라질 리 없지만 공간이 뿜어내는 울림 하나하나를 느끼고 기억하다 보면 나도 언젠가 그 울림에 화답하듯 '내가 살 곳은 바로 여기야!' 하고 외치게 될 날이 찾아오지 않을까. 그때 나는 가을이 깊어가던 어느 가을 오후를 떠올리며 입가에는 옅은 미소를 머금게 될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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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을을 탄다'는 건 어쩌면 절대적 고독을 인식하는 성숙한 개인에 대한 또 다른 표현일지도 모른다. 다양한 인간관계에도 불구하고 영원히 혼자일 수밖에 없는 고독한 존재로서의 자신을 의식한다는 건 어떤 철학적 사색이나 인문학적 소양에 바탕을 두지 않더라도 인간이라면 누구나 직감적으로 혹은 선험적으로 깨달을 수밖에 없는 기본 인식이리라. 그와 같은 고독감은 우리가 사는 경쟁의 틀 속에서 발현되고 강화된다. 개인이 갖고 있는 수많은 특성 중에 단지 몇몇 가지 능력만을 비교하여 차별하고 무시하며 때로는 개인이 감당할 수 없을 정도의 모욕감을 안겨주기도 하는 일련의 과정 속에서 인간은 좌절할 수밖에 없다. 그가 갖고 있는 수많은 장점과 비교되지 않은 여러 탁월한 능력에도 불구하고 말이다. 그것은 차라리 폭력에 가깝다. 그러나 사회라는 거대구조에 속한 다수의 횡포를 한 개인이 거부하거나 저항하기에는 그 힘이 너무도 크고 막강하여 지레 움츠러드는 것 또한 사실이다.

 

우리가 반려동물을 키우거나 신에 매달리는 것도 따지고 보면 모두 그 밑바탕에는 치유되지 않은 인간의 고독감이 짙게 깔려 있는 탓일지도 모른다. 열기를 더해가는 대선 후보 토론회만 보더라도 인간의 폭력성과 야만성은 여실히 드러난다. 상대방이 평소에 어떤 생각을 갖고 있고, 그가 했던 말이 어떤 의도였는지 알아보기 위해 질문을 던지는 건 전혀 없고, 상대방의 과거나 토론회장에서 내뱉은 말을 빌미로 공격을 일삼는 게 토론의 전부이니 이를 지켜보는 국민들 또한 그런 폭력성 앞에서 깊은 절망감을 느끼지 않을 수 없다.

 

그런 연유인지 정치 초년생인 모 후보는 집에 여러 마리의 강아지를 키우고 손바닥에는 '왕(王) 자'를 쓴 채 토론회장에 등장하기도 했다. 말하자면 그는 자신이 키우는 반려동물이나 그가 믿는 무속 신앙에 자신의 고독감을 반복적으로 표출해 왔을 터, 강아지나 신은 그가 표출하는 방식이 어떻든 그에 대해 평가하거나 비난하지 않은 채 들어준다는 걸 알기에 인간보다는 반려동물 혹은 무속 신에게 의지하고 자신의 스트레스를 풀어왔던 게 아닐까. '오죽하면...' 하는 생각에 일견 딱한 마음이 들기도 하는 것이다. 그 후보는 자신에 대한 비난 여론에 대해 "후보와 같은 아파트에 사는 지지자들이 매번 토론이 있을 때마다 응원한다는 의미에서 손바닥에 써준 것"이라고 변명했다. 물론 그럴 테지. 자신과 한 집에 사는 어떤 지지자(할머니 혹은 아주머니일 수도 있지만)는 박사학위 논문에서도 운세를 연구한 사람이니까.( 온라인 운세 콘텐츠의 이용자들의 이용 만족과 불만족에 따른 회원 유지와 탈퇴에 대한 연구)

 

오늘은 개천절. 널리 인간을 이롭게 한다는 건국이념은 온데간데없고 오직 개인의 욕망과 타인에 대한 비난만 드러내는 대선 후보들의 아귀다툼을 보면서 씁쓸한 마음이 절로 드는 것이다. 손에 '왕(王) 자'를 쓰고 토론회장에 나온 후보가 대통령이 되면 모든 국민은 자신의 손바닥에 '신(臣) 자'를 쓰고 생활해야 하는 걸까? 고민스럽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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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만 죽음을 곁에 두고 씁니다
로버트 판타노 지음, 노지양 옮김 / 자음과모음 / 2021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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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득, 시월입니다. 그리스의 3대 비극작가 중의 한 사람인 에우리피데스는 '아름다운 사람은 아름다운 가을을 가지고 있다.'라고 했습니다. 그러나 나에게 가을은 상실의 계절인 동시에 슬픔의 계절인지도 모릅니다. 슬픔이 목구멍까지 차오르는 날이면 언제나 단풍잎 붉은 가을의 어느 오후가 떠오르는 것도 그런 이유이겠으나 푸른 하늘에 새겨지던 삶의 덧없음이 가을 하늘에 이르러 더욱 선명해지기 때문입니다. 그렇게 나는 가을을 앓고, 습관처럼 책을 읽습니다. 가을에 읽는 책의 주제는 대개 죽음을 소재로 한 책들입니다.

 

"내 생애 최초로, 내가 앞으로 어떻게 죽게 될지 더 이상 궁금하지 않다. 이제 알기 때문이다. 또한 내 생애 최초로 죽음에 대한 생각과 일종의 평화를 이루게 되었다. 죽는 것이 평화롭게 느껴진다는 의미가 아니라 언제 어떻게 죽게 될지를 안다는 사실과 평화를 이루었다는 것이다. 마치 전혀 기대하지 않은 예상치 못한 순간에 누군가 내 얼굴을 한대 세게 쳐주겠다고 말한 것과 비슷하다 할 수 있겠다. 평생 동안 누가 언제 어떻게 날 때릴지 몰라서 안절부절못하고 있었는데 마침내 한 방 먹은 것이다."  (p.15)

 

유튜브 채널 <Pursuit of Wonder>와 같은 이름의 프로덕션 회사의 창업자이자 기획자인 로버트 판타노(Robert Pantano)가 쓴 책 <다만 죽음을 곁에 두고 씁니다>는 자신이 죽음과 마주하던 그 순간부터 스스로에게 떠오른 생각들을 꼼꼼히 기록한 책입니다. 자신의 곁에 죽음이 함께한다는 달갑지 않은 인식과 동행하면서 불현듯 떠오르는 다양한 주제의 질문들... 나는 누구인가? 삶의 진정한 가치는 어디에서 찾을 수 있는가? 죽음을 미리 준비하는 것이 가능할까? 인간에게 시간이란 어떤 가치가 있는가? 삶은 무엇을 향해 가고 있는가? 등 살면서 누구나 몇 번이고 곱씹어 생각해 보았을 듯한 근원적인 질문들. 그리고 작가 개인이 맞닥뜨렸던 여러 어려움들.

 

"인생은 0으로 곱하기를 해야 하는 등식이다. 그 삶에 아무리 많은 것을 더하고 보태도, 아무리 큰 숫자가 된다 해도 결국 0으로 수렴하면서 끝난다."  (p.167)

 

작가의 생각은 대개 부정적이거나 슬픔에 익숙한 어떤 것들입니다. 왜 아니 그렇겠습니까. 삶의 종말을 미처 알지 못하는 나와 같은 인간도 슬픔과 죽음에 경도되어 찬란한 이 계절을 무참히 허비하고 있는데 구체적인 죽음의 순간을 미리 예측하며 살아야 했던 서른다섯 살의 젊은 소설가에게 하루하루의 시간은 어떠했을는지요. 유난히 자존심이 강하고 오글거리는 말은 입 밖으로 표현할 줄 모르던 작가가 세상 사람들과의 관계를 어렵사리 이어오면서 겪어야 했던 많은 어려움들에 대해 작가는 할 말이 많은 듯했습니다.

 

"인생에는 얼마든지 아름답고 기쁨이 가득한 순간이 있음을, 내가 직접 보고 느낀 적이 있기에 그것이 실재한다는 사실도 알았다. 그러나 나는 실제로 그만큼 행복해하며 살지 않았다. 행복의 가치가 있는 순간들의 작은 조각 정도만 즐기고 감동했다. 내가 했어야 하는 일, 내가 했어야 하는 생각과 실제 나의 삶을 일치시키지 못했다. 그보다는 그 과정에서 나를 속이거나 나를 파괴했다."  (p.201)

 

모든 일에는 시작이 있고 더불어 끝이 존재한다는 걸 누구나 다 알고 있습니다. 그러나 나만은 예외일 거라는 생각과 내년에도, 후년에도 지금의 이 계절을 다시 맞을 수 있을 거라는 착각이 우리로 하여금 끝내 철들지 못하게 합니다. '죽는다는 건 다시 어린아이로 돌아가는 것이 아닐까 생각한다. 무력하고 순수한 존재로 후퇴하는 것이다.'(p.250)라고 쓴 작가의 문장에서 한참을 머물렀습니다. 책임져야 할 게 아무것도 없는 상태로 되돌아가고 싶은 인간의 욕망은 순수했던 그 시절에 대한 강한 향수로 남아 있게 마련입니다. 문득, 시월입니다. 나는 또 습관처럼 이용의 '잊혀진 계절'을 흥얼거리고, 뉴스에서 들었던 단풍 소식을 떠올립니다. 그리고 내 가슴엔 여름내 잊고 지내던 죽음이, 슬픔이, 벼이삭을 흔드는 바람처럼 가볍게 일렁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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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bs의 '집사부일체'를 시청했던 사람들은 어울리지 않는 집사부의 등장에 다들 의아해했을 줄 압니다. 대권 유력주자인 윤석열 씨가 등장했기 때문입니다. 어쩌면 그것은 상업방송사인 sbs의 의도된 줄대기일 수도 있고, 모기업인 태영건설의 철저히 계산된 아부성 프로그램일 수도 있겠습니다. 예컨대 대권의 유력주자 중 건설사의 이익에 가장 부합하는 인물이 윤석열 씨임을 태영건설의 경영진은 잘 알고 있었겠지요. 분양가 상한제 등 민간 건설사를 향한 규제를 없애고, 그들의 이익을 최대한 보장할 것 같은 인물로 윤석열 씨를 제일로 꼽는 것은 경제와 토지 공개념의 분야에서는 윤석열 씨의 경력으로 볼 때 문외한이거나 젬병이라고 판단하였을 듯합니다. 그들로서는 윤석열 씨에게 적당히 아부만 잘한다면 자신들이 의도한 대로 마음껏 이끌어 갈 수 있을 것이라는 자신감을 '집사부일체'를 통해 확인했을 듯합니다.


게다가 남편이 출연하는 단독 프로그램에 부인인 김건희 씨는 철저히 숨겼던 걸 보면 윤석열 씨의 대권 행보에 김건희 씨는 장애물이거나 별 도움이 되지 않는 인물로 판단했던 것 같습니다. 그게 아니라면 국민의힘 소속 대부분 사람들이 그렇듯 '여자가 어딜...' 하는 안티 페미니즘의 영향이 반영되었을지도 모르지만 말입니다. 방송 내내 반말지거리를 하는 모습이나 조직폭력배와 같은 걸음걸이 등 방송에 참여한 연예인들이나 시청자들은 안중에도 없는 모습에서 안하무인으로 행동했던 검사 윤석열의 모습을 짐작할 수 있었습니다.


하나 덧붙이자면 장제원 국회의원의 아들이 또다시 뉴스에 등장했더군요. 음주운전에 운전자 바꿔치기 시도 등으로 징역 1년 6개월에 집행유예 2년을 선고받았던 그가 이번에는 무면허에 음주운전, 게다가 음주 측정을 하려는 경찰관을 밀치고 폭행하는 등 자신의 아버지의 백그라운드 없이는 도저히 상상할 수 없는 범죄를 저질렀습니다. 그럼에도 경찰은 그를 귀가시켰습니다. 국회의원의 권한이 과연 세기는 센가 봅니다. 만약 민주당 국회의원의 자식이 이런 일을 벌였다면 온 언론이 몇 날 며칠 온 지면에 도배를 했을지도 모릅니다. 나아가서 의원직을 내려놓으라는 요구도 이어졌겠지요. 이상하게도 언론이나 검찰은 국민의힘 앞에만 서면 작아지는 모습입니다. 악어와 악어새의 관계 때문일까요?


내일은 우리나라 최대 명절이라는 추석, 코로나로 가족 전체가 모이는 것은 어렵지만 그래도 가족 모두가 보는 텔레비전에서 조폭과 같은 검사의 얼굴이나 자식 교육도 제대로 시키지 못하는 무능한 아빠의 모습은 더 이상 보고 싶지 않다는 게 저의 작은 소망입니다. 이것도 보름달을 보고 빌어야 이루어지는 걸까요. 에이, 설마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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