욕구들 - 여성은 왜 원하는가
캐럴라인 냅 지음, 정지인 옮김 / 북하우스 / 2021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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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가 캐럴라인 냅의 작품에 매료된다는 건 스스로의 내면을 드러내고픈 욕구, 이를테면 자신에게 덧씌워진 가면을 과감히 벗어던지고 거리낌 없이 자신의 실체를 드러내겠다는 선언 내지는 그러고자 하는 갈망이나 욕구의 또 다른 징후일지도 모른다. 이러한 욕구의 밑바탕에는 자신의 본모습을 드러내지 못한 채 어깨를 움츠리고 살 수밖에 없는 현대인의 불안, 혹은 현대인의 위축된 자아가 맞닿아 있다. 자신을 숨김으로써 얻게 되는 경제적 이익과 편리에 너무나도 익숙해진 우리는 타인이 그려준 나의 모습이 마치 나의 실체인 양 착각하며 평생을 살게 되는지도 모른다.

 

"독자들이 알고 있는 공개된 버전의 캐럴라인과 사적이고 개인적인 캐럴라인은 그리 다르지 않았다. 용감하고 웃기고 심리적으로 예리하고 표현력이 좋으며 다른 사람들이라면 두려워하며 달아났을 법한 감정적 솔직함의 길로 기꺼이 들어서는 사람."  (p.10 작가 게일 콜드웰의 '서문')

 

캐럴라인 냅의 <욕구들>은 저자가 거식증으로 고통받았던 시절을 회고하면서 식욕, 성욕, 애착, 인정욕, 만족감 등 여성의 다양한 욕구와 사회 문화적 압박에 대해 솔직하고도 유려한 필체로 써내려간 생애 마지막 작품이다. 마흔둘이라는 이른 나이에 폐암을 진단받았던 작가는 암 진단을 받기 2개월 전에 이 책을 탈고하였고, 그녀가 죽은 다음 해에 출판되었다. 물론 작가의 유작 에세이집 <명랑한 은둔자>를 읽어본 독자라면 그녀의 암울했던 삶에 비해 작품에서 풍기는 긍정적 마인드가 마치 보색 대비처럼 비현실적이라고 느꼈을지도 모른다. 그러한 긍정적인 사고와 솔직함이 빚어내는 밝고 통통 튀는 분위기로 인해 책을 읽는 독자들 역시 자신의 암울한 현실을 쉽게 벗어날 수 있겠다는 희망을 한아름 선물 받는 듯한 느낌이지 않았을까.

 

"음식, 섹스, 쇼핑. 당신의 독이 무엇인지 불러보라. 욕구, 특히 여자들이 경험하는 욕구는 으스스할 정도로 변신에 능하고 외적인 것들에 요령 좋게 찰싹 달라붙는다. 한 전투가 다음 전투로 이어지고, 어떤 약속이 거짓임이 드러나면 또 다른 약속이 빛을 발하며 지평선 위로 솟아올라 별처럼 신호를 보낸다."  (p.31 '서문' 중에서)

 

총 6장으로 구성된 이 책은 1장 '케이크 더하기, 자존감 빼기', 2장 '어머니와의 관계', 3장 '내 배가 싫어, 내 허벅지가 싫어', 4장 '브라 태우기에서 폭풍 쇼핑으로', 5장 '목소리가 된 몸', 6장 '희망을 향해 헤엄치기'의 소제목에서 보는 바와 같이 여성의 불안과 욕망, 자신의 어머니에 대한 양가적인 감정, 육체 혐오, 페미니즘과 소비문화, 공허함과 갈망 저변에 깔린 슬픔 등을 분석하고 새로운 길로 나아가기 위한 방식은 결국 사랑이라고 말한다.

 

"우리가 원하는 것, 중요함이라고 표시된 선반에 들어 있는 것은 물론 연결이고 사랑이다. 인간 허기의 가장 깊은 근원에 이름이 있다면 바로 그것일 것이다. 너무나 많은 여자들이 들어가 살고 있는 억제의 상자들을 조각조각 박살 낼 수 있는 도구는, 공허함을 산산조각 내고 그 밑에 묻혀 있는 희망을 드러낼 수 있는 커다란 망치는 바로 그것일 것이다."  (p.357)

 

작가는 여성의 몸이 '페미니즘이 가장 덜 건드린 미개척지 중 하나일 수도 있고 어쩌면 최후의 미개척지 중 하나인지도 모른다.'고 썼다. 이는 사회 환경에 따라 여성이 자신에 대한 시각, 자기 몸과 맺는 관계, 선택할 수 있는 역량이 달라질 수 있음을 의미한다. 말하자면 페미니즘은 여성의 몸에 대해 간과함으로써 여성 스스로가 자신의 몸과 관련된 여러 욕구에 의해 통제되고 억압된다는 사실을 미처 깨닫지 못하였고, 페미니즘 운동이 밀물과 썰물처럼 주기적으로 반복될 때 여성은 육체적으로 조금 자유로워지거나 그렇지 못한 상황을 맞게 된다는 것이다. 작가는 자신의 경험을 바탕으로 여성의 몸과 마음 저변에 깔린 욕구의 원인과 형태를 세밀하게 분석함으로써 단지 여성이라는 이유로 통제와 억압 속에서 평생을 허비하는 과오를 범하지 않기를 진정으로 바라고 있는 듯하다. 그러나 작가의 주장을 뒷받침하는 여러 사례나 분석 혹은 묘사가 이 책의 장점일 수는 있으나, 무엇보다도 책이 주는 재미와 적절한 유머, 솔직함에서 오는 시원시원한 느낌이 독자인 내가 책에서 손을 놓지 못했던 이유임을 밝히지 않을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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은밀한 결정
오가와 요코 지음, 김은모 옮김 / 문학동네 / 2021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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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음의 평화라는 게 원한다고 언제든 쉽게 얻어지는 건 아니지만 평화를 깨는 불협화음의 주요 원인이 과거의 기억이라면 우리는 과연 마음의 평화를 위해 자신이 가진 과거의 기억을 모조리 없앨 수 있을까? 아마도 불가능할 것이다. 개인의 기억이라는 게 개인을 대표하는 정체성인 동시에 삶의 총체인 까닭이다. 단지 마음의 평화를 위해 자발적 치매를 얻는 꼴인데 누군들 이 선택을 기쁘게 받아들일 수 있겠는가. 차라리 삶을 포기한다면 모를까. <박사가 사랑한 수식>으로 우리에게도 잘 알려진 오가와 요코의 초기작 <은밀한 결정>은 사물의 존재와 기억이 주기적으로 사라져가는 미지의 섬을 배경으로 스토리가 전개된다. '이 섬에서 가장 먼저 사라진 것은 무엇이었을까, 나는 가끔 생각한다.'라는 문장으로 시작되는 이 소설은 무라카미 하루키의 소설 <세상의 끝과 하드보일드 원더랜드>의 분위기를 떠올리게도 하고, 사라져가는 것들에 대한 애틋한 마음과 쓸쓸한 느낌을 불러일으키기도 한다.

 

섬에서는 주기적으로 '소멸'이 일어난다. 섬의 주민들은 '소멸'과 함께 관련된 기억을 모두 잃게 되고, 그렇게 하지 않은 사람들은 비밀경찰에 끌려가곤 한다. 소설가였던 '나'의 어머니 역시 기억을 잃지 않았던 몇 안 되는 사람들 중 한 명이었고, 이미 소멸한 물건을 지하 서랍장에 숨겨두고서 나에게만 남몰래 보여주거나 어떤 물건인지 설명해주곤 했다. 어느 날 비밀경찰에 불려 갔던 어머니가 시신으로 돌아온 후 들새 연구가였던 아버지마저 돌아가시고 혼자가 된 '나'는 가정부 할머니의 남편이자 페리 정비사였던 할아버지와 가족처럼 지내며 살고 있다. 부모님과의 추억을 떠올리게 하는 색색깔의 새와 장미정원의 꽃, 부모님과 함께 찍은 사진 등이 하나둘 소멸해가는 속에서도 '나'는 그와 같은 상실을 일상으로 받아들이며 담담한 생활을 이어간다.

 

"저도 기억해내고 싶은 마음이 간절했어요. 어머니와 함께 보낸 소중한 시간이었으니까요. 하지만 허사였어요. 도무지 기억이 안 나요. 어머니의 표정이나 목소리, 지하실 공기의 감촉은 선명한데, 서랍 속에 뭐가 들었는지는 전부 흐릿해져버렸어요. 그 부분만 기억의 윤곽이 녹아버린 것처럼."  (p.81)

 

'나'는 소설을 쓰고 있다. '나'의 소설을 가장 먼저 읽고 평가해주는 담당 편집자인 R씨 역시 소멸한 것에 대한 기억을 잃지 않고 있다는 사실을 우연히 알게 된 '나'는 할아버지와 합심하여 집안에 작은 은신처를 마련하고 그를 숨긴다. 언젠가 R씨처럼 기억을 잃지 않은 사람도 숨지 않고 살 수 있는 세상이 오리라는 희망이 있었지만 비밀경찰의 기억 사냥은 날로 심해져만 가고, 달력이 소멸한 탓에 추운 겨울이 끝없이 이어졌다. 섬에는 식량과 물자가 점점 부족해지고, 소설마저 소멸하면서 '나'는 메울 수 없는 공허감을 느낀다.

 

"소멸해버린 것들의 이야기를 들으려면 신경의 일부분을 혹사해야 했다. 하지만 조금도 언짢지 않았다. 그의 모든 이야기를 선명한 영상으로 그려내지는 못했지만, 크게 마음에 걸리지는 않았다. 어릴 적 지하실에서 어머니와 비밀스러운 시간을 보냈을 때처럼 나는 그저 천진하게 귀를 기울였다. 마치 신이 하늘에서 내려주는 초콜릿을 하나도 남김없이 받아내려고 치맛자락을 펼친 채 기다리는 듯한 기분이었다."  (p.294)

 

소설에서 중요한 사건으로 등장하는 지진과 해일은 어쩌면 현대사회의 한 단면을 보여주는지도 모른다. 자연재해, 테러, 전염병 등 예상할 수 없는 위기가 수시로 반복되기 때문이다. 그와 같은 위기 속에서 사람들은 오직 자신과 자신의 가족들만 돌볼 뿐 이웃, 국민, 나아가 지구인의 안위에는 도무지 관심이 없다. 사람들의 관심이 좁아지면 좁아질수록 이기심은 증가하고 타인에 대한 배려와 동정심 등 인간 본연의 심성은 점차 소멸되게 마련이다. 우리가 인간성을 지키며 인간답게 살아가기 위해서는 우리가 함께 했던 경험을 기억하고 이야기하며 서로의 체온을 잊지 말아야 한다.

 

"소설이 소멸한 지 그리 오래되지 않았는데도, 아주 먼 길을 돌아서야 여기까지 올 수 있었다. 지진이 나고, 페리가 가라앉고, 이누이 씨가 맡긴 조각품이 부서지고, 그 안에서 '물건'이 나타나고, 별장에 조각품을 가지러 가고, 검문을 당하고, 할아버지가 죽었다. 하나하나의 사건은 전부 우연에 좌우된 것 같으면서도 확실하게 같은 방향으로 향했다. 그 끝에 무엇이 기다리고 있는지 섬사람들 모두 어렴풋이 예감하면서도 아무도 소리 내어 말하려 하지 않았다. 아무도 두려워하지 않았고, 달아나려고 발버둥치지도 않았다. 다들 소멸의 성질을 잘 이해했으며, 가장 적절한 대응법을 알고 있었다."  (p.360~p.361)

 

햇수로 3년째 이어지는 코로나19 팬데믹. 우리는 서로의 안부를 그저 온라인으로만 물을 뿐 만남도, 서로를 향한 토닥임도, 기쁨이나 슬픔의 언어도 점차 그 횟수를 줄여가고 있다. 오직 침묵만이 우리네 삶의 영역을 조금씩 잠식하며 친밀함이 주던 과거의 숱한 경험과 그 기억의 따스한 온기를 잊게 하고 있다. 비대면의 편리가 삶의 절반을 차지하는 디스토피아의 세계가 이미 우리들 곁에 자리를 잡은 채 도무지 비켜줄 의사가 없다는 듯 완강한 모습. 우리는 과연 어디로 향하는가. 밖에는 눈발이 날리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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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명 가격표 - 각자 다른 생명의 값과 불공정성에 대하여
하워드 스티븐 프리드먼 지음, 연아람 옮김 / 민음사 / 2021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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벌금 254억을 부과받았던 모 그룹의 회장이 납부 대신 노역을 선택함으로써 일당 5억 원의 소위 '황제노역' 논란을 일으켰던 적이 있다. 하루 노동의 대가를 10만 원으로 정하는 일반인에 비해 터무니없이 비싼 일당인 셈인데 2014년 4월 법이 개정되기 전까지만 하더라도 고액 벌금을 단기의 노역장 유치로 무력화하는 게 얼마든지 가능했었다. 지금은 고액 벌금형 선고 시 환형유치기간의 하한을 정하는 조항이 신설되어 어느 정도 형평성을 맞추려는 노력이 개진되고 있기는 하지만 말이다. 그러나 이것도 노역장 유치 기간의 상한을 3년으로 정한 규정은 그대로 남아 있어 '황제노역'의 가능성이 완전히 사라졌다고 보기는 어려운 게 사실이다.

 

우리는 이따금 하기 싫은 일을 억지로 할 때 "나처럼 고급 인력을 이렇게 부려먹어도 되나?" 하며 툴툴대기도 한다. 사람의 일당이 이처럼 천차만별인 것처럼 우리의 생명 역시 누군가에 의해 천차만별의 가격표가 매겨지고 이것이 사회 전반에 두루 이용된다는 것을 아는 이는 그리 많지 않은 듯하다. 그리고 자신의 생명이 얼마의 가격으로 매겨지는지 자세히 알고 있는 이도 드물지 싶다. 그러나 우리의 생명 가격표는 주변에서 끊임없이 매겨지고 있다. 혹자는 인간의 생명을 어떻게 돈으로 환산할 수 있느냐며 항변할 수도 있겠으나 그것은 철학적 관점일 뿐 현실 세계에서 우리는 타인의 생명에 수시로 가격을 매기고 나 역시 타인에 의해 그리 평가된다는 것을 인지하여야만 한다. 지난 일이지만 군대 물품을 조달하는 대대 군수과에서 근무하였던 나는 갓 전입한 이등병 시기에 사망한 군인을 처리하는 영현 처리를 담당했던 적이 있다. 그때 일반 사병의 영현 처리비(일명 몸값)는 13만 원이었던 것으로 기억한다. 당시에 나와 선임들은 사람의 몸값이 갯값만도 못하다며 혀를 끌끌 찼었다.

 

"모든 생명은 소중하지만, 소중하다고 해서 가격이 매겨지지 않는 것은 아니다. 오히려 생명에는 매일같이, 끊임없이 가격표가 부여된다. 생명 가격표는 대개 불공정하다. 생명에 가격이 매겨질 때, 우리는 반드시 그 가격표가 공정하게 매겨지도록, 그래서 인권과 생명이 언제나 보호되도록 애써야 한다."  (p.277)

 

통계 전문가이자 보건경제학자인 하워드 스티븐 프리드먼이 쓴 <생명 가격표>는 '인간 생명의 가치 측정'이라는 불편하지만 피할 수 없는 현대 사회의 핵심 문제를 파고든다. 유엔인구기금에서 유엔 주요 사업의 수석 데이터모델러를 맡아 왔던 저자는 생명 가격표가 불공정할 때가 많고 젠더, 인종, 민족, 문화적 편견 등이 작용하며 노인보다는 젊은이, 빈자보다는 부자, 외국인보다는 내국인, 타인보다는 가족의 생명을 더 중요하게 여기는 결과로 이어지곤 하는 까닭에 낮은 가격이 매겨진 사람들은 제도적 보호를 받지 못한 채 더 많은 위험에 노출된다는 점에서 심각한 문제라고 지적한다.

 

"노동시장을 들여다보면 인간의 삶에서 돈과 시간이 어떻게 교환되는지 이해할 수 있다. 노동에 대한 보상은 생명 가격표에 관한 논의에 매우 중요하다. 소득이 민사소송에서 생명에 책정되는 금전적 가치를 결정하는 데 핵심 요소로 작용하고, 9.11 희생자 보상 기금에서도 결정적인 역할을 했기 때문이다."  (p.137)

 

우리 사회에서 종종 불거지는 '위험의 외주화' 문제 역시 그 근원을 거슬러 올라가면 생명 가격표가 다라다는 데서 기인한다고 볼 수 있다. 말하자면 가격표가 낮게 책정된 사람들이 사회로부터 제대로 보호받지 못한 채 더 큰 위험에 노출되고, 그것이 곧 다단계 하도급 구조로 이어진다는 것을 보여준다. 생명 가격표의 최상단에 위치한 사람들은 상대적으로 안전한 환경에서 자신의 수명대로 살 수 있는 가능성이 그만큼 높아짐을 의미한다. 이와 같은 구조는 삶을 영위하는 모든 환경에서 적용되며 이것을 피할 방법도 딱히 없다.

 

"관념적으로 생각해 보면 생명 가치 평가 방법에 대해 대부분의 사람들이 동의할 수 있는 명백한 해답이 어딘가 있을 것 같다. 그러나 그런 해답은 존재하지 않는다. 영국의 철학자 아이제이아 벌린(Isaiah Berlin)의 주장에 따르면 인간은 존재하지도 않는 불멸의 진리를 찾고자 하는 깊고 형이상학적인 불치의 욕구가 있다. 그러나 우리는 이 세상에는 상충하는 많은 진리가 존재한다는 사실과 가치의 다양성을 인정해야 한다. 생명에 가치를 매기는 일에도 상충하는 많은 진리가 있다. 그리고 명확한 정답도 없다."  (p.265)

 

우리는 이따금 생명의 가치를 '정의'라는 이름으로 치환하곤 한다. 최근 아동 성범죄를 저질러 12년을 복역한 뒤 출소한 조 모씨의 집에 잠입하여 조 씨를 피습했던 사건이 있었다. 그의 범행을 생각할 때 죽어 마땅하다고 생각하는 사람도 더러 있을 테고, 이미 법적 처벌을 받은 사람에게 사적 구제를 하는 건 잘못이라는 사람도 있을 것이다. 이처럼 인간의 생명에 대한 다양한 시각이 존재하는 한 인간 생명에 대한 가격표 역시 다양하게 평가될 수밖에 없음을 우리는 겸허하게 인정해야 한다. '사람은 사람에게 간다/그러니까 사람이다'고 했던 어느 시인의 시구처럼 우리의 생명에 다양한 가격표를 매기는 불합리한 행위를 시시각각 하는 주체 역시 사람이라는 사실이 가슴을 친다. 그러니까 사람인 걸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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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음을 읽는 시간
이유진 지음 / 오티움 / 2021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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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음은 평범한 일상에 마침표를 찍는 일이다. 당사자 본인에게는 그렇다. 그러나 삶을 이어가는 다른 모든 이에게는 타인의 죽음은 마치 일상에 찍힌 하나의 작은 점에 불과할지도 모른다. 물론 죽음을 목도하는 가족이나 가까운 사람들에게는 일상을 뒤흔들 만큼의 태풍 그 이상의 충격으로 다가올 수도 있겠지만 말이다. 어느 누구도 피할 수는 없는 죽음. 그러나 일상에서 죽음을 의식하며 살아가는 사람은 그리 많지 않은 듯하다. 그런 까닭에 죽음은 마치 영원한 침묵처럼 여겨지기도 하고, 끝나지 않는 지루한 소설처럼 여겨지기도 한다.


"끝이 보이는 삶이라 해도 살아갈 가치가 없다거나 살아갈 희망이 없다고 생각하는 것은 정상적인 반응이 아니다. 삶은 여전히 가치가 있고 나는 여전히 누군가에게 사랑받고 누군가를 사랑해줄 수 있으며 남은 시간이 얼마든 관계없이 살아 있는 동안은 어떤 좋은 일도 일어날 수 있다는 희망을 가지는 것이 정상이며, 이것이 좋은 죽음을 맞는 과정이다."  (p.322)


한국인 정신과 전문의인 저자가 미국에서 한국인 최초의 호스피스 완화의료 전문가가 된 후 많은 죽음을 지켜보면서 써내려간 삶과 죽음에 대한 이야기. <죽음을 읽는 시간>은 '서른네 가지의 각기 다른 삶과 죽음에 관한 이야기를 담고 있'으며, 대부분은 어떻게 살고 죽을 것인가에 대해, 몇몇은 한국과 미국의 병원에서 만난 사람들의 이야기가, 나머지 조금은 저자의 이야기가 담겨 있다. 말하자면 이 책은 미국의 호스피스 정신과 전문의로 13년간 활동헤오며 죽음을 앞둔 사람들의 마음을 치료해온 저자가 삶에 대한 희망과 의욕을 잃은 현대인에게 내놓은 마음 처방전이자 사랑 충전제인 셈이다.


"꿈을 내려놓았지만 세상을 더 나은 곳으로 바꾸려는 꿈을 품고 실천하는 사람들을 보면 여전히 가슴이 뛴다. 그럴 때마다 나는 꿈꾸는 자가 월터에게 알려준 삶의 '본질'을 떠올려본다. 미래의 꿈을 좇는 삶도, 지금 여기를 사는 삶도 똑같이 가치 있는 삶이라는 것을. 행복은 내 안에 있고 나다움 속에 있다는 것을. 내게 주어진 삶을 사랑하고 나를 사랑하는 일, 그것만이 중요하다는 것을. 나는 이미 잘 살고 있다는 것을."  (p.73)


자신의 삶이 밋밋한 시간으로 채워지는 걸 못마땅하게 생각하는 사람들을 종종 본다. 나를 제외한 세상의 모든 사람들이 마치 삶의 롤러코스터를 타고 있는 듯 각자가 스릴 넘치는 역동적인 삶을 살아가고 있는 것처럼 보이는 것이다. 오직 나만이 다람쥐 쳇바퀴 돌듯 그날이 그날 같은 하루하루를 살아가고 있는 듯 여겨지기도 하고, 그런 모습은 내일도 혹은 일 년 후에도 달라지지 않을 것처럼 보여 의욕이 떨어지는 것이다. 그러나 한 해 두 해 나이를 먹다 보면 삶에서 가장 힘든 게 남들처럼 평범하게 살아가는 것이라는 사실을 불현듯 깨닫게 된다. 그리고 지금 자신의 삶이 얼마나 소중한지 그에 대한 정당한 가치를 인정하게 되는 날이 오고야 만다.


"내 곁에서 나와 시간을 함께해준 사람들에게 감사하고, 함께 보낸 시간을 기록하고 기억하며, 지금 내 곁에 있는 이들에게 사랑을 표현하고, 그들과 함께할 앞으로의 시간에 끝이 있음을 알고 매 순간을 소중히 여기는 것은 피할 수 없는 죽음의 고통과 절망 속에서도 삶의 이유와 의미가 되어준다. 좋은 삶과 좋은 죽음을 위해 이보다 더 중요한 것은 없다."  (p.329)


나는 여전히 죽음을 가슴이 아닌 머리로만 이해하며 살고 있지만 언젠가 내게도 불청객처럼 죽음이 찾아온다는 것을 잘 알고 있다. 바람이 있다면 그 소식을 듣고 거칠게 반항하거나, 미친 듯 부정하거나, 나약한 모습으로 방황하지 않았으면 하는 것이다. 다정한 연인의 속삭임처럼 옅은 미소를 띠고 기쁘게 들을 수는 없겠지만 적어도 나는 아주 담담하게, 마치 이전에도 여러 번 들었던 사람처럼 노련하게 그 소식을 접했으면 좋겠다. 남겨진 사람들에게 가벼운 작별을 고하면서. 아무 일도 아닌 것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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며칠 전 야당의 어느 대선 후보는 북한의 미사일 발사 조짐이 보일 때 선제타격밖에 막을 수 있는 방법이 없다며 선제타격을 강하게 주장했었다. 이와 같은 대북 강경론은 극우 세력의 허풍이거나 지지자들을 결집하기 위한 하나의 술책으로 종종 이용되곤 했었다. 1997년 대선 당시만 하더라도 한나라당 이회창 후보의 비선조직으로 활동하던 오정은·한성기·장석중 3명이 이 후보의 지지율을 높이기 위해 북한 측에 대선 직전 휴전선에서 무력시위를 해달라고 요청한 소위 '총풍사건'만 하더라도 국민의 안전은 뒷전이고 오직 정권 쟁취에만 눈이 먼 극우 세력의 진면목을 잘 드러낸다고 하겠다.

 

사실 그들에게 안보는 하나의 전술이자 술책일 뿐 국민의 안전이나 국가의 발전과는 하등 관련이 없어 보인다. 흔한 말로 코리아 디스카운트는 북한과의 긴장관계에서 오는 한국 기업들의 저평가로 보아야 하지만 대선 때마다 일부러 긴장관계를 획책하는 극우 세력들의 만행으로 볼 때 그들의 행동은 하나의 매국행위에 지나지 않는다. 그들 역시 북한의 군사력이 만만치 않다는 걸 잘 알고 있으면서 하는 말이나 행동이기 때문이다. 현대전에서 군사력이 비슷한 두 나라의 충돌은 공멸이라는 건 세 살배기 어린애도 추측할 수 있는 결과이다. 물론 군사력의 격차가 현저할 경우에는 쉽게 제압할 수도 있겠지만 말이다. 결국 선제공격 운운하는 것은 남한과 북한이 모두 공멸의 길로 가자는 얘기에 지나지 않는다. 이런 바보 같은 말이 또 어디 있겠는가.

 

이제는 하다 하다 안 되니까 후보 부인의 녹취록이 공개되는 걸 결사적으로 막고 있다. 도대체 후보 부인은 기자에게 뭔 말을 씨불였기에 그들이 온 힘을 다해 막으려 하는 것인지 알다가도 모를 일이다. 이런 사람들이 국가의 최고 지도자가 되려고 한다는 것 자체가 코미디이지만 그걸 지켜보는 국민들 역시 짜증이 나는 건 매한가지다. 숨길 게 이렇게도 많은 사람들이 공인으로 왜 나섰는지 이해하기 어렵다. 개나 소나 다 대선 후보가 되면 소는 누가 키우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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