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르니에 선집 1
장 그르니에 지음, 김화영 옮김 / 민음사 / 1993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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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판절판


무기력의 밑바탕에는 말할 수 없이 깊은 공허가 자리 잡고 있다는 걸 사람들은 종종 간과하곤 한다. 이를테면 저따위를 해서 뭘 하나? 하는 심리는 생활에 필요한 대부분의 행동을 가로막고 종국에는 손가락 하나 까딱할 수 없는 지경에까지 이르도록 한다. 무기력은 아마도 벗어나기 힘든 늪이나 수렁과 같아서 타인의 도움 없이 스스로의 힘만으로 벗어나기란 근본적으로 불가능한 것일지도 모른다. 그러나 무기력의 늪에 빠진 누군가를 구조할 때 우리들 대부분은 그저 늪의 주변만 빙빙 맴돌면서 왜 빠져나오지 않느냐는 타박만 늘어놓을 뿐 묵묵히 도움의 손길을 내밀거나 최선을 다해 구조하겠다는 의지를 보여주는 이는 찾기 어렵다.

 

"나는 쾌감이 전혀 없지도 않은 채 그냥 당하고 있었던 것이다. 그로 인하여 결국 어떤 결과에 이르게 되는 것일까? 무엇이나 다 어디엔가로 인도하게 마련이다. 오직 그것에만 아무런 출구가 없었다. 설사 그 상태의 끝에는 죽음이 기다리고 있었다 하더라도 나의 삶 자체가 어찌나 죽음과 흡사한 것이었는지 그 차이를 분간하지 못했을 것이다. 심지어 동물도 죽을 때는 본능적으로 경련하는 법이라지만."  (p.30)

 

알베르 카뮈의 스승으로도 잘 알려진 장 그르니에의 수필집 『섬』은 일반 독자들보다는 작가들에게 더 인기가 있는 책일지도 모른다. 그와 같은 추론은 대개 작가들의 추천 도서 목록에 오르는 횟수에서 기인한다. 말하자면 일반 독자들이 『섬』에 대해 자신의 블로그에서 리뷰를 쓰거나 『섬』을 자신이 추천하는 도서로 지인들에게 일독을 권하는 경우는 그리 많지 않다는 것이다. 그것은 어쩌면 장 그리니에의 『섬』이 갖는 특성, 이를테면 작가의 깊은 사색과 정제된 문장에서 오는 생각할 거리가 일반 독자들보다는 글쓰기를 업으로 하는 작가들에게 훨씬 더 깊은 울림으로 다가올 수 있다는 점이다.

 

"사실 언제나 똑같은 내용이긴 하지요. 그렇지만 사랑하는 마음을 나타내려고 할 때 나는 당신을 사랑합니다라는 말 이외에 다른 무슨 말을 할 수 있겠습니까? 사랑은 마음속에서 모든 순간들과 모든 존재들을 하나로 합쳐주는 것입니다."  (p.64)

 

프랑스 알제 대학교의 철학교수를 지내면서 많은 명상적인 에세이를 남겼던 장 그르니에. 『섬』이 세계적인 문호 알베르 카뮈에게 영감을 주고 글을 쓰겠다는 결심을 불러일으켰던 것처럼 다른 많은 작가들에게 영향을 주고 앞으로도 꾸준히 영향을 미칠 것이라는 사실은 변하지 않을지도 모른다. 나는 아주 오래전부터 이 책을 읽어오며 하나의 결론에 이르렀다. 결론이라는 게 사실 어떤 객관적 근거에 기반하는 게 아니라 단순히 나의 추측에 불과한 것이지만 말이다. 결론인 즉 장 그르니에의 산문집 『섬』에 실린 글의 대부분이 특정한 목적을 갖고 쓰지 않았던 것은 물론 오랜 시간을 두고 쓰고 또 고치면서 각고의 노력으로 완성한 게 아니라 글의 윤곽이 떠오른 어느 날 단숨에 써내려갔을 것이라는 추측, 바로 그것이었다. 누군가에게 큰 감동을 주는 글은 하루에 한두 문장씩 긴 시간의 사투로 완성되는 게 아니라 오랜 시간 동안 이루어진 사색의 결과를 일필휘지로 단숨에 써내려가는 게 일반적이기 때문이다.

 

"저 형언할 길 없는 과거의 냄새를 맡고 있노라면 나는 나를 에워싸고 있는 맹목적이고 엄청난 힘들로부터 헤어나는 듯한 느낌이었다. 그것은 인식에 대한 관심이라기보다는 무(無)에 대한 섬뜩함이었다. 이리하여 나는 정신적인 생활을 하게 된 셈이지만 그것은 실상은 거꾸로 된 정신적 생활이었다. 저 성벽처럼 쌓인 책들 속에는 얼마나 대단한 매혹이 깃들여 있었던가! 그러나 도서관 밖을 나설 때면 머리가 아팠고 마음은 더욱 메말라가는 듯 느껴졌다."  (p.120~p.121)

 

고백하자면 나 역시 사색의 에너지가 충분하지 않은 일반 독자들 중 한 명인 까닭에 200쪽도 되지 않는 이 책을 그저 눈으로만 서너 차례 읽었을 뿐 가슴으로 읽었던 적은 단 한 번도 없었다. 게다가 책에 대한 느낌이나 어설픈 리뷰를 써보자 결심했던 것도 최근의 일이고 보니 책에서 장 그르니에가 말하고자 했던 것이 바로 이것이다,라고 말할 수 있는 성질의 것은 더더욱 아니어서 리뷰를 쓰면서도 핵심에는 접근하지 못한 채 그저 겉도는 이야기만 쓸 수밖에 없음을 고백하지 않을 수 없다. 그러나 자신이 관찰하는 대상을 멀찌기서 바라볼 뿐 자신만의 잣대로 판단하고 의미를 부여하는 등 적극적으로 개입하려들지 않는 점은 그르니에로부터 배웠다는 것을 밝히고 싶다. 그것이 내가 여전히 미숙한 독자임을 밝히는 꼴일지라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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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너편의 인도에는 도로를 따라 키가 큰 전봇대가 가지런히 늘어서 있다. 가지런하다는 것, 규격이나 제원에 맞춰 일률적인 거리와 높이를 유지한다는 것은 변하지 않는 풍경처럼 우리에게 크나큰 절망감을 안겨 주기도 한다. 변하지 않는 삶에 변하지 않는 풍경을 덧입힌다는 건 얼마나 잔인한 일인가. 나는 짐짝처럼 무거운 시간을 걸머진 채 휴일 오후로 향하고 있다. 께느른한 졸음이 쏟아지는 낯선 시간들이 휑한 공간에 둥둥 떠다니는...

 

엊그제 있었던 대선 후보들의 TV토론을 보면서 그들도 역시 '떡 줄 놈은 생각도 않는데 김칫국부터 마신다'는 속담으로부터 한 치 벗어남이 없다는 생각을 했다. 명절 연휴에 친척들과의 만남에서도 '어쩌면 저렇게 자신의 욕망을 대선 후보들에게 고스란히 투영하면서 나는 너희와 다르다고 말할 수 있을까' 하는 생각을 했었다. 집값이 너무 많이 오른 탓에 이번에는 야당 후보에게 투표하겠다는 20대 조카와 대선 후보 중 수도권의 집값을 그나마 많이 떨어뜨리지 않을 것 같아 야당 후보에게 투표하겠다는 50대의 사촌을 보면서 그들 둘이 지지하는 후보는 같은데 방향은 극과 극이라는 사실에 무척이나 놀랐었다. 말하자면 그들은 서로 동상이몽을 하는 셈인데 어떻게 그럴 수가 있는지 이해가 되지 않았다.

 

"지금도 집값이 높다고 아우성인데 안 떨어지고 지금 상태를 유지하면 청년들은 도대체 어떻게 살라는 말이냐?"고 사촌에게 따지자 사촌 왈, "내가 천년만년 살 것도 아닌데 내가 죽고 나면 자식들이 물려받을 텐데 그렇게 되면 그들 역시 좋은 게 아니냐?"는 반론이었다. 어이가 없어서 아무런 말도 없이 그를 한참이나 쳐다보았다. "그러면 자식들은 부모가 죽기 전까지 수십 년을 집도 없이 떠돌아야 한단 말입니까?" 하자 머쓱한 웃음을 지으며 물러났다. 우리는 각자의 욕망을 대선 후보에게 투영하면서 안 그런 척 자신을 숨기고 있는 것이다. 자신의 양심을 표와 맞바꾸는 게 뭐가 나쁘냐는 듯 당당하게.

 

대선 후보들 역시 유권자인 국민들의 욕망을 한껏 부추기면서 득표 전략을 세우곤 한다. 기업이 2050년까지 사용 전력량의 100%를 풍력, 태양광 등 재생에너지로 조달하겠다고 자발적으로 선언하는 국제 캠페인인 RE100은 이제 국가와 기업에 있어 먼 미래의 일이 아닌 발등에 떨어진 불인 셈이다. 그럼에도 대통령이 되겠다는 자가 강 건너 불구경하듯 관심이 없다는 건 참으로 어처구니가 없다. 기껏 한다는 게 별 필요도 없는 사드를 추가 배치하겠다는 공약이나 내세우고, 군대도 다녀오지 않은 자가 암것도 모르면서 선제타격이나 운운하다니... 그것도 막대한 경제적 손실을 감수하면서. 이쯤 되면 막가자는 것이 아닌가.

 

입춘도 지났는데 날씨는 한겨울처럼 춥기만 하다. 사용후 핵연료를 안전하게 보관할 장소도 마련하지 못한 채 원자력 발전소를 계속해서 짓겠다는 무대책의 발상과 경제적 손실이 몇십조가 되든 사드를 추가 배치하겠다는 공약은 도대체 누구를 위한 정책인지 묻고 싶다. 대한민국 국민을 위한 정책이 아니라면 그는 분명 매국노일 터, 대한민국의 대통령이 된다는 건 있을 수 없는 일이다. 서울의 집값을 안 떨어뜨릴 것 같아 야당 후보를 지지한다는 사촌과 수도권에서 싼 값으로 집을 살 수 있게 해줄 것 같아 야당 후보를 지지한다는 조카. 그들의 동상이몽은 당분간 계속될 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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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시를 걷는 여자들 - 도시에서 거닐고 전복하고 창조한 여성 예술가들을 만나다
로런 엘킨 지음, 홍한별 옮김 / 반비 / 2020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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솔향은 눅진하게 퍼지듯 다가오지 않고, 가고자 하는 대상을 향해 찌르듯 덮쳐온다. 그러므로 솔향을 맡는 이는 누구나 고즈넉함에 기대어 소나무와 대화할 준비가 되었음을, 조용히 마음으로 다가갈 준비가 되었음을 알리는 것이다. 어쩌면 누군가를 사랑한다는 것도 이와 비슷하지 않았을까. 마음의 문을 열기 전에 우리는 서로의 내음을 먼저 맡았던 게 아닐까. 그렇게 조용조용 서로를 탐구하며 가까워졌던 게 아닐까. 그러므로 냄새는, 아니 향기는 마음보다 먼저라고 말할 수 있다. 마치 전조처럼. 혹은 징후처럼.


"우리는 자신의 삶에 대해 객관적일 수가 없어서 카드에 의존한다. 그래서 점을 치는 게임이나 수맥 찾는 막대기 같은 것을 좋아한다. 길을 찾아줘. 금이 어디에 묻혀 있는지 알려줘. 나도 전에 영화에서 본 방법을 써본 적이 있다. 책 한 권을 집어 아무 쪽이나 펼친 다음(『오만과 편견』이 내가 가장 많이 쓴 책이다. 엘리자베스 베넷의 분별력에 도움을 받기를 기대하면서.) 손으로 짚고 손가락이 가리키는 단어를 예언이나 지침으로 삼는 것이다. 이런 방법을 '책점'이라고 하는데 오래된 점술법이다."  (p.356)


로런 엘킨의 <도시를 걷는 여자>는 독특한 여행기이자 도시를 빈둥거리며 구경하는 플라뇌즈로서의 도시 비평서이기도 하다. 엘킨의 여행은 우리를 파리, 런던, 도쿄 등의 풍경 속으로 데려갈 뿐만 아니라, 직접 마주하는 것보다도 더 생생하게 이 도시들의 속살을 보여준다. 작가는 책에서 때로는 관광객이었다가, 또 때로는 동네 주민이 되기도 하고, 때로는 이민자가 되기도 했다. 그것은 독자들에게 무척이나 생경한 느낌으로 다가온다. 엘킨의 숨김없고 솔직한 글쓰기가 빛을 발하는 것도 이처럼 낯선 느낌에서 비롯되는지도 모른다.


"젊은 여자가 호텔 방에 있다. 낯선 도시에서 보내는 첫날밤이다. 그러니까 바로 그 도시, 뉴욕에서. 빙하 위의 동굴에 비할 만큼 에어컨이 세게 나오는 방에서 담요를 둘둘 말고 있다. 기침이 나고 열이 오르는 것 같지만 프런트에 전화를 걸어 에어컨을 꺼달라고 부탁할 용기가 없다. 누군가가 올라오면 팁을 얼마나 줘야 할까? 팁도 없이 돌려보내거나 아니면 너무 많이 줘서 호구로 보이느니 차라리 추운 게 나을 것 같다."  (p.395)


책을 좋아하고 여행을 좋아하는 독자라면 단연코 선택 1순위에 올려놓을 듯한 이 책은 사실 하나의 장점이 더 있다. 400여 페이지에 이르는 책의 두께가 그것이다. 책에 빠져들 만하면 금세 책이 끝나버리는 불합리한 책의 두께가 늘 불만이었다면 이 책은 그런 것에 대한 해답이 될 수 있을지도 모른다. 작가가 주목한 여성 산책자들은 조르주 상드, 버지니아 울프, 소피 칼, 아녜스 바르다 등'걷기와 사색을 통해 자기가 관찰한 삶에 질문을 던지고 도전하고 새로 만들어낸' 예술가들이라고 극찬하며 그들의 작품을 작가만의 새로운 시각으로 읽어낸다.


"울프는 거리에서 이야기를 캐냈고 자기가 관찰한 사람들, 걷고 물건을 사고 일하고 멈추어 서는 사람들의 이야기로 책을 채웠다. 특히 여자들. 기차에서 맞은편에 앉은 여자를 묘사하면서 울프는 이렇게 선언했다. "모든 소설은 반대편 구석의 늙은 여자로부터 시작한다." 아니면 상점의 젊은 여자. "나는 나폴레옹의 150번째 전기나, Z교수가 심혈을 기울이는 키츠가 밀튼을 어떻게 사용했는지에 대한 70번째 연구보다는, 그 여자의 진짜 삶의 이야기를 듣고 싶다.""  (p.129)


2022년의 설 명절은 가만가만한 냄새라고 해야 할까, 아니면 분주함 속에 내재된 불안이라고 해야 할까 도무지 진정될 기미가 보이지 않는 코로나19의 위협과 그 위협을 더는 용납하고 싶지 않은 사람들의 반감이 만들어낸 거친 시간이었다. 사랑한다는 건 그와 같이 치솟는 감정을 가만가만 누르며 다시 일상으로 복귀해야 한다는 것을 묵묵히 인정하는 침묵의 울음이 아니었을까. 다만 이리저리 공간만 바삐 달라졌을 뿐 '언제'라는 시간에서 다시 또 '언제'라는 시간으로 되돌아온 나는 로런 엘킨의 <도시를 걷는 여자들>을 읽었고, 잔설이 남은 아파트 화단을 먼 시선으로 보고 있다. 멀리서 다가오는 솔향. 뭔가 대화를 시작하려는 듯.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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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에서 보는 바깥 날씨는 다분히 비현실적이다. 구름 한 점 없이 푸르기만 한 하늘과 풍요로운 햇살. 코트를 벗고 거리를 활보해도 하나 이상할 것 없을 듯한 날씨인데 막상 나가 보면 딴판이다. 저절로 옷깃이 여며지고 코트의 지퍼를 끝까지 올리게 된다. 보는 것과 체감하는 것은 이토록 다르다. 명절 연휴가 시작된 후 만날 수 있는 친인척을 더러 만나게 된다. 전염력 강한 오미크론의 여파로 직접적인 대면은 다들 부담스러운 듯 '상황이 나아지면 그때 보자'는 말로 에둘러 거절하기 일쑤이지만 차마 그럴 수 없는 관계도 더러 있게 마련, 시간을 내어 찾아뵙고 인사를 드리게 된다.

 

세배를 하고 간단한 차와 다과를 나누며 그간의 사정을 묻고 안부를 확인하는 게 전부이지만, 그마저도 생략하면 언제 다시 얼굴을 보고 손 한 번 잡아 볼 수 있을지 기약이 없는 것이다. 코로나를 핑계 삼아 긴 연휴 동안 집에서 뒹굴뒹굴 게으름을 피우고 싶은 마음이야 굴뚝같지만 그렇게 시간을 보내 본들 늘어난 체중과 나른한 피로만 남을 게 뻔한지라 그럴 바에야 차라리 바쁘게 움직이는 편이 낫겠다 싶은 것이다. 몸은 조금 고될지라도 말이다.

 

대선이 멀지 않은 탓인지 사람들은 다들 자신이 지지하는 후보와 그의 장점을 설파하려 든다. 그러나 그 이면을 파고들어 보면 자신의 이익이 후보에게 투영되어 나타난다는 걸 모르는 이는 없다. 집값이 너무 높다고 하면서도 자신이 사는 아파트의 시세가 떨어지는 것은 원치 않고, 종부세 대상도 아니면서 세금이 너무 높다는 말을 공공연히 내뱉음으로써 자신의 부를 과대 포장하기도 하고, 그런 모든 것을 고려할 때 아무개 후보가 제일 낫다고 판단하면서도 실제로 자신이 아무개 후보를 지지하는 건 단순히 국가의 미래를 위해서라며 말뿐인 애국심을 내세우기도 한다. 그런 말을 들을 때 나는 적극적으로 반박하거나 논쟁을 하는 성격은 아니지만 '도대체 왜 사는가?' 하는 허전한 마음이 드는 건 어쩔 수 없는 일이다.

 

다른 건 몰라도 어떤 후보가 자신이 사는 아파트의 시세를 떨어뜨리지 않을 것인가? 하는 문제가 지지 기준의 1순위가 된다는 건 참으로 부끄러운 일이 아닐 수 없다. 젊은 세대에게 못할 짓이기 때문이다. 간혹 내가 살다 죽으면 이 집은 다 아들에게 갈 텐데 집값이 안 떨어지면 나도 좋고 아들도 좋지 뭐 그게 어때서 그래? 하고 반박하는 이가 더러 있다. 그러나 자신이 앞으로 수십 년을 더 살게 된다면 아들은 어쩌면 수십 년을 난민처럼 떠돌아야 하는 게 아닌가. 이렇게 무책임한 말을 하면서도 죄책감이라곤 조금도 없다는 게 나는 도무지 이해가 되지 않는다. 집이란 그저 거주의 공간일 뿐 투기의 대상으로 바라보는 건 이제 그만 좀 했으면 좋겠다.

 

코로나 시국에 여행길이 막히다 보니 외국에 사는 친구들이나 친인척을 만난다는 건 언감생심 꿈도 꾸지 못하고 있다. 전화나 sns를 통해 겨우 소식을 전할 뿐이다. 그들도 대한민국의 대선에 꽤나 관심이 많은지 자국에서 보도되는 언론을 통해 접하는 소식을 나에게 확인하곤 한다. 며칠 전에는 무속 신앙에 심취한 야당 후보의 부인과 후보 본인의 무속 논란에 대해 나에게 물어왔다. 그런 후보를 지지하는 사람들이 있다는 게 대한민국의 국격에 전혀 어울리지 않는 것 아니냐며 각종 여론 조사의 조사가 잘못된 게 아닌지 따져 물었다. 내가 여론 조사기관에서 근무하는 게 아니니 조사 방법이나 조사 시간 등을 자세히 밝힐 수는 없었지만 그는 도무지 납득할 수 없다는 눈치였다. 대한민국 국민이 그렇게 무식하지는 않을 것이라면서.

 

쏟아지는 잠을 쫓기 위해 아파트 주변을 한 바퀴 돌고 왔다. 반려견을 데리고 나온 사람들이 의외로 많았다. 사람들에게 실망하다 보니 반려견이나 반려묘를 키우는 사람들이 늘어나는 듯하다. 적어도 자신이 키우는 강아지나 고양이는 자신을 배신하지는 않을 테니 말이다. 하루가 이렇게나 빨리 스러지는 걸 보니 휴일은 휴일인가 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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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무나가 아니라 ‘내’가 되고 싶어 - 되는 일이 없을 때 읽으면 용기가 되는 이야기
하주현 지음 / (주)태일소담출판사 / 2022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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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가 읽는 자기계발서의 대부분이 성공담이나 성공 노하우라고 착각하는 경우가 더러 있다. 그러나 아니다. 내가 보는 견지에서는 그렇다. 오히려 저자 자신의 실패담이나 실패로부터 깨우친 것을 책으로 엮었을 때, 책을 읽는 독자들의 마음을 더 쉽게 움직일 수 있다. 그것은 소설을 비롯한 대부분의 문학 장르에서도 크게 다르지 않다. 기쁨보다는 슬픔, 해피엔딩보다는 새드엔딩, 성공보다는 실패의 이야기가 독자들의 마음에 더 깊은 여운을 남기기 때문이다.


이와 같은 현상의 기저에는 우리 삶의 근본 원리와도 깊은 연관이 있는 듯 보인다. 기본적으로 모든 인간의 삶은 실패담이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한 분야에서 성공한 사람들의 이야기 혹은 인간적 성숙을 이룬 영웅담은 과연 무엇이란 말인가? 그것조차도 실패담이라고 말할 수 있을까? 그렇다. 그 모든 것들이 따지고 보면 실패담이다. 한 분야에서 성공을 거두었다고 할지라도 그가 다른 분야를 포기함으로써 얻어진 결과인 까닭에 다른 여러 분야의 측면에서는 역시 실패담일 수밖에 없다. 다만 본인도 그리고 다른 사람들도 그가 성공한 분야 이외의 다른 분야에 눈길을 돌리지 않는 까닭에 성공담이라고 말할 수 있는 것이다. 결국 우리의 삶이 성공이냐 실패냐 하는 기준은 자신의 삶을 다른 어떤 것과 견주어 비교하느냐 그렇지 않느냐에 달려 있을 뿐이다. 자신의 삶에 무리한 욕심을 낸 까닭에 이 분야에 조금, 저 분야에 또 조금의 시간을 허비했다면 그것은 실패담으로 귀착될 수밖에 없다. 결국 우리는 자신의 삶에 만족하며 다른 이의 삶을 기웃대지만 않는다면 우리 모두의 삶은 성공담이라고 말할 수 있는 것이다.


"우리들이 쉽게 말하는 '할 수 없는 이유들'에 대해 '할 수 있는 이유들'로 바꾸어 가는 얘기를 전하고 싶다. 어떠한 상황에서도 내가 할 수 있는 일을 찾으려는 마음을 가졌으면 하니까. 언젠가 희망 없이 털썩 주저앉아 있을 때 내 이야기를 떠올리며 의지와 희망으로 툭툭 털고 일어난다면 이 책은 그 역할을 다한 것이다."  (p.19 '프롤로그' 중에서)


<아무나가 아니라 '내'가 되고 싶어>를 쓴 하주현 역시 다른 이의 삶을 기웃대거나 자신이 선택한 삶을 후회하지 않은 채 오직 외길을 향해 달려온 케이스에 속한다. 그러므로 우리는 그녀의 삶을 성공담이라고 말할 수 있을 것이다. 저자 스스로는 극구 부정하고 있지만 말이다. 그러나 우리가 혹은 저자 스스로가 다른 분야로 눈길을 돌리는 순간 그녀의 삶은 순식간에 실패담이 되고 만다. 다른 분야에서 특별한 성취를 이룬 사람은 수를 셀 수도 없이 많을 뿐만 아니라 우리가 흔히 하는 비교의 기준(예컨대 재산이나 명성, 권력 등)으로 보더라도 그녀의 삶은 특별할 게 없기 때문이다.


"아파트에는 쥐도 많았다. 그것도 슈퍼 사이즈의 쥐! 이곳 바퀴벌레와 쥐는 모두 슈퍼 사이즈였다. 새벽에 화장실이라도 가려고 일어나면 쥐가 돌아다니는 걸 볼 수 있었다. 나보다 더 당당해서 오히려 쥐가 사는 집에 내가 얹혀사는 기분이었다. <섹스 앤 더 시티>에서 그리는 밝은 뉴욕의 뒤에는 늘 어둠이 깔려 있었다."  (p.129)


저자의 이력을 보면 화려하기 그지없다. 코넬 대학교에서 호텔과 레스토랑 경영학 석사를 졸업하고 포시즌스 호텔 뉴욕, 리츠칼튼 호텔 서울, 미국 플로리다, 펜타곤 시티, 호주 시드니와 미슐랭 3스타 쉐프들의 레스토랑 뉴욕 다니엘, 르 버나딘, 라틀리에 드 조엘 로부숑 등 이름만 들어도 쟁쟁한 호텔과 레스토랑에서 근무한 경력이 있다. 뿐만 아니라 2013년 한국으로 돌아와 프랑스 식료품 브랜드 포숑의 한국 디렉터, 2015년 신세계 그룹 신세계 푸드 외식 팀 영업팀장과 레스케이프 호텔 식음 팀장을 거쳤다고 하니 그녀를 모르는 사람들은 어쩌면 그녀의 출신 배경이 '금수저'려니 착각할 수도 있겠다.


"나는 국내외 대기업과 중소기업, 개인 기업을 아우르며 말단 직원에서부터 임원, 그리고 조그만 베이커리의 오너까지 차근차근 성장했다. 다양한 위치와 환경에 처한 사람들의 마음을 헤아릴 수 있는 경험이 쌓였다. 누구나 그렇듯 나에게 다시 지나간 시간이 주어진다면 좀 더 잘 준비해서 더 잘해 보고 싶은 마음이 간절하다. 하지만 내 인생을 뒤로 되돌릴 순 없다. 대신 후배들이 지나간 나의 이야기를 토대로 그들의 방식대로 젊음과 열정적인 삶을 잘 써내려 가길 바란다. 이 책을 쓴 이유이기도 하다."  (p.226 '에필로그' 중에서)


저자 하주현이 자신의 삶을 돌이켜 보며 기적처럼 일구어낸 작은 성취들을 기록한 이 책, <아무나가 아니라 '내'가 되고 싶어>는 자기계발서라기엔 다분히 문학적이며 가독력이 높고, 삶에 지친 이들에게 큰 용기를 불러일으킨다는 점에선 수준 높은 자기계발서라고 말할 수도 있겠다. 그러나 책을 읽는 독자의 입장에서 나는 저자의 삶 역시 누구나가 넘볼 수 있는 평범한 분야라고 말하고 싶다. 이것은 결코 저자의 성취를 폄훼하려는 것도 아니고, 그녀의 노력이나 열정을 아무것도 아니라는 듯 깎아내리려는 의도가 섞인 것도 아니다. 다만 각자의 삶이 이룩한 성취가 어떻든 자신의 삶에 만족하고 다른 분야를 기웃대지만 않는다면 그러한 삶을 사는 모든 이의 삶이 성공담이라는 것을 말하고 싶을 뿐이다. 저자 하주현의 삶이 성공담이듯 나와 우리 모두의 삶이 성공담으로 평가될 수 있기를 나는 진심으로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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