낮 기온이 하루가 다르게 올라 이제는 곳곳에 봄기운이 완연하다. 계절은 또 이렇게 어김없이 찾아와 겨우내 봄을 기다렸을 사람들의 마음을 들뜨게 한다. 그럼에도 2022년의 봄은 지난 몇 년처럼 활기가 없는 게 사실이다. 2022년의 대한민국을 달구었던 제20대 대통령 선거에서 우리는 그 누구도 상상하지 못했던 일을 현실에서 목도하게 되었기 때문이다. 대통령 자격이 없는 자가 대통령으로 당선된 이런 어처구니없는 현실 앞에서 사람들은 망연자실 넋을 놓을 수밖에 없었다.

 

나를 아는 사람들 중 몇몇은 선거도 끝났는데 왜 아무런 글도 올리지 않느냐고 묻곤 했다. 나는 사실 그런 같.잖.은. 사람으로 인해 나의 귀중한 시간과 감정을 소비하고 싶지 않았고, 무엇보다도 그런 하찮은 사람의 이름을 들먹이며 내 블로그를 더럽히고 싶지도 않았다. 이미 지나간 일이고, 결과를 되돌릴 수도 없는데 그런 감정의 배설이 무슨 소용이며, 설령 어떤 글을 쓴다 한들 마음 통하는 사람들과의 한 끼 식사만 할까.

 

그럼에도 짧게나마 글을 쓰고자 했던 것은 선거 이후의 사람들 태도 때문이었다. 선거 결과가 나온 다음날부터 대한민국은 온통 꼰대들 세상으로 변한 느낌이었다. 회사에서도, 길거리에서도 젊은 꼰대, 늙은 꼰대 가릴 것 없이 이제야 비로소 자신들의 세상이 도래한 것처럼 거들먹거리며 끼리끼리 식사를 하러 가는 모습은 그야말로 가관이었다. 세상은 그렇게 정확히 두 갈래로 갈라진 느낌이었다. 적어도 현 정부가 출범하던 5년 전에는 그런 일은 없었다. 지금의 대통령을 지지했던 사람들도, 그렇지 않은 사람들도 서로 편을 갈라 누구를 배척하고 등지는 일은, 그런 비열한 짓은 하지 않았다. 그러나 지금은 노골적으로 서로를 배척하고 조롱하며 상대방을 비난하는 짓도 서슴지 않았다. 오죽하면 "늙은 꼰대들이 죽지 않는 한 대한민국의 미래도 없다."며 한탄하는 사람들이 있을까.

 

그들은 대선 결과가 있었던 날 아침 "꼰대 천국에 오신 것을 환영합니다"라는 문구가 적힌 플래카드를 전국 곳곳에 내걸고 싶었을지도 모른다. 투표 한 번으로 자신이 뭐가 되기라도 한 듯 으스대며 거리를 활보하는 꼬락서니는 정말 눈 뜨고 보아주기 어려운 지경이다. 나는 오늘도 꼰대 천국 대한민국의 소시민으로서 한껏 어깨를 움츠린 채 국가의 미래를 걱정하고 있다. 정확히 둘로 쪼개진 대한민국의 미래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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테레사 2022-03-12 17:4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울화가 치민다는게 뭔지 알 것 같아요 ㅜ5년동안 나라가 얼마나 망가질지..

꼼쥐 2022-03-14 07:15   좋아요 0 | URL
윤을 찍었던 개개인들이 손가락을 부러뜨리고 싶은 날이 생각보다 빨리 오지 않을까 싶습니다.

잉크냄새 2022-03-12 22:2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 하찮은 인간의 인간 됨됨이나 인성을 보고 지지한 비율이 4%라고 하네요. 사실 4%도 경악스럽네요. 참고로 이재명 후보는 40%대고요. 이 부분이 선거가 끝나고도 가슴이 답답한 이유인가 봅니다. 인간 됨됨이도 되먹지 않은 놈이 검찰 언론 극우가 내세운 정권교체의 프레임으로 인해 당선되는 불상사가 현실이 되었으니까요.

꼼쥐 2022-03-14 07:18   좋아요 0 | URL
4%의 사람들은 뇌가 없거나 가짜 언론에 세뇌된 사람들이 아닐까 싶네요. 아무리 교양이 없어도 열차 좌석에 구둣발을 올리는 사람을 어떻게 인성 운운할 수 있을까요. 민주당이 언론 개혁을 제대로 하지 못한 것에 대한 대가일 뿐.
 
첫 문장이 찾아오는 순간 - 읽고 쓰기에 대한 다정한 귓속말
오가와 요코 지음, 김난주 옮김 / 티라미수 더북 / 2022년 1월
평점 :
절판


글을 그저 읽기만 하던 사람이 글을 쓰는 차원으로 진전시킨다는 것은 그리 녹록한 일은 아니라고 생각할지도 모르겠습니다. 물론 몇 시간째 붓방아만 찧으며 글짓기 숙제를 부담스러워하는 아이들 앞에서 "나도 소싯적에는 글발깨나 날렸다."며 과장된 몸짓으로 허풍을 떠는 일은 누구나 할 수 있는 행위이겠습니다만, 막상 펜을 들고 형식에 맞춰 문장을 쓰고 기, 승, 전, 결의 구성을 갖춰 글을 완성한다는 것은 어쩌면 불가능에 가까운 일일지도 모르겠습니다. 학창 시절 이후로도 꾸준히 독서를 하고 일기와 같은 짧은 글일망정 간간이 글을 써오던 사람이라면 다르겠지만 말입니다.


"또 현실을 기억할 때도 있는 그대로 기억하는 일은 절대 없어요. 기쁜 일은 크게 확대하고 슬픈 일은 조그맣게 축소하는 등, 자기 마음의 형태에 맞게 변형해서 기억합니다. 현실을 이야기로서 자긴 안에 쌓아가는 것이죠. 그런 의미에서 보면, 사람은 살아 있는 한 누구나 이야기를 필요로 하며, 이야기의 도움으로 현실과 그럭저럭 균형을 잡아가고 있다고 할 수 있겠지요. 따라서 작가는 특별한 재능이 있는 게 아니라, 누구든 나날의 일상생활 속에서 만들어내는 이야기를 언어를 통해 의식적으로 표현하고 있을 뿐입니다. 저 자신의 역할도 그런 게 아닐까 생각하고 있습니다."  (p.28)


오가와 요코의 에세이집 <첫 문장이 찾아오는 순간>은 '이야기'에 대한 세 번의 강연을 책으로 엮은 것입니다. 처음에는 강연을 '활자로 남길 예정이 아니었고, 그 자리에서 한 번으로 끝나는 얘기였'지만 최종적으로 출판을 결심하게 된 것은 '이 책을 보신 분들이 이야기의 매력을 다시금 확인하고 이야기의 역할을 새롭게 인식해서, '책을 읽는다는 건 얼마나 멋진 일인지!' 하고 생각해주셨으면 하는 바람이 있었기 때문'이라고 작가는 밝히고 있습니다. 말하자면 작가는 책을 읽는 독자들에게 쓰기를 권하기보다 읽기의 중요성을 강조하고 있습니다.


1부 '이야기의 역할'에서는 개개인의 삶에서 이야기가 어떤 의미를 지니고 어떤 역할을 하는지에 대해 말하면서 독서의 유용성을 논했다면, 3부 '이야기와 나'에서는 어린 시절부터 시작되는 자신의 독서 이력을 하나씩 들춰 보고 돌아보면서 어떤 책이 자신의 인생관에 영향을 미쳤는지를 들려준다. 그리고 2부 '이야기가 태어나는 현장'에서는 20여 년 전 대학에서 문예과에 입학하여 문학을 공부하는 학생이었던 작가가 이제는 소설을 쓰는 일을 직업으로 갖게 되기까지 그 과정을 술회하고 있습니다.


"저도 젊은 시절에는, 저 자신이 가장 중요한 문제였어요. 내가 누구인지를 알기 위해 소설을 썼습니다. 20년 정도 쓰다 보니 점차 제 자신이 그렇게 물고 늘어질 만큼 대단한 인간이 아니라는 것을 알게 되었어요. 그리고 일단 저 자신을 떠나, 전에는 상상도 예상도 하지 못했던 넓은 장소에 서서 세계를 관찰하는 자세를 지니자, 살아 있는 인간도 죽은 인간도, 저 자신도 타인도, 동물도 풀도 꽃도 모두, 온갖 것이 고루 평등하게 보였습니다. 그렇게 스스로에게 매몰되지 않는 자세로 쓰자고 생각하게 된 것이 불과 1, 2년 전의 일입니다."  (p.103)


《박사가 사랑한 수식》으로 잘 알려져 있고, 세계 평단에서도 높은 평가를 받는 소설가 오가와 요코. 그러나 지금의 위치에 오른 그녀도 책을 좋아하고 소설가를 꿈꾸던 어린 시절이 있었을 터, 자신의 인생관에 영향을 미쳤던 두 권의 책을 말하고 있습니다. 그것은 바로 《파브르 곤충기》와 《한밤중 톰의 정원에서》입니다. 《파브르 곤충기》를 읽으면서는 드넓고 위대한 세상에서 자신이 작디작은 일부라는 생각을 하였고, 《한밤중 톰의 정원에서》를 통해서는 자신이 그 누구도 대신할 수 없는 유일무이한 존재라는 것을 배웠다고 합니다.


"인간의 마음을 헤아리는 것이 이야기라면, 역시 너무 강해서는 안 된다는 뜻이 될 수도 있겠지요. 너, 이 길로 가면 안 되지, 네가 갈 길은 이쪽이잖아, 하면서 읽는 이를 억지로 끌어당기는 이야기는 이야기의 진정한 모습이 아닙니다. 그래서는 읽는 이가 피로해질 뿐이죠. 읽는 이가 이야기의 견고한 윤곽에 맞추는 게 아니라, 이야기 자체가 어떤 사람의 마음에도 다가갈 수 있으리만큼 넉넉하고 유연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저는 도착 지점을 명기하지 않고, 방황하는 독자와 함께 이리저리 헤매는 그런 소설을 쓰고 싶군요."  (p.149)


우리는 종종 읽는 이와 쓰는 사람이 엄격히 구분되어 있다고 생각하곤 합니다. 습관적으로 책을 읽고 리뷰든 일기든 쓰는 일에는 마냥 게으르기만 한 나와 같은 일차원의 독서가에게 오가와 요코의 성실함과 겸손함, 그리고 읽고 쓰기의 즐거움을 담은 책 <첫 문장이 찾아오는 순간>은 새로운 세상을 보여주었습니다. 우리는 그렇게 일상에서 발견하지 못했던 새로운 세상을 책에서 발견하곤 합니다. 배우고 때로 익히면 즐겁다지만 읽고 때로 발견하면 그 또한 즐거운 듯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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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민 여론이라는 게 참으로 무섭다는 생각을 다시 한번 하게 됩니다. 안철수 대표의 사퇴 발표가 있고 얼마 후 뉴욕에 사는 여동생으로부터 전화를 받았습니다. 자신은 이미 선거를 마쳤다면서 "오빠는 설마 2번남은 아니지?" 하고 물어왔습니다. 뭔 소린지 의미를 파악하지 못했던 나는 "무슨 뜻이야?" 하고 되물었더니 한심하다는 듯 끌끌 혀를 차면서 "어떻게 오빠는 한국에 살면서 나보다도 한국 소식을 더 모를 수가 있어?" 하는 핀잔이 돌아왔습니다. 그리고 자신이 알고 있는 소식, 즉 1번남과 2번남에 대한 자세한 설명을 내게 전해주었던 것입니다. 궁금한 게 있으면 인터넷 검색을 해보라면서.

 

회사에서도 그와 같은 분위기는 빠르게 퍼져나가고 있었습니다. 지난주까지만 하더라도 야당의 대선 후보가 오차범위 밖에서 앞선다는 둥 금세라도 야당 후보가 대한민국 제20대 대통령으로 취임할 것만 같은 분위기였는데 사전 투표가 있었던 지난 주말을 기점으로 분위기는 급반전한 모습입니다. 그것은 비단 우리 회사만의 변화는 아니었습니다. 여직원이 많은 식품회사에서는 야당 후보를 지지하는 것이 마치 뒷골목 깡패를 두둔하는 듯한 이상한 사람 취급을 받는다고 합니다. 이런 분위기는 아파트 부녀회를 통해서도 조금씩 퍼져나가고 있는 듯합니다. 불과 며칠 사이의 분위기가 이렇게 달라질 수 있다는 게 나로서도 도무지 믿어지지 않지만 그것은 조금의 과장도 섞이지 않은 현실인 듯합니다.

 

여론 동향의 바로미터라고 할 수 있는 주가 동향만 보더라도 분위기는 심상치 않습니다. 여당 대선 후보의 관련주로 분류되는 주식의 주가가 급등한 반면 야당 후보의 관련주는 급락하는 모양새를 보였으니 말입니다. 게다가 집안의 주도권을 대개 여자가 쥐고 있는 까닭에 아무리 비밀투표라고는 하지만 아내의 말 한마디는 무시할 수 있는 게 아닌 듯합니다. 가까이 지내는 친구만 하더라도 지난 주말 아내의 의사에 따라 투표를 마쳤다고 하더군요. 지금까지 여러 번의 투표를 경험했지만 이번 대선과 같은 상황은 처음입니다. 국민의 여론은 참으로 무섭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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테레사 2022-03-07 17:3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꼼쥐님이 남성이었습니꽈?? 왜 저는 여성으로 알고 있었을까요?

꼼쥐 2022-03-10 21:03   좋아요 0 | URL
ㅎ 죄송합니다.
제가 글에 먹칠을 했거나 글에 가면을 씌웠었나 봅니다.

기억의집 2022-03-07 19:5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이게 투표날까지 쭈욱 이어졌으면 좋겠어요!!

꼼쥐 2022-03-10 21:04   좋아요 0 | URL
투표날까지 쭈욱 이어지기는 했지만 역부족이었나 봅니다. ㅜㅜ
 
물고기는 존재하지 않는다 - 상실, 사랑 그리고 숨어 있는 삶의 질서에 관한 이야기
룰루 밀러 지음, 정지인 옮김 / 곰출판 / 2021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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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에 지치거나 푸석푸석 메마른 일상이 길게 이어질라치면 하시라도 전화를 걸어 도움을 요청하게 되는 스님이 한 분 있다. 그렇다고 내가 불교 신자라는 얘기는 아니다. 속세의 삶을 객관적으로 바라보기 위해서는 우리네 삶과 어느 정도 거리를 둔 채 살아가는 스님이나 신부님 혹은 수녀님과 같은 성직자들의 시선이 필요할 뿐이다. 물론 우리들 삶에서 시시때때로 부딪히는 시시콜콜한 문제들에 대해서는 주변의 친구들이나 목사님에게 조언을 구하는 게 더 빠르고 현명한 해결책이기도 하지만 말이다. 이런 이유 때문에 나는 종교에 상관없이 아주 오래전부터 알고 지내는 스님이나 신부님 혹은 목사님의 연락처를 마치 부적처럼 지니고 다닌다.


개인적인 친분이 있는 스님을 불쑥 꺼내 든 이유는 풀리지 않는 삶의 의문에 대한 스님의 견해와 최근에 읽은 한 권의 책이 나름의 인연으로 깊이 연결된 듯한 느낌이 들었기 때문이다. 그것은 왜 사느냐?는 문제와도 직결된다. 또한 과학 전문 기자로 15년 넘게 미국 공영 라디오 방송국NPR에서 일하고 있는 룰루 밀러의 고민이기도 하다. 그녀의 논픽션 데뷔작 <물고기는 존재하지 않는다>를 읽은 우리 모두의 고민이기도 하지만 말이다. 자신의 삶을 긍정적으로 바라보느냐 아니냐 하는 문제는 전적으로 어린 시절의 경험과 성장 배경에 의해 결정될지도 모르지만 그것과 상관없이 주어진 삶을 끝까지 살아내느냐 아니냐는 현실에서 또 다른 차원의 문제라는 걸 우리 모두가 알고 있다. 그러나 그 문제에 대한 해결책은 각자가 고민해야 할 개별적인 것일 뿐 모든 이에게 공통으로 제시할 수 있는 모범 답안은 결코 존재하지 않는다고 믿고 있을지도 모른다. 비관주의자인 저자 역시 자신의 삶을 통과하기 위해 비슷한 유형의 한 사람을 자신의 롤모델로 삼아 그의 생애를 세세하게 점검했던 것처럼.


"운명의 형태를 만드는 것은 사람의 의지다. 이 말은 그가 자기 자신에게 결코 하지 않겠다고 약속했던 바로 그런 종류의 거짓말이다. 사악함으로 이끌어가는 것이라고 그가 경고했던 그런 종류의 거짓말. 자기 경력을 바쳐 맞서 싸워왔던 그런 종류의 거짓말이자, 그가 죽기를 각오하고 싸울 가치가 있다고 말했던 그런 종류의 거짓말이다. 자연은 인간의 사정을 봐주지 않으니까! 그조차도 절망에 완전히 집어삼켜지지 않으려면 그 거짓말이 진실이기를 믿어야만 했던 것이다."  (p.133)


'인간이 살아가는 방법은 매번 숨 쉴 때마다 자신의 무의미성을 받아들이는 것이며, 거기서 자신만의 의미를 만들어내는 것'이라고 했던 생물학자(분류학자) 데이비드 스타 조던이 현실적인 절망(예컨대 자신의 전 생애를 바친 업적이 파괴된다든가 가까운 사람을 사고나 질병으로 잃는 것과 같은) 속에서 그가 선택했던 역경을 이겨내는 현실적인 방안이나 가르침을 배우기 위해 분투했던 저자. 그에 비하면 나는 스님을 통해 너무 쉽게 그 답에 접근했던 게 아닌가 하는 미안함마저 있었다. 스님은 우리 삶의 에너지가 각자가 지닌 '욕심'이라고 했다. 수도자의 답변치고는 너무나 세속적인 것이어서 당시에는 크게 놀랐던 기억이 있다.


"내가 물고기를 포기했을 때 나는, 마침내, 내가 줄곧 찾고 있었던 것을 얻었다. 하나의 주문과 하나의 속임수, 바로 희망에 대한 처방이다. 나는 좋은 것들이 기다리고 있다는 약속을 얻었다. 내가 그 좋은 것들을 누릴 자격이 있어서가 아니다. 내가 얻으려 노력했기 때문이 아니다. 파괴와 상실과 마찬가지로 좋은 것들 역시 혼돈의 일부이기 때문이다. 죽음의 이면인 삶. 부패의 이면인 성장. 그 좋은 것들, 그 선물들, 내가 눈을 가늘게 뜨고 황량함을 노려보게 해주고, 그것을 더 명료히 보게 해준 요령을 절대 놓치지 않을 가장 좋은 방법은 자신이 보고 있는 것이 무엇인지 전혀 모른다는 사실을, 매 순간, 인정하는 것이다. 산사태처럼 닥쳐오는 혼돈 속에서 모든 대상을 호기심과 의심으로 검토하는 것이다."  (p.263~p.264)


속세에 살면서 '욕심'을 버린다거나 '내려놓기'를 실천하는 것과 같은 세속적이지 않은 행동은 지극히 위험하다고도 했다. 속세를 떠난 자신과 같은 수도자는 세속적 욕심을 내려놓고 성불하겠다는 욕심을 부리는 게 당연하겠지만 속세에 살면서 세속적 욕심을 버린다는 건 격에 맞지도 않을뿐더러 에너지를 잃는다는 면에서 위험하다고도 했다. '욕심이 곧 삶의 에너지'라는 말은 수도자로부터 흔히 들을 수 있는 게 아니었기 때문에 내게는 가히 충격적으로 다가왔었다. <물고기는 존재하지 않는다>의 저자인 룰루 밀러 역시 그녀가 이상적으로 생각했던 데이비드 스타 조던이 전혀 다른 인물임을 알게 되었을 때 충격이 크지 않았을까. 그러나 중요한 것은 책을 읽는 나도, 저자인 룰루 밀러도 각자가 생각하는 어떤 바람 혹은 '욕심'을 에너지 삼아 삶을 영위하고 있다는 점이다. 그것은 룰루 밀러가 탐구했던 데이비드 스타 조던도, 내가 존경하는 스님도 크게 다르지 않을 터 사람은 모두 자신의 기준에 따라 미래를 욕심내며 사는 것이다.


19세기 미국의 천문학자 마리아 미첼Maria Mitchell이 천문학 수업에서 했다는 말 "삶에 별빛을 섞으십시오."는 마라아 포포바가 쓴 <진리의 발견>에서 읽은 구절이다. 자신의 삶에 별빛처럼 환한 아름다움을 섞고 싶다는 욕망은 어쩌면 속세의 삶을 살아가는 우리가 취할 수 있는 가장 선한 '욕심'인지도 모르겠다. 혼돈이 우리의 시야를 암흑처럼 가리는 이 세상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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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퇴'가 마치 직업인 듯 굳어진 사람이 있다. 이런 상황을 미리 예견이라도 한 듯 그의 부모님은 그에게 절대 '철수'하지 말라는 의미의 '안철수'라는 이름을 지어주었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그는 투철한 청개구리 정신을 타고 태어났던 까닭에 부모님의 바람과는 전혀 다른 방향으로 삶의 방향을 정하고 말았다. 자신은 평생 '사퇴'를 직업으로 삼겠노라고 말이다. 그래서인지 그는 여러 번의 선거에 출마하였지만 출마는 단지 '사퇴'를 위한 초석일 뿐 당선이 목적은 아니었다.


어제까지만 하더라도 대한민국의 국민들은 '사퇴'를 표명하지 않고 있는 그에게 이제껏 보여왔던 의심의 눈초리를 거두고 '또 철수'가 아닌 진정한 '안 철수'로 돌아왔다며 반겼었다. 그러나 직업의식에 투철했던 그는 모든 이들의 기대를 저버리고 프로 사퇴러로서의 길을 걷기로 결심했던 모양이다. 사전투표일을 하루 앞둔 오늘, 그는 전격적인 사퇴 발표를 했던 것이다. 이에 대한 사람들의 반응 역시 제각각이었다. '진작에 그럴 줄 알았다'는 사람들도 있었고, '천성은 변하지 않는구나' 한탄하는 사람도 있었고, '이번에는 완주하는 모습을 볼 수 있으려나 내심 기대가 컸었는데 안타깝다'는 사람들도 있었다. 그러나 대체적인 의견은 그럴 줄 알았다는, 사람의 천성은 쉽게 변하지 않는다는 것이었다.


그는 이제 대한민국의 제1호 '프로 사퇴러'라는 직업인으로서 남은 여생을 살아갈 듯하다. 곧 있을 지방자치단체 선거 혹은 2년 후에 있을 총선거에 출마하여 멋지게 사퇴하는 모습을 보여줄지도 모른다. 그것이 곧 '프로 사퇴러'의 임무이자 가야 할 길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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페크pek0501 2022-03-04 10:5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하하하~~~ 글에서 탁월함이 뿜뿜 느껴집니다. ^^

꼼쥐 2022-03-06 18:46   좋아요 0 | URL
감사합니다.^^
감정을 배제하려고 쓴 글인데 다시 읽어보니 모든 문장에 감정이 뒤섞인 듯하네요. ㅎ