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2 제5회 한국과학문학상 수상작품집 - 루나 + 블랙박스와의 인터뷰 + 옛날 옛적 판교에서 + 책이 된 남자 + 신께서는 아이들 + 후루룩 쩝접 맛있는
서윤빈 외 지음 / 허블 / 2022년 5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기억 저편에는 언제나 그리움과 회한이 존재하지만, 현재의 내가 있기 위해서는 아스라한 기억의 잿더미 속에 산재하는 수많은 좌절과 절망으로부터 나를 일으켜 세웠던 용기의 순간들 또한 존재한다는 걸 잊지 말아야 한다. 그러므로 기억한다는 건 시간을 들쳐업고 나만의 외길로 들어선다는 것을 의미한다. 아슴아슴 멀어져 가는 용기의 순간들을 들먹인다는 건 우리가 습관처럼 되뇌는 '언젠가'에 숨겨진 일상성의 회복과 그 옅은 희망에 대한 강력한 신뢰를 다짐하는 일이다. 이를테면 우리는 행복한 순간에도 '언젠가 다시 하자'라고 말하기도 하고, 멋진 풍광을 보면서도 '언젠가 꼭 다시 오자'라는 다짐을 구호처럼 내뱉기도 하지만, 헤어날 수 없는 절망의 순간에도 '반드시 극복하여 언젠가 다시 만나자'는 약속을 서로의 가슴에 꼭꼭 눌러 새기듯 다짐하는 것이다. 그러므로 우리의 언어 습관에 포함된 '언젠가'에는 평범한 일상에 대한 몸짓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라는 걸 우리는 잘 알고 있다.

 

"나는 바다에 가본 적이 없다. 가장 오랜 기억까지 되짚어봐도 나는 언제나 삼무호 안에 있었다. 할망들이 배경처럼 깔린 지구를 가리키며 파란 게 바다라고 말해줘도, 바다가 나오는 영상을 보아도 도무지 실감이 나지 않았다. 물이 구형으로 둥둥 떠다니거나 용기 안에 있지 않고 넓고 깊이 웅덩이져 있다니, 물이 밀려와서 발을 간질이고 사라진다니, 그건 도대체 어떤 느낌일까."  (p.22 '루나' 중에서)

 

제5회 한국과학문학상에서 대상을 수상한 서윤빈 작가의 '루나'는 과거의 기억을 미래에 접목시킨 독특한 작품이다. 단편소설에서 무학적 완성도를 기대한다는 건 지나친 욕심일 수도 있겠으나, 제주 해녀들이 바다가 아닌 우주공간에서 '물질'을 한다는 상상력은 쉽게 연결지을 수 없는 기발한 착상임에 틀림없다. '삼무호'라는 우주기지를 근거지로 모계 공동체를 이루고 살아가는 제주 해녀들이 바다 대신 위성 사이를 유영하면서 광물을 캔다는 착상. 소설의 주인공인 '루나'는 할머니 해녀들과 또래의 어린 해녀들과 함께 평화로운 일상을 살아가던 어느 날 자신이 구출한 우주 조난자 '켈빈'으로 인해 거대한 삶의 변화에 직면한다.

 

"켈빈을 믿지 못하는 건 아니었다. 동기들은 입을 모아 좋은 기회라고 말했다. 만약 지구 생활이 마음에 들지 않으면 어떻게든 돌아올 방법이 있을 테니, 한번 가봐서 나쁠 게 뭐가 있겠냐는 이유였다. 켈빈은 한술 더 떠서 돌아오기를 원한다면 최선을 다해 돕겠다는 서약서까지 써주었다. 하지만 사실 나는 정말 돌아올 수 있는지를 걱정하는 건 아니었다. 내가 망설이는 건 스스로 뭘 원하는지 확신이 서지 않기 때문이었다."  (p.43 '루나' 중에서)

 

자신이 누구이고 어디에서 왔는지 몹시 궁금해하던 차에 켈빈이 나타났고, 자신과 함께 지구에 가자고 루나를 부추겼던 것이다. 삼무호에 남을 거이냐, 아니면 켈빈과 함께 지구에 갈 것이냐 결정을 하지 못하던 루나에게 해녀 중급 시험일이 다가왔다. 친구인 ;이오'와 함께 50m 명줄을 달고 앞으로 나아가던 도중 환영을 보게 되고 결국 '이오'는 환영에 이끌려 실종되고 만다. '삼무호'로 돌아온 루나와 우주 속으로 사라진 이오. 그리고 내일 지구를 향해 떠나게 되는 켈빈.

 

과거의 기억은 이따금 우리를 달무리처럼 유혹하기도 하고, 깊은 좌절의 순간을 딛고 일어섰던 용기의 발원지를 떠올리게도 한다. 그런 까닭에 과거는 미처 도래하지 않은 미래와 손잡기도 하고, 선택에 놓인 현재의 우리를 흔들기도 한다. 서윤빈 작가의 단편소설 '루나'가 독자의 마음을 사로잡는 까닭은 바로 그 지점이다. 과거(제주 해녀의 물질)의 기억이 미래(우주공간에서의 물질)와 맞닿아 있고, 바로 그 경계에 흔들리는 현재(선택을 하지 못하는 루나)가 존재한다는 구성. 그리고 현재의 우리는 언제나 삶이 내미는 시험지를 앞에 둔 채 고민에 고민을 거듭하고 있다. 거기에 루나가 있었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30)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장맛비가 물러간 하늘에는 어슬렁어슬렁 느린 걸음의 무더위가 지나고 있습니다. 여름 더위에 더해진 높은 습도와 탁한 공기로 인해 사람들이 체감하는 불쾌지수는 '측정 불가'에 이르렀는지도 모릅니다. 차도에 인접한 인도를 걷다 보면 차량 에어컨의 뜨거운 열기가 훅훅 느껴지는 듯합니다. 소나기라도 한바탕 쏟아졌으면, 하고 간절히 바라게 되는 것은 GG를 선언하기 직전의 얄팍한 술수일지도 모릅니다.


새 정부가 출범한 지 40여 일이 지나고 있습니다. 굥을 지지했던 사람들은 마치 사나흘이 흐른 듯 무척이나 짧게 느껴졌던 시간이었을 테지만, 그렇지 않은 사람들에게는 마치 40년쯤 흐른 듯한 지루하고 긴 시간이었을지도 모르겠습니다. 많은 게 바뀌었고, 그로 인해 국정의 이곳저곳이 아귀가 맞지 않아 덜컹대고 있습니다. 집권 초기임에도 불구하고 굥의 지지율은 나날이 떨어져 40%대를 유지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국민 여론이 정부로부터 멀어지고 있다는 이와 같은 확실한 증거에도 불구하고 대한민국 언론은 여전히 용비어천가에 몰두하고 있는 모양새입니다. 이제는 기레기라는 말은 하도 많이 들어서 그것이 곧 자신들의 정체성인 양 인식되는 지경에 이르렀는지도 모를 일이지요.

연금개혁을 공약으로 내세웠던 현 정부는 말도 많고 탈도 많은 개혁 대신 새로운 방법을 통해 대안을 모색하고 있다는 내용의 포스팅을 얼마 전에 올린 적이 있습니다만, 정부는 발암물질 범벅인 용산공원으로 노인분들을 유도하는 것만으로는 뭔가 부족하다고 느꼈나 봅니다. 그래서인지 부산을 찾았던 굥의 입을 통해 "지금 여기 원전 업계는 전시다. 탈원전이라는 폭탄이 터져 폐허가 된 전쟁터”라면서 “전시엔 안전을 중시하는 관료적인 사고는 버려야 한다”고 특히 강조했다고 합니다. 그렇지 않아도 원전 주변에 사는 사람들이 다른 지역의 주민들보다 암으로 인한 사망률이 높은 편인데 그 정도로는 부족하다는 것이지요. 정부가 앞장서서 노인분들을 빨리 보낼 수 있는 방법을 찾고 있는데 원전을 안전하게 관리하면 정부 정책에 역행하는 결과를 초래하는 것이니만큼 이를 그냥 지켜볼 수만은 없었던 것이지요. 마음 같아서는 한 대 쥐어박고 싶었겠지만 기자들이 보고 있으니 부드럽게 돌려서 말한 듯합니다.

이뿐만이 아니었습니다. 근로시간 유연화를 비롯한 노동개혁을 통해 근로자들을 과로와 스트레스로 몰아 적당히(?) 살고 일찍 보낼 수 있는 방법을 찾겠다고 합니다. 이러한 조치들에 더해 중대재해 처벌법마저 무력화시킬 수 있다면 정부는 굳이 연금개혁에 손을 댈 필요조차 없을 듯합니다. 초고령화 사회로 인한 국민연금의 부족 사태도, 노인 복지에 쏟아부어야 하는 재정 부족분도 일거에 해결할 수 있을 듯하니 말입니다. 재정 건전성을 위해 불철주야 노력하는 굥의 노력과 열정에 박수를 보내지 않을 수 없습니다. 그리고 그 비열하고 야비한 정책들에 혀를 내두를 지경입니다. 과연...



댓글(0) 먼댓글(0) 좋아요(23)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부와 성공의 인사이트, 유대인 탈무드 명언 - 5천 년 동안 그들은 어떻게 부와 성공을 얻었나
김태현 지음 / 리텍콘텐츠 / 2022년 6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어느 정도 나이가 들면 자신의 그릇에 맞는 부의 크기도 가늠하게 된다. 말하자면 주제 파악이랄까, 지나친 과대망상에서 벗어나 현실적으로 가능하다고 판단되는 목표를 설정하게 된다는 것이다. 이제 막 사회에 진출하는 사회 초년생들이 보기에는 답답하기 그지없는 일이지만 그렇게 여러 번 신중하게 두들겨 본 돌다리도 이따금 금이 가거나 허망하게 무너져 내리는 일을 겪어 본 사람이라면 자신의 배포는 더욱 쪼그라들 수밖에 없다. 사람을 믿는 일도, 앞으로의 경제 전망이나 전문가의 투자 전략도 도통 믿을 수 없는 것이 되고 만다.

 

"세상에는 본질이라는 것이 있다. 사람에게는 외모뿐만 아니라 내면이 있다. 우리가 좋은 관계를 맺고, 좋은 인연을 만들기 위해서는 보는 눈이 있어야 한다. 이때 보는 눈이란, 외모만이 아니라 사람의 내면을 꿰뚫어보는 눈이다. 겉은 소박할지라도 내면이 깊고 가치 있는 사람이 있고, 겉은 화려한데 아무런 도움이 되지 못하는 사람이 있기 마련이다. 전자인 사람들을 일찍이 알아보고 관계를 잘 꾸려 나가는 사람이 현명한 사람이다."  (p.42)

 

인문학자이자 지식큐레이터로 활동하고 있는 김태현 역시 부와 성공의 원천을 탈무드에서 찾고 있다. 노벨상이 수여되기 시작한 1901년부터 2021년까지 노벨상 수상자 943명 중 유대인은 210명(22%), 세계 인구의 0.2%에 불과한 유대 민족이 일궈낸 결과는 그저 놀라울 뿐이다. 더구나 인류사에 큰 획을 그은 아인슈타인, 프로이트, 마르크스를 비롯해 언론인 조지프 퓰리처, 투자가 조지 소로스, 페이스북 창업자 마크 저커버그, 구글 창업자 래리 페이지 등 전 세계를 쥐락펴락하는 인사 중 다수가 유대인이고 보면, 5000년간에 걸쳐 유대인을 지탱해 온 생활 규범이자 '유대인의 영혼'이라고 말할 수 있는 탈무드에서 우리들 개개인의 부와 성공에 대한 가르침을 배워 보는 게 바람직하다는 생각이 절로 드는 것이다.

 

"탈무드에서는 지식을 사람으로서 가져야 할 매우 중요한 덕목으로 꼽았다. 교육은 도덕과 지혜의 두 기반 위에 서지 않으면 안 된다. 도덕은 미덕을 받들기 위해서이고, 지혜는 남의 악덕에서 자기를 지키기 위해서이다. 도덕에만 중점을 두면 성인군자나 순교자밖에 나오지 않고, 지혜에만 중점을 두면 타산적인 이기주의자가 된다. 어느 한쪽에 치우치지 않고 도덕과 지혜의 두 기반 위에 교육이 있어야 좋은 열매를 거둘 수 있다."  (p.124)

 

김태현의 저서 ‘부와 성공의 인사이트, 유대인 탈무드 명언’은 유대인의 지혜를 담고 있는 탈무드와 전 세계 상위 1% 유대인 위인들의 명언 중 770개를 엄선했다. 저자는 “탈무드에는 인생의 순리를 따르면서도 가난을 싫어하고, 무엇보다 배움과 교육을 중시하는 유대인들의 인생철학이 잘 담겨 있다."고 하면서 “어려서부터 탈무드를 통해 자부심과 정체성을 교육받은 유대인들에게 탈무드는 단순한 책이 아니라 미래를 개척해 나가는 힘이다.”라는 말로 탈무드를 통한 부와 성공의 인사이트를 강조한다. 물론 우리나라에도 김만덕과 임상옥과 같은 두 거상이 있었고, 그들로부터 배워야 할 교훈들이 수없이 많겠지만 안타깝게도 상업을 천시했던 조선시대의 인물이었기에 사료로 남겨진 것은 그리 많지 않다.

 

"유대인들의 굴곡진 삶을 통한 통찰과 인생을 가로지르는 삶의 기술을『탈무드』로 가늠해 볼 수 있는데, 인생의 순리를 따르면서도 가난을 싫어하고, 무엇보다 배움과 교육을 중시하는 그들의 인생철학이 잘 담겨 있다. 특히 공동체 의식이 강한 유대인들은 민족의 생존을 위해 가난한 자와 고아와 과부를 돕는 자선과 구제를 당연한 의무이자 자신이 복을 받는 비결로 받아들였다"  (p.254 '나오며' 중에서)

 

코로나 팬데믹이라는 전 세계적 재앙 속에서 암울한 시간을 보냈던 지난 2년여의 기간 동안 우리나라는 소프트파워 강국으로 자리매김할 수 있었고, 방역 모범국으로 세계인의 부러움을 샀다. 그와 같은 성과로 인해 대한민국의 브랜드 가치는 한껏 높아진 게 사실이다. 그럼에도 우리는 OECD 국가 중 노인 자살률 1위, 뉴스에 대한 언론 신뢰도가 46개 국가 중 40위 등 부끄러운 기록들도 함께 갖고 있다. 이는 공동체 의식을 고취하지 않(을 뿐만 아니라 오히려 더 갈라놓기에 바쁜)고 극단적 갈등을 이용하려는 정치 세력들의 농간 때문이다. 유대인의 성공은 자선과 구제를 통한 강한 결속과 공동체 의식 덕분일지도 모른다. 그렇다면 우리에게는 정치인들에 의한 분열과 퇴보만 남았을 뿐이라는 결론에 이르게 된다. 가뜩이나 세계 경제가 어렵다. 통합과 협치를 위해 열과 성을 다하는 것은 기대도 하지 않지만 적어도 분열과 증오를 획책하는 일은 더는 없어야 하지 않을까. 법대로 하자는 말은 갈 데까지 가보자는 말이지 이쯤에서 멈추고 서로 화해하자는 뜻은 결코 아니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34)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인간이 신의 피조물이라고 가정할 때 우리는 대개 육체의 모든 기관의 나사가 단단히 혹은 적당히 조여진 채 태어나는 듯하다. 그것은 뇌회로라고 해서 다르지 않을 것이다. 그렇게 태어나 짧게는 십수 년을, 많게는 수십 년을 살았던 사람이 자신의 뇌회로에 조여져 있던 나사 한두 개쯤이 느슨해지거나 완전히 풀려 제 기능을 발휘하지 못한다고 가정해보자. 뇌회로가 단단히 조여진 채 태어난 사람, 이를테면 완벽주의자라 일컬어지는 사람들은 자신의 뇌회로가 느슨하게 풀린 혹은 한두 개쯤의 나사가 완전히 풀려 사라진 상태를 결코 받아들이지 못할 것이다. 태어난 후 지금까지 살아온 습관 탓이기도 하려니와 자신을 둘러싼 주변 사람들의 시선 탓이기도 하다.

 

그러나 살아가면서 우리는 우연한 사고나 피치 못할 외부 환경에 의해 자신의 뇌회로를 온전히 보전하지 못하는 경우를 숱하게 목격하게 된다. 어떤 이는 달라진 자신의 모습에 실망하여 의욕을 잃은 채 정신병의 굴레에 빠져 평생을 고통 속에서 살아가기도 하고, 어떤 이는 온전한 상태에서는 미처 알지 못했던 숨겨진 재능을 발견하여 전보다 나아진 제2의 생을 살아가기도 한다. 우리는 후자와 같은 사람들을 천재라 부르며 그와 같은 삶을 기적이라 일컫는다.

 

생각해 보면 천재란 결국 우리와 같은 보통 사람의 뇌회로에서 나사 한두 깨쯤 느슨하게 풀리거나 완전히 풀려 사라진 상태의 뇌회로를 가진 사람을 일컫는 말일지도 모른다. 우리의 삶이란 매일매일이 기적이며 계획하거나 의도한 대로 이루어지는 게 아니기 때문이다. 신의 시선은 인간의 시선이 향하는 곳에서 멀어져 있을 때가 많기 때문일지도 모른다. 그러므로 완벽주의자란 신의 의지에 따라 행동하는 자가 아니라 인간의 보편적 의지에 부합하는 인간일 뿐이라고 해야 할 것이다.

 

'임대주택에 못 사는 사람이 많아서 정신질환자들이 나온다.'라고 했던 여당의 어느 국회의원의 생각은 완전히 잘못된 것임을 말하고 싶어 이 글을 썼다. 신의 입장에서 보면 인간이 자신의 뇌회로를 태어날 당시의 모습 그대로 유지하는 것도 자랑이 될 수 없으며, 뇌회로 중 한두 개쯤 나사가 풀려 느슨해지거나 완전히 풀려버렸다고 할지라도 크게 실망하거나 좌절할 일도 아니기 때문이다. 후천적 천재가 될 수도 있기 때문이다. 정신질환자란 어쩌면 잠재적 천재일지도 모른다. 그런 말을 한 여당의 국회의원은 다만 흔하디 흔한 보통의 인간일 뿐이다. 차별금지법에 반대하는 인간들은 오로지 인간의 보편적 이기심에 기대어 살아가는 사람들일 뿐이다. 그들이 때로는 자신의 이기심을 신의 의지인 양 선전하곤 한다. 소가 웃을 일이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34)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동물농장
조지 오웰 지음, 임병윤 옮김 / (주)태일소담출판사 / 2022년 5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그렇다. 확실한 것은 소설에 등장하는 인물의 대다수가 동물이라는 점이다. 말하자면 우화라고 할 수 있는 이 소설이 전 세계의 독자들에게 찬사를 받고, 출간된 지 수십 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스테디셀러로서 굳건히 자리매김하는 데는 '조지 오웰'이라는 저자의 명성 하나만으로는 부족했으리라. 그보다는 오히려 권력과 인간 속성에 대한 저자의 철저한 탐구가 세월이 흐른 지금까지도 독자들의 감탄과 공감을 지속적으로 불러일으키고 있을 뿐이라는 해석이 더 설득력이 있을 터이다. 권력지향적인 인간의 기본적인 욕구는 국가 제도가 지속하는 한 영원히 사라지지 않고 이어질 테니까 말이다.

 

나는 사실 조지 오웰의 소설보다는 르포 작품에 더 매력을 느끼는 독자 중 한 사람이다. 현장과 체험을 바탕으로 쓴 그의 탁월한 작품들은 화려한 문체와 더불어 날카로운 문제의식, 그리고 체험과 검증에서 비롯된 현실 감각 등은 독자로 하여금 르포란 이런 것이다 하는 자각을 심어주기에 충분하다. 그렇다고 르포에 비해 그의 소설 작품들이 격이 떨어진다거나 상대적으로 빈약하다는 얘기는 아니다. 주관적인 느낌상 그의 르포 작품이 더 좋다고 말할 뿐이다. 어떻게 보면 <위건 부두로 가는 길>과 같은 탁월한 르포 작품이 있었기에 <동물농장>과 같은 완성체의 소설이 존재할 수 있었겠지만 말이다.

 

"그리고 동무들이여, 절대로 이런 결심이 흔들려서는 안 된다는 것입니다. 어떤 말에도 현혹되어서는 안 됩니다. 인간과 동물들이 서로 같은 이해관계를 가지고 있으며, 인간의 번영이 곧 동물들의 번영을 가져다준다는 주장에 절대로 귀 기울이지 마십시오. 모두가 거짓말입니다. 인간은 자기 자신 외에는 어떤 생물의 이익에도 관심을 갖지 않습니다. 그래서 우리 동물들은 모두 일치단결하여 철저한 동지애를 가지고 인간과 투쟁해야 합니다. 모든 인간은 적이고, 모든 동물은 우리의 동지들입니다."  (p.33)

 

소설은 매너 농장의 주인인 존스 씨가 술에 취해 곯아떨어지는 장면으로 시작된다. 동물들은 결국 주인인 존스 씨를 몰아내고 동물들의 세상인 동물농장을 만든다. 여기에서 시사하는 것처럼 지도자의 지나친 음주는 항상 문제가 된다. 그래서인지 고인이 되신 노무현 대통령은 애주가였음에도 불구하고 대통령 취임과 함께 술을 끊었다고 전해진다. 대통령이 술에 취해 온전한 정신이 아니라면 대통령의 궐위 상태와 진배없기 때문이란다. 그럼에도 현재의 대통령은 취임한 지 한 달도 지나지 않아 술에 취해 꾸알라가 된 모습을 언론에 노출시켰다. 창피도 이런 창피가 있을 수 없다. 게다가 휴전 상태에 있는 국가의 대통령이...

 

"매너 농장의 존스 씨는 밤이 깊어지자 닭장 열쇠를 채우기는 했는데, 술에 너무 취한 나머지 문을 닫는 것을 그만 잊어버리고 말았다. 이리저리 휘청거리는 둥그런 등불 빛을 앞세우고 비틀거리면서 뜰을 가로질러 가서는, 뒷문에다 장화를 휙 차 버리고 주방으로 들어가 술통에서 맥주 한 잔을 따라 마지막으로 들이켜고 난 후에야, 한참 코를 골며 곯아떨어져 있는 존스 부인 옆의 침대 위로 기어 올라갔다."  (p.25)

 

주인인 존스 씨를 몰아낸 동물들은 글을 읽을 수 있는 동물들인 나폴레옹(돼지), 스노우볼(돼지), 스퀼러(돼지)의 지도 아래 동물농장의 7계명을 만들고 모든 동물들을 평등하게 살게 하는 데 뜻을 모은다. 그러나 각종 사건들로 인해 동물들 사이에 권력투쟁이 발생하고, 결국 나폴레옹(돼지)이 무력으로 동물농장을 지배하게 된다. 나폴레옹은 동물들을 독재와 공포정치로 통솔한다. 이러는 과정에서 동물들 사회에서도 계급과 서열이 생겨나고, 급기야 나폴레옹은 인간처럼 2발로 걸어다니며 채찍을 휘두르기에 이른다.

 

"그리고『동물농장』에서 오웰은, 다음번의 선거가 빠짐없이 다가오듯이 늘 새롭게 나타나기 마련인 정치적인 폭력과 그에 대한 공포는 우리들 스스로에게 그 책임이 있다는 교훈을 남기고 있다."  (p.19 '러셀 베이커(Russell Baker)의 서문' 중에서)

 

유행이 끝없이 반복되는 것처럼 정치적 유형도 되풀이되는 듯 보인다. 군부 독재가 사라진 대한민국은 자유민주주의가 채 자리를 잡기도 전에 독재 시대에 대한 향수가 불꽃처럼 타올랐고, 급기야 검찰 권력에 의한 독재가 시작된 느낌이다. 과거의 교훈을 쉽게 망각하는 인간의 철없음, 혹은 타인의 감언이설에 쉽게 현혹되는 대중의 얕은 지조에 의해 역사는 비슷한 과오를 끝없이 양산한다. 대중은 술에 취해 자신의 임무를 망각하는 존스 씨를 자신의 지도자로 선출하고야 만다. 오늘도 그리고 어쩌면 내일도...

 


댓글(0) 먼댓글(0) 좋아요(35)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