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남자, 그 여자의 부엌 - 부엌에서 마주한 사랑과 이별
오다이라 가즈에 지음, 김단비 옮김 / 앨리스 / 2018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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좋은 책이란 소재의 적합성이 아니라 작가 개인의 역량에 달려 있다는 걸 새삼 깨닫는다. 오다이라 가즈에가 쓴 <그 남자, 그 여자의 부엌>을 읽으면서 특별하지도 않은 그 사실이 가슴을 파고들었다. 작가는 평범하기 짝이 없는 부엌을 소재로 인생의 희로애락과 삶의 의미를 자연스레 끄집어내고 있었다. 부엌에 대한 취재라고 한다면 우리는 으레 독특한 취향의 부엌 인테리어나 남들은 모르는 요리 비법 몇 가지를 떠올릴지도 모른다. 나도 그랬다. 부엌이라는 공간에서 드러나는 안주인의 취향과 부엌을 배경으로 찍은 행복한 가족사진이 다이겠거니 생각했는데 나의 예측은 보기 좋게 빗나갔다.

 

책의 분위기는 군더더기 없이 매끈하고 자연스러웠다. 어느 것 하나 도드라지지 않고 물 흐르듯 자연스러운 분위기를 연출하기 위해서 작가는 많은 노력과 시간을 투자했을 터였다. 어쩌면 삶의 곁다리가 될 수도 있는 부엌 인테리어와 요리 비법에 집중하지 않고 부엌이라는 공간에 묻은 시간의 흔적과 그곳에서 살아가는 사람들을 꼭 닮은 부엌의 형태와 기능에 집중함으로써 집주인의 삶과 인생관을 알 수 있도록 한다.

 

"잡지에 실리는 근사한 부엌에서는 웃음과 단란함과 맛있는 음식이 그려진다. 그러나 살다보면 맛있는 음식을 만들 기분이나 몸 상태가 아닐 때도 있다. 그곳에는 뜻대로 되지 않는 사정과 이야기가 있다. 내가 보아온 바로는 어떤 부엌에나 아주 약간의 애절함과 애달픔이 섞여 있다. 생활이란 그런 것이다." (p.7)

 

2013년 1월부터 지금까지 매주 '아사히신문' 웹진 '&w'에 도쿄에서 생활하는 평범한 사람들의 부엌을 찾아가 생활감 가득한 풍경과 일상의 이야기를 연재해오고 있다는 작가는 <그 남자, 그 여자의 부엌>에서  다양한 연령대의 사람들을 내세우고 있다. 55세의 1인 가구 여성을 비롯하여 21세의 아들과 함께 사는 46세의 여성 회사원, 63세의 아내와 함께 사는 73세의 남편, 물담배가게를 운영하는 38세의 독신 남성, 13세의 딸과 49세의 프리랜스 여성 편집자, 남편과 사별하고 홀로 생활하고 있는 92세의 할머니 등 책에 등장하는 사람들은 연령도, 직업도, 심지어 성적 취향도 제각각이다. 그러나 그들에게 공통점이 있다면 자신뿐만 아니라 함께 살고 있는 사람들을 끔찍이 사랑한다는 점이다.

 

"그날그날의 작은 일상을 야무지게 살아간다. 밥을 안치고, 국물을 내고, 된장국을 끓인다. 병원에 가서 특별한 치료를 받거나, 돈을 들여 답답한 마음을 풀러 여행을 가거나, 어려운 책을 읽지 않아도, 사람은 자신의 힘으로 자신을, 마음을 회복할 수 있다. 부엌에 서면서 그녀는 처음으로 자신과 마주하고 잃어버린 시간과 대치했다. 그리고 지나간 날보다 앞으로 살아갈 시간을 소중히 여겨야 한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부엌은 그녀에게 상처 입은 마음을 고치는 치료실이기도 했던 모양이다." (p89)

 

자신의 삶의 형태가 세월에 따라 변해가는 것처럼 가족의 삶을 지탱하는 부엌도 그 구성원의 변화를 고스란히 반영하게 마련이다. 남편과 이혼한 후 장성한 아들과 함께 살면서 크게 바뀌었을 수도 있고, 사랑하는 사람을 가족으로 맞아들이면서 달라졌을 수도 있고, 세상을 떠난 남편을 기리며 부엌 한켠에 전에는 없던 남편의 불단을 마련할 수도 있다. 작가의 눈에는 그 모든 것들이 삶을 구성하는 더없이 소중한 변화들로 비친다.

 

"나는 그 바지런한 모습에서 긍지와 자부심 같은 것을 느꼈다. 그것은 말로는 표현하기 어렵다. 세 자녀를 길러내고, 다섯 식구를 부엌에서 보살펴온 어머니만이 갖는 자신감. 자녀들은 저마다 독립하고, 다시 둘이 된 부부가 함께 느끼는 평화로운 성취감. 그렇게 말하면 그게 뭐 대단한 일이라고요, 하며 웃을 게 뻔하다. 하지만 이 다이닝 키친에는 내가 알고 싶은 인생의 힌트가 잔뜩 숨어 있다. 본인들이 눈치채지 못할 뿐이다. 대개 행복이라는 것은 그 한복판에서는 실감하기 어렵고, 지나고 나서야 그것이 행복이었음을 깨닫는 법이니까." (p.52)

 

책에 소개된 열아홉 곳의 부엌은 저마다의 비밀을 간직한 채 어떤 식으로든 삶을 유지하도록 하는 생명의 원동력인 동시에 가장 상처 받기 쉬운 내밀한 속살과도 같다. 작가는 그들의 속마음을 듣기 위해 해가 바뀌는 동안 몇 번이나 같은 집에 드나들었고 그러는 사이에 가족 구성원이 달라지기도 하고 삶의 애환이 부엌 곳곳에 스며들기도 했다. 그러나 삶이 계속되는 한 또다시 부엌에 서서 한 끼의 식사를 만들어야 한다는 점은 달라지지 않는다. 삶은 이처럼 끝도 없이 반복되는 지루한 연속일지도 모른다.

 

"거리를 걷다 뜻밖에 그 옛날 연인과 나란히 앉았던 카페나 약속 장소였던 서점 앞을 맞닥뜨려 가슴을 꽉 조여올 때가 있다. 끝났다고 믿었던 사랑의 상처가 미세하게 벌어져버리는 탓이다. 사람들의 부엌에도 닮은 구석이 있다. 연인의 잔향을 말끔히 지웠다고 생각했는데, 쓰다 만 발사믹 식초나 도시락통, 위스키병 하나에 문득 잊었던 쓰라림이 되살아난다." (p.263)

 

정말 그렇다. 사랑하던 사람이 떠나고 동그마니 홀로 남겨진 부엌은 왠지 모르게 쓸쓸하다. 과거의 기억들이 사용하던 수저에, 밥그릇에, 물컵에 지문처럼 남아 있다가 문득문득 사람들의 가슴을 한바탕 헤집어놓곤 한다. 그럼에도 우리가 두 주먹을 불끈 쥐고 앞으로 나아갈 결심을 할 수 있는 건 우리 곁에는 여전히 사랑하는 사람이 있기 때문이다. 과거와 현재가, 또는 미래가 서먹서먹한 얼굴로 조우하는 곳, 부엌은 그런 곳이다. 누군가 곁에 없어도 차 한 잔을 앞에 놓고 자신과 스스럼없이 대화할 수 있는 곳. 그러므로 부엌은 마법의 공간이자 위로의 공간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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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 세계가 하나의 지구촌으로 변모하고 있는 작금의 상황에서 한민족 운운하면 '옛날 사람' 취급을 당할 수도 있겠으나, 동양의 섬과 같은 이 작은 나라에서 세계를 놀라게 하는 커다란 성과를 이룰 때마다 같은 한민족이라는 자부심과 함께 나는 왠지 모르게 가슴 뿌듯한 감동도 함께 느끼는 것이다. BTS의 버터가 빌보드 메인 싱글 차트에서 9주간 1위를 달리며 올해 최장 1위 기록을 세웠을 때도, LG화학의 배터리가 전 세계 시장을 석권했다는 소식을 전해 들을 때도, 국내 조선업이 전 세계 선박 수주 1위를 달성했다는 뉴스를 들을 때도...

 

그러나 대한민국 국민과 민간기업의 탁월한 능력과 잠재력에도 불구하고 일본의 극우 세력과 맥을 같이 하는 일부 친일 세력의 준동을 목격할 때마다 저들은 도대체 어떤 사고방식의 소유자인가 내심 궁금해지는 것이다. 어제는 MBC의 PD수첩을 보면서 깊은 한숨을 몰아쉴 수밖에 없었다. '부당거래 - 국정원과 日 극우'라는 제목의 금회 방영분에서 국가정보원과 일본 극우단체의 은밀한 거래 정황을 단독 공개했던 것인데 이것이 사실이라면 대한민국의 최고 정보기관이자 정부의 세금으로 운영되는 국정원은 일본의 식민지 단체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었으며 이에 동조하는 몇몇 인사들 역시 제국주의 일본의 신민이라고 단정할 수밖에 없다. 방송에 따르면 이명박 시절의 국정원은 일본의 혐한단체에게 금품을 제공했던 것은 물론 북한에 대한 극비 정보를 제공하는가 하면 위안부 문제에 대한 합의 역시 국정원의 주도로 이루어졌다고 했다. 게다가 독도나 위안부 관련 인사가 일본을 방문할 시 일본 공안에게 그 정보를 알렸고 일본 공안은 그들의 극우 세력인 혐한단체에 정보를 제공했다고 하니 국정원은 과연 일본의 기관인지 대한민국의 기관인지...

 

일본의 신민임을 자랑스럽게 생각하는 대한민국의 몇몇 인사들의 인터뷰도 실렸는데 정말 한심하기 짝이 없었다. 그들은 과연 일본이 제공하는 돈 때문에 그런 행동을 하는 것인지 아니면 진심으로 일본의 신민이 되고자 하는 것인지 알다가도 모를 일이었다.

 

다가오는 일요일은 제76주년 광복절. 태극기를 흔들며 제 나라의 대통령만 욕을 할 게 아니라 일본의 혐한단체와 이에 동조하는 대한민국의 몇몇 일본 신민을 욕하고 비난하는 게 광복절을 기념하는 취지에도 맞고, 대한민국 국민임을 증명하는 길 아닌가. 왜 허구한 날 성조기와 관련도 없는 이스라엘 국기가 난무하는가. 하느님도 까불면 죽는다고 하는 놈들이 왜 일본의 총리에게는 까불면 죽는다는 말을 못 하나. 참으로 딱한 작자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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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가 쓴 것
조남주 지음 / 민음사 / 2021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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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재에서 과거로 가는 길은 언제나  외길이다. 현재에서 미래로 가는 길이 천 갈래 만 갈래 예측할 수 없는 수많은 가능성의 조합이라면 과거로 가는 길은 얼마나 소박하고 단출한가. 젊어서는 잘 가지 않던 그 길을 나이가 들면 우리는 다람쥐 쳇바퀴 돌듯 걷고 또 걸어서 생각의 문턱이 닰아 반질반질 윤이 날 때까지 반복한다. 조남주의 소설집 <우리가 쓴 것> 역시 과거로 향하는 그 길에서 건져 올린 작품이 대부분이다. 대부분의 소설이 과거 시점으로 다루어지고 그것을 소재로 창작되는 게 일반적이지만 작가도 이제 나이가 들었음이다. 물론 각각의 작품이 과거를 기억하는 방식이나 결은 서로 다를지언정 우리가 쓰고 기록한 것들은 이미 과거로 향하는 그 길의 어디쯤으로 확실한 좌표가 정해졌을 테니까 말이다.

 

"내가 살아온 길고 복잡한 시간과 지금 수행하고 있는 여러 역할과 글을 쓰는 사람이자 생활인으로서의 다양한 고민과 각각의 고민에서 시작된 모두 다른 글들이 간단하게 요약되어 함부로 호명되고 있었다. 납작한 것은 뭘까. 납작하게 만든다는 것은 뭘까. 이후로 한 글자도 쓸 수 없었다."  (p.75 '오기' 중에서)

 

<매화나무 아래>에서 남편의 장례가 끝나고 개명을 한 '나'는 큰언니인 금주가 지내는 치매 요양원에 들러 지난 시절을 추억한다. 디귿자 모양의 요양원은 가운데 쑥 들어간 부분에 작은 앞마당이 있고 그곳엔 매화나무 한그루가 서 있다. 김말녀에서 동주로 개명한 '나'는 폐암으로 사망한 둘째 언니 은주와 지난 시절의 추억들을 회상하며 큰언니와 함께 할 수 있는 길지 않은 시간을 아쉬워한다. 치매로 인해 시간의 경과를 잊은 큰언니. 죽음과 함께 찾아올 명멸의 시간들. '나'도 이제 그 평범한 진리를 깨닫는다. '꽃이 눈이고 눈이 꽃이다. 겨울이 봄이고 봄이 겨울이다.'

 

페미니즘 소설을 쓴 후 악플러들의 괴롭힘과 소설의 줄거리가 자신의 경험을 도용했다는 등의 시비에 휘말리면서 이후의 작품을 써나가는 데 대한 고통을 겪는 어느 소설가의 이야기를 쓴 <오기>는 어느 정도 자전적 성격이 엿보이는 작품이다. 또한 <미스김은 알고 있다>는 병원 홍보대행사에서 특별한 업무나 급여가 정해지지도 않은 채 회사의 전반적인 일을 두루 책임지던 미스 김이 쫓겨난 후 그 후임으로 입사한 '나'는 미스 김의 부재로 인해 곳곳에서 업무상 차질이 빚어지는 모습을 보며 망연자실하는 모습을 그리고 있다.

 

'이제라도 내 인생을 살고 싶다.'는 짧은 메모를 남긴 채 어느 날 홀연히 가출한 72세의 아버지로 인해 남겨진 가족들이 겪는 그 후의 일상을 다룬 <가출>은 아버지가 지니고 있는 '나'의 카드로 인해 희미한 연계가 이어지는 가운데 대책을 모의하기 위한 모임이 정기적으로 이어짐으로써 가족들의 연대는 이전보다 오히려 더 돈독해진 느낌이다. 대학 입학과 동시에 맺어진 인연으로 10년 넘게 사귄 연인에게 보내는 편지 형식으로 꾸며진 <현남 오빠에게>는 연인이자 후배로서 오랫동안 그에게 길들여진 자신을 뒤돌아보며 새로운 출발을 결심하는 주인공의 의지가 돋보이는 작품이다.

 

"오빠가 아무것도 할 줄 모르는 나를 돌봐줬던 게 아니라 나를 아무것도 할 줄 모르는 사람으로 만들었더라. 사람 하나 바보 만들어서 마음대로 휘두르니까 좋았니? 청혼해 줘서 고마워. 덕분에 이제라도 깨달았거든, 강현남, 이 개자식아!"  (p.190 '현남 오빠에게' 중에서)

 

남편이 죽은 후 시어머니와의 관계를 재정립한 채 서로를 의지하며 살아가는 내용을 그린 <오로라의 밤>은 다른 작품에 비해 인상 깊게 읽었던 작품이다. 오로라를 보고 싶다는 꿈을 이루기 위해 시어머니와 함께 캐나다로 향하는 내용을 담은 이 소설은 고부간의 이야기라기보다 차라리 함께 늙어가는 친구 혹은 자매의 이야기처럼 따스하다.

 

"사람이 할 수 없는 영역이 분명 있다. 그럼에도 할 수 있는 일은 기다리는 것, 준비하는 것, 완전히 절망해 버리지 않는 것, 실낱같은 운이 따라왔을 때 인정하고 감사하고 모두 내 노력인 듯 포장하지 않는 것."  (p.250 '오로라의 밤' 중에서)

 

"성실하고 꾸준하게 자기 일을 해 나가는 것. 그 평범한 일상이 삶을 버티게 해 준다는 것을 안다. 그것이 얼마나 중요하고 가치 있는지도, 누군가에게는 싸워 얻어내야 하는 어려운 일이라는 것도."  (p.258 '오로라의 밤' 중에서)

 

30여 년 전 지방의 소도시에서 가정 폭력 상담소를 열었던 엄마와 이를 보고 자랐던 '나'는 대학에 입학하면서부터 성폭력 관련 동아리를 만들어 활동했다. 이제는 중학생인 딸을 두고 있는 '나'는 주변의 엄마들과 적당히 어울리며 도움을 받고 있다. 그러던 어느 날 남학생들의 성희롱 문제를 고발한 딸로 인해 여성 문제에 대한 세대 간의 시각과 입장 차이를 자각하게 된다는 내용의 <여자아이는 자라서>. 마지막 작품인 <첫사랑 2020>은 코로나19의 확산으로 길어진 비대면 수업과 직업에 따른 가구 소득의 차이로 인한 고민과 갈등을 섬세하게 그렸다. 서연과 승민의 달콤 쌉싸름한 첫사랑을 통해 코로나 정국의 고통과 현실을 들여다보는 작품이다.

 

80세 노인부터 13세 초등학생까지 다양한 나이대의 여성들을 주인공으로 삼아 다양한 서사를 선보이는 소설집 <우리가 쓴 것>에서 작가는 유독 과거로 향하는 그들의 기억에 천착하고 있다. 그들 중에는 우리의 경험 어느 한 귀퉁이에서 찾을 수 있는 보편적인 것들일 수도 있고, 코로나라는 특수한 환경에서 겪는 이질적인 현실일 수도 있다. 그러나 우리는 좋든 싫든 자신의 경험을 다독이면서, 자신의 과거와 친해지면서, 천천히 나이들 수밖에 없다. 그리고 우리가 여전히 쓰지 않은 것들에 작은 희망을 걸 수밖에 없다. 그것이 우리가 살아가는 보편적인 삶이라는 걸 작가는 말하려 했는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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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다 보면 '참 다행이야!'라고 생각되는 몇몇 순간들을 우연처럼 만나게 된다. 삶에서 그런 우연마저 없다면 인생은 참으로 감당하기 벅찬 어떤 것으로 인식될지도 모른다. 가뭄의 단비처럼, 삶을 풍요롭게 하는 깜짝 선물처럼 우리를 미소 짓게 하는 그런 우연들은 예고도 없이 찾아오곤 한다. 기대하지 않았던 어떤 순간에 조금쯤 힘이 되었으면 좋겠다는 하느님의 응원이 우리에게 배달된 것처럼...

 

어제는 잔여백신 예약을 통해 코로나19 백신 1차 접종을 했다. 약간의 긴장과 두려움을 안고 방문했던 병원. 접종은 빠르게 진행되었고, 나는 이렇다 할 느낌도 없이 얼떨떨한 기분으로 병원을 나왔다. 미리 준비해둔 타이레놀 한 알을 먹었고, 나른해진 기분으로 침대에 누워 비발디의 사계를 들었다. 왠지 모르게 머릿속이 텅 빈 느낌도 들고, 깊은 동굴에서 울려 퍼지는 낮은 음의 메아리가 내 머릿속에서 들려오는 듯도 했다. 한두 시간 까무룩 잠이 들었었나 보다. 특별하지 않은 저녁을 먹었고, 몸에는 별 이상이 느껴지지 않았다. 김연수의 소설 <일곱 해의 마지막>을 읽었지만 접종 후에 들었던 멍한 느낌 탓인지 좀체 집중이 되지 않았다.

 

선거도 치르기 전에 대통령은 이미 떼어 놓은 당상인 것처럼 거만하게 굴던 윤 전 검찰총장의 기세가 크게 꺾인 듯하다. 빈 수레가 요란하다는 말을 실감하게 되는 요즘, 그의 지지율은 한낱 허세에 불과했을지도 모른다. "후쿠시마 원전이 폭발한 게 아니다. 지진하고 해일이 있어서 피해가 컸지만 원전 자체가 붕괴된 것은 아니다. 그러니까 방사능 유출은 기본적으로 안됐다"라고 말했던 바와 같이 일본 극우적 사고방식이 그의 정체성일지도 모르지만, 근본적으로 대통령으로서의 재목은 아니었던 게 분명하다. 그나마 선거가 한참 남은 지금 시점에서 밝혀진 게 다행이라면 다행이겠다.

 

최 전 감사원장의 태도는 더욱 가관이다. 내가 어렸을 적만 하더라도 학교에서는 '국민교육헌장'을 외우게 하고, 매주 월요일 아침의 전체 조회 시간에는 애국가를 4절까지 불렀으며, 국기 게양식이나 하강식을 알리는 애국가가 울려 퍼지면 하던 일을 멈추고 부동자세로 서서 국기를 향해 경례를 해야만 했었다. 그들이 말하는 자유는 자신들이 만든 시스템 내에서의 자유인 동시에 그들이 말하는 공정은 자신들이 출제한 시험 문제를 얼마나 잘 맞히는가에 대한 잣대인 셈이다. 한마디로 말해 우리가 국가 시스템이나 시험 문제는 잘 만들 테니 너희들은 관심 끊고 하던 일이나 해라, 하는 게 그들의 생각인 것이다. 그것이 곧 자유요, 공정이다. 그들의 권위에 도전하지 않는 것. 최 전 감사원장의 며느리들이 애국가를 4절까지 부르면서도 누구 한 사람 부당하다고 말하지 않는 게 공정이자 자유인 셈이다.

 

어떤 결과가 도출되기 전에 실체를 알 수 있다는 것은 참으로 다행스러운 일이다. 막상 일이 진행된 후에 돌이키기란 얼마나 어려운 것인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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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드나잇 라이브러리
매트 헤이그 지음, 노진선 옮김 / 인플루엔셜(주) / 2021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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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쨌거나 소설은 다양한 삶의 풍경을 지면 위에 옮겨놓음으로써 해답이 없는 삶의 의미를 발견하려 애쓴다. 그러므로 책을 읽는 독자들은 자신이 읽는 소설을 지도 삼아 자신에게 맞는 존재의 이유를 찾아 떠나는 긴 여정을 시작하기도 한다. 그렇게 소설 읽기는 평생 동안 계속된다. 소설이 아니라면 결코 밟아볼 수 없는 타인의 영역을 원할 때면 언제든 무시로 드나들 수도 있으며, 이번 삶에서는 결코 내가 가볼 수 없는 길을 걷고 있는 다른 누군가의 삶을 통해 대리만족을 얻을 수도 있다. 어쩌면 우리는 자신이 선택하지 않았던 수많은 다른 삶을 소설 속에서 만나볼 수 있을지도 모른다.


정말 그런 소설이 있다. 매트 헤이그가 쓴 <미드나잇 라이브러리>는 자살을 결심한 주인공 노라를 통해 '완벽한 삶'이란 과연 무엇인지 책을 읽는 독자들에게 묻고 있다. 어머니의 죽음, 파혼, 해고, 반려묘 볼츠의 죽음 등 실망과 좌절감 속에서 자살을 결심한 노라. 그녀가 눈을 뜬 곳은 초록색 책들로 가득한 자정의 도서관이었다. 그 넓은 도서관을 안내하는 사서는 학창 시절 노라가 학교에서 아버지의 사망 소식을 듣고 너무도 큰 충격에 빠졌을 때 진심으로 위로해 준 학교 도서관의 사서 엘름 부인이었다. 서가에 가득한 책들은 모두 노라가 살았을지도 모르는 여러 삶들을 담고 있었다. 노라는 그렇게 자신이 선택하지 않았던, 이미 과거로 변한 후회의 순간들을 거슬러 올라가 다른 선택을 했던 삶을 살아본다. 가장 후회되는 순간을 기록한 <후회의 책>을 펼쳐서.


"이 도서관에 들어온 이후로 지금까지 노라가 선택했던 삶은 사실 모두 다른 사람의 꿈이었다. 결혼해서 펍을 운영하는 것은 댄의 꿈이었다. 오스트레일리아로 떠나는 것은 이지의 꿈이었고, 같이 가지 못한 후회는 자신에 대한 슬픔이라기보다 단짝에 대한 죄책감이었다. 올림픽 수영 메달리스트가 되는 것은 아빠의 꿈이었다. 노라가 어릴 때 북극에 관심이 있었고, 빙하학자가 되고 싶었던 건 사실이지만 그 꿈마저도 학교 도서관에서 엘름 부인과 나눈 대화에 상당한 영향을 받았다. 그리고 라비린스는 늘 오빠의 꿈이었다."  (p.276)


노라는 그렇게 이번 삶에서 선택하지 않았던 다양한 후회의 순간들과 만나고 다른 선택의 삶을 살아본다. 남자친구였던 댄과 결혼하여 시골에서 펍을 운영하며 살기도 하고, 절친이었던 이지와 함께 오스트레일리아로 떠나 모험적인 삶을 살아보기도 하고, 올림픽 수영 메달리스트가 되어 순회강연을 하며 화려한 삶을 살아보기도 하고, 빙하학자가 되어 북극을 탐험하기도 하고, 결성했던 음악 밴드의 성공으로 세계적인 스타가 된 삶을 살아보기도 하고, 동물 보호센터에서 일하며 틈틈이 포도밭을 돌보는 편안한 삶을 살기도 한다.


"겉보기에는 아주 흥미진진하거나 가치 있어 보이는 삶조차 결국에는 그런 기분이 들지 모른다. 실망과 단조로움과 마음의 상처와 경쟁만 한가득이고, 아름답고 경이로운 경험은 순간에 끝난다. 어쩌면 그것만이 중요한 의미인지 모른다. 세상이 세상이 되어 지켜보는 것."  (p.200)


그러나 노라는 자신이 선택하지 않고 후회했던 다른 삶에 안주하지 못하고 번번이 미드나잇 라이브러리로 돌아오곤 한다. 모든 게 완벽할 것 같았던 삶도 직접 살아보면 결코 그렇지 않았던 것이다. 이 삶은 이러해서, 저 삶은 저러해서 계속 살아갈 수 없었다.


"한 삶에만 갇혀 있는 동안에는 슬픔이나 비극 혹은 실패나 두려움이 그 삶을 산 결과라고 생각하기 쉽죠. 그런 것들은 단순히 삶의 부산물일 뿐인데 우리는 그게 특정한 방식으로 살았기 때문에 생겨났다고 생각해요. 하지만 슬픔이 없는 삶은 없다는 걸 이해하면 사는 게 훨씬 쉬워질 거예요. 슬픔은 본질적으로 행복의 일부라는 사실도요."  (p.258)


노라가 마지막으로 돌아왔을 때 엘름 부인은 말한다. 그녀가 여기 돌아온 건 죽고 싶었기 때문이 아니라 살고 싶었기 때문이라고. 이제 노라의 다양한 삶이 산재한 미드나잇 라이브러리는 무너지기 시작한다. 노라는 무너지는 미드나잇 라이브러리로부터 필사적으로 탈출한다. 노라는 엘름 부인으로부터 받은 만년필과 그녀의 미래를 기록할 백지의 책 한 권을 들고 죽음과 삶의 중간 지점인 미드나잇 라이브러리를 통과한다. 그녀는 살기로 결심한 것이다.


"우리는 한 사람이기만 하면 된다. 한 존재만 느끼면 된다. 모든 것이 되기 위해 모든 일을 할 필요는 없다. 왜냐하면 우리는 이미 무한이기 때문이다. 살아 있는 동안 우리는 늘 다양한 가능성의 미래를 품고 있다. 그러니 우리가 존재하는 세상 속에 있는 사람들에게 친절하자. 가끔 서 있는 곳에서 하늘을 올려다보자. 어느 세상에 서 있든지 간에 머리 위 하늘은 끝없이 펼쳐져 있을 테니까."  (p.392)


모든 삶에는 부산물처럼 온갖 후회가 뒤따르게 마련이다. 일말의 후회도 없는 완벽한 선택이란 있을 수 없다. 삶은 그렇게 불완전한 선택의 연속이자 예측할 수 없는 우연의 결합이다. 그러므로 우리의 삶은 뒤뚱뒤뚱 불안할 수밖에 없다. 그러나 거꾸로 생각해보면 알 수 없는 게 우리의 삶이기에 한번 최선을 다해 살아볼 가치가 있는 게 아닐까. 매번 중심을 잃고 뒤뚱뒤뚱 불안해보일 수는 있지만 금세 자리를 잡고 오뚝이처럼 다시 일어설 수 있다는 걸 알기에 우리는 미래를 향해 꿋꿋이 나아갈 수 있다. '할 수 있어. 잘될 거야.' 마음속으로 다독이면서... 삶을 살아간다는 건 자신의 미래를 몸으로 읽어가는 과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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