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머니를 보내며

 

세상으로부터

한 사람을 보내는 게

어찌

쉽기만 하랴

 

하늘도 울고, 땅도 울고

온 세상이 슬픔에 겨워 하루 반나절을 보낼지라도

한 뼘 마음속 깊은 슬픔은 끝내 헤아릴 길 없어

 

나는 핏발 선 눈동자를 거울에 비춰보며

고아로 남은 스스로를 위로하다

무시로 터지는 울음.

 

어머니의 사망 소식을 들었던 게 지난 월요일. 급작스러운 비보에 나는 그만 정신을 놓았고, 가까스로 정신을 차려 서울로 향하던 길. 퇴근 차량에 밀려 마냥 더디기만 하던 나의 차는 그야말로 애물단지. 길가에 차를 놓고 달음박질이라도 치고 싶었던, 영원과도 같았던 그 순간. 세상은 그렇게 누군가의 빈 자리를 잊은 채 무심히 흘러갔고, 나는 머리가 희끗희끗한 누이 형제들과 검은 상복을 입고 제단 앞에 섰다. 산 사람은 산 자의 법을 따르고, 망자는 또 망자의 법을 따르는 게 세상 이치라지만 나는 반나절도 지나지 않아 죄스러운 허기를 느낀다.

 

 

소식을 듣고 달려와 준 많은 지인들과 일가친척들. 어머니는 이제 아무리 기다려도 양이 줄지 않는 한 끼 젯밥을 드시는 처지가 되어 목소리도 들리지 않는 메아리로 훈계하신다. '잘 살아라! 자식들 잘 키워라!' 사랑하던 당신의 손자는 어제 연세대 합격 소식을 전하는데, 미소로 화답해줄 당신의 모습은 영정 사진으로만 남아 산 자의 울음소리가 끝내 합창으로 번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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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레이야 2021-11-20 15:54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꼼쥐님 어머님 영원히 보내드렸군요. 고인의 명복을 빌어드립니다. 따님 합격이 위로가 또 되었으리라 믿어요. 울집 딸들과 동문이네요.
한 사람이 하늘 아래 실제 있고 없고의 차이는 크지요. 시간이 조금 다독거려 줄 거라 믿어요.

꼼쥐 2021-11-27 16:16   좋아요 0 | URL
산 사람은 또 살아야 하는 까닭에 시간이 지나면 또 살게 마련이지만 그 터널을 빠져나가는 시간이 영원처럼 길게만 느껴집니다. 가슴이 저릿저릿 아파오기도 하고 말이죠.

scott 2021-11-20 16:15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꼼쥐님 어머님의 명복을 빕니다
아이에게 합격의 선물을 주신것 같습니다.
생명이 지고 난 자리위에 화알짝 피어오른 꽃봉오리 처럼
고인의 명복을 빌고
합격 진심으로 축하 합니다.

꼼쥐 2021-11-27 16:18   좋아요 0 | URL
감사합니다.
남들보다 일찍 학교가 정해진 까닭인지 남는 시간이 무척이나 길게 느껴지는가 봅니다. 보다 못해 운전면허학원에 등록하여 다니고는 있는데 이 시간도 지나고 나면 아주 귀한 시간이었다는 걸 지나고 난 뒤에야 느끼겠지요.

2021-11-20 19:18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21-11-27 16:22   URL
비밀 댓글입니다.

기억의집 2021-11-20 20:2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삼가 고인의 명복을 빕니다. 저도 어머니가 이제는 너무 작아지셔서 볼 때마다 짠해지네요.

아드님 합격 축하드립니다!!

꼼쥐 2021-11-27 16:23   좋아요 0 | URL
당연한 일이지만 살아계실 때 조금 더 관심을 표하는 게 후회를 덜 남기는 일인 듯합니다. 축하 감사합니다.

오후즈음 2021-11-20 23:2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어머님의 명복을 빕니다. 이름 없는 어느 곳에어 분명 손자의 합격 소식을 기뻐하실거예요.

꼼쥐 2021-11-27 16:26   좋아요 0 | URL
저도 그러실 것이라 믿습니다. 수능이 코앞이라 아들에게는 할머니의 사망 소식도 전하지 못했었는데 삼오제가 있었던 금요일 저녁 아들은 최종 합격 소식을 알리더군요.
 
플라멩코 추는 남자 (벚꽃에디션) - 제11회 혼불문학상 수상작
허태연 지음 / 다산북스 / 2021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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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절


가까운 사람을 잃고 나면 그제야 보이는 게 관계의 중요성이다. 그럼에도 인간은 관계가 이어지는 한 그 소중함을 알지 못한다. 삶의 가치를 채 깨닫기도 전에 자신의 인생을 서둘러 마감하는 것처럼 말이다. 우리가 책을 읽고 누군가로부터 가르침을 청하게 되는 것도 따지고 보면 다 인간의 미련함을 조금이나마 희석해보려는 게 아닐까. 깨달음 이전에 후회와 아쉬움을 먼저 경험하는 보편적인 삶의 방식으로부터 조금이나마 벗어나고픈 삶의 욕구를 우리는 누구나 자신의 버킷리스트 속에 암묵적인 기록으로 남긴 채 살고 있으니까.

 

허태연 작가가 쓴 <플라멩코 추는 남자>는 관계의 중요성과 가족의 의마를 깨닫게 하는 멋진 소설이다. 물론 우리들 인생에서 새삼스러울 것도 없는 가치이기에 어느 철학서나 도덕 교과서에서 읽었더라면 시큰둥했을 내용이지만, 67세의 주인공 허남훈 씨의 인생을 통해 울고 웃고 아쉬워하면서 반나절 남짓의 시간을 보내다 보면 그의 이야기는 어느새 나의 이야기로 바뀌고, 바쁘다는 핑계로 손도 대지 않았던 지난날의 작은 꿈들이 새싹처럼 푸릇푸릇 되살아난다. 망각이 덮어버렸던 '나'라는 인간에 대해 새로운 숨을 불어넣고, 뜨거운 피가 돌게 하며, 하나하나의 세포에 새로운 감각을 느끼게 할 수 있는 건 한 권의 소설이 기능할 수 있는 최대치의 범위를 훌쩍 넘어선 것인지도 모른다. 어쩌면.

 

"수업이 끝난 다음 집으로 돌아온 남훈 씨는 곧바로 '청년일지'를 폈다. 그는 '과제3. 외국어 배우고 해외여행 하기'에 세모 표시를 하고 네 번째 과제를 들여다봤다. 거기에는 '과제4. 건강한 체력 기르기'라고 적혀 있었다. '그래, 춤을 배우는 거다! 바로 플라멩코를!' 남훈 씨는 다짐했다."  (p.61~p.62)

 

67세의 가장이자 굴착기 기사로 반평생을 살아온 허남훈 씨. 그는 이제 은퇴를 결심하고 자신의 생계수단이었던 중고 굴착기를 팔아 치우려 한다. 그에게는 마흔셋에 만나 결혼을 한 지금의 아내와 마흔넷의 늦은 나이에 얻은 딸이 있다. 지나친 음주로 죽다 살아난 경험이 있었던 그에게는 마흔한 살의 나이에 하숙집을 옮기며 쓰기 시작한 '청춘일지'가 있다. 말하자면 그는 '청춘일지'와 함께 새로운 삶을 살고자 다짐했던 것이다. 딸 선아를 얻은 후 일지의 작성은 뜸해졌지만 거기에는 남은 생애 꼭 이루고픈 목표들을 적어뒀다는 사실과 젊은 시절의 각오가 담겨 있다는 걸 잊지 않았다.

 

"다음 날 새벽, 남훈 씨는 작업자들과 커피를 마시고 잡풀이 제거된 공터를 10여 분 거닐었다. 큰 구덩이는 큰 구덩이대로 작은 구덩이는 작은 구덩이대로 울퉁불퉁 파여 있었다. 그러나 그것들은 남훈 씨에 의해 보기 좋게 메워질 터였다. '지나온 생의 잘못도 그렇게 메울 수 있으면 얼마나 좋을까.' 남훈 씨는 종이컵을 구겨 쥐었다."  (p.105~p.106)

 

매매에 실패한 남훈 씨는 결국 자신의 굴착기를 한 청년에게 임대하기에 이른다. 그렇게 은퇴 아닌 은퇴를 한 남훈 씨는 딸의 소개로 스페인어 강사인 카를로스를 만나고, 자신의 '청춘일지'에 있었던 '체력 기르기' 과제를 수행하기 위해 플라멩코 강습소에 들른다. 강사의 춤사위에서 뜨거운 열정을 체감한 남훈 씨는 악착같이 그것들을 배워나가지만 그 과정은 결코 녹록지 않았다.

 

코로나19 팬데믹과 뜻하지 않게 찾아온 건강 이상, 그리고 자신의 삶을 정리하기 위해 쓰기 시작한 자서전으로 인해 남훈 씨는 여러 우여곡절을 겪게 된다. 젊은 시절 자신과 이혼한 전처와 둘 사이에서 태어난 딸 보연에 대한 갈등으로 인해 남훈 씨는 여러 날 갈등한다. 아빠라는 이유로 어렸을 때 헤어진 딸을 찾는 게 과연 옳은 일인지... 남훈 씨는 자신이 만나고 있는 스페인어 강사 카를로스와 다른 여러 사람들의 조언을 통해 성인이 된 딸 보연을 만나보기로 결심한다.

 

"남훈 씨는 겁이 났다. 어둠 속에서 그는 보연을 다시 봤다. 보연은 더 이상 열일곱이 아니었다. 예전처럼 돈가스 한 번 사주고 돈 10만 원 쥐여 보낸 뒤 끊어낼 수 있는, 그런 인연이 아니었다. 그는 자신이 한가롭게 여유를 부렸단 걸 깨달았다. 버려둔 자식을 만난다는 건, 늙은이의 호기로 덤벼들 일이 절대 아니었다."  (p.192)

 

소설은 결국 다시 찾은 딸 보연과 남훈 씨의 스페인 여행으로 귀결되지만, 그 과정 역시 순탄한 것은 아니어서 독자들의 가슴을 조마조마하게 한다. 그리고 끊어졌던 부녀의 관계와 새롭게 시작하는 사랑의 일지에 대한 기대는 책을 내려놓는 그 순간까지 한껏 부풀게 한다. 우리는 종종 '다 끝났구나' 하고 생각한 순간에 새로운 삶을 살게 되며, 넘을 수 없는 현실의 높은 벽을 체감하는 순간 새로운 장이 열렸던 과거를 기억한다. 삶은 언제나 경험을 통한 후행성의 깨달음으로 인해 조금은 답답하고 미숙한 듯 보이는 게 사실이지만 때로는 우리 앞에 생각지도 못했던 기적을 펼쳐놓는 게 우리네 삶이기에 한 번쯤 살아볼 만한 것인지도 모른다.

 

책의 제목에 이끌려서 읽게 되었던 책. 우리는 때로 누군가에게 슬쩍 자신의 마음을 던져주기도 하고, 예전에 주었던 마음을 슬몃 거둬들이기도 하면서 세상과 연을 맺고 살아가지만 소중한 깨달음은 언제나 우리의 경험 뒤에 한발 늦게 찾아온다는 걸 명심하자. 어쩌면 그것은 당신이 세상을 떠난 후 누군가의 머릿속에 남는 어떤 기억이 당신의 삶에 대한 과분한 훈장일지도 모른다는 한 줄 논평이 소설의 주인공인 남훈 씨에게 주고픈 나의 메시지이리라. 그것은 또한 소설을 읽은 독자로서 내게 하는 큰 다짐이자 각오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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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말이 가까울수록 무겁고 칙칙한, 이를테면 아무런 특색이 없는 무채색의 날들이 부지런히 흘러간다. 나는 오늘도 일주일째 비가 오락가락하는 날씨에 대해 몇 마디 언짢은 말들을 내뱉었고, 그렇다고 스산한 날씨가 갑자기 맑고 온화한 날씨로 뒤바뀌지 않는다는 사실에 괜스레 머쓱해진 나는 잠시 머리를 긁적거렸다. 그렇게라도 나는 사그라드는 시간에 밑줄을 긋고 싶었는지도 모른다.

 

경찰로 근무하는 친구와의 점심 약속에 늦지 않으려고 서둘러 나갔는데 조금 늦고 말았다. 바쁘다는 친구를 억지로 불러낸 게 나였는데 약속시간마저 늦고 보니 아무리 친한 친구라지만 무람하여 저절로 고개가 숙여졌다. "웬 길이 낮에도 막혀?" 괜한 너스레를 떨면서 미안한 마음을 대신했다. 자리에 앉으면서, "뭐라도 시켜서 먼저 먹지 그랬어? 바쁘다는 놈이 기다리는 걸 보니 말짱 거짓말인 것 아냐?" 했더니 친구 왈, "나 정말 바빠. 빨리 먹고 들어가야 해." 하면서 표정마저 진지하게 바뀌고 말았다. 서둘러 점심을 먹고 밖으로 나온 우리는 세찬 바람에 쏟아지는 낙엽을 비처럼 맞으면서 잠시 걸었고, 친구가 근무하는 경찰서의 자판기에서 인스턴트커피를 뽑아 마셨다.

 


 

눈에 띄는 간판이 보여서 사진을 찍었다. 사장이 누구인지 배짱도 보통 배짱이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던 것이다. 요즘 같은 세상에 보수단체가 떼거리로 몰려와 행패라도 부리면 어쩌려고... 혹여라도 야당 후보가 대통령으로 당선이라도 된다면 쥐도 새도 모르게 사라지는 건 아닌지... 보는 내가 다 조마조마했다. 어찌어찌 또 일주일이 흘러 나는 또 주말 저녁을 맞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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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쩌면 동화는 어른을 위한 것 - 지친 너에게 권하는 동화속 명언 320가지
이서희 지음 / 리텍콘텐츠 / 2021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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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에 지치거나 힘든 시간이 지속될 때면 나도 모르게 찾게 되는 곳이 있다. 예컨대 고향이라든가, 부모님 혹은 위안이 되는 다른 가족의 품이다. 그리고 우리는 기억의 저편 너머로 유년 시절의 특정한 시간을 떠올리기도 한다. 마치 자석에 이끌려가는 쇠붙이처럼 말이다. 시간의 미끄럼틀이 처음 시작되는 저 높은 곳의 과거를 향해 치닫는 우리의 회귀 본능은 온 힘을 다해 물살을 가르는 연어의 몸짓과 비슷하다. 죽음에 이르는 시간의 지면에 닿을 때까지 우리는 자신이 지나쳐 온 시간의 미끄럼틀을 몇 번이나 더 거슬러 올라가려는지...


<어쩌면 동화는 어른을 위한 것>(이서희 지음, 리텍콘텐츠)은 읽으면 읽을수록 마음이 따뜻해지는 책이다. 다섯 개의 주제로 파트를 나누고, 각 파트에 다섯 권의 동화를 선정하여 각각의 동화에서 발췌한 문장을 위주로 독자로 하여금 자신이 지나온 과거의 기억을 되새기게 하는 책이기 때문이다. 각 파트의 주제를 살펴보면 PART 1 잃어버린 가치를 찾아..., PART 2 불안한 시간을 위하여..., PART 3 모험과 불확실함 속에서..., PART 4 특별한 세상을 마주하여..., PART 5 소중한 이들을 떠올리며...이고 각각의 주제에는 우리가 한번쯤 읽어보았거나 대강의 내용을 들어봤음직한 동화 다섯 편씩을 배치하고 있다.


"지친 일상 속에서, 막막한 삶의 가운데서, 친절이 무시당하는 부조리한 세상 속에서, 자신을 다독이고 타인을 위해 용기 내는 법을 잊어버린 당신에게 동화는 따뜻한 힘이 되어줄 수 있습니다. 오래도록 읽힌 고전부터 세상에 나온 지 얼마의 시간이 지나지 않은 이야기까지, 수많은 '당신'과 '우리'를 위한 아름다운 동화 25편을 이곳에 모아보았습니다. 주인공들과 함께하며 그들의 삶에 공감하고 또 안타까워하고, 기뻐하기도 하며 다양한 감정을 맛볼 수 있도록 그들의 여정을 정리하였습니다."  (p.5~p.6 'Prologue' 중에서)


삶이 힘겨울 때마다 반복하여 찾는 장소가 고향이라면, 삶이 고되고 막막하다고 느낄 때마다 하시라도 되돌아가 마음의 위안을 얻을 수 있는 시기는 동화에 푹 빠져 시간 가는 줄 모르던 그 시절이 아닐까 싶다. 어린 왕자, 크리스마스 캐럴, 나의 라임 오렌지 나무, 빨간 머리 앤, 톰 소여의 모험,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 오세암, 아름다운 아이, 버드나무에 부는 바람, 키다리 아저씨 등 지금 다시 읽어도 금세라도 그때의 감동이 되살아날 것만 같은 동화들. 시간은 하염없이 흘러 얼굴에는 온통 주름이 깊게 파였다 할지라도 순수했던 그 시절의 기억들을 어찌 다 잊을 수 있을까. 다만 그러들 줄 모르던 용기와 자신감만 조금씩 퇴색되어 갈 뿐...


"난 이 세상 모든 것에 마법이 있다고 믿어. 다만 우리한테 감각이 부족해서 그 마법을 발견하고 유용하게 쓰지 못하는 거야. 전기나 말이나 증기처럼."  (p.69 '비밀의 화원' 중에서)


찬바람이 불던 늦가을의 어느 날, 따뜻한 아랫목에 배를 깔고 엎드려 시간 가는 줄 모르고 읽었던 '톰 소여의 모험', 눈 내리던 어느 겨울날 쏟아지는 졸음을 쫓아가며 읽었던 '모모' 등 동화를 통해 삶의 방식들을 하나둘 깨쳐가던 내 지난날의 어린 시절. 지나간 시간을 되돌릴 수는 없지만 가진 것 없어도 마냥 행복했던 그 시절의 기억만으로도 나는 언제든 다시 용기를 낼 수 있고, 삭막한 인생길에서도 따뜻한 위안을 얻을 수 있다.


"좋은 성격은 추위나 서리에 상처받으며 풀이 죽기도 하지만 따뜻한 햇살을 만나면 쑥쑥 자랄 수 있어요. 그건 누구나 마찬가지일 거예요. 저는 역경과 슬픔과 좌절이 정신을 강하게 한다는 의견에 반대해요. 자신이 행복해야 비로소 상대에게도 친절을 베풀 수 있는 법이에요."  (p.208 '키다리 아저씨' 중에서)


오늘은 겨울의 초입이라는 입동. 그러나 날씨는 더없이 포근했고 가지 않은 가을의 풍취가 만연했다. 11월의 둘째 주 월요일인 내일은 비와 함께 오후 들어 북서쪽에서는 찬 공기가 내려오고 산지에는 대설특보가 내려질 가능성이 있다는 예보가 있다. 바야흐로 2021년의 끝자락에 들어선 것이다. 우리는 또 한 살 나이를 더하고, 기쁘고 행복한 추억과 더불어 슬프고 아쉬운 기억들을 혹은 화나고 절망적인 경험들을 시간의 미끄럼틀 위에 버려둔 채 미래를 향해 모험을 떠난다.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오직 서로를 위한 격려의 말일지도 모른다. 엘리너 H. 포터가 쓴 <폴리애나>에 나오는 말처럼.


"사람들에게 필요한 것은 격려이다."  (p.219 '폴리애나'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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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격이 대쪽 같았던 나의 할머니는 철없는 손자들의 실없는 소리도 너그럽게 봐주는 법이 없었다. 할머니가 있는 자리에서 형제들 간에 어쩌다 농담이라도 오갈라치면 "입이 하자는 대로 씨불이냐?' 하면서 호통을 치셨다. 그렇게 엄하기만 했던 할머니의 태도가 어린 손자들은 늘 불만이었다. 그와 같은 불만은 쌓이고 쌓여 급기야는 어머니에게 전달되는 경우도 더러 있었는데 그럴 때마다 어머니는 "그러게 누가 그런 실없는 소리를 하라던? 좀 조심하지 않고." 하는 식으로 우리의 잘못을 지적하곤 했다. 어머니로서 자식의 입장에서 편들어 감싸주거나 역성을 들어주는 일이 전혀 없었던 것이다.


청소년기를 거치는 동안에도 할머니에 대한 불만은 여전히 사라지지 않았다. 내가 할머니를 처음으로 이해하게 된 사건은 우연히 찾아왔다. 한글도 깨치지 못하셨던 할머니는 매년 연중행사처럼 빼놓지 않고 방문하던 사찰이 있었는데 어찌나 지극정성이셨던지 법문을 적은 종이를 손자들에게 읽어달라고 하는 것만으로도 꽤나 긴 법문을 통째로 외우실 정도였다. 나는 어쩌다 궁금해서 지나가는 말로 여쭈었던 적이 있다. "할머니, 절에 가면 뭘 비세요?" 했더니 즉시 답이 돌아왔다. "다른 건 없고 3일만 앓고 죽게 해 달라는 것과 손자들 잘 되게 해 달라는 게 다야." 하셨다. 나는 마치 망치로 뒤통수를 얻어맞은 듯한 충격을 받았다. 살가운 말이라고는 일체 꺼내는 법이 없으셨던 할머니. 손주들을 마냥 미워하시는 줄만 알았던 나의 할머니에게 있어 제1순위의 소원이 손자들 잘 되는 것이었다니... 할머니는 당신의 소원처럼 단 하루도 앓지 않고 심장마비로 돌아가셨다. 그 후로 나는 어떤 말이든 입 밖으로 내뱉을 때는 할머니를 생각하곤 한다. 입이 하자는 대로 씨불이지 않기 위해서.


입에서 나오는 대로 함부로 말한다는 의미의 사자성어는 흔히 '신구개하(信口開河) 또는 ‘신구자황(信口雌黃)’이라는 말을 쓴다. 주로 정치인에게 쓰이는 말이다. 최근에도 "식용 개는 따로 키우지 않느냐?"고 반문하던 어느 정치인이나 로봇의 복원력 실험을 하는 어느 정치인에 대해 감정이입 능력이 없다며 로봇 학대를 주장했던 어느 석사, 또는 '윤석열을 위해 '홍어준표' 씹다'는 등의 막말을 한 어느 교수 모두 그놈이 그놈이긴 하지만 그들의 공통점은 입이 하자는 대로 씨불인 '신구개하'의 인물들이란 점이다. 어쩌면 그들은 어려서부터 밥상머리 교육을 제대로 받지 못한 까닭에 나이가 들어서도 그 버릇이 부지불식간에 나오는지도 모른다. 자식 교육을 제대로 하지 못한 부모의 책임이라면 책임일 것이다. 그들의 인성이 나쁜 게 아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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