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요일 오전의 바깥공기를 체크하는 일은 휴일 일정에서 언제나 중요한 관심사 중 하나이다. 날아갈 듯 가벼운 꼬마가 엄마 아빠의 손을 잡고 뽀송뽀송 마른 보도 위를 사뿟사뿟 걷는 모습만 보아도 덩달아 기분이 좋아지기 때문이다. 가볍게 걷고 있는 사람들의 머리 위로 하얗게 부서지는 아침 햇살을 보고 있노라면 나도 서둘러 아침 산책을 나가야 할 것 같아 마음이 급해지곤 한다. 이와는 반대로 아스팔트가 온통 축축한 물기로 젖어 있고, 비가 쏟아질 듯 아침부터 하늘이 끄물끄물하는 날에는 뭉그적뭉그적 게으름을 피우게 마련이다. 세수도 한껏 미룬 채 뒹굴거리다 보면 시간이 훌쩍 지난 사실을 발견하고는 깜짝 놀라게 된다. 그런 날에는 이상하게도 쇼팽의 녹턴에 마음이 끌린다. 셰레시 레죄의 '글루미 선데이'를 듣지 않는 것만으로도 꽤나 대견하다 생각하면서.


오늘 아침은 어제 내린 비와 진눈깨비로 도로는 흥건하게 젖어 있었다. 하늘은 여전히 어두웠고, 사람들의 발걸음도 무거웠다. 영하의 날씨라고는 해도 추위는 잘 느껴지지 않았다. 내 주위에 게으름의 더께가 덕지덕지 묻어 있었던 까닭인지도 모른다. 며칠 전부터 대만 작가 천쉐가 쓴 <오직 쓰기 위하여>를 읽고 있다. 부끄러운 말이지만 이 책을 읽기 전까지 나는 '천쉐'라는 작가를 알지 못했다. 대만에서는 잘 알려진 작가라는데 말이다. 자신의 삶을 간략하게 써 내려간 듯한 이 산문집을 읽으면서 나는 작가의 매력에 흠뻑 빠져들었다.


"잘 쓰는 것보다 훨씬 중요한 것은 계속 쓰는 것이다. 그래야만 내 마음이 진정으로 원하는 바에 다가갈 수 있다. 완벽주의를 추구하며 꾸무럭거리거나 펜을 놓지 말자. 오로지 글로 써낸 원고만이 나의 것이다. 끊임없이 써나가야만 글쓰기가 우리 삶의 핵심이 된다. 계속해서 쓸 능력이 있어야만 글쓰기가 우리의 전문이 된다. 쉬지 않고 써야만 우리는 비로소 결승점에 이를 수 있다."  (p.35)


50대 중반의 작가는 글쓰기에 진심인 듯했다. 그 열정과 치열함이 부러웠다. 내가 블로그를 처음 시작했을 때 나는 내가 머리로 생각했던 글의 내용과 막상 글로 써서 완성했을 때의 글의 내용이 천양지차로 다르다는 사실에 절망했었다. '어떻게 이럴 수가 있지? 내가 의도했던 주제나 글의 내용은 전혀 이게 아닌데... 내가 모르는 다른 사람이 몰래 와서 나의 글을 대신 썼던 것도 아닌데 어쩜 이럴 수가...' 나의 생각과 글 사이에 존재하는 크나큰 차이를 10년이 지난 지금도 나는 여전히 극복하지 못하고 있다. 글쓰기에 재능이 없는 탓일 테지만 열정과 노력이 부족한 게 근본 원인인 듯하다. 작가가 되겠다는 생각이 전혀 없으니 노력할 이유도 찾기 어렵지만 말이다.


여린 겨울 햇살이 자맥질하듯 빼꼼히 고개를 내밀었다가 금세 사라지곤 한다. 내게 허용된 게으름은 이 정도인가 보다. 오후에 약속이 한 건 있으니 서두르지 않으면 그마저도 취소해야 할지 모른다. 그건 예의가 아닐 테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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달콤한 빙산 - 김상미의 감성엽서
김상미 지음 / 나무발전소 / 2025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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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인의 산문집을 읽고 있노라면 가슴 한켠에선 언제나 미안한 마음이 먼저 들곤 한다. 시인이 시를 써야지 한가하게 산문을 쓰고 있는 현실이 슬프고, 그렇게 나온 산문집을 아무런 죄책감 없이 선뜻 읽고 있는 내가 밉고 그렇다. 이름도 알려지지 않았던 서정윤 시인의 시 '홀로서기'가 시중에 혜성처럼 등장했을 때, 사람들은 다들 서정주 시인으로 잘못 안 채 시를 먼저 암송했었고, 낭랑한 음성의 성우나 어느 여배우가 읊었던 시낭송 테이프가 여느 대중가요 테이프만큼 인기가 있었던 시절, 약속이 있는 사람들의 손엔 으레 시집 한두 권쯤 모양새처럼 들리던 시절, 소설보다 시집이 더 잘 팔리던 그 시절을 살아보았던 나는 새로운 유행에 밀려 이제는 뒷방 노인네 신세가 된 어느 시인의 산문집을 읽으면서도 못내 미안하고, 부끄럽고, 끝내 죄스러운 마음이 들었던 것이다.


한때 누군가의 시낭송 테이프를 닳도록 들었던 나는 '시라는 건 다만 음표가 없는 노래로구나' 생각했었고, 그런 노래를 의미도 모른 채 부르고 또 불렀었다. 그 소리는 어스름에 묻혀 유령처럼 마을을 떠돌고, 가슴에는 어둑어둑 어둠이 짙어지는데 발길을 되돌려 집으로 향하지 못했던 나는 오래도록 산길을 거닐었었다. 그러나 시와 함께한 시간은 길지 않았다. 시와 멀어지는 명분은 언제나 시의 무용성과 독해의 어려움이었다. 그렇게 나를 합리화하면서 꾸역꾸역 나이만 먹어 왔다. 나는 어쩌면 시를 잃었던 그 시점부터 젊음의 낭만을 영영 잃어버렸는지도 모른다.


"어머니는 이 세상을 온전히 누리는 대신 그것을 모성이라는 햇빛 속에 집어넣어 우리가 필요로 할 때마다 비로, 눈으로, 따뜻한 햇살로 풀어놓으셨는데... 우리는 그것을 당연하다는 듯, 당연한 걸로만 알고 누려만 온 것이다. 어머니는 눈물로 그것을 경고하셨다. 나도 너와 똑같은 인간이며, 내 몸속에도 오성과 오감의 기차가 순환하고 있다고."  (p.38)


김상미 시인의 산문집 <달콤한 빙산>을 읽었던 것도 그런 까닭이다. 언어를 사랑했던 소녀는 31살의 늦은 나이에 고향인 부산을 떠나 서울에 정착하였다. 익명의 도시에서 시를 시작한 시인은 이제 60살이 훌쩍 넘어 늙은 시인이 되고 말았다. 열렬한 독서가이자 그림 애호가이며 음악과 자연을 사랑하는 독신의 시인은 봄·여름·가을·겨울의 4계절을 구성 순서로 삼아 자신의 생애를 솔직하게 기록하고 있다. 그럼에도 나는 시인의 솔직한 고백이 왠지 애잔하게 느껴져서 200여 쪽 남짓한 이 책을 다 읽는 데 꽤나 긴 시간을 들였었다. 아무것도 아닌 일에 찔끔 눈물을 흘리기도 하고, 때로는 감정이 격해져서 책을 덮어야만 했던 까닭이었다.


"그러니 내 몸이 기억하는 그대로 나는 자연스럽게, 이대로 계속 늙어가는 나를 정겹고 애틋한 마음으로 지켜봐도 되지 않을까. 그리스 옛 시인의 시구처럼 '몸이여, 기억하라'고 애태우지 않아도, 이 광활한 우주에서 한갓 모래알에 불과한 나, 그 몸속에 담긴 나의 흔적, 내 삶, 내가 온 힘을 기울여 살아온 그 흔적과 기억들이 이 우주보다 더 넓을지 우주엔 비교도 안 될 만큼 작고, 작고, 작을지는 아무도 모르는 일. 그 끝이 무엇이든 어디든 나는 지금까지 니체의 제자(?)답게 '아모르 파티(Amor farti)'로 일관되게 살아왔으니 내 몸이 나를 기억하는 그대로 내 노년 또한 소박하고 치열하게 평온하지 않을까."  (p.147)


본격적인 겨울이 다가오는 순간에도 우리는 미리 겨울을 준비하지 않았던 것처럼 현대인에게 시간은 그저 가벼이 흘러가는 것. 시간이 만들어 낸 주름도 간단한 수술로 제거할 수 있다고 믿는 까닭에 노년은 그저 가난한 누군가에게만 찾아가는 것일 뿐, 자신에게는 영원한 젊음 이후에 갑작스러운 죽음만 존재할 거라는 현대인의 허황된 꿈이 시로부터 우리를 멀게 만들었던 건 아닐까? 시는 자신의 삶과 운명을 사랑하는 천상의 목소리, 음표도 없이 부를 수 있는 그들 각자의 노래, 그리고 시작과 끝을 알려주는 예언서일 수 있다는 사실을 김상미 시인의 산문집으로부터 배운다. 우리가 미리 준비하지 않으면 아름다운 마무리는 쉽게 찾아오지 않는다는 것도.


"어머니가 돌아가시고, 나는 한동안 참 많이 아팠었다. 그때 쓴  어머니와 나」라는 시는 지금 읽어도 눈시울이 붉어진다. 그 시는 6시집에 넣을 생각이다. 그동안은 어머니를 잃은 후유증이 너무 커 문예지엔 발표했지만, 시집엔 넣기가 힘들었다. 그러나 이젠 그 후유증에서도 가벼워졌고, 어머니가 내 시의 스승인 것을 깨닫고 나니 "시는 내가 홀로 있는 방식"이라고 한 페르난두 페소아의 시구처럼 어머니도 내게 공책 두 권을 주시면서 그곳에 단어들을 채우게 함으로써 일찌감치 '내가 홀로 있는 방식'을 터득하게 하신 게 아니었을까, 그런 생각이 들었다."  (p.211)


겨울비가 지나간 하늘은 멀끔하게 갠 모습으로 우리를 맞고 있다. 시린 하늘을 배경으로 몇 잎 남지 않은 낙엽이 가늘게 떨고 있다. 우리도 역시 가늘게 떨고 있는 저 나뭇잎처럼 바투 잡은 운명의 끈을 놓칠세라 연신 가늘게 떨고 있는지도 모른다. 평일 내내 가슴 졸이던 새파란 긴장에서 풀려난 탓인지 주말을 맞는 사람들의 표정이 밝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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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국에는 그렇게 되리라는 것을 알고 있습니다. 독서란 본디 그런 것이지요. 아무리 반복하여 읽고 또 읽어본들, 읽었던 것을 되짚어 생각하고 유추해 보아도 글을 쓰기 전에 당신이 의도했던 바에 정확히 도달하지 못한다는 사실을 너무도 잘 알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독서란 글쓴이의 생각에 이르고자 할 것이 아니라(어쩌면 글쓴이와는 아무런 관련도 없이) 글을 읽음으로써 독자가 생각하는 방식이 예전과 달라지는 것을 꾀하는 일련의 행위를 일컫는 것일지도 모르겠습니다. 결국 독서란 이전과 달라진 방식으로 도출된 자신의 생각을 읽는 행위일 테지요.


이와 같은 오류는 현실에서 얼마든지 찾아볼 수 있지 않을까 싶습니다. 거리에서 '윤 어게인'을 외치는 사람들만 보아도 그렇습니다. 윤석열이 집권했던 지난 3년 동안 실제로 국정을 담당했던 사람이 어쩌면 그의 아내인 김건희였을지도 모른다는 추측이 특검의 수사나 돌아가는 주변 정황으로 볼 때 점점 사실처럼 굳어지고 있는 이 시점에서 윤석열을 추앙했던 세력들은 이제 '윤 어게인'을 외칠 것이 아니라 '김 어게인' 또는 '건희 어게인'을 외치는 게 옳을 듯싶은데, 그들은 여전히 '윤 어게인'을 외치고만 있습니다. 한심하고 미련한 행위이지요. 그와 같은 행위는 한마디로 자신들의 오류를 제대로 알고 있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술이나 먹고 사우나나 하던 윤석열은 지금처럼 감옥에 남겨 놓는다 하더라도 실질적인 국정 운영자였던 김건희가 돌아오기를 열망하는 게 거리에 나온 지지자들의 현실적인 선택일 텐데 그들은 그렇게 하지 않고 있는 것입니다. 현실을 직시하지 못하는 까닭이지요.


독서의 효용은 이렇듯 많은 이의 생각을 수용하거나 차용하려는 게 아니라 내가 아닌 다른 누군가의 글을 읽음으로써 내 생각의 틀을 바꾸고, 달라진 생각의 틀을 통하여 새롭게 도출된 나의 생각을 읽는 것이라 하겠습니다. 말하자면 나의 옛 생각을 버리고 새로워진 나의 생각을 읽는 게 진정한 독서라는 뜻이지요. 우리가 독서의 의미에 대한 대중의 오류를 바로잡는 것처럼 나는 '윤 어게인'을 주창하는 거리의 무법자들을 향해 그들의 오류를 정정해주고 싶었던 것입니다. 그들이 나의 의견을 받아들일지 그렇지 않을지는 차치하고서라도 말입니다.


현실에서 자신의 오류를 발견하기란 눈앞에 있는 사람의 생각을 표정만 보고 읽어내는 것만큼이나 어렵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내가 아닌 타인의 지적을 겸허히 수용할 필요가 있습니다. 그래야만 자신의 삶을 성장시킬 수 있습니다. 적어도 우리는 김건희의 지시를 받았던 박성재의 모습으로 평생을 살아서는 안 되지 않겠습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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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 뜨는 나라의 공장 - 개정판 무라카미 하루키 에세이 걸작선 (개정판)
무라카미 하루키 지음, 안자이 미즈마루 그림, 김난주 옮김 / 문학동네 / 2023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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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군가의 젊은 시절을 엿보는 것은 꽤나 흥미 있는 일이다. 물리적으로 시간을 거꾸로 되돌릴 수는 없지만, 그가 젊은 시절에 썼던 글이나 사진 등을 보면서 '아, 그때는 이런 생각을 하고 있었구나'라거나 '젊은 시절에 그는 이런 스타일의 옷을 입었었네' 하는 식의 감탄은 당사자가 어두운 골방에 갇혀 어쩌다 하게 되는 무익한 회상과는 차원이 다른 행위이기 때문이다. 가까운 지인 몇몇이 모여 앨범이나 일기장을 들춰보면서 하게 되는 농담 섞인 담소나 추억 되살리기는 일종의 작은 축제에 가깝다. 그런 의미에서 글을 쓰는 작가나 포토그래퍼는 무척이나 매력적인 직업일 수 있다. 물론 연극이나 영화를 하는 배우 역시 그에 못지않게 매력적이지만 말이다.


소설가 무라카미 하루키가 30대의 젊은 시절에 썼던 수필집 <해 뜨는 나라의 공장> 역시 그런 작품으로 읽기에는 안성맞춤이다. 70대 중후반의 나이가 된 작가를 마주하고 있는 독자가 시대를 거슬러 그가 30대에 했음직한 생각들을 가늠한다는 것은 매우 어려운 일이기 때문이다. 게다가 작가의 생각이 은밀하게 내재된 소설이 아닌, 작가의 생각이 직접적으로 드러나는 산문집이 존재한다는 건 작가를 사랑하는 독자의 입장에서는 행운에 가깝다고 말할 수 있다. 나는 하루키의 애독자 중 한 사람으로서 그가 쓴 작품 대부분을 읽어보았지만, 그럼에도 이따금 하루키의 문체가 그리워질 때가 있다. 그럴 때마다 나는 그가 쓴 소설보다는 에세이에 먼저 손이 가곤 한다. 독자의 생각을 방해하지 않는 쉽고 간결한 문체로, 독자와 일정한 거리를 유지하려는 듯한 그의 문장 스타일은 읽는 이로 하여금 '쉼'의 느낌을 강하게 자각하게 한다. 그래서인지 하루키의 에세이 한 권을 읽고 나면 왠지 모르게 머리가 맑아진 듯한 느낌을 받곤 한다.


"나는 여행을 떠날 때면 가급적 형편없는 차림을 하는데, 그래도 현지에 도착해서 보면 주위 사람들에 비해 상당히 반듯하게 차려입고 있는 듯한 느낌이 들어 황당하곤 한다. 그리고 반대로 일본에 돌아오면 주위의 모든 사람들이 너무나 단정하게 입고 잇는 것 같아서 또 한동안 안절부절못한다. 그런 일이 몇 번 거듭되는 사이, 나도 모르게 '아무려면 어때'의 숲속으로 끌려들어가고 만 듯하다."  (p.160)


알 만한 사람은 다 알고 있는 사실이지만 하루키는 소설 외에도 다양한 장르의 작품을 써왔다. 분류하자면 여행에세이나 가벼운 신변잡기를 다룬 경수필 외에도 르포르타주나 탐방기를 쓰기도 했다. 옴진리교 지하철 사린사건을 다룬 르포르타주 <언더그라운드>와 공장 탐방기 <해 뜨는 나라의 공장>가 대표적이다. 하루키의 공장 탐방기라니, 왜?라고 질문할 사람도 있을지 모르겠다. 소설을 쓰기 위해 공장을 취재할 수는 있지만, 일반인들이 관광이나 견학을 목적으로 하는 공장 방문을 하고 그곳에서 일하는 직원과의 일문일답을 했던 내용을 책으로 엮는다는 건 소설가가 하는 일상적인 취재 활동과는 격이 다르기 때문이다.


"그런데 내가 새삼 얘기하기는 좀 뭣하지만, 일본 사람들이란 정말 애처로울 정도로 열심히 일하는 인종이더군요. 잘하기도 할뿐더러 일 자체에서 즐거움과 철학과 긍지와 위로를 찾아내려고 애쓰기도 한다. 그게 옳은 일인지 아닌지는 물론 내가 알 수 없는 노릇이고, 그것이 앞으로 어떻게 변해갈지도 모른다. 하지만 그런 것을 차치하고 내가 지금 이렇게 원고를 쓰고 있는 동안에도 일본 각지의 공장에서 여러 사람들이 몸을 움직여 무수한 것들을 만들어내고 있다는 생각을 하면, 왠지 마음이 푸근해지고 용기가 생긴다."  (p.12~p.13 '서문' 중에서)


하루키가 방문하고자 했던 공장의 선택 기준은 조금 독특한 면이 있다. 서문에서도 밝히고 있지만 그 기준이 순전히 작가의 호기심에 의해 작성되었기 때문이다. 작가가 방문했었고, 이 책에서 다루고 있는 공장들의 면면을 살펴보면 인체모형 공장, 결혼식장, 지우개 공장, 낙농 공장, 콤데가르송 공장, 콤팩트디스크 공장, 아데랑스 공장 등으로 우리의 상식에서 상당히 벗어난 듯도 하고, 우리가 생각하는 공장 이미지와도 잘 부합되지 않는 측면이 있다. 그러나 작가는 지금 막 결혼식장을 벗어나는 신혼부부마저 공장에서 찍어낸 듯한 인상을 받았던 까닭에 '결혼식장'을 하나의 공장으로 인식한 것을 보면 작가의 시선이 남다르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일종의 공장인 결혼식장, 혹은 '결혼식장'이란 이름의 공장에서 사용하는 원료는 다름아닌 신랑 신부로 불리는 한 쌍의 남녀이며, 그 기계적 추진력은 전문적 노하우와 숙달된 서비스, 주된 부가가치는 감동(좀더 소극적으로 표현하면 정서의 고양), 그 수요를 뒷받침하는 것은 세상 일반의 '관례. 상식. 습관'이다. 그런 식으로 결혼식장에서는 오늘도 흉일만 아니면 한 회 또 한 회, '의식'이라는 이름의 휘황찬란한 상품이 생산되고 있다."  (p.52)


어떤 대상에 대한 애착을 표현하는 소위 '덕질'이라는 것이 문학계에서는 다소 수줍게 이루어지고 있는 듯하다. 물론 임경선 작가처럼 하루키를 흠모하는 까닭에 그가 살았던 일본의 몇몇 지역을 직접 방문하여 훑어보는 열혈 덕후도 존재하지만, 대다수의 애독자는 자신이 좋아하는 작가의 작품을 소장하거나 탐독하는 선에서 그치는 게 일반적이다. 물론 해외여행 중에 자신이 좋아하는 작가의 무덤을 방문하여 애도를 표하는 경우는 많이 보았지만 말이다. 그럼에도 독서가의 덕질은 꽤나 은근한 면이 있어서 길을 걷다가도, 일을 하다가도, 심지어 낯선 곳을 여행하다가도 자신이 좋아하는 작가의 어떤 작품이나 문장을 떠올리곤 한다. 말하자면 독자의 내면에 깊이 자리하는 것이다.


기온이 올랐는지 눈이 쌓였던 자리에서 눈석임물이 조금씩 흘러내리고 있다. 조금 귀찮기는 하지만 가벼운 산책이라도 다녀와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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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국적으로 눈이 내려 대한민국은 이제 온통 눈 세상이 되었습니다. 건듯 불어오는 바람도 눈의 냉기를 한껏 머금은 듯 조금의 온기마저 찾아보기 어렵습니다. 하늘은 구름 한 점 없이 맑고 청량합니다. 점심을 먹은 후 더부룩한 속을 달래느라 근처 공원을 한 바퀴 돌았습니다. 반려견을 데리고 산책을 나온 사람들도 보이고, 햇볕을 쪼이며 조곤조곤 담소를 나누는 할머니들 모습도 보입니다. 12월의 첫 주말을 맞는 사람들의 표정은 이렇듯 냉랭한 한기 속에 적잖이 움츠러든 모습입니다.


쿠팡의 대규모 개인정보 유출 사건으로 인해 우리가 추구하던 편안함에 대한 대가를 톡톡히 지불하고 있는 듯한 느낌입니다. 사실 나는 그와 같은 편안함을 일부러 피하고 있는 사람으로서 미련하다는 세평을 꽤나 많이 들어왔습니다. 쿠팡을 이용하지 않는 까닭에 장을 보기 위해 직접 마트를 방문해야 하는 것은 물론 간단한 것을 구매할 때에도 편의점이나 인근의 가게를 방문해야만 합니다. 심지어 나는 어떤 배달앱도 이용하지 않고 있습니다. 배달 음식이 먹고 싶을 때에는 가게에 직접 전화를 걸어 주문을 한 후 약속 시간에 맞춰 찾으러 가곤 합니다. 게다가 나는 남들 다 한다는 '페이'도 이용하지 않고 플라스틱 카드로 결제를 하곤 합니다. 독서를 좋아하지만 전자책은 이용하지 않고 오직 종이책만 고집합니다.


이런 내 모습이 직장 동료들에게는 구시대적 유물처럼 보이나 봅니다. 그럼에도 나는 굴하지 않고 나의 루틴을 견지하고 있습니다. 그렇다면 나는 이제껏 나의 개인정보가 단 한 번도 유출된 적이 없었을까요? 불행하게도 그렇지는 않습니다. 과거 내가 이용하던 인터파크에서도, 최근에는 SK텔레콤에서도 나의 개인 정보는 무참히 유출되었던 것입니다. 물론 그전에도 내가 이용하던 인터넷 사이트에서 두어 번의 정보 유출이 있었던 걸로 기억합니다. 주변 사람들이 말하기를 이렇게 하나 저렇게 하나 어차피 개인정보가 유출될 거면 편안함을 추구하고 유출되는 게 더 낫지 않느냐고 나에게 주장합니다. 그럴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러나 나는 과학기술의 발달과 그것으로부터 우리가 얻는 편안함에는 반드시 그에 상응하는 대가가 따른다고 믿는 사람입니다. 남들이 뭐라 하든 말입니다.


인간의 삶은 어쩌면 아날로그적 경험을 이행하는 과정에서 발생하는 수많은 실수와 그로 인해 우리가 지불하는 많은 불편과 시간낭비를 통해 더욱 풍요로워지는 것인지도 모릅니다. 편안함과 효율성만 추구하다 보면 우리의 삶도 그렇게 효율적으로 흘러가게 될 것 같은 불안이 나를 이따금 깨어나게 합니다. 그것은 마치 대량생산을 담당하는 자동화된 공장과 다를 게 없는 듯합니다. 나의 삶도, 당신의 삶도 공장에서 찍어낸 듯한 단일한 삶이라면 우리는 굳이 개별적인 삶을 살아야 할 이유가 없겠지요. 당신의 삶도, 나의 삶도 이제껏 없었던 고유한 것이기에 우리는 오늘도 최선을 다해 살아야 할 이유를 발견하게 되는지도 모릅니다. 나는 그와 같은 삶을 응원하고 싶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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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프리쿠키 2025-12-06 23:4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서재의 달인 축하드립니다.!

꼼쥐 2025-12-07 11:38   좋아요 0 | URL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