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좋았던 시간에 - 김소연 여행산문집
김소연 지음 / 달 / 2020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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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박하고 평범한 이야기를 좋아한다. 그것은 어쩌면 나의 성향이나 취향과도 관계가 있을 터이다. 옷이나 가방을 고를 때도 나의 기준은 언제나 '튀지 않고 무난한 것'으로 귀결된다. 영화를 고를 때도 '액션 대작'이라거나 '이제껏 볼 수 없었던'과 같은 지극히 과장된 표현이 들어가면 잘 끌리지 않는다. 그런 까닭인지 공포영화는 거의 보지 않거나 기피하는 장르로 자리매김하게 되었다. 이렇게 굳어진 취향은 소설이나 에세이처럼 내가 즐겨 읽는 책의 서사마저 결정하는 지경에 이르고 말았다. 자극적이지도 않고, 세상 어디에나 있을 듯한 평범한 이야기를 읽고 또 읽는 이유를 나로서도 알 길이 없다. 남들이 보면 세상 진부한 이야기라고 타박할 수도 있는 그런 이야기를, 이제 막 세상을 배우는 어린아이도 아닌 내가, 지금도 여전히 그런 이야기에 끌리는 이유가 도대체 무엇인지..


김소연 시인의 산문집은 줄잡아 서너 권쯤은 읽은 듯하다. 시집이 아닌 산문집은 그렇게 많지 않을 테니 나는 어쩌면 시인이 펴낸 산문집은 거의 다 읽지 않았을까 싶기도 하다. 내가 이렇게 한 시인에 대한 탐사 아닌 탐사를 시작하게 된 계기는 시인이 쓴 산문집 <마음사전>을 우연히 읽은 후였다. 한 단어에 담긴 묘한 뉘앙스를 매우 예민하게 포착하여 이를 자신의 생각에 곁들여 독자들에게 전달하고자 했던 <마음사전>은 책으로서도 충분한 가치를 지녔지만, 나는 그 책을 읽은 직후의 소감으로 저자인 김소연 시인이 매우 예민하고 섬세한 사람이구나, 생각했었다. 그처럼 섬세한 감각을 지닌 작가의 책이라면 작가가 쓴 다른 어떤 책을 읽어도 그만한 가치가 있을 것이라고 어림했었다.


"솔방울 옆에는 달팽이 껍질이 있다. 달팽이 껍질 옆에는 도토리가 있다. 마모된 사물들이 옹기종기 모여 있지만, 단지 사물들이 아니다. 허리를 굽혀 내가 그것을 주워 들었을 때의 내 감정들이 그것들을 바라볼 때면 재생이 된다. 그것들은 마치 과거의 나에게 가끔 안부를 건넬 수 있는 우체국 같다. 그 여름은 어땠니. 누군가 내게 물어올 때에 빙그레 웃으며 보여줄 수 있는 대답의 일부이다."  (p.225)


내가 이번에 읽은 <그 좋았던 시간에>는 작가가 쓴 여행 산문집이다. 어떤 일정한 기간에 특정 지역을 방문하여 쓴 산문집이 아니라 작가가 방문하였던 여러 도시와 그곳에서 느꼈던 시인의 감성이나 사진들이 책의 지면을 메우고 있다. '경주 노서동 사거리 봉황대 앞에서 살았'던, '관광지가 고향'이었던 소녀는 이제 관광객이 되어 세상을 떠돌고 있는 셈이다. 총 3부로 구성된 이 책은 작가가 경험하고 쓴 여행의 기록이지만 2부에서 선보이는 일기 형식의 기록은 특별하다. 인도에서 보낸 두 달여의 기록이 날짜와 함께 선보이고 있다.


"인드라간디 공항의 새벽은 그다지 위험하지 않았다. 두렵던 마음이 안도감으로 바뀌자 무거운 배낭도 가볍게만 느껴졌다. 아홉시 반에 로비에서 만나자던 인도인 가이드는 나타나지 않았다. 그 덕분에 아침부터 파하르 간즈를 헤매기 시작했다. 지도를 보고서 길을 찾는다는 게 의미가 없다는, 쉼터 주인의 말씀이 백번 옳았다."  (p.126)


소박하고 평범한 이야기가 많은 사람들이 읽는 특별한 이야기로 전환되는 매개는 작가의 예민한 감각이다. 나른하고 평범한 시간 속에서 특별하게 빛나는 순간을 포착하는 감각, 결코 변하지 않는 듯한 풍경 속에서 나만의 특별한 감성으로 채색할 수 있는 능력, 동원할 수 있는 모든 감각기관을 내가 원하는 순간에 집중할 수 있는 능력 등이 평범한 이야기를 누구나 읽고 싶은 특별한 글로 재탄생하게 하는 비법이다. 나는 사실 김소연 시인의 그러한 감각을 좋아하는지도 모른다.


"일기를 쓰려고 수첩을 꺼냈을 수도 있고 그러지 않을 수도 있다. 일기에 쓸 말이 하나도 없어서 수첩은 펼치기만 했다가 다시 덮어버렸을지도 모른다. 그곳에서 나는 세사르 바예호에 대하여 생각했다. '나는 신이/ 아픈 날 태어났습니다'라던 그의 문장을 떠올리고 그런 문장이 어떤 순간에 태어났는지에 대하여 상상해보았다. 더없는 햇살 아래에서 나 말고도 그런 식으로 벤치에 누워 있었거나 앉아 있었던 사람들이 드문드문 보였던 것도 같다."  (p.63)


기신기신 흐르는 시간에 생명력을 불어넣을 수 있는 건 여행일지도 모른다. 시인은 여행이 '우주를 독식하는 시간'이라고 했다. 자신의 집에서건 여행지에서건 우리가 소비하는 시간은 뭐 그리 다를까마는 우리는 다만 자신의 집보다는 여행지에서 몸으로 감각하는 느낌의 강도가 크게 상승할 뿐이다. 우리가 시인의 여행 산문집을 읽는 까닭은 여행지에서의 시인은 평범한 사람이 느낄 수 없는 예민한 감각이 즉시 살아나기 때문이다. 시인의 특별한 감각이 그려내는 평범한 일상과 특별하지 않은 풍경이 나른한 나의 감각을 낯설게 하기 때문이다. 나는 여전히 소박하고 평범한 이야기를 좋아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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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파트 울타리는 넝쿨장미로 가득합니다. '붉음'이라는 두 글자를 오가는 사람들의 시선에 마치 도장을 찍듯 꾹꾹 눌러 담는 꽃의 자태에 나는 새삼 감탄하곤 합니다. 만만치 않은 꽃의 무게를 감당하는 장미 넝쿨은 그저 그늘로서만 존재합니다. 주인공은 내가 아니라는 듯 푸르름만 유지한 채 선명한 보색대비를 위해 전면에는 언제나 꽃의 '붉음'이 드러나도록 애쓸 뿐입니다. 여름에 피는 까닭에, 여름을 대표하는 까닭에 넝쿨장미는 작열하는 여름의 태양을 닮았습니다. 꽃을 꺾어 가까이에 두고 감상하고픈 마음이 나도 모르게 들었던 건 어쩌면 넝쿨장미의 '붉음'이 나를 유혹했기 때문일지도 모릅니다. '붉음'이란 모름지기 중독성이 강한 색깔이라고 믿었던 나의 오래전 생각도 어쩌면 그런 까닭에서 연유했을지도 모르겠습니다.


대선이 코앞입니다. 그럼에도 선거 분위기는 그저 차분하기만 합니다. 국민들을 향해 총부리를 겨누도록 지시했던 내란 우두머리는 자신의 잘못을 망각한 채, 아니 어쩌면 자신의 잘못을 전혀 인정하지 않은 채, 자신만큼 미친 자들과 함께 영화를 보면서 꾸벅꾸벅 졸거나 낄낄대면서 국민들을 우롱하고 있습니다. 더욱 가관인 것은 그가 속했던 정당의 인물들 역시 자신들의 과오를 망각한 채 그를 두둔하거나 자신들을 지지해달라고 읍소하고 있다는 사실입니다. 인간의 탈을 썼다면 어떻게 그리 할 수 있을까요. 자신들의 죄를 고하고 국민들께 용서를 비는 게 마땅한 도리이거늘 자격도 없는 후보를 내세워 지지를 호소한다는 게 말이나 되는 일일까요. 너무 어처구니가 없어서 헛웃음만 나올 뿐입니다. 자신들의 죄를 고백하고, 용서를 빌며, 반성의 의미로 후보를 내지 않는 게 마땅한 도리였을 것입니다.


남유하 작가의 에세이 <오늘이 내일이면 좋겠다>를 조금 읽었습니다. 진도를 쭉쭉 낼 수 없었던 건 슬픔의 돌부리가 나의 발길을 툭툭 걸어 자주 비틀거리게 했기 때문입니다. 나는 마음의 중심을 잡지 못한 채 흔들렸고, 울먹울먹 억지로 울음을 삼켜야만 했습니다. 책상 위에 놓인 책의 표지를 볼 때마다 나는 속이 까끄름하고 마음이 심란하기만 합니다. 산다는 것은 어쩌면 허방을 짚는 것처럼 덧없고 허망한 일일지도 모르겠습니다.


"엄마가 전이 판정을 받고 나서 우리는 매일 죽음에 대해 생각했다. 생각할 수밖에 없었다. 엄마는 삶과 죽음의 경계에 있는 사람이었고, 우리는 그런 아슬아슬한 나날을 '죽음 이행기'라고 불렀다. 죽음 이행기에서는 타인의 눈에 비상식적으로 비칠 수 있는 일들이 일상적으로 일어난다. 엄마의 자살 방법에 대해 농담처럼 이야기를 나눴듯이."  (p.44)


내란 우두머리 혐의를 받는 그는 유죄시 무기징역 또는 사형에 처해진다고 합니다. 정상적인 대한민국 국민 대부분이 그럴 테지만 이 재판이 제발 빠르게 진행되어 그의 꼴을 우리 사회에서 더는 볼 수 없기를 간절히 바라게 됩니다. 토요일 오후, 비가 한 차례 내렸고, 날씨는 제법 선선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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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주 오랜만에 행복하다는 느낌 에세이&
백수린 지음 / 창비 / 2022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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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월요일까지만 하더라도 한낮 기온은 조금 더운 감이 없지 않았으나 아침, 저녁 기온은 제법 낮았었다. 나는 화요일 아침에도 월요일에 입었던 도톰한 운동복을 그대로 챙겨 입고 아침 운동을 나섰는데, 등산로 입구의 계단을 채 오르기도 전에 막심한 후회가 밀려오기 시작했다. 월요일 아침보다 10도는 높아졌을 것 같은 날씨. 하늘은 잔뜩 흐렸고, 금방이라도 비가 쏟아질 듯 습도마저 높았다. 운동을 시작도 하지 않았는데 등허리에 땀이 차서 운동복은 금세 축축해졌다. 계절의 변화는 이렇게 느닷없다. 앞으로 기온은 차츰 올라 소소리바람이 치는 어느 가을날 아침, 열어 두었던 안방 창문을 서둘러 닫을 때까지 우리는 한동안 끝날 것 같지 않은 더위에 시달릴 것이다.


그렇게 산의 초입서부터 땀을 흘리기 시작했던 나는 산의 능선에 있는 산스장에서 땀범벅이 된 몸으로 운동을 시작하려는데 땀냄새를 맡은 모기 한 마리가 앵앵거리며 귓가를 맴돌았다. '벌써 모기라니!' 어찌어찌 운동을 마치고 산을 내려오는데 목이 쉰 듯한 멧비둘기가 '구구구구' 울었다. 백수린의 산문집 <아주 오랜만에 행복하다는 느낌>을 다 읽은 지가 여러 날 지났는데 어떻게 리뷰를 써야 할지 전혀 감이 잡히지 않았다. 이런저런 이유로 바빴던 것도 하나의 원인이지만 무엇보다 나의 천성적인 게으름이 한몫하지 않았나 싶다.


"비가 내리고 있다. 여름비가 내리는 소리를 들으며 뒤라스를 읽던 여름을 기억한다. 눈부신 어느 날, 불탄 책 한 권을 발견한 소년. 교육을 제대로 받은 적이 없고 글을 읽을 줄도 모르면서, 소년은 책을 읽어나가며 인생이란 헛되고 헛될 뿐이라는 삶의 비밀을 깨닫고 어른이 되어버린다. 파괴와 결별을 겪으며 어른이 되기 전 아직 모든 것이 완벽했던 유년 시절의 한순간을 그리는 이야기. 뒤라스의 글을 읽고 번역하던 날들의 여름은 아름답고, 덧없는 계절이었다."  (p.32)


1부 '나의 작고 환한 방', 2부 '산책하는 기분', 3부 '멀리, 조금 더 멀리'의 총 3부로 구성된 이 책에서 작가는 자신의 이야기를 아주 가까운 지인에게 들려주는 양 담백한 문체로 부드럽게 이끌어 간다. M 이모를 통해 알게 된 언덕 위의 작은 동네의 단독주택으로 이사를 하게 된 작가가 그곳에서 만난 이웃들과 공동주택에서는 경험할 수 없었던 월동준비며 제설작업, 재개발로 언젠가는 사라질지 모르는 동네의 현실 등을 담담히 그리고 있는 1부와 작가가 17년 동안 함께 했던 반려견 '봉봉'과의 만남과 이별을 통해 사랑과 죽음에 대한 소회를 담은 2부, 한 사람의 '여성' 혹은 '여성작가'로 살아가는 자신의 자각과 한계를 다루는 3부. 어쩌면 그것은 특별하지 않은 자신의 삶을 특별하지 않은 독자들의 삶에 슬몃 얹어 놓는 듯한 느낌이 들기도 한다.


"그러다 이윽고 이제 5월은 내가 사랑하는 두 명의 사람이 태어났고, 내가 사랑하는 두 명의 사람이 떠난 계절이 되었다는 사실을 불현듯 깨달았다. 물론 그 일들은 모두 각기 다른 해에 일어났지만 앞으로 내가 갖게 될 모든 달력에 그들의 생生과 사死는 열흘도 채 되지 못하는 짧은 시간 안에 전부 기록될 것이다. 그러니 나는 앞으로 5월이 되면 어김없이 매번 이 사실을 떠올리리라. 인생이란 탄생과 죽음 사이를 날아가는 화살이라는 사실을. 그 가냘픈 화살은 눈 깜짝할 사이에 날아가 과녁에 꽂힌다. 하지만 우리는 후회할 것을 알면서도 언제나 같은 어리석음을 반복하고 또 반복한다."  (p.161~p.162)


내가 백수린 작가의 산문집 <아주 오랜만에 행복하다는 느낌>의 리뷰를 쓰기로 작정하고 떠오르지 않는 생각들을 억지로 끌어모으기 위해 머리를 쥐어짜고 있는 오늘은 노무현 전 대통령 서거 16주기. 유튜브 영상에서 보는 봉하마을은 노란 물결의 추모 인파로 가득하고 나는 문득 '사람의 변화도, 계절의 변화도 갑작스럽고 느닷없는 일'이라는 걸 새삼스럽게 깨닫는다. 어느 날 당신 곁에서 누군가가 떠나듯 벌써부터 치솟는 여름 더위에 대한 공포는 어느 가을날 아침의 소소리바람과 함께 멈출 것이다. 우리의 기억은 그렇게 단단한 과거 속에 갇힐 것이다.


"얼마나 지속될지 알 수 없는 행복이었지만 아무래도 상관없었다. 어차피 행복은 지속되는 것이 아니라 깊은 밤 찾아오는 도둑눈처럼 아름답게 반짝였다 사라지는 찰나적인 감각이란 걸 아는 나이가 되어 있었으니까. 스무 살이었던 나의 빈곤한 상상 속 마흔과는 다르지만 나의 40대가 즐겁고 신나는 모험으로 가득하리란 걸 나는 예감할 수 있었다."  (p.224~p.225)


사나흘 더웠던 날씨는 오늘 다시 수그러들었다. 때 이른 더위가 미안했던지 주말을 맞는 사람들에게 선선한 날씨를 선물처럼 풀어놓는다. 우리는 그렇게 또 한 주를 살아냈다. 보란 듯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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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트코인의 시대 - 미래 화폐의 승자가 만들어낼 거대한 부의 물결
김창익 지음 / 다산북스 / 2025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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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으로부터 3년 반쯤 전, 그러니까 2021년 9월 말에서 11월 초 사이에 생각지도 못한 부수입을 올린 경험이 있다. 로또복권은 사지도 않지만 복권에 당첨되었다는 건 더더욱 아니다. 여담이지만 내가 내 돈을 내고 로또복권을 샀던 건 지금껏 살면서 두세 번쯤 된다. 처음 로또복권을 샀던 기억은 지금도 선명하다. 로또복권이 우리나라에 들어왔던 초창기의 어느 날 은행(지금은 국민은행으로 통합되었지만 당시에는 주택은행)에 들렀다가 그곳에서 근무하던 고등학교 동기의 권유를 차마 뿌리치지 못해서 거금(?) 1만 원을 투자하고 말았다. 당시에는 한 게임당 가격이 2,000원이었고, 복권 담당이었던 친구는 반 강제적으로 1만 원의 복권 구입을 종용했었다. 그 후에 두어 번 샀던 것은 주로 회식이 파한 자리에서 삼삼오오 편의점에 들러 서로의 행운을 점쳐보기 위한 하나의 재미 혹은 놀이 차원에서였다.


복권 이야기를 하려던 것은 아닌데 어쩌다 샛길로 빠졌다. 각설하고 본론으로 되돌아가서 2021년 당시 나는 주변의 권유에 못 이겨 많지 않은 돈을 암호화폐에 투자했었다. 이렇게 말하고 보니 내가 무척이나 귀가 얇은 사람인 듯하지만 실상은 그렇지도 않다. 코로나 시기에 주식에 투자하여 쏠쏠한 재미를 보았던 나는 그 돈의 일부를 암호화폐에 투자하기로 결심했을 뿐이다. 이런 판단의 근거가 되었던 게 일평균 거래금액이었다. 암호화폐 시장의 일평균 거래액이 주식시장의 거래액을 초과하였다는 기사가 내 눈을 사로잡았던 것이다. '그래. 돈은 역시 돈이 모이는 곳에서 벌어야 해.'라는 생각으로 암호화폐 투자를 시작했다. 이제 와 생각해 보면 나는 무척이나 단순한 인간이다. 투자라는 게 사실 고려해야 할 사항이 얼마나 많은 일인데...


나는 그렇게 암호화폐에 대한 투자를 성공적으로 마친 후 투자금 전액을 통장으로 이체했고, 묘하게도 내가 암호화폐에서 손을 뗀 후 하늘 높은 줄 모르고 치솟던 비트코인 가격도 연일 곤두박질치기 시작했다. 그 후 암호화폐는 나의 관심에서 조용히 사라졌다. 적어도 2024년 11월 트럼프가 미국 대통령으로 재선에 성공하기 전까지는. 트럼프의 재선 이후 1억 원을 돌파한 비트코인 가격 하늘 높은 줄 모르고 치솟았고, 그야말로 쳐다볼 수 없는 넘사벽의 투자 대상이 되고 말았다. 경제 스토리텔러이자 비트코인 투자자이기도 한 김창익이 쓴 <비트코인의 시대>를 읽어보자고 생각한 것도 그런 이유이다.


"짐작했겠지만 투자는 과거 데이터와 미래 전망에 대한 함수다. 2025년 초 비트코인에 막대한 자금이 유입된 가장 큰 이유는 과거에 비트코인이 큰 폭으로 올랐고, 이 같은 추세가 적어도 당분간 유사하게 반복되리라는 믿음 때문이다."  (p.27)


이 책을 읽은 독자라면 누구나 비슷한 생각을 할 테지만 책은 경제학을 전공하지 않은 비전공자라고 하더라도 암호화폐의 개념을 쉽게 이해하고 이에 대한 접근을 바르게 할 수 있도록 화폐의 본질을 파헤치고, 비트코인의 달러 대체 가능성과 비트코인으로 인한 세계 경제의 변화 및 투자자의 관점에서 바라본 비트코인 현상 등을 자세히 다루고 있다. 그럼에도 저자는 비트코인이 직면한 한계를 지적하고 있다. 이를테면 에너지 소비 문제, 확장성 문제, 규제 리스크 등이 그것이다.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은 비트코인의 영웅 서사에서 가장 강력한 조력자로 등장한다. 비트코인은 페트로달러라는 구체제의 모순에서 태동했다. 바로 이 점이 트럼프와 비트코인의 운명적인 만남을 가능케 한 이유다. 트럼프는 미국 제조업을 몰락시킨 페트로달러 체제, 즉 세계화의 종식을 선언하며 미국인의 강력한 지지를 끌어냈다."  (p.143)


책의 목차를 읽어 보면 대략적인 책의 내용을 추측할 수 있다. 1장 '비트코인, 투기가 아닌 투자가 되다', 2장 '비트코인은 오를 수밖에 없다', 3장 '트럼프는 왜 비트코인 대통령이 되었나', 4장 '비트코인은 세계 경제를 어떻게 바꿀 것인가', 5장 '비트코인에 투자하기 전 알아야 할 것들', 6장 '비트코인의 시대는 어떻게 진화할 것인가'의 총 6장으로 구성된 이 책은 현시점에서 왜 비트코인의 가격이 이처럼 오르고, 여러 나라의 많은 사람들이 비트코인에 대한 과감한 투자를 두려워하지 않게 되었는지, 즉 이 시대를 왜 비트코인 시대로 명명하게 되었는지 그 까닭을 이해하는 데 도움이 될 것이다.


"이 국면이 지나면 비트코인 투자가 새로운 국면을 맞이한다. 인플레이션 헤징 수단으로써가 아니라 화폐의 구매력 관점에서 비트코인 투자 여부를 판단해야 한다. 여기서부터는 개미들의 영역이 아니다. 현재 상황을 보면 이때까지 남은 시간이 그리 길지는 않을 것 같다."  (p.396 '에필로그' 중에서)


계엄령 이후 대통령의 파면과 새로운 대통령을 선출하기 위한 대선 국면에 있는 우리나라는 모든 게 불안정한 시기이다. 트럼프의 재선 이후 세계를 대상으로 관세 전쟁에 매진하고 있는 이 시국에 다른 나라라고 해서 안정적인 발전을 꾀한다는 건 사실상 불가능한 일이다. 말하자면 트럼프의 재선 이후 세계 경제는 극도의 혼란기에 접어든 것이다. 이렇다 보니 내 주변에서도 무엇에 투자해야 할지 투자처를 찾지 못해 머뭇거리는 사람들이 많다. 나 역시 그런 사람들 중 한 사람이다. 그러나 분명한 것은 비트코인이 투기의 대상에서 투자의 대상으로 바라보는 관점과 시선이 변했다는 건 분명해 보인다. 전에는 비트코인이라면 말도 꺼내기 전에 손사래부터 치던 사람들이 지금은 투자 방법과 전망을 묻는 걸 보면 그야말로 상전벽해가 따로 없다. 그런 의미에서 김창익의 저서 <비트코인의 시대>는 비트코인에 대한 유익한 길잡이 역할을 하지 않을까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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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해는 예년에 비해 날씨가 짓궂었던 탓인지 피는 꽃들이 비실비실 생기가 없고, 언제 피었다 지는지 알 수 없을 만큼 금세 지고 만다. 그런 느낌이 든다. 봄의 절정을 알리는 벚꽃의 개화기에도 한두 번 비바람이 몰아치더니 미처 감상할 새도 없이 서둘러 지고 말았고, 아카시아 꽃이 만개한 요즘에도 잊을 만하면 비가 내려서 버선발 같은 꽃잎이 하얗게 쏟아지는가 하면 더러는 줄기째 떨어지기도 하여 보는 이를 안타깝게 한다. 게다가 화려한 자태를 오랫동안 뽐내던 철쭉과 영산홍도 올해는 그 기한이 어찌나 짧던지 지금은 메마른 꽃잎만 겨우 매달고 있다.


오늘도 아침부터 흐렸던 하늘에선 간간이 비가 내렸고, 주말의 들뜬 분위기를 가라앉히려는 듯 '우르릉 쾅!' 벼락이 치기도 했다. 그나저나 대선이 멀지 않았다. 그럼에도 이재명 후보의 워낙 일방적인 우세 탓인지 선거 분위기는 과열되거나 격화되지 않고, 그저 차분하기만 하다. 그도 그럴 것이 내란을 주도했던 정당이 해산도 되지 않은 채 다시 또 후보를 낸다는 것도 지극히 비정상적인데, 그 정당의 후보를 지지하는 미친 사람들이 있다는 것도 정말 상상하기 힘들다. 더구나 내란 우두머리였던 자가 지금도 버젓이 거리를 활보하고 있고, 그가 속한 정당에서도 그를 내칠 기미가 보이지 않으니 '다들 미쳐 돌아가는구나' 싶은 것이다.


백수린 작가의 산문집 <아주 오랜만에 행복하다는 느낌>을 읽고 있다. 얼마 전에 구입한 백수린 작가의 소설집 <봄밤의 모든 것>을 아직 들춰보지도 않은 채 작가의 산문집을 인근 도서관에서 빌렸다. 나는 종종 이런 어이없는 짓을 저지른다. 그러다 보니 구입한 책은 그 순서가 마냥 뒤로 밀려서 숫제 읽지도 않은 채 책꽂이에 꽂히는 경우가 허다하다. 내가 생각해도 정말 어처구니없는 짓이다. 왜 이런 일들이 반복되는 것일까? 나의 변명은 이렇다. 책을 구입할 당시에는 바로 읽을 요량이었다. 그러나 도서관에 가 보면 읽고 싶은 책이 어찌나 많은지... 나는 몇 권의 책을 덥석 빌린다. 구매한 책은 반납 기일이 없지만, 대여한 책은 언제나 기일이 정해져 있는 까닭에 대여한 책을 먼저 읽을 수밖에 없다. 구매한 책은 결국 순서에서 밀리고 밀리다 때론 잊히기도 하고, 구입한 지 한참이나 지난 후에야 겨우 읽히기도 한다. 이런 바보 같은 짓이 고쳐지지 않고 반복된다.


"오늘 아침 창밖엔 사늘한 빛이 설핏하다. 나는 느지막이 일어나 전기포트에 뜨거운 물을 끓인다. 집 안 여기저기에 놓인 사물들에는 아직 겨울의 흔적이 남아 있다. 나는 밤새 차가워진 공기를 데우기 위해 전기난로를 켜고 식탁 겸 책상에 앉아 뜨거운 차를 한잔 마신다. 조금 있으면 소란을 떨며 만물이 생동하는 봄이 오겠지만, 아직은 조금 더 부드럽게 게을러도 괜찮은 겨울의 끄트머리다."  (p.193)


백수린 작가의 글은 따뜻하다. 소설에서나 산문집에서나 작가의 부드러운 마음의 결이 고스란히 느껴진다. 자신의 글에 자신이 지닌 본래의 성품을 담는다는 건 삶 자체가 그렇다는 뜻이다. 자신의 글과 삶이 크게 벗어나지 않는다는 것, 자신의 글이 추구하는 방향에 배치되는 이율배반적인 삶을 살지 않으려 애쓴다는 것, 그것이 어쩌면 작가의 인격일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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잉크냄새 2025-05-16 20:45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앗, 저도 알라딘이나 중고서점에서 구입한 책은 자꾸 밀리고 있고 매주 도서관에서 책을 빌려와 먼저 읽는 패턴이 반복되고 있습니다.

꼼쥐 2025-05-17 12:50   좋아요 0 | URL
잉크냄새 님도 저와 비슷하시군요. 저 역시 그런 패턴을 반복하다 보니 읽지 않은 책이 한 보따리 쌓여 있습니다. 언제 읽을지 모르겠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