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등학교 1학년인 아들이  자신이 쓴 글을 메일로 보냈다. 
자신의  가족을 칭찬하는 것이 팔불출의 범주에 속한다는 것은 알고 있지만,
아들은 어려서부터 언어에 대한 감각이 남달랐다.
초등학교에 입학하기 전에도 그 또래에게는 어려운 말을 사용함으로써 주변의 어른들을 놀라게 하거나 시디로 영어 동화를 들으며 혼자 익힌 영어 실력도 수준급이었다.
여름 방학이 끝나면서부터 영어 학원에 다니고 있지만 학원에 입학하기 전 상담교사로부터 들었던 말도 그저 인사치레로 하는 말은 아니었다는 것을 알고 있다.
그런 아들을 보며 한편 기쁘면서도 아빠로서 부담감을 느낀다.  
아들이 보낸 글을 고치지 않고 그대로 올려본다.

        우  산

   오오타 다이하찌 그림

   한국 프뢰벨

  [글 없는 그림책 보고 이야기 만들기]

                                           1학년 3반  ***

 

  어느 날 리사가 검은 우산을 옆에 끼고 빨간 우산을 쓰고 가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잘 보니 장화도 신고 있내요. 도대체 어디로 가는 걸까요?

  지금 리사가 강을 건너가고 있어요.  강에는 오리가 여러 마리 있었습니다.

리사는 걸음을 멈추고 생각했어요.  '오리들이 어디로 가는 걸까?'  그리고는

다시 길을 가기 시작했지요.

  다리를 건너는 길에 리사는 친구인 미수를 만났어요.  "안녕,리사야,비 오는 날에

어디 가니?"  "응,비가 와서 아빠어게 우산을 가져다 줄려 그래." 

"그럼,안녕!"  그래,안녕." 그리곤 다시 길을 갔지요.

  골목길을 가는데 강아지가 물을 튀겼어요.  리사는 다행히 우산으로 물을 막았지요.

강아지 주인은 물었어요.  "미안하다,예야. 물은 안 튀겼니?"  "네,괺찮아요."

주인이 말했어요.  "그럼,다행이구나."

 '와,도넛집이다!' 나도 먹고 싶은데'

하지만 돈이 없으니 어쩔 수 없지요.

리사는 실망하며 다시 길을 갔지요.

  리사는 놀잇감 가게에서 걸음을 다시 멈추었어요.  '나도 저 토끼 인형 갔고 싶은데'

하지만 이번에도 돈이 없으니 살수 없지요.

리사는 다시 길을 떠났어요.

  이제 횡단보도를 건널 거에요.

리사는 신호등을 기다리면서 생각했어요.

'빨리 아빠에게 우산을 드려야지.'

  찻길에는 차가 북적거렸어요.  버스,택시,오토바이,중형차,밴,등이 있었지요. 

신호가 바뀌자 리사는 길을 건너갔어요.

  리사는 전철역 쪽으로 갔어요.  택시가 네 대 줄지어 서 있었지요.  시계가

5시 34분을 가리키고 있었어요.  리사는 생각했어요.  '아빠는 어디 있을까?'

  리사는 아빠에게 우산을 건냈어요.  아빠는 웃으며 리사를 칭찬했어요.

  리사가 말했어요.  "아빠,도넛 하나 사주셔도 되나요?  아까부터 그게 먹고

싶었거든요."  아빠가 말했어요. 

"그럼,아빠 마중도 나왔는데 사줘야지."

  리사가 말했습니다.  "도넛을 사줘서 고마워요."  아빠가 말했습니다.

"마중도 나오고 우산도 줬으니 당연하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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티베트로 가는 길 - 라사의 앞 못 보는 아이들, 개정판
사브리예 텐베르켄 지음, 김혜은 옮김 / 도서출판빗살무늬 / 2004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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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절



내가 강원도의 작은 시골 마을에서 초등학교를 다니던 무렵, 지금은 기억도 희미해진 어느 봄날에 먼 친척뻘 되는 분이 우리집을 방문했었다.
그날은 마침 토요일이었고, 일찍 귀가한 나는 친구들과 술래잡기를 하며 놀고 있었다.
산중턱에 위치한 우리 동네는 기껏해야 집이 서너채에 불과하여 일년 내내 낯선 이의 발길이 닿지 않는 곳이었다.  
유난히 목청이 큰 우리집 개가 `컹컹’ 짖어대는 것을 필두로 우리의 시선도 그 낯선 방문객에게로 향하였다.
기타를 어깨 쪽으로 가로 질러 매고, 검은 선글라스를 낀 모습도 궁금증을 유발하기에 부족함이 없었으나, 한 손에 든 흰지팡이로 더듬어 산비탈을 오르는 모습에서 우리는 약간의 불안감을 느끼고 있었다.  
우리는 그 자리에 붙박힌듯 물끄러미 낯선 방문객의 행동거지를 한동안 바라보기만 하다가 놀던 것도 그만 흥미를 잃고 각자의 집으로 향하였다.
집에는 우리가 동구밖 언덕에서 보았던 그 사람이 어머니와 마주앉아 있었고, 어색하게 인사를 건넬 때에야 비로소 그분이 시각장애인임을 알았다.

어린 마음에 들었던 그때의 기억은 앞도 못 보는 분이 동행도 없이 어떻게 그 깊은 산골 오지를 찾아 올 수 있었을까 하는 것과 구슬픈 트로트 자락을 능숙하게 연주하던 그분의 기타 실력과 동네분들에게 침과 뜸을 놓아주던 유난히 길고 가는 손가락이었다.
그 후 단 한번도 그분을 다시 보지 못했지만, 거리에서 가끔 시각장애인과 마주칠 때면 늘 그분의 모습이 겹쳐지곤 했다.
우리집에서 하룻밤을 묵고 석양을 등진 채 떠나던 그분의 모습은 애잔한 추억으로 남아있다.

이 책을 읽으며 나는 왜 그렇게 오래되고 빛바랜 기억을 떠올렸던 것일까? 
저자 또한 독일에서 태어난 시각장애인이다.
1970년 독일 퀼른에서 태어난 저자는 두 살 때, 시력을 잃게 되는 병으로 알려진 망막질환을 선고 받았다. 어릴 때에는 색이나, 얼굴, 풍경 등을 알아볼 수 있었지만 열 두살, 시력을 거의 상실한 무렵 그녀는 마브르그에 있는 시각장애 특수 김나지움에 입학하여 점자를 배웠고, 김나지움을 졸업한 후 일년 동안 미국에 체류했으나 다시 독일로 돌아와 본 대학에서 공부를 시작했다. 그것도 그녀에게 가장 불가능해 보이는 언어학 전공, 티베트학으로. 그리하여 사브리예는 지도교수의 권유로 티베트 점자를 연구하게 된다.
1997년 스물여섯 살의 저자는 단신으로 티베트 라사로 향한다.
그녀의 꿈은 티베트의 앞 못 보는 아이들을 위하여 시각장애인 학교를 설립하고, 그들에게 점자를 가르쳐 동등한 사회인으로 성장하게 하는 것이었다.
온갖 역경을 이겨내고 티베트 라사에 시각장애인 학교를 세운 한 여인의 이야기는 참으로 감동적이다.  그녀는 현재 라사 시각장애인 학교 및 직업교육센터의 운영과 사업규모 확장에 힘쓰고 있다고 한다.

  "티베트 사람들은 전생에 지은 죄에 대한 벌로 이생에 시각장애인으로 태어난다고 믿는다고 돌마는 설명했다.  또 어떤 사람들은 시각장애인들이 귀신과 교류하며 눈으로 볼 수 없는 것을 인식하는 초자연적인 힘을 갖고 있다고 믿었다.  이 터무니없는 편견 때문에 시각장애인들이 기피대상이 되는 곳도 종종 있었고 심지어 시각장애인의 몸에 스치기만 해도 불결하고 부정탄 것으로 여기기도 했다."(P.57)

가을이다.
산에 올라 보면 여름내 나무의 성장을 돕던 나뭇잎들이 제 소임을 다했다는듯 화려한 단풍으로 치장하고 마지막 휴식을 취하고 있다.
여한이 없는 모습.  이 가을이 다 가기 전에 나뭇잎은 가지와 연결된 생명의 줄을 스스로 놓을 것이다.
산다는 것은 결국 나뭇잎처럼 누군가의 성장을 돕고 미련없이 생명의 줄기와 결별하는 일이 아닌가.
나는 알고 있다.
봄이 육체의 성장을 도모하는 계절이라면, 가을은 영혼의 성장을 준비하는 계절이라는 것을.

나는 낙엽을 밟으며 영혼이 자라는 소리를 듣고 있다.
올 겨울이 지나면 숲도, 나도 한뼘쯤 자란 성숙한 영혼으로 다시 만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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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양이가 쓴 원고를 책으로 만든 책 - 새끼 고양이, 길 잃은 고양이, 집 없는 고양이를 위한 지침서
폴 갈리코 지음, 조동섭 옮김 / 윌북 / 2010년 9월
평점 :
구판절판


대학을 다니던 시절,  내가 살던 신림동의 한 아파트에는 유난히 도둑 고양이가 많았다.
밤마다 들리는 고양이 울음 소리는 마치 갓난아기의 울음 소리와 너무나 흡사해서 `뉘집 아기가 이렇게 우나?’하고 문을 열어보면 배고픈 고양이가 쓰레기장 주변을 어슬렁거리는 모습을 목격하곤 하였다.
달빛에 반사된 고양이의 파란 눈빛은 섬뜩하였다.
그때마다 언제 적에 들었는지 알 수 없는 고양이에 얽힌 미신이 생각나곤 하였다.
나는 고양이를 잘 몰랐었고, 지금도 여전히 그렇다.

이 책은 고양이가 쓴 암호를 해독하여 옮긴 것이라고 저자는 말한다.
물론 사실일 리 없는 저자의 주장이지만, 스포츠 기자를 역임하고, 복싱 선수로도 뛰었던 저자의 경력에 비한다면 이런 귀엽고 앙증맞은 거짓말은 그럭저럭 봐줄만 하다.
생후 6주 만에 갑작스러운 사고로 엄마를 잃은 착하고, 똑똑하고, 영리한 고양이가 자신의 경험을 바탕으로 써내려간, 새끼고양이, 길잃은 고양이, 집없는 고양이를 위한 인간 길들이기 지침서이자 고양이의 눈에 비친 인간의 본성과 심리를 꿰뚫어 보는 다양한 인간 군상을 그리고 있는 그런 책이다.

"인간 여자를 절대 과소평가하지 마.  인간 여자는 아주 영리해.  남자를 사로잡아서 접수하는 게 여자니까.  남자보다 여자가 훨씬 영리하지.  인간 부부 중 남편을 쉬 접수했다 하더라도 조심해야 해.  그 아내는 우리 고양이가 자기 남편을 어떻게 구워삶았는지 다 알아낼테니까. "(P.41)

기록에 의하면 고양이가 애완동물로 길들여지기 시작한 것은 BC 1500년경 고대 이집트에서 비롯되었다고 한다.  고양이의 머리로 여신을 경배하였으며 따라서 고양이를 매우 신성시했다 한다.  이후 고양이는 다른 문화권에도 퍼져 BC 500년경에는 그리스와 중국에 흔하게 되었으며 인도에는 BC100년경에 알려졌다고 한다.이처럼 고양이는 이집트에서 신성한 동물로 귀한 대접을 받았던 영광의 역사서부터 마녀사냥이 횡행했을 때는 화형에 처해지기도 했던 수난의 역사까지 두루 갖고 있다. 그리고 각 문화권마다 가장 희비가 많은 짐승이기도 하다. 특히 우리 나라에서는 고양이를 부정한 짐승으로 보는 경향이 많았고, 이런 까닭에 나는 고양이와 가까이 할 수 있는 기회를 갖지 못하였다.  이 책에 의하면 나는 무식한 인간 남자에 불과한 것이다.

"인간이랑 말을 더 섞어서 좋을 일은 없어.  이건 인류학적 입장에서 관찰한 결과이고, 또 어느 고양이나 인간과 오래 산 뒤에는 깨닫겠지만, 인간이 곤란한 처지에 놓이는 경우의 대부분은 끝없는 말과 수다에서 비롯된 것이거든. "(P.130)

애묘가들 사이에서 `고양이책의 고전'으로 손꼽힌다는 이 책에는 고양이가 인간과 더불어 살아가기 위한 다양한 지침들을 기록하고 있다.  나는 여전히 그들의 언어와 습성을 모르고 앞으로도 가까워질 것 같지 않지만, 고양이를 기르는 사람들(혹은 고양이에게 접수당한 사람들)은 이 책의 내용이 많은 도움이 될지도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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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시간이 아주 많은 어른이 되고 싶었다
페터 빅셀 지음, 전은경 옮김 / 푸른숲 / 2009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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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밌는 책이다.
먼저 그것을 전제로 시작해보자.
작가는주변의 소소한 일상을 섬세하게 관찰하고, 기교나 군더더기 없는 깔끔한 문체로 말한다.
평범한 이야기를 전혀 평범하지 않게 받아들여지도록 하는 그의 칼럼은 독특하다.
재치와 위트를 적절히 구사하는 촌철살인의 이야기들을 읽으며 17C 프랑스 극계를 대표하는 고전주의 비극작가 장 라신느를 떠올렸다.
대표작 페드라(phaedra)로 유명한 그녀 말이다.
시니컬한 문체와 현실에서 한발 비켜선 작가.
독자는 저자를 잊고, 그 특별하지 않은 일상이 자신의 체험인 양 빠져들게 된다.

저자는 생활 속에서 그때그때 떠오른 단상과 직접 견문한 일화에서 미끄러져 나온  생각들을 掌篇이라는 형식을 통해 전달한다.   페터 빅셀은 그야말로 짧은 이야기(掌篇)의 마술사이다.
"그는 장편(掌篇)이라는 형식을 통해 얼마 안 되는 낱말들로 아주, 아주 많은 이야기를 하는 위대한 이야기꾼이다."라고 말하는는 게오르그 파처의 평은 적절하다.
적절한 예화와 인용을 바탕으로 사람들의 생각을 깨어나게 하는 글이 많으며,  논리 전개가 날렵하고 행간은 깊다.  짤막한 일화를 통해 만나는 가르침은 때로 저도 몰래 무릎을 치게 하고 즉시 눈앞의 현실과 겹쳐 읽게 만든다.  하지만 화두는 항상 세상이 아닌 나에게로 향해 있다.  남을 탓하고 세상을 허물하기 전에 나 자신의 가늠이 어떠해야 할지가  늘 먼저다.  그러나 독자에게 강요하지 않는다.  그는 여유를 갖고 기다리는 것이다.  기다림을 기다리듯이.
그가 깨끗이 닦아둔 거울에 스스로를 비춰 본다면 중심을 잃고 휩쓸리기 쉬운 복잡한 현실에서 좌표를 점검하고 방향을 살피는 데 보탬이 될 것이다.

  "아버지들도 팻말에서 팻말로 걸음을 옮기며, 지식의 신처럼 아이들에게 동물이름을 전달한다.  이름을 알아야 할 필요를 느끼지 않고도 이미 동물들에게 감탄하고 있는 아이들에게.  그건 그렇고, 아프리카나 아시아에서 온 동물들도 이름은 독일어로 쓰여 있다.  동물들 스스로는 자기 이름이 무엇인지 모른다.  세상은 자기 이름을 모른다.  우리가 이름을 붙여 부르면서 세상을 멀리하는 것이다.  알바니아인, 프랑스인, 터키인...... "(P.95) 


그의 글은 세상을 바라보는 우리의 시선이 얼마나 무뎌지고 무감각해졌는지 새삼 느끼게 한다.
아주 많이 알고 있다는 것은 아무것도 모르는 것이다.
익숙함이란 무덤에 자라는  이름 없는 잡초에 지나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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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들아

살다 보면 소형 승합차가 코너를 돌 때처럼 균형을 잡지 못하고 흔들릴 때가 있단다.
지금의 일상이 못 견딜만큼 힘든 것은 아니지만, 몸으로 견디는 것보다 나를 더 힘들게 하는 것은 견뎌야 한다는 의무감이란다.
저녁을 먹고 잠자리에 들기 전에 양치를 강조하는 네 엄마의 원칙이 잘못된 것은 아니라 하더라도, 한번쯤 그것을 어기고 잠자리에 들었던 어느날 아침, 불안한 마음으로 거울에 네 입 안을 구석구석 비춰 보아도 구멍이 크게 뚫린 이(齒)를 전혀 발견할 수 없을 때, 너는 양치를 해야 한다는 의무감이 양치를 하는 그 순간보다 더 힘들다는 것을 알았을거야.
이런 생각이 들더구나.
산다는 것은 `의무감으로 가득한 별난 놀이터’에서 맘껏 놀아도 좋다는 허락을 받은 것과 같다.
우리는 선뜻 어떤 놀이기구에도 손을 얹을 수가 없단다.
늘 언저리에서 맴돌며 주저하다가 누군가의 결정을 기다리는 아이처럼.

아들아

지난 주말에는 엄마와 함께 `제23회서울국제유아교육전’에 다녀왔다지?
동행하지 못했던 나는 괜한 죄책감과 함께, 마땅히 내가 해야 할 임무를 방기한 채 모든 것을 네 엄마에게만 떠맡기고 있다는 미안함으로 고개를 떨구었단다.
초등학교 1학년인 네게는 더없이 즐거운 시간이었겠지만, 번잡함을 싫어하는 엄마는 그닥 유쾌한 시간은 아니었겠다는 생각이 들더구나.

아들아

어제와 달리 오늘은 가을 햇살이 무척이나 좋았었단다.
네가 자라 어른이 되면 어쩔 수 없는 의무감으로 해야 하는 일들이 많아지겠지만 그래도 너는 자유로운 삶을 살았으면 좋겠구나.
빛나는 가을볕처럼 여유롭고 따뜻한 시선이면 더 좋을테고.
너는 가을을 향해 쏟아져 나오는 저 한 무리의 유치원생들 마음으로 그렇게 살았으면 좋겠다는 것이 나의 간절한 마음이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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