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세이 분야 주목할만한 신간 도서를 보내주세요

스물 여덟. 

그 아까운 청춘에 생을 마감한  이석주 사진작가. 

인생에 나중은 없다고 말하던 그가 마지막으로 찾은 홋카이도는 그에게 어떤 의미였을까?  그는 죽어서 눈처럼 가벼워지기를 소망했던 것일까?  아니면 산 자의 가슴에 눈처럼 흰 카드라도 한 장 보내고 싶었던 것일까?  그는 떠났고 남겨진 사진 위에 쌓이는 그리움을 적는 강성은 시인의 독백이 애닯다. 

 

"3일의 시간이 주어진다면 당신, 무얼 하고 싶은가요?" 

각기 다른 성향의 열 명의 저자들이 들려주는 옴니버스 에세이.  인생에 '만일'이 존재한다면 우리는 조금 더 진지해 질 수 있을까?  정답 없는 질문에 열 명의 각기 다른 작가들이 자신만의 인생을 펼쳐 보인다.  단 3일뿐의 삶!  그 3일처럼 전 인생을 살 수 있다면... 

 

 

 

방송작가로 활동 중인 저자가 느끼는 일상은 어떤 것일까? 

음악 프로그램을 맡고 있으니 듣고 싶은 음악은 맘껏 들을 수 있어서 좋겠다는 생각이 들면서도 일순, 그래서 더 아쉬운 것은 무엇일까? 하는 궁금증.  이십대의 후반과 서른 사이에 놓인 작은 시내를 건너는 그녀의 감성, 그리고 살아있음.  그녀의 글은 입체의 공간에서 톡톡 튀는 물방울처럼 싱그럽다. 

 

 

 

판화가 이철수의 <나뭇잎 편지>는 그 짧은 글 속에 많은 것을 담고 있다.  짧아서 더 쉽게 잊혀질 수 있다지만 삶의 여백처럼 그 빈 공간에 많은 이야기를 담고 있다.  우리가 잊고 있는 것은 글과 말로 채워진 어지러움이지 빈 여백은 결코 잊혀지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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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토요일.
환승 주차장에 차를 세우고 버스를 타기 위해 대합실로 향했다.
칼바람이 부는 바깥 추위를 피해 대합실 내부는 그야말로 인산인해!
차표를 끊고 출발 시간을 보니 약간의 시간적 여유가 있었다.
승차홈 앞의 대기 의자에 자리를 잡고 앉아 마저 읽지 못한 책을 읽고 있었다.
그때였다.
낡은 승복을 입고 홀쭉한 걸망을 짊어 진 스님 한 분이 내 곁을 맴돌고 있었다.
마른 체구에 주름이 깊게 패인 얼굴, 사십대 후반이나 오십대 초반쯤 되었을까?
내게 뭔가 할 말이 있는 듯한데 주위를 서성이면서도 말을 붙일 엄두가 나지 않았는지 기웃거리고 망설이기만 했다.  그렇게 한참을 쭈볏쭈볏 하시더니 어렵게 말을 꺼냈다.
"저... 혹시 절에 다니세요?"
나는 대학생 시절 지하철역에서 자주 보았던 '도를 아십니까?'하는 멘트의 그런 사람들을 떠올렸다.  스님의 말이 끝나는 것과 그 생각이 들었던 것은 거의 동시의 일이었다.
잘 훈련된 개의 즉각적인 반응처럼.
"안 다니는데요." 하고 야멸차게 대답했다.
스님은 그렇게 어렵사리 대화를 튼 나에게 기회를 놓칠새라 얼른 말을 이었다.
"제가 만나기로 한 사람을 만나지 못해서 그러는데 혹시 삼천 원 정도 여유가 있으시면..."하고 말끝을 흐렸다.  유난히 선해 보이는 눈망울에 거짓이라곤 조금도 없어 보였다.
그럼에도 나는 마음과 달리 엉뚱한 말이 튀어 나왔다.
"글쎄요.  저도..."
그것은 분명 거절의 말이었고, 당황한 스님은 황급히 자리를 떴다.

'왜 그랬을까?  지인들과 어울려 식사를 할 때에도 몇 만 원쯤이야 아까워 하지 않고 잘도 내면서...  따라가서 주고 올까?'

한참을 그렇게 망설이기만 하던 나는 끝내 아무런 행동도 하지 못하고 버스를 탔다.

나는 어려서부터 어떤 곳을 가더라도 타인으로부터 길을 묻거나, 어떤 부탁의 말을 유난히 많이 들어 왔다.  다소 왜소한 체구의 내가 만만히 보인 탓이었는지, 아니면 내 인상에서 나쁜 사람이 아니라는 믿음이 있었는지는 모르겠지만 나는 그런 부탁에 수도 없이 넘어갔고, 우연한 기회에 그 이야기를 주변 사람들에게 들려줄라치면 다들 내가 세상 물정 모르는 바보라도 되는 듯 혀를 끌끌 찼다.  요즘도 가끔은 야멸차게 거절하지 못할 때가 있지만 그 횟수는 많이 줄어들었다.

사람을 믿지 못하도록 그렇게 길들여진 탓일까?
그토록 선해 보이던, 정말 어렵사리 꺼낸 그 삼천 원의 부탁을 나는 끝내 거절했다.
버스를 타고 가면서도 나는 그분의 뒷모습이 지워지지 않았다.
종교와 상관없이, 어쩌면 우리가 섬기는 신이 그런 모습으로 나타나 우리를 시험하고 있는 것은 아닐까?  내가 가장 정중하게 대우해야 할 그분을 나는 가장 초라한 모습으로 돌려보냈다는 죄의식이 내 어리석음과 함께 머리를 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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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지영의 지리산 행복학교>를 읽고 리뷰를 남겨 주세요
공지영의 지리산 행복학교
공지영 지음 / 오픈하우스 / 2010년 11월
평점 :
구판절판


이 엄동에 서둘러 봄이 오려는지 행복을 담뿍 담은 책들이 배달되었다.
언제부턴가 나는 매년 연초에 습관처럼 읽던 자기 계발서를 읽지 않는다.
지키지 못할 약속에 넌더리가 나고, 내 나약한 의지에 지치고, 무엇보다 내일 당장 부자로 만들어 줄 듯한 환상에 많이도 속았기 때문이다.
이제 나는 그런 환상을 믿지 않는다.  나이를 먹는다는 것은 사막의 언덕에 구름처럼 올라앉은 오아시스를 믿지 않는 일이다.
책을 통하여 행복의 곁불을 쬐는 일이 그렇게 연초의 큰 행사처럼 굳어진 것은 아주 오래 된 습관처럼 요란하지도, 그렇다고 적막하지도 않은 따뜻한 위안이 되었다.

<공지영의 지리산 행복학교>는 기약도 없이 그렇게 내게로 왔다.
그리고 빈 속에 들이키는 첫잔의 소주처럼 짜르르한 전율이 빈 가슴을 후볐다.
나는 한 사설이 끝날 때마다 안주 삼아 추억을 삼켰다.

내가 지리산을 처음 가본 것은 대학 1학년 때였다.
군부독재의 서슬이 퍼렇던 시절이었고, 대학생이면 으레 금서 목록에 오른 서적을 한두 권쯤 읽어야 하는 것이 지식인의 사명인듯 느꼈었다.  나도 그랬고 우리 모두가 그랬다.
학교에는 연일 대자보가 나붙고, 매화가 피는 교정에는 시샘하듯 최루탄 가스가 뽀얗게 퍼졌었다.  저항이 순수함의 다른 표현인 양 나는 그렇게 조정래의 <태백산맥>을 읽었다.
그리고 어느 뜨거운 여름날 친구들 몇몇과 지리산으로 향했다.
그때 보았던 지리산의 녹음은그 산에 숨어들었던 빨치산의 배고픔보다 푸르렀었고 섬진강의 유려한 물줄기는 세월따라 옅어지는 기억의 빛깔처럼 고왔다.

공지영 작가도 이제 나이를 먹나보다.  
큰 것보단 작은 것이, 부자의 영화보단 가난한 일상이, 한낮의 태양보단 지는 낙조가 더 살갑고 아름답게 보이나보다.  봄인듯 느끼던 역사가 12월 엄동으로 변한 것이 서럽고, 삭풍을 등지려 찾아든 지리산 골짜기에서 스러지는 행복의 곁불을 쬐는 사람들이 그리운가보다.
나는 작가의 걸쭉한 입담과 슬픈 너스레에 멋모르고 한참을 웃다가 알 수 없는 아련함에 눈물을 흘렸다.

작가는 거꾸로 흐르는 역사를 향해 작은 행복을 담은 생명의 화염병을 던지고 싶었는지 모른다.  그 여린 힘으로 그렇게 일깨우고 싶었나보다.
말없이 흐르는 섬진강을 향해 작은 것이 아름답다고 소리치고 싶었나보다.

"악양.  그것은 지리산의 다른 이름.  그것은 경쟁하지 않음의 다른 이름.  그것은 지이(智異).  생각이 다른 것을 존중하는 이름.  그것은 느림을 찬양하고 생명을 존중하는 이름......  공연 도중에 소주가 나누어지고 구수한 돼지고기 냄새 퍼지는......  그런 악양에 그들은 그렇게 살고 있었다."  (P.3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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법정 스님의 내가 사랑한 책들 - 법정 스님이 추천하는 이 시대에 꼭 읽어야 할 50권
문학의숲 편집부 엮음 / 문학의숲 / 2010년 3월
평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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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을 쓰는 저자에게는 말할 것도 없으려니와 책을 읽는 독자들도 그가 읽는 책의 종류에 따라 그 사람의 색깔이 드러나고 자신만의 향기를 내뿜는 듯하다.
어느 집을 방문하더라도 현관을 열고 들어설 때 맡을 수 있는 독특한 향기에서 집주인의 취향과 인격을 어느 정도 판단할 수 있듯 책에도 그런 향기가 있다는 말이다.

지난 해 3월 법정스님이 열반에 드신 이후 나는 스님의 추천 도서를 읽었다.
어떤 주제를 갖고 독서를 해본 적이 없는 내게는 특별한 일이었다.  
고등학교 졸업 이후 그저 손에 잡히는대로 읽고, 읽다가 마음에 내키지 않으면 미련없이 책을 덮는 무계획의 독서로 일관했던 내가 스님의 추천 도서를 한 권 한 권 읽어보자 결심했던 것은 나로서도 알 수 없는 어떤 인연의 끌림이 아니었나 하는 생각이 들게 한다.

문학의숲 편집부에서 엮은 이 책에는 스님께서 언급한 50권의 책을 간추리고 있다.
각각의 책에 대한 소개와 요약, 그리고 짤막짤막한 인용문은 작년 한 해 동안 내가 읽었던 책들을 다시 정리하고 되새기게 하는 좋은 기회였다.
읽었던 책들이 대부분이었지만 개중에는 어제 읽은 듯 환히 떠오르는 책이 있는가 하면 기억도 가물가물한 책도 더러 있었고, 다시 읽고 싶은 책이 있는가 하면 조금 읽었다는 경험만으로 자족하고 싶은 책도 있었다.  그렇게 한 권 한 권을 다시 정리하는 과정에서 스님의 맑고 향기로운 영혼을 느낄 수 있었다.

"우리가 다 같이 바라는 행복은 온갖 생각을 내려놓고 세상의 아름다움을 바라볼 시간을 갖는 데서 움이 튼다.  우리가 이 순간을 사람답게 살 수 있다면 그 안에 행복은 깃들어 있다.  무엇에 쫓기듯 살아서는 안 된다.  영혼이 미처 따라올 수 없도록 급하게 살아서는 안 된다.  사람은 누구나 행복하게 살 능력을 지니고 있다.  그러한 잠재력을 묵혀 두지 말고 마음껏 발휘해서 세상과 조화를 이루어야 한다." (P.100)

사실 스님께서 언급한 책이 어찌 이 50권에 그치겠는가.
이 책을 기획한 분들의 고민도 깊었을 것이다.  서문에서 밝히고 있듯 책의 선정 기준은 이 시대를 살아가는 한 개인과 공동체가 어떤 삶, 어떤 사회를 지향해야 하며 그 기준과 방향을 정하는 데 어떤 책들을 읽어야 하는가였다고 한다.

"좋은 책은 세월이 결정한다.  읽을 때마다 새롭게 배울 수 있는 책, 잠든 내 영혼을 불러일으켜 삶의 의미와 기쁨을 안겨 주는 그런 책은 그 수명이 길다.  수많은 세월을 거쳐 지금도 책으로서 살아 숨 쉬는 동서양의 고전들이 이를 증명해 주고 있다.  책을 가까이 하면서도 그 책으로부터 자유로워야 한다.  아무리 좋은 책일지라도 거기에 얽매이면 자신의 눈을 잃는다." (P.478)

사람이 책을 만들지만 책은 사람을 만든다고 하지 않던가.
신묘년 새해가 밝은 지 벌써 3일이 지났다.
내가 올해들어 처음으로 읽었던 이 책을 통하여 나는 지난 해 내가 읽었던 책들을 정리하고 그 배움을 갈무리한다.
책에 읽히지 않고 책을 읽을 줄 알아야 한다는 스님의 말씀을 따라 금년에도 내 손에 새로이 들어올 책과의 소중한 인연을 기다려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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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후에 동료들과 산행을 했다.
시무식의 연장선상에서 치러진 행사였고, 결코 짧지 않은 코스였으니 한해 동안 잘해보자는 취지가 무색하게 불평이 터져나왔다.
마뜩지 않아 하는 동료들과는 달리 걷기를 즐기는 나는 조금은 들뜬 기분으로 산을 올랐다.
등산객의 발길에 다져진 눈길을 산행의 초보자들이 오르는 것은 쉽지 않았을 터, 여기저기서 비명과 가쁜 숨소리가 끊이질 않았다.

산에서는 호흡을 고르고 가급적 말을 삼가는 것이 숲과 그곳에 사는 동식물에 대한 예의이며, 산이 내뿜는 평온한 에너지를 호흡할 수 있는 최적의 방책이다.
그러나 무례한 사람들은 거친 말과 행동으로 숲의 고요를 방해하고, 그것도 모자라 그들 위에서 군림하려 한다.  이럴 때 나무 하나하나는 저마다 모공을 닫고 사람들로부터 시선을 거둔다.
건강을 위하여 산을 오르건만 오히려 자연으로부터 나쁜 기운만 받으니 소득은 없고 손해만 보는 셈이다.

산에 오른 지 한시간쯤 지나서부터 푸슬푸슬 눈발이 날렸다.
묵묵히 걷기만 하는 내게 동료들은 한사코 말을 붙인다.  몇몇은 등산로 초입에 앉아 숫제 오를 생각이 없어 보인다.  그렇게 서너 시간을 걸었다.
새벽에도 산엘 올랐으니 오늘은 다섯 시간 남짓 걸은 셈이다.
나른한 피곤이 몰려왔다.  기분 좋은 노곤함.

퇴근 후에 가르치는 아이들은 오늘부터 목요일까지 방학이다.
쉬라고 하면 다들 좋아라 할 줄 알았는데 싫다는 녀석들도 있었다.
굳이 오겠다고 고집을 부린 두 녀석은 지금 자습중이다.
나의 숙소에도 모처럼 고요만이 가득하다. 
세상에서 가장 무거운 것이 눈꺼풀이라더니 나는 안간힘을 쓰며 밀어올리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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