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에게 묻지 말고 삶의 물음에 답하라 - 나를 비우고 깨우는 명상 에세이 60
김영권 지음, 유별남 사진 / 이덴슬리벨 / 2011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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봄이다.
그렇게 드세던 동장군의 기세가 한풀 꺾이고 나니 먼 미래에나 만날 것 같던 봄햇살이 살갑게 다가온다.  이렇게 반가울 수가...
봄나들이를 하듯 한권의 책을 가벼운 마음으로 읽었다.
눈코 뜰 새 없이 바빴던 지난주의 무거운 마음을 벗어던지고 봄날의 여유를 만끽하는 데 독서만한 것이 있을까.  눈을 감으면 따스한 봄햇살이 온 몸에 스르르 퍼져나갈 것만 같다.
볕이 잘드는 곳에 자리를 잡고 읽기 시작한 책이 김영권의 <삶에게 묻지 말고 삶의 물음에 답하라>라는 책이었다.

책의 제목이 먼저 눈에 들어온 이유는 얼마전에 읽었던 빅터 프랭클의 저서 <죽음의 수용소에서>의 한 귀절이 생각났기 때문이었다.  아우슈비츠 수용소에서 극적으로 살아난 자신의 체험을 바탕으로 로고테라피를 창시한 빅터 프랭클은 자신이 그 끔찍한 곳에서 미치지 않고 살아남은 것도 살아야 할 의미를 놓치지 않았기 때문이라고 했다.

20년 넘게 기자 외길을 걸었던 저자가 들려주는 행복의 방법론.  이 책에 실린 60편의 명상 에세이는 자신을 찾아가는 마음의 여행기라고 저자는 말한다.
한가한 휴일의 오후에 어울릴 것 같지 않은 주제.
이렇게 햇살이 좋은데...
갑자기 몰려오는 졸음을 주체하지 못해 깜박 졸았다.  또 다시 건성건성 책장을 넘기고, 봄 햇살 아래 뛰노는 아이들이 까르르 웃고, 그 웃음 소리에 취해 다시 잠이 들고...

나는 문득 행복에 이르는 방법을 말하는 비슷비슷한 주제의 많은 책들을 읽어왔음을 자각한다.  그리고 ’나는 지금 그 방법을 몰라서 행복하지 않은가?’라고 자문한다.
집착과 욕심을 버리고, 현재를 즐기고, 유행을 좇지 말고, 자신의 내면을 들여다보고, 마음이 시키는 일을 하고,  등등 내가 그동안 모아온 방법만으로도 한 권의 책을 쓸 수 있을 성싶다.
그럼에도 나는 여전히 행복의 방법론을 찾아 헤매고, 고개를 끄덕인다.

휴일이 끝나가고 있음을 깨닫는다.
가족과 헤어져 직장이 있는 곳의 숙소로 떠나야 하는 시간이 점점 가까워지고 있다.
생각해보면 나는 적당히 돈도 벌고, 적당히 유행도 좇으면서, 적당히 욕심도 내고, 그러면서 행복하기도 했으면 좋겠다는 식으로 살아왔고 지금도 다르지 않다.
소위 이쪽도 저쪽도 아닌 ’양다리’를 걸친 채, 양쪽 모두를 욕심내고 있다.
어느 것 하나라도 내 손에서 결코 내려놓고 싶지 않은 것이 솔직한 내 심정이다.
작가라면 내게 이렇게 충고할지도 모르겠다.
"언제까지 그렇게 살 수 있을지 두고 보자."라고.

앤소니 드멜로 신부님은 그의 저서 <깨어나십시오>에서 이렇게 말한다.   
"행복은 우리의 본래 상태이다. 사회와 문화의 어리석음에 오염되기 전에 천국이 그들의 것인 어린아이들의 자연적인 상태 그것이다. 행복은 얻는 것이 아니다. 이미 가졌기 때문이다. 이미 가진 것을 어떻게 얻는 다는 말인가? 그런데 왜 우리는 행복을 늘 체험하지 못할까? 무언가 버려야 할 것들이 있기 때문이다. 환상, 야망, 탐욕, 욕심을 버리는 순간 우리가 이미 가진 행복이 살며시 고개를 내민다."라고.

나는 여전히 꿈결 속에서 헤매고, 부족하다 싶은 행복을 욕심내고, 오지 않은 내일을 걱정한다.  정녕 이 미망의 세월을 전복시킬 길은 막힌 건가. 

저자는  “진정 행복한 중년 이후의 삶은 노후를 위한 돈 저축이 아니라 영혼을 위해 저축하고,다시 가슴이 시키는 일을 하는 데 있다. 정말 중요한 것은 통장의 무게가 아니라 영혼의 무게다” (P.312)고 강조한다.  나는 내일쯤 또 다시 행복에 이르는 길을 찾아 코를 박고 글을 읽으며 고개를 끄덕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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류이치 사카모토, 음악으로 자유로워지다
사카모토 류이치 지음, 양윤옥 옮김 / 홍시 / 2010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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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 아닌 다른 사람의 삶을 들여다 보는 일은 다른 행성을 여행하는 것처럼 마냥 신기하기만 하다.  그리고 그 수많은 사람들이 서로 다른 각자의 세상을 살고있다는 것을 생각할 때 나는 한껏 겸손해진다.  뿐만 아니라 자신의 세상을 올곧게 살고 다른 사람들에게 자신이 살아온 흔적을 당당히 들어낼 수 있기까지 내 생활에 얼마나 충실해야 하며 자신의 삶을 얼마나 진지하게 바라보아야 하는지 생각하게 한다.  이러한 자서전은 자신의 삶을 다른 사람의 손에 의해서가 아니라 자신의 손으로 직접 기술한다는 점에서 과장되거나 꾸며지지 않고 솔직하게 씌어진다는 것과그 삶에 견주어 나의 삶을 성찰할 수 있다는 점에서 어떤 자기 계발서보다 유익하다고 말한다면 지나친 과장일까?

그러나 내가 지금까지 읽었던 자서전 중에서 오래도록 기억되는 책은 그리 많지 않다.
언뜻 기억되는 것은 <월든>의 저자 스콧니어링 자서전과 듀크 대학의 교수로 있는 아리엘 도르프만의 회고록 <남을 향하며 북을 바라보다>는 재미와 감동의 면에서 어떤 소설보다 뛰어났었다.
이때부터 나는 자서전에 대한 편견이 사라졌다.  자서전이란 한낱 자신의 위세를 들어냄으로써 정치적 이득을 취하려는 자들이 가장 선호하는 싸구려 도구일 뿐이라는 그동안의 편견을 불식시킴으로써 자서전과 한결 가벼운 마음으로 만날 수 있게 되었다.

이 책의 저자인 류이치 사카모토는 팝스타, 일렉트로닉 음악의 개척자, 실험음악가, 영화음악가, 영화배우, 작가, 환경·평화활동가 등등 그의 이름 앞에 붙여지는 수식어는 너무나 많다.   거의 모든 분야에서 큰 인기, 높은 평가, 이름난 상을 수상하며 내로라 할 명성을 얻기도 했으니 천재라는 말이 과언이 아닐진대, 명성에 비해 그의 자서전은 너무나 진지하다.  
꼼꼼한 주석과 연대별로 정리된 세밀한 기록은 독자들로 하여금 자유로운 영혼의 류이치 사카모토를 잠시 잊게 만든다.  어쩌면 이것이 독자들을 위한 그의 작은 배려일 수도 있겠으나 그보다는 삶을 대하는 그의 자세라고 해야 옳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든다.

’류이치 사카모토’하면 영화 ’마지막 황제’를 가장 먼저 떠올리게 된다.
이주일이라는 짧은 기한 내에 작곡된 마흔네 곡의 영화 음악에 저자는 혼신의 힘을 다하였던 듯하다.  실제 영화에 쓰인 그의 곡은 절반 정도 밖에 안 되었지만 ’마지막 황제’는 그해 아카데미 어워드에서 아홉 개 부문의 상을 휩쓰는 엄청난 결과를 냈었다.
2001년 9월.  세계인이 경악한 9.11테러의 현장에 있었던 그는 압도적인 충격의 이 사건 앞에서 예술은 아예 묵사발이 되었다고 회고한다.  그리고 자신이 추구해온 모든 음악의 원류가 미국의 패권주의, 또는 유럽의 패권주의나 식민지주의에서 비롯되었음을 자각한다.

"그 테러는 분명 모든 사람을 수수께끼 속으로 빨아들인,  해석을 뛰어넘는 이벤트이자 퍼포먼스라고 할 수 있었다.  인간을 단 한순간에 전혀 해석 불가능한 상태에 빠뜨리고 공포라든가 외경 같은 것을 부여한다.  그것은 바로 예술이 지향해온 것이다." (P.203)

3살부터 피아노를 배우고 10살부터 작곡을 시작해서 이날 이때껏 ’음악’이라는 외길을 걸어온 한 예술가의 삶.  그도 젊은 시절에는 그렇지 않았지만, 나이가 들면서부터 그의 관심은 자연과 모든 인간에게 쏠리고 있다.  한 분야에서 어떠한 성취를 이룬 사람들의 모습은 분명 공통 분모가 존재한다.  자신의 관심의 폭을 인류적 차원으로 확대하는 것, 나아가 자신의 관심이 모든 자연으로 향하는 그런 사람들을 우리는 ’거장’이라 부른다.

"인간이 자연을 지킨다, 라는 식으로 우리는 말하곤 한다.  환경문제에 대해 언급할 때, 더욱 그렇다.  하지만 그건 아예 발상 단계에서부터 잘못된 것이다.  인간이 자연에 거는 부하(負荷)와 자연이 허용할 수 있는 한계가 서로 맞아떨어지지 않을 때, 패자가 되는 건 당연히 인간이다.  즉 난처해지는 건 인간이지 자연은 전혀 난처하고 말 것도 없다.  자연의 거대함, 강함에서 보자면 인간이란 정말 한주먹 감도 안 되는 자그마한 존재라는 그 여행 내내 얼음과 물의 세계에서 보내면서 끊임없이 느꼈다.  그리고 인간은 이미 없어도 좋은 것인지 모른다고 생각했다." (P. 229) 

과거에서 현재까지 자신을 정리해서 이야기한다는 것에 적잖은 이질감을 느꼈다는 그는 그렇게 함으로써 자신의 현재 모습에 대해 뭔가 볼 수 있지 않을까 기대했나보다.
나는 그의 음악 "Energy Flow"를 들으며 거장의 삶을 공유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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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세이 분야 주목할만한 신간 도서를 보내 주세요.

지난 날을 가만히 뒤돌아 보면 행복했던 기억 보다는 슬프거나 힘들었던 기억들이 더 많이 떠오른다.  소소한 일상에서 느끼는 작은 행복들을 우리는 너무나 하찮게 여기며 살아가는 것은 아닌지...  또는 행복의 기준이 현대의 경쟁심리에 밀려 부풀려진 것은 아닌지... 

진정한 부자는 평범한 일상에서 행복을 찾는 사람이 아닐까? 

 

 

 

 

우리는 흔히 여행기 하면  여행지의 낭만과 괜스레 센티해지는 감상을 떠올리곤 한다.  이런 주관적 감정이 새로이 여행을 계획하는 사람에게 실망만 안겨주는 경우를 너무도 자주 접하게 한다.  지리 교사라는 안정된 직장과 편안한 일상생활을 하고 있던 한 영국 청년의 자전거 모험기는 여행기의 통념을 일거에 부숴버리는 것은 물론 우리가 중요하게 기억해야 하는 것들에 대한 새로운 시각을 제시한다. 

 자전거를 타고 자신의 두 발로 페달을 밟아 시베리아 마가단에서 영국 런던까지 5만여 킬로미터를 달린 한 영국 청년의 여행기는 극한의 조건에서 견뎌야 했던 치열한 순간들의 기록이다. 

 

 

 

11명의 문인들이 들려 주는 여행 이야기. 

삶에 더해진 또 다른 삶의 현장에서 그들은 무엇을 찾고, 또 무엇을 보았던 것일까?  '자신의 자아'를 찾는다는 거창한 의미는 뒤로 하더라도 현재 우리나라의 대표적 문인 11명이 들려주는 이야기에는 우리가 보지 못했던 뭔가 특별한 것이 있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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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합니다, 감사합니다>를 읽고 리뷰를 남겨 주세요
사랑합니다, 감사합니다 - '아침편지' 고도원의
고도원 지음, 대한항공 사진공모전 수상작 사진 / 홍익 / 2011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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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부분의 직장인들은 자신의 메일함을 열어보는 것으로 하루 일과를 시작하게 된다.
나 역시 다르지 않다.  아침에 출근하면 자리에 앉아 간밤에 들어온 메일을 확인하고 나서야 하루의 업무를 계획하곤 한다.
때로는 반갑지 않은  스팸 메일로 살짝 기분이 상하기도 하지만, 생각지도 않았던 이벤트 당첨 소식이라도 받은 날에는 하루 종일 날아갈 듯한 기분에 휩싸이기도 한다.
가끔 친구 모모의 아버지나 어머니가 돌아가셨다는 슬픈 소식을 접한 날에는 온 종일 우울모드에서 벗어나지 못하기도 하고, 연락이 끊겼던 지인의 소식을 듣고 오늘 당장 만나자는 답신을 보내기도 한다.

이런 갖가지 메일 중에는 제목도 읽지 않고 곧바로 휴지통으로 직행하는 경우도 있다.
그런가 하면 매일 들어오는 메일임에도 늘 반갑게 열어보는 것이 있다.  그것도 수년째 말이다.  그것은 다름 아닌 "고도원의 아침편지" 이다.  
오늘로 회원수가 290만 명을 넘었으니 나와 같은 사람이 참 많기도 하겠구나 하는 생각이 절로 든다.  물론 처음부터 ’아침편지’에 호의적이었던 것은 아니다.
뭔가 노리는 게 있겠지 하는 색안경을 끼고 바라본 것도 사실이고, 지금은 거의 종합 쇼핑몰이 된 ’아침편지’의 홈피가 맘에 드는 것도 아니다.  그러나 알지도 못하는 이가 멀리서 나를 응원하고 있다는 생각을 할 때마다 고맙다는 인사를 아니 할 수 없다.

"감사합니다.
내가 지나온 삶의 발자국들에게, 소리 내어 인사를 건넨 사람들에게, 나에게 미소를 보낸 이들에게, 늘 똑같은 인사를 건네는 동네 이웃들에게, 나의 삶을 구성하는 사람과 사건들에게, 나는 한없이 ’감사합니다’. "
(P.23)

이 책은 10여년을 한결같이 ’아침편지’를 준비했던 작가가 독자들에게 들려주고픈 이야기들을 모아 잔잔하게 적고 있다.  또한 대한항공 사진공모전에서 수상한 우수 작품들이 함께 수록되어 사진과 어우러진 포토 에세이를 읽는 듯한 느낌이다.  
작가의 서문에 이어 1. 손을 내밀어준 당신에게… 사랑합니다  2. 함께 동행해준 당신에게… 감사합니다  3. 같은 곳을 바라봐준 당신에게… 사랑합니다  4. 사랑을 가르쳐준 당신에게… 감사합니다  5. 감사할 줄 아는 사람은… 고도원의 아침편지 중에서 로 구성되었으며, 작가가 일상에서 얻은 생활의 지혜와 책에서 얻은 좋은 글귀들이 작가 자신의 생각들과 잘 어우러져 있다.

"그리고 가끔은, 나도 잘 모르는 내 마음 속으로도 여행을 문득, 떠나보자.  나는 어떻게 살아왔는지, 나의 장점은 무엇인지, 나는 현실과 어떻게 조화를 이루며 살고 있는지......
여행지에서 탁 트인 풍경을 마주했을 때처럼 가슴이 시원해지는 기분을 마음속 여행으로 느낄 수 있을 때, 우리는 누구나 여행가가 될 수 있다."
(P.215)

나는 이런 종류의 책, 자기 계발서와 신변잡기를 다룬 수필의 중간쯤에 위치한 듯한, 갖가지 교훈을 무작위로 주입하려는 듯한, 그러면서도 짤막짤막한 글에 머리를 끄덕이며 쉽게 읽히는 이런 류의 책을 읽노라면 불쑥 이게 무슨 소용인가 하는 생각이 들곤 한다.  내 작은 머리로 그 많은 교훈을 다 기억할 수 없는 것도 문제려니와 실천은 더더구나 엄두를 낼 수 없기에 또한 그렇다.  어쩌면 나의 한계를 인식하는 열등의식에서 비롯된 것인지도 모르겠으나 요즘은 하나의 주제를 다루는 진지한(때로는 전문서적에 가까운)  글이 더 좋아졌다.  나이가 들면 입맛도 변하는 듯 책에 대한 기호도 변하나보다.  하나의 화두를 안고 깊이 사색할 수 있는 고전이 좋아지는 것도 그런 까닭이다.  
그럼에도 이런 종류의 책을 손에서 놓지 못하는 이유는 최소한 책을 읽는 도중에는 ’아!  그래. 있는 그대로의 나를 인정하고, 조금은 더 나를 비우고,  나답게 살자.’하는 생각이 들기 때문이다.  적어도 책이 내 손 안에 들려 있을 때에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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혼자 사는 사람이 가장 두려워하는 순간은 뭐니뭐니해도 자신의 몸이 아플 때가 아닐까 한다.
가족들이 늘 곁에 있을 때는 그들로부터 받았던 작은 배려들이 그렇게 고마운 것인 줄 알지 못한다.  시간 맞춰 약을 먹으라며 약봉지와 함께 물잔을 날라 주는 것, 약을 다 먹을 때까지 곁을 지키며 따뜻한 손으로 이마를 만져주는 것, 혹시 찬바람이라도 들어올까 이불깃을 여며주는 것 등 그 살뜰하고 소소한 몸짓이 없다고 생각할 때 더럭 겁이 나게 마련이다.  그리고 괜한 상상으로 두려움을 키우기도 한다.  '내가 이러다 혹시 아무도 모르게 죽는 것은 아닐까?'라고 생각한다거나 '혹시 중병에 걸려 다시는 일어나지 못한다면 가족들에게 알려야 하나 말아야 하나?' 등 이런저런 상상이 끝도 없이 펼쳐진다.

그제 저녁 퇴근길에 내가 몸이 안 좋으니 하루 쉬자는 말을 아이들 모두에게 전했다.
아이들을 가르치기 시작한 후 처음 있는 일이었다.
저녁도 거른 채 홀로 썰렁한 방에 누워있으려니 처량한 생각도 들고 집 생각도 간절했다.
그렇게 누워 깜박 잠이 들었나본데, 초인종 소리에 놀라 눈을 떴다.
평소에 하루의 반쯤은 텅텅 비어있는 집인지라 찾아오는 사람도 드물었다.  
그런데 이런 늦은 시각에 연락도 없이 찾아오다니...  나는 그 사람이 누군지 몹시 궁금했다. 
'경비 아저씨가 택배를 전해주러 오셨나? '  생각하며 문을 열었는데, 그곳에는 놀랍게도 내가 가르치는 학생 중 여학생 두 명이 서 있었다.
한 학생의 손에는 노란 양은냄비가 들려 있었다.

"선생님 아프신 것 같아 우리가 죽을 끓였어요.  맛은 장담할 수 없어요.  인터넷 뒤져서 처음 해 본 거라서..." 하며 웃었다.  가슴 저 밑바닥에서 뜨거운 것이 치밀어 오르는데 간신히 눌러 참았다.  아이들은 방에 들어서자마자 식기 전에 어서 먹어보라며 호들갑이었다.
아이들이 끓인 흰 죽 몇 숟가락을 간신히 넘기는 사이 아이들은 약은 먹었느냐, 병원은 다녀왔냐, 많이 아프면 출근을 하지 않는 게 어떻겠냐는 둥 끝없이 이어지는 질문으로 적막강산 같던 집안을 갑자기 하이톤의 목소리로 가득채웠다.
아이들은 그렇게 나를 억지로 눕힌 채 한시간여를 재잘대다가 각자의 집으로 돌아갔다.

그날은 가르치는 아이들 중 한명의 졸업식이 있었던 날이기도 했다.
몸이 아프지 않았으면 작은 선물이라도 전해주었을텐데...  
다음날 나는 아이들 덕분에 간신히 줄근할 수 있었고, 일주일의 마지막 날을 탈없이 보낼 수 있었다.  그리고 이틀을 연속으로 쉬겠다 할 수 없어 아이들을 불러 자습을 시켰다.
지금도 여전히 온몸에 열이 오르락내리락 하고 잔기침에 고생을 하고 있지만, '사랑'이라는 명약을 먹은 나는 다음주 월요일이면 환한 얼굴로 그 아이들과 만날 수 있을 것이라 믿는다. 

'얘들아, 너희들이 끓인 죽은 조금 짜긴 했지만 정성만은 최고였단다.  그리고 쑥스러워 말은 못했다만 정말 고마웠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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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nine 2011-02-12 20:2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이들이 선생님에게 그동안의 고마움과 애정 표현을 확실하게 했군요.
사랑의 죽 드시고 몸도 어서 회복되시기를 바랍니다.

꼼쥐 2011-02-13 21:46   좋아요 0 | URL
그래서 더욱 아이들에게 미안해지더군요. 저야 그저 소일거리로 생각하고 하는 일이었는데 아이들이 제게 보여준 정성은 그게 아니어서...
주말동안 집에서 푹 쉬었더니 이제는 많이 좋아졌답니다. 댓글 남겨주셔서 고맙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