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루가 어떻게나 빨리 지나가는지 나는 그저 해가 뜨고 다시 해가 지는 것만을 확인할 뿐 시간의 흐름을 여유롭게 지켜볼 수 없었다.  회사의 밀렸던 업무를 처리하면서 다시 시작된 아이들의 수업을 차질없이 진행하기 위해 동분서주했던 지난 일주일의 시간 동안 나는 고양이 손이라도 빌리고 싶은 심정이었다.  출장으로 근 이십여 일을 비웠으니 아이들은 나에 대한 실망감이 얼마나 컸을까, 생각할 때 피곤하다는 핑계조차 꺼내기 어려웠다.  

다행히도 아이들은 나를 반갑게 맞아주었고, 크게 탈이라도 날 듯 싶었던 몸도 무사히 버텨주었다.
어제는 고등학생들이 모의고사를 치뤘고 '떡 본 김에 제사 지낸다'고 고등학생들의 수업은 하루 쉬기로 했다.  중학생들의 수업을 홀가분한 마음으로 끝냈던 나는 세상 모른 채 잠에 빠져들었다.  아침 여섯 시를 알리는 휴대폰 알람 소리에 잠이 깨었을 때, 밀린 잠을 더 보충하고 싶은 유혹에 몇 번이나 흔들렸다.  운동복을 갈아 입고 산을 오르니 그제서야 잠이 달아났다.  하루 중 내가 가장 여유롭고 편안하게 보낼 수 있는 이 시간은 언제나 짧고 아쉽게만 느껴진다.  한낮의 찌는 듯한 더위와는 달리 선선한 바람과 맑은 공기, 청아한 새소리와 향긋한 솔내음, 지천으로 핀 밤꽃과 흐느적거리는 밤꽃 내음이 코끝을 간지르는 유월의 아침.

모처럼 잠을 넉넉히 잔 탓일까 보는 이마다 내 안색이 좋아 보인단다.
그동안 방치하다시피 비워 두었던 블로그에 짧은 글이나마 올려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동안 읽었던 책들의 서평을 올리는 것은 언감생심, 한동안 글을 쓰지 않았던 까닭인지 마음과 손이 엇박자로 노는 것 같다.  주인 없는 블로그를 다녀가신 모든 분들께 진심으로 사과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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계획에도 없던 출장은 항상 곤혹스럽다.
체류 일정도 잡히지 않은 채 무작정 한국을 떠났던 것이 근 20여일 전의 일이니 떠날 때보다 돌아와서의 밀린 업무를 처리할 일이 더 걱정이다.
출발에 앞서 들었던 바로는 짧으면 2 ~ 3일, 길어야 4 ~ 5일을 넘지 않을 것이라 했다.
그러나 그러한 귀띔은 단지 나와 일행을 안심시키려는 위로에 불과했었고, 도착과 동시에 우리는 그것이 잘못된 예측이었음을 바로 알았다.

하릴없는 대기상태로 4~5일이 흐르자 우리는 서서히 지쳐갔고 귀국 일정이 저만치 달아나는 느낌마저 들었다.  여행을 온 것도 아니니 마음대로 여가를 즐길 수 있는 것도 아니요, 무작정 무료한 시간을 대기상태로 기다린다는 것은 생각보다 힘든 일이었다.  
귀국에 앞서 1주일여의 시간 동안 바쁜 일정에 시달렸고, 나는 엊그제 귀국했다.

너무 지친 탓인지 시차적응이 되지 않는다.
귀국 후 첫 출근.
밀린 업무는 저절로 한숨이 나오게 하고, 그동안 아이들을 가르치지 못한 탓에 수업 계획도 점검해야 한다.   처리할 일을 생각할수록 기운이 빠진다.
아이들은 시험을 줄줄이 앞두고 있다.  6월 중순에는 모의고사, 6월말부터는 기말고사, 그리고 성취도 평가...  이 일을 다 어찌 넘길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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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주에 엄마를 잃은 00이가 씩씩한 모습으로 다시 나의 숙소를 찾아왔다.
겉으로는 그랬다.
그 며칠 사이에 볼살이 쏙 빠져 핼쓱해진 모습에서 그간의 마음 고생을 내심 짐작할 수는 있었지만, 문을 열고 들어오는 아이의 얼굴은 여느 날과 같이 미소를 머금고 있었다. 
그 아이의 갑작스러운 출현에 나 뿐만 아니라 공부를 하던 다른 아이들도 놀라기는 마찬가지였다.
다들 반가운 인사를 건네기보다는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이제 괜찮아?"라는 말로 그 아이의 안부를 묻기에 바빴다.   00이는 아무 일 없었다는 듯 애써 담담한 표정을 지으며 친구들과 반갑게 인사를 나누었고, 나에게도 고마웠다는 인사를 잊지 않았다.

조금 더 일찍 나올 수도 있었는데 그동안 게으름만 늘어서 그랬다며 변명 아닌 변명을 하는 아이의 농담에 웃음보다는 짠한 슬픔이 밀려왔다. 피곤할텐데  이번주까지는 쉬지 그랬냐고 내가 걱정을 하자 여기 나오는 게 더 마음 편할 것 같았다며 웃었다.  그리고는 급히 화제를 돌려 자신이 나오지 않았던 지난 며칠 동안 배운 내용은 친구들에게 물어 스스로 공부를 하고 모르는 것이 있으면 그때 질문을 할테니 내가 자신을 위해 따로 시간을 낼 필요는 없단다.  언제나 그런 식이었다.  나이에 걸맞지 않게 굉장히 어른스러운 말투.

걱정스러워 하는 우리들을 안심시키려는 듯 00이는 서둘러 책을 펼쳤다.
태연한 척 애쓰는 그 아이와는 달리 우리 모두는 00이의 표정을 힐끔거렸다.  들키지 않으려 노력하면서.  어쩌면 희망은 슬픔과 결별하겠다는 작은 의지에서 비롯되는 것인지도 모른다.
다시 희망을 향해 나아가는 어린 00이의 얼굴에서 나는 삶의 의미를 배웠다.

아카시아 향기 물씬 풍기는 아침의 산책길에서 나는 오늘 회사에 제출할 기안서 문구를 생각했다.  00이가 대학에 진학할 때 회사 차원에서 장학금을 지급해 줄 수 있는가 하는 문제를 정식으로 회사에 묻고 싶은 것이다.  나의 바람처럼 그 기안이 수용될지의 여부는 지금으로서는 알 수 없다.  다만 00이의 꿈을 응원하고 싶을 뿐이다.  오지랖도 넓다는 비아냥도 있을 수 있겠지만 나는 기꺼이 감수할 생각이다.

조만간  00이의 아빠도 만나봐야겠다.
만날 술만 드시는 그 아이의 아빠가 아이들을 위해 자제해달라는 내 부탁을 어떻게 받아들일까?  사실 조금은 두렵고 마냥 피하고만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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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nine 2011-05-20 21:3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그 학생 참 대견하네요. 오기 전에 나름대로 얼마나 마음을 다지고 다졌을까요. 꼼쥐님과 친구들의 관심과 애정이 큰 힘이 될 것 같아요.
꼼쥐님 정말 아무나 못하는 일 하고 계셔요. 위에 굵게 표시해주신 문장의 '희망'은 '의지'에서 시작된다는 말씀, 공감합니다.
아카시아 향기가 진하게 풍겨오는 요즘입니다. 달콤한 냄새에 잠시 취해보는 그 몇 초가 싫지 않아요.

꼼쥐 2011-06-16 14:10   좋아요 0 | URL
그동안 바쁘다는 핑계로 한동안 블로그를 비웠던 탓에 이렇게 뒤늦은 답글을 달게 되었네요. 아이들은 우리 기성세대가 생각하는 것만큼 그렇게 나약하지만은 않더군요. 저도 많은 걸 배우고 있답니다.
 
건투를 빈다 - 딴지총수 김어준의 정면돌파 인생매뉴얼
김어준 지음, 현태준 그림 / 푸른숲 / 2008년 11월
평점 :
품절


김어준, 이름만큼이나 특이한 사람이다.
우리나라 교육 현실에서 어떻게 그런 사람이 만들어졌을까 하는 생뚱맞은 의심부터 하게 된다.  그의 인생행로와 그 과정에서 정립된 가치관은 일반인의 그것과는 사뭇 다르다.  그래서 사람들은 그의 말 한마디에 더 열광하는지도 모르겠다.  일종의 대리만족이요, 억눌렸던 감정의 카타르시스라고나 할까?  나도 그랬다.

이 책을 읽게된 결정적 이유는 그의 말이 모두 '개구라'는 아니라는 데 있었다.
물론 나와는 상당한 거리감이 있는 사람이지만 (우선 외모부터 맘에 들지 않는다.  텁수룩한 머리털과 콧수염도 그렇고) 그의 쾌도난마식 인생 상담은 극과 극의 평이 이어질 것임은 분명해 보인다.  물론 작가 본인은 그런 평에 관심도 두지 않는 쿨한 성격의 소유자로 보이지만 독자의 관점에서 속 시원함을 느끼기보다는 약간의 위험을 염려하게 된다.

'딴지일보'의 총수이자 자칭 '지식인'이라 주장하는 작가의 생각은 의외로 깊다.
이 책은 작가가 신문에 기고했던 글들을 편집해 모아놓은 책이다.  글은 질문과 답, 인생에 대한 Q & A 형식으로 총 5장으로 구성되어 있다.
  1. 나(삶에 대한 기본 태도)
  2. 가족(인간에 대한 예의)
  3. 친구(선택의 순간)
  4. 직장(개인과 조직의 갈등)
  5. 연인(사랑의 원리)

모든 사람이 그렇지만 우리는 항상 선택의 갈림길에서 고민이 깊어지고, 어느 것 하나도 포기하고 싶지 않은 지나친 욕심이 우리의 선택을 잘못된 길로 인도한다.  이런 고민들에 대한 해답은 나이가 든다고 하여 명쾌하게 내릴 수 있는 성질의 것이 아니다.  삶의 과정에서 만나는 소소하고 구태의연한 질문들, 이를테면 학창 시절에는 이성 또는 성적에 대해 고민하고, 직장생활을 할 땐 업무능력에 대해 고민한다.  집에서는 가끔 가족이 부담스럽거나 효를 다하지 못하는 것에 죄스러워한다.  연인 사이에서는 사소한 오해나 제3의 인물의 등장에 따른 고민 등이 있을 수 있다.

사실 이런 고민들이야 누구나 하는 것이고, 새삼스러울 것도 없지만 그렇다고 하여 대답마저 쉬운 것은 아니다.  우리는 전통적으로 이런 고민에 대한 문제 해결의 방식을 교육받지 못했다.  아니, 어쩌면 문제 제기도 어려웠을 것이다.  그저 참고 인내하다 보면 잘 사는 날이 올 것이라고만 배웠다.  아무개의 아들로(또는 딸로) 태어난 이 땅의 사람들은 자신의 의사와는 무관하게 정해진 코스를 따라 의심없이 사는 것만이 최선인 줄 알았다.  그 길에서 조금이라도 벗어나면 개망나니요, 상종 못할 인간이 되고 만다.  하기에 이런 고민들은 가슴에 묻고 오직 자신의 능력 부족을 탓해야만 했다.

한마디로 우리는 '자기 객관화'에 지극히 서투르다.
작가는 이 점을 맹렬히 파고든다.  그리고 독자에게 권한다.  자신을 물끄러미 위에서 아래로 바라보라고.  그러면 자신이 어떤 사람인지 알게 된다고.
'사람은 타자의 욕망을 욕망한다'고 했던가!  
우리는 내가 누구인 줄도 모른 채 남의 기대를 충족시키고자 아등바등 살아가고 있다.  작가는 뒤를 돌아보라고 말한다.  그의 말대로 인생 700년 사는 거 아닌데, 부모에 대한 기대충족시키고, 애인에 대한 기대충족시키고 주변사람들에 대한 기대를 먼저 충족시키고 나면, 내 스스로 만족하는 삶은 언제 찾을 것인가.

결국 자신이 원하는 대로 살라는 말인데 이게 더 어렵다.
철저한 자기 성찰과 자기 인식에도 불구하고 자신이 정말로 원하는 길로 들어설 수 있는 용기를 가진 사람은 많지 않다.  타인의 시선을 의식하지 않는 것까지야 어찌어찌 할 수 있다 치더라도 자신이 살아온 모든 관계의 부정, 또는 타인에게 형성된 나의 이미지의 파괴를 실행할 단계에서는 으레 뒤로 한 발 물러나게 마련이다.  이런 상태에서는 단 한발짝도 앞으로 나아갈 수 없다.  내가 오른팔에 그러쥔 떡을 미련없이 놓으려면 그 아니 아깝겠나?

결국 첫 단추가 중요한 것이고, 이미 첫 단추를 잘못 꿴 사람들은 '운명이다' 생각하고 살 수밖에...  어떤 자기비하나 패배의식 없이 현재의 나를 즐기는 방법을 찾는 것이 더 현명할 듯 싶다.  어쩌면 대다수의 사람들에게 있어 작가의 답변은 실행이 불가능한, 또는 한참 버거운 것이겠으나 속은 시원하다.  역시 김어준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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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의 날씨는 더할 수 없이 좋았다.
그래서인지 아침에 운동을 하는 사람들이 많이 늘었다.
날씨가 풀리자 서둘러 운동을 결심했던 사람들은 벌써 그 기세가 꺾였는지 아침 등산로에서 보이지 않고, 며칠 사이에 큰 결심을 하고 운동을 새로 시작한 사람들이 눈에 띈다.
자연도, 사람도 하루가 다르게 변하는 계절.

운동을 시작하기에 가장 적합한 계절은 동짓달 한나절만큼이나 짧은 초가을 무렵과 지금 이맘때쯤이 아닐까?  사람들은 겨우내 불린 체중을 겨우겨우 감당하며 너도나도 봄산을 오른다.
그러나 사시사철 운동을 하는 나와 같은 부류의 사람들에겐 이 계절이 전혀 마뜩지 않다.
아침에 불어오는 선선한 바람과 나날이 짙어가는 녹음은 그저 반갑지만, 새로이 등장한 신참(?) 등산객의 왁자한 소음에 오롯이 즐기고픈 계절의 낭만을 송두리째 빼앗긴 느낌이 들기 때문이다.  그럴 때, 이 짧은 계절의 금쪽같은 시간이 마냥 아쉬울 수밖에 없다.

며칠 전의 일이었다.
언제나처럼 아침에 산을 오르는데 산의 초입에서 다른 날과는 달리 까치 소리가 요란했다.
무슨 일인가 싶어 근처를 둘러보니 이제 막 비상을 연습하는 어린 까치가 바닥에 떨어져 있었다.  나는 안쓰러운 마음에 그 새끼 까치를 집어 들어 나뭇가지에 올려놓았다.  그러자 높은 데서 지켜보던 어미 까치는 내가 마치 제 자식을 금방이라도 해칠까 두려웠는지 악을 쓰며 울어댔다. 나는 괜한 걱정을 끼쳤다 싶어 서둘러 그 자리를 떠났지만, 내가 어미 까치의 시야로부터 멀리 사라질 때까지 까치의 울음소리는 멎지 않았다.

그로부터 며칠이 지났건만 오늘 아침에도 까치는 나를 보자 큰 소리로 울어댔다.
나는 괜히 머쓱해져서 바닥만 보고 걸었다.  내가 산의 중턱을 오를 때까지 따라오던 까치는 그제야 원래의 위치로 날아가는 것이 아닌가.  한번의 괜한 참견이 까치와 나 사이에 깊은 앙금으로 남은 듯하여 미안한 느낌마저 들었다.

우리는 자연을 대할 때 항상 인간의 입장에서 바라보는 경향이 있다.
아무런 도움도 필요치 않은데 괜한 참견을 하여 긁어 부스럼을 만들었던 나처럼, 자연을 자연 그대로 놔둔 채 그저 멀리서만 바라보면 좋을 것을 인간의 손길이 한번이라도 더 닿아야만 나아질 수 있다고 믿는다.  이런 인간의 오만함이 내 유전자 속에도 깊이 뿌리박혀 있음을 새삼 느낀다.  자연은 인간의 손길이 미치지 않을수록 더욱 빛난다.

오늘도 산을 오르는 초보 등산객들의 왁자한 소음에 나는 그들을 대신하여 고개를 숙인다.
우리는 진실로 자연 앞에 고개를 들 자격이 없다.
언제쯤이면 우리는 대자연의 품에서 겸손한 자세로 예의를 갖출 수 있을까?
그날이 정녕 오기나 할런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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