종교를 주제로 말하거나 글로 옮기는 것은 언제나 조심스럽다.  특히 우리나라에서는 더욱 그렇다.  언제부터 그리 되었는지는 알 수 없으나 자신이 믿지 않는 종교를 말할 때 눈에 쌍심지를 켜고 언성을 높이는 모습은 이제 우리 주변에서도 흔히 볼 수 있는 풍경이 되었다.  그렇다면 우리 국민성이 호전적이라서 그럴까?  어릴 적 국사책에서 우리 민족은 평화를 사랑하는 민족이라고 귀에 못이 박히도록 배워왔는데 말이다.
 

오늘 낮에 잠깐의 짬이 나서 휴가도 못 다녀온 몇몇 학생에게 연락을 하여 내 차로 가까운 근교에 외출을 나갔었다.  비가 오락가락 하는 궂은 날씨임에도 차에 탄 녀석들은 뭐가 그리 좋은지 저희들끼리 깔깔대며 웃고 떠드는 통에 귀가 먹먹할 지경이었다.  주말을 앞둔 금요일 오후에 회사 밖으로 외출을 나온 것도 참으로 오랜만의 일이다.  시간도 늦었고 날씨도 궂은 탓에 가까운 국립공원을 들러 요기나 하고 돌아올 요량으로 1시간 가량 차를 몰아 도착한 시각이 오후 3시.  여섯 시 전까지는 내 숙소로 돌아가야 하니 서둘러야 한다.
 

그쳤던 비가 다시 내렸다.
날씨 탓인지 휴가철인 지금도 주차장이 휑하다.  차에서 내려 산책로를 따라 15분여를 걸었다. 신라시대에 창건되었으나 임진왜란으로 모든 전각이 소실되어 조선 인조 때 중건되었다는 고사찰을 둘러보고 주차장 근처의 식당에서 간단한 요기를 하기로 하였다.  인적이 드문 사찰의 일주문 앞에 도착했을 때 한 아이가 갑자기 멈춰 서더니 경내로 들어가기를 한사코 거부했다.  이유인즉슨 자신은 교회를 다니는 까닭에 절내로 들어설 수 없다는 것이었다.  이런 난감한 일이...  그 아이를 그렇게 남겨두고 다른 아이들과 서둘러 경내를 돌았다.
 

마음이 급해 수박 겉핥기 식으로 둘러보았던지라 비에 젖은 사찰에서 맛보는 고즈넉함은 애저녁에 글렀다.  은근히 부아가 치밀었지만 일주문 밖에서 이제나 저제나 하고 우리가 나오기를 기다릴 아이를 생각하니 은근히 미안한 마음도 없지 않았다.  조금 더 있다가 가자는 아이들을 억지로 돌려 세워 기다리던 아이와 함께 식당으로 향했다. 
 

아이들이 좋아하는 음식을 시켰다.
특별한 음식도 아닌데 아이들은 맛있게 먹는다.  나는 사찰 밖에서 기다리던 아이에게 우리나라의 무속신앙을 들려주었다.  
 

"옛날에 우리 선조들이 믿었던 신은 가정에서 숭상하는가택신(家宅神)이 있고, 부락에서 숭상하는 부락신(部落神)이 있고, 무속에서 숭상하는 무신(巫神)과 그 밖의 잡신 등이 있었대. 예를 들면 집안 곳곳에도 신이 있다고 믿었던 선조들은 최고 대장신이 대들보에 성주신, 큰방에 삼신, 부엌에 조왕신, 장독대에 천룡신, 마당에 터주신, 우물에 용왕신, 광에 업신, 뒷간에 측신, 대문에는 문간신이 자기 구역을 정해 놓고 길흉화복을 관장했다고 믿는 식이지.  네가 믿는 하느님이 부처님과는 엄연히 다른 것이지만 우리네 조상들은 곳곳에 신이 있다고 믿었으니 네 방식에 따른다면 너는 어느 곳에도 발을 딛어서는 안 되지 않겠니?  그리고 내 생각으론 네가 믿는 하느님이 최고라고 믿는다면 너는 어느 곳에서라도 두려워하거나 마음 속에 꺼림직한 느낌이 들지 않아야 된다고 봐." 
 

아이는 한동안 말이 없었다.  교회의 누군가에게서 들었던 말들을 곰곰 생각하는 듯했다.
"만일 네가 믿는 하느님이 아닌 다른 신을 두려워한다면 너는 하느님을 잡신 취급하는 것과 같단다.  하느님이 그보다 못하다고 믿으니까 두려워하는 게 아닐까?  네가 정말로 하느님이 최고라고 믿고 하느님 말씀이 최고라고 믿는다면 너는 그 어느 곳에 서 있더라도 두렵지 않아야 하고, 다른 종교를 믿는 그 누구와도 논쟁하지 않아야 한단다.  우리 선조들뿐만 아니라 전 세상 곳곳에는 그 지역 사람들이 믿었던 신이 있단다.  네 논리라면 너는 어느 곳도 갈 수 없지 않겠니?  진정한 믿음은 네 마음 속에 있는 것이지.  믿음이 확고하면 외부의 어떤 것으로도 더럽혀지지 않고, 성경과 다른 어떤 말을 듣고 네가 반박하지 않았다 하더라도 네 믿음이 약해지는 것은 아니란다.  만일 네가 스스로 어떤 징크스를 새로이 만들거나 다른 종교를 믿는 사람과 트집을 잡아 싸우려 한다면 그것이 바로 미신이란다.  현대인들이 과거 우리 조상들의 무속신앙을 미신이라고 치부하듯이."
 

그 아이가 내 말을 다 알아들었다고는 생각지 않지만 이번 일을 계기로 아이는 자라면서 종교의 참뜻을 생각하게 되리라고 믿는다.  잘못된 종교의식은 도처에 미신을 만든다.  그리고 그 미신을 진리인 양 순진한 아이에게 역설하는 이들도 있다.  안타까운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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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스피지수가 엿새만에 400포인트 가까이 폭락했다.   나는 오래 전에 주식시장에서 손을 떼었지만 주변에서 들려오는 개인 투자자들의 탄식이 들리는 듯하다.  9일 종가 기준으로 삼성전자 시가총액은 106조원인데 반해 엿새간의 급락으로 국내 주식시장에서는 유가증권시장과 코스닥시장 모두 합쳐 230조원의 자금이 증발했다고 하니 삼성전자를 2개나 사고도 남는 액수가 사라진 셈이다.

 전 세계에 몰아치고 있는 'R'(recession)의 공포는 백약이 무효한 듯 보인다.  기업이 성장하기 위해서는 무엇보다 소비가 증가해야 하는데 미국의 리먼 브라더스 사태 이후 전 세계의 국가는 천문학적인 돈을 쏟아부었음에도 소비의 증가세는 나아질 기미를 보이지 않았다.  그렇다면 이를 극복할 대책은 무엇일까?  내가 생각하기에 뾰족한 대책은 없어 보인다.  그저 담담히 수긍하고 지켜보는 수밖에.  각국의 정부도 마땅한 대책이 없다는 데 그 고민이 깊어지는 모습이다.

 나는 문득 이러한 상황이 중세시대에 창궐했던 페스트의 확산과 그 양상이 비슷하다고 느꼈다.  역사적으로 볼 때 중세 유럽인구 3분의 1의 목숨을 앗아간 흑사병(페스트)이나 아즈텍 제국의 원주민을 몰살시켜 스페인의 아메리카 대륙 정복을 이끈 '대역병',서구 제국주의 세력의 확산에 따라 아시아 각국에서 창궐한 콜레라와 이질 등이 꼭 부정적인 결과만을 가져왔던 것은 아니다. 

히말라야 산맥에서 발원한 흑사병은 중국 윈난 지역과 미얀마에서 창궐한 뒤 몽골군과 함께 중앙아시아 초원을 강타했고 이어 유럽을 휩쓸었다. 흑사병은 유럽대륙에서 1347년부터 1350년까지 4년 동안 전체 인구 수를 3분의 1 정도 줄였다고 한다.  당장에라도 말세가 닥칠듯한 극단적인 공포에 휩싸이게 했던 페스트는 당시의 유럽인들에게 무분별한 도시 확장과 환경오염의 결과가 얼마나 무서운지를 잘 보여주었다.

 그러나 페스트로 인한 유럽 인구의 감소는 수도원을 짓기 위한 무분별한 삼림파괴와 도시화, 인구 증가로 인한 식량부족과 같은 여러 부정적인 면을 일소하는 계기가 되기도 했다.  어쩌면 자연은 인간이 저지른 잘못을 잔인한 모습으로 응징하고, 원상으로 회복하고자 하는 자정 능력을 갖고 있는지도 모른다.  

 역설적이게도 12 ~ 13세기에 상업이 발전하면서 육,해로를 통한 이동과 교역이 활발해진 것이 오히려 페스트의 신속한 확산을 도운 꼴이 되고 말았다는 점은 재밌다.  작금의 사태는 오히려 그때보다 엄청난 과학기술의 발전을 기초로 그 전파 속도는 그야말로 눈 깜짝할 사이에 이뤄지고 있다 하겠다.  그런 측면에서 글로벌화는 반드시 좋다고만 얘기할 수 없는 이중적인 모습으로 비춰진다. 

흥망성쇠의 자연법칙은 어느 것이라도 예외가 없다.  

그동안 우리가 누렸던 물질적 풍요는 소비증가의 한계를 바라보는 기업 경영인과 정부관계자의 한숨과 함께 쇠락의 길로 접어든 듯하다.  따지고 보면 세탁물을 위에서 넣는 방식이나 옆에서 넣는 방식이 기능상으로 무에 다른가?  우리는 그동안 '광고'라는 무언의 협박자에게 이끌려 이유도 없이 소비를 증가시켜 왔던 것이다.  그에 편승하여 성장했던 각국의 기업은 그 성장이 영원할 것처럼 믿어 의심치 않았다.  우리는 지금 그 허상을 보는 것이다.

 

그렇다면 우리는 지금 무엇을 준비하여야 할까? 

내 생각엔 어려웠던 우리의 과거로 되돌아 가 그때의 인내력을 배우고, 앞으로 다가올 어려움을 겸허히 받아들이는 것이 좋을 듯하다.  힘든 겨울을 한동안 겪다 보면 언젠가 따뜻한 봄날이 오지 않겠나.  그것을 비록 우리 세대에는 볼 수 없을지라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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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아간다는 것은 커다란 말뚝에 자신의 몸을 고무줄로 묶고 자신이 앞쪽이라고 믿는 방향을 향해 전력으로 내닫는 일이라는 생각이 든다.  이 세상의 모든 사람은 자신의 줄이 그 말뚝에 꽁꽁 묶여 있다는 사실도 모른 채, 오직 앞을 향해 내닫는 일에만 몰두할 뿐 언젠가 자신의 한계에 도달하면 고무줄의 탄성에 의해 자신이 출발했던 지점으로 되돌아 갈 수밖에 없음을 모르는 듯하다.  그렇게 내동댕이쳐지듯 말뚝을 향해 되돌아 올 때 사람들은 그제야 남보다 빨리 달린다는 것이 무의미했었음을 깨닫는다.

 
나는 내게 허락된 고무줄의 길이를 알지 못하지만 혹시 '이게 끝이 아닐까?'하는 의심으로 늘 조심하곤 한다.  남들처럼 허무하게 제자리로 되돌아가는 것을 원치 않기 때문이다.  아주 가끔은 고무줄의 끝이 어딜까 하는 호기심에 한껏 내달리고 싶은 적도 있었지만, 마침내 그 끝에 이르러 내 몸을 옭죌 고통을 생각할 때, 그리고 고통 속에서 한계에 다다른 자의 절망을 생각할 때, 오히려 내게 주어진 범위 내에서 유유자적하는 편이 훨씬 낫겠다며 마음을 고쳐먹는다.

 
어쩌면 내게 허락된 고무줄의 끝은 시지프스의 신화에 나오는 높은 바위산의 꼭대기일 수도 있고, 그 능선까지일 수도 있겠다.  그러나 지금으로선 내 능력으로 다다를 수 있는 한계에 이르고 싶은 생각은 눈꼽만치도 없다.  남들은 나를 일러 패배주의자라고 말할지도 모른다.  그러나 나는 지극히 낙천주의자요, 내게 주어진 에덴 동산에서 허락된 시간을 맘껏 즐기고 싶은 자유주의자라고 당당히 말할 수 있다.  다만, 나 자신을 긍정하는 만큼, 나를 묶어 둔 신에 대해 조금도 원망하지 않는 삶을 살았으면 하는 것이 나의 바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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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제를 향해 걷다
야마오 산세이 지음, 최성현 옮김 / 조화로운삶(위즈덤하우스) / 2006년 11월
평점 :
구판절판


휴가 기간에 조용히 앉아 책을 읽은 것도 참으로 오랜만의 일이었다. 
아내와 아들은 처제 가족과 함께 봉평으로 여행을 떠났다.  같이 가자고 권하지 않았던 것은 아니었지만 선약이 있었던 탓에 나 혼자 집에 남기로 한 것인데, 마음 한켠에는 홀로 있을 때의 "자유"가 그리웠는지도 모른다.  새벽부터 부산을 떨던 아내와 아들이 썰물처럼 빠져나가자 집안에는 괴괴한 적막감이 감돌았다.

 거실에 덩그러니 놓인 소파, 정돈되지 않은 게으름이 유혹하듯 나의 시선을 붙잡는다.
흐트러진 옷가지며 먹고 난 그릇들을 거듬거듬 치우고 나니 그것도 일이라고 등줄기에 땀이 밴다.  야마오 산세이의 산문집 <어제를 향해 걷다>를 읽었다.  법정스님의 추천도서였던 <여기에 사는 즐거움>이란 책을 통하여 작가를 처음 알게 되었는데 그렇게 좋을 수가 없었다.  화려하지 않은 그의 글에 홀딱 반했던 나는  그간 몇 번이나 작가의 다른 작품을 읽어야겠다 마음 먹었었다.  그러나 그때 뿐, 기회는 쉽게 오지 않았다.

 야마오 산세이의 글은 싱그런 바닷바람을 가득 머금은 듯 청량한 기운이 머리를 맑게 한다.  좋은 책은 다 읽은 후의 느낌이 맑다.  독서를 마쳤을 때, 몸도 마음도 한결 가뿐해진 느낌이라면 그 책은 분명 좋은 책이다.  야마오 산세이는 그래서 좋다.  "물기를 머금은 따뜻한 흙, 맑고 찬 물, 숲을 건너가는 풍요로운 바람, 깊은 숲, 황금색 궁전인 불. 그것 없이는 우리가 살아갈 수 없는, 이 세상 최고의 것"이라 믿고 따른 시인, 농부 겸 철학자였던 야마오 산세이.  땅에서 태어나고, 땅 위에 아무 것도 세우지 않고, 다만 땅과 함께 살고, 땅으로 돌아가는 세상을 전 생애 동안 추구했던 작가는 서른아홉의 나이에 도쿄에서 아주 먼 남쪽 작은 섬 야쿠시마의 폐촌으로 이주하여 2001년 8월 예순셋으로 세상을 떠날 때까지 명상과 수행으로 일관하며 구도자와 같은 삶을 살았다.

 오후가 되자 아내로부터 문자가 왔다.
지금 봉평은 초가을 날씨처럼 덥지도 않고 환상적이란다.  아들녀석도 그렇게 좋아할 수가 없단다.  아내의 들뜬 표정이 눈에 선하다.  여기 걱정하지 말고 맘껏 놀다 오라고 답장을 보냈다.  봉평은 내가 태어난 횡성에서도 그리 멀지 않은 곳이다.  어렸을 때 읽었던 이효석의 소설 <메밀꽃 필 무렵>에 나오는 장돌뱅이 허생원과 동이가 오가던 봉평장 과 대화장 진부장 등은 부모님으로부터 늘 듣고 자랐던 탓에 고향처럼 느껴진다.
 

"본래 고향이란 산이 있고, 강이 있고, 평지가 있고, 바다가 있고, 거기에 사람이 끝없이 이어서 사는 것을 이르는 말에 다름없다. 어느 곳에서든 깊게 산다는 것은 힘든 일이 없다는 뜻이 아니다. 고통스러운 일 또한 물처럼 흘러간다. 흘러가며 그치지 않는다. 하지만 그 밑바닥에 또 하나의 물의 진실이 있다. 그것은 물은 흐르고 있다는 진실이다. 그 진실은 영원히 멈추지 않고 있다.”

 야마오 산세이의 글에선 주인 없는 미래를 향해 성마르게 초인종을 눌러대는 현대인의 모습은 찾아볼 수 없다.    인간 존재의 본질인 자연, 그것을 하루라도 제대로 배우도록 하는 것이 아이들에 대한 나의 책임이라고 여기고 있다는 작가의 확고한 신념이 나를 주눅들게 한다.  부드러운 땅을 딛고 섰을 때 아내도, 아들도 그렇게 좋아하는 것을...  나는 일 년에 두어 번 선심쓰듯 산과 강, 자연의 얼굴을 선을 뵈어주는 것이다.  그야말로 직무유기랄 수밖에.  아들은 지금 아비의 고향 어드메쯤에서 영혼의 숨소리를 들으며 걷고 있을 것이다.

  “우리는 내일을 향해 걸을 수 있는 것처럼 어제를 향해서 걸을 수 있다. 시간이 한 방향으로만 흐른다는 것은 이 시대의 큰 착각이자 선전에 지나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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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은 어디를 가나 숏팬츠를 입은 여자들 일색이다.
그 모습이 보기 좋다거나, 보기 민망하다는 식의 호불호를 떠나 '대량생산, 대량소비'의 모습을 이제는 사람들에게서도 보게 되었구나 하는 생각이 들어 씁쓸할 뿐이다.  그런 모습은 유행에 민감한 어린 학생들에게만 나타나는 것이 아닌 듯, 다 큰 아이를 하나쯤 두었음직한, 나이 지긋한 여인도 그 대열에 동참하는 것을 쉽게 찾아 볼 수 있다.

 현대 물질문명의 모습은 일상의 어느 곳에서나 볼 수 있고, 그것이 새삼스러운 것도 아닌데 굳이 내가 이런 말을 꺼낸 것은 따지고 보면 나의 오지랖일 수도 있겠으나 내가 그런 차림의 여자들을 보면서 들었던 생각은 마치 하나의 공장에서 일률적으로 찍어낸 듯한 인간들이 로봇처럼 거리를 활보하고 있는 것은 아닌가 하는 착각이 들어서이다.

 며칠 전 친구가 운영하는 식당을 들렀다.
다니던 직장에 갑자기 사표를 낸 친구는 주변의 우려와 만류에도 아랑곳없이 식당을 개업했다.  퇴근 후에는  좀체 짬을 내지 못하는 탓에 개업식 초대에도 응하지 못했었다.  미안한 마음도 있고 해서 한가한 점심시간을 택해 잠시 들른 것인데 신장개업을 한 식당이라고는 믿기지 않을 정도로 손님이 없었다.  친구의 얼굴에는 수심이 가득했다.  걱정도 되고, 친구의 기분도 풀어줄 겸 해서 "한복 입은 사람을 출입금지 시켰던 어느 호텔의 노이즈 마케팅처럼 너도 숏팬츠 입지 않은 사람은 출입금지라고 현괸문에 써 붙여봐.  돌 맞을지도 모르지만 검색어 순위에 들을지도 모르잖아?"했더니 친구는 정색을 한다.  농으로 던진 말인데 친구는 정말 그렇게라도 하려고 했었나 보다.  "잘 되겠지.  기운 내."하는 인사로 친구와 헤어졌다.

 겉모습이라도 같아져야 사람들과 어울릴 수 있다는 생각은 외로운 현대인의 공통된 모습이다.  마음으로 다가가는 방법을 모르니 오직 겉모습에 의지해 친구를 사귈 수밖에.  친구도 얼마 전에는 말끔한 양복 차림으로 그들과 닮아 있었을 때는 그렇게 우울해 보이지는 않았다.  그러나 그 옷을 벗은 지금의 모습을 본인은 외롭다고 느끼나 보다.  나조차도 너와 나를 구분할 수 없는 이 가엾은 현실에 절망하지 않을 수 없다.  몰개성화가 당연시되는 사회에서 다양성을 인정하라는 것은 어쩌면 헛된 구호일지 모른다.

 소비 중독증에 빠진 현대인의 몰개성화는 마치 제복을 입은 군인을 연상시킨다.
예비군 훈련을 받아본 사람은 누구나 공감하는 이야기지만 평상시에 멀쩡하던 사람도 제복만 입으면 광기가 발동한다.  누가 누구인지 모르게 하는 제복의 힘은 억눌렸던 본능을 맘껏 분출하게 하는 것이다.  지나가는 아까씨를 향해 휘파람을 불거나, 다른 사람의 시선을 의식하지 않고 소변을 보는 모습은 광기 어린 모습 중에 비교적 약한 것에 속한다.

 언젠가 우리는 숏팬츠를 입은 한무리의 여인들이 지나가는 남자를 향해 휘파람을 날리는 모습을 심심찮게 보게 되는 것은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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