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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처음' 또는 '첫-'이라는 말은 언제나 설레임과 흥분으로 사람을 달뜨게 한다.

13기 신간평가단!   

유난히 길었던 장마가 끝나고 이제는 본격적으로 더위를 대비해야 하는 시기.

더위를 잊고 오롯이 책에 빠져들 수 있는 그런 책을 만나고 싶다.

 

 

생일 선물로 책을 주던 시절이 있었다.

책장의 여백에 서툰 마음을 글씨로 담아 낯을 붉히며 수줍게 건네주던 순수의 시절을 기억한다.  아는 것보다는 모르는 게 많았던 시절, 남는 것보다는 부족한 게 많았던 시절이었다.  퀴퀴한 곰팡내가 위안이 되고, 용기가 되었던 시절이 있었다.  낡고 오래된 책에서는 그 시절의 냄새가 난다.

 

 

 

 

 

 

 

 

성석제의 책을 읽으면 어느 순간 마음의 주름이 활짝 펴지곤 한다.  세상살이가 아무것도 아닌 것처럼 느껴지는 기분, 성석제의 글은 그래서 좋다.  우울하거나 깊이 가라앉는 기분은 그의 글에서 읽을 수 없다.  어쩌면 이 책은 베르나르 베르베르의 <상상력 사전>과 비슷할지 모르지만 설령 그렇더라도 그의 글은 분명 다를 것이라 믿는다.

 

 

 

 

 

 

 

 

 

 

 

언젠가 피터 메일의 <나의 프로방스>를 읽은 적이 있었다.  단 한번도 가본 적 없는 그곳에 마음이 끌렸던 이유는 딱히 '이것이다'말할 수 없지만, 마음 한 구석에는 아련한 향수처럼 남았다.  불문학자 김화영 교수의 번역본을 여러 권 읽었지만 정작 그의 책은 기억에 없었는데, 그가 청춘을 보냈던 프로방스를 노교수가 되어 다시 찾아 감회와 여정을 책으로 엮었다니 반갑기 그지없다. 

 

 

 

 

 

 

 

 

나의 학창시절은 헤르만 헤세의 '계절'이었는지도 모른다.  그로 인해 고민하고, 그로 인해 아팠고, 밤잠을 설치며 한동안 서성였던 기억.  헤르만 헤세는 내게 그런 작가였다.  <정원에서 보내는 시간>을 읽는다는 것은 내게는 청춘의 시원을 더듬는 일일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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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08-05 23:33   URL
비밀 댓글입니다.

꼼쥐 2013-08-06 09:00   좋아요 0 | URL
아~~그랬었네요. ^^
고맙습니다. 임시저장을 했다가 이어 썼더니 그렇게 되었나봐요. ㅎㅎ

2013-08-06 15:04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3-08-06 19:23   URL
비밀 댓글입니다.

리즈 2013-08-06 16:4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13기 신간평가단 안정숙 엘리사벳입니다.
황망하게도, 이렇게 먼저 찾아주신 덕분에 요란한 천둥과 번개, 소나기가 지나가고 매미 소리만 남은 오후, 즐겁게 시작했습니다.

막상 첫 임무를 시작하려니까 이 수많은 작가들 책 기획자들 중에 몇 가지를 고른다는게 무척 어렵더군요.
꼼쥐님께서 격려해주시니 긴장했던 마음이 조금 풀리는 것 같습니다^^

블로그를 보니 무척 많은 글들이 있어서 즐겨찾기를 해두었어요.
시간 날 때 틈틈히 읽고 가겠습니다.

남은 여름, 좋은 시간 되시길 바라며.
어떤 도서가 선정될지 두근두근 하는 맘으로.

안정숙 엘리사벳 드림.

꼼쥐 2013-08-06 19:27   좋아요 0 | URL
엘리 사벳은 세례명인가요?(궁금해서 말이죠. 제 세례명은 라파엘인지라)
되도록이면 읽었던 책의 리뷰는 기록으로 남기자고 생각한 탓인지 낙서 수준의 글들만 가득하답니다. 저도 즐겨찾기를 해두었으니 종종 찾아뵙겠습니다. ^^

세실 2013-08-07 09:0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여름의 묘약이 겹치네요~~~ ㅎㅎ

꼼쥐 2013-08-08 12:39   좋아요 0 | URL
네~~왠지 끌리는 마음이 세실님과 같았나봐요. ~~
 
나의 운명 사용설명서 - 사주명리학과 안티 오이디푸스
고미숙 지음 / 북드라망 / 2012년 8월
평점 :
구판절판


초등학교 친구 중에 괴짜로 소문난 친구가 있었다.

어려서부터 덩치가 좋았던 친구는 그가 다니던 고등학교의 유도 선수가 되었다.  그것도 무제한급 선수로.  친구는 고1인가 고2의 여름방학에 친구들에게는 알리지도 않고 체력 훈련을 하겠다며 산으로 들어갔었다.  친구들은 다들 그러려니 했다.  운동선수이니 체력훈련이 필요할 테고, 체력훈련 하면 뭐니뭐니 해도 산악훈련이 제격이라 생각했다.  그런데 겨울방학이 되어서 만난 친구는 뭔가 달라져 있었다.  뭐라고 설명할 수 없는 낯선 분위기가 친구를 감싸고 있었다.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서울에 있는 대학에 진학했던 나는 한동안 그 친구를 만나지 못했다.

 

대학을 졸업하고 얼마의 시간이 지난 후, 고향 친구들과 만난 자리에서 그 친구의 소식을 우연히 듣게 되었다.  친구는 고등학교를 졸업한 후 부산에 내려가 풍수지리를 강의하고 있다고 했다.  생각도 못한 일이었다.  선수로서 유도를 계속하거나 적어도 은퇴한 후 유도 코치가 되어 있을 줄 알았는데 풍수지리 강사라니...  그 친구와 전혀 매치가 되지 않았다.  한의원을 운영했던 친구의 아버지는 친구가 어렸을 때부터 한자의 중요성을 누누히 강조하셨고, 그런 분위기에서 자란 탓인지 친구는 다른 과목에 비해 한문 실력은 늘 좋았었다.  아무리 그렇다고 하더라도 유도를 하던 친구가 풍수지리 강사가 될 줄은 꿈에도 상상할 수 없는 일이었다. 

 

고전평론가 고미숙이 쓴『나의 운명 사용설명서: 사주명리학과 안티 오이디푸스』를 읽었다.  사주니, 운명이니 하는 것들에 대해 관심이 없었던 것은 아니지만 업으로 그 일을 하지 않는 이상 그저 관심으로만 그칠 뿐 더 이상의 진전은 전혀 없었다.  그렇다고 그런 시도조차 없었던 것은 아니다.  언젠가 공부를 해볼 요량으로 <주역>을 집어 들었다가 채 10페이지도 넘기지 못하고 포기한 적이 있었다.  그때의 미련은 '나중에 기회가 되면'이라는 가정 속에서 지루하게 시간만 보냈을 뿐 실행에 옮길 기회는 좀처럼 찾아오지 않았다.  어쩌면 마음 속으로부터의 알 수 없는 거부감이 그 기회마저 밀어냈는지도 모를 일이었다.  고미숙의 <나의 운명 사용설명서>는 사주니, 운명이니 하는 처음의 호기심으로 되돌아가도록 했다.

 

"운명을 안다는 건 '필연지리(必然之理)를 파악함과 동시에 내가 개입할 수 있는 '당연지리'(當然之理)의 현장을 확보한다는 것을 의미한다.  정해진 것이 있기 때문에 바꿀 수도 있는 것이다.  모든 것이 우연일 뿐이라면 개입의 여지가 없다.  또 모든 것이 필연일 뿐이라면 역시 개입이 불가능하다.  지도를 가지고 산을 오르는 것과 마찬가지로 주어진 명을 따라가되 매 순간 다른 걸음을 연출할 수 있다면, 그때 비로소 운명론은 비전탐구가 된다.  사주명리학은 타고난 명을 말하고 몸을 말하고 길을 말한다.  그것은 정해져 있어서 어찌할 수 없는 것이 아니라, 그 길을 최대한으로 누릴 수 있음을 말해 준다.  아는 만큼 걸을 수 있고, 걷는 만큼 즐길 수 있다.  고로, 앎이 곧 길이자 명이다! "    (p.31)

 

이 책은 현대적인 관점에서 사주명리학이 왜 '미신'으로 치부되고 있는지, 또는 왜 '신비주의'에 갇히게 되었는지에 대하여 탐구하며 기초적인 사주명리학의 원리를 설명하고 있다.  '힐링'과 '치유'라는 말이 범람하고 있는 요즘, 그럼에도 몸과 마음이 병들어가는 사람들은 넘쳐나고만 있다.  그 이유는 무엇일까?  저자는 그 까닭을 우리의 몸과 마음 사이의 거리가 멀어졌기 때문이라고 한다.  말과 행 사이의 간극이 질병과 번뇌를 일으킨다는 것이다.

 

"자기 팔자가 팍팍하다고 느낀다면, 이유없이 몸이 아프고 마음이 괴롭다면, 다른 건 일단 제쳐두고 먼저 점검해 보라.  내가 얼마나 시간과 공간에 대한 예의를 갖추고 있는지를.  약속을 지키고 청소를 잘하고 있는지를.  산다는 건 별 거 아니다.  시공간이 곧 나다.  시공간과 내가 조응하는 만큼이 곧 나의 일상이다.  고로, 일상의 구원은 약속과 청소로부터 온다! "    (p257)

 

팡세의 저자 파스칼은 말했다.  "나 이외에 아무도 나의 불행을 치료해줄 사람이 없다.  행복을 나 자신이 만드는 것과 같이 불행도 나 자신이 만들 뿐이요, 또 치료도 나 자신만이 할 수 있을 뿐이다."라고.  나 자신의 구원자인 나는 그럼에도 나 자신으로부터 가장 먼 존재이기도 하다.  "모든 사람은 자기 자신에 대해 가장 먼 존재"라고 철학자 니체가 지적했듯이.

 

근대성 비판으로 시작되는 이 책에서 저자가 주장하는 것은 바로 이것이다.  문명의 발달은 결국 사주명리학만 버린 것이 아니라 이 문명 속에서 살아가는 우리 자신을 버린 것이라고.  그래서 아픈 것이라고.  나 자신으로 향하는 길은 사주명리학이며, 그 지도를 들고 내 자신에게로 향해야 한다고 저자는 말한다.

 

고향 친구를 생각하며 읽기 시작했던 『나의 운명 사용설명서: 사주명리학과 안티 오이디푸스』는 마음 속의 그림자로만 남아 있던 '언젠가'를 '지금 바로'로 바꾸어 놓았다.  저자 고미숙으로 인해 나는 사주명리학 관련 서적에 관심을 갖게 되었고, 다음에 읽을 책도 준비해 두었다.  이러다 혹시 철학관을 내는 건 아닐까?  선무당이 사람 잡으려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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히말라야 도서관 - 세계 오지에 3천 개의 도서관, 백만 권의 희망을 전한 한 사나이 이야기
존 우드 지음, 이명혜 옮김 / 세종(세종서적) / 2008년 1월
평점 :
구판절판


우리는 어려서부터 수많은 위인들의 삶을 책으로 읽거나, 다른 사람으로부터 전해들으면서 자란다.  슈바이쳐, 간디, 세종대왕, 이순신 등 직업도 다양하고 삶의 양식도 달랐던 사람들의 삶을 읽고 또 읽는다.  그럼에도 무엇을 배웠는가?의 문제에 있어서는 다들 자신이 없다.  나 역시도 그 문제의 답변에는 머뭇거릴 수밖에 없다.  자신이 성장한 환경이나 시대가 그들과 현저히 달랐기 때문일 수도 있겠지만 그보다는 각자가 추구하는 욕심의 문제인 듯하다.

 

위인들의 삶을 존경하기는 하지만 자신이 그렇게 사는 것은 왠지 다 털어버릴 수 없는 께름직함이 남게 마련이다.  우리는 그렇게 교육받았고, 그렇게 살아간다.  그런 까닭에 자신의 삶을 희생하면서 타인을 위해 살았던 위인의 삶을 존경하기는 하지만 그렇게 살기는 싫은 것이다.  철저히 분리된 이중적인 가치관 속에서 우리가 존경하는 위인들의 삶이란 그저 먼 나라의 이야기일 뿐이다.

 

이 책의 저자인 존 우드도 그랬다.  마이크로소프트(MS) 호주지사장을 거쳐 중국지사장으로 발령을 받았던 그는 늘 회사일로 바빴고, 그럴수록 가족과 친구들로부터 멀어졌다.  친구들과의 신뢰를 회복하기 위해 떠났던 히말라야-네팔 트레킹에서 우연히 둘러 본 네팔의 작은 학교는 그에게 충격으로 다가왔다.  어려서부터 책읽기를 좋아했던 저자는 책이라고는 찾아볼 수 없는 그 학교의 텅 빈 도서관에 책을 보내주기로 약속한다.  책을 가지고 다시 와달라는 약속을 지키기 위해 저자는 고령의 아버지와 함께 네팔의 작은 시골 학교를 다시 찾았고, 책을 받은 아이들이 기뻐하는 모습을 보면서 저자는 이렇게 기록했다.  

 

"우리가 그 광경을 흐뭇하게 지켜보고 있을 때 선생님 한 명이 내게 다가왔다.  그는 내 손을 잡았다.  갈색 눈에는 눈물이 가득했지만 얼굴에는 미소가 가득했다.  "당신은 우리 아이들에게 대단한 것을 주었습니다.  하지만 우리는 답례로 드릴 것이 거의 없군요."  그 말을 듣는 순간 나는 목이 메었다.  할 말이 떠오르지 않았다.  내가 세상을 변화시켰음을, 아니 최소한 그 일부를 이루었다는 감정을 설명할 길이 없었다.  아이들을 위해서 오늘은 어제보다 훨씬 더 많은 기회가 있다고 말하고 싶었다."   (p.46)

 

결국 저자는 열악한 환경 속에서 공부하는 네팔의 어린 학생들을 위해 도서관을 짓겠다는 꿈을 품는다. 그러나 그것은 그렇게 간단한 일은 아니었다.  그것은 마이크로소프트에서의 지위와 많은 연봉, 회사가 제공하는 고급 주택과 스톡옵션, 그리고 호주에서부터 사귀었던 여자친구와의 결별을 의미했다.  존 우드의 고민에 대해 그의 친구는 “일회용 반창고를 제거하는 두가지 방법이 있지. 천천히 고통스럽게, 또는 빠르고 고통스럽게. 너의 선택이야.”라고 조언한다.  친구의 조언을 듣고 저자는 회사에 사직서를 제출했고 비영리 단체인 '룸투리드(room to read)'의 CEO가 되었다.  우드는 인생에는 우선순위가 있으며, 지금은 자신을 믿고 나아가는 것이 중요하다고 판단했다. 히말라야 청소년에게 꿈을 주려면 먼저 자신이 꿈을 잃지 않아야 한다고 생각했다.  후원금 조성을 위해 사람들을 만나고, 자선 파티를 열고, 자원봉사자를 물색하고, 네팔 현지에 직원을 고용하는 등 마이크로소프트에 있을 때보다 더 바쁜 나날을 보내게 된다. 

 

"후원금을 조성할 때 가난을 이용하는 것을 되도록 피한다.  이런 영상들은 인간의 존엄성을 해친다는 생각이 들어서다.  물론 내 생각이 잘못되었을 수도 있다.  하지만 죄책감을 마케팅도구로 이용할 생각은 전혀 없다.  후원자들은 희망을 보고 싶어한다.  나는 가난에 찌든 그들의 모습을 보여주는 대신 졸업장을 받은 화사한 어린이들의 모습, 언청이 수술을 성공적으로 마치고 활짝 웃는 소녀, 새로운 우물을 이용하게 된 농부들의 모습을 보여주려 한다.  나는 긍정적인 결과를 보여주고 싶다.  우리가 흘리는 눈물은 새로 연 도서관을 본, 장학금을 받은 소녀들을 소개하는 기쁨의 눈물이고 싶다."    (p.112)

 

존 우드에 의해 설립된 '룸투리드'는 문맹률 높은 빈국에 학교, 도서관, 컴퓨터교실을 지어주고 여학생들에게 학비를 지원한다.  저자는 이 책에서 교육에 대한 투자로 세상을 더 나은 곳으로 바꿀 수 있다는 자신의 생각을 실행에 옮기게 된 과정과 세상의 냉담한 시선, 혼란과 좌절, 흥분과 설렘, 실패와 성공을 진솔하게 기술하고 있다.  특히 어머니가 문맹이면 자식에게까지 영향을 미치므로, 가족 전체와 다음 세대에까지 교육을 전달하고 경제적 독립을 이루도록 소녀들에게 교육기회를 제공한다는 말은 매우 인상적이다.  도서관 2300개, 학교 200곳, 컴퓨터 교실 50곳, 장학금 수상 청소년 1700명, 책 100만 권. 이 경이로운 숫자는 한 개인의 용기 있는 도전으로 인한 결과물이다.  우드는 마이크로소프트의 전 직원과 델 컴퓨터의 창업자인 마이클 델, 골드만삭스, 실리콘밸리의 전설적인 투자가 돈 리스트윈, 심지어는 마이크로소프트의 최대 경쟁자인 넷스케이프의 마크 앤드리센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기업과 개인을 룸투리드의 후원자로 만들었다고 한다.

"세상을 바꾸기 위해 무언가 하고 싶다면 생각만 하지 마라.  뛰어들어라.  현실적으로 모든 것을 고려하면 아무것도 할 수 없다.  갚아야 할 대출금이 있고, 가족의 의견도 들어야 하고, 계획도 짜야 할 것 같다.  이런 걸 하지 말라는 것이 아니다.  다만 그런 것에 너무 많은 시간을 할애하지 말라는 이야기다.  당신을 응원하는 사람이 매우 적을지도 모른다.  그런 것에 너무 신경을 쓰다보면 결국 당신은 아무것도 하지 못할 것이다."    (p.246) 

 

이 책은 마치 자선기금을 조성하기 위해 선한 사람들이 펼치는 무협지, 또는 서부활극처럼 읽힌다.  독자들은 실화가 주는 진한 감동과 함께 독자들로 하여금 이 세상은 온통 선한 사람들로 가득하다는 착각에 빠지도록 한다.  우리가 진정으로 꿈꾸는 세상, 나 자신에게만 집중되었던 삶의 방향을 내 이웃과 지구 전체로 향하게 만드는 책이다.  현재 '룸 투 리드'의 지부는 세계 각지에 퍼졌고 우리나라에도 2010년 4월에 지부가 설립되었다고 한다.  네팔에 도서관을 짓겠다는 한 사람의 꿈이 이제는 베트남, 스리랑카, 캄보디아, 인도를 거쳐 아프리카 및 세계 각국으로 향하고 있다.  한 사람의 선한 꿈이 세계를 변화시켰고, 그의 꿈은 이제 우리 세대를 넘어 미래로 향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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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따금 나는 이런 생각을 할 때가 있습니다.

'내가 던져 놓은 세월의 그물을 통하여 무엇을 건져 올릴 수 있을까?'하는 생각을요.

아무 짝에도 쓸모가 없는 콘크리트 덩어리를 건지고 싶은 생각은 추호도 없었습니다.

오늘 나는 그 대답을 희미하게나마 찾을 수 있었습니다.

 

오후에 잠깐 소나기가 내렸었죠.

나는 전화 한 통을 받았습니다.

그닥 친하지 않았던, 어쩌면 데면데면 굴었던, 낯을 붉히는 사이는 아니지만

그렇다고 친하다고 말할 수도 없는 그렇고 그런 사람이었죠.

 

시간이 괜찮다면 차나 한 잔 같이하자는 전화였습니다.

딱히 둘러 댈 핑계도 떠오르지 않아 그러마 대답했습니다.

마지 못한 대답이었습니다.

 

그는 만나기로 한 약속 장소에 먼저 나와 나를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빗줄기는 많이 가늘어졌고 그는 어렵게 말을 꺼냈습니다.

자신의 처지를 조금 장황하다 싶을 정도로 자세히 말한 후

내게 조언을 구한다고 했습니다.

 

그의 표정에는 거짓이라곤 전혀 보이지 않았습니다.

참으로 내세울 것 없는 내게 그는 진심으로 조언을 구하고 있었던 것입니다.

한참을 생각했습니다.

가볍게 스쳐가는 생각들을 그에게 들려주고 싶지는 않았으니까요.

 

제가 예상했던 시간보다 훨씬 길어졌던 만남이었습니다.

돌아오는 길에 들었던 생각은 말이죠.

'내가 세월에서 건져 올려야 할 것은 누군가의 진실한 마음이구나.

아무리 악한 사람도 그 그물을 오랫동안 드리우고 있노라면

언젠가는 진실한 마음 한 조각을 던져주는구나.'하는 생각에

가슴이 뿌듯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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달동네 병원에는 바다가 있다 - 달동네 외과의사의 가슴 따뜻한 이야기
최충언 지음 / 책으로여는세상 / 2008년 8월
평점 :
절판


날씨가 흐리거나 비라도 오는 날에는 몸만 헛헛해지는 것은 아닌 모양이다.

방금 전에 점심을 먹고서도 돌아서면 금세 허기가 지는 것처럼 가족이나 친구들과 한참 동안 수다를 떨고서도 돌아서면 무언가 허전하여 채 오 분도 지나기 전에 책을 잡게 되니 말이다.  오늘도 그랬다.  그런 까닭에 장마철이면 나는 항상 여분의 책을 준비해 두곤 한다.  오늘 읽은 <달동네 병원에는 바다가 있다>도 그 여분의 책 중에 하나였다.  그러나 책이라는 것이 다 읽기 전에는 그 진가를 알기 여려울 때가 많은 물건인지라 주객이 전도되는 경우는 허더분하다.

 

새벽에 비가 내려 자연스레 손이 간 이 책은 지금은  고인이 되신 이태석 신부님의 책 <친구가 되어 주실래요?>를 떠오르게 했다.  의사이면서 사제이셨던 신부님은 아프리카 수단의 오지에서 가난하고 소외된 사람들을 위해 헌신하였다.  그때의 경험을 기록한 <친구가 되어 주실래요?>를 읽으며 나는 읽는 내내 눈물을 찔끔거렸었다.  이 책의 저자인 최충언님도 의사이다.  정확히 말하면 외과의사이다.  저자는 부산 송도 앞바다가 내려다 보이는 달동네에서 의사로서 가난한 사람들을 치료하며 그들과 정을 나누었던 이야기를 담담히 기록하고 있다.

 

"구호병원은 이름 그대로 가난한 사람들을 위한 무료 자선병원입니다.  그래서 환자들은 돈 걱정 않고 치료받을 수 있고, 나는 돈 생각 않고 환자를 치료해줄 수 있었습니다.  8년 동안 구호병원에서 일하면서 수녀님들에게 배운 것이 두 가지 있습니다.  하나는 '돈은 마귀의 똥'이라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노숙자들의 몸에서 나는 퀴퀴한 냄새를 '가난의 향기'라며 고개를 돌리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p.6)

 

1장. 가난한 사람들을 위한 병원

IMF로 구조 조정의 칼바람이 휘몰아치던 1998년 여름, 부산의 한 종합벼원에 근무했던 저자는 대책도 없이 사표를 내고 두 달을 빈둥거리다가 다시 찾은 직장이 마리아수녀회에서 운영하는 구호병원이었다고 한다.  2006년에 그만둘 때까지 8년 동안을 구호병원의 외과 의사로 산 셈이다.  가족들에게서조차 외면당하는 노숙자와 가난한 달동네의 독거 노인들, 멸시와 천대 속에 살지만 돈이 없어 치료도 받지 못하는 외국인 근로자들, 저자는 의사로서 그들을 보듬고 상처를 치료하며, 그들의 삶을 가슴 아파 했다.

 

"'가난은 나라님도 어쩔 수 없다'는 말은 배부른 사람들이 지어낸 말일 것이다.  나누고 나누면 못할 일도 아닐 것인데 힘없는 민중들의 삶은 고달프고 서럽기만 하다.  요한 씨의 겨울나기를 지켜보면서 그의 어깨를 누르는 가난의 무게가 결코 가볍지 않음을 알 수 있었다.  그래도 웃으며 살아가야 하겠지?  목련이 봉오리를 터뜨리지는 않았지만 봄이다.  요한 씨의 봄이 '말짱 황'이 아니었으면 좋겠다."    (p.77)

 

타산이 맞지 않는다는 이유로 국가 의료기관도 문을 닫는 요즘, 가난하다는 이유로 치료도 거부되는 현실에 비추어 볼 때 저자의 행동은 시쳇말로 '미친 짓'이 아닐 수 없다.  그러나 생각해 보면 그러한 '미친 짓'이 없다면 이 사회는 또 어찌 될 것인가.

저자는 8년을 근무했던 구호병원에 사직서를 내고 후배와 동업으로 남부민의원을 개업했다고 한다.  사직을 했지만 여전히 구호병원의 외과 과장으로서 일주일에 두 번은 구호병원에서 수술도 하고 진료도 한다고 한다.  이어지는 2장은 그때의 기록이다.

 

2장. 삶의 바다가 물결치는 작은 병원 
가난하여 사망진단서도 끊지 못하는 윤 할머니, 달걀 10개를 촌지로 쥐어주는 아주머니, 한센병으로 오그라든 손으로 점심이나 한 끼 사 먹으라며 만 원짜리 지폐 한 장을 건네는 김 할머니, 돈이 없어 무료 진료를 해주다가 환자 유인행위로 취급받던 이야기, 환자 부담금 3천 원이 부담이 되어 진료를 오지 못하는 달동네 사람들, 발가락으로 손가락을 이어 만든 이주노동자와의 우정 등 저자가 만난 다양한 사람들의 이야기를 읽으며 나는 가슴 한켠이 먹먹해졌다.

 

"환자가 나간 뒤 마음이 편치 못해 복도로 나가 창밖을 바라보았다.  조금 전에 진찰한 환자가 산복도로를 건너 송도 윗길로 통하는 골목길을 고개를 숙인 채 걸어가는 모습이 눈에 들어왔다.  실망한 채 걸어가는 뒷모습을 손에 든 담배가 다 타들어가도록 바라보았다.  멀리 바다가 보이고, 저녁 노을이 빨갛게 물들기 시작했다.  이렇게 또 달동네 작은 병원의 하루가 저물어간다..."    (p.138)

 

사람의 목숨보다 돈이 더 중한 사회를 살아가는 오늘의 우리는 내 살기도 바쁘다며 가난한 이웃들의 삶을 애써 외면할지도 모른다.  그러나, 그러나 말이다.  요즘처럼 비가 억수같이 내리고, 누군가의 도움이 절실해지는 순간이 오면 나도, 당신도 그렇게 살았던 지난 삶에 일말의 후회가 들지 않을까?  장마철에는 영혼마저 허기가 진다.  나는 몸의 허기를 달래주는 파전처럼, 또는 한 사발의 막걸리처럼 이 책을 읽었다.  영혼의 허기를 달래주는 파전처럼, 또는 막걸리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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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aham0 2013-12-05 10:56   좋아요 0 | 수정 | 삭제 | URL
30년전에 부산 송도의 구호병원에서 3년간 근무한 적이 있습니다.
책의 제목을 보는 순간 어쩌면 ...했더니. 역시나입니다.
참 많은 추억이 있는 병원의 이야기에 다시 그곳으로 가보고 싶습니다.

꼼쥐 2013-12-06 16:41   좋아요 0 | URL
아~~그러셨군요.
감회가 새로우시겠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