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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긴 마음결로 순한 바람이 스칠 듯한 9월입니다.

명절을 코앞에 둔 번잡한 주말, 서두를 것도 없는데 마음만 분주하고,

아이처럼 괜스레 딴짓을 하며 한나절을 보내고 싶은 그런 날들이 쫓기듯 흘러갑니다.

 

 

과학과 연관된 책을 접할 때마다  나는 괜한 욕심을 부리곤 합니다.  전공 분야도 아닌데 말입니다.  가지 않은 길에 대한 미련일까요.  아인슈타인에 대한 일화나 에피소드는 차고 넘치도록 읽거나 들었는데도 나는 여전히 그의 일대기가 궁금하기만 합니다.  살아 있는 아인슈타인을 만난다 할지라도 여전히 성에 차지 않는다고 말하지 않을까, 하는 생각마저 듭니다. 

 

 

 

 

 

 

유행처럼 팔리는 자기 계발서를 몇 권쯤 읽어 본 분이라면 성공학 분야의 대가인 브라이언 트레이시를 모른다고 하지는 않을 듯합니다.  나도 언젠가 그의 책을 두어 권 읽어 본 듯합니다.  그러나 대가의 이면에 가려진 젊은 시절의 노력과 경험담은 얼핏 듣기만 하였을 뿐 책으로 읽어본 적은 없습니다.  우리가 주목해야 하는 것은 어느 유명인의 현재 모습이 아니라 힘겨웠던 젊은 시절의 이야기가 아닐까 합니다.

 

 

 

 

 

 

 

생텍쥐페리의 <어린왕자>만큼 널리 읽힌 책도 드물지 않을까, 싶습니다.  나에게도 최근에 새로 구입한 <어린왕자>가 있습니다. 어렸을 때 읽었던 것과는 사뭇 다른 느낌으로 다가옵니다. 이 한 권의 책 속에는 우리가 전 인생에 걸쳐 배워야 할 모든 것들이 담겨 있는지도 모르겠습니다. 서두르지 않고 천천히 음미하는 데 이보다 더 좋은 책이 있을까요? <어린왕자>를 100번 이상 읽었다는 저자의 이야기가 궁금해지는 대목입니다. 

 

 

 

 

 

 

나는 개인적으로 무라카미 하루키의 소설보다는 에세이를 더 좋아합니다.  아마도 저와 같은 취향이 많지는 않더라도 더러 있지 않을까요. 그의 시니컬한 문장이 때로는 독자의 마음을 가볍게 할 때가 있습니다. 속 깊은 이야기도 가볍게 던질 수 있는 능력이 그의 매력인 듯합니다. 그래서 나는 그의 에세이를 즐겨 읽는지도 모르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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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후즈음 2013-09-09 00:4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안녕하세요. 꼼쥐님. ^^
몇번 방문은 했는데 게으른 유령 블로거라서 덧글을 늘 못 달고 갔다가 저와 같은 책 읽고 싶은 에세이 페이퍼 보고 반가워서 덧글 쓰고 후다닥 사라집니다.
저도 하루키의 소설보다 에세이를 더 좋아하거든요. ^^
지난번 읽은 에세이는 이상하게 야동 순재가 아닌 야동 할배 하루키가 생각이 나서 진짜 즐겁게 읽었네요.

꼼쥐 2013-09-13 12:40   좋아요 0 | URL
반갑습니다.
저도 요즘은 블로그 업데이트를 잘 못하겠더라구요. 환절기라서 그런지 피곤하기만 하구 말이죠. 추곤증인가요? ㅎㅎ
 
도시에서 살며 사랑하며 배우며 - 바쁜 일상에 치여 놓치고 있었던, 그러나 참으로 소중한 것들 46
정희재 지음 / 걷는나무 / 2010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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좋은 책일수록 쉽게 눈에 띄지 않는다.  마치 어린 시절 봄소풍 자리에서 보물찾기라도 하는 것처럼 말이다.  나는 유난히 보물찾기에 재주가 없었다.  다른 친구들이 서너 개씩 찾는 동안 나는 단 하나도 찾지 못한 채 부러운 시선으로 그들을 물끄러미 바라보곤 했었다.  그때의 기억 때문인지 책 한 쪽도 읽지 못하고 잠자리에 드는 날이면 그때 내 손에 쥐어지던 쓸쓸한 바람결이 되살아나곤 한다.  이따금 찾아오는 그 서늘한 느낌은 나로 하여금 바쁜 와중에도 손에서 책을 놓지 못하게 한다.  이 악착같음은 어데서 오는 것일까?  그때의 쓸쓸함일까, 아니면 나이를 더할수록 집요해지는 삶의 허기짐일까?  나는 그 둘을 마음속으로 응시하며 성큼 다가온 가을을 살고 있다.

 

도시의 가을은 전염병처럼 번지는 도시인의 조울증세와 함께 시작된다.  설움이랄까 아픔 같은 것이 왈칵 몰려오면서 눈시울이 뜨거워진다.  도시인의 이 느닷없는 감정이 말갛게 변하여 초겨울 눈으로 내리는지도 모른다.  가을은 그렇게 한 계절을 계절로 느낄 겨를도 없이 감정의 롤러코스트를 타다가 후다닥 자취를 감추곤 한다.  어찌할 수 없는 가을이 지쳐올 때마다 나는 정희재 작가의 책을 읽는다.  버릇처럼.  다른 사람들이 인정하든 그렇지 않든 나는 정희재 작가를 거장으로 꼽는다.  내게 있어 문학 분야의 거장으로 인정되는 단 하나의 조건은 인간에 대한 애정이다.  인간을 사랑하고, 폭을 넓혀 살아 있는 모든 생명을 사랑하고, 더 나아가 지구의 모든 것들에 대한 연민이 작가의 삶에 녹아들 때, 비록 그가 쓴 글이 어쭙잖아 보여도 나는 그의 글을 사랑하게 된다.  인간에 대한, 생명에 대한 애정이 없는 사람의 글은 거짓이요, 위선일 수밖에 없다.

 

"도시, 서로의 곁을 내주지 않는 익명성을 편리로 인정해 주는 공간.  도시인, 익명의 공간에서 시치미를 떼며 살지만, 누군가 가끔 자신의 이름을 불러주기를 사무치게 바라는 외로운 사람들.  그 안에 내가 있고, 당신이 있다.  끝내 버티지 못할 것 같은 예감에 새벽잠을 설친 순간을 기어이 이겨내며 우린 참 치열하게 달려왔고, 달려가고 있다.  목적지를 아는 사람도 있고, 하루하루 마음 다치지 않고 지나가기만을 바라는 이도 있으리라.  나는 이제 안다.  견딜 수 없는 것을 견뎌야 하고 받아들일 수 없는 것들에 지쳐, 당신에게 눈물 차오르는 밤이 있음을."    ('작가의 말' 중에서)

 

<도시에서 살며 사랑하며 배우며>는 정희재 작가의 일기와 같은 글이다.  작가의 글을 읽으면 나도 모르게 눈물이 솟을 것만 같다.  그 눈물 한방울로 인해 마음의 짐은 한결 덜어지곤 했다.  작가의 글은 스산한 도시의 한 귀퉁이에서 막막함에 가슴을 치고 있을 누군가를 향해 따스한 손길을 내미는 듯하다.  세계 각국의 도시와 히말라야 오지 마을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곳을 여행하며 마음 공부를 해왔던 저자는 아무런 이유도 없이 도시의 변방으로 밀려나는 사람들과 턱없이 치솟는 배추값을 걱정하는 도시의 소시민들에게 "당신, 참 애썼다.  사느라, 살아내느라, 여기까지 오느라 애썼다.  부디 당신의 가장 행복한 시절이 아직 오지 않았기를 두 손 모아 빈다.”며 위로하고 있다.  곧 있으면 추석.  명절에도 고향에 가지 못하는 사람들이 있다.  작가는 이 책에서 이렇게 쓰고 있다.

 

"그러니까 뉴스에서 헬기까지 띄워 가며 보여주는 영상은 이 시대가 표준으로 장려하고픈 덕목을 널리 알리려는 의도에 다름 아니다.  이 행렬에서 벗어난 사람들은 자신의 삶에서 뭔가 중요한 것이 빠졌다고 느낀다.  이 결핍감과 박탈감이야말로 시스템이 바라는 심리적인 충격 요법이다.  표준에 속하라.  반도의 남쪽으로, 남쪽으로 향하는 차량들의 행렬은 끊어지지 않는 한민족의 전통을 상징하는 퍼포먼스다.  저처럼 혼잡과 불편을 딛고 가야할 곳, 끝끝내 지켜야 할 도리가 있는 삶은 얼마나 아름다운가.  어떤 이유로든 이 도시에서 조금씩 일그러지고 빈틈을 지닌 사람들은 말이 없다.  그저 조용히 시스템의 전언을 보고 듣다가 밀린 잠을 채울 뿐."    (p.90 ~ p.91)


 

전남 보성에서 태어나 일곱 살 때 처음오로 도시에 가 보았다는 작가는 중학교 때 부산으로 이사한 뒤로 지금까지 도시에서 살고 있다고 했다.  더 나은 삶을 꿈꾸고, 더 큰 사람이 되기 위해 도시의 삶을 선택했지만 도시에서 살아가는 과정은 언제나 고독하고 피로했다고 했다.  이 책에서 저자는 도시인으로서 자신이 겪었던 경험을 통하여 깨달은 것들을 세심한 필치로 그리고 있다.  도시인이라면 누구나 한번쯤 겪었을 법한 혼자 밥 먹기, 택배 받기, 출근하기, 명절 보내기, 편의점 가기, 전화하기, 장보기 등 바쁜 도시인의 일상을 46개의 소제목으로 쓰고 있다.

 

도시라는 거대한 실체와 마주해 보고 듣고 느낀 것이 무엇을 뜻하는지 살펴보는 작업을 통해 행복에 관한 근원적인 질문과 마주하길 바랐다는 작가는 이 책이 자신의 정체성과 존재 의미를 묻고 답하는 길에서 주운 작은 열매라고도 했다.  도시의 변방으로 한걸음 물러날 때마다 한 켜씩 쌓이는 죄의식은, 속절없이 달았던 '게으름'이라는 죄목의 꼬리표는 누구로부터 비롯된 것인가.

 

거부할 수 없는 가을이다.

이 가을, 도시의 어느 곳에서는 한 해의 수확을 기뻐하는 노랫소리가 빗소리처럼 세상을 적실지 모르겠지만 그 귀퉁이 한옆에서는 먼짓내 풀풀 나는 마른 땅에서 꺼이꺼이 울음을 참는 사람도 있을 것이다.  어디에 살든, 어떤 모습으로 살든 행복을 찾는 줄기찬 노력만은 멈추지 말아 달라고 말하고 싶다.  같은 도시인으로서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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퍼스트 클래스 승객은 펜을 빌리지 않는다 - 비행기 1등석 담당 스튜어디스가 발견한 3%의 성공 습관
미즈키 아키코 지음, 윤은혜 옮김 / 중앙books(중앙북스) / 2013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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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용기를 내어서 그대가 생각하는 대로 살지 않으면 머지 않아 그대는 사는 대로 생각하게 된다. 마치 동물처럼..."  프랑스의 시인이자 사상가였던 폴 발레리의 명언이다.  생각하기에 따라서는 너무도 쉬운 말처럼 들린다.  그러나 애석하게도 대부분의 사람들은 평생에 걸쳐 사는 대로 생각하는 것처럼 보인다.  물론 나라고 예외는 아니다.  생각하는 대로 살기란 그만큼 어렵다. 

 

당연한 일이지만 사람들은 누구나 자신이 꿈꾸는(또는 생각하는) 대로 자신의 삶을 가꾸고 싶어 한다.  그러나 우리는 언제나 후불제 인생을 살 뿐, 선제적 행동은 하지 못한다.  막상 자신의 삶을 계획하려 들면 너무나 많은 난관에 부딪치기 때문이다.  가깝게는 나에 대한 정보부터 빈약하기 그지없다.  내가 무엇을 좋아하고 무엇을 잘 하는지, 얼마나 잘 참고 끈기가 있는지, 타인에 대한 배려심은 어느 정도이고 어떤 가치관을 갖고 있는지 등 생각하면 생각할수록 자기 자신에 대하여 도무지 아는 게 없는 듯 보인다.

 

나 신에 대한 정보도 이럴진대 나를 둘러싼 주변 사람들을 일일이 파악한다는 것은 꿈도 꾸기 어렵다.  그렇다면 사람에 대한 정보만 있으면 되느냐 하면 그런 것도 아니다.  내가 동원할 수 있는 물질적인 능력은 얼마나 되는지, 내 주위의 환경은 나에게 얼마나 호의적인지 등 따지고 되짚어보아야 할 것들이 셀 수 없이 많은 것이다.  이쯤에서 사람들은 터질 듯한 머리를 두 손으로 감싼 채 GG를 선언할 것이다.  헐!  시작도 하기 전에 진을 다 뺀 셈이다.  제대로 된 전투는 치뤄보지도 못한 채 패잔병이 된 신세라니...

 

그러나 나이가 들면 이 모든 것들이 너무도 명료해진다.  젊은 날에 그토록 찾아헤매던 '성공의 법칙'들이 비로소 하나 둘 모습을 드러내는 것이렷다.  그렇다면 이제 "유레카!"를 외칠 시점인가 하면 그렇지도 않다.  문제는 내게 남겨진 시간과 열정이 충분하지도 않을 뿐더러 인생의 후반기에 새로운 도전을 한다는 것은 너무도 무모해 보이기 때문이다.  결국 '성공의 법칙'이란 나이 든 사람들이 청년들에게 들려줄 수 있는 한탄이요, 넋두리인 셈이다.  그러나 나도 청년기에는 나이든 사람들이 들려주는 '성공의 비법'들이 결코 귀에 들어오지 않았었다.  그것은 너무도 흔하고 손수운 듯 보이기에 '비전 전수'라고 여기기는커녕 구멍이 뚫린 '개 밥그릇'쯤으로 여겼었다.

 

이 책 <퍼스트 클래스 승객은 펜을 빌리지 않는다>에서 저자는 우리가 어린 시절에 들었던 익숙한 규칙들을 '성공 습관'으로서 제시하고 있다.  '책을 많이 읽어라', '메모를 잘 해라', '다른 사람이 말할 때 끼어들지 말아라', '인사를 잘 해라', '고마움을 표시하라', '항상 자세를 똑바로 하라'와 같은 말들은 우리가 어렸을 때 귀에 딱지가 앉도록 들었던 말들이 아닌가.  16년동안 일본 항공사와 외국항공사를 넘나들며 1등실 객실을 담당했던 전직 스튜어디스인 저자는 퍼스트 클래스를 이용하는 소위 성공한 사람들의 습관을 관찰함으로써 그들의 행동에는 일정한 패턴과 공통점이 있음을 알게 되었고, 저자는 이를 '성공 습관'으로 제시하게 된 것이다.

 

"세상은 불공평한 곳입니다.  집안 형편이 부유하지 않아서, 천재가 아니라서, 외모가 부족해서, 학벌이 좋지 않아서 등의 다양한 이유로 인해 불평등은 어쩔 수 없이 존재합니다.  하지만 비록 이런 한계가 있더라도 항상 남의 입장을 고려하고 배려하는 노력을 멈추어서는 안 된다는 사실을 저는 성공한 사람들에게 배웠습니다.  상대방과의 거리와 자신의 위치를 생각하면서 같은 눈높이에서 커뮤니케이션하는 것, 그것이야말로 퍼스트클래스 사람들의 작은 습관이 만들어내는 진정한 매너입니다."    (p.10 '프롤로그' 중)

 

사람이든 물건이든 희귀한 것이 대접을 받는 법이다.  어린 시절부터 누구나 한번쯤 들어 보았을 이런 원칙들을 나와 같은 보통의 사람들은 한 귀로 듣고 한 귀로 흘리거나, 마지못해 건성건성 하는 시늉만 했을 것이다.  정성을 다하여 세심하고 철저하게, 또는 몸에 배이도록 꾸준히 실천하는 사람은 극히 드물다는 것이다.  결국 사람에게도 경제학에서 말하는 '희소성의 원칙'이 통하는 셈이다.

 

사람에 따라 '성공'에 대한 정의는 제각각이겠지만 '성공은 자신이 꿈꾸었던 삶을 사는 것'이라고 정의한다면 성공을 이루는 보편적 법칙은 의외로 간단하다는 사실을 누구나 잘 알고 있다.  상대방이 감동할 정도로 정성을 다하고, 원칙에서 어긋나는 행동을 하지 않는 사람은 분명 대부분의 사람들로부터 존경과 사랑을 받을 터이고 '성공'은 덤으로 따라붙을 것이다.  우리는 다만 사소하고 작은 원칙들을 하찮은 것으로만 치부할 뿐 성공을 부르는 비법으로 인식하지는 않는다.  그 작은 원칙이 내 몸에 습관처럼 배이게 하려면 많은 시간과 노력이 필요하다는 사실도 나이가 한참 든 후에나 깨닫게 된다.  '성공'은 결국 작은 것을 소중히 하는 자세, 오랜 세월을 지속하는 꾸준함에서 비롯되는지도 모른다.

 

나는 어려서 청개구리 영신이 들었었는지 그 소중한 원칙들을 소 닭보듯 지나쳤었다.  소중한 것을 소중한 것으로 인식하게 되었을 때는 이미 시간이 한참이나 흐른 뒤였다.  적당한 시기에 그에 걸맞는 적당한 깨달음을 얻지 못하면 인생은 결국 후회를 안고 '살아내야' 하는 고행길이 되고 만다.  이 책을 읽는 독자들이 아직 사회 생활을 경험하지 않은 어린 독자였으면 좋겠다.  나는 이 책을 읽을 어린 후배들에게 삶에는 분명 때가 있음을 말해주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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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Book] 다만 이것은 누구나의 삶
박근영 지음, 하덕현 사진 / 나무수 / 2010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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판매중지


다만, 이것은 누구나의 삶!

책의 제목이 맘에 쏙 들었다.  가을을 재촉하는 비가 하루종일 내렸던 어제, 나는 아침부터 이 책을 손에서 놓지 못했다.  까닭도 없는 본원적 슬픔이 찾아들고 나는 그때마다 죽음과 같은 안식을 느끼곤 한다.  감정의 골을 깊게 파면 그 바닥에는 언제나 슬픔의 강이 흐른다는 사실을 나는 잘 알고 있기에.  그렇게 물끄러미 바라볼 수 있는 시간은 자주 오는 것이 아니다.  그러므로 심연의 슬픔은 평화의 다른 표현일 거라고 나는 굳게 믿는다.  하여, 처연한 슬픔은 오히려 평화롭다.

 

나는 이런, 다소 쓸쓸한 기분으로 이 책을 읽었다.  이따금 음악처럼 들리는 빗소리와 물동그라미의 잔상을 떠올리며 아들 녀석의 어릴 적 모습을 그려보기도 했다.  대여섯 살 무렵의 아들은 뜀박질을 좋아했다.  저만치 앞서 달려가다가 뒤를 돌아보면서 환하게 웃곤 했다.  비 온 다음날의 외출에서는 인도에 고인 물웅덩이를 발로 힘차게 튀겨 바지를 흠뻑 적신 적도 많았다.  그것은 말려서 될 일이 아니었다.  그랬던 아이가 자라 이제는 제 주관대로 하려 든다.  조금 더 자라 성인이 되면 제 어릴 적의 모습을 상상이나 할 수 있을까?

 

"매서운 겨울 날씨에도 창문 사이로 햇살이 스며들었다.  네 여자는 간이역에 앉아 먼 곳에서 당도할 기차를 기다리고 있는 것처럼 보였다.  자신이 탈 기차가 오면 한 명씩 그 자리를 떠나 새로운 땅으로 향할 것이었다.  누군가는 남아 손을 흔들어주고 누군가는 그 모습을 스케치할 것이다.  다시 오지 않을 그 자리, 그 시간, 그 열정...  이날 우리의 마음에는 어떤 빗금이 새겨졌을까.  중요한 것은 두려워도 이 생生을 천천히 잘 걸어보아야 한다는 사실이다.  신도,부모도, 동무도, 스승도 대신 걸어줄 수 없는, 온전히 자신의 몫인 마술 같은 시간들..."    (p.133)

 

 『다만 이것은 누구나의 삶』은 저자가 만난 포토그래퍼, 디자이너, 연극배우, 화가, 영화감독, 에디터, 만화가, 뮤지션, 여행작가, 건축가, 시인 등 13인의 이야기를 담은 책이다.  '국경을 넘는 심정으로 이 도시로 흘러들어온' 청춘들.  '더디게 오지만 결코 없지 않은 희망을 충실히 일구는 사람들'과 함께 저자는 이 미로와 같은 세속을 걷고 싶다고 했다.  누군가는 자신의 책에 "천 번을 흔들려야 어른이 된다"고 썼다.  그러나 나는 그 반도 흔들리지 않았는데 이미 쇠잔해진 느낌이다.  자본주의란 본디 그런 것이라고 누군가 한번쯤 솔직하게 말해줬더라면 내 청춘은 달라졌을까?

 

저자가 만난 사람들은 하나같이 세상 사람들이 바라는 행복의 기준과는 거리가 먼 사람들이었다.  외줄을 타는 곡예사의 발걸음처럼 자신만의 길을 오롯이 걷는 13인의 청춘들.  저자의 시선은 그들의 쓸쓸한 등을 토닥이고 있다.  안정적인 직장, 높은 수입, 조건에 맞는 결혼, 넓고 편안한 집 등 우리 사회가 이 시대의 청춘에게 강요하는 조건들은 해를 더할수록 늘어만 간다.  그 욕망의 틀을 부수고 황량한 들판으로 나선 이들의 험난한 여정을 저자는 마음속으로 조용히 응원하는 것이다.

 

"어느 순간부터 내 자신이 불편해졌다고 할까요.  아버지의 삶으로부터 너무 멀리 이탈해버렸다는 자괴감이 시시때때로 제 자신을 괴롭혔으니까요.  이웃과 더불어 살면서 사람들에게 존경받던 아버지의 모습이 이상적인 삶의 모습이었다면 저는 그런 삶에서 아득하게 떨어진 곳에 서 있었던 거죠.  매일 같이 굴종적인 삶을 살아가고 있었고, 하루는 일하고 있던 웨딩숍으로 현대문학 외판원이 구독신청을 하라고 들렀어요.  문학이라는 막연한 환상도 있었지만 거절을 못하는 성격 탓에 1년 구독을 하게 되었죠.  그러다 우연히 한 대학에서 문예창작전문 과정 수강생을 모집한다는 광고를 보게 돼요.  살면서 사 본 시집이라고는 다섯 권도 안 되는데 무작정 등록을 해야겠다는 마음이 생기더라고요."    (p.344)

 

머리가 아닌 가슴으로 세상을 사는 사람들이 있다.  부딪치고 무너지고, 또 부딪치고 그렇게 또 무너지고...  그들 청춘의 모습은 애잔하다.  그러나 누구에게도 언젠가 한 번쯤은 내 삶의 기준들이 와르르 무너지는 순간이 온다.  되돌릴 수 없는 삶에 쓴 소주를 마시는 순간이 반드시 온다.  나만의 삶을 찾는다는 것은 그 후회의 순간을 대비한 보험증서일지도 모른다.  비록 처참히 무너져 피를 흘린다 할지라도.

 

"자신의 욕망에 속아도 보고 껶여도 본 자들, 한 번쯤 삶에 굴절되어도 보았으나 연민이란 거울방에 갇히지 않고 희망 없이 희망을 꿈꾸며 나아가는 사람들을 일컬어 나는 '동무'라고 부른다.  이 인터뷰는 '동무'들을 찾아가는 여정이기도 했다.  한 걸음 한 걸음 그들이 지나왔을 길을 따라가다 보면 그 속에서 자신이 걸어온 길을 되돌아보게 될지도 모를 일이다."  ----<여는 글> 중에서

 

도시의 어두운 골목 저 끝에는 희망의 등불을 밝힌 채 오늘도 밤새 뒤척이는 청춘이 있을지도 모른다.  삶의 등대는 밝음을 구하는 자에게만 비춘다.  나는 그들의 삶이 밝게 빛나기를 응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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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헌 책이 내게 말을 걸어 왔다]를 읽고 리뷰 작성 후 본 페이퍼에 먼 댓글(트랙백)을 보내주세요.
헌책이 내게 말을 걸어왔다 - 어느 책방에 머물러 있던 청춘의 글씨들
윤성근 엮음 / 큐리어스(Qrious) / 2013년 7월
평점 :
절판


정성스럽게 꾹꾹 눌러 쓴 손글씨에는 적당한 시간이 채색되었을 때 아름답다.  시간의 형체를, 그리움의 실체를, 잊혀질 것만 같던 사랑의 순간을 현실에서 마주한다는 것이 마냥 놀랍고 신기하게만 느껴진다.  순간을 사는 우리에게는 영원이라는 갈망이 오직 내 손에 의지해 기록될 수 있음을 비로소 자각하게 된다.  푸슬푸슬 흩어질 것만 같던 순간의 느낌들이 내 손끝을 통해 영원한 생명력을 얻게 되는 것도 따지고 보면 손글씨 덕분일 게다.

 

"책 속에 남긴 문장이 편지이건 사랑고백이건 내가 보기에 한 가지 분명한 공통점이 있었다.  내용이 모두 너무도 솔직하고 진심이 느껴진다는 것이다.  때론 아주 짧은 문장을 보고서도 그 글씨를 쓴 사람에게 이끌려 깊은 상상 속으로 미끄러져 들어가는 경험을 한 적도 많다.  책 속에 글씨를 남긴 사람을 직접 만나보고 싶다는 생각을 한 일은 셀 수도 없다."    (p.15 ~ p.16)

 

내게도 그런 책들이 있다.  유난히 책을 좋아했던 나는 아르바이트로 번 돈이 손에 쥐어질 때면 언제든 서점으로 달려가곤 했었다.  주머니 사정이 넉넉하지 않을 때는 서점 입구의 회전식 서가에 꽂힌 문고판 서적이 눈에 들어오곤 했었지만 이따금 주머니가 두둑할 때는 그동안 벼르고 별렀던 책들을 한꺼번에 사들이곤 했었다.  그렇게 샀던 책의 표지 안쪽 여백에 나는 언제나 책을 구입한 날짜와 서점 이름, 그날의 날씨(특별한 경우에만, 가령 비가 온다거나 눈이 내리는), 혹은 그 책을 구입하게 된 동기를 적어두곤 했었다.  가끔은 졸업이나 입학 선물을 사기 위해 서점에 들르기도 했었다.  그럴 때에도 여전히 표지 안쪽의 여백에 편지처럼 짧은 글을 남기곤 했었다.

 

나는 그때 무엇을 위해 그렇게 열심히 기록을 했던 것일까?

세월의 손목을 틀어 잡고 사정이라도 해볼 요량이었을까?  아니면 눈발이 흩날리던 그날의 오후가 사랑처럼 아쉬웠던 것일까?  어쩌면 여울물처럼 흐르는 세월의 어드메쯤에 쾅쾅 대못을 박아 그 순간의 문패라도 달아두고 싶었는지도 모른다.  지금은 그때의 기록들이 모두 단풍이 든 책장과 함께 노랗게 말라가고 있다.  이 책 <헌책이 내게 말을 걸어왔다>를 읽고 있노라니 그 시절 교내 게시판에 걸리던 대자보처럼 시대의 그리움이 아슴아슴 되살아난다.

 

"어느 날 친구의 생일을 축하하며 쓴 장난스럽고 따뜻한 마음들을 읽으며 얼굴 가득 웃음이 떠오르는 것도 그래서일 겁니다.  어떤 시대를 살든 청춘의 빛깔은 똑같으며 소중히 여기는 것 또한 다르지 않다는 걸 알게 되었기 때문일 겁니다."    (p.210)

 

한 권의 책이 뭇사람의 사랑 속에 귀한 대접을 받던 시절이 있었다.  사는 형편보다 책값이 조금 힘에 부쳤고, 그래서 더 소중했고, 그 소중함을 기리기 위해 정성을 다해 자신의 글을 담았던 시절.  학사주점의 흐린 조명처럼 시절은 조금 암울했고 하얀 책장처럼 밝은 세상이 오기를 희망하며 소중한 사람에게 책을 선물하던 시절.  응암동 골목길에서 간판도 없이 '이상한 나라의 헌책방'을 운영하고 있다는 저자는 그 시절을 살았던, 혹은 지금 청춘을 살아내는 독자들에게 잊혀져가는 풍경을 선물하고 있다.

 

"서명도 날짜도 남기지 않았지만 시심만은 이렇게 긴 세월을 건너왔다.  단 한 권의 시집도 내지 못한 시인이 있다.  그의 시는 인터넷 검색창에 넣어봐도 아무 정보가 없다.  진짜 시인은 검색되지 않는다."    (p.194)

 

어쩌면 책에 남기는 짧은 글귀는 먼 훗날의 나에게 전하는, 또는 수신인 없는 미래를 향한 침묵의 외침일지도 모른다.  나는 그 외침에 귀를 기울이며 이 책을 조용조용 읽었다. 

 

* 알라딘 공식 신간평가단의 투표를 통해 선정된 우수 도서를 출판사로부터 제공 받아 읽고 쓴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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잊저받 2013-10-03 16:09   좋아요 0 | URL
오오.. 필력에 감탄하고 갑니다. 저도 손으로 글씨쓰는 걸 참 좋아하는데 글씨는 진짜 못쓰지만.. 디지털 시대가 되면서 분명히 좋은 것도 있지만 그리운 것도 있는 것 같아요.. 이메일로 받은 메세지들은 금방 잊혀져도 좋은 사람들에게 받은 좋은 편지들은 예쁜 상자에 담아서 몇년이고 보관해두곤 하니까요 ㅎㅎ

꼼쥐 2013-10-05 22:58   좋아요 0 | URL
칭찬 고맙습니다. ^^

디지털 시대에 웬 아날로그적 감상이냐고 탓할 사람도 물론 있겠지만 학창시절을 고스란히 아날로그 시대로 살아온 저로서는 항상 그리운 추억이 될 수밖에 없더군요. 그래서인지 요즘도 저는 사각사각 긁히는 연필의 느낌이 좋아요.

남희돌이 2013-10-04 12:12   좋아요 0 | URL
마음에 고요히 스며드는 리뷰네요. 신간평가단 최고 리뷰 선정 축하드립니다^^

꼼쥐 2013-10-05 22:59   좋아요 0 | URL
고맙습니다. ^^

그렇지만 남희돌이님도 신간평가단 활동이 끝나기 전에 한번쯤은 선정되실듯...
늘 그래왔거든요. 저는 이제 뽑히지 않을테구요. ㅎㅎ