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든 사물은 보는 각도에 따라 그 느낌이 조금씩 달라지는 게 사실이지만 하늘만큼 그 선명성이 두드러지게 나타나는 것도 드물 것입니다.  시시각각 변하는 하늘의 모습도 좋지만 무엇보다도 하늘을 바라볼 때의 자세에 따라 우리가 받는 느낌은 사뭇 다를 거라고 생각합니다.  걸으면서 우연히 보게 된 석양, 찬란한 일출의 풍경 등 우리가 흔히 떠올릴 수 있는 그런 특별한 하늘을 말하고자 하는 것은 아닙니다.  매일매일 볼 수 있는 하늘, 평범하다고도 할 수 있는 그런 하늘에 대해 하는 말입니다.

 

제가 매일 아침 오르는 산의 능선에는 운동기구가 여럿 비치되어 있습니다.  저는 본격적인 산행을 하기 전에 그곳에서 간단한 체조로 몸을 풀고 윗몸 일으키기, 스트레칭, 철봉 등 가벼운 운동을 하곤 합니다.  윗몸 일으키기대는 경사진 것과 수평의 것이 나란히 붙어 있습니다.  저는 경사진 윗몸 일으키기대에서 대략 25회 정도를 하는데 위몸 일으키기대에 누워서 보게 되는 하늘이 그렇게 좋을 수가 없습니다.

 

하늘을 향해 뻗어 있는 나무의 우듬지와 넓은 하늘이 한눈에 들어옵니다.  그때 저의 느낌은 마치 어릴 적 내 가슴에 엊혀지던 어머니의 따뜻한 손의 적당한 무게감과 그것으로부터 받았던 안온한 느낌이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스르르 잠에 빠져들 것만 같은 그런 느낌이죠.  걸으면서 쳐다보던 하늘의 느낌과는 너무도 다른 것입니다.  제 몸 전체가 하늘에 빠져들 듯한, 누군가 적당한 무게로 가슴을 누르고 있는 듯한 행복하고 충만한 느낌.  말로 표현하기에는 뭔가 부족한 그런 것입니다.

 

제가 지금껏 가슴에 담아 두고 있는 하늘이 또 하나 있습니다.  호주의 사막에서 보았던 밤하늘.  그때도 역시 사막 한가운데 벌러덩 누워서 보았습니다.  온 몸 곳곳에 박힐 듯 쏟아지던 별빛과 완벽한 암흑.  저는 지금도 생생히 기억하고 있습니다.  낮에도 이따금 창유리를 통하여 하늘을 바라보곤 하지만 그런 감동을 느끼기에는 역부족입니다.  하늘은 역시 누워서 보는 게 제맛입니다.  저는 제 주변의 사람들에게도 가끔 권하곤 합니다.  누워서 하늘을 보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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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4기 에세이 신간평가단을 시작하는 첫번째 미션.

잠을 깨우던 간밤의 빗소리처럼 일손을 잠시 멈추게 하는 이 일이 어쩌면 내게는 달콤한 휴식처럼 반가운 게다.  새책을 받아 들고 책장을 넘길 때의 '빠닥'하는 탄력 넘치는 소리는 듣지 못할지언정 새로 출간된 책을 구경하는 재미도 제법 쏠쏠하다.  재래시장에서 한나절 봄나물을 구경하듯.

 

 

 

 

독일의 평론가 마르셀 라이히라니츠키를 처음 알게 된 것은 그의 저서 <작가의 얼굴>을 통해서였다.  처음 접하는 작가는 으레 낯섦과 서먹함에서 오는 부대낌이 있게 마련인데 작가는 그렇지 않았다.  그의 문체에는 독자를 배려하는 친숙함이 베일처럼 깔려 있었다.  나는 그의 해박한 지식과 날카로운 비평에 감탄해마지 않았다.  독자의 변덕은 사실 어디로 튈지 모르는 공과 같은 것이지만 나는 기꺼이 그의 팬이 되기로 작정했다.  비평서가 아닌 그의 자서전 <나의 인생>을 읽음으로써 어쩌면 그와 나는 세대를 떠나서 친구가 될지도 모르겠다.

 

 

 

 

 

요즘은 계절의 풍경이 하도 아름다워서 자연이 아름다워 사랑하는 것인지, 사랑하기에 자연이 아름답게 보이는 것인지 구분이 되지 않는다.  이 아름다운 계절에 사랑의 담론을 읽는다는 건 자연을 즐기는 또 다른 방법이라고 나는 생각한다.  피터 트라튼버그의 <잃어버린 고양이를 찾아서>는 우리가 잃어버린 그리움을 찾아 떠나는 또 다른 방랑이 아닐까.

 

 

 

 

 

 

 

내가 호주 어학연수를 마치고 귀국을 며칠 앞둔 시점에서 거라지 세일에 나온 "애거서 크리스티 전집"을 보았었다.  너무나도 사고 싶었지만 내게는 돈이 님아있지 않았다.  그때의 아쉬움은 한국에 돌아와서도 한동안 잊혀지지 않았다.  이 책을 보자 나는 그때 느꼈던 아쉬움이 첫사랑의 추억처럼 되살아났다.

 

 

 

 

 

 

 

 

 

다비드 르 브르통이라는 이름을 다시 보는 것만으로도 나는 흥분을 가라앉힐 수 없다.  우연히 읽었던 그의 저서 <걷기 예찬>은 감탄이 절로 나오는 좋은 책이었다.  그러나 사회학자인 그가 내놓는 책은 몸과 관련된 어려운 책뿐, <걷기 예찬>과 같은 순순 문학은 찾을 수 없었다.  내가 이 책을 보고 저자를 확인하는 순간 나는 숨이 멎는 것 같았다.  지금도 흥분과 설렘을 가누기 어렵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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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릿 Grit - 잠재력을 실력으로, 실력을 성적으로, 결과로 증명하는 공부법
김주환 지음 / 쌤앤파커스 / 2013년 11월
평점 :
구판절판


아들이 초등학교 고학년이 되면서부터 '공부'와 관련된 서적에 저절로 손이 가거나 한동안 시선이 머물곤 합니다.  이럴 때 드는 생각은 '나도 별수 없이 대한민국의 학부형이구나' 하는 자괴감입니다.  주말부부로 지내다 보니 아이를 만날 수 있는 기회도 그리 많지 않은데 말입니다.  괜한 욕심만 키우는 셈이 아닐까 생각하면서도 조바심에서 읽게 되는 것이 또 '공부'에 관한 책입니다.  이 정도면 병적인 집착이지요? 참으로 구제불능입니다.

 

그렇게 읽게된 책이 김주환 교수의 <그릿>입니다.  <회복탄력성>으로 베스트 셀러 작가가 된 김주환 교수 바로 그분입니다.  사실 '공부'에 대한 책은 수를 셀 수도 없을 정도로 많은 책이 시중에 나와 있는지라 어떤 책이 좋고, 어떤 책이 그저 그런 책인지 구분조차 하기 어렵지만 초등학교 이상의 자녀를 둔 부모라면 새로운 책이 출간될 때마다 자신도 모르게 눈길이 가는 것 또한 현실이 아닐까 싶습니다.  저도 자신할 수는 없지만 이 책은 비슷한 주제를 다룬 다른 책에 비해 비교적 솔직하고 체계적으로 쓴 책인 듯 여겨집니다.

 

"선유(작가의 딸)가 고등학교 3학년이 됐을 때도 나는 꼭 일류대학에 갈 필요는 없으며, 심지어 대학을 가지 않아도 괜찮다고 말해주었다.  선유는 놀란 표정을 지으며 진심이냐고 되물었고, 나는 정말 진심을 담아 얘기했다.  이는 나의 개인적 신념이기도 하다."    (p.125)

 

사실 이런 책을 한두 권 읽다 보면 "공부에는 왕도가 없다."는 말이 새삼 떠오릅니다.  아이들마다 타고난 재능도 제각각이고 자라는 환경도 각기 다른데 일률적으로 어떤 법칙이나 잣대를 들이댄다는 것도 무리가 있어 보입니다.  그러나 이런 책이 꾸준히 팔리는 걸 보면 우리나라 부모님들의 불안감이 이만저만 심한 게 아니구나 하는 딱한 마음도 듭니다.  어쩌면 저도 그 중 한 사람에 속하겠지만 말이죠.  딸을 서울대 경영대에 입학시킨 저자에게 특별한 공부 비법 하나쯤 배워볼까 싶어 이 책을 읽었던 저로서도 딱하기는 매한가지입니다.

 

"비인지능력 중에서 가장 중요한 것이 그릿(grit)이다.  그릿은 자신이 세운 목표를 위해 꾸준히 노력할 수 있는 능력을 말한다.  그릿은 자신이 세운 목표를 위해 열정을 갖고 온갖 어려움을 극복하며 지속적인 노력을 기울일 수 있는 마음의 근력이다.  그릿은 스스로에게 동기와 에너지를 부여할 수 있는 힘, 즉 '자기동기력'과 목표를 향해 끈질기게 전진할 수 있도록 스스로를 조절하는 힘, 즉 '자기조절력'으로 이루어진다."    (p.84)

 

책은 총 5개의 장과 부록으로 구성되어 있습니다.  1. 공부를 둘러싼 오해와 착각  2. 그릿, 성취의 원동력  3. 그릿을 시작하는 힘, 자기동기력  4. 그릿을 완성하는 힘, 자기조절력 5. 시험 잘 보는 법, 그릿을 발휘하라  부록: 서울대 경영대 합격생 선유가 말하는 공부전략 이 그것입니다.

 

저는 이 책을 읽으면서 저의 학창시절과 비교하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제 블로그에서도 두어 번 말한 적이 있지만 저는 비교적 열악한 환경에서 자랐습니다.  이 책의 기준으로 본다면 공부와는 거리가 먼, 절대로 공부를 잘할 수 없는 그런 환경이었죠.  경제적으로 무능했던 아버지는 늘 술에 취해 있었고, 그런 날이면 항상 가족들에게 폭력을 일삼았고, 그게 두려웠던 저는 아버지가 잠들 때까지 같은 동네의 친구집에서 시간을 보내곤 했었습니다.  위로 있었던 형과 누나들은 일찍부터 아버지를 피해 도시에 나가 학교를 다니거나 취직을 한 상태였고, 저와는 나이차가 있는 어린 여동생과 저는 무지비한 폭력을 고스란히 감당해야만 했었죠.

 

그 끔찍했던 시절에 저의 유일한 소망은 아버지의 폭력으로부터 벗어나는 것이었습니다.  가정의 빈곤 때문이었는지 아버지는 자식들이 국민학교를 졸업하는 순간부터 학교는 이제 그만 다니라는 말을 입에 달고 사셨습니다.  국민학교를 졸업할 때와 중학교에 입학하면서 받았던 장학금으로 중학교를 그럭저럭 다닐 수 있었고, 중학교 2학년 무렵 형들이 있던 도시로 전학을 가게 되었습니다.  저에게는 해방의 순간이었죠.  저는 그때부터 지독하게 공부만 했던 것 같아요.  밤 11시에 잠들어서 새벽 2시에 일어나는 강행군을 끝까지 버텼었죠.  2시에자명종 시계를 맞춰 놓으면 일어나지 않을 수 없었어요.  2시에 자명종이 울리면 혹시나 곤히 잠든 형이 깰새라 단박에 일어나곤 했었죠.  2시부터 5시까지 책을 읽고 5시에 전기밥솥에 쌀을 씻어 안치고는 자취방 근처의 산을 휘감고 도는 우회도로를 따라 전력질주하듯 1시간을 뛰었습니다.

 

사실 저는 어려서부터 체력이 좋았던 것은 아니었습니다.  신장염으로 죽음의 문터까지 갔었죠.  당시의 저는 자신의 한계까지 저를 몰아붙였던 셈입니다.  운동을 마치고 돌아오면 도시락을 싸고 아침을 먹고 학교에 등교하여 남들처럼 수업을 받은 후 학교에서 돌아오면 밤 11시까지 책을 읽고 잠을 자는 반복적인 생활.  학원 수강은 고사하고 참고서 살 돈도 없어 친구의 문제집을 베껴서 수학문제를 풀거나 담임 선생님으로부터 이면지를 얻어 연습장으로 쓰곤 했던 힘겨운 나날이었습니다.

 

고등학교를 무사히 졸업할 수 있었던 것도 따지고 보면 누나와 학교 선생님들 덕분이었습니다.  그러나 대학입시를 치른 후 장학금 때문에 서울대를 포기할 수밖에 없었던 현실은 지금도 약간의 아쉬움으로 남아 있습니다.  4년제 장학생으로 대학에 입학하였지만 형의 등록금과 저의 용돈을 벌기 위해서 낭만적인 대학생활은 즐길 수 없었고 공부와 아르바이트를 병행하느라 동분서주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지금 돌이켜 생각해보아도 어찌 버텼나 싶은 세월입니다.

 

제 얘기가 자랑질로 비춰질 수도 있지만 공부에 관한한 저는 할 얘기가 많은 것 같아요.  한 가지 팁을 드리자면 저는 수업시간에 선생님의 설명을 연습장에 빠르게 받아 적으면서 암기와 집중을 동시에 해결했었습니다.  말을 글씨로 받아 적는 것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니죠.  속기사도 아닌데 말입니다.  선생님 얼굴을 보면서 연습장에 글씨를 쓰는 저만의 방식은 수업 내내 집중할 수 있다는 장점이 있었습니다.  물론 다시 보기 위해 그랬던 건 아닙니다.  그러나 효과는 만점이었죠.  시험을 치를 때 그 시간이 파노라마처럼 떠올랐으니까요.  굳이 시간을 들여 복습을 할 필요도 없었구요.

 

이 책을 읽으면서 제 생각과 달랐던 점은 더러 있었지만 바로 이 부분은 짚고 넘어가야 할 것 같아요.

 

"계획을 짤 때는 '이만큼 하면 많이 하는 거지 뭐.'라는 한계를 두는 대신, 자신도 깜짝 놀랄 만큼 많은 공부량을 전제로 한 계획을 세워보자.  그러고는 불도저처럼 밀어붙여라.  일별 계획을 세워놓고 목표량을 달성할 때마다 자신이 지킨 것을 펜으로 지우면서 뿌듯한 성취감을 느껴보라.  그럴 때마다 자신과의 투쟁에서 싸워 이긴 듯한 뿌듯한 승리감을 만끽할 것이다."    (p.240)

 

이 부분에서 저는 저자의 생각과는 다르게 말하고 싶습니다.  물론 저자의 말처럼 되는 사람도 있습니다.  그러나 실천의지가 부족한 대부분의 학생들은 십중팔구 며칠 지나지 않아 계획표 쓰는 것마저 그만둘 것입니다.  왜냐하면 자신의 계획과 실천 결과는 늘 엇나가기 때문이죠.  오히려 '최소한 이만큼은 하자.'라는 식으로 최소 학습량을 계획하면 실천 결과와 계획이 맞아떨어져 게획을 세우는 본인 스스로도 놀랄 것입니다.  그때부터 공부에 재미를 느낄 수 있을 테구요.

 

장황한 얘기를 늘어놓았네요.  아무튼 공부를 잘 하는 사람들의 공통점은 독서를 좋아한다는 것과 체력이 좋다는 것이겠지요.  독서와 체력이 우선순위에서 빠진 공부 관련 책이라면 읽을 필요도 없을 것입니다.  부모의 입장에서 아이의 공부를 지도한다는 것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닌 듯합니다.  어쩌면 공부 방법의 선택도, 부모의 확고한 신념도 일정 부분 용기가 필요하지 않을까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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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nine 2014-04-03 23:39   좋아요 0 | URL
아들에게도, 학생들에게도, 꼼쥐님 겪어오신 얘기를 해주시는게 그 어떤 책보다 더한 가르침이겠어요.
저 역시 지금도 공부에 관한 이런 책들에 저도 모르게 눈길이 간답니다. 아마 해결못한 어떤 아쉬움이 무의식중에 남아있기 때문인가봐요.
공부법은 사람마다 다른 것 같아서 저도 제 아이에게 이래라 저래라, 자신있게 말 못하겠더군요.

꼼쥐 2014-04-04 20:45   좋아요 0 | URL
제 주변에서 보더라도 자신만의 확고한 주관으로 아이들을 가르치는 것을 잘 보지 못하겠더군요. 늘 휘둘리고 말이죠. 이 방법이 좋다 하면 이 방법으로, 저 방법이 좋다 하면 저 방법으로, 그렇게 시간만 보내는 게 현실인 것 같아요. 아이들이 공부 방법을 실험하는 마루타도 아닌데...
 

아무런 잘못도 하지 않았는데 마치 죄인이 된 듯한 기분이 들 때가 있습니다.

오늘 아침 제가 그랬습니다.  저는 매일 아침 6시에 일어나 간편한 운동복을 입고 인근의 산을 오릅니다.  아주 오래된 습관이자 취미생활인 셈이죠.  아침과 한낮의 기온차가 심한 요즘은 초여름을 방불케하는 한낮과는 달리 아침에는 제법 한기가 돌기도 합니다.  그렇다고 옷을 두껍게 껴입었다가는 산을 다 오르기도 전에 흥건한 땀으로 목욕을 하게 됩니다.  저는 오늘도 간편한 차림으로 기분 좋은 한기를 느끼며 산행에 나섰습니다.

 

작년에는 4월 초순에도 눈이 내렸었는데 올해는 3월 말부터 기온이 높아진 탓에 산에는 봄꽃들이 다투어 피고 있습니다.  진달래는 말할 것도 없고 산벚꽃이며 민들레, 싸리꽃까지 하얗게 피어나고 있습니다.  요즘의 산은 그야말로 잘 가꾸어진 정원이라 말할 수 있겠습니다.  다만 하나 아쉬운 점은 날씨가 풀리면서부터 등산객이 부쩍 늘었다는 점입니다.  한겨울에는 혼자만의 여유로운 산행을 즐길 수 있었는데 지금은 언감생심 꿈도 꿀 수 없는 일이 되고 말았지요.

 

제가 다니는 산은 대략 왕복 5km의 거리로 시간으로 따지면 1시간 20여분이 걸립니다.  산길은 그닥 넓지 않아서 두 사람이 함께 걷기에는 무리가 있습니다.  능선을 따라 한참을 걷다 보면 마지막에는 가파른 고개가 나타납니다.  저는 그 고개를 올라 숨을 돌리고는 왔던 길을 되짚어 돌아오곤 합니다.  아무튼 오늘도 능선을 따라 걷고 있는데 저 멀리 주황색 등산복을 입은 사람이 걷고 있었습니다.  산길에 익숙하지 않은지 걸음은 빠르지 않았었죠.

 

저와 앞서 가던 그 여자분과의 거리는 얼마 지나지 않아 가깝게 좁혀졌습니다.  일부러 꽉 끼는 등산복을 입었던 것인지 아니면 등산복보다 체구가 커서 그랬던 것인지 그 분의 엉덩이 부분에는 속옷 라인이 선명하게 드러나 있었고, 민망함에 시선을 어디에 두어야 할지 난감했습니다.  그 여자분도 자신의 엉덩이 쪽이 몹시 신경쓰였던지 한 손으로 엉덩이 부분을 가릴려고 애쓰는 듯했습니다.  그렇게 서로 어색하게 한참을 걷다가 마지막 고갯길에서 그분은 갑자기 멈춰서서는 나에게 앞서 가라는 듯 딴짓을 하고 있었죠.

 

저는 그분과 다른 코스의 길을 선택했습니다.  등산을 마치고 되돌아 오는데 앞서 걷는 그분을 또 다시 만났습니다.  나는 걸음을 빨리하여 그 여자분을 앞질렀고, 서둘러 산을 내려와야만 했습니다.  이번 주 월요일부터 이런 비슷한 일을 몇 번 겪고나니 이젠 산행길이 그닥 즐겁지 않습니다.  그렇다고 시간을 바꿀 수도 없습니다.  더 일찍 일어난다는 것은 무리가 있고, 늦추자니 그것도 어렵습니다.  아무런 잘못도 없는데 제가 꼭 무슨 변태 성욕자나 관음증 환자로 취급받는 듯한 찝찝한 기분입니다.  그런 옷을 입은 여자분들이 더 이상 산에 오르지 않았으면 하고 바랄 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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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alph 2014-04-02 16:4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그냥 좀 즐거운 경험으로 생각하시면, 그것도 죄가 될까요?

꼼쥐 2014-04-03 21:30   좋아요 0 | URL
본인이 죄책감을 느끼느냐 그렇지 않느냐의 문제는 사람에 따라 많이 달라질 듯싶어요. 어찌 생각하면 아무렇지도 않게 생각할 수 있는 문제인데 말이죠, 제가 소심해서...

비로그인 2014-04-02 18:3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요즘 옷 입는 추세가 워낙 타이트 한 건 있어요. 게다가 오르막에서 그런 상황이라면 아무리 헐렁하게 입어도 엉덩이 라인이 눈앞에 떡하니 보일 수밖에 없으니 서로 참, 민망하기도 할 거예요. 인적없는 작은 등산로에서 그렇게 맞딱드리면 남자든 여자든 서로 신경쓰이기 마련이구요(쓰신 페이퍼 다시 복습하고 있네요 제가 ㅎㅎ) 먼거리도 아닌 뒤에서 누군가 따라오고 있다고 느끼면 저라도 좀더 빨리 걷던가 아예 뒤쳐지는 상황을 만들던가..(사진 같은 거 찍는 척 하면서) 그렇게 할 거 같아요.

그러니까 이렇게 아예 대놓고 말할 수도 있겠네요.
죄송해요.(뭐가 죄송한지는 몰라도) 먼저 지나 가세요...

(물론, 상대방이 아주 위협적으로 보인다거나 제정신이 아닌 것처럼 보인다면 이런 말도 못하겠지만요)


꼼쥐 2014-04-03 21:33   좋아요 0 | URL
제가 다니는 등산로는 워낙 폭이 좁아서 비켜설 만한 장소를 찾기도 어렵답니다. 그저 뒤에서 서로 민망하지 않게 행동하는 수밖에 달리 도리가 없는 셈이죠. ㅎㅎ
 
강물이 될 때까지
신경숙 지음 / 문학동네 / 1998년 8월
평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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벚꽃향이 푸지게 퍼지는 천변 산책로에 선뜻 들어설 용기가 나지 않있다.  상춘객이 줄나래비를 선 주말 오후.  어쩌면 꽃내음보다 더 진한 향수 냄새에 머리가 아파질 것만 같아 강둑 위에서 멀뚱히 보고만 있었다.  적당한 거리를 두고.  적당하다는 말은 사람들을 얼마나 안심시키는지.  적당한 거리에서, 적당한 시간 동안, 적당한 감정의 기복으로 만날 수 있는 누군가가 있다면 삶은 얼마나 쾌적할 것인지...  벚꽃향은 향수로나마 자신을 더 치장하고 싶어 안달하는 저 상춘객의 무리 속에서 흔적도 없이 스러질 것임을 나는 그렇게 추측하며 한동안 서서 바라보고만 있었다.

 

신경숙의 초기 작품인 <강물이 될 때까지>를 무심히 꺼내 들 때는 언제나 마음이 메마른 때였다.  건조한 바람이 휑한 마음 한켠으로 소리를 내며 훑고 지나가고, 바람이 다 지나간 방심한 시간에 아무렇게나 쌓아 올린 짐더미 위에서 툭 떼구르르 구르던 빨간 고무 다라이처럼 봄철의 건조한 풍경이 마음속에서 내내 떠나지 않는 매년 이맘때의 연례행사와 같은 것이리라.  이야기의 구조 보다는 문장 하나하나에, 단어 하나하나에 먼저 눈길이 먼저 가는, 그러다가 어느 순간 마음속에 흥건한 슬픔이 내려 앉을 무렵이면 시큰둥하게 던져버리곤 했던 그런 책.

 

"그때마다 망연해진다.  나도 모르는 구덩이 속으로 미끄러지는 기분이다.  생의 강줄기 한 자락을 움켜잡고 스물여섯 해를 흘러오는 동안 스스로 파놓은 구덩이 속으로.  잃어버린 것들을 찾느라 허둥대고 있으면 부지불식간에 찾아온 허전한 욕망이 가슴을 휘젓기도 한다.  곧 시들어버리긴 하지만 욕망에 사로잡혀 있는 동안은 그 구덩이로부터 올라올 수 있을 것 같은 희망에 가슴이 달아오르기도 한다.  그 내팽개쳐짐과 희망 사이의 기복에 나는 잘 길들여져 있다."    (p.12  '겨울 우화' 중에서)

 

깊게 패인 생채기 이후 뽀얗게 되살아나는 새살처럼 작가의 글은 수없이 찢겨나간 원고지의 깊은 고뇌를 떠올리게 한다.  인간의 보편적인 삶과 그 삶 속에서 망령처럼 떠도는 원죄의 주변을 호시탐탐 노리며 칼끝처럼 등장하는 성당과 최루탄 가스가 매캐하게 풍기던 8,90년대의 시대적 아픔이 겉도는 듯 등장인물의 주변을 끝없이 서성이는 작가의 글을 읽노라면 낡은 토담 위로 햇빛이 쏟아지는 골목길을 한나절 걸어야만 할 것 같다.  그늘 한 점 없는 그 길을.  

 

"돌아다본 성당 첨탑이 뾰족하다.  꽤 넓게 퍼지고 있는 햇빛이 그 위에선 공평하지 못하고 이국적이다.  성당의 흰 벽칠은 삶아 널어 말린 흰 빨래보다 더 희고, 푸른 지붕은 마을의 낡은 슬레이트 지붕들과 전혀 어울리지 않는다.  햇빛 아래 성당은 늘, 학기가 반이나 지난 어느 날 불현듯 전학 와 운동장 포플러나무 밑을 걷도는 도회의 여자애 같다.  석양이 마을의 큰길 끝에 걸릴 때는 슬퍼보이기까지 하며, 아아, 이내 몸은 무엇 찾으려고......, 다시 이어지는 제창일까?"    (p.223 '황성옛터' 중에서) 

 

하늘에는 약솜을 찢어 놓은 듯한 구름이 몇 장 떠 있고 아랑곳없는 햇살이 쏟아지는데 나는 무료한 권태를 껴안은 채 무겁게 서있었다.  답장을 기대할 수 없는 편지처럼 환한 벚꽃에는 꽃망울처럼 숱한 추억이 자라고 있다.  신경숙 작가도 그랬을까?  데뷔작이었던 <겨울 우화>를 비롯하여 나중에 장편 소설로 개작한 <외딴 방>에 이르기까지 11편의 중,단편을 엮어 만든 그녀의 첫 소설집 <강물이 될 때까지>를 받아들었을 때 그녀의 가슴에도 추억의 벚꽃이 망울망울 벙글고 있었을까.

 

"내가 사는 이층방에서 내다보면, 늙은 한옥들 사이로 멀리 아득하게 높은 계단이 보인다.  의자에 앉아 그 계단을 물끄러미 보고 있으면, 어딘가에 잊혀진 샛길이 있을 듯하다.  나 아니면 누구도 거들떠보지 않을 개인적인 추락들을 바라보며 한없는 무망에 빠져 소설이라고 쓰면서, 내 소설들이 자연, 미학, 실천, 그 어느 울림도 되지 못하고, 무엇보다도 희망이 못 되는 것이 늘 마음에 걸렸다.  여전히 그런 마음으로 책으로까지 묶는다.  나는 이 슬픈 꼴을 버리고 다른 사유를 원한다."    (p.6  작가의 말'중에서) 

 

휴일의 해는 서둘러 진다.  울긋불긋 원색의 아웃도어 차림을 한 사람들이 벚꽃 만개한 천변을 따라 걷고 있다.  그 끝 어디쯤에서 그들이 만날 추억이 무엇일지 나는 알지 못한다.  시간 속으로 점묘화처럼 사라지는 저 현실의 명멸이 언젠가 다시 3월에 만개하는 저 벚꽃처럼 피어나겠지.  늘 그랬던 것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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