탈주자 잭 리처 컬렉션
리 차일드 지음, 안재권 옮김 / 랜덤하우스코리아 / 2009년 4월
평점 :
절판


'이 사람 도대체 전공이 뭐야?', 궁금해지는 작가가 있다. 철쭉 가득한 화단에 생뚱맞은 노란 수선화 한 그루 서 있는 것처럼. <탈주자>의 저자 리 차일드는 그런 사람이다. 전 세계의 많고 많은 작가군(群) 속에 전혀 어울릴 것 같지 않은 사람. 광대한 스케일의 소설을 쓰면서도 1000m 거리를 날아가는 총알이 중력에 의해 얼마나 끌어당겨지는지 계산하고 있는 사람. 미 국방부와 FBI의 사정을 제 손바닥처럼 훤히 꿰고 있는 듯 보이는 사람. 생뚱맞기보다는 신선하다.

 

"비행을 시작한 지 0.5초가 흐른 시점에 총알은 400미터를 날아갔고 왼쪽으로 18센티미터 움직였다. 그리고 18센티미터 밑으로 떨어졌다. 중력이 잡아당긴 것이다. 중력이 잡아당길수록 총알은 느려졌다. 총알이 느려질수록 중력은 총알을 더 많이 빗겨나가도록 했다. 총알은 완벽하게 우아한 곡선을 그리며 앞으로 날아갔다. 총열을 떠나고 1초가 지난 총알은 800미터를 날아갔다. 달려가는 맥그레스를 지나친 것은 한참 전의 일이었지만, 아직 나무들 위를 날고 있었다. 목표물에 맞으려면 아직 200미터를 더 날아가야 했다." (p.513)

 

'리 차일드'의 소설은 처음이다. 셰필드의 법과대학에서 공부하고, 그라나다 텔레비전 방송국에서 20여 년 동안 송출감독을 했던 그가 소설가로 성공한 것도 의외지만, 우리나라와는 달리 경쟁이 치열한 영미권의 추리소설계에서 신예작가와 다름없었던 그가 단번에 베스트 셀러 작가의 반열에 오를 수 있었던 힘은 과연 무엇일까, 나는 무척이나 궁금했었다. 영화도 그렇지만 나는 영웅주의 액션물을 그닥 좋아하지 않는다. 어렸을 때는 007 시리즈를 열심히 보긴 했지만, 그것도 어느 순간 시큰둥해지고 말았다. 그럼에도 전 세계 영화팬을 상대로 헐리우드 블로버스터가 끝없이 제작되는 걸 보면 책이든 영화든 액션 스릴러를 좋아하는 사람들이 꽤나 많은 모양이다.

 

내가 리 차일드의 소설 <탈주자>를 읽으면서 느꼈던 소감은 작가의 역량이 대단하다는 것이었다. 미국 전역을 무대로 펼쳐지는 광대한 스케일도 그렇고, 미국 국방부와 FBI를 다루는 솜씨도 그렇고, 소설 전편에 등장하는 각종 무기에 대한 묘사도 그랬다. 작가는 허무맹랑하게 보이는 한 사람의 영웅을 내세움으로써 그렇고 그런 스토리를 이끌어가는, 모든 난관을 극복하고 언제나 해피 엔딩의 결말을 보여주는 여타의 소설이나 영화와는 차별점을 보여준다.

 

그러한 차이가 신예 작가와 다름없었던 리 차일드를 베스트 셀러 작가로 성장시켰음은 분명해 보인다. 작가가 전면에 내세운 일당백의 영웅 잭 리처는 다른 스릴러물과 크게 다르지 않아 보인다. 전직 군수사관이자 지금은 조기 제대하여 미국 전역을 자유롭게 여행 중인 잭 리처는 맨손으로 서너 명의 사내들은 가볍게 제압하고, 그의 손에 저격 총이 쥐어져 있다면 십수 명의 군인들과도 일당백으로 대치할 수 있으며, 제압을 당한 상황에서도 적의 심리를 파악하고 주위 사물을 관찰함으로써 순식간에 전세를 역전시킬 수 있는 인물이다.

 

그러나 리 차일드만의 독특함은 잭 리처를 다루는 세밀함에 있는 듯하다. 대개의 하드보일드 스릴러물에서 작가는 빠른 전개를 염두에 둠으로써 세부적인 묘사를 생략하곤 한다. 이런 치명적인 실수는 독자의 흥미를 반감시킨다. 그렇다고 무작정 세부 묘사에만 치중할 수도 없다. 추리소설에서 속도감은 거의 생명과 같기 때문이다. 이 둘의 적절한 조화는 생각만큼 쉽지 않아 보인다. 리 차일드는 <탈주자>에서 빠른 전개와 더불어 세밀한 묘사를 잊지 않는다. 그럼에도 작품을 읽는 독자는 긴장감을 늦출 수 없다.

 

영웅주의 소설이 다 그러하듯 스토리 위주로 쓰였으니 스포일러는 되기 싫고... 딱히 덧붙일 말도 없다. 잭 리처의 영웅담이 가을의 정취와는 어울리지 않지만 재미는 있다. 다만, 시간은 잘 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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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제부턴가 '이게 끝나면 저걸 해야지.'생각하다가도 잠시 다른 일을 할라치면 금세 잊어버리고는 '내가 뭘 하려고 했더라?' 멍하니 서 있게 되는 일이 종종 생긴다.  그때마다 나는 나이 탓이려니 생각하면서도 왠지 서글픈 생각이 드는 것이다.  '기억력 좋다.'는 말을 많이 듣고 자랐는데...  물론 깜박깜박하는 일은 대체로 그닥 큰일은 아니고 사소하면서도 가벼운 일들인지라 다행이긴 하지만 조금 불편을 느끼는 것도 사실이다. 하여, 나름 열심히 메모도 하지만 그때그때 떠오르는 일들을 다 적을 수는 없는 노릇이다.

 

그래서 생각한 것이 어떤 일을 해야지 떠오를 때마다 미루지 않고 즉시 처리하자는 규칙을 세웠다.  이것은 제법 효과가 있었다.  예컨대 '오늘은 손톱을 깎아야지.생각했으면 바로 일어나 손톱깎기부터 찾는 식이다.  예전 같으면 머릿속에 생각만 넣어 둔 채 소파에 누워 뭉그적대거나 멀뚱히 TV 화면을 지켜보면서 마냥 지체했었다.  그래도 잊어먹는 법은 없었다.  물론 그랬으니 마냥 미루고 있었겠지만 말이다.

 

어떤 일을 계획했다가 사정이 생겨 지금 당장 처리하지 못할 경우에만 메모를 한다.  '사람의 몸이란 게 참으로 오묘하구나!', 하루에도 서너 번쯤 감탄하곤 한다.  나이가 들면서 기억력이 흐려진다는 것은 어찌 보면 나처럼 많이 움직이라는 뜻인가 보다.  나이가 들수록 앉거나 눕는 횟수가 늘어나는 것을 방지하기 위해 기억력을 조금쯤 떨어뜨렸구나 생각하니 오히려 감사한 마음마저 든다.

 

어려서 반짝반짝 빛나는 기억력은 나이가 들면서 조금씩 흐려지게 마련이다.  조금도 가만 있지를 못하는 어린 시절에는 조금쯤 일을 미루며 자신의 생각을 정리할 시간이 필요했다면 이제는 미루지 말고 바로바로 움직이라는 뜻일 게다.  책을 읽다가도 저자의 이름을 금세 잊어버리는 경우가 있다.  메모를 하지 않은 탓이다.  많이 적고, 많이 움직이는 것은 나이 든 사람의 생존전략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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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이올렛
신경숙 지음 / 문학동네 / 2001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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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경숙의 <바이올렛>은 동사에 주의하며 읽어야 한다. '공허한 시선이 거리 풍경을 헤매'기도 하고, '네온 불빛이 그녀의 침묵 속으로 끼어들'기도 하고, 때로는 '잠 속으로 미끄러져 들어가'기도 하며, '불안이 와아 와아 와아, 솟아나서 잔 올챙이들처럼 와글거리'기도 한다. '그녀의 기억 속에서 어제만이 살아 있'는가 하면, '그 남자와 재회하기 이전의 시간과 어제 그남자와 재회한 이후의 시간에 대해 분명히 금을 긋'기도 한다.

 

 

<바이올렛>에서 그녀의 문체는 '백합의 흰 색이 눈을 되찔러오는' 것처럼 몽환적이다. 현실의 다른 층위에서 둥둥 떠다니는 장면을 독자의 의식 속에 두서도 없이 펼쳐 놓은 것처럼. 비현실적이라거나 SF 영화처럼 가능성 없는 미래와는 다른, 뭔가 부족하고 나와는 아주 멀리 동떨어진, 그러면서도 지구상의 보이지 않는 어느 지점에서 생생히 재현되고 있을 것만 같은 느낌. 비현실적인 현실이라고 말한다면 어폐가 있겠지만 아무튼 그녀의 소설은 그렇게 전개되어 간다. 작가가 그려내는 현실은 마치 꿈 속에서 벌어지는 일인 양 내 현실의 지면으로 끝내 내려앉지 않았다.

 

"하늘이 그대로 쏟아져서, 푸른 물을 확, 그녀 얼굴에 덮어씌우는 것 같다. 정말 무지개네. 믿어지지 않는다는 듯 눈을 깜박거리던 그녀의 눈에 눈물이 글썽여진다. 가슴이 싸르륵 쓰라려온다. 따라갈 수 없는 서러움. 닮아볼 수 없는 안타까움. 먼, 멀디먼 그리움. 그녀는 방향도 없이 공허하게 앞을 향해 걷는다." (p.175)

 

소설 속의 주인공인 그녀는 '오산이'라고 했다. 그녀의 고독은 미나리 군락지가 드넓었던 시골 소읍의 어린 시절에서 비롯되었다. 이씨 집성촌이었던 마을에서 이씨가 아닌 학생은 오직 그녀와 단짝이었던 남애가 유일했다. 아버지의 부재로 불안했던 산이와 어머니의 죽음 이후 줄곧 아버지와 함께였던 남애는 다른 듯 닮아 있었다. 소식도 없던 산이의 아버지가 돌아오고 쌓였던 분노를 표출하는 어머니, 남애를 만나 위로를 구하려던 산이는 작은 오해를 끝내 풀지 못하고 결별한다.

 

아버지와 어머니가 이혼하고 어머니와 함께 살게 된 그녀. 그녀는 믿었던 어머니로부터 또 여러 차례 버려진다. 고등학교를 졸업한 그녀는 미장원 보조 생활을 그만두고 화원에 취직한다. '꽃을 돌보는 여자'가 된 그녀. 스물세 살의 그녀는 화원 주인남자의 조카, 수애와 함께 산다. 그해 여름, '바이올렛'을 찍기 위해 화원에 들렀던 사진기자인 그 남자가 그녀의 마음 속으로 파고들었다. 그 남자로 인해 방황하는 그녀.

 

"그에게 전화를 해서 어쩌자는 것인가. 둘이 마주 앉아 무슨 일을 할 수 있을 것인가? 그녀의 마음은 걷잡을 수 없이 밑바닥으로 가라앉는다. 너 자신이 지금 끌려다니는 것이 무엇이지? 그의 고백이냐? 아니면 그를 사랑하게 된 것이냐? 두 질문을 놓고 그녀는 자주 소철에 이마를 대고 서 있다. 권태로운 여름은 그녀에게 공허한 함정을 파놓고 떠날 모양이다." (p.184)

 

그 남자를 마음에 품을 수 있었을 뿐 그에게 다가가지 못했던 그녀. 그녀 마음의 가장 밑바닥엔 어린 시절 남애로부터 갑자기 내팽겨쳐졌던 고독이 불타고 있었음을 , 그 고독이 타인에게 마음을 열고 다가가기 전에 가버리라는 외침으로 다가온다는 사실을 그녀는 인식한다. 그 남자를 잊지 못한 채 방황하는 그녀. 어린 시절의 기억을 더듬어 남애를 찾아갔지만 그녀는 이미 수녀가 되었다는 소식만 전해듣는다. 다시 화원으로 돌아온 그녀는 결국 사진기자인 그 남자에게 전화를 건다. 술좌석에서 고백아닌 고백을 했던 그 남자는 그녀를 알아보지 못한다.

 

"추억이 되지 못한 욕망은 여름 내내 너무 파릇파릇하거나 격렬하게 불타올라 그녀를 방심 상태로 이끌어가곤 했다. 소통되지 않는 욕망으로 인해 슬픔에 사로잡힌 자신의 육체를 바라보고 있는 것만으로도 가슴이 벅찼다. 하지만 바로 눈앞에서도 그녀를 알아보지 못하고 누구신지? 하고 물었던 그 남자로 하여 지금 그녀는 야릇해져 있다." (p.265)

 

자신을 알아보지 못한 남자와 헤어진 그녀는 결국 화원의 단골이자 그녀를 끊임없이 유혹했던 남자에게 전화를 건다. 그리고 그 남자에게 겁탈을 당한다. 광화문 사거리, 세종문화회관 뒷골목의 화원에 취직했던 '꽃을 돌보는 여자'인 그녀는 이제 더 이상 갈 곳이 없다. 그녀는 그렇게 도시의 한 귀퉁이에서 조용히 스러진다. 그해 여름, 말하자면 스물세 살이 되었던 그해의 여름은 그렇게 흘러갔다.

 

오늘처럼 군데군데 우울이 물드는 날엔, 낙엽지듯 쓸쓸함이 번지는 날엔 내가 이만큼 살아냈구나, 안심하게 된다. 장애물 경주를 하듯 세월을 서너 번쯤 건너 뛴 듯한 느낌이 들곤 하지만, 뭐 그래도 괜찮겠다 싶다. 그녀가 끝내 견디지 못하고 스러졌던 그해의 여름은 오늘 내게, 젊었던 시절의 여름 더위를 지나쳐온 내게, 장애물 경주를 하듯 정신 없이 세월을 건너뛰었던 내게 안심하라 다독이는 듯하다. 세월이 가뭇없이 흘러 벌써 여기까지 온 내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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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서 천재가 된 홍대리 천재가 된 홍대리
이지성.정회일 지음 / 다산라이프 / 2011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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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서가 좋다는 것은 다들 인정하면서도 정작 독서가 왜 좋은지, 독서를 하면 무엇이 달라지는지 일목요연하게 답하기란 그렇게 쉬운 일이 아니다. 물론 그 물음에 어물쩡 생각나는 대로 답할 수는 있겠지만 말하고 나면 자신의 대답이 맞는 것인지 고개가 갸우뚱해지는 것은 어찌할 수 없다. 그러다 보니 독서의 효과와 독서를 해야 하는 이유는 사람마다 다를 수밖에 없고, 그마저도 확신할 수 있는 어떤 근거를 갖고 얘기한 것도 아닌 까닭에 이런저런 이유로 독서를 기피하는 사람들을 설득한다는 것은 언감생심 꿈도 꾸기 어려운 일이다.

 

그럼에도 나는 내가 생각하는 독서의 효과(라기보다는 좋은 점)에 대해 말해보련다. 물론 즉흥적인 대답일 수밖에 없고, 그것은 다분히 주관적이다. 내 경험에 비추어 보면 독서는 현실로부터 일정한 거리를 유지할 수 있는 수단인 동시에 현실 속으로 한발짝 더 들어갈 수 있는 좋은 매개체였다. 이게 뭔 말인지 의아하게 생각하는 사람이 많을 줄 안다. 이해한다. 서로 상반되는 말을 한 문장에 옮겨 놓았으니 이 놈이 일부러 멋을 부려 말하려는가 보다 생각하는 것도 어찌 보면 당연한 일이다.

 

몇 년 전 <독서 천재가 된 홍대리>가 베스트 셀러에 오른 적이 있었다. 다른 건 몰라도 독서에는 약간의 관심이 있었던 나도 책이 출간되자 마자 한달음에 서점으로 달려갔었다. 사실 '독서 천재'라는 책의 제목에 혹하여 내용은 거들떠 보지도 않은 채 덜컥 구매를 서두른 것인데 두어 시간에 걸쳐 다 읽고 난 후 약간의 후회만 남았었다. 말하자면 구매보다는 도서관에서 빌려 읽어도 될 책이었다는 것이다.

 

기대에 못 미치는 책이라는 생각에 당시에는 리뷰를 쓸 생각도 없이 서재 한 귀퉁이에 쳐박아 두었다. 책도 싫어하고 회사에서도 별볼일 없는 홍대리가 마케팅 팀으로 부서 이동을 한 후 뜻한 바가 있어 독서 천재로 거듭난다는 그렇고 그런 얘기다. 자기계발서의 딱딱함을 불식시키려는 의도였는지 작가는 홍진수 대리라는 인물을 통하여 독서의 재미와 독서의 효과를 간접적으로 설명하고 있었다.

 

"독서는 단순히 책을 읽는 것이 아니라 저자의 사고를 빌려서 그 사람을 대신 살아보는 행위라고 생각해요. 다양한 각도로 생각하면 배울 게 많을 수밖에 없죠. 내 삶을 변화시키겠다는 의지가 큰 사람일수록 고수들의 한마디 한마디가 가슴에 통째로 와 박히는 느낌을 갖지요." (p.224)

 

아무튼 나는 그때 쓰지 못했던 리뷰를 뒤늦게 정리할 필요를 느꼈고, 나의 독서 체험도 곁들여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앞에서 말했던 것처럼 독서는 내게 '현실로부터 일정한 거리를 유지할 수 있는 수단인 동시에 현실 속으로 한발짝 더 들어갈 수 있는 좋은 매개체'였다. 그에 대한 약간의 부연 설명을 하자면 이렇다. 누구나 다 그렇겠지만 나도 한때는 어려운 시기가 있었다. 이상한 것은 어려운 상황에 처한 사람일수록 현실을 객관적으로 보지 못한다는 점이다. 자신과 이어진 다양한 네트워크를 제대로 파악하지 못하고 오직 하나의 관계, 하나의 네트워크에만 집중하게 된다.

 

그런 상태로 어느 정도의 시간이 흐르면 철석같이 믿었던 그 하나의 관계마저 이상신호가 감지된다. 과중한 관심이 오히려 독으로 작용하는 셈이다. 단 하나의 관계만 존재한다고 믿는, 어려움에 처한 대부분의 사람들은 세상이 끝난 듯한 충격을 받게 마련이고 이 상황에서 희망을 발견하기란 점점 더 어려워진다. 그것은 마치 길이 보이지 않는 숲 속에서 출구를 찾는 것과 같다. 자신이 처한 현실과 일정한 거리를 두고 바라보아야 할 필요성, 어느 정도의 거리를 두고 숲 전체를 바라볼 수 있는 여유가 절실한 데도 말이다. 그때의 독서는 현실로부터 일정한 거리를 유지하도록 도와준다.

 

뿐만 아니라 다른 사람의 체험을 통해 내가 처한 현실 속으로 한발짝 더 들어갈 수 있는 용기를 얻게 되고, 상황을 좀 더 객관적으로 면밀하게 분석할 수 있게 된다. 어려운 현실에 처했을 때 많은 사람들은 자신의 몸과 마음을 피폐하게 함으로써 현실을 외면하고, 그렇게 함으로써 궁극적으로는 타인의 동정을 구하려는 경향이 있다. 현실을 도피하고 싶은 자기 파괴의 욕구는 우리 몸 속에 내재된 비겁함에서 비롯되는 것인지도 모른다. 현실과 결별하고자 하는 마음을 강하게 붙잡아 주는 역할을 하는 것으로 책보다 더 좋은 게 없다고 나는 생각한다.

 

'나는 생각한다. 고로, 나는 존재한다.'고 했던 데카르트의 말처럼 독서는 사람들에게 생각할 수 있는 꺼리를 제공함으로써 일차적으로는 사람의 존재 근거를 마련하고, 동시에 지적 유희를 통한 즐거움을 선사하기도 한다. 가을이 깊어가고 있다. 읽어야 할 책이 방 안에 가득하다는 것은 바라보기만 해도 흐뭇한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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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로그인 2014-10-02 20:18   좋아요 0 | URL
요즘 정신분석의 주이상스에 대해 생각하고 있습니다.
고은 선생께서는 책이 자신을 못살게 군다는 말씀을 하시더라고요.
정신분석에서 말하는 감당할 수 없는 즐거움, 고통을 동반한 즐거움을 뜻하는
jouissance로 독서의 苦樂을 해명해보고 싶은데 생각 뿐입니다... 불가능한
또는 주소를 잘못 설정한 과제라는 생각도 듭니다. 좋은 글, 잘 읽었습니다.

꼼쥐 2014-10-03 20:23   좋아요 0 | URL
책이 그렇게 강력한 희열을 주는가? 하는 문제는 좀 더 생각해 보아야겠네요. 중독성이 있을 정도로 강력한 기쁨을 주어야만 주이상스가 성립할 텐데... 글쎄요. 물론 사람마다 다르겠지만 말입니다. 저도 특정 분야의 책은 약간의 중독성이 있기는 하지만 술이나 담배, 또는 마약과 같은 그런 중독성은 아닌 것 같아요. ㅎㅎ
 
인생 - 오래 전 우리가 사랑했을 때
앤 타일러 지음, 공경희 옮김 / 창해 / 2002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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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제의 음산하고 소란스러웠던 날씨에 대해 속죄라도 하려는 듯 어제는 맑고 쾌청하며 조용했다. 정말 그랬다. 누군가 낮은 목소리로 나를 불러도 불에 데인 듯 화들짝 놀랄 것처럼. 나는 무작정 떠오르는 추억의 한 장면을 소재로 '만약에 이러이러 했더라면...'하는 식의 상상에 빠져들었다. 지난 과거는 언제나 '만약에'로 시작되는 상상 속의 소설 한 편을 만들어내곤 한다. 그 때문에 무료한 시간이 가볍게 흘러가고는 하지만. 그러다 문득 지금 이 순간에 내가 선택하지 않은 어떤 일, 예컨대 아버지의 장례식에 조문을 왔던 친구에게 감사 메일을 보내야겠다 생각하면서도 차일피일 미루고만 있었던 것이 미래의 어느 순간 지금처럼 조용한 순간을 비집고 들어와 '만약에'로 시작되는 소설이 되는 것은 아닐까 생각했다. 그때도 물론 상상 속에서 펼쳐지는 이야기이겠지만 말이다.

 

"하지만 가끔 레베카는 이런 생각을 했다. 인생의 길이 갈라졌던 그곳에 되돌아가서 가지 않았던 길을 선택할 수도 있지 않을까? 물론 지금은 처음에 선택한 길의 종점에 이른 시점이기는 하지만. 속임수 같았다. 자기 케이크를 다 먹고 남의 것마저 욕심내는 듯했다." (p.268)

 

앤 타일러의 소설 <인생>을 읽고 있노라면 삶은 한없이 조용하고 따뜻하게 흘러갈 것만 같은 착각에 빠지게 된다. '오래 전 우리가사랑했을 때'라는 부제가 붙은 이 소설에서 작가는 특별하지 않은 한 여인의 보편적인 삶을 보여줌으로써 우리가 인생에서 소중하게 여겨야 할 것이 과연 무엇인지, 남들이 알아주지 않는다 해도 인생에는 스스로 발견할 수 있는 행복들이 얼마나 많은 것인지 깨닫게 한다.

 

소설에서 주인공 레베카는 대가족을 이끄는 안주인으로서 눈코 뜰 새 없이 바쁜 하루하루를 보낸다. 전도 유망한 대학생이었던 레베카는 '오픈 암스'의 주인이었던 조를 만남으로써 그녀 인생의 모든 것이 바뀐다. 같은 동네에서 어릴 적부터 같이 자랐던 '윌'과 결별하고 딸 셋이 딸린 이혼남 '조'와 만난 지 2주만에 결혼한다. '조'와 레베카 사이에서 딸 한 명이 더 태어났고 시어머니가 죽은 후에는 홀로된 숙부까지 떠맡는다. 열다섯 살의 나이 차가 나는 남편 '조'가 결혼한 지 6년만에 교통사고로 갑작스럽게 죽는 바람에 레베카는 딸 넷과 숙부, 어린 시동생을 돌보는 처지가 되었다. 장성한 딸들이 모두 결혼하고 집에는 이제 숙부와 레베카 둘만 남았다. 숙부는 이제 100세를 눈앞에 두게 되었고 레베카도 여러 명의 손주를 둔 할머니가 되었다.

 

남편의 사업체였던 '오픈 암스'는 사람들에게 파티 음식과 장소를 제공하고, 파티의 성격에 맞게 '오픈 암스'를 장식하고 파티의 진행도 맡는 일을 한다. 레베카는 파티 예약에서부터 파티가 끝나는 순간까지 모든 것을 관리한다. 첫째 딸 비디와 함께 파티 의뢰인의 음식을 준비하고, 필요할 때마다 레베카를 찾는 딸과 사위들, 그리고 어린 손주들을 응대하고, 몸이 편치 않은 숙부도 돌보아야 한다. 끝이 없어 보이는 일상에 지쳐버린 레베카. 그녀는 어느 날 시동생에게 숙부를 맡기고 고향에서 홀로 사는 친정 어머니를 찾는다.

 

"어린 시절을 보낸 방에서 옷을 벗고 치마 잠옷을 걸치면서 과거의 자기가 이 모습을 봤다면 얼마나 숨막혔을까라는 생각을 했다. 예전의 레베카는 거울에 비친 이 여자를 몰라보겠지. 옥수수 수염 같은 머리칼이며, 아무렇게나 빚어진 듯한 얼굴하며. 예전의 레베카는 조심성 없이 발을 질질 끌며 침대로 다가가는 이 여자를 모른다 하리라." (p.118)

 

우리는 이따금 가족 행사에서 오랜만에 만난 조카를 보며, 우연히 나간 동창회에서 친구의 얼굴에 깊게 패인 주름과 처진 피부를 보면서, 또는 거울 속에 비친 낯선 자신의 모습을 보면서 자신의 지난 시간을 압축 파일로 배달 받은 것처럼 당혹스러운 느낌이 들 때가 있다. 그때의 느낌은 쓸쓸하거나 공허하다. '겨우 이거였나?' 하는 자조 섞인 물음이 저절로 튀어나오는 순간이 아닐 수 없다. 그럼에도 삶이 계속되는 이유는 자신의 과거를 공유한 가족들의 사랑과 같은 시간을 지나온 수많은 사람들의 지지 덕분이 아닐까 싶다.

 

레베카는 어린 시절을 함께 보냈고, 결혼까지 생각했던 '윌'에게 전화를 한다. 그는 젊은 아내와 이혼하고 현재는 혼자 살고 있다. 그 사실만으로도 레베카는 한때 사랑했던 과거의 어느 순간으로 되돌아가 새로운 삶을 새로 시작할 수 있지나 않을까 기대에 부푼다. 레베카의 가족을 '윌'에게 소개하고, 레베카도 '윌'의 전부인과 함께 살고 있는 '윌'의 딸을 만나지만 그녀는 결국 '윌'이 결코 되돌릴 수 없는 과거의 남자일 뿐이라는 사실을 깨닫게 된다. 소설은 파피 숙부의 100세 생일을 맞아 가족 모두가 모인 성대한 가족 파티의 장면으로 끝을 맺는다. 파피 숙부의 이 말은 인상적이다.

 

"난 늘 조에게 '봐라. 똑바로 봐. 진정한 인생 같은 건 없단다. 어떻게 끝내든 자기가 마무리짓는 게 진정한 인생이야. 갖고 있는 걸로 최선을 다할 뿐이지.'라고 말했지." (p.363)

 

소설은 늘 '만약에'로 시작된다. 한가하고 무료한 순간, 틈새를 비집고 들어와 시작되는 소설. 다른 것에 밀려 내가 선택하지 않았던 과거의 어느 시점을 배경으로 내가 아닌 다른 사람의 인생이 펼쳐지는 것이다. 다만 이것은 누구나의 소설, 결말 없는 삶의 유희가 아닌가. 그림 속의 인물처럼 생명이 없는, 오직 상상의 세계에서만 펼쳐지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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