별을 담은 배 - 제129회 나오키상 수상작
무라야마 유카 지음, 김난주 옮김 / 예문사 / 2014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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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셰익스피어의 소네트 116번에는 다음과 같은 구절이 있다.

 

"아, 그래요 사랑은 영원한 상징,/폭풍우를 굽어보면서도 흔들리지 않지요

사랑은 모든 방황하는 배를 이끄는 별이니 /그 높이는 알아도 그 가치는 알지 못하죠(O no! It is an ever fixed mark/That looks on tempests and is never shaken;/It is the star to every wadering bark,/Whose worth's Unknown, although his height be taken)"

 

셰익스피어는 이 시에서 사랑의 본질에 대해 말하고 있다. 즉. 사랑은 영원한 것이며 흔들리지 않는 밤하늘 별자리와 같다고 말이다. 순간 아름다워 보이는 사랑은 시간이 흐르며 퇴색되어가지만 진실된 사랑은 시간에 영원하다고 했다. 그러나 우리가 생각하는 사랑은 언제나 본질로서의 사랑이 아닌 현상으로서의 사랑인 것을 어쩌랴. 사랑의 주체와 객체에 따라, 혹은 세월의 흐름에 따라 볼품없이 흔들리는 그런 사랑 말이다. 미국의 어느 유명한 병원에서 조사한 바에 의하면, 키스를 할 때 가슴이 뛰는, 소위 느낌이 있는 사랑의 유효기간은 3년이라고 한다. 그렇게나 길어? 하고 되묻는 사람도 있겠지만.

 

아무튼 나는 무라야마 유카의 장편소설 <별을 담은 배>를 읽고 있노라면 셰익스피어의 소네트 116번이 생각나곤 한다. 책의 제목이 하필이면 왜 '배를 이끄는 별'이 아닌 '별을 담은 배'였을까. 흔들리는 배에 담긴 저마다의 별, 저마다의 사랑이 작가에게 왜 그토록 중요했던 것인지 생각하곤 한다. 읽는 사람에 따라 근친상간을 다룬 그닥 건전하지 못한 소설이라고 평할 수도 있겠으나 저자는 오히려 독자들을 향해 ‘비정상적이고 일방적으로 치부되는 사랑은 거짓일까?’라는 질문을 던진다. 제 손으로 무엇 하나 바꿀 수 없는 무기력한 현실에서 사랑은 그들에게 유일한 탈출구이자 삶의 의미였는지도 모른다. 그러므로 그들의 사랑은 그만큼 절실하며 아프게 읽힌다.

 

"만약에. 오래도록 사에는 그 말을 떠올리는 것조차 금기로 삼았다. '만약에'라는 꿀로 포장된 과거는 달콤하지만, 그 달콤함은 마치 마약과도 같아서 빠지면 빠질수록 독이 되어 마음에 쌓인다. 사에는 그렇다는 것을 알고 있었기에 자신을 견제했던 것이다." (p.188 ~ p.189)

 

무라야마 유카에게 나오키상을 안겨준 이 책은 사실 여섯 편의 에피소드가 서로 인과성 없이 연결된 연작소설로서 ‘미즈시마 가(家)’의 비밀스러운 가족사를 심도있게 다루고 있다. 스토리는 시게유키의 둘째 아들 ‘아키라’가 어머님이 위독하다는 소식을 듣고 오래도록 등지고 살았던 고향으로 향하는 장면으로 시작된다. 자신을 직접 낳지는 않았지만 친자식보다 더 아끼고 사랑해 주었던 인정 많은 새엄마 시즈코의 죽음보다는 오히려 그 자리에서 어쩔 수 없이 마주쳐야 하는 이복 여동생 '사에'가 아키라는 더 신경 쓰인다. 아버지 '시게유키'가 가정부였던 '시즈코'와 재혼함으로써 시즈코와 그녀의 딸 '사에'는 '미즈시마' 가문에 새로이 편입되었다. 장남 미쓰구와 둘째 아들 아키라, 이복 여동생 사에와 막내 여동생 미키.

 

아키라는 자신보다 한 살 어린 사에를 사랑했다. 자신의 감정을 숨기기 위해 만남을 적극 권유했던 남자로부터 성폭행을 당하고 돌아온 사에를 위로하며 아키라와 사에는 비로소 서로의 감정을 확인하게 되고 연인으로 발전한다. 피가 섞이지 않은 남남인 줄 알았던 사에가 아버지의 친자식임을 알게된 아키라는 결국 집을 나가고 대학도 포기한 채 떠돌다가 한 사업가의 딸과 결혼하여 정착한다. 한동안 방황하던 사에는 결국 집으로 돌아와 아버지의 사업을 돕게되고 소꿉친구였던 남자와 결혼을 약속한다.

 

시즈코의 죽음으로 인해 다시 만난 사에와 아키라. 결국 사에는 남자친구와 결별하고 위태롭게 결혼 생활을 유지하던 아키라마저 이혼한다. 독립하여 살면서 유부남과 인스턴트 사랑만 고집하는 막내 여동생 미키와 도시 생활에 염증을 느껴 시골 생활을 동경하는 장남 미쓰구의 가벼운 불륜. 그리고 아내를 잃은 아버지 시게유키의 회상과 젊은 시절의 사랑. 비록 본질적인 사랑은 같을지라도 사랑을 인식하는 주체의 나이에 따라, 그리고 사랑의 대상인 객체가 누구냐에 따라 그 모습은 한 가족 내에서도 서로 판이하게 다르다.

 

"그런 말을 순순히 믿고 좋아라 할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하고 생각하지만, 안타깝게도 그럴 만큼 성품이 좋은 것도 아니고 순정파도 아니다. 그럴 용기도 자신감도 없다. 나이를 먹는다는 것은 그런 것이다. 부담을 지거나 상처를 입을 만한 위험이 있다 싶으면 미리부터 피하는 기술에만 숙달된다." (p.227)

 

장년에 이른 미쓰구의 생각이다. 자신보다 한참이나 어린 여인을 애인으로 두고 있는 그는 아내와 고등학생 딸을 둔 평범한 직장인이다. 권태로운 일상과 정년 이후의 불안, 외로움 등에 벗어나기 위해 고군분투하는 오십 대의 모습을 현실적으로 그리고 있는 <왜 나는, 나일까>에서 장남 미쓰구의 모습은 베이비붐 시대에 태어난, 이 시대의 중년을 대표하는 인물로서 은퇴 이후의 남은 인생을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 하는 고민을 고스란히 담고 있다.

 

"과거 자신 안에 있었던 그 폭발적인 에너지는 어디로 사라져버린 것일까. 가령 증발한 물이 돌고 돌아 비로 내리듯, 지금이라도 잘하면 되살릴 수 있을까. 하지만 지금 새삼스레 그런 에너지가 되살아난다 한들 벅차기만 할 듯한 기분도 든다. 그토록 절박했던 방황과 후회와 나중에 생각해보면 자의식의 이면에 불과했던 격렬한 자기혐오, 그런 모든 것을 감당할 만한 힘이 지금의 내게는 이미 없다. 쥐어짜 내도 나올 것이 없다." (p.243~p.244)

 

상대방에 대한 사랑이 진실할수록 위험해지는 관계에 놓인 아키라와 사에, 미키와 미쓰구. 다만 사랑의 모습은 서로 제각각이다. 아직은 어린 막내 여동생 미키의 대책없는 사랑과 열정이 식은 미쓰구의 사랑이 대비된다.

 

표제작인 <별을 담은 배>는 이 소설의 마지막 이야기이다. 아버지 시게유키의 이야기로, 미즈시마 가(家)의 비밀스런 사건과 갈등, 고통의 출발점이자 그것들이 마무리되는 종착점이기도 하다. 일제의 침략 전쟁에 징집되어 전쟁의 공포와 잔인성, 인간의 광기와 상실감을 직접 겪은 그는 전쟁이 남긴 고통스러운 기억과 상처로 인해 고집스럽고 폭력적인 사람으로 변하였다. 자신으로 인해 가족이 해체되는 것을 지켜보면서 그는 자신의 과거를 통해 전후세대와의 화해를 도모한다. 그것은 어쩌면 나이에 따라 달라지는 사랑의 방식일지도 모른다. 둘째 아들 아키라의 말이 인상적이다.

 

"시게유키는 미간을 찌푸렸다. "기억 안 나세요? 그때 아버지가 어머니에게 소리를 버럭 지르셨어요. '아픔은 몸으로 배우는 것이다. 한 번도 위험에 부닥치지 않고 어떻게 위험하다는 것을 알겠느냐'고 말이죠." 목소리는 낮고 볼은 일그러져 있었지만, 어딘가 모르게 명랑한 투였다. "그 말, 지금도 아버지 일생일대의 명언이었다고 생각합니다." 가만히 묘를 바라보면서 아키라는 말했다." (p.449)

 

키르케고르의 분류에 따르면 문학에 등장하는 대부분의 사랑은 제1단계인 심미적 단계가 주류를 이룬다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영원히 변하지 않는 본질적인 사랑, 즉 종교적 단계의 사랑은 찾기 어렵다. 현상으로서의 사랑, 보여지는 사랑은 끝없이 흔들린다. 사랑을 하는 그 남자와 그여자를 통하여 사랑은 순간순간 '다시 발명되어지는 것'인지도 모른다. 랭보의 시구처럼 말이다. 사랑은 다시 발명되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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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하준의 경제학 강의 (반양장) - 지금 우리를 위한 새로운 경제학 교과서
장하준 지음, 김희정 옮김 / 부키 / 2014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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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심하고 노력하면 더러 좋은 일도 생기는 게 우리와 같은 보통 사람들의 삶이지만 요즘은 그마저도 그렇게 호락호락해 보이지는 않는 듯합니다.  '아무리 노력해도 네 앞에 좋은 일은 절대 생기지 않을 테니 아예 꿈 깨시라', 하늘의 계시가 떨어진 것만 같습니다.  그게 다 돈 때문이라면 듣는 '돈'은 기분 나쁠까요?  아무튼 요즘 담뱃값 인상이다, 연말정산이다 나라가 온통 돈 얘기로 뒤숭숭합니다.  증세다, 아니다 말도 많구요.

 

지난해 추석이었나 봅니다.  다들 뭐가 그리 바쁜지 명절에나 간신히 얼굴을 보게 되는 동서들과 처가에서 만났을 때 이런 저런 얘기 끝에 손윗동서 왈, '경제학을 배우면 배울수록 내가 사람들에게 사기를 치는 느낌이 들어.' 하는 게 아닙니까.  참고로 손윗동서는 모 대학의 경제학과 교수로 재직중입니다.  가재는 게 편이라고 대학 시절에 경제학을 전공했던 나도 형님(동서)의 심정을 충분히 이해할 수 있을 것만 같았습니다.  정말 짠하지 않나요?  영국에서 교수 생활을 하다가 이제는 고국인 대한민국으로 돌아와 후학 양성에 열정을 불사르는(?) 분이, 게다가 주전공이 경제학이면서 자신의 전공마저 부정하는 입장에 서게 되었다는 사실이 말입니다.

 

<장하준의 경제학 강의>를 읽으며 하마터면 눈물을 흘릴 뻔했다면 지나친 과장일까요.  아무튼 나는 책을 읽는 내내 형님(동서)을 생각했었습니다.  눈물이 나려는 걸 꾹꾹 눌러 참으면서 말이지요.  저자도 책의 1부 1장에서 경제학자들의 허무맹랑한 행태에 대해 지적하고 있더군요.  경제학자입네 하고 떠벌리면서 지금까지 제대로 된 해결책 하나도 제시하지 못하고 있다고 말입니다. 자기 분야도 제대로 설명하지 못하는 마당에 (거의) 모든 것을 설명하겠다고 나서는 것은 과대망상이라는 저자의 지적은 타당해 보입니다.  아, 저자도 형님과 같은 생각을 하고 있었구나, 싶어서 고마운 마음마저 들었던 게 사실입니다.

 

나는 사실 인류의 보편성을 끄집어 내는 학문(예컨대 경제학이나 심리학 등과 같은)을 그닥 좋아하지 않습니다.  보편적이라는 것은 개별적인 인간 단 한 명도 제대로 설명할 수 없기 때문입니다.  가령 어떤 심리학 책에서 '인간은 누구나 이기적이다.'라고 전제했을 때, 누군가는 이기심으로 똘똘 뭉친 사람인가 하면 다른 누군가는 마더 테레사처럼 완전히 이타적인 사람이기도 한 것이기에 그 전제는 어느 누구에게도 해당하지 않는다고 말할 수 있습니다.  또는 인간이 아주 합리적이고 이기적이며 효율성을 추구하는 존재라고 가정했을 때 그 가정은 모든 사람에게 해당하는 것처럼 보이지만 어느 누구도 설명하지 못한다는 것입니다.

 

책의 구성은 프롤로그와 1부 '경제학에 익숙해지기', 2부 '경제학 사용하기', 에필로그 및 부록으로 이루어져 있습니다.  친절하게도 저자는 '이 책을 읽는 법'에 대하여 책의 첫머리에 기술하고 있습니다.  말하자면 그것은 이 책에 10분을 투자할 수 있는 독자와 반나절을 투자할 수 있는 독자가 있을 때 그들 독자가 이렇게 읽었으면 하고 바라는 저자의 기대라고 할 수 있겠습니다. 

 

사실 이 책은 우리가 흔히 생각하는 경제학의 특별한 방식(숫자와 미분 방정식이 난무하는)으로 쓰여진 책은 아닙니다.  경제학의 역사나 다양한 접근법을 일반인도 알기 쉽게 정리하였으며 여러 학파의 장단점을 설명하고 있습니다.  2부에서 말하는 '경제학 사용하기'는 경제학을 통하여 우리가 어떻게 경제 현실을 파악하고 어떻게 대처해야 하는지, 세계화 시대를 사는 우리가 어떤 시각으로 경제 현실을 바라보아야 하는지 설명하고 있습니다.  말하자면 경제학 안내서라고나 할까요.

 

저자는 이 책에서 고차원적인 경제 수학 대신 행동 재무학, 진화 경제학 등 제반 경제 이론이 거둔 성과와 경험은 물론이고 심리학, 영화 등 누구에게나 친숙한 사례를 활용함으로써 경제를 전혀 모르는 독자라도 쉽고 재미있게 이해할 수 있도록 설명하고 있습니다.  또한 저자는 이 책의 에필로그 부분에서 독자들에게 다음과 같은 당부를 하고 있습니다.

 

"2008년 굴로벌 금융 위기는 더 이상 경제를 전문 경제학자와 '기술 관료'에게 맡겨 둘 수 없다는 사실을 처참하게 깨닫게 해 주었다.  이제 우리 모두는 능동적인 경제 시민이 되어 경제의 운영에 참여해야 한다."    (p.444)

 

사실 경제학이라는 학문은 딱딱하고 배우기도 어려운 게 사실입니다.  내가 우스갯소리로 이 책의 리뷰를 시작했던 이유도 거기에 있습니다.  어떻게 하면 더 많은 사람들이 경제학에 관심을 갖고 즐겁게 이해할 수 있을까 하는 고민은 저자뿐만 아니라 많은 경제학자들의 고민일 것입니다.  경제를 떠나서는 단 하루도 살 수 없는 현대의 삶에서 경제에 대한 이해나 학습의 필요성은 누구나 절감하지만 실제로 시간을 내어 공부를 한다는 것은 엄두가 나지 않는다는 게 솔직한 심정일 것입니다.

 

유럽중앙은행(ECB)이 1400조에 이르는 대규모 양적완화를 실행하면 우리 경제는 어떻게 달라질 것인지, 미국 연방준비제도이사회가 금년에 금리 인상을 결정한다면 우리에게는 어떤 영향을 미칠지 한번쯤 생각해 보아야 하지 않을까요?  물론 그런 문제에 관심을 끄고 산다고 지금의 삶이 크게 달라질 것도 아니지만 말입니다.  연말정산에서 내가 냈던 세금이 얼마나 환급될지 그게 더 중요한 문제인지도 모르겠습니다.  경제는 참으로 멀고도 가까운 존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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와일드 - 4285km, 이것은 누구나의 삶이자 희망의 기록이다
셰릴 스트레이드 지음, 우진하 옮김 / 나무의철학 / 2012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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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을 대표하는 여류작가 무라야마 유카의 소설 <별을 담은 배>에는 이런 대목이 나옵니다.  막내인 미키가 베란다에서 달을 구경하고 있다가 자신도 모르게 말합니다.  오늘 달님이 정말 예쁘다고.  그러자 언니인 사에가 다가와 '무슨 슬픈 일이라도 있느냐' 묻습니다.  미키는 아니라며 시치미를 떼고 사에는 혼잣말처럼 말합니다.  자신은 슬픈 일이 있을 때면 달이나 별, 꽃 같은 게 유난히 예뻐 보인다고 말이죠.  아주 오래 전에 읽었던 책인데 저는 이 대목을 또렷이 기억하고 있습니다.  그렇게 된 이유는 아마도 작가가 쓴 이 대목의 글에 깊이 공감했기 때문일 것입니다.

 

한없이 기쁜 일 앞에서는 세상에 오직 나만 보이고 다른 사람은 안중에도 없게 되는가 봅니다.  내 주위의 자연은 말할 것도 없겠지요.  그러나 금방이라도 가슴 속에서 푸른 물이 울컥울컥 배어날 것 같은 슬픈 일을 당하면 나란 존재는 금세 잊혀지게 마련이고 주변만 도드라져 보이게 되는 법이죠.  나란 존재가 먼지보다 더 작게 느껴질 때, 세상을 향해 뻗어 있는 마지막 밧줄마저 놓아버리고 싶은 기분이 들 때, 그런 쓸쓸하고 우울한 기분을 달래는 데에는 역시 주변에 있는 사람보다는 오히려 말없는 자연의 품이 더 낫지 않을까 싶어요.

 

셰릴 스트레이드의 <와일드> 역시 모든 것을 잃고 방황하던 저자가 자연의 품에서 서서히 회복되는 과정을 솔직하게 기록한 책입니다.  어린 시절 아버지의 학대로 인한 부모님의 이혼과 엄마의 재혼, 그리고 짧지만 행복했던 가족들과의 추억.  그러나 엄마의 말기 암 판정에 이은 갑작스러운 죽음은 언니와 남동생, 양부와의 결별로 이어졌습니다.  절망에 빠진 저자는 열아홉 살에 혼인하여 무난한 결혼 생활을 유지했던 남편과도 이혼하고 삶의 나락으로 끝없이 추락합니다.  그러던 어느 날 그녀는 멕시코 국경에서부터 캐나다 국경 너머에 이르는, 4,000킬로미터가 넘는 ‘퍼시픽 크레스트 트레일(the Pacific Crest Trail : PCT)’을 홀로 걷겠다고 결심합니다.  장거리 도보 여행의 초보자였던 그녀가 PCT를 홀로 걷겠다고 결심한 것은 단순한 우연에서 비롯된 충동이었지만 그녀는 자신을 삶의 벼랑 끝으로 몰고갑니다.

 

"엄마는 죽었다. 편협한 성격에 혼자서만 과하게 낙천적이고 딸의 대학 진학도 신경써주지 않는 사람. 때로는 자녀들을 방치하고 마리화나나 피우는 사람. 나무숟가락으로 우리를 때리고 엄마라고 부르지 않고 이름을 불러도 상관없다던 사람. 엄마는 실패했다. 엄마는 실패했다. 나를 제대로 키우는 데 실패했다." (p.471)

 

9개의 산맥과 사막과 황무지, 인디언 부족들의 땅으로 이루어진 그곳으로 배낭 하나만 달랑 메고 떠난 그녀는 온갖 시련과 고통, 두려움, 외로움과 싸우면서 지나온 자기 삶을 반추하고 그 과정에서 잃어버렸던 것들을 하나하나 회복해 나가기 시작합니다. 마침내 퍼시픽 크레스트 트레일의 마지막 끝에 선 그녀는 그 혹독했던 경험을 통하여 잃어버렸던 자신감을 회복하고 그토록 간절히 원했던 새로운 삶과 조우하게 됩니다.

 

"내가 다른 사람이나 스스로에게 저질렀던 후회스러운 일이나 다른 사람이 내게 저지른 후회스러울 행동들도 다 상관없었다. 나는 모든 것을 의심하는 사람이지만 이것 한 가지만은 굳게 믿었다. 이 황야의 순수함이 나를 구해줄 거라는 것." (p.255)

 

책의 표지에는 제목과 함께 ‘4285㎞, 이것은 누구나의 삶이자 희망의 기록이다.’라고 쓰여 있습니다.  저자가 걸었던 퍼시픽 크레스트 트레일은 4,285킬로미터로 캘리포니아 주, 오리건 주, 워싱턴 주 전체에 해당하는 거리를 가로지르고 이 길에는 국립공원과 사막과 황무지와 시에라네바다 산맥과 열대우림까지 포함되어 있는 험한 길이었습니다.  일단 코스에 들어서면 1주일분의 식량과 갈아 입을 옷가지와 텐트며 침낭 등을 짊어진 채 걸어야 하고, 어떤 코스는 1주일치 식수를 챙겨야 하기도 했었죠.  저자는 스물여섯 살이었던 1995년에 이 길을 90일 간 걸었습니다.  등과 어깨가 짓무르고 발에 물집이 잡혀 피부가 벗겨지는 걸 감내하면서, 그리고 발톱이 여섯 개나 빠지면서 말입니다.

 

저자는 그 길에서 다양한 사람들을 만났습니다.  각기 다른 목적으로 퍼시픽 크레스트 트레일을 걷는 많은 사람들, 그들로부터 물심양면의 도움을 받기도 하고 성추행을 당할 뻔하기도 합니다.  때로는 아무도 없는 길을 걸으며 외로움에 몸부림치기도 하고 돌아가신 엄마를 생각하기도 합니다.  자신을 스쳐 앞질러 간 어느 여행자가 뒤따라올 저자를 위해 일부러 음식물을 남겨 놓기도 하고, 야영지에서 우연히 만난 남자와 하룻밤의 짜릿한 추억을 만들기도 합니다.

 

"PCT의 여정이 어렵고 고달파도, 이렇게 이곳에서만 만날 수 잇는 여러 종류의 선물을 만나지 못하고 그냥 지나치는 날은 드물었다. 마치 마법 같다고나 할까. 전혀 기대하지 못했던, 그리고 이렇게 달콤한 일들이 PCT에서 겪는 어려움들을 이겨낼 수 있도록 해주었다." (p.411)

 

1926년 한 여교사에 의해 탄생한 퍼시픽 크레스트 트레일은 미국 서부를 관통하는 험난한 길입니다.  보급품을 제때에 조달받지 못해 위험에 처할 수도 있고, 방울뱀이나 곰과 같은 야생동물들로부터 습격을 받을 수도 있습니다.  어쩌면 저자는 자신의 목숨을 걸고 도박을 했는지도 모르겠습니다.  전문 산악인도 아닌 저자가 온갖 어려움 속에서도 꿋꿋하게 버틸 수 있었던 것은 돌아가신 엄마의 사랑이 아니었을까 싶습니다.

 

""나는 내 인생을 마음대로 살아본 적이 한 번도 없단다." 말기 암 판정을 받고 며칠이 지난 후 엄마가 울면서 이렇게 말한 적이 있었다. "나는 항상 다른 사람들이 원하는 대로만 살아왔어. 언제나 누구의 딸, 엄마, 그리고 아내였지. 나는 나 자신이었던 적이 한 번도 없었어."" (p.482)

 

텐트 속에서 그녀는 홀로 책을 읽고, 자연의 침묵 속에서 생각을 하고, 고통 속에서 그녀는 삶을 살아갈 용기를 얻었습니다.  그녀는 결국 목표했던 코스를 완주했고 기적처럼 살아 돌아왔습니다.  어쩌면 우리는 매순간 삶으로부터 도전을 받고 있는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러므로 셰릴 스트레이드의 <와일드>는 어느 젊은 여성의 치열했던 삶의 기록이자 누구에게나 있을 법한 안타까운 과거에 대한 깊은 반성으로 읽힙니다.  그녀를 옭아맸던 과거의 실수와 응어리는 대장정의 고통 속에 풀어졌던 것입니다.

 

"나는 강으로 가 쪼그리고 앉아 얼굴을 씻었다. 여름도 다 가서 그런 걸까. 물길은 좁고 얕아서 그냥 강이 아니라 시냇물 수준이었다. 지금쯤 우리 엄마는 어디 있을까? 나는 엄마가 보고 싶었다. 오랫동안 엄마를 버리지 못했고 그 무게를 지고 비틀거리며 살아왔다. 엄마는 저 강 건너편에 있을까? 나는 그렇게 생각하기로 했다. 그 순간, 내 마음속 어떤 것이 풀어지는 기분이 들었다." (p.540)

 

셰릴은 말합니다. "방법이 하나뿐이라는 건 이미 잘 알고 있었다. 사실 언제나 그랬다. 그냥 계속해서 길을 걷는 것뿐."이라고.  영혼의 상처를 아물게 하는 것은 자연입니다.  우리는 그 사실을 본능적으로 알고 있습니다.  셰릴이 퍼시픽 크레스트 트레일을 계획한 것도 어쩌면 본능에 이끌린 그녀의 선택이었는지도 모르겠습니다.  육체의 고통은 다만 영혼의 고통을 잊게 하는 마취제일 뿐이겠지요.  나는 이 책 <와일드>를 읽으며 <별을 담은 배>의 주인공 사에를 생각했습니다.  슬픈 일이 있을 때면 달이나 별, 꽃 같은 게 유난히 예뻐 보인다는 그녀의 말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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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은 어떻게 책이 되는가 - 책을 쓰는 사람이 알아야 할 거의 모든 것
임승수 지음 / 한빛비즈 / 2014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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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랫동안 블로그를 운영하다 보면 다른 블로거들과 이렇게 저렇게 이웃을 맺고 친해지는 경우가 있습니다. 물론 친하다는 게 실제로 너나들이를 할 정도로 가까워지는 것도 아니고 기껏해야 서로의 블로그를 이따금 방문하여 한두 마디 댓글을 다는 게 고작이지만 말입니다. 그래서인지 내가 생각하는 온라인상의 친함이란 도무지 뜬구름 같고 실체가 없는 그 무엇으로만 여겨질 때가 많습니다. 그러나 나도 어느새 블로그를 시작한 지 몇 년쯤 지나고 보니 이래저래 알게 된 이웃 블로거들이 여럿 되더군요. 그분들 중 어느 누구와도 오프라인에서 실제로 만나본 적은 단 한 차레도 없었지만 이따금 우리는 서로의 안부를 묻기도 하고, 신년 인사를 주고받기도 합니다.

 

이렇듯 가벼운 만남에도 한 해 두 해 세월이 더해지면 도타운 온기가 조금쯤 생겨나는 듯도 합니다. 그렇게 약간의 친분이 쌓인 이웃 블로거가 어느 날 느닷없이 책을 내는 경우가 더러 있습니다. 그런데 그 소식을 접하였을 때의 내 느낌은 참으로 묘합니다. 부러워하는 것 같기도 하고, 진심으로 축하하는 마음도 있고, 평등한 일반 블로거에서 작가와 아마추어의 구분이 확연해진 듯하여 조금쯤 주눅 들기도 하고 아무튼 뭐라 단정할 수 없는 복합적인 감정에 한동안 휩싸이곤 합니다. 뿐만 아니라 작가가 된 이웃 블로거의 글에 이제는 함부로 댓글을 달아서는 안 될 것 같은 느낌도 들어서 전에는 한두 마디 시시한 댓글을 달았음직한 글에도 그냥 읽어만 보고 슬몃 빠져나오게 됩니다. 왠지 서먹하고 멀어진 느낌이 문득 드는 건 어찌할 수 없더군요.

 

그런가 하면 책을 낸 작가인 줄도 모른 채 한동안 지내다가 그 분이 낸 책을 도서관에서 우연히 발견하게 되는 경우도 있습니다. 그럴 때면 오히려 반갑기 그지없습니다. 옛친구를 만난 기분이랄까요? 블로그 이웃으로 지낼 때는 미처 알지 못했던 그분의 이력을 책을 통하여 비로소 알게 되는 것이지요. 웬만하면 나는 작가 소개를 꼼꼼히 읽는 편이지만 이웃 블로거의 경우에는 더욱 집중하게 됩니다. 출생지나 나이 학력 등 간단하게 소개된 그분의 이력을 통하여 나는 온갖 상상을 하기도 하고, 결국에는 '아, 책을 쓸 만큼 충분한 삶을 살아냈구나.' 내 나름의 결론에 이르게 됩니다.

 

"글은 '살아지는' 삶에서 나오는 것이 아니라 '살아내는' 삶에서 나온다는 것을 명심해라." (p.53)

 

임승수 작가의 저서 <삶은 어떻게 책이 되는가>는 작가를 꿈꾸는 블로거라면 한번쯤 읽어볼 만한 책입니다. 책을 쓰는 일이 도대체 밥벌이로서 가능한 일인지 따져보는 것에서부터 출판사와 계약서를 쓰는 것에 이르기까지 책 쓰기의 실제와 출판 현장을 생생하게 보여주는 책입니다. 어떻게 하면 더 좋은 글을 쓸 수 있을까 고민하게 하는 기존의 글쓰기 교본과는 확연히 다른, 저자 자신의 체험을 바탕으로 쓰여진 책 쓰기 'A to Z'라고 할 수 있습니다.

 

서울대 전자공학 석사 출신으로서 연구원 생활을 하던 저자가 모든 걸 팽개치고 책을 쓰는 삶을 선택했다는 그의 이력이 말해주는 것처럼 그는 어쩌면 작가로서의 삶과는 무관했는지도 모르겠습니다. 글치 공학도에서 전문작가로의 변신은 결코 쉽지 않았을 것입니다. 하기에 작가를 꿈꾸는 예비 작가들에게 그의 경험은 실질적인 도움이 될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던 것입니다. 게다가 그는 자신의 경험을 아주 솔직하게 털어놓고 있습니다. 뿐만 아니라 이 책에는 어렵게 책을 낸 다른 저자들의 인터뷰도 담고 있습니다. 친아버지에게 성폭행을 당한 은수연(가명) 씨나 수학 전공자로 역사서를 쓴 김상태 씨, 세계일주 경험을 책으로 쓴 고은초 씨, 호기심 때문에 남과 다른 시각으로 세상을 보았던 박신영 씨 등은 모두 남과 다른 자신만의 삶을 살아낸 사람들입니다. 그러므로 그들이 쓴 책이란 결국 저자 자신의 삶의 기록이겠지요.

 

"저는 책을 쓰라고 하고 싶지는 않아요. 글을 쓰라고 하고 싶어요. 나 이제부터 책 써야지, 이러면 부담감 때문에 글이 제대로 나오지 않거든요. 나의 생각을 정리하고 나의 삶을 정리하고 그냥 계속 글을 쓰다 보면 그 글이 묶여 책이 되더라고요. 그리고 사실 이렇게 써야 글이 살아 있을 수 있어요. '책'이라는 형식은 자본과 함께할 수밖에 없거든요." (p74)

 

저자는 독자들에게 꾸준히 써보라고 권합니다. 그리고 한 권의 책을 완성해보라고 말합니다. 자신이 써서 한 권의 책으로 완성한 글을 들고 출판사의 문을 두드려보라고 권하기도 합니다. 그 과정에서 창피도 당하고 모욕도 받아보라고 말합니다. 나는 비록 그럴 자신도 없고, 그럴 만한 재능도 없지만 이 책을 읽은 어느 블로거가 어느 날 갑자기 자신도 책을 출판했노라 내게 알려올 때가 있을 거라고 믿게 됩니다.

 

"목표를 정확하게 설정하고, 자신의 역량을 명확하게 판단하고, 완성시키고, 그다음에 책으로 안 나오면 그냥 원고를 베개로 베고 자는 겁니다. 기꺼이 모욕당하고 모욕당하는 것을 즐겨야죠. 출판사에 보낼 떄 이메일로 보내는데 돈도 안 들잖아요? 막 보내요. 그래도 끝까지 연락이 안 오면, 뭐 딴 거 쓰는 거죠. 하하하. 자신감이 있어야 돼요. 깡다구 말이에요. 뭐 안 되면 그만이잖아요." (p.2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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을미년 새해가 밝은 지 벌써 일주일이 지났습니다. 세월 참 빠르지요? 저도 지난 연말부터 지금껏 꽤나 바쁜 일정을 보낸 듯합니다. 그러나 2015년이 시작된 후 제가 체감하는 하루 하루는 굼벵이처럼 더디게 흘러간다는 것입니다. 명절이나 주말을 애타게 기다리는 것도 아닌데 일각이 여삼추라는 말이 절로 떠오르니 알다가도 모를 일입니다. 몸이 바쁜 시간에는 그럭저럭 견딜 만한데 한가해진 낮시간이나 늦은 밤 홀로 있을 때 시간은 그야말로 멈춰 있는 것만 같습니다. 우스갯소리로 말하길 체감하는 세월은 40대는 40km, 50대는 50km의 속도로 흐른다는데 저는 마치 없는 시간을 훔쳐오기라도 한 것 같습니다. 하루가 느릿느릿 흐르던 학창시절로 되돌아간 느낍입니다.

 

부럽다구요? 그럴 줄 알았습니다. 그래서 나만의 그 비밀스런 방법을 여러분과 공유하고자 합니다. 세월이 천천히 흐르게 하는 비법을 요약하면 다음과 같습니다.

 

1. 중독이 될 만한 대상(담배, 술, 마약, 도박, 섹스 등) 하나를 콕 집어 고른다. 중독성이 강하면 강할수록 좋다.

2. 자신이 선택한 대상(예컨대 저는 담배를 선택했었죠)과 친밀한 관계를 형성한다. 가급적이면 십 년 이상의 중독 상태를 유지한다.

3. 어느 날 갑자기 중독 상태를 해제한다. 시시각각 자신의 중독성을 실감하며 꿋꿋이 참고 버틴다.

 

이해가 되나요? 2015년의 시작과 함께 금연을 한 저는 하루가 이토록 길다는 걸 처음 느꼈습니다. 눈을 뜨면서부터 시작되는 흡연의 욕구는 잠들기 전까지 계속됩니다. 오죽하면 저는 조금이라도 늦게 일어날 요량으로 그토록 열심이던 아침운동도 그만둘까 생각했을까요. 저보다 먼저 금연을 실천했던 분들이라면 지금의 제 상태를 백번 이해하고도 남겠지요.

 

미국의 소설가 마크 트웨인이 했던 유명한 말이 있지요. "담배 끊는 게 제일 쉽다. 나는 100번도 넘게 끊었다. (Quitting smoking is the easiest thing. I’ve done it hundreds of times.) 그는 한때 그런 말도 했습니다. 건강이 나빠진 최후의 순간을 위해서 나쁜 습관 한두 가지를 갖고 있을 필요가 있다고. 예컨대 그의 주장은 이런 뜻이었죠. 배가 가라앉을 때 바다에 버릴 짐이 있어야 삶에 대한 희망을 갖게 되는 것처럼 건강이 나빠졌을 때를 대비하여 건강에 해로운 어떤 습관(이를테면 흡연이나 음주, 마약 등)중에 무엇인가 버릴 게 있어야 자신의 건강이 좋아지리라는 희망이 생기지 않겠느냐고.

 

마크 트웨인의 일화 중에는 재미있는 게 많은데 그가 말하길 세상에서 가장 위험한 행동은 침대에 누워 있는 일이라고 했습니다. 왜냐하면 지금까지 죽은 사람 중의 80%는 침대에 누워 있다가 그렇게 되었다는 게 그 이유였습니다. 조금 썰렁한가요? 아무튼 그도 침대에 누워 있다가 75세의 나이로 눈을 감았다고 합니다.

 

저는 요즘 담배 생각이 날 만한 일은 가급적 삼가하고 있습니다. 글을 쓴다거나, 커피를 마신다거나, 과식을 한다거나... 낮동안에도 아무 생각도 없이 잠들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생각하는 요즘입니다. 금연한 지 고작 여드레가 지나가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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