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세이 주목 신간 작성 후 본 글에 먼댓글 남겨 주세요.

계절은 벌써 여름으로 가려는지 사람들 입에서는 '덥다. 더워!' 소리가 들린다. 사람들의 조급함이 계절로 옮겨간 듯하다. 이제 겨우 5월 초순. 산책을 부르는 신선한 바람이 봄의 갈피 어디쯤 여전히 남아 있을 거라고 믿어 본다. 나는 아직 이 계절을 충분히 즐기지 못했음이다. 억. 울. 해!!!

 

 

사회학자 다비드 르 브르통의 <걷기 예찬>을 읽은 후 걷는 것에 대한 원초적인 위대함과 아름다움을 느꼈다면 심해도 너무 심한 과장이다. 그야말로 뻥이다. 그러나 걷기에 대한 시각이 조금쯤 변한 건 사실이다. 걷기와 관련된 책을 찾다 보면 이따금 <플래닛 워커 : 아름다운 지구인> 과 같은 감동 100%의 책도 우연히 만나게 되고, 빌 브라이슨의 <나를 부르는 숲>이나 셰릴 스트레이드의 <와일드>와 같은 재미있는 책도 만나게 된다. 그래서 나온 속담이 '걸어서 남 주나?' 아니면 말고.

 

 

 

 

 

 

 

 

나는 사실 무라카미 하루키의 책이라면 자다가도 벌떡 일어날 정도로 하루키의 광팬이다. 그런 까닭에 내가 이 책을 선택한 것은 어찌 보면 사심이 작동했다고도 할 수 있다. 그러나 하루키의 여행기는 우리가 흔히 접하는 여행기와는 차원이 다르다.(물론 나만 그렇게 생각하는 것일 수도 있다.)  하루키의 여행기에 빠져서 하루키 폐인이 된 사람을 나는 적어도 두 명 이상은 말할 수 있다.

 

 

 

 

 

 

 

 

페르난두 페소아의 <불안의 서>를 읽었던 사람이라면 그의 시적 영역, 또는 누구보다도 깊은 사색의 영역에 이끌리듯 빨려들어가게 된다. 마치 오래전부터 전해오던 지독한 열병처럼 '페소아적 사유'에 펄펄 끓게 된다. 그 장대한 사유의 기록은 그만큼 지독하다. 어쩌면 이 책은 그 '맛보기'일지도 모르겠다.

 

 

 

 

 

 

 

 

 

 

'소설가 마루야마 겐지' 하면 '아이, 언제 적 사람을 들먹이고 그래?' 하는 볼멘소리가 들려올지도 모르겠다. 그러나 일본 문단에서 마루야마 겐지는 중요한 작가일 뿐만 아니라 현대를 사는 우리가 반드시 접해야 할 작가 중 한 명이라고 나는 생각한다. 그의 뚜렷한 주관이 소설에서도 언뜻언뜻 비치지만 그의 산문집보다는 못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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붉은돼지 2015-05-01 21:0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하루키의 `나는 여행기를 이렇게 쓴다`는 신작이 아니라 `하루키의 여행법`의 개정판인 모양입니다^^

꼼쥐 2015-05-07 15:40   좋아요 0 | URL
아~~그렇군요.
어쩐지 목차를 보니 알겠더군요. ㅎㅎ
 
숙제의 힘
로버트 프레스먼 외 지음, 김준수 옮김 / 다산라이프 / 2015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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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운이 길게 남았던 어떤 일이 있었을까요? 진한 아쉬움이나 어쩔 수 없는 회한 같은 것 말이지요. 마음의 찌꺼기와도 같은 그런 느낌은 어쩌면 자신의 열정과도 관계가 있을지 모르겠습니다. 예컨대 최선을 다하지 못했던 고3 수험생 시절, 한눈에 반한 첫사랑의 연인에게 말 한마디 하지 못하고 떠나 보내야만 했던 이른 청춘의 기억처럼 언뜻언뜻 떠오르며 긴 여운만 남기는 일들 말입니다. 그러나 누구에게나 있을 법한 그런 기억들이 나는 잘 떠오르지 않습니다. 잘난 체 하는지도 모르겠지만 사실입니다. 다른 건 몰라도 학창시절에 최선을 다하지 못했다는 자책이나 후회는 없습니다. 그보다는 오히려 힘겹게 버텼던 그 시절의 내가 떠오를 때마다 왠지 애잔하고 가엾다는 생각만 되풀이됩니다.

 

며칠 전부터 읽기 시작한 <숙제의 힘>은 내가 자랐던 환경과 올해 초등학교 6학년인 아들이 처한 환경은 비교가 안 될 정도로 차이가 크구나, 생각하게 했습니다. 물론 새삼스러울 것도 없는 사실이지만 현실에서 너무도 당연한 일들은 가끔 잊고 지내게 마련이지요. 최근에도 아들은 해야 할 숙제가 너무 많다는 이유로 학교에 다니기 싫다는 말을 아내에게 했다더군요. 그 또래의 아이들 대부분이 느낄 만한 가벼운 불만인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러나 나는 이따금 아들의 심정을 이해 못할 때가 있습니다. 형제도 많고 매우 가난한 집에서 자랐던 나는 학교에 다닐 수 있는 것만으로도 행복하다 여겼으니까요.

 

사실 이 책 <숙제의 힘>은 아이들의 숙제 문제에 국한하여 쓰여진 책은 아닙니다. 미디어 환경에 노출된 아이들에게 어떻게 하면 좋은 학습 습관을 심어줄 수 있을까, 하는 문제에 대한 심도 있는 연구와 이를 바탕으로 적절한 대안을 모색하는 학습 습관 연구서라고 하는 편이 옳을 것입니다. 다시 말하자면 이 책의 내용은 바람직한 미디어 사용 습관, 숙제 습관, 시간 관리 습관, 목표 설정 습관, 효율적 대화 습관, 책임지는 습관, 집중하는 습관, 자립하는 습관 등 성공하는 아이를 위한 8가지 학습 습관을 광범위하게 다루고 있습니다. 사실 하나하나의 습관에 대해 깊이 있게 다루자면 책 한 권으로도 모자를 만큼 넓은 범위일 수 있겠지만 이 책에서는 실증적인 연구 결과를 통해 도출된 방안을 간략간략하게 소개하고 있습니다.

 

"실제로 컴퓨터와 태블릿 PC를 적정하게 쓰는 아이들의 경우는 아예 쓰지 않는 대조군에 대해 상당히 높은 점수를 받았다. 하지만 사용 시간이 45분을 넘자, 성적이 느리지만 점진적으로 하락하는 경향을 보인다. 그리고 3시간을 기점으로 급격히 하락하는 모습을 보인다. 5시간이 넘게 되면 수학이나 영어에서 A를 받는 학생들은 매우 소수에 불과했다. TV 시청 시간이 1시간 30분만 넘어도 아이들은 성적이 눈에 띄게 떨어지기 시작한다. TV 시청이 4시간을 넘는 아이들은 제대로 된 학교 성적을 받을 가능성이 제로에 가깝게 된다." (p.97)

 

"아이에게 선물로 핸드폰을 사주지 마라. 핸드폰은 선물이 아니라 책임져야 할 대상이다. 정 갖고 싶다면 자신의 용돈으로 사야 한다." (p.113)

 

아이를 키우는 부모라면 대체로 고개를 끄덕이며 공감할 수 있는 내용입니다. 사실 이불도 갤 줄 모르는 아이의 손에 핸드폰을 쥐어 주고 책임감 있게 사용하라고 아무리 당부한들 통할 리 없습니다. 생각해 보면 어른도 하기 힘든 절제를 아이들에게 기대하는 셈이지요. 놀이 상대가 부족한 요즘의 아이들에게 TV나 핸드폰은 끊을 수 없는 유혹이자 쉽게 다가갈 수 있는 친구쯤으로 여겨질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렇다고 하여 아이들의 뜻에 따라 모든 것을 결정한다면 그것 또한 부모의 책임을 방기하는 것이겠지요. 결국 아이들이 납득할 수 있도록 부모의 책임을 다하려면 길고 힘든 고행의 과정을 통과해야 할 것 같습니다. 다 알다시피 배움이란 점진적으로 쌓여 가는 과정이기에 아이들에게 좋은 학습 습관을 심어주는 것은 무엇보다 중요하며 그것은 결코 단기간에 이룰 수 있는 성취는 아닌 듯합니다.

 

"부모를 포함해 많은 사람들은 자신이 남을 가르칠 만한 충분한 능력이 있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가르친다는 것은 일종의 기술이다. 효과적으로 남을, 특히 아이들을 가르칠 수 있는 사람이 되는 건 어려운 일이다. 당신에게 교사 자격증이 있거나 혹은 실제 학교에서 가르치고 있는 중이라고 해도, 섣불리 당신의 자녀를 가르치려 들지 말라. 그건 다른 직종이다. 지금 당신의 직업은 엄마, 아빠이다. 오직 당신만이 가장 본질적이고도 중요한 기술인 '숙제하는 법'을 익히도록 아이를 도울 수 있다. 아이가 스스로 학교 숙제를 하도록 두어야 긍정적인 학습 습관을 길러 줄 수 있다." (p.135)

 

나는 이따금 부모가 물려줄 수 있는 가장 훌륭한 유산은 무엇일까? 생각할 때가 있습니다. 다른 모든 부모가 내 의견에 동의할지 아닐지 장담할 수는 없지만 내가 내린 결론은 '좋은 습관'을 물려주는 것보다 더 좋은 유산은 없겠다는 것이었습니다. 많은 돈을 물려줄 수 없기에 하는 말인지도 모르지만 말입니다. 하지만 아이들은 자신의 부모로부터 배우고 그렇게 길들여진 습관을 통해 자신의 인생을 만들어가기 때문에 내 말이 과히 틀리다고는 말할 수 없을 것입니다. 나는 부모의 습관을 판박이처럼 따라하는 아이들을 주변에서 너무도 많이 보아왔습니다. 예컨대 약속을 밥먹듯이 하면서도 제대로 지키지는 않는 부모 밑에서 자란 아이는 습관처럼 거짓말을 하게 되고, 다 쓴 물건을 아무데나 두거나 밤낮 누워 지내는 부모 밑에서 자란 아이는 물건을 정리할 줄 모르는 법이지요. 그러나 잘못된 습관에도 불구하고 욕심의 수치는 결코 떨어지는 법이 없으니 인생의 비애는 거기에 있나 봅니다.

 

"불행히도 우리가 사는 세상은 진정한 용기를 갖춘 사람보다 단지 유명해지려는 욕망으로 가득찬 사람들이 넘치는 곳이다. 이런 명성에 대한 집착은, 많은 아이들에게 '최고가 아니라면 무슨 소용인가' 하는 잘못된 믿음을 갖게 한다. 그러면 아이들은 결국 그냥 포기하고, 좀 더 쉽게 희망을 이룰 수 있는 다른 일을 찾게 된다. 지금 이 일이 안 될 것 같으면, 뭔가 다른 것으로 넘어가면 그만인 것처럼." (p.310)

 

이 책의 구성은 1부 ‘평생 학습의 모든 것은 가정에서 시작된다’, 2부 ‘평생 성공하는 아이를 위한 8가지 학습 습관의 법칙’, 3부 ‘성공하는 아이를 위한 21가지 놀이 과제들’로 이루어져 있습니다. 어찌 보면 2부가 주가 되겠지요. 나는 그동안 자녀 교육에 관한 많은 책을 읽어왔습니다. 그럼에도 뭐가 뭔지 방향을 잃고 헤맬 때가 많습니다. 어쩌면 이 책은 나처럼 자녀 교육에 대한 원칙이 없어 갈팡질팡하는 부모에게 보탬이 될지도 모르겠습니다.

 

올해 들어 금연을 실천하면서 나는 많은 것을 새롭게 배워야만 했습니다. 무엇보다도 많이 배웠던 것은 중독의 무서움이었습니다. 당연하겠지요. 그런 까닭에 아내는 게임을 일체 하지 않습니다. 나도 물론 게임을 하는 건 아니지만 말입니다. 무엇이건 일단 한번 중독되면 그것을 끊는다는 게 여간 어려운 게 아니기 때문입니다. 매일 느끼는 커피 한 잔의 유혹을 나는 여전히 끊지 못하고 있습니다. 그리스 철학자 에픽테토스는 "가장 훌륭한 생활을 선택하라. 습관은 인생을 즐겁게 할 것이다."라고 말했다지요. 힘들이지 않고 좋은 습관을 얻을 수만 있다면 얼마나 좋겠습니까마는 내 경험에 의하면 '아무리 오래된 좋은 습관도 한순간만 방심하면 잃기 쉽고, 얼마 되지 않은 나쁜 습관도 버리는 게 결코 쉽지 않다'는 것입니다. 이래저래 힘든 인생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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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중사회에서의 개인은 정보의 무차별적인 공습에 의해 쉽게 상처받고 그 상처받은 개인이 자신도 모르게 정형화된 어떤 보편적인 틀(또는 룰)에서 벗어난 행동을 할 때 자신이 속한 사회로부터 방치되고 소외되는 것은 주변에서 너무도 흔한 일이 되었다. 그러나 그런 현상에 대한 우리의 반응은 시큰둥하고 뜨뜨미지근할 뿐이다. 같은 일을 되풀이하여 목격함으로써 우리가 처음에는 충격으로 받아들였던 한 사건은 점차 퇴색하여 희미해져가고 사회로부터 도태되거나 소외된 사람들에 대한 알 수 없는 죄책감이나 서글픔은 먼 옛날의 신화처럼 산화되게 마련이다.

 

그러나 우리가 흔히 간과하는 것은, 아직은 도태되지 않은 나 자신도 언젠가는 사회로부터 추방된 무리 속에 속하게 될지도 모른다는 사실이다. 보통의 사람들에게 그것이 현실로 일어날 가능성은 백 퍼센트에 가깝다. 나이가 들거나, 병이 들거나, 어떤 사고로 인하여 장애를 입거나 하는 피할 수 없는 육체적 손실로 인하여 사회 구성원으로부터 소외되었을 때 '나만 아니면 돼.'하는 식의 차디찬 눈길을 받는다면 그 기분은 어떨지.

 

오늘은 세월호 승무원들에 대한 항소심 재판이 있었던 날이다. 선장과 나머지 14명의 승무원에 대한 판결이 있었고 그것으로서 세월호 사건은 일단락이 된 것으로 치부될지 모른다. 진실도 밝혀진 게 하나도 없는 이 마당에 세월호 유가족들은 어쩌면 사회 구성원들로부터 영원히 잊혀질지도 모르고 사회에 편입되어 평범한 구성원으로 살아가길 바라는 그들의 필사적인 노력은 사회를 위협하는 적대적 행위로 인식될 수도 있다. 물대포와 최루액을 뿌린 경찰의 행태만 보아도 잘 알 수 있다. 오죽하면 국제엠네스티도 “평화적인 집회와 행진을 진압하는 것은 정당화될 수 없으며, 세월호 참사 희생자와 그 유가족 모두에 대한 모욕적인 처사”라고 비판했겠는가.

 

세간에 떠돌고 있는 '성완종 리스트'도 따지고 보면 어느 한 개인의 욕심에 의한 뇌물 수수 사건이 아니고 현 정부의 정권 획득 시기에 있었던 비열한 행위임에도 불구하고 언론이나 대중은 거론된 인물들만 하루 빨리 도태되기를, 그렇게 됨으로써 사건에 연루되었지만 드러나지 않은 다른 사람들에게 불똥이 튀지 않기를 간절히 바라고 있는 듯하다. 대중으로부터 추방된 한 개인은 상처받기 쉽고, 그 상처받은 개인은 대중으로부터의 개별적인 관심을 받지 않는 한 치유되기 어렵다. 잊는 것과 잊혀진다는 것은 인간이 가진 '야누스의 두 얼굴'이라는 생각이 문득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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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루키 일상의 여백 - 마라톤, 고양이 그리고 여행과 책 읽기
무라카미 하루키 지음, 김진욱 옮김 / 문학사상사 / 1999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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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에서 읽게 되는 다른 사람의 이야기는 도무지 심각하게 받아들여지지 않는다. 작가의 애기라고 예외일 리 없다. 아무리 심각한 이야기를 할지라도 '뭐, 그럴 수도 있지.'라거나 '음, 그렇군.'정도의 반응만 보일 뿐 '설마, 그럴 리가?' 하는 식의 호들갑은 떨지 않는다는 말이다. 내 손에 난 상처가 아니어서 아픔을 느낄 수가 없다고 말한다면 내가 너무 야박하다고 힐난하는 사람도 있을지 모르겠다. 그러나 생각해 보면 책에서 읽는 이야기는 대부분 작가 자신이 직접 겪은 일이라고는 해도 다 지난 옛일일 뿐이고 지금은 어느 누구보다 행복하게 잘살 수도 있는 일 아닌가. 게다가 힘든 일을 겪던 그 당시에도 작가는 힘들다고 느끼지 않았을 수도 있고. 사실 그런 이야기를 읽으면서 눈물을 철철 흘린다는 것도 조금은 주책맞아 보인다.

 

무라카미 하루키를 좋아하는 사람 중에는 그가 쓴 소설보다는 에세이를 더 좋아한다고 말하는 사람을 종종 만나게 된다. 사실 하루키의 에세이는 주변 풍경을 스케치하듯 가볍게 쓰거나 마치 남의 일인 양 쿨하게 쓰는 경우가 다반사여서 땀으로 젖은 옷이 척척 감기는 듯한 끈적끈적한 수필만 읽어 왔던 독자들은 마치 신세계를 만난 듯 '유레카!'를 외치곤 한다. 지금 이 순간에도 옆집에서 외치는 '유레카!' 소리를 우연히 듣게 되었다면 하루키의 팬이 한 명 더 늘었다는 얘기일 수 있다.

 

하루키의 에세이를 즐겨 읽는 한 사람으로서 나는 <하루키 일상의 여백>을 특히 좋아한다. 자신의 사생활이 드러나는 걸 극도로 꺼려하는 까닭에 인터뷰도 자제하는 그이지만 이 책에서 작가는 자신의 사생활을 비교적 자세하게 다루고 있다. 글쓰기와 마라톤, 여행과 재즈, 고양이에 얽힌 이야기 등 남들과 다를 바 없는 일상의 이야기들을 솔직하게 드러낸 에세이 모음집이다. 작가는 <태엽 감는 새>를 집필하던 시기에 보스턴 근교의 대학 마을 케임브리지에서 보낸 2년 간의 생활을 이 책에 담고 있다.

 

"그건 그렇고 지금까지도 세상 사람들은 작가에 대한 일반적인 선입견 같은 걸 가지고 있다. 예를 들면, 작가라는 작자들은 밤을 새우기 일쑤고, 줄창 단골 술집에 드나들면서 술이나 퍼마시고, 가정은 거의 돌보지 않으며, 게다가 지병(持病) 하나둘쯤은 누구나 갖게 마련이고, 원고 마감일만 되면 호텔 같은 곳에 틀어박혀서 머리칼을 마구 쥐어뜯고 있는 족속이라고 믿는 것 같다." (p.16)

 

'밤에는 대개 열 시에 잠자리에 들고, 아침에는 여섯 시에 일어나 매일 조깅을 하며, 한 번도 원고 마감일을 넘긴 적이 없다는 그는 우리가 갖고 있음직한 작가에 대한 신화적 이미지를 여지없이 깨트리지만 일시적으로 디아스포라의 삶을 선택하는 그의 내면에는 그럴 만한 까닭이 있는 듯하다. 불건전한 영혼의 정화를 위해 풀코스 마라톤에 도전하는 것하며, 이웃집 고양이 코타로 이야기, 자동차를 도둑맞고 되찾기까지 고생한 이야기, 중국과 몽골을 여행할 때 곤혹스러웠던 중국 음식 알레르기, 그리고 소설 쓰기와 좋아하는 작가들의 책 이야기 및 재즈와 영화 이야기 등 일상의 소소한 것들에 대하여 작가는 애정을 담아 풀어놓는다. 나는 이 책에서 이따금 일상으로부터 벗어난 듯한 여유와 자유로움을 느끼곤 한다.

 

작가는 미국 생활에서 겪었던 소소한 즐거움들, 이를 테면 통신 판매를 통하여 구입했던 빨래 건조대와 고양이 손목시계, 대학 동료로부터 처음 배운 스쿼시, 결혼 전 힘들었던 시기를 같이 견딘 고양이 피터에 대한 추억 등 세계 어느 곳에서도 있을 법한 이야기를 가볍게 쓰다가도 어느 순간 문득 진지해지곤 한다.

 

"때때로 문득 혼자서 살아가는 것은 어차피 지기 위한 과정에 지나지 않는 게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 때도 있다. 그리고 그러한 삶이 정말 피곤하다는 것을 인정하면서도, 나름대로 힘껏 살아나가지 않으면 안 된다. 왜냐하면 개인이 개인으로서 살아가는 것, 그리고 그 존재 기반을 세계에 제시하는 것, 그것이 소설을 쓰는 의미라고 나는 생각하고 있기 때문이다." (p.74)

 

다른 에세이집과는 다르게 중간중간 일상의 모습이 담긴 원색 사진이 실려 있다. 그가 통신 판매로 구입한 목조 빨래 건조대며, 찰스 강 기슭의 갈매기,고양이 코타로, B.B. 킹의 콘서트 풍경 등 책에 실린 사진들은 글과 함께 작가의 일상을 보여주는 가벼운 터치처럼 신선한 느낌을 준다. 이 책의 마지막 문장에서 나는 특별히 깊은 인상을 받았다.

 

시간은 조용히, 그리고 쉬는 일도 없이 흘러가 버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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x의 즐거움 - 인생을 해석하고 지성을 자극하는 수학 여행
스티븐 스트로가츠 지음, 이충호 옮김 / 웅진지식하우스 / 2014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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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넬대학의 응용수학과 교수인 스티븐 스트로가츠는 이 책의 머리말에서 다음과 같이 말하고 있다.

 

"유치원 과정에서부터 대학원 과정에 이르기까지 수학의 모든 것을 쉽게 설명하는 이 여행에는 수학과 친해질 또 한 번의 기회를 원하는 사람이라면 누구든지 동참할 수 있으며, 친절한 안내자의 설명을 들으며 흥미진진한 여행을 즐길 수 있다. 다만, 이번에는 어른의 시각에 초점을 맞춰 안내할 것이다. 이 여행의 목적은 부족한 수학 실력을 보충하기 위한 것이 아니다. 수학이란 무엇이며, 수학을 이해하는 것이 왜 그토록 즐거운 일인지 깨닫게 하는 것이 주 목적이다." (p.15~p.16)

 

수학은 어려운 과목이다. 대부분의 사람이 그렇게 말하고 나 또한 그 의견에 일정 부분 동의한다. 그러나 어렵다는 말과 재미없다는 말이 같은 뜻인 양 떠벌리는 사람의 의견에는 동의할 수 없다. 그것은 결코 같아질 수 없는, 어쩌면 근처에도 가지 않는 별개의 말이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사람들은 "수학은 어렵다.=수학은 재미없다."로 인식하거나 동일한 명제인 양 혼동하곤 한다. 두 명제가 관련이 전혀 없다는 것은 아니다. 어떤 과목이든 아는 게 적으면 적을수록 점점 더 재미가 없어지는 법이다. 엄밀히 말하자면 같은 또래에 비해 아는 게 적다는 의미의 상대적 개념으로서 말이다. 그것은 또한 자신도 모르게 '또래집단이라는 경쟁 구조 내에서의 나'를 바라보고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

 

그렇다면 취미로서의 수학은 어떤가? 이 질문에 대해 '에이, 세상에 수학을 취미로 하는 사람이 어디 있어요?' 말도 안 된다는 식으로 말하는 분이 있을지도 모르겠다. 드문 경우다. 인정한다. 나 또한 수학을 취미로 하는 사람을 보지 못했으니까. 그러나 거꾸로 생각해보면 '수학을 취미로 가지려는 사람은 왜 없는가?' 반문하게 된다. 결혼도 한 어른이 피아노 연주를 취미로 갖기 위해 피아노 학원에 등록하는 것처럼 수학을 취미로 갖기 위해 수학 학원에 등록하는 어른이 있을 수도 있는 일 아닌가?

 

그러나 결론적으로 말해 그런 어른은 존재하지 않는다. 적어도 우리나라에서는 말이다. 그렇다면 수많은 동호회 중에 '어른을 위한 수학 동호회'는 존재할까? 나는 본 적이 없다. 세상에는 별별 희한한 동호회도 많은데 말이다. 가령 어려운 수학문제를 풀었을 때의 스릴이나 성취감은 외발자전거 묘기에 도전하여 성공했을 때의 느낌과 크게 다르지 않을 텐데 외발자전거 동호회는 있어도 수학 동호회는 없다는 게 이상하지 않은가.

 

잠시 나도 모르게 열을 받아 혼자 떠들었나 보다. 아무튼 이 책 <X의 즐거움>은 어른들을 위한 수학책이다. 이 책은 단순한 '수'에서부터 음수와 양수, 소수, 복소수, 근의 공식, 기하학, 피타고라스의 정리, 미적분학, 벡터미적분학, 구면기하학, 미분기하학, 해석학 등을 일상생활과 연결해 설명하는데, 상당수는 배운적이 없는 내용(혹은 기억하지 못하는 내용)이라 '과연 이 책을 읽고 일반인이 수학에 관심을 가질 수 있을까'란 생각이 들기도 한다. 그렇다고 마냥 어렵게만 씌어졌다는 얘기는 아니다. 선형대수학을 응용한 구글의 성공이나 조지 부시 대통령의 감세 정책 등 어른들도 재미있어 하거나 관심을 끌 만한 내용이 눈에 띈다.

 

"증명은 현기증이나 과도한 졸음을 유발할 수 있습니다. 장기간 노출의 부작용으로는 야간 발한, 공황 발작, 그리고 드물게 이상 황홀감이 나타날 수 있습니다. 증명이 여러분 건강에 괜찮은지 사전에 의사에게 문의하세요." (p.126)

 

어른이 수학을 배우거나 공부한다고 하여 창피함을 느낄 사람은 없다고 본다. 오히려 나름 뿌듯해 하거나 보람을 느꼈으면 느꼈지. 물론 다른 이점도 있다. 다른 분야의 공부에서는 잘 경험할 수 없는 몰입의 기쁨을 누릴 수 있다는 점이다. 어른들이 수학을 싫어할 거라는 편견은 그야말로 편견일 뿐이다. 어떤 학문이든지 성적에 따라 석차를 매기지만 않는다면 우리는 즐겁게 공부할 수 있고 언제든 뿌듯한 성취감을 맛볼 수 있다. 어른이라면 적어도 그런 위치에 있는 것이다. 순수한 동기에서 공부할 수 있다는 말이다. 누구보다 더 좋은 점수를 받을 필요도 없고, 정해진 시간 내에 문제를 풀 필요도 없는 것이다. <X의 즐거움>은 그 길잡이 역할을 할 뿐이다. 조금 더 실력이 붙으면 혹시 아는가 필즈상에 도전하게 될지. 장담하건대 이 책을 다 읽은 사람이라면 누구나 학창시절에 앓았음직한 수학 기피증을 완전히 치료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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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로그인 2015-04-28 23:24   좋아요 0 | URL
저는 다행히 수학의 기피증은 없었는데 이 책을 읽으면 수학 기피증을 치료할 수 있군요.
책 전체의 내용들이 궁금하네요.

책을 한 번 읽어봐야겠어요.

꼼쥐 2015-05-01 13:30   좋아요 0 | URL
개념 위주로 재미있게 써놓은 책입니다. 사실 수학을 재미있게 이해시킨다는 건 웬만한 전문가가 아니고는 힘든 일이죠. 이 책의 저자는 수학에 있어서만큼은 탁월한 실력가인 듯. 저도 재미있게 읽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