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침에 운동을 마치고 산을 내려오는데 비를 만났다. 가늘고 성긴 비가 간헐적으로 이어지고 있었다. 오랜만에 듣는 빗소리가 반가웠던지 한껏 들떠 보이는 청설모가 자신의 잰 발로 이쪽 우듬지에서 저쪽 우듬지로 거침없이 건너뛰는 게 보였다. '저러다 혹 바닥으로 떨어지는 게 아닐까' 걱정이 될 정도로 나무는 아스라이 높았다. 가벼운 비가 밤꽃 냄새를 진하게 우려내었던지 산에는 온통 비릿한 밤꽃 냄새로 가득했다.

 

산을 얼추 다 내려왔을 때 등산로 한가운데 엎디어 있는 고양이를 보았다. 산에서 고양이와 마주친 것은 처음이었다. 크림색의 고양이는 어떤 무늬의 색깔도, 특징도 없이 그저 평범하였다. 다만 오랫동안 바깥 생활을 한 탓인지 몸은 땟국에 절어 꾀죄죄해 보였다. 반가운 마음에 가까이 다가가자 고양이는 소리도 없이 자리를 피했다. 나와는 일정한 거리를 두고 앞서 걸어가는 녀석을 자세히 보니 출산이 임박한 듯 배가 불룩했다. 고양이는 내가 산을 벗어나기도 전에 숲으로 사라졌다.

 

비는 오지 않지만 하늘은 여전히 어둡다. 오랜만에 느껴지는 습습한 기운과 주말을 맞는 사람들의 들뜬 기분이 메르스의 공포를 조금쯤 누그러뜨리는 듯하다. 점심시간에도 손님이 거의 없는 작은 식당들이 유난히 썰렁해 보인다. 정부의 안일한 대처로 화를 키웠다는 생각이 든다. 호미로 막을 것을 가래로 막는 격이다. 그 피해는 고스란히 서민들의 몫으로 남는다. 복지부 직원들이라 복지부동의 습관이 몸에 배었는지도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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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딩 2015-06-05 15:2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완벽하게 현충일을 잊고 있던 현충일 전날 읽고 갑니다. :)

꼼쥐 2015-06-06 07:37   좋아요 0 | URL
고맙습니다. 주말 잘 보내세요. ^^
 
하루키, 하야오를 만나러 가다
무라카미 하루키.가와이 하야오 지음, 고은진 옮김 / 문학사상사 / 2004년 10월
평점 :
구판절판


현대인이 앓고 있는 대부분의 병은 자신의 이야기를 이야기로 표현하지 못하는 데서, 누군가와 함께 자신에 대해 이야기를 공유하지 못하는 데서, 궁극적으로는 그 모든 통로가 막혀있다는 데서 오는 '마음의 병'이 주가 아닐까 하는 생각을 이따금 하게 됩니다. 나만이 겪은 특별한 경험이 어떤 보편성 속에 뭉뚱그려 합쳐짐으로써 나의 이야기는 그들의 이야기로 변질되고 이 사회에서 '나'란 존재는 사회를 이루는 보통의 인간일 뿐인 듯 느껴지는 것이죠. 뭐 하나 특별할 것 없는 보통의 인간, 누구 하나 내 말에 귀를 기울여주지 않는다는 느낌은 왠지 서글퍼지는군요. 우리가 흔히 '인간 소외'라고 하는 현대인의 고질적인 병은 특히 유교 문화권에서 두드러지게 나타나는 것 같습니다. 어쩌면 개성의 상실이란 것도 그와 같은 순서로 진행되는 것이겠지요.

 

무라카미 하루키의 소설 <태엽감는 새>를 읽어보셨는지요. 그 책에서 주인공은 어느 날 갑자기 부인을 잃어버리게 됩니다. 죽어서 이 세상을 뜨는 것이 아니라 그야말로 하루 아침에 사라져 버리는 것이죠. 온다 간다 한마디 말도 없이 말입니다. 어쩌면 작가가 이 책을 발표했던 1990년대 중반의 일본 사회에서 소설 속 주인공이 겪었던 그와 같은 일은 비일비재 했는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런데 이게 이제 먼 나라 남의 이야기로만 치부할 일이 아니라는 생각이 듭니다. 통계에서 보아 아는 것처럼 우리나라 젊은이들의 결혼 연령도 매년 늦어지고 있지만, 어렵게 결혼에 성공한 커플도 얼마 지나지 않아 이혼하는 건수가 매년 가파르게 증가하고 있습니다. 소설에서처럼 어제까지만 해도 잘 있던 아내가 어느 날 갑자기 사라지는 것이죠. 정말이지 소설처럼 말입니다.

 

소설가 무라카미 하루키와 일본을 대표하는 분석심리학자 가와이 하야오의 대담집 <하루키, 하야오를 만나러 가다>는 여느 대담집보다 상당히 흥미롭습니다. 이틀간에 걸쳐 진행된 두 사람의 진지한 대화는 특정한 주제를 미리 정하지 않고 시도된 까닭인지 시종 솔직하고 자유분방한 대화가 오갑니다. 개성과 보편성, 개인적 삶과 사회 참여, 소설의 본질, 일본 사회 속의 폭력성, 결혼 생활 등등에 이르기까지 현대를 살아가면서 겪는 문제와 내면에 잠재한 고뇌를 허심탄회하게 털어놓습니다. 이 대담이 성사될 당시 하루키는 그의 소설 <태엽감는 새>를 막 출간했던 시기였습니다. 일본은 그 당시 고베 대지진과 옴진리교 사건으로 전 일본이 집단적 우울증에 걸려 있었던 상태였고 말이죠.

 

"마음의 병을 치유하는 것으로서 '이야기'는 참으로 중요하다. 현대는 그런 이야기를 일반인에게도 통하는 것으로서 제시할 수 없다는 어려운 점이 있다. 각자는 각자의 책임하에 자신의 이야기를 만들어내야 한다. 이상과 같은 점에서 우리 두 사람은 대체적으로 의견이 일치하지만, 그래도 각자의 개성에 의한 차이를 반영해 가면서 마음껏 대화를 계속했다. 나 개인적으로는 이 대화에서 얻은 점이 많았다." (p.151)

 

이 대담이 성사되었던 1995년 당시의 일본과 지금의 대한민국은 많은 면에서 닮아 있다는 생각을 하게 됩니다. 세월호 사건으로 전 국민이 슬픔 속에 빠져 있는 것도, 높은 실업률로 젊은이들이 희망을 잃어가는 것도, 물질적으로든 정신적으로든 힘든 현실을 견디지 못하고 이혼을 결심하는 것도 다 비슷해 보입니다. 그런 이미지를 배경으로 <태엽감는 새>가 탄생했다면, 그 소설을 탈고한 작가와 독자의 입장에서 그 소설을 읽은 심리학자의 대담은 무척이나 흥미로운 것이었습니다. 더불어 작금의 우리 현실을 이해하게 하는 좋은 책이기도 하지요.

 

"우리는 괴로워하기 위해서 결혼한다"라는 가와이 선생님의 정의는 매우 신선하고 재미있었습니다. 그렇게 단정적으로 말씀하시면 모두 난처해지지만 말입니다. 저 자신은 결혼하고 나서 오랫동안 막연하게 결혼 생활은 서로의 부족한 점을 서로 메워주기 위한 것이라고 생각해 왔습니다. 하지만 최근에 와서(벌써 결혼한 지 25년이 되었지만),조금 달리 생각하게 되었습니다. 결혼은 오히려 서로의 부족한 점을 마구 들추어내는 - 큰소리로 말하거나 말을 안 하는 차이는 있을지라도 - 과정의 연속에 불과하다고 생각합니다. 결국 자신의 부족한 점을 메울 수 있는 사람은 자기 자신밖에 없습니다." (p.70)

 

두 지성인의 대화 치고는 너무 솔직한가요? 나는 위에 인용한 문장에서 작가의 어떤 치기(稚氣)나 장난기도 발견하지 못했습니다. 작가는 때로 그의 수필에서 농담으로 일관하기도 하지만 이 책에서는 그렇지 않았습니다. 서로를 존중하면서 길게 이어지는 대화는 시종 진지하고 솔직했습니다. 그런 진지함이 독자들에게 강한 압박이나 어떤 부담감을 안겨 주는 것 같지는 않았습니다. 오히려 한 문장 한 문장에 집중하도록 했죠. 이따금 머리를 주억거리면서 공감하기도 했구요.

 

"현대의 일반적 풍조는 무라카미 씨가 쓴 것과는 완전히 반대여서, "가능한 한 빠른 대응, 많은 정보의 획득, 대량 생산"을 목표로 움직이고 있습니다. 이런 경향이 인간의 영혼에 상처를 주고, 우리는 그 상처받은 사람들을 치유하기 위해 일반적 풍조와는 완전히 반대되는 일을 한다는 데서 의의를 찾게 되는 것입니다. 이렇게 생각하면 심리요법가의 일과 작가의 일에는 공통점이 있는 것 같아 기쁩니다." (p.103)

 

사는 게 순전히 장난 같고, 가치 없는 것처럼 느껴질 때가 있습니다. 그러나 주어진 삶을 진지하게 살아내기 위해서는 때로 삶 앞에 진지해질 필요가 있습니다. 만날 때마다 내내 농담만 주고받다 헤어지는 커플은 관계가 오래 지속되지만 결코 가까워질 수는 없는 것처럼 늘 농담 같은 기분으로 살아가는 삶은 남는 게 없습니다. 진지한 성찰이 이루어지지 않기 때문이지요. 오늘은 노동절, 누군가의 슬픔이나 괴로움을, 그 특별한 이야기를 진지하게 들어줄 수 있는 날이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또는 그런 사람 곁에서 하루쯤 머물렀으면 좋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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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딩 2015-06-05 14:59   좋아요 0 | URL
요즘은 하루키의 ˝세계의 끝과 하드보일드 원더랜드˝를 읽고 있답니다. 초기 작품인데도 아직 안 읽었더라구요 ^^
하루키 그는 상상하기 힘들만큼 좋은 눈과 별세계에서 (특별히 본인만) 받은 것 같은 뇌로 평범한 일상과 사람의 것들 관찰하고 묘사해내는 것 같습니다. 그리고 그 표현된 묘사와 함께 인간에 대한 근원/심층적인 것들을 깊이 있게 다루는 것 같습니다 :)
좋은 소개 감사드립니다~

꼼쥐 2015-06-05 13:29   좋아요 0 | URL
`세상의 끝과 하드보일드 원더랜드` 저도 정말 재미있게 읽었더랬습니다. 독자들 중에는 이따금 하루키의 책을 폄훼하여 말하는 경우가 있지요. 그러나 문학에 대한, 또는 소설에 대한 그의 주관은 옳은 듯해요. 현실로부터 한발 비껴선 듯한 그의 소설적 공간으로 인해 그의 작품을 읽는 독자들은 현실의 시름으로부터 잠시 벗어날 수 있지요. 그것만으로도 그는 작가로서의 소임을 다하는 것이라고 생각됩니다. 그런 소설을 쓸 수 있는 것도 하루키만의 능력이지만 말입니다.
 
에세이 주목 신간 작성 후 본 글에 먼댓글 남겨 주세요.

재채기나 기침 소리만 들려도 깜짝깜짝 놀라게 됩니다. 그렇다고 그때마다 "Bless you!"를 외칠 만큼 여유롭지도 않고 말이죠. 어쩔 수 없는 일이 아니라면 사람들이 모이는 장소에는 가고 싶지 않은 게 사실입니다. 생각지도 못했던 메르스(MERS)의 확산과 그로 인한 깊어지는 공포는 나로 하여금 '바른 생활 사나이'가 되도록 강제하였습니다. 물론 좋은 점도 있습니다. 거절하기 애매한 술 약속이나 저녁 약속도 메르스를 둘러댐으로써 단박에 거절할 수 있으니 말입니다. 게다가 저녁을 먹고 느긋하게 책을 읽을 수도 있으니 얼마나 다행인지요. 5월에 나온 신간 에세이를 둘러보며 그 중 읽고 싶은 책 몇 권을 골라보았습니다. 책을 고르는 시간의 숨결 속으로 투명한 고요가 내려앉았던 것도 나는 몰랐습니다.

 

제목이 맘에 들었어요. 사실 은퇴 후의 제 꿈이기도 하답니다. 이루어질지 아닐지 저로서도 장담할 수 없는... 누구나 꿈을 꾸는 건 자유니까요. 작가의 이름도 생소한 이 책을 고른 후 저는 주문을 외듯 "이루어지리라. 이루어지리라." 중얼거렸습니다. 이 책을 다 읽은 후 어느 날 어쩌면 제 꿈이 마법처럼 이루어질지도 모르겠습니다.

 

 

 

 

 

 

 

 

시한부 인생을 사는 아빠가 자신의 딸을 위해 도시락을 싸고 그 속에 담긴 냅킨에 마음을 담아 꼭꼭 눌러 쓴 사랑의 편지를 읽는 딸의 느낌은 어떤 것일까요? 위지안의 <오늘 내가 살아갈 이유>나 랜디 포시의 <마지막 강의>를 읽었을 때의 감동이 지금 이 순간에 되살아나는 느낌이 듭니다. 살면서 감동이 느껴졌던 그 순간은 너무도 쉽게 잊혀집니다. 어쩌면 내일이 있다는 여유 때문인지도...

 

 

 

 

 

 

 

자주 보면 그닥 감흥이 없지만 이따금 읽는 서간집은 묘한 매력이 있습니다. 게다가 장르가 다른 두 예술가의 편지는 좁혀질 것 같지 않던 머릿속 간극을 단박에 좁혀놓습니다. 루시드 폴과 마종기 시인의 서간집 <아주 사적인, 긴 만남>처럼 말입니다. 생각해 보면 그들과 내가 하나도 다를 게 없다는 느낌도 들고, 인생이란 게 영화처럼, 한 편의 시처럼, 한 곡조의 음악처럼 흐른다는 걸 새삼 깨닫게 됩니다.

 

 

 

 

 

 

 

 

 

 

정호승 시인의 산문집입니다. 이 책의 소개글에는 "1996년 <첫눈 오는 날 만나자>, 2001년 <인생은 나에게 술 한잔 사주지 않았다>, 2003년 <위안>으로 발간되었다가 이제 다시 <우리가 어느 별에서>란 이름으로 새로이 증보된 이 산문집은, '작가의 말'에 밝힌 대로 "책에도 운명이 있다"는 말을 그대로 체현한다."고 적혀 있더군요. 저는 사실 이 책 이전의 산문집을 모두 읽었습니다. 개정 증보판이라고는 하여도 제가 읽지 않았던 산문은 몇 편 되지 않겠지요. 그렇더라도 정호승 시인의 산문은 읽을 때마다 새롭습니다. 한 편의 시처럼 말이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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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딩 2015-06-05 14:0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냅킨 노트˝에 거론된 책들을 주섬 주섬 담아 봅니다 :)
행복한 날 되세요 :)

꼼쥐 2015-06-06 07:38   좋아요 0 | URL
두 건 모두 좋은 책입니다. 저는 개인적으로 위지안의 책이 더 좋았지만 말입니다.
 

어제는 아침에 운동을 하기 위해 집을 나서는데 비가 내리더군요. 비를 보는 건 근 한 달만이었던 듯합니다. 그동안 어찌나 가물었던지요. 마치 우리나라가 갑자기 사막으로 변한 느낌이었습니다. 해가 지면 기온이 빠르게 떨어지고 해가 뜨면 금세 뜨거워지는, 먼지바람 날리는 몽골 초원에 있는 느낌이랄까요.

 

오늘은 중동호흡기증후군(메르스) 환자가 급격히 늘어난 탓도 있고, 날씨도 뜨거운 탓에 특별한 볼일이 없는 한 밖에 나갈 생각이 나지 않는군요. 항상 그렇지만 처음에는 거들떠 보지도 않고 신경도 쓰지 않다가 뭔 일이 터져야만 그때서야 허둥대는 걸 보면 우리나라의 행정은 여전히 주먹구구식에 머물고 있구나 생각하게 됩니다. 다른 건 몰라도 메르스 확산의 주범은 정부 당국이 아닐까 싶습니다. 메르스 의심 환자가 중국으로 출국하는 것조차 미리 막지 못했으니 망신도 그런 망신이 없지요.

 

며칠 있으면 또 국무총리 내정자의 인사청문회가 열리겠군요. 이건 뭐 숫제 코미디와 다를 게 없지만 말입니다. 전임 국무총리처럼 이번 내정자도 부패척결을 말하고 있던데 그러다가 또 어느 날 갑자기 내정자에게 돈을 줬다는 사람이 불쑥 나타나지 않을까 걱정됩니다. 그럴 거면 차라리 국무총리도 길거리 캐스팅을 하는 게 빠르지 않을까 싶어요. 길거리를 돌아다니다가 맘에 드는 사람이 있으면 옆에 가서 조용히 물어보는 거지요. "자네, 혹시 국무총리 해볼 생각 없나?"

 

야구 중계를 보면서 느긋한 휴일을 보내고 있습니다. 내일이면 6월이 시작되는군요. 세월, 참 빠릅니다. 곧 장마철이 시작될 테구요. 슬슬 졸음이 밀려올 듯해서 책을 펼쳐보았지만 눈에 들어오지 않네요. 모든 게 귀찮아지는 나른한 오후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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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소 억울함을 느낄 수 있는 어떤 일에 대하여 그 줄기를 따라 경과를 되짚어 가는 일은 하지 않는 게 좋다. 예컨대 "나는 왜 이렇게 가난한 집에서 태어났을까?"라는 질문처럼 근원을 말하기 어려운 것에서부터 "설사 내가 그렇게 했기로서니 네가 나한테 그렇게까지 한 건 너무한 거 아냐?"라는 가벼운 질문에 이르기까지 우리는 약간의 억울함만 느껴져도 그 일을 반드시 되짚어 보려는 경향이 있다. 이미 벌어진 일을 다시 되돌릴 수도 없다는 걸 잘 알면서도 제 머릿속에서 끝없이 되새김질 하는 바람에 한 번 느껴으면 족할 억울함을 영원회귀의 억울함 속에 가두어 놓곤 한다. 때로는 전적으로 내가 잘못했다는 건 알겠는데 그래도 열 중 한둘은 내가 억울한 일을 당한 것만 같은 느낌이 들기도 한다.

 

나라고 그렇게 안 해본 건 아니다. 하소연도 통하지 않던 억울한 일을 나라고 왜 겪어보지 않았겠는가. 어렸을 때는 부모님으로부터, 또는 형이나 누나들로부터, 선생님으로부터 숱하게 당해보았다. 어찌나 억울한지 밤을 하얗게 지새운 적도 있었다. 가만가만 되짚어 생각해도 내 잘못은 하나도 없는 것 같은데 나만 억울하게 당한 느낌이 강하게 드는 것이다. 그럴라치면 누가 뭐라 한 것도 아닌데 더 화가 나곤 했다. 그야말로 화를 주체할 수가 없어서 얼굴이 붉어지고 심장이 빠르게 뛴다. 곁에 당사자가 있다면 뭔 일이라도 곧 벌어질 것만 같다.

 

그런데 여기에는 오류가 있게 마련이다. 내 머릿속에서 실제로 일이 벌어졌을 당시의 사람들이 다 참가하여 그때의 사건을 재현하는 것도 아니요, 순전히 나의 의도대로 편집되고 왜곡된 사건을 약간의 동정심을 등에 업은 내가 혼자서 연기를 한다는 점이다. 더구나 시간과 배경도 달라진 채 말이다. 그 가상의 공간에서 제 아무리 억울하다 외쳐본들 무슨 소용이 있단 말인가. 차라리 '운명이려니...'하고 잊는 게 백 번 낫다. 그러면 단 한 번의 억울함으로 끝나지 않겠나.

 

세상을 살다 보면 자신의 시각에서는 충분히 억울할 수 있는 일들을 수없이 겪게 된다. 그 하나하나의 사건을 잊어버리지 않고 시간이 날 때마다 곱씹어 생각한다면 결국에는 자신만 손해를 본다. 나는 '인생이란 좋았던 일을 기억하는 것만큼이나 나빴던 일을 망각해야 할 의무가 있다.'고 생각한다. 내 주관적인 견해이지만 말이다. 그게 뜻대로 잘 되지 않는다 하더라도 잊으려 노력하는 자세는 반드시 필요한 법이다. 문득 그런 생각이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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