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cm art 일센티 아트 - 1cm 더 크리에이티브한 시선으로 일상을 예술처럼 1cm 시리즈
김은주 글, 양현정 그림 / 허밍버드 / 2015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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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신보다 어린 사람에게 가장 많이 하는 말은 아마도 "좋을 때다."가 아닐까 싶다. 심지어 아직은 어린 티가 줄줄 흐르는 중학교 1학년 학생들이 길거리에서 만난 초등학생들을 향해 "좋을 때다."라는 말을 서슴없이 내뱉는 걸 볼라치면 저절로 웃음이 지어진다. 우리가 보기에는 그 놈이나 그 놈이나 비슷한 또래로만 보이는데 말이다. 그렇다면 인생에 있어서 안 좋은 때란 과연 없는 것일까? 얼핏 생각하면 "그 걸 말이라고 해?" 따질 만도 하다. 왜냐하면 나이가 들어 제 손으로 생계를 꾸려나가다 보면 행복한 날보다 불행한 날들이 훨씬 많은 듯 느껴지기 때문이다.

 

그러나 한번쯤 다시 생각해 보면 꼭 그렇지만도 않다는 걸 알게 된다. 어느 정도 시간이 흐른 후에 자신의 지난 삶을 되돌아 보면 '그 때가 좋았지', 하는 생각이 절로 들게 마련이고, 그렇지 않은 사람은 별로 많지 않을 듯싶기 때문이다. 나는 나보다 어린 사람들에게 덕담 삼아 이런 말을 자주 하는 편이다. "어떤 일의 결과가 아쉽고 후회된다면 그건 시간에 맡기면 돼. 장담하건대 미래의 언젠가는 '그래도 그 때가 좋았지' 생각할 날이 반드시 올 거야."라고 말이다. 가까운 과거가 아닌 현재에서 비교적 멀리 떨어진 과거는 언제나 좋은 날들로 변해갈 뿐이다. 그리고 그렇게 살다 보면 누구나 죽음에 임박해서는 자신의 삶은 오롯이 과거만 남게 되고, 그 모든 과거는 '그 때가 좋았지' 로 명명된 충만한 날들로 변해 있을 것이다.

 

"세상에는 삶의 개수보다 다양한 날들이 존재한다./그러니 별일 없는 조용한 날들에게도 다정한 인사를 건네자.//시끄러운 클럽 음악이 아닌/내 목소리를 듣는 차분한 금요일,/소수의 소중한 사람만이 모인 생일,/따뜻한 찌개와 가족이 있는 크리스마스,/원 없이 뒹굴거린 주말-/두근거리는 심장박동 소리가 들리지 않아도/우리가 여전히 살아있는 것처럼,/별일 없는 조용한 날들로부터//또한 온전히 살아 있음을/느낄 수 있다." (p.300~p.301)

 

김은주 작가의 《1cm art》를 읽었다. 나는 사실 이런 종류의 책을 잘 읽지 않는다. 통일성이 없고 뭔가 어수선한 느낌이 들기 때문이다. 하여, 《1cm 첫 번째 이야기》나 《1cm+》가 베스트 셀러에 오르고 세간의 주목을 받았을 때에도 대형서점의 한쪽 귀퉁이에 서서 대충 훑어보았을 뿐 이 책을 사서 소장해야겠다는 생각은 그닥 들지 않았다. 오히려 《1cm》시리즈에 열광하는 젊은 사람들이 이상하게만 보였었다. 생각해보면 SNS의 짧은 문장에 익숙한 요즘 젊은이들에게는 하등 이상할 것이 없는데 아날로그에 익숙한 나의 관점에서 괜히 색안경을 끼고 본 것은 아닌가 슬쩍 미안해진다.

 

책의 곳곳에는 다양하고 기발한 아트 미션(art mission)이 등장한다. 독자 자신이 스스로 쓰거나, 그리거나, 접거나, 사진 찍는 미션인데 그렇게 만들어진 작품을 누군가에게 선물함으로써 자신의 마음을 고백하거나 고마움을 표할 수도 있겠다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러나 낭만적인 고백에는 영 젬병인 나는 감히 생각도 하지 못할 뿐더러 '귀차니즘'만 한 움큼 손에 쥐었다.

 

"이제 이 책의 도움 없이 일상에서 당신만의 ART를 만들어 가 보세요. 주어진 미션이 아닌 스스로, '특별하게'가 아닌 일상적으로, 매일의 즐거움, 찾고 싶었던 의미, 더 나은 삶을 만드는 작은 변화들을 만나 보세요. 그럼으로써 일상을 재발견해 보세요." (p.187)

 

가을이 깊어지고 있다. 그럴수록 특별할 것도 없는 일상들이 점차 따뜻함을 더해갈 것이다. 어쩌면 성긴 여름의 틈바구니를 조밀한 그리움으로 채우게 되는 계절이 가을인지도 모른다. 날이 갈수록 아침 기온은 조금씩 내려가겠지만 그리움이 깊어질수록 가슴은 더 따뜻해지지 않을까? 그렇게 따뜻해진 가슴으로 우리는 추운 겨울을 대비하는지도 모른다. 사람들 틈에서 곁불을 쬐듯 이 책을 읽는 누군가의 가슴도 따뜻해지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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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 - essay
강원구 지음 / 별글 / 2015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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때묻은 노트에서 저의 지난 과거를 띄엄띄엄 확인할 때가 있습니다. 그것은 마치 사이가 빈 징검다리처럼 시간의 단절을 문득문득 깨닫게 하지만 그 기억이 현재의 나에게 영영 이르지 못할 것임을 알고 저으기 안심하는 까닭에 남의 일처럼 쉽게 읽을 수 있는 것인지도 모르겠습니다. 하여 아무도 없는 어둠 속에서 과거의 기억에 꼭뒤를 잡힐지도 모른다는 불안감은 애초부터 사라지게 됩니다. 한없이 가벼워지는 것이죠, 그리고 과거의 어느 시점에 적어 놓은 해묵은 기록을 타인의 삶인 양 읽을 수 있다는 건 무척이나 행복한 일입니다.

 

오래된 노트에서 오늘 제가 발견한 글귀는 이런 것이었습니다.

"과거가 있고

그 과거를 기억하는 한

당신은 내내 부끄러울 것입니다."

 

따로 부연된 설명은 없었습니다. 기분 좋은 사유란 그런 데서 비롯되는 것인지도 모르겠습니다. 적어도 자신이 쓴 글을 뚱딴지 같은 소리라고 비하하지만 않는다면 말입니다. '내가 이런 글을 왜 썼을까?' 오래도록 생각한다고 해서 아주 짧은 순간에 저간의 흐름을 떠올리고 그때의 정황을 아주 쉽게 이해할 수 있는 건 아닙니다. 그러느니 오히려 그 문장이 갖는 의미 너머의 다른 어떤 곳으로 여행을 떠나는 게 좋을 것 같습니다. 저는 지금 그런 여행을 떠날까 합니다.

 

제 오래된 친구에게 위의 인용구를 읽어주고 어떤 의미일 것 같느냐, 물어보았습니다. 혹시 자신을 버리고 떠나간 여자에 대한 저주의 말이 아닐까, 하는 대답이 날아왔습니다. 그럴 수도 있겠습니다. 우리나라는 엄연히 생각의 자유가 보장된 나라이니까요. 저는 그 친구의 생각을 비난하고 싶지는 않습니다. 물론 그 친구의 생각에 동의하는 것도 아닙니다. 제 생각은 이런 것입니다. 어느 누구에게나 자신의 과거에 대한 평가는 미숙하고 철없다 여기는 게 아닐까 하고 말입니다. 그래서 사는 내내 부끄러워 할 것이라고. 과거의 나는 지금의 나에 비하면 언제나 어린 사람일 수밖에 없으니까요. 지금보다 아주 많이, 혹은 단 하루, 단 한 시간 전의 나라고 할지라도 지금의 나에 비하면 젊고, 어리숙하고, 배울 게 많은 사람이었을 테니 말입니다.

 

강원구의 에세이집 《S》를 읽었던 오늘 아침에 제 노트의 글귀 하나를 들고 생각에 잠겼던 것도 다 이런 인연이지 싶습니다 . 저는 사실 작가에 대해 아는 게 없습니다. 서울의 조용한 골목에서 카페를 운영하며 평범하게 사는 파워 블로거이자 작가라고 소개되었기에 '그렇구나' 생각할 뿐입니다. 5년 만에 두번째 책을 냈다는 것도 처음 알았습니다. 작가는 이 책에서 사람, 사랑, 삶, 식구, 시간에 대해 그때그때 적어 두었던 자신의 생각을 책으로 엮어낸 듯합니다. 그것은 마치 제 노트에 적어 두었던 생경한 문장처럼 많은 생각을 불러오게 합니다.

 

"한편 인생을 무책임하게 사는 것 같지만 뒤집어보면 인생은 책임지고 말고의 문제는 아닌 듯하다. 나에게 '어차피'는 '기왕에 결정했다면'의 의미가 강하다. 주사위는 던져졌고 뒤로 돌아가기보단 일단은 직진이다. 이젠 직진을 보완할 다른 것을 찾으면 그뿐이다. 어차피, 인생은 아무도 모르는 게 아니던가." (p.213)

 

작가도 지금쯤 사람들 시선이 없는 어느 방에 홀로 앉아 책으로 나온 자신의 글을 읽고 있을지도 모르겠습니다. 읽는 내내 부끄러워 하면서 말이지요. 작가에게 이 글은 5년 전, 혹은 1년 전 어느 날에 아무런 설명도 없이 적어 두었던, 지금보다 젊은 시절의 작가에게서 나온 글이기 때문입니다. 시간이 흐른다는 건 지금의 내가 늙어가는 것에 비례하여 자신의 과거를 한없이 젊어지게 하는 것인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러므로 시간이 가면 갈수록 내 삶에서 부끄러워해야 할 많은 것들이 봄날의 새싹처럼 올망졸망 돋아날런지도 모르겠습니다.

 

"늦은 시작이 있을 뿐, 그 자체로 늦은 경우는 없다. 혹시 나잇값이란 핑계로 스스로를 감옥에 가두는 건 아닌지. 서른이 넘으면서 청춘이 끝났다는 생각에 슬퍼하기도 했고 마흔이 넘으면서 왠지 모를 두려움도 없었던 건 아니지만, 난 지금의 내가 참 좋다." (p.251)

 

작가도 어쩌면 과거에 썼던 자신의 글귀에 한 줄 설명도 달려있지 않다는 사실에 답답해하거나 그 글을 썼을 때의 상황이 도무지 기억나지 않아 못내 아쉬워 하고 있을런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러나 생각해 보면 그때 그 시절의 작가와 지금의 작가는 누가 뭐래도 분명 다른 사람입니다. 몸도, 생각도, 소유한 경험도 모두 다른 새 사람이지요. 작가의 글을 처음 읽는 독자들과 하등 다를 게 없다는 얘기가 됩니다. 생각이 달라지는 것도 이상할 게 없겠지요. 이 글을 썼던 과거의 작가는 되려 지금의 작가에게 묻고 있는 건 아닐지 모르겠습니다. 하루라도 더 산 당신의 생각은 무엇입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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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름은 시간을 향해 터덜터덜 내려가는 내리막길이자 자신의 의지나 열정이 포함되지 않은 기계적인 서사일 뿐이다. 반면에 가을은 짧고 가파른 언덕인 동시에 극복하고자 하는 의지가 내포된 자발적 서사라고 나는 생각한다. 그러므로 먼 훗날 자신의 기억 속에 선명히 남는 것은 길고 길었던 여름의 기억이 아니라 짧았던 가을의 추억일 확률이 높다. 그것은 어디까지나 확률일 뿐이지만 우리에게 주어진 시간을 어찌 보내고 있는지 이따금 생각해 볼 필요는 분명 있어 보인다. 말하자면 시간의 효율성 제고를 위해 소비 패턴을 찬찬히 따져볼 필요가 있다는 얘기다. 예컨대 무임승차의 에스컬레이터에 무심코 올라 탄 채 흐르는 시간을 무작정 지켜보는 방법과 각각의 시간 속에 자신의 생각을 적극적으로 피력하거나 생각 속에 시간을 숨기기 위해 애를 쓰면서 보내는 방법 간에는 분명한 차이가 존재하는 것이다.

 

오늘 오후에는 이상하리만치 졸려서 잠을 떨쳐버리기 위해 무던히도 애를 썼다. 가을철에는 좀처럼 없는 일이었다. 한 시간 남짓 아까운 시간이 흘러갔다. 가을의 시간은 조각에 알맞은 장미무늬목과 같다. 조금의 노력만으로도 시간 속에 훌륭한 작품을 남길 수 있다는 얘기다.

 

가볍게 읽을 만한 책이 뭐 없을까 생각했다. 그렇게 또 몇십 분이 흘렀다. 아까워라. 결국 내가 선택한 책은 이상한 조합이 되고 말았다.

 

 

 

 

 

 

 

 

 

 

 

 

 

 

 

 

 

이사벨 아옌데의 <영혼의 집>, 에쿠니 가오리의 <울지 않는 아이>, 아고타 크리스토프의 <존재의 세 가지 거짓말>, 정말지 수녀의 <바보 마음>.

 

나도 왜 이런 조합을 만들었는지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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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정일의 공부 - 장정일의 인문학 부활 프로젝트
장정일 지음 / 랜덤하우스코리아 / 2006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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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에 대한 나의 느낌을 말하기에 앞서 선무당 같은 나의 예언 한마디를 먼저 말할까 합니다. 그렇다고 이 글을 읽는 사람들 모두에게 복채를 요구할 생각은 없습니다. 이 정도면 저로서는 과분한 선심을 쓰는 셈이지만 뭐 크리스마스 선물을 미리 돌린다 생각하면 억울할 것도 없겠습니다. 그렇다고 저의 직업이 정말 무당이나 예언가라고 단정짓지는 말아주세요. 물론 제 주변의 사람들로부터 '자리 펴시지요' 하는 말을 종종 듣기는 합니다만, 그것은 단지 제가 말한 예언의 정확도에서 기인한 것일 뿐, 현재 제가 갖고 있는 직업을 버리고 그쪽으로 완전히 전업하라는 얘기는 결코 아닙니다.

 

사설이 길다구요? 성질도 급하시긴... 암튼 제가 하는 예언은 이런 것입니다. 지금과 같은 정치 및 경제 체제가 유지되는 한 주요 선진국 및 그를 추종하는 신흥 개발도상국 대부분의 국가에서 앞으로는 극좌파의 정치 지도자가 득세할 거라는 사실입니다. 제가 그렇게 추정하는 이유는 간단합니다. 보수 우파로 지칭되는 신자유주의 경제체제는 완전히 실패했고 지금과 같은 추세라면 부의 쏠림 현상은 급속도로 진행될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렇다면 지금처럼 우편향의 진보 세력, 중도 좌파에게서는 희망이 없는가? 일반 대중은 진보도 보수도 아닌 그들의 모호한 정체성에 질릴 대로 질린 상태이고, 그들에게서 대안을 찾는 건 모래사장에서 바늘을 찾는 일보다 더 어렵다고 판단할 것입니다.

 

이런 모습은 이미 영국이나 미국의 정치판에서 나타나고 있습니다. 지난 5월에 있었던 스페인 지방선거에서도 좌파 정당연합 포데모스 후보들이 바르셀로나와 마드리드 시장 자리를 차지한 바 있지만 이 때만 하더라도 사람들은 반신반의했던 듯합니다. '설마~'하는 마음도 있었겠지요. 그러나 영국 노동당에서 만년 비주류였던 제러미 코빈이 당권을 거머쥐고 미국에서는 좌파정치인 버니 샌더스가 내년 대선 판도를 뒤흔들 정도로 치고올라오자 사람들의 생각은 '설마'에서 '어쩌면'으로 빠르게 변하는 것 같습니다. 빈부격차와 분배의 불공정성에 맞선 ‘99%’의 반란, 허울뿐인 진보에 대한 반란이 좌파 바람으로 나타나고 있는 것이지요.

 

"이전의 대통령 선거에서 민주노동당 후보는 전혀 고려의 대상이 되지 못했지만, 앞으론 반드시 고려하겠다. 나는 <불새>를 좀 더 오랫동안 흥얼거리게 될 것 같다. "내 안에 내 몸 안에" 있는 '붉은 공포'를 깊이 직면해야겠다." (p.197)

 

사실 이 책은 정치뿐만 아니라 교육, 문화, 음악, 역사, 철학 등 우리가 사유하는, 혹은 사유할 필요가 있는 인문학적 생각의 '거리'들을 작가가 읽었던 책을 중심으로 광범위하게 모아 놓고 있습니다. 그렇다면 지금과 같은 변혁의 시점에서 과연 '이 책은 우리에게 어떤 도움이 될 것이며, 우리는 과연 어떻게 행동해야 할까?' 생각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진보든 보수든 자신의 정치 성향과 상관없이 곧 닥칠 미래에 대해 한번쯤 생각해 보자는 데 토를 달 사람은 설마 없겠지요. 작가는 책의 머리말에서 '나의 중용은 나의 무지였다.'고 말합니다. 그동안 중립을 지키기만 하면 적어도 자신의 무지가 드러나지는 않았다는 것이죠. 공부의 필요성은 거기서 비롯되는지도 모르겠습니다.

 

"부끄러움을 무릅쓰고, 마흔 넘어 새삼 공부를 하게 된 이유는 우선 내 무지를 밝히기 위해서다. 극단으로 가기 위해, 확실하게 편들기 위해, 진짜 중용을 찾기 위해! 공부 가운데 최상의 공부는 무지를 참을 수 없는 자발적인 욕구와 앎의 필요를 느껴서 하는 공부다. 이책에 실린 글들과 선택된 주제들은 2002년 대선 이후로, 한국 사회가 내게 불러일으킨 궁금증을 해소해 보고자 했던 작은 결과물이다." (p.6)

 

저는 이 책을 읽는 데 근 한 달이 걸렸던 듯합니다. 370여 쪽의 두껍지도 않은 책인데 말입니다. 제가 이 한 권의 책에 그렇게 많은 시간을 잡아 먹은 까닭은 작가가 읽었던 다양한 책들을 도서관 서가에서 간간이 꺼내 읽느라 그리 되었던 것입니다. 물론 그 많은 책을 모두 정독 했다는 건 아닙니다. 그저 작가가 인용했던 일부분, 그곳을 중심으로 앞뒤쪽 어림하여 이십여 쪽 정도를 읽었을 뿐입니다.

 

"국가를 사유화한 지도자에겐 당연하게도 후광과도 같은 카리스마가 생기기 마련인데, 거기에는 동의 구조와는 다른, 메시아의 재림과 같은 종교성이 대중을 압도하게 된다. 이런 사회에서는 영적인 지도자와 대중만 남고 국가와 시민사회의 질서는 모조리 공동화(空洞化)되어 버린다." (p.370)

 

사회의 변혁에는 반드시 전조가 있게 마련입니다. 그러나 그 전조를 눈치채는 사람도 적을 뿐더러 확실히 믿는 사람은 거의 없다는 데서 우리의 불행은 시작됩니다. 자살자가 급증하고 묻지마 범죄가 만연했건만 그 시기에 글로벌 금융위기를 예견했던 경제학자는 아주 적었습니다. 그것을 사실로서 받아들이는 사람은 더욱 적었구요. 글로벌 금융위기 때 세계를 휩쓴 월가 점령과 ‘분노하라’ 같은 대중시위가 오늘날 기성 정치권의 변화로까지 이어지고 있다고 믿는 사람은 많지 않은 것 같습니다. 기존 정치체제에 대한 반발일 뿐이라고 애써 자위하는 모습입니다. 그러나 역사의 진행은 언제나 급작스러웠음을 기억해야 합니다. 세계대전의 발발을 그 전날에도 알지 못했던 것처럼 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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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무지 윤기라고는 찾아볼 수 없는, 피폐하고 황량한 시간들이 흐르고 있다. 다람쥐 쳇바퀴 돌듯 하는 똑같은 일상이 오래도록 지속되다 보면 기대감에 들떠 가슴 설레게 하는 일이 하나, 둘 사라지고, 가슴 한켠으로는 마른 먼지처럼 팍팍한 느낌만 쌓이게 된다. 그럴 때 주변 사람들로부터 듣게 되는 여행의 권유도, 음악회나 영화 관람의 부추김도 졸음에 겨운 나른한 오후에 의해 밀려나고 '세상에 새로운 것이 어디 있으랴' 코웃음과 함께 익숙한 권태 속으로 빠져든다.

 

어제는 아내가 외박을 했다. 대학을 두 번이나 다녔던 아내는 두 번째 대학의 나이 어린 동기생들과의 오랜만의 만남에 몹시 들떠 있는 목소리였다. 대학 시절, 가족과 떨어져 지방에서 홀로 지냈던 아내는 그 시절에 사귄 동기생들과 매우 각별하게 지냈던 듯하다. 다들 결혼을 하고, 각자의 삶에 얽매어 전화와 문자로만 서로의 안부를 물을 수밖에 없었던 그들이 서울이라는 낯선 공간에서 우연처럼 만났으니 오죽이나 반가웠으랴.

 

나는 어제, 윤기가 도는 아내의 전화 목소리에 길게 말을 잇지 못했다. '아, 반복되는 일상에 아내도 많이 힘들었구나.' 생각하니 가슴이 짠했다. 좋다는 곳 어디를 가더라도, 맛있다는 어떤 음식을 먹어도, 그 누구를 만나도 그저 덤덤할 뿐 이렇다 할 감동이 느껴지지 않는 나로서는 아내의 마음이 십분 이해되는 건 아니었으나 아내로서, 엄마로서의 벗어날 수 없는 무게는 가슴에 와 닿았다.

 

봄부터 이어진 가뭄은 단풍이 물든 이 가을에도 해결이 되지 않고 있다. 오히려 공기는 나날이 건조해지고 대기중에는 미세먼지의 농도만 높아지고 있다. 날씨도, 내 마음도 풀리지 않는 '건조주의보'는 여전히 계속되는 셈이다. 대지를 적실 비라도 한바탕 쏟아졌으면, 간절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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