젖은 모래 위의 두 발
안도핀 쥘리앙 지음, 이세진 옮김 / 열린책들 / 2015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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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가뭇없던 친구로부터 전화가 걸려왔다. 근 이십 년만에 듣는 목소리였다. 그와 나 사이에 낯선 시간들이 와그르르 무너져 내렸고 명절 후유증인 양 나른한 피곤이 몰려왔다. 어쩌면 우리는 길 위에서 정면으로 마주친다 해도 서로를 알아보지 못했을런지도 모른다. 마치 처음부터 알지 못했던 사람들처럼. 서로가 알지 못하는 저간의 사정을 최대한 간추려서 서로에게 들려주려 애쓰는 너와 나의 해명은 힘겨웠다. 그 잠시의 해명만으로 그와 닿지 못했던 낯선 시간들이  친숙했던 시간으로 쉽게 전환되지 않으리라는 것쯤은 우리는 서로 잘 알고 있었다. 우리가 그러기에는 나이가 너무 많이 들었고 몸도 마음도 그에 따라 한없이 무거워졌기 때문이다.

 

하루에 반나절쯤, 아니 그게 여의치 않다면 다만 두어 시간만이라도 귀를 막고, 눈도 감고, 전화며 텔레비전이며 내게 세상 밖의 소식을 전해주는 모든 도구를 내려놓은 채 죽은 듯이 있고 싶을 때가 있다. 까짓거 못할 것도 없지 않느냐, 생각할 수도 있겠지만 한편으로는 '사람이 살아야 얼마나 산다고' 하는 미련이 애당초 먹었던 마음을 슬몃 밀어내곤 하는 까닭에 그마저도 여의치 않은 것이다. 외로움도 습관이다. 정말로 외로움에 익숙해지면 나는 그 누구도 그리워하지 않는, 죽음과 같은 삶을 살게 될런지도 모른다. 삶의 테두리 밖에서 그들을 멀뚱히 지켜보면서 말이다.

 

세상 물정 모르는 어린 아이들은 삶으로부터 스스로 달아나거나 삶의 테두리에서 단 한 발짝이라도 벗어나지 않는다. 오직 현재의 삶이 중요할 뿐이다. 지금의 햇살, 스치고 지나가는 바람, 곁에서 자신을 바라보며 지켜주는 사람들. 그들에게는 미래의 불안 때문에 현재를 걱정하지 않는다. 최선을 다해서 사는 것이다. 안도핀 쥘리앙이 쓴 <젖은 모래 위의 두 발>을 읽으면서 문득 그런 생각을 했다. 오랫동안 연락이 없었던 친구의 전화를 받았고, 한 번 만나자는 상투적인 인사로 쓸쓸한 기분을 달랬었다. 나이 든다는 것은 삶의 중심으로부터 멀어진다는 것인지도 모른다.

 

"3년 9개월. 오늘로써 타이스는 딱 3년하고 9개월을 살았다. 아직은 어린아이, 월령까지 따지는 것이 당연한 어린아이다. 지난 한 해는 너무나 밀도 높고 강도 높게 보냈기 때문에 두 해로 쳐줘야 할 것 같다. 타이스는 곧 네 살이 된다. 석 달만 있으면. 아니, 석 달이나 있어야! 타이스가 과연 그때까지 버틸 수 있을까? 네 번째 생일이, 다가갈수록 더 멀게만 보이는 사막의 신기루 같다." (p.231)

 

짐작하겠지만 이 책은 유쾌하거나 읽어서 기분이 좋아질 만한 책은 아니다. 오히려 읽으면 읽을수록 가슴 먹먹해지는 책이다. 이염성 백질 이영양증! 나는 그런 질병이 있다는 걸 이 책을 읽으면서 처음 알았다. 백과사전의 정의로는 '매우 희귀한 소아의 백질 대사의 질환 중에서 대표적 질환이며, arysulfatase A의 감소에 의해 초래되는 상염색체 열성 유전 질환'이라고 한다. 도무지 뭔 말인지는 모르겠으나 이 병은 발병 연령과 효소 결핍의 종류에 따라 영아 후기형(late infantile), 연소형, 성인형 이염성 백질이영양증 등으로 나뉜다고 한다. 불행하게도 이 책의 주인공인 타이스는 1~2세경에 발병하는 영아 후기형 이염성 백질이영양증이었다. 마땅한 치료법은 없다.

 

파리의 한 잡지사에서 근무하는 저자는 2006년 그녀의 둘째 아이 타이스의 두 돌 즈음에 아이가 이 유전병에 걸렸다는 진단을 받는다. 아이는 겨우 두 살, 남은 삶은 1년 남짓이었다. 삶의 부조리를 이해하기에는 턱없이 어린 나이였다. 타이스가 진단을 받을 당시 그녀는 이미 그녀의 뱃속에 아이가 한 명 더 있었고, 유치원에 다니는 타이스의 오빠 가스파르가 있었다. 새로 태어날 아기도 유전될 확률이 25퍼센트나 되었으며 막내딸 아질리스도 결국 같은 병임을 확인받게 된다. 신경계가 서서히 마비되어 결국에는 생명 기능을 멈추게 하는 이 병은 일단 발병하면 골수 이식도 소용이 없다고 했다. 아질리스는 여러 부작용을 감수하면서도 골수 이식을 받았다.

 

나는 이따금 이런 가슴 절절한 이야기를 접할 때마다 그런 생각이 든다. 가족 중 누군가가 심하게 아프다면 그게 꼭 나쁜 점만 있는 것일까? 하고 말이다. 철없는 생각일지 모르지만 꼭 그런 것만은 아닌 듯하다. 아프지 않았다면 일 년에 두어 번 명절에만 이따금 만났을 사람들도 그보다는 더 자주 만나게 되고 환자를 중심으로 연민의 끈이 더 단단해지는 것을 나는 여러번 목격했기 때문이다. 다시 말해 환자를 통해 가족이라는 느낌을 더 확고하게 유지할 수 있다는 것이다. 그것은 아픈 사람이 다른 가족들을 위해 마지막으로 베푸는 사랑의 체험이 아닐까 싶다.

 

"타이스의 울음소리만큼 정신을 확 깨우는 알람은 없다. 당번을 서는 사람은 낑 하는 소리 한 번만 나도 다른 식구들이 깨지 않기를 바라면서 부리나케 타이스에게 달려간다. 안됐지만 그런 바람은 소용없다. 부모의 본능인지, 세상모르고 깊이 잠들어 있다가도 애가 부르는 소리는 알아듣는다. 하지만 할아버지 할머니가 타이스를 잘 보살피고 있다는 걸 아니까 금방 다시 잠들 수 있다." (p.98)

 

이따금 멀리서 들려오는 유행가 가사가 가슴을 후벼 팔 때가 있다. 얼마 전에는 산울림의 "청춘"을 듣고 그 절절한 가사와 멜로디에 깊이 빠져든 적이 있었다. 나도 모르게 눈물이 흘렀었다. 노래를 부르는 가수나 듣는 관객 모두가 이심전심으로 통하는 것이다. 누구에게나 삶은 비슷한 거니까. "생에 살아갈 날을 더할 수 없다면 살아갈 날에 생을 더해야 한다."고 했던 암 의학자 장 베르나르의 말이 가슴에 울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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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일에 혼자 지내는 이곳에서 나는 어제 이사를 했다. 뭐 이사라고 해봐야 같은 아파트에서 단지 동과 호수를 바꿨을 뿐이지만 이사의 규모가 작고 크고를 떠나서 이사는 이사였다. 나는 비교적 우습게 생각했다가 호되게 당한 꼴이었다.

 

그동안 내가 살던 아파트는 임대를 목적으로 세워진 임대 아파트였다. 당연히 아파트 소유권은 아파트를 지은 건설회사에 있었고 입주민들은 보증금과 월세를 내며 생활했었다. 보증금과 월세는 1년마다 상향되었지만 월세와 관리비가 저렴했으므로 딱히 불만은 없었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집이 팔렸으니 나가라는 식의 일방적인 통보가 없다는 게 가장 큰 장점이었다. 그런데 작년에 건설회사는 느닷없이 입주민들에게 분양전환을 추진하였고, 다른 곳에 아파트를 소유하고 있다는 이유로 나는 분양 대상자에서도 제외되고 말았다. 꼼짝없이 집을 비워주어야만 했던 것이다. 그래서 갑자기 집을 알아보고 이사 날짜를 잡기까지 그야말로 번갯불에 콩 볶아 먹듯 했다.

 

그저께는 이사할 곳에 가서 청소를 하고 어제 오후에 이미 계약한 이삿짐센터의 차가 와서 이삿짐을 날랐다. 그렇게 무사히 이사를 마쳤는가 싶었는데 건설회사와의 보증금 반환 문제며, 관리비 정산이며, 전입신고 및 금융권 주소지 변경이며, 관련 사이트의 주소지 변경까지 그야말로 할 일이 산더미였다. 이삿짐 정리는 결국 설 연휴 뒤로 미뤄진 상태로 방치되었다. 별반 한 일도 없는 듯한데 어깨며 허리며 안 아픈 곳이 없다. 이사, 두 번 다시 할 일이 아니다. 또 다시 이사했다가는 골병 들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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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민(愚民)ngs01 2016-02-05 21:07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이삿짐 정리 쉬엄쉬엄 하세요 서두르시면 병 나십니다

꼼쥐 2016-02-11 14:32   좋아요 1 | URL
아직도 허리 통증이 남아 있어요. 딱히 한 일도 없는 것 같은데 말이죠. 집안은 아직 난장판이고 빨리 정리를 끝내고 싶은데 쉽지 않네요.

[그장소] 2016-02-06 02:3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혼자 살림도 무시못해요. 특히나 책이있는 분들은 더더욱.. 저는 아직도 정리중 예요. 찔끔 찔끔..
몸이 편치않아서 옛날처럼 후다닥 못해요. ㅎㅎㅎ
천천히 살펴하세요. 어쨋든 축하드려요.^^
떡 돌리실거죠?^^

꼼쥐 2016-02-11 14:35   좋아요 1 | URL
책도 책이지만 짐을 꺼내놓고 보니 여기저기 숨겨져 잇던 자질구레한 물건들이 정말 많더라구요. 요즘은 안 쓰는 물건이라고 함부로 버릴 수도 없으니 버리는 일도 만만하지는 않겠다 싶어요.

[그장소] 2016-02-11 15:00   좋아요 0 | URL
안쓰는데 도 불구 나중에 찾아서 아쉬워하니 그게 안습 ㅡㅎㅎㅎ
일년중에 한번.어쩌다 한번 그렇게 쓰긴한단거..
저도 가능함 책빼곤 다 버리자 했는데..한번 그랬더니..나중에 필요한걸 사들이는데 돈이 또..들더라는..^^
 
읽다 (2015년판) - 김영하와 함께하는 여섯 날의 문학 탐사 김영하 산문 삼부작
김영하 지음 / 문학동네 / 2015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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똑같은 책을 읽고도 누구는 이렇게 근사한 말을 줄줄이 풀어놓는데 나는 고작 재미있다거나 따분하다거나 감명깊었다는 등의 상투적인 말밖에는 더 할 말이 없는지 생각하면 울컥 짜증이 솟구칠 때가 있습니다. 김영하의 산문집 <읽다>를 읽으면서 내내 들었던 생각이지요. 나는 혹시 나의 뇌에 크나큰 문제가 있는 게 아닐까 하는 의심조차 들었더랬습니다. 문학에 대한 지식의 차이는 그렇다 치더라도 읽은 책에 대한 소감이나 느낌을 말할 때에는 적어도 엇비슷하거나 너무나 큰 차이는 벌어지지 않아야 하는 게 맞지 않은가 말입니다.

 

"비극의 주인공들은 항상 너무 늦은 순간에야 자신의 어리석음을 깨닫곤 하지만, 저는 독서를 통해 커다란 위험 없이 무지와 오만을 발견하곤 했습니다. 특히 고전이란, 이탈로 칼비노의 정의처럼 예상하지 못했던 어떤 것들을 준비해두고 있습니다. 읽지 않았으면서도 다 알고 있다고 생각했던 제 오만은 오이디푸스의 자신감을 닮았습니다." (p.29)

 

작가가 위에서 말하고자 하는 바는 명확한 듯 보입니다. 읽지도 않은 고전을 다 알고 있다고 생각했던 것은 저자 자신의 오만이었다는 것이지요. 모르긴몰라도 저는 작가처럼 멋지게 표현하는 대신 '읽지도 않은 책을 마치 다 알고 있다고 생각했던 내가 부끄러웠다' 정도의 식상한 표현을 하지 않았을까 싶습니다. 차이가 눈에 확연히 보이지요? 이러니 제가 낙담할 밖에요. 대학생과 초등학생을 놓고 비교해도 이보다 더 큰 차이를 보이지는 않을 듯합니다.

 

아무튼, '보다' '말하다'에 이어 김영하 산문 3부작의 완결편으로 출간된 이 책은 유명 작가이기 이전에 독서광으로서의 그의 편력을 생각하게 합니다. 저는 앞의 두 작품을 읽고 내심 작가에 대한 호감이 증가했던 게 사실입니다. 제가 미처 알지 못했던 것들을 콕콕 짚어준 것도 좋았지만 무엇보다도 작가의 인생관이나 세계관이 저와 잘 맞았던 것 같습니다. 그런 까닭에 이 책이 출간되자마자 '빨리 읽어야지' 생각했던 게 이런저런 이유로 계속 미뤄지다가 이제서야 시간을 내어 읽게 된 것입니다. 그러나 앞의 두 책에 비해 가독력이 떨어진다고 느꼈던 것 또한 사실입니다. '보다'와 '말하다'가 자신의 경험을 위주로 이야기를 풀어놓았던 반면 '읽다'는 다분히 작가의 지식에 의존하여 책이 꾸려지고 있기 때문입니다.

 

"뇌과학자들의 최근 연구에 따르면 우리 인간의 뇌는 현실과 환상을 분명히 구분하지 못한다고 합니다. 어떤 현실은 이러한 꿈처럼 기억되고, 어떤 이야기는 마치 직접 겪은 일처럼 생생하기만 합니다. 이야기와 비슷한 것으로는 꿈이 있습니다. 그러나 꿈은 지속되지 않는다는 점에서 이야기와 다릅니다. 어제 꾼 꿈을 정확히 이어 꾸지는 못하니까요. 그런데 소설은 꿈만큼이나 생생한데 계속 이어집니다." (p.64)

 

작가가 했던 여섯 차례의 문학강연을 책으로 엮었다는 이 책은 그가 읽었던 책을 중심으로 이야기가 전개됩니다. 이를테면 '오디세이아'와 '오이디푸스 왕'에서 시작된 '독서는 왜 하는가?'에 대한 의문은 독서로 인해 '우리가 굳게 믿고 있는 것들을 흔들게 되고', '자아의 상당 부분이 독서와 함께 산산이 흩어진다.'고 했던 작가의 대답은 보르헤스의 단편 '바벨의 도서관'에까지 이르게 되고, 마침내 독서는 '이야기의 바다'로 뛰어들어 '책의 우주'와 접속하는 행위로 확장됩니다. 그 각각의 주제를 설명하기 위해 작가는 자신이 읽었던 많은 책들을 동원합니다. 당연하게도 우리가 읽었던 많은 책들은 서로 긴밀하게 연결되었기 때문입니다.

 

작가는 때로 자신이 쓴 소설을 예로 들기도 하면서 우리의 관심을 소설로 끌어들입니다. 생각해 보면 소설을 읽는다는 것은 현실과 유리되는 독특한 경험입니다. 예컨대 박경리의 소설 <김약국의 딸들> 초반부에 봉룡이 자신의 아내 숙정과 외간 남자의 만남을 목격하고 다짜고짜 매타작을 하는 장면을 읽으며 마치 내가 숙정이 된 양 쩔쩔매다가 엄마의 부르는 소리에 퍼뜩 현실로 돌아왔을 때의 생경한 느낌은 소설을 읽는 독자가 환상과 현실의 경계를 모호하게 느끼도록 하는 흔한 예가 될 테지요.

 

"그렇다면 우리가 소설을 읽는 진짜 이유는 무엇일까요? 그것은 바로 헤매기 위해서일 겁니다. 분명한 목표라는 게 실은 아무 의미도 없는 이상한 세계에서 어슬렁거리기 위해서입니다. 소설은 세심하게 설계된 정신의 미로입니다. 그것은 성으로 향하는 K의 여정과 닮았습니다. 저멀리 어슴푸레 보이는 성을 향해 길을 따라 걸어가지만 우리는 쉽게 그 성에 도달하지 못합니다." (p.101~p.102)

 

작가는 소설 읽기를 두고 '이상한 세계에서 어슬렁거리기' 또는 '정신의 미로에서 기분 좋게 헤매는 경험'이라고 말합니다. 이것은 순전히 독자 개개인의 치환되지 않는 독자적인 경험일 수밖에 없습니다. 정말 소중한 것은 교환이 불가능하다는 작가의 말처럼 독서는 그래서 더 소중한 것인지도 모르겠습니다. 김영하의 산문집 '읽다'를 읽고 있노라면 그의 유창한 강연을 떠올리게 됩니다. 강연을 들으면서 이따금 꾸벅꾸벅 졸다가 소란한 웃음 소리에 잠을 깨기도 합니다. 저는 그렇게 한나절 어슬렁거렸던 듯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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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세이 주목 신간 작성 후 본 글에 먼댓글 남겨 주세요.

새살이 돋은 듯 몰캉몰캉했던 1월의 시간들이 흔적도 없이 사라졌다. 그렇게 2월이 되면 새해라는 느낌은 사라지고 1년이라는 풍성한 시간들 중 아주 큰 뭉텅이 하나를 흔적도 없이 날려버린 듯한 허망한 마음이 드는 것이다. 반짝반짝 빛이 나던 2016년 새해의 간판도 적당히 찌들고 때가 묻어 더 이상 시선을 끌지 못하는 듯하고 말이다. 매년 그렇지만 2월부터 12월까지는 적당한 타성과 관성에 의해 나도 모르게 끌려 가는 느낌이 든다. 이따금 시간의 풀섶에 '의지'라는 주관을 뚝뚝 떨어뜨리면서...

 

 

 

 

고종석, 하면 이제 문단에서는 모르는 사람이 없을 정도로 유명 인사가 되었지만 그의 글은 언제나 새롭다. 그것은 어쩌면 새로운 것에 대한 쉼 없는 그의 시도와 각고의 노력 덕분이겠지만 그의 글에서 날카로운 노력의 흔적은 보이지 않고 그저 평화롭거나 여유롭다. 뼈를 깎는 노력이 있었으되 독자에게 들키지 않는 경지, 고종석의 글은 그런 게 아닐까 싶다. 작가의 30년 가까운 글쓰기 경력과 스무 권 넘는 방대한 저서를 다섯 권의 선집으로 압축하는 작업의 마무리가 되는 이 책은 고종석 에세이의 정수이자 마무리이다.

 

 

 

 

 

 

 

제목이 맘에 들어서 고른 책이다. 이따금 신간 도서를 검색하다 보면, 당연한 일이겠지만 내용은 둘째 치고 제목만 눈에 한가득 들어오는 책이 있다. 작가의 이력이나 작품도 알지 못하면서 말이다. 마치 하나가 좋으면 모든 게 좋을 것이라고 믿는 세살배기 어린 아이의 순진한 믿음처럼 말이다.

 

 

 

 

 

 

 

 

우리 곁을 떠난 지 벌써 5주기라고 했다. 산 사람은 살게 마련인지 무던히도 잘 잊는다. 언제나 곁에 있는 듯 다정했던 박완서 작가. 그녀의 순한 웃음이 사소한 것의 소중함을 일깨워주는 듯하다. 서강대학교 김승희 교수, 서울문화재단 조선희 대표이사, 장석남 시인, 최재봉 한겨레 선임기자, 김연수 소설가, 정이현 소설가, 씨네21 김혜리 편집위원, 신형철 문학평론가, 박혜경 문학평론가 등 9명의 대담을 추렸고, 이병률 시인의 새 글을 보태었단다.

 

 

 

 

 

 

 

황경신 작가의 글은 소설보다 에세이에서 빛을 발한다. 나만의 생각일지 모르지만 말이다. 그녀의 감각적이고 살아 숨쉬는 듯한 문장은 읽는 이로 하여금 감탄을 불러일으키게 하지만 때로는 부러움의 질투를 샘솟게 하기도 한다. 그녀의 재능이 마치 노력보다는 선천적으로 주어진 것이기라도 한 것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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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장소] 2016-02-02 14:1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잘 보고 갑니다 ㅡ ^^

꼼쥐 2016-02-05 18:02   좋아요 1 | URL
고맙습니다. 즐거운 설 연휴 되시길~~

[그장소] 2016-02-05 18:03   좋아요 0 | URL
네.꼼쥐님도 연휴잘 보내세요!^^

우민(愚民)ngs01 2016-02-02 14:47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박완서작가님 가신지가 벌써 5년이군요..😢

꼼쥐 2016-02-05 18:02   좋아요 1 | URL
네, 벌써 그렇게 되었나 봅니다.
 
[우리는 서로 조심하라고 말하며 걸었다]를 읽고 리뷰 작성 후 본 페이퍼에 먼 댓글(트랙백)을 보내주세요.
우리는 서로 조심하라고 말하며 걸었다 - 시드니 걸어본다 7
박연준.장석주 지음 / 난다 / 2015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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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제는 전날 내리던 비의 여운이 아침까지 길게 이어져 유유히 떠다니는 구름 위에 어둡게 내려앉아 있었다. 조카의 결혼식에 참석하기 위해 일찍 집을 나선 길, 주말 휴일의 게으름에서 비롯된 창백한 고요가 도시 전체를 뒤덮고 있는 듯했다. 나는 처음 가보는 도로로 차를 몰았고, 산과 들에는 며칠 전에 내린 눈이 달마시안의 얼룩 무늬처럼 어지러웠으며, 이제 막 젊은 부모가 되기로 결심한 조카의 결심에 머리가 무거웠다.

 

"'젊은'이란 말과 '부모'라는 말을 붙여놓으면 왠지 애틋하다. 아이 때문에 서둘러 어른이 되어야 했을 사람들. 부모이기 이전에 자식이었던 사람들. 아이들이 자라는 속도에 맞춰, 어쩌면 그보다 더 빨리 늙어갈 사람들. 그들은 목마가 한 바퀴 돌아 자기 아이를 만나게 될 때마다 웃으며 손을 흔들었다. 아이가 한 바퀴의 세상을 구경할 때까지 그 자리에 붙박여 기다리는 모습에서 부모된 자들의 천형天刑을 감지할 수 있었다. 회전목마만큼 부모와 자식 관계를 잘 설명해주는 것이 또 있을까." (p.64)

 

컨벤션홀이라고 명명된 예식홀에는 여느 집회 장소처럼 엄숙하거나 조용하지 않았다. 신랑이 될 사람과 신부가 될 사람의 새로운 출발을 축하하는 자리라기보다는 그들의 예식을 빌미로 그동안 잊고 지냈던 사람의 생사를 자신의 두 눈으로 직접 확인하고야 말겠다는 듯 사람들은 저마다 참석한 사람들 한 사람 한 사람의 얼굴을 자세히 훑고 있었다. 으레 그렇듯 예식은 눈 깜박할 사이에 끝나 버렸다. 함께 온 사람들을 챙기느라, 또는 반가운 사람들과의 뒤늦은 인사를 나누느라 식당으로 향하는 길은 왁자지껄 소란하고 붐볐다.

 

뷔페의 음식은 종류만 많았지 실상 눈길 한 번으로 손님의 시선을 사로잡을 만큼 식욕을 돋구지는 못했다. 그것은 어쩌면 식당 주인의 전략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문득 들었다. 접시에 담아 온 음식에 몇 번 손이 갔는가 싶자 사람들은 다들 지친 표정으로 풀어졌다. 그렇게 풀어진 채로 조용히 늙어가고 있는 듯했다.

 

다음 순서의 예식 손님들이 우르르 몰려왔고, 우리는 서둘러 내몰렸다. 서둘러 떠나기에는 뭔가 아쉬웠고, 마땅히 갈 곳도 없이 미적거리거나 어슬렁거리던 사람들은 식당 입구에 놓인 티테이블에 옹기종기 앉아 자판기 커피를 마셨다. 언제였던가, 새댁이었고 새신랑이었던 사람들은 한동안 시간이 흐른 어느 예식장에서 이제 겨우 걸음마를 배우는 어린 아이의 손을 잡은 초보 엄마, 초보 아빠였다가, 다시 얼마만큼 세월이 흐른 어느 날 누군가의 장례식장에서는 훌쩍 자란 아들 딸을 앞세우고 저만치 뒤에서 느린 걸음을 걷는 제법 익숙한 모습의 부모였는데, 어제는 줄 끊어진 연처럼 어느 한 순간 툭 하고 끊어진 아이들을 어디엔가 버려둔 채 부모라는 이름표만 가슴에 매단 채였다.

 

"멀어지는 도시를 향해 나도 모르게 '안녕'이라고 말했다. 다른 어떤 말도 떠오르지 않았다. 이유 없이 가슴이 뭉클했다. 이쪽에서 저쪽으로, 바다를 잠깐 건너는 것뿐인데 무언가 중요한 것과 작별하는 것처럼 가슴이 아팠다. 이렇게 아름다운 순간은 살면서 많이 오지 않겠구나. 지금 내가 인생에서, 가장 아름다운 순간을 관통하고 있다는 것을 '직감적으로' 깨달았다. 아름다운 순간은 붙잡아둘 수 없다. 안녕, 안녕, 누구에게랄 것 없이, 몇 번이나 인사했다." (p.89)

 

고등학생이거나, 대학생이거나, 취업을 준비하는 사회 초년생인 그 시절의 아이들은 이제 오직 그들만의 이유로 바빴고 어느 예식장에도 모습을 드러내지 않은 채 그저 늙었거나 늙어가는 부모들의 입에서 단지 이름으로만 호명되었다. 이름도 잊은 채 그저 아무개의 아빠나 엄마로 불리우는 우리는 ~했었거나,~했었야만 했거나, ~했을 것으로 추측되는 과거형의 이야기들을 한동안 쏟아냈다. 나는 그들 속에서 조금씩 늙었거나 늙어갔거나 오래도록 늙은 채였다.

 

"그가 울음을 터뜨린 것은 아름다움에 대한 감탄 때문이 아니라 깊은 무력감 때문이다. 아름다움이 눈앞에 있는데 그걸 소유할 수 없다는 사실에 절망한 것이다. 장 그르니에는 그 충격을 이렇게 압축한다. "우리를 가득 채워야 할 것이 오히려 우리 안에 끝없는 공허함을 키운다." 아름다움은 한 개인에게 영속적 귀속이 불가능하다. 그것은 단 한 번 불꽃처럼 타올랐다가 덧없이 스러지는 것이며, 두번 되풀이할 수 없는 기적이다." (p.148)

 

우리는 예식장에서 서둘러 떠나는 몇몇과 작별을 했고, 여기 남아서 흐르는 시간을 마냥 붙들고 싶어했던 하릴없이 배회하던 몇몇 사람들과 함께 혼주였던 누나의 집으로 옮겨갔다. 그들의 입에선 그 자리에 없는 아이들의 이름이 또 다시 차례로 불려졌고, 서울대나 경찰대 등 그들이 다니는 학교가 호명될 때마다 아직 중학생이거나 고등학생인 부모의 입에서는 부러움의 말들이 코러스처럼 퍼졌다.

 

헤어져 집으로 돌아오던 시간, 도로에는 암흑처럼 어둠이 내려앉았고 긴 전조등 불빛을 토해내는 차량들 사이로 나는 조금씩 세월을 토하거나 토해냈거나 잊었거나 잊으려 애썼을 것이다. 집에 도착해서도 밤이 늦도록 잠이 오지 않았고,나는 박연준(35)·장석주(60) 두 시인이 함께 낸 책 <우리는 서로 조심하라고 말하며 걸었다>를 읽었다. 이 책은 스물 다섯 살의 나이차를 극복하고 10년 열애 끝에 결혼한 두 사람이 9월 초부터 한 달 동안 호주 시드니에서 살았던 기록을 책으로 엮은 것이라고 했다.

 

시드니 북서쪽 동네 글레노리의 한 동포 집을 빌려 일종의 신혼여행처럼 지냈던 날들을 들려주는 이 책은 한가운데 16쪽짜리 사진첩을 경계로 앞부분은 박연준 시인의 기록이고 뒷부분은 장석주 시인의 글로 구성되어 있다. 두 사람은 여느 신혼부부처럼, 사소한 일로 다투고 삐치거나 같이 산책을 한다. 그리고 영원처럼 사랑을 다짐한다. 나는 문득 조카 생각을 했고, 잘 살았으면 기도했다. 그대로 밤이 깊었다.

 

* 알라딘 공식 신간평가단의 투표를 통해 선정된 우수 도서를 출판사로부터 제공 받아 읽고 쓴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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