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질 무렵
황석영 지음 / 문학동네 / 2015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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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고 사소한 일상을 다룬 작품을 읽고 싶어질 때가 있다. 한동안 선이 굵은 작품에 빠져 있었거나 현실과는 다소 동떨어진, 이를테면 심리학이나 철학 등 소위 '형이상학적'이라고 불리우는 작품을 읽은 뒤끝이면 찾아오는 현상이다. 혹은 그 반대의 경우도 있다. 그렇게 몇 번 손바뀜을 거치고 나면 훌쩍 일 년이 가곤 한다. 세월은 참으로 무자비한 구석이 있다. 그렇지 않으면 가는 세월에 제대로 적응을 하지 못하는 나에게 어떤 문제가 있거나.

 

황석영의 소설 <해질 무렵>을 읽었다. 황석영의 작품은 하도 오랜만이라 일견 반가운 느낌마저 들었다. <장길산>을 제외하면 그의 소설 대부분이 다 비슷비슷하다는 생각이 들어 나는 한동안 그의 소설을 일부러 피해왔었다. 소설의 소재가 비슷했다는 게 아니라 소설의 문체나 분위기가 어찌나 비슷하던지 이게 이것 같고 저게 저것 같아서 도통 분간을 할 수 없을 지경이었다. 그저 소설의 제목만 간신히 기억하여 읽었다 안 읽었다를 가름할 뿐이었으니 그게 어디 제대로 된 독서라고 할 수 있을까. 더이상 괜한 시간낭비는 하지 말자는 게 황석영의 작품을 피해왔던 나의 이유였다.

 

소설은 등장하는 두 인물(박민우와 정우희)의 이야기가 교차하며 진행된다. 처음에는 그들 두 사람의 관계에 대한 설명이 전혀 없으니 약간의 답답함이 있더라도 감수하면서 읽을 수밖에 없다. 60대의 성공한 건축가 박민우와 편의점 아르바이트로 겨우겨우 연명하는 29살의 연극연출가 정우희 사이에는 어떠한 공통점도, 인연의 끈도 없이 둘 사이의 간극을 좀체 좁히지 못한다.

 

"개인의 회한과 사회의 회한은 함께 흔적을 남기지만, 겪을 때에는 그것이 원래 한몸이라는 것을 깨닫지 못한다. 지난 세대의 과거는 업보가 되어 젊은 세대의 현재를 이루었다." (p.198 '작가의 말' 중에서)

 

경남 영산 출신의 박민우는 맨주먹으로 상경한 그의 부모와 함께 서울 변두리의 달동네에서 학창시절을 보낸다. 너 나 할 것 없이 먹고 사는 문제가 가장 시급했던 칠십년대였다. 삶의 각축전일 수밖에 없었던 달동네에서 박민우는 어떻게든 그 동네를 벗어나겠다 결심하고 공부에 매진한다. 그 동네에서 학생이 있는 집은 어묵튀김을 팔아 생계를 유지하는 그의 집과 국숫집, 단 두 집뿐이었다. 공동수돗가 근처의 국숫집에는 그보다 한 살 아래의 차순아가 살고 있었다. 그리고 마을에는 꼬마들을 데리고 구두닦이를 하는 재명이와 그의 가족이 살았다.

 

"나는 그러한 과정을 지켜보면서 세상살이의 치열함에 대하여 생각하게 되었다. 그리고 이 작은 지옥이 저 바깥세상의 축소판일 거라고 생각했다. 나는 고등학교 삼학년이 되었고 어디론가 진로를 정하고 열심히 헤쳐나가야 한다는 강박감에 사로잡혔다. 이 무렵 나는 사랑에 눈을 뜨기 시작했으나 이 동네에서 어떻게든 빠져나가야 한다는 굳은 결심을 세우고 대학 입시 공부에 매진했다." (p.75)

 

얼굴이 예뻤던 차순아는 동네 남자 아이들의 선망의 대상이었고 박민우도 예외는 아니었다. 박민우가 유명 대학에 입학하여 마을을 떠난 후 차순아는 마을에서 성폭행을 당하게 된다. 대학 입학에도 실패하고 그녀의 아버지마저 세상을 뜨자 모녀만 남은 국숫집은 급격히 쇠락한다. 그들 모녀를 거두어 준 사람은 재명이였다. 그들 사이에 딸이 한 명 있었지만 홍역으로 잃고 재명이마저 불법도박 혐으로 수감된다. 차순아는 책 외판원을 하던 사람과 결혼을 하여 아들 한 명을 낳게 된다.

 

반면 박민우는 대학생이 된 후 독립하여 자취를 하게 되면서부터 그가 자란 달동네와 거리를 두고 지낸다. 게다가 선배로부터 물려받은 입주과외를 시작하면서 상류층 사람들과 연을 맺게 되고 졸업 후 유학과 함께 결혼도 하는 등 승승장구한다. 건축붐이 일었던 팔,구십년대에 그는 굵직굵직한 프로젝트를 함으로써 경제적으로 성공하였지만 아내가 미국에 있는 딸의 곁으로 떠난 후 그는 혼자가 된다.

 

"이튿날 두통과 갈증으로 잠에서 깨어나자 머릿속이 텅 빈 백지처럼 느껴졌다. 그러더니 점차 바닷가, 언덕 위에서 본 노을, 말기 암 환자의 낙천적인 웃음소리, 그리고 수화기를 통해 들려오던 여자의 목소리 등등이 얼룩처럼 그 백지 위에 번져간다. 뒤죽박죽 이어진 꿈의 연장인 것만 같아서, 어서 돌아와야지, 머리를 몇 번 거세게 흔들었다."    (p.31)

 

피자집 아르바이트를 하면서 정우희와 김민우는 가까워진다. 전문대를 졸업한 후 줄곧 출구도 없는 비정규직의 삶을 살아가는 김민우는 차순아의 아들이다. 차순아의 남편은 교통사고를 당하여 시름시름 앓다가 보상도 받지 못한 채 빚만 남기고 죽었다. 그 뒤로 이것저것 안 해본 일이 없었다. 정우희가 세들어 살던 반지하의 셋방이 물에 잠겼을 때 김민우는 그녀로 하여금 그의 어머니가 사는 집에 며칠 동안 신세를 지도록 한다. 그때 정우희는 차순아와 모녀처럼 가까워진다.

 

"대부분의 사람들이 숨가쁜 가난에서 한숨 돌리게 되었던 때인 팔십년대를 거치면서 이 좌절과 체념은 일상이 되었고, 작은 상처에는 굳은살이 박여버렸다. 발가락의 티눈이 계속 불편하다면 어떻게든 뽑아내야 했는데, 이제는 몸의 일부분이 되어버렸다. 어쩌다가 약간의 이질감이 양말 속에서 간신히 자각될 뿐."    (p.112)

 

정우희는 차순아의 일기 비슷한 수기를 읽은 후 박민우와의 만남을 주선하려 애쓰지만 아들이 자살한 후 차순아는 결국 뇌졸중으로 사망한다.

 

"억압과 폭력으로 유지된 군사독재의 시기에 우리는 저 교회들에서, 혹은 백화점의 사치품을 소유하게 되는 것에서 위안을 얻었을지도 모른다. 아니면 온갖 미디어가 끊임없이 쏟아낸 '힘에 의한 정의'에 기대어 살았는지도 모르겠다. 결국은 너의 선택이 옳았다고 끊임없이 위무해주는, 우리가 함께 만들어낸 여러 장치와 인물들이 필요했을 것이다. 나도 그런 것들 속에서 가까스로 안도하고 있던 하나의 작은 부속품이었다."    (p.144)

 

황석영의 소설은 대개 현실과 우리 시대의 문제점을 집요하리만치 파고든다. <해질 무렵>도 다르지 않았다. 산업화 초기의 혼란을 틈타, 제어장치도 없이 욕심을 채워갔던 기성세대의 탐욕은 지금의 젊은 세대에게 업보로 작용하고 있음을 신랄하게 들추어낸다. 그러나 브레이크 없는 열차처럼 탐욕의 속도는 늘면 늘었지 줄어들 줄 모른다. 황석영의 소설을 읽으면 가슴속 응어리가 더 크고 단단하게 뭉쳐지는 것만 같다. 그의 소설은 독자를 위로하는 법이 없다. 돌덩이를 삼킨 듯 답답해질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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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즐겁게 살고 싶다
무라카미 하루키 지음 / 문학사상사 / 1996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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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태어나서 지금까지 선거 때 투표란 걸 한 적이 한 번도 없다. 왜냐고 물어도 한마디로 제대로 대답할 수 없어서 "글쎄, 어째서일까요" 하고 어물어물 넘기고 마는데, 좌우지간 투표는 안 한다. "그건 국민의 권리를 포기하는 거 아니야?" 하는 소리를 들으면, 아마 그럴 거라고 생각한다. 그러나 투표는 안 한다. 정치적 관심이나 의견이 없는 것은 아니지만, 그래도 투표는 안 한다."    (p.93)

 

내 애기가 아니다. 이 책의 저자인 무라카미 하루키의 얘기다. 나는 오히려 그와 반대의 경우가 아닐까 싶다. 이를테면 나는 '정치적 관심이나 의견은 없지만, 그래도 투표는 꼭 한다'라고 해야 할 것 같다. 왜 그런지 정확한 건 나도 잘 모르겠지만, 이건 적어도 박정희 독재정권을 경험했던 사람들만의 공통적인 성향이 아닐까 싶기도 하다. 괜한 자기 고집 때문에 권력의 눈밖에 나기라도 하면 자신에게 뭔가 불이익이 오지나 않을까 하는 불안 심리는 그 시대를 대표하는 일종의 시대특산품이었다. 비록 나는 그 당시에 어린 나이여서 투표를 경험했던 건 아니지만 그 시절의 불안 심리가 혈관을 타고 둥둥 떠다니다가 투표 때만 되면 콕콕 찌르듯이 뇌를 자극하는 것이다. 아무튼.

 

무라카미 하루키의 <그러나 즐겁게 살고 싶다>는 제목만큼이나 특이한 작품이다. 대중 앞에 나서는 걸 지극히 꺼려할 뿐만 아니라 사적인 얘기는 극도로 예민하게 구는 그가 무슨 바람이 불었는지 이 책에서 작가는 자신에 대한 시시콜콜한 이야기들을 거침없이 쓰고 있다. '하루키가 이렇게 수다스러운 사람이었나' 하는 생각이 들 정도로 말이다. (비록 말은 어눌해도 글을 쓸 때는 수다스러워야 소설가로서의 자질이 있는 건지는 몰라도) 나는 문득 '사실은 그렇지 않은데 이 사람이 대중 앞에서는 항상 연극을 하는 게 아닐까?' 하는 의심이 들었다.

 

"'오늘은 늦어질 모양이니까 먼저 밥을 먹어 버릴까?' 하고 생각하다가도, '뭐 모처럼인데 좀더 기다려 볼까' 하고 생각하다가, '그렇지만 배가 고픈걸' 하는 식이다. 이런 저런 여러 생각들이 집약되어, "……." 이라는 침묵이 되는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아, 미안해요. 저녁 먹고 왔어요" 하는 소리를 들으면 역시 화가 난다."    (p.107)

 

하루키가 결혼하고 2년째쯤 되었을 때 반년 정도 '주부(主夫)' 노릇을 했던 경험을 쓴 대목이다. 실감나지 않는가. 작가가 쓴 '여러 수필집에서 가장 흥미롭고 깊이 있는 글들을 뽑아서 수록했다'는 이 책은 하루키의 내면을 궁금해 하는 많은 독자들의 니드를 어느 정도 충족시킨다고 할 수 있다. 제1장 '문학 안팎의 내 삶', 제2장 '나날의 여백 위에 쓴 단상', 제3장 '문학은 무거워도 사는 건 가볍게', 제4장 '꿈이 서린 계절의 회상을 위하여', 제5장 '신나게 살고 싶은 욕망의 여울', 제6장 '작지만 확고한 행복을 나는 원한다'의 총 여섯 장으로 구성된 이 책은 그의 사적인 고백과 더불어 작가의 세계관, 문학관, 문화관 등 다방면에 걸친 그의 생각을 엿볼 수 있다.

 

"문장이라는 것은 '자, 써야지'라고 생각한다고 해서 제대로 써지는 게 아니다. 먼저 '무엇을 쓸 것인가' 하는 내용이 필요하고, '어떤 식으로 쓸 것인가' 하는 스타일이 있어야 한다. 그렇지만 젊은 시절부터 자신에게 걸맞는 내용과 스타일을 발견할 수 있느냐 하면, 그것은 천재가 아닌 한 어려운 일이다. 그렇기 때문에 어딘가에서 기성 작품의 내용이나 스타일을 빌어와 적당히 넘기게 된다."    (p.141)

 

하루키에 대해 어느 정도 익숙한 독자라면 다 알고 있겠지만 그는 마라톤 풀 코스를 여러 차례 완주했을 정도로 자기관리에 철저한 사람이다. '나는 소설가니까 풀어지고 싶을 때 적당히 풀어지고, 다른 사람과 어울리고 싶을 때 적당히 어울려도 되지 않을까' 하는 식으로 대충대충 살아가는 사람이 아니라는 얘기다. 그것은 어찌 보면 꽤나 피곤한 일인 듯하다.

 

"나는 대개 이런 식으로 우회하면서 내가 하고 싶은 대로 억척스레 밀고 나가는 성격이라, 무엇인가에 다다르기까지 시간이 꽤나 걸리고 실패도 수없이 한다. 그렇지만 한번 그것을 몸에 익히고 나면 어지간해선 흔들리지 않는다. 이걸 딱히 자랑스레 떠드는 건 아니다. 이런 성격은 때때로 다른 사람에게 상처를 입히고, 자신이 그런 스타일을 고치려고 애써도 좀처럼 고쳐지지 않는다."    (p.47)

 

그러나 뭐니 뭐니 해도 하루키 에세이의 장점은 '큭큭' 대며 읽을 수 있는 오락성에 있다고 하겠다. 팔랑거리며 가볍게 날아다닐 듯한 톡톡 튀는 문체와 '나는 비록 이렇게 생각하지만 독자 여러분은 어찌 생각하든지 나와는 아무런 상관도 없습니다'라고 말하는 듯한, 툭툭 내던질 뿐 강요하지 않는 그의 서술 방식은 우리가 지는 일상의 무게를 500그램쯤 덜어낼 것만 같다. 일상의 무게로 인해 평소보다 어깨가 대략 2cm쯤 가라앉은 사람을 볼라치면 이 책을 한번쯤 읽어보는 게 어떠냐고 권하게 된다, 무작정 또는 막무가내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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봄비가 소리도 없이 내리고 있다. 봄을 대표하는 게 비라거나, 비였다거나, 비였을 거라는 사실을 홍보라도 하는 양 정말이지 봄비스럽게 내리는 것이다. '헐, 우산도 안 가져왔는데...' 하는 걱정에 앞서 나는 봄비에 대적할 만한 적당한 생각을 찾느라 온종일 부산했다.

 

 

봄비스러운 생각 1.

 

지도에 표시된 벚꽃 개화시기처럼 춘곤증 만연 시기는 지도에 표시할 수 없는 것인지... 등고선 모양으로 멋지게 표시한 지도를 보면서 짧은 스커트 차림의 기상 캐스터가 등장하여 이렇게 예보하는 것이다. "올해 서울의 춘곤증 만연 시기는 대체로 삼 월 오 일에서 십오일 사이가 될 것으로 보입니다. 시민 여러분께서는 이 점을 참고하시어 생활에 불편이 없도록 만전을 기하시기 바랍니다. 이만 총총."

 

 

봄비스러운 생각 2.

 

세상에는 갖가지 박물관이 다 있는데 왜 생각 박물관은 없는 것인지... 예컨대 김 아무개의 생각, 이 아무개의 생각 등을 영상과 지면으로 박물관 곳곳에 시대순으로 비치하여 한 사람의 생각이 나이에 따라 어떻게 달라지는지 구경할 수 있으면 얼마나 좋을까? 박물관 큐레이터 언니는 박물관을 찾은 어린 아이들에게 아마도 이렇게 말할 것이다. "어린이 여러분, 우리가 다음에 볼 생각은 1905년 전남 곡성에서 태어나 고생만 직살나게 하다가 1963년에 세상을 떠난 이 아무개 님의 생각을 보도록 하겠습니다. 이만 총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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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득하고 바득하던 봄이 문득, 코앞에서 헹가래를 치고 있다. 참 빠르기도 하지. 나는 춘곤증 1리터를 원샷한 기분으로 오후 내내 취해 비틀대다가 뭔가 또렷한 것을 찾고, 검색하고, 뒤지고, 두드리다가 마침내 몇 권의 신간 에세이를 화투 밑장을 빼듯 여기에 적는다.

 

 

 

내가 이 책을 알게된 것은 소설가 무라카미 하루키에 의해서였다. 하루키는 이 책을 번역하여 일본에 소개하기도 하였는데, 하루키의 책을 읽고 나 또한 '한번 읽어봐야겠는걸' 생각했던 것이 이렇게 늦어지고 말았다. 두 명의 무고한 시민을 잔혹하게 죽이고 스스로 사형에 처해달라고 주장했던 게리 길모어의 동생 마이클 길모어에 의해 집필된 이 책은 자신의 집안에서 이루어졌던 폭력과 학대를 통하여 한 인간이 살인에 이르는 과정을 상세히 그리고 있다.

 

 

 

 

 

 

 

여행기는 사실 읽는 동안만 즐거울 뿐이지 다 읽고 나면 가슴에 남는 건 그닥 없다. 어떤 경우에는 제목도 기억나지 않는다. 하여, 여행기 중에 '좋았다' 싶은 책은 몇 권 되지 않는다. 이 책의 저자인 박준이 쓴 [On the Road - 카오산 로드에서 만난 사람들]은 기억에 오래 남았던 여행기였다. 이번에 그는 떠나지 않고 온 세계를 여행하는 방법, 책으로 떠나는 여행을 들고 찾아왔다.

 

 

 

 

 

 

 

언젠가 우연히 보았던 [인간극장]에서 작가의 모습을 본 적이 있다. 천주교 신부였던 그가 환속하여 가난한 사람들의 한 끼 식사를 위한 '민들레 국수집'을 열고 그들과 함께 울고, 웃고 부대끼는 모습이 그렇게 좋아 보일 수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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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민(愚民)ngs01 2016-03-05 14:2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네 저도 민들레국수집 인간극장에서 보고 감명받았던 것이 생각나네요!

꼼쥐 2016-03-05 18:57   좋아요 0 | URL
저는 그때 [인간극장]을 보면서사람이 이렇게 선할 수도 있구나, 감탄했었어요.
 
TV 피플 북스토리 재팬 클래식 플러스 1
무라카미 하루키 지음, 김난주 옮김 / 북스토리 / 2014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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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라카미 하루키의 장편소설이라면 적어도 한 번씩은 다 읽어본 것 같군요. 하지만 그의 단편은 언제나 예외로 해야 할 듯합니다. 왜냐하면 저는 하루키의 장편소설을 먼저 읽고 그 소설의 힌트나 실마리가 되었을 듯한 단편 소설을 찾아 읽는 버릇이 있기 때문입니다. 이러한 버릇은 하루키의 소설이 대개 단편이 먼저 나오고 그것을 바탕으로 쓴 장편이 나중에 출간되는 데서 비롯되었습니다. 어느 장편소설의 실마리가 되었던 단편 소설이라고 할지라도 완전히 똑같은 것은 아니고 스치듯 지나칠 수 있는 일부분만이 비슷할 뿐입니다. 저는 마치 숨은 그림을 찾듯 하루키의 단편을 읽곤 합니다.

 

그런 까닭에 저는 비록 하루키의 애독자이긴 하지만 그의 단편은 항상 베스트셀러 목록에서 지워진 이후에나 읽게 됩니다. 이처럼 하루키의 단편소설은 단순히 단편소설로 존재하지 않고 뒤이어 나올 장편소설의 베이스가 된다는 사실에서 그의 작품을 읽는 또 다른 재미를 제공합니다. 그러므로 이미 하루키의 장편을 한번쯤 읽어본 분이라면 단편소설 또한 낯설지 않을 것입니다. 이따금 '어라, 이 장면은 어디선가 읽은 듯한데' 하는 기시감을 느낄 수도 있겠구요.

 

이 책 또한 다르지 않습니다. 1988년 장편소설 <댄스 댄스 댄스>를 발표한 후 한동안 공백기가 이어지다가 1990년에 엮어진 이 책은 1992년의 <국경의 남쪽, 태양의 서쪽>과 1994년~1995년의 <태엽 감는 새>를 잇는 가교 역할을 하고 있습니다. 특히 이 책에 실린 '가노 크레타'는 <태엽 감는 새>의 몇몇 장면에서 똑같은 모습으로 등장합니다.

 

이 책 <TV피플>에는 표제작인 'TV피플'을 비롯하여 '비행기', '우리들 시대의 포크로어', '가노 크레타', '좀비', '잠' 등 여섯 편의 단편이 실려 있습니다. 표제작에 등장하는 '나'는 어느 가전 회사의 직원으로 늘 과중한 업무에 시달립니다. 게다가 작은 출판사에 다니는 아내 또한 바쁘기는 마찬가지였습니다. 어느 일요일 오후 아내가 외출하자 '나'는 집에 혼자 남겨집니다. 그때 '나'는 보통 사람 체구의 7할 정도인 TV피플이 예고도 없이 방문하여 TV를 설치하여 놓고 가는 모습을 지켜봅니다. 그러나 밤늦게 귀가한 아내는 이러한 사실을 전혀 눈치 채지 못합니다. 다음 날 월요일에 회사에 출근한 주인공은 회사에서도 TV피플을 만나게 됩니다. 그러나 직원들 또한 아내처럼 TV피플의 존재를 인식하지 못합니다. 퇴근을 하여 집에 돌아왔으나 아내는 아무런 연락도 없이 귀가하지 않았습니다. 아내를 기다리며 무심코 TV를 틀자 화면 속에 있어야 할 TV피플이 화면 밖으로 걸어 나와 아내가 돌아오지 않을 것이라고 선언합니다.

 

""이제 곧 여기로 전화가 걸려올 거요."라고 TV피플이 말했다. 그리고는 계산을 하듯 잠시 짬을 두었다. "앞으로 5분 정도 후에." 나는 전화기를 보았다. 그리고 전화기 코드를 생각햇다. 어디까지고 하염없이 이어져 있는 전화기 코드. 그 끔찍한 미로로 얽힌 회선의 끄트머리 어딘가에 아내가 있다, 라고 나는 생각했다. 저 먼먼, 내 손길이 닿지 않는 멀리에. 나는 그녀의 고동을 느낄 수 잇었다. 앞으로 5분, 하고 나는 생각했다." (p.60)

 

'비행기'는 주인공이 과거를 회상하는 형식으로 쓰여진 단편입니다. 당시 스무 살이었던 그는 스물일곱 살의 유부녀와 관계를 맺고 자주 만났습니다. 여행사에 다니는 그녀의 남편은 자주 집을 비웠고, 그럴 때마다 그는 그녀의 집에서 만나 함께 커피를 마시면서 이야기를 나누거나 관계를 갖습니다. 어느 날 문득 그녀가 주인공에게 묻습니다. 본인이 혼잣말을 하는 사실을 아느냐고 말이죠. 그녀가 적어준 그의 혼잣말은 마치 비행기를 소재로 한 시와 같은 글이었습니다. 그 무렵, 그는 시를 읽듯 혼잣말을 했다고 회상합니다.

 

'우리들 시대의 포크로어'는 어떤 의미에서 하루키 자신의 이야기를 쓴 실화라고 해도 좋을 것입니다. 중부 이탈리아의 루카에서 하루키는 그의 고등학교 동창을 우연히 만나 그의 고교 시절 이야기를 듣게 됩니다. 1960년대에 고등학교를 다녔던 그들 세대의 사람들은 연애와 가치관에서도 지극히 보수적인 사람들이 많았나 봅니다. 친구 또한 공부도 잘하고, 운동도 잘하며, 리더십도 있는 모범적인 학생이었고 그의 여자친구 또한 비슷한 부류였습니다. 둘은 언제나 붙어다녔고 사랑하는 사이였지만 여자친구는 그의 요구에도 불구하고 끝내 몸을 허락하지는 않았습니다. 다만 그녀가 결혼을 하면 단 한 번 자신의 몸을 허락하겠다고 약속합니다. 대학을 졸업하고 회사에 취직하여 다니다가 사업을 시작했던 그는 어느 날 그녀로부터 연락을 받고 그녀의 집을 방문합니다. 그녀는 약속을 지키겠다고 하는데 그는 끝내 그녀를 안지 못한 채 집을 나왔다고 합니다.

 

'가노 크레타'는 물의 소리를 들을 수 있는 주인공의 언니 마루타와 언니의 보조 역할을 하던 가노 크레타의 이야기를 쓴 작품으로 훗날 <태엽 감는 새>의 베이스가 된 작품입니다. 그리고 이어지는'좀비'는 결혼을 약속한 남녀의 갈등 상황을 판타지 형식으로 짧게 쓴 작품입니다. 이 책의 마지막 작품인 '잠'에는 불면증에 시달리는 한 여인이 등장합니다. 한 남자의 아내로, 그리고 한 아이의 엄마로 살던 주인공은 어느 날부터 도통 잠을 이루지 못합니다. 그런 날이 이어지면서 한편으론 걱정도 되었지만 그녀는 남면과 아이가 잠든 시간에 책을 읽거나 산책을 하거나 드라이브를 즐기는 등 혼자만의 시간을 갖게 되면서 그동안 잊고 지냈던 자신을 차츰 발견하게 됩니다. 그리고 죽음을 생각합니다.

 

"죽음이 마땅히 휴식이어야 한다는 이치는 성립하지 않는다. 그것은 죽어보지 않고서는 모르는 일이다. 그것은 다른 어떤 것일 수도 있다. 그런 생각을 하자 갑작스러운 두려움이 내 전신을 감쌌다. 등줄기가 얼어붙고, 딱딱하게 굳어지는 느낌이 들었다. 나는 또 눈을 꼭 감았다. 다시 눈을 뜰 수가 없었다. 나는 눈앞을 가로막고 있는 두꺼운 어둠을 뚫어지게 쳐다보았다. 어둠은 우주 그 자체인 것처럼 깊고, 구원이 없다. 나는 외톨이였다. 나는 의식을 집중하고, 확대하고 있었다. 내가 원하기만 한다면, 우주의 저 깊은 곳까지 환히 꿰뚫을 수 있을 듯한 기분이 들었다." (p.215)

 

하루키의 소설이 대체로 열린 결말을 추구하고, 그런 까닭에 독자는 그의 소설에서 어떠한 교훈도 얻지 못한다고 불만의 목소리를 내는 사람이 있을지 모르겠습니다. 그리고 현실의 리얼리티가 떨어진다거나 소설로서의 힘이 없다고 말할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러나 현실과 환상 사이에서 줄타기를 하듯 써내려가는 그의 글솜씨는 누구도 흉내낼 수 없는 하루키만의 힘인지도 모르겠습니다. 하루키에 대한 호불호가 극명하게 갈리는 이유도 거기에 있지 않나 싶습니다. 때로는 환상의 세계인 양 읽히는 하루키 소설 속의 세계가 제게는 현실보다 더 현실처럼 느껴지는 이유가 무엇일까요? 봄이 코앞인 듯합니다. 하루하루가 힘들고 어려울지라도 현실을 꿈결인 양 느끼는 그런 나날들이 이어졌으면 좋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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