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린시절을 생각할 때마다 떠오르는 이미지가 몇 개 있다. 앞산의 능선 위로 부챗살처럼 퍼져 오르는 아침 햇살과 그 햇살을 받아 서서히 밝아지는 뒷산. 밝은 초록의 물결 위로 서서히 옅어지는 운무와 장독대 뒤로 보이던 거미줄! 정말 그랬다. 아침이면 언제나 방사상의 거미줄에 햇살을 받아 더욱 빛나는 이슬 방울이 조롱조롱 매달려 있었다.

 

그러나 판타지 만화영화에서나 등장할 만한 방사상의 커다란 거미줄은 더이상 보기 어려워졌다. 징그러운 외모와는 다르게 거미란 놈은 환경 변화에 무척이나 민감하여 각종 오염물질을 감지하는 환경지표생물로 잘 알려져 있는 것처럼 거미가 자취를 감추었다는 건 우리의 주변환경이 그만큼 오염됐다는 걸 의미하는지도 모른다.

 

얼마전 뉴스에서는 우리나라의 공기질 수준이 세계 180개국 중 최하위권인 173위를 기록했다고 발표했다. 미국 예일대와 컬럼비아대가 공동으로 연구하여 발표한 '환경성과지수(EPI) 2016'에 따르면 우리나라는 공기질 부문에서 100점 만점에 45.51점을 받아 전체 조사대상 180개국 중 173위였단다.

 

환경오염은 비단 자연에만 국한되는 건 아니었던 모양이다. 한국 정부의 정책결정 투명성 순위도 2007년 34위에서 2015년 123위로 급락했고, IMD라는 스위스 기관에서 매년 시행하는 회계투명성 조사에서는 우리나라가 61개 나라 중에 60등을 차지했단다. 회계가 불투명하다고 비판받는 중국이 57위였다니 말 다했지 뭔가. 정부는 요즘 해운과 조선에 대해 구조조정을 하고는 있지만 국민의 혈세로 이미 투자된 수조 원의 자금은 손실로 굳어질 모양이다. 누구 하나 책임지는 것 없이 말이다.

 

자연환경이 나빠지면 사람과 사람 사이의 투명성이라도 좋아져야 할 텐데 모두 나빠지는 것만 있고 좋아지는 건 없으니 나라 꼬라지가 참 딱하기만 하다. 그렇게 나빠지다 보니 이 틈에 한몫 챙기려는 사람들만 득시글거린다. 수질이 오염되면서 매년 여름 등장하는 큰빗이끼벌레처럼 말이다. 검사장 출신의 홍모 변호사나 판사 출신의 최모 변호사는 모두 자연 환경이 나빠지면서 매년 출몰하는 큰빗이끼벌레와 크게 다르지 않아 보인다. 자연환경이나 인간환경이 이토록 나빠지니 다들 죽겠다고 아우성이지. 오늘도 미세먼지에, 오존에 주의할 것 투성이인데 도통 어떻게 주의해야 하는지 알 길이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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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를 사랑한 고양이 시시
슈테파니 츠바이크 지음, 안영란 옮김 / 북스캔(대교북스캔) / 2003년 12월
평점 :
절판


기억할런지 모르겠다. 사람이나 동물이나 이름이 중요하다는 것을. 영혼은커녕 아무런 정보도 담겨 있지 않을 듯한 그 이름으로 인해 사람들은 얼마나 많은 오해를 하고 얼마나 많은 착각 속에서 살아가는지... 예컨대 '슈테파니 츠바이크'란 이름은 마치 낡은 고무 타이어처럼 딱딱하고 거친 느낌이 들게 마련이어서 그녀가 쓰는 글이란 글은 언제나 유머와 감성을 모두 제거한 채 칙칙하고 우울한 느낌만 전달할 것 같잖아. 반면에 빌 브라이슨은 어때? 이름에서 풍기는 느낌은 마치 대문자 비(B)를 닮은 퉁퉁한 몸매에 털털하고 인상 좋은 남자일 것 같지? 게다가 그가 쓰는 글은 모두 재미있고 유쾌할 것만 같고. 웃기는 건 한 사람에 대한 아무런 사전지식도 없이 사람들은 이름 하나만으로 많은 걸 유추한다는 거야. 때로는 황당하게 때로는 제대로.

 

"나는 두 귀로 그 이름을 흘러들어오게 했다. 내게 얼마나 꼭 맞는 이름인가. 왕비의 이름에 걸맞고 시녀에게는 귀족신분을 부여하는 고전적인 모든 의미를 망라하는 이름이다. 내가 몰랐을 뿐이지 사실은 나 역시 아주 오랫동안 이런 아름다운 치음(齒音)을 원했음을 알았다. "시시," 내 마음은 환희로 가르랑거렷다." (p.50)

 

그렇다. 슈테파니 츠바이크가 쓴 <나를 사랑한 고양이 시시>는 고양이 시시가 주인공이다. 작가가 '슈테판 츠바이크'인데 '슈테파니 츠바이크'라고 잘못 쓴 게 아니냐고? 그럴 줄 알았다. 그 얘기가 왜 안 나오나 생각했었다. 슈테판 츠바이크는 ,에라스무스 평전>을 쓴 오스트리아 출신의 작가이지. 반면에 슈테파니 츠바이크는 아프리카 케냐에서 유년생활을 보냈고 작가 겸 극작가로서 독일 청소년 문학상을 수상한 바 있고 1993년에는 독일 작가상을 수상하기도 했지.

 

소설의 주인공인 시시는 처음에 살던 집에서 어느 날 탈출을 감행한다. 이유인 즉 고양이에 대한 배려라고는 눈곱만치도 없던 집주인이 자신의 주말농장 창고에 쥐구멍이 있는 걸 본 후 쥐를 잡기 위해 시시를 그 창고로 보내려 했기 때문이었다. 동네를 어슬렁거리던 시시는 정신과 의사인 율리아의 집이 맘에 들었고 순진한 율리아를 자신의 '양녀'로 삼기로 했다. 비를 맞은 처량한 모습으로 시시는 율리아를 자극했고 애완동물이라곤 길러본 적 없는 율리아도 시시의 연기에 홀딱 넘어가고 말았다. 율리아와 시시의 동거는 그렇게 시작되었고 그녀가 자신의 환자를 치료할 때에도 둘은 환상의 콤비처럼 행동했다.

 

"우리는 지배하기 위해서 태어났지, 시중을 들자고 만들어진 존재가 아니다. 태생이 고매한 우리 시암 고양이는 야만스럽기 그지없는 생쥐로 배를 채우는 한심한 도둑고양이는 아닌 것이다." (p.14)

 

그러던 어느 날 율리아가 자신의 환자였던 슈테판 베르크를 맘에 두게 되었고 슈테판은 그의 동생 게오르그와 함께 율리아의 집에 들러 카드놀이를 하거나 둘만의 시간을 보내기도 했다. 그 무렵 시시는 수려한 외모의 수고양이와 사랑에 빠진다. 율리아의 눈을 피해 수고양이와 사랑을 나누고 집으로 돌아왔던 어느 날 밤, 시시가 사라졌다는 불안감에 침대에서 담배를 피우고 담배꽁초의 불을 제대로 끄지 않았던 탓에 화재가 났고 그 사실을 모른 채 자고 있던 율리아를 시시는 다급하게 깨운다.

 

"그러니까 사랑이란 바로 이런 것이다. 사람들이 그토록 많이 입에 올리고, 수없이 한숨짓고 노래하는 사랑…… 나는 이런 사랑이란 싱싱한 연어 한 토막만도 못 하고 몇 차례 후려갈겨 떠나보낼 정도의 가치만 부여하고 싶다. 아침 여명 속에서 그것을 곰곰이 생각하는 것조차 한기와 갈증과 허기 때문에 곤혹스러웠다. 따뜻한 집과 율리아의 따스한 체온이 어찌나 그립던지 애처로운 소리가 절로 입에서 흘러나왔다." (p.125)

 

시시의 무용담은 여기에서 그치지 않는다. 환자인 척 가장해 율리아와 가까워진 남자가 율리아가 없는 틈을 노려 집안의 보석을 훔쳐가려 했을 때 시시는 그 남자에게 달려들어 할퀴고 물고 하여 남자를 쫓아내기도 했다. 그것도 임신한 몸으로 말이다. 또한 율리아가 시시를 위해 출산침대를 만들다가 망치에 맞아 다리를 접질렸을 때도 시시와 슈테판이 그녀를 간호했다.

 

"만일 율리아가 의사가 되는 대신 외교관이 되었더라면 우리는 매일 세계대전을 치뤘어야 했을 것이다. 바보 율리아는 미모사처럼 우아를 떨고, 끔찍하게 거드름을 피우는 데다 문제는 수다의 욕구를 억제하지 못한다는 것이다." (p.246)

 

시시와 율리아의 좌충우돌 동거기(同居記)라고 말할 수 있는 이 책은 똑똑하고 우아하며 사랑스러운 시암 고양이 시시의 관점에서 전개되지만 인간과 고양이의 교감이 마치 인간 대 인간의 우정처럼 실감나게 묘사되고 있다. 그러나 안타까운 것은 내가 서두에서 말했던 것처럼 작가의 이름에서 독자가 받는 인상은 무척이나 차갑고 거친 느낌이라는 데 있다. 그러나 분명한 것은 이 책을 읽는 사람이면 누구나 까칠한 고양이 시시의 독설과 그 매력에 푹 빠져 책을 다 읽기 전에는 빠져나오기 어렵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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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가 뭐래도 나는 친노(親盧)입니다. 어쩌면 친노(親盧)일 수밖에 없는 운명인지도 모르겠습니다. 나의 전 생애에 걸쳐 특권층이 될 가능성은 아주 없거나, 설령 있다 하여도 매우 적을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나는 특권층을 대변하는, 특권층만을 위해 권력의 칼날을 휘두르는 사람을 대통령으로 지지할 수 없는 운명을 타고난 것입니다.

 

그러나 7년 전 오늘 노무현 대통령께서 서거하신 후 나는 더이상 친노(親盧)라고 말할 수 없습니다. 고인이 되신 대통령님과 살아 생전 일면식도 없었던 사람이니 어쩌면 나는 애시당초 친노(親盧)가 아니었는지도 모르겠습니다.  아무튼 나는 대통령님이 서거하신 그날부터 대통령님을 그리워하는 사노(思盧)가 되기로 마음먹었습니다. 아니 그렇게 마음먹지 않아도 자연스레 그리 되었던 듯합니다.

 

대통령님의 고향 봉하마을에는 오늘 수많은 추모객들이 다녀간 듯합니다. 지난 주말 휴일부터 이미 사람들의 발길이 이어졌었지요. 자신의 사리사욕을 위해, 또는 자신의 정치적 야망을 위해 '사람 사는 세상'을 꿈꾸었던 당신의 참뜻을 부인하거나 당신을 그리워하는 많은 국민들을 '친노 패권'으로 매도하는 사람들이 늘어날수록 당신을 그리워하는 사람들은 더욱더 늘어나는 것만 같습니다. 세월이 갈수록 추모객의 발길이 줄어들기는커녕 오히려 점점 늘어만 간다는 게 그 사실을 반증하는 것인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들도 이미 자신을 친노(親盧)가 아닌 사노(思盧)로 규정하였겠지요. 나처럼 말입니다.

 

하늘도 서러운지 내일은 비가 내린답니다. '바보 노무현'을 기억하는 많은 국민들도 덩달아 슬퍼질 듯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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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민(愚民)ngs01 2016-05-23 19:3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안타까운 마음이 벌써 7년이라는 세월이 흘렀네요... 청문회스타에서 삼당합당을 반대하던 인간 노무현이 그리워지는 하루네요

꼼쥐 2016-05-24 16:37   좋아요 0 | URL
살아 있는 사람들에게 세월은 참 빠르게 흐르는 느낌이죠? 벌써 7년이라니... 엊그제 일처럼 생생한데 말입니다.
 
마음도 번역이 되나요 (선물용 특별판) - 다른 나라 말로 옮길 수 없는 세상의 낱말들 마음도 번역이 되나요 1
엘라 프랜시스 샌더스, 루시드 폴 옮김 / 시공사 / 2016년 3월
평점 :
품절


5월은 역시 장미의 계절이다. 아파트 담장에는 넝쿨장미가 흐드러지게 피어 오가는 사람들의 마음을 뜨겁게 달군다. 그러나 사람의 마음이란 게 간사하기 이를 데 없어서 봄꽃이 막 시작될 무렵의 산수유나 벚꽃에는 무한애정을 보내다가도 화려하게 치장한 봄꽃들이 지천에 흐드러지면 왠지 모르게 시큰둥해지고 여름을 향해 치닫는 요즘과 같은 시기에는 꽃의 여왕이라는 장미도 길가에 핀 조팝나무의 알싸한 향기도 도통 관심이 없어지는 것이다. 눈과 코가 호사를 누리고는 있지만 정작 배가 불러서인지 그 고마움을 모르고 지낸다. 아침에 볼일이 있어 잠시 외출을 했었는데 어디선가 익숙한 냄새가 난다 싶어 냄새의 진원지를 찾아 시선을 옮겼더니 이제 막 피기 시작한 조팝나무꽃이 진한 향기를 뿜어내고 있었다. 나는 그 꽃의 향기에 한참이나 취해 있었음에도 그 향기에 적당한 말을 찾지 못했다. '알싸하다'는 표현은 식상하고 '익숙한 향기'라고 하면 조팝나무꽃 향기를 처음 맡아보는 사람에게는 막막하고...

 

엘라 프랜시스 샌더스가 쓴 <마음도 번역이 되나요>는 제목만큼이나 예쁜 책이다. 조팝나무의 꽃향기를 적당한 언어로 표현할 길 없어 막막하기만 했던 나처럼 세상의 많은 사람들 또한 그런 경험이 있지 않았을까 싶다. 이 책은 그런 순간들을 위해 존재하는 듯한 특별한 낱말들을 가려 뽑고 저자 자신이 직접 그린 아름다운 일러스트를 함께 배치한 귀여운 책이다. 뭐라 말로 표현할 수는 없지만 마음속에서 일렁이는 특별한 감정, 누군가에게 전하고픈 벅차오르는 느낌을 엘라 프랜시스 샌더스는 세계 각국의 언어에서 52개의 특별하고도 아름다운 낱말을 선별하여 그 느낌을 그림으로 표현하고 있다. 어린 시절 여러 나라에서 살아본 경험을 토대로 그 나라에만 있는 고유한 낱말을 그림과 함께 자신의 블로그에 올렸던 것이 화제가 되어 책으로까지 나오게 되었다고 한다. 루시드폴의 번역이 이채롭다. 이 책에 우리나라 말은 '눈치'가 실렸다.

 

"때때로 상대방의 겉모습만으로는 그가 불안한지 화가 났는지 다정한지 슬퍼하는지 알아채기가 어렵습니다. 다만 한 사람을 오래 겪다 보면 미묘한 차이까지도 알아챌 수 있겠지요.

 

책에는 '눈치'(NUNCHI)의 의미에 대해 파도의 골과 마루인 듯한 그림 위에 '눈에 뜨지 않게 다른 이의 기분을 잘 알아채는 미묘한 기술'이라고 쓰고 있다. 이 외에도 노르웨이어, 네덜란드어, 웨일스어, 그리스어, 인도네시아어, 힌디어, 툴루어, 이디시어, 페르시아어, 프랑스어, 이누이트어, 독일어, 산스크리트어, 일본어 등 우리가 미처 알지 못했던 다양한 나라의 언어 중에서 특별한 낱말을 가려 뽑아 소개하고 있는 것이다. 특이한 것은 일본어 낱말이 네 개나 실렸다는 점이다. '츤도쿠'(TSUNDOKU)-사다 놓은 책을 펼치지도 않은 채 내버려 두기, '와비-사비'(WABI-SABI)-생사의 윤회를 받아들이고 불완전함 속에서 아름다움을 찾는 것, '보케토'(BOKETO)-무념무상으로 먼 곳을 바라보기,'코모레비'(KOMOREBI)-나뭇잎 사이로 스며 내리는 햇살, 이 그것인데 책을 읽다가 문득 '보케토'가 우리나라의 '멍 때리기'와 같은 뜻인지 궁금해지기도 했다.

 

내가 이미 알고 있었던 낱말 중에는 야간(Yaghan)어인 '마밀라피나타파이'(MAMIHLAPINATAPAI)가 있었다. 칠레 남부 티에라 델 푸에고 지역의 야간족 원주민이 쓰는 말이다. 책에서는 이 말의 의미에 대해 '같은 것을 원하고 생각하는(그러면서도 먼저 말을 꺼내고 싶어 하지 않는) 두 사람 사이의 암묵적 인정과 이해'라고 쓰고 있다. 말하자면 '서로에게 꼭 필요하지만 자신은 굳이 하고 싶지 않은 어떤 일에 대해 상대방이 먼저 자원하여 해 주기를 은근히 바라면서, 두 사람 사이에 조용하면서도 긴급하게 오가는 미묘한 눈빛'인 것이다. 게임이론 중 '자원봉사자의 딜레마'와 관련된 말로서 우리에게 알려져 있고, 기네스북에는 특이하게도 '가장 간단명료한(succint)단어'로 이 단어가 등재돼 있다.

 

클레멘스 베르거라는 오스트리아 극작가는 이 단어를 두고 '번역하기 가장 어려운 말'이라고 했다는데 어떻게 '간단명료한 단어'로 기네스북에 등재되었는지 궁금해 하는 사람이 많을 것이다. 눈에 보이지는 않지만 매우 복잡하고 미묘한 상황을 한 낱말로 요약했으니 간단명료한 단어가 맞긴 맞는 듯하다. 요즘의 새누리당 사정이 '마밀라피나타파이'적 상황이 아닐까 싶다. 탈당하여 무소속으로 당선된 사람들을 다시 복귀시키자니 꺼림칙하고 안 시키자니 당장의 국회 사정이 녹록치 않고...

 

연초에 이사를 하고 내내 미뤄두었던 책을 며칠 전에 정리하다 보니 읽지 않고 내버려 둔 책이 어찌나 많던지... 이 책에 실린 일본어 '츤도쿠'가 쌓여 있는 셈이다. 그럼에도 나는 꾸준히 책을 산다.

 

"단 한 권의 책일 수도 있고 심각하게 쌓여 있는 책더미일 수도 있는 '츤도쿠'에 대해서 사람들은 왠지 모르게 죄책감을 느끼기 마련입니다. 현관문 쪽으로 걸어가다, 읽지도 않은 찰스 디킨스의 <위대한 유산>에 발이 걸려 넘어지는 당신. 그런 당신을 사람들은 지적인 사람이라고 생각할지도 모르긴 합니다. 하지만 아무리 그래도 책 속 주인공들에게 한 번쯤은 햇빛 구경이라도 시켜 줘야 하지 않을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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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강 작가의 맨부커상 수상 소식이 TV와 신문을 가리지 않고 연일 보도되고 있습니다. '한국 문학의 쾌거'라는 둥 '[문화 강국 코리아] 대중문화 넘어 문학-예술로 확장...세계가 빠져든 新한류 바람' 등 얼핏 보기에도 과하다 싶은 기사들이 국민들을 현혹하고 있습니다. 이뿐만이 아닙니다. 저는 한 번도 본 적 없습니다만 얼마 전에 끝난 드라마 '태양의 후예'만 하더라도 '드라마 한류', '한국 드라마 신드롬' 등 듣기에도 민망한 말을 연일 쏟아내더니 급기야 대통령까지 나서서 출연 배우에게 '진짜 청년 애국자'라며 칭찬을 쏟아내는 지경에 이르렀습니다. 게다가 칸 영화제 출품작은 아직 아무런 결과도 나온 게 없는데도 마치 '황금종려상'이라도 받은 양 기사를 쏟아냅니다.

 

과연 이것이 합당한 것인가? 하는 문제에 있어 저는 고개를 갸웃하게 됩니다. 한국인의 쾌거에 대해 같은 한국인으로서 기쁘지 않다는 게 아닙니다. 다만 그러한 좋은 결과가 단지 한 개인의 또는 한 단체의 노력에 의해 얻어진 일회성의 성과가 아닌, 기사에서 보도되는 것처럼 단단한 문화적 토양 위에서 이제야 빛을 본, 그래서 전국민이 기뻐해야 할 국가적 성과물이라고 해도 좋은지 의심스럽다는 것입니다.

 

제가 생각할 때 한강 작가의 수상은 누가 뭐라 해도 열악한 문화적 토양에서 일궈낸 개인의 피나는 노력의 산물이 아닐 수 없습니다. 월평균 책 구입비 1만 6천 2백 원인 나라에서 꾸준히 책을 쓰고 출간을 한다는 건 쉽지 않은 일입니다. 더구나 지방재정에서 가장 뒷전에 놓인 도서구입비는 '있어도 그만 없어도 그만'인 그야말로 형편에 따라 늘고 줄어들 수 있는 가장 만만한 항목이지요.

 

"마포세무서로부터 근로장려금을 신청하라는 통보를 받았다. 내가 연간소득이 1300만원 미만이고 무주택자이며 재산이 적어, 빈곤층에게 주는 생활보조금 신청 대상이란다."

 

지난 16일 '서른 잔치는 끝났다'로 유명한 최영미 시인의 페이스북에 올라온 글입니다. 많은 분들이 직감하고 있겠습니다만 대한민국에서 오롯이 시인으로만 살 수 있는 사람은 거의 없거나 있어도 극히 적은 소수에 국한될 것입니다. 교과서나 참고서 외에는 시집이든 소설책이든 독서와 담을 쌓고 지내는 우리의 교육 현실에서 노벨문학상을 욕심내고 콩쿠르상을 탐낸다는 건 어불성설일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러므로 한강 작가의 맨부커상 수상은 한국 문학의 돌연변이일 뿐 쾌거는 아니라는 얘기입니다.

 

드라마 '태양의 후예'나 일부 연예인의 인기도 다르지 않을 것입니다. 건전한 문화적 바탕을 기반으로 성장한 한국 대중 문화인들의 성과가 아니라 특출난 개인의 성과, 특별히 잘 쓰인 작품에 의해 탄생된 일시적인 인기를 두고 일희일비 하는 짓을 우리는 언제까지 해야 하며, 그런 기사에 현혹되어 대한민국 국민 전체가 문화 선진국의 지위를 얻은 양 몇 날 며칠 과장되게 떠드는 짓을 우리는 언제까지 해야 하는지요? 우리의 문화적 민낯은 유명 시인 하나 제대로 대우하지 못하는데 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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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는재로 2016-05-19 15:25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한강이라는 작가는 예전부터 있었도 좋은 소설을 썼는데 상수상하잠 이제야 관심이 집중되고
책이 팔리는걸 보면 한국이라는 나라의 제대로 대우받지 못하는 작가들의 모습이 쓸씁합니다
한국에서 추리 sf 소설은 인정받지 못하고 순문학이나 인전하는 문단의 모습 진정한 작가라는
명제에 대해 묻고 싶네요 이대로 한강이라는 작가가 계속해서 좋은 책을 발매해주었으면 하지만 이런 모습들은 싫네요

꼼쥐 2016-05-22 14:55   좋아요 0 | URL
그렇지요? 한국 문단의 잘못된 행태나 독자들의 무관심도 큰 문제이지요. 술값을 지불하는 데는 아까워하지 않으면서 책을 사는 데는 왜 그렇게 인색한 건지 알다가도 모를 일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