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다운 비가 내렸던 게 언제였는지 모르겠다. 간밤에 잠깐 후두둑 빗발이 치는 듯하더니 눈 깜짝할 새 가뭇없이 사라져버렸었다. 아침에도 비는 오지 않고 한여름처럼 무덥기만 했다. 햇빛도 없는 후텁지근한 날씨가 종일 이어지더니, 점심 무렵에 병아리 오줌만큼 찔끔 빗방울이 내비쳤다. 비라고 할 수도 없는, 맑은 날에는 보이지도 않을 자동차의 먼지가 찔끔 내린 비로 인해 유리창에 먼지자국만 선명하게 남았다.

 

불쾌지수가 높을 거라는 기상청 예보는 적중했다. 예보를 듣지 못했다 하더라도 날씨에 반응하는 몸을 통하여 알게 되었을 것이다. 몸 속의 불쾌지수 게이지가 하루 종일 요동쳤을 테니까 말이다. 지친 사람들은 무더위를 피해 도서관으로 몰려들었다. 어른이고 아이고 책 한 권을 골라 잡고 앉아 편한 자세로 책을 읽고 있다. 무더위를 잊게 하는 것 중에 책만 한 게 또 있을까?

 

나도 텐게 시로가 쓴 <2030년 학력 붕괴 시대의 내 아이가 살아갈 힘>을 빼 들었다. 끊임없이 생각을 하면서 읽어야 할 책인데 좀처럼 집중이 되지 않는다. 책을 빌려서 집으로 돌아왔다. 이런 날씨에는 가볍게 읽을 수 있는 책을 골랐어야 하는 게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읽던 책을 놓고 응씨배 바둑 대회 준결승전을 보고 있다. 이세돌 9단과 박정환 9단이 벌이는 준결승 제2국이다. 먼저 1승을 했던 박정환 9단이 조금 밀리는 듯 보이지만 바둑은 그야말로 박빙이다.

 

일요일 오후의 시간에는 왠지 모르게 마음이 조급해지곤 한다. 하나의 일에 진득하니 집중할 수가 없는 것이다. 사라 밴 브레스낙의 <혼자 사는 즐거움>도 읽어야 하는데 슬슬 졸음이 밀려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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직업으로서의 소설가
무라카미 하루키 지음, 양윤옥 옮김 / 현대문학 / 2016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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블로그에 글을 올리면서 몇 번 밝힌 적이 있지만 나는 하루키의 열성 팬입니다. 그가 쓴 소설은 물론 에세이 또한 읽지 않은 게 없고, 그의 광팬임을 자처하는 임경선 작가의 책('하루키와 노르웨이 숲을 걷다', '어디까지나 개인적인')이나 일본의 대표적인 문예비평가인 고모리 요이치가 쓴 책('무라카미 하루키론')과 말의 권위자 사이토 다카시가 쓴 책('사랑하고 있다고, 하루키가 고백했다') 등 하루키와 관련된 책이라면 가리지 않고 모조리 읽었습니다. 이렇게 말하는 내가 조금 섬뜩한가요? 혹시 하루키의 사생팬이 아닌가 싶어서 말입니다.

 

평소에 독서를 좋아하여 즐겨 책을 읽기는 하지만 예전부터 좋아하던 작가라고 해서 그/그녀의 전작(全作)을 무작정 읽었던 적은 없었던 듯 싶은데 그런 면에서 하루키는 내게 특별한 작가였었나 봅니다. 내가 이토록 하루키를 탐닉하게 된 데에는 나름의 어떤 이유가 있지 않았을까? 이따금 생각하게 됩니다. 나로서도 참으로 신기한 일이 아닐 수 없습니다만 아무리 곰곰 생각해봐도 그 이유를 도무지 알 수 없습니다. 다만, 그의 소설이나 에세이가 다른 작가와 비교하여 이러이러한 점에서 확실히 다르다는 건 몇 가지 말할 수 있을지도 모르겠습니다.

 

당연하게도 나는 최근에 나온 하루키의 신작 <직업으로서의 소설가>를 읽었습니다. 삼십오 년 동안 지속적으로 소설을 써오면서도 자신을 세상 밖으로 드러내는 걸 극도로 꺼렸던 작가이기에 자신의 이야기를 책으로 썼다는 사실이 다소 의외로 받아들여지기는 했습니다. '이 정도 썼으면 됐다' 생각하여 소설가로서 은퇴를 선언하거나 절필을 결심하기 전에는 자신의 이야기를 결코 쓰지 않을 줄 알았는데 아직 일흔도 되지 않은 나이에 이런 책을 출간하리라고 누가 생각이나 했겠습니까.

 

"내가 오랜 세월에 걸쳐 가장 소중하게 여겨온 것은(그리고 지금도 가장 소중히 여기는 것은) '나는 어떤 특별한 힘에 의해 소설을 쓸 기회를 부여받은 것이다'라는 솔직한 인식입니다. 그리고 나는 어떻게든 그 기회를 붙잡았고, 또한 적지 않은 행운의 덕도 있어서 이렇게 소설가가 됐습니다." (p.58)

 

우리나라 뿐만 아니라 세계적으로 잘 알려진 유명 작가인 까닭에 그가 살아온 삶이나 세계관, 가치관, 직업관 등 작가가 직접 책으로 쓰거나 구체적으로 언급하지 않았어도 이미 그에 대한 세세한 부분까지 다 밝혀진 마당에 더이상 말할 게 남아 있을까, 싶겠지만 그는 아마도 소설가로서 살아왔던 자신의 반평생에 대하여 약간의 변론이나 반론이 필요했었나 봅니다. 그것은 아마도 일본의 기성 작가들과 다른 스타일의 글쓰기, 일본 문단과 동떨어진 행보, 작가만의 독특한 생활 습관 등 다름에서 오는 오해와 불신을 그 나름대로 변명하거나 합당한 이유를 들어 설명해야 할 필요성을 느꼈기 때문일 것입니다.

 

"내 작품은 현재 50개 이상의 언어로 번역되었습니다. 나름대로 크나큰 달성이라고 자부합니다. 이건 바꿔 말하면 다양한 문화의 다양한 좌표축 위에서 내 작품이 평가된다는 뜻이니까, 나는 한 사람의 작가로서 기쁘게 생각하고 또한 자랑스럽게 느낍니다. 하지만 '그러므로 내가 해온 일이 옳다'라는 식으로 생각하는 것도 아니고 그런 말을 입에 올릴 생각도 없습니다. 그건 그거고 이건 또 이것이지요. 나는 아직 발전 도상의 작가고, 나의 여지라고 할까 '발전 가능성'은 아직 (거의) 무한하게 남겨져 있다고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p.314)

 

작가는 이 책에서 소설가로서 자신이 경험했던 다양한 것들에 대해 쓰고 있습니다. 소설가의 자격에 대해서, 문학상에 대해서, 오리지낼리티에 대해서,소설의 내용에 대해서, 소설가가 지향하는 독자층이나 소설의 등장인물에 대해서 등 소설 쓰기에 대한 자신의 경험이나 생각을 소상하게 밝히고 있습니다. 뿐만 아니라 자신이 소설가가 된 계기며, 학창시절과의 연관성이며, 전업 작가가 되기로 결심한 이후의 달라진 습관이나 경험, 미국에 진출했을 때의 경험과 개인적으로 존경하는 가와이 하야오와의 만남 등을 자세히 들려줍니다.

 

'무라카미 자전적 에세이'라는 부제가 붙은 이 책은 그가 썼던 다른 에세이집과는 확연히 구별되는 점이 있습니다. 한 문장 한 문장이 그렇게 진지할 수가 없다는 것입니다. 조금 심하다 싶을 정도로 말이지요. 자신의 이야기를 글로 쓰는 데서 오는 머쓱함이랄까, 아니면 쑥스러움이랄까 작가 본인이 느꼈음직한 그런 감정들이 고스란히 느껴집니다. 지금껏 써왔던 그의 에세이는 적절한 유머와 위트를 섞어 독자들이 시간 가는 줄 모르고 읽을 수 있는 그런 책들이 대부분이었고, 나는 이렇게 생각하는데 다른 사람은 어떻게 생각하든 나와는 상관없다는 식의 내던지는 투로 말함으로써 독자들의 어깨를 가볍게 하는 글이 대부분이었습니다. 말하자면 본인이 어떤 상황을 슬프다고 느꼈을 때 글에서도 여전히 슬픈 느낌을 지나치게 많이 씀으로 해서 책을 읽는 독자들에게도 슬픔을 억지로 강요하는 듯한 글쓰기는 절대적으로 자제해왔던 작가였기에 진지하다는 건 독자의 입장에서 조금 무겁게 느껴졌다는 뜻입니다.

 

워낙에 호불호가 명확히 갈리는 작가인 까닭에 이 책 또한 호불호가 갈릴 수밖에 없다고 생각합니다만 나는 개인적으로 책을 읽는 내내 작가의 생각에 공감할 수 있었습니다. 소설가로 성공하기 위해서는 다른 스타일의 글을 써야 한다는 것도, 지속적으로 글을 쓰기 위해서 체력의 중요성을 강조한 것도, 실질적인 체험만으로 글을 쓴다는 건 오래 가지 못한다는 것도 충분히 이해할 수 있었을 뿐만 아니라 자신이 쓰기에는 몹시 쑥스러웠을 듯한 자신의 경험을 아주 솔직하게 씀으로 해서 소설가를 꿈꾸는 많은 작가 지망생에게 조금이나마 도움이 되고자 했던 그의 자세가 진심으로 느껴졌던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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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도 다른 동물들처럼 겨울잠을 자면 어떨까 하는 생각이 들 때가 있다. 내 개인적인 생각이지만 뭐, 나쁘지 않을 것 같다. 그렇게 된다면 사람들은 매년 찬바람이 부는 늦가을에 인사치레 삼아 이렇게 말하지 않을까? "어이, 김씨! 올해는 언제 동면할 생각인가?" 물어올라치면 "글쎄, 다음달 중순께나 되어야 하지 않을까 싶어. 올해는 예년에 비해 날씨가 푹해서 말이야." 이런 대화가 곳곳에서 들려올 것이다. 김장을 언제 할 것인지 인사말처럼 물어보듯이.

 

찬바람이 불고 쌀쌀해지면 사람들은 제 집의 곳곳을 손보고 다음해 봄까지 아무런 피해가 없기를 기원할 것이다. 그리고 안심이 된다는 듯 자신의 침낭을 펼치고 그 속에 들어가 긴 잠에 빠져 들 것이다. 누에가 실을 토하여 제 몸을 감싸듯 겨우내 자신의 몸을 지켜줄 침낭 속에서 욕심없이 긴 잠을 자는 인간의 모습은 얼마나 평화로울까.

 

이듬해 봄이 되어 얼었던 땅이 녹고 길었던 잠에서 다시 깨어날 즈음이면 원시 자연의 공기를 폐부 깊숙이 빨아들일 것이다. 굳었던 몸을 풀고 신선한 공기가 온 몸 구석구석을 한바퀴 돌고 나면 '아, 또 다시 1년을 열심히 살아야지.' 하는 생각이 저절로 들 것이다. 그리고 서너 달만에 보는 이웃을 향해 반가운 인사를 나눌 것이다. "어이, 김씨! 그동안 잘 잤나? 동면을 하고 나더니 한 10년은 젊어진 듯하이." 하고 덕담을 건네오면 "그런가? 자네도 안 보는 사이에 많이 좋아졌군 그래. 혹시 남 몰래 깨어나서 보약이라도 한 재 훔쳐 먹은 겐가?" 하는 농을 스스럼없이 던지지 않을까 싶다.

 

동면을 하는 동안 지구는 청정자연의 원시상태를 회복할 테고 사람도, 동물도 그 속에서 건강하게 1년을 살아갈 것이다. 아, 얼마나 좋을까. 생각만 해도 꿈만 같다. 세계 최하위의 공기질을 자랑(?)하는 우리나라의 현재 모습이 너무도 참담하여 별 이상한 생각이 드는가 보다. 오늘도 하늘은 그저 뿌옇다. 나와 내가 사랑하는 사람들이 저 속에서 살고 있다. 아니, 죽어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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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민(愚民)ngs01 2016-06-10 22:4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지금 우리가 살고 있는 자연환경이 마치 우리 것인양 착각하는 것이 문제입니다. 후손들에게 물려줄 환경을 나부터 파괴하고 있는 것은 아닌지? 개발이라는 이름으로 환경파괴의 주범이 아닌지 말입니다.

꼼쥐 2016-06-11 11:07   좋아요 0 | URL
상상만으로 그칠 게 아니라 유전자 변형을 통해서 인간을 동면하도록 만들면 지구환경은 그만큼 좋아지고 에너지 소비도 엄청 줄어들 것 같아요.

Ralph 2016-06-11 19:3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실제로 숲에서 길을 잃거나 해서수주-수개월 동안 동면 형태로 생존한 예가 꽤있고, 자발적으로 매년 겨울에 동면하는 사람에 대한 경우도 있다는 군요. 이미 인간의 유전자에 프로그램이 있을 가능성이 크지요.

꼼쥐 2016-06-12 16:39   좋아요 0 | URL
아, 그렇군요. 저는 그저 상상만 했을 뿐인데 실제로 그런 사례가 있군요. 온대지역에 사는 사람만이라도 모두 동면을 하게 만든다면 지구 환경은 매년 회복될 텐데 말이죠.
 
괴짜물리학 - 기발한 상상력으로 풀어낸 지적 교양을 위한 물리학 입문서
렛 얼레인 지음, 정훈직 옮김, 이기진 감수 / 북라이프 / 2016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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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을 살다 보면 자신의 힘만으로는 도저히 해결할 수 없는 어떤 것들과 종종 마주치게 된다. 대개는 아주 작고 가벼워서 먼지를 털어내듯 툭툭 털어버릴 수 있는 것들이지만, 가끔은 인생 전체에 영향을 줄 만큼 크고 중대한 문제를 만날 때도 있다. 그럴라치면 나는 '이건 좀 어렵겠는걸.' 하면서 쿨하게 포기하거나, 며칠 밤을 새면서 끙끙 속앓이로 몸만 축내다가 결국엔 '나에게 이러이러한 문제가 있는데...' 하는 말과 함께 전문가에게 도움을 요청하거나, 이번에는 반드시 내 손으로 해결하고야 말겠다는 강한 의지를 내보이며 열공모드에 돌입하기도 한다.

 

비교적 가벼운 문제에기는 하지만 물리학 서적이나 수학 관련 서적은 아들의 엉뚱한 질문을 잠재울 수 있는 유용한 도구로 쓰이곤 한다. 올해 중학생이 된 아들은 그 나이대 아이들과 크게 다르지 않아서 <스타워즈>나 <어벤져스>에 열광하고, 신화를 바탕으로 한 아동판타지소설로 유명한 릭 라이어던의 퍼시 잭슨 시리즈, 케인 연대기 시리즈, 매그너스 체이스 시리즈를 즐겨 읽고, 어린이 영화 시나리오 작가인 스튜어트 깁스의 책들을 좋아한다. 중학생이 되면서부터 베르나르 베르베르의 작품에 푹 빠져서 그가 쓴 모든 작품을 다 읽어치우더니 며칠 전부터는 <제3인류> 완간 기념으로 방한했던 베르나르 베르베르를 만나지 못한 것에 대해 몹시 아쉬워하고 있다.

 

아들의 이런 취향 덕분(?)에 나는 종종 곧바로 대답할 수 없는 어려운 문제에 직면하곤 한다. 아들은 간혹 내가 미처 생각지도 못했던 기상천외한 질문을 하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아비된 입장에서 아들의 질문에 대해 이렇다 저렇다 비판하거나 이런 저런 핑계를 대어 나의 무식을 변명할 수는 없지 않은가. 이러한 나의 처지를 이해했음인지 아들은 이따금 질문을 퍼붓는 대신에 자신이 읽고 싶은 책을 사달라 요구하기도 한다. 최근에도 나는 아들의 요구로 랜들 먼로가 쓴 <위험한 과학책>을 사주었었다.

 

렛 얼레인의 <괴짜 물리학>은 <위험한 과학책>의 속편쯤 되는 책이다. 미국 사우스이스턴루이지애나대학의 물리학 교수이자 '와이어드'(Wired) 최고의 과학 칼럼니스트인 저자는 이 책에서 인기 게임 '앵그리버드'를 비롯해 영화 <스타워즈>, <어벤져스> 등 일상에서 발견한 갖가지 소재에 대한 물음을 물리학적 해법으로 답하고 있다. <위험한 과학책>과 다른 게 있다면 저자는 각각의 질문에 대하여 적당한 가정을 세운 후 구체적으로 계산했다는 점일 것이다.

 

"데스 스타의 지름이 160km라면 알데란Alderan(무장하지 않은 평화로운 행성)을 파괴하는 장면에서 광선의 속도를 대략 추측해볼 수 있습니다. 데스 스타에서 발사되는 광선은 두 가지로, 각각 속도가 다릅니다. 우선 데스 스타 위에 있는 엄청난 크기의 원에서 뭔가가 발사되어 나옵니다. 그리고 이것들이 합쳐지면서 하나의 거대한 빛줄기를 이루죠. 간단히 분석해보면 첫 단계에서 빛의 속도는 600km/s이고, 합쳐진 후 빛줄기의 속도는 1,000km/s가 됩니다. 두 가지 수치 모두 데스 스타만 나오는 장면을 보고 계산했습니다. 그런데 이상한 점이 있습니다. 다음 장면에서 그 빛줄기는 알데란을 향해서 이동합니다. 이 빛줄기가 알데란에 도달하는 데 걸리는 시간은 약 0.2초입니다. 빛줄기의 속도가 일정하다면 알데란과 데스 스타 사이의 거리는 196km에 불과합니다. 알데란의 크기는 불확실하지만 국제우주정거장은 지구 표면에서 약 300km 떨어져 있죠. 그렇다면……." (p.162)

 

총 10장으로 구성된 이 책에서 저자는 일상의 사소한 궁금증에서부터 영화나 게임에서의 궁금증, 나아가 광대한 우주의 비밀에 이르기까지 우리가 상상할 수 있는 별난 호기심에 대한 물리학적 답변을 쉽고 재미있게 제시한다. '인구가 많아지면 지구가 달을 끌어당길까?', 캡틴 아메리카의 방패는 얼마나 무거울까?', '자동차를 움직이려면 비가 얼마나 내려야 할까?', '블래스터 광선은 레이저일까?', '자판을 두드려서 휴대폰을 충전할 수 있을까?', '번개를 이용해 시간 여행을 할 수 있을까?' 등 남들이 들으면 별 이상한 놈도 다 있다고 생각할 수 있는 별별 질문들을 저자는 진지하게 답변하고 있는 것이다. 쉽게 대답할 수 있는 문제라면 그건 상식일 뿐이지 과학이라고 말하기에는 좀...

 

아들과 나는 이 책을 함께 읽었다. 수학 기호나 물리 공식, 물리 용어 등 아들이 이 책을 읽기에는 다소 어려운 점이 많았으나 영화 <스타워즈>를 좋아하는 것만으로도 아들은 이 책이 퍽이나 맘에 들었던 모양이다. 책을 읽는 중간에 낄낄대며 웃던 아들의 모습이 지금도 선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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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자 실시간 검색어 순위에서 하루 종일 사라지지 않았던 윤모 전 청와대 대변인의 이름이 사람들의 궁금증을 자아냈나 봅니다. 꽤나 오래전의 일이라 기억에서도 가물가물 합니다만 현 정부의 초기에 발생했던 그 분의 미국 내 성희롱 사건은 그 분 특유의 느린 말투와 논리적이지 못한 해명으로 인해 국민들의 공분을 샀었던 듯합니다. 그후 성희롱 하면 으레 그 분의 얼굴이 떠올랐고 그 분은 마치 성희롱의 대명사처럼 대우(?)를 받았지요. "허리를 툭 한 차례 치면서 '앞으로 잘 해. 미국에서 열심히 살고 성공해.' 이렇게 말한 게 전부였다."라고 했던 액센트 없는 그 분 특유의 말투는 사람들의 뇌리에서 쉽게 사라지지 않았던 듯합니다.

 

해당 사건의 공소시효가 만료됨과 동시에 그 분은 그동안 폐쇄되었던 자신의 블로그에 장문의 글을 올렸더군요. 그는 자신의 글에서 가족, 특히나 그의 아내가 어떤 고통 속에서 살아왔는지 상세하게 기록하였고, 자신의 억울함을 호소하는 내용과 더불어 언론에 대한 불만도 쏟아내고 있었습니다. 사건이 발생한 지 근 3년 5개월만이라는군요. 길다면 길고 짧다면 짧은 세월이겠습니다만 그동안 본인으로 인해 그의 가족들이 겪었을 심적 고통이나 정신적 충격을 생각할 때 같은 인간으로서 딱하다는 생각이 들었던 건 사실입니다. 자신의 죄에 대해 진심으로 반성하거나 자숙하지 못하고 죄가 없다는 식으로 본인과 자신의 가족에 대한 억울함만을 말하는 건 견강부회라고 일갈하는 분들도 꽤나 많았지만 말입니다.

 

여성에 대한 범죄가 유난히 많았던 요즘, 자신의 공소시효가 끝났다고 곧바로 글을 올렸던 건, 글쎄요, 저로서는 이해가 되지 않는 일이었습니다. 전라남도 섬마을에서 있었던 여교사 성폭행 사건이며, 강남역 화장실 살인 사건 등 대한민국 남성으로서 부끄러움을 금치 못할 이 시기에 성희롱과 관련된 자신의 사건을 억울하다고 하는 건 좀...

 

이 모든 일들이 모두 의도된 것이라고는 보기 어렵겠습니다만 이 나라의 교육과 윤리의식, 경제와 효용만 중시하는 천민자본주의 논리는 반드시 짚고 넘어가야 할 부분이 아닐까 싶습니다. 언제부턴가 우리는 약자에 대한 배려도, 불의에 대한 저항도 없이 그저 제 한 몸 지키는 일에만 급급했던 게 아닌가 반성하게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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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프리쿠키 2016-06-07 17:5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꼼쥐님 글~너무 멋집니다.!!

꼼쥐 2016-06-08 19:30   좋아요 0 | URL
감사합니다~~^^ 오늘 날씨도 덥고 일에 지쳐 기운이 없었는데 북프리쿠키 님의 친찬 덕분에 힘이 나네요.

2016-06-08 22:03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6-06-10 10:54   URL
비밀 댓글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