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신을 만나서 참 좋았다 - 20년간 생명의 목소리를 들어온 의사가 전하는 진료실 에세이
김남규 지음 / 이지북 / 2016년 5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자신이 하는 일에 대해 사명감을 갖고 최선을 다하는 사람을 보면 존경심을 넘어 경외감마저 느낄 때가 있다. 어렸을 때는 미처 알아보지 못하던 것이다. 직업에 귀천이 따로 있을까마는 어려서는 보기에 근사한 일, 월급을 많이 받는 일, 다른 사람으로부터 대우를 받는 일 등을 직업 선택의 조건으로 삼아 선호했었다. 그러나 사회구성원의 한 사람으로 부대끼며 살다보면 그딴게 그닥 중요하지 않다는 걸 스스로 깨닫게 된다. 그보다는 오히려 하루하루를 어떤 마음으로 사는지, 밖에서보다는 가족 구성원으로부터 얼마나 많은 사랑과 존경을 받으며 살고 있는지 등 우리가 흔히 말하는 자신의 삶을 어떤 방식으로 알차게 꾸려 나가고 있는가 하는 문제가 더욱 중요해진다. 그러므로 자신이 하는 일에 사명감을 갖는 일과 그것을 잊지 않기 위해 노력하는 일은 후회하지 않는 삶을 살기 위한 중요한 밑거름이 될지도 모른다.

 

"그러나 내게 환자를 직접 관찰하는 시간은 상대를 살아 있는 생명체이자 인격체로 인식하기 위한 하나의 의식과도 같다. 쿵쿵 뛰는 심장 소리와 호흡음은 생명의 신호이다. 호흡을 통해서 산소가 들어와 피가 돌고, 피가 조직에 산소를 보내서 각 기관이 제 기능을 한다. 이런 과정을 느끼는 나만의 이 의식은 생명에 대한 경외심을 잃지 않기 위해 나날이 행하는 중요한 예식이다." (p.51~p.52)

 

세브란스 병원 외과부장이자 연세대학교 주임교수로 있는 김남규 박사의 책 <당신을 만나서 참 좋았다>를 읽었다. 대장암 분야 최고의 의사로도 선정된 바 있는 저자는 단지 기술자로서의 의사가 아니라 생명을 다루는 참인간으로서의 의사는 이런 것이다 하는, 의사로서 그가 추구하는 면모를 책에서 잘 보여주고 있다. 지난 수년간 '진료실에서 부친 편지'라는 제목으로 웹사이트 유어스테이지yourstage에 기고했던 칼럼과 개인적으로 쓴 글을 모아서 엮었다는 이 책은 삶과 죽음을 통하여 우리가 깨달아야 하는 인생의 가치를 하나 둘 기억하게 한다.

 

"가끔씩 나는 지식과 경험, 기술을 파는 사람에 불과한 것이 아닌가 하는 자괴감에 빠져들곤 한다. 매일 힘들어하는 환자들을 보다 보니 측은한 마음이 드는 대신 가끔 귀찮기도 하고 공감하는 것 자체를 거부하고 싶을 때가 있어 힘들다. 진정한 의술, 인술은 옆에서 같이 아파하고 기도하는 마음이 아닐까." (p.91)

 

저자는 이 책에서 그동안 자신이 만났던 수많은 인연들, 이를테면 그가 만났던 환자들, 동료들, 선후배, 가족으로부터 깨달았던 것들, 돈으로 환산할 수 없는 그 많은 경험들에 대해 쓰고 있다. 따지고 보면 삶이란 제 한몸 건사하는 것에 지나지 않는다. 자신의 몸이 아프거나 제대로 기능을 하지 못하면 온전한 삶이라고 말하기 어려워진다. 그런 까닭에 의사는 타인의 건강뿐만 아니라 환자의 삶까지 돌보는 사람일 터, 삶의 이치를 끝없이 터득하지 않으면 제대로 된 의사 노릇을 하기는 어려울 것이다.

 

"늘 삶과 죽음의 경계를 지켜보는 한 사람의 의료인으로서 위태로운 마음을 잘 붙잡을 수 있기를 기도해본다. 그러기 위해서는 나 역시 내게 예정된 시간을 의식하고 늘 깨어 있어야 하는 것이 아닌가 생각해본다." (p.197)

6월도 이제 하순을 향해 가고 있다. 섭씨 30도를 넘나들었던 더위와 연일 시야를 흐리던 미세먼지로 인해 꽤나 힘들었던 시간이었다. 그러나 여전히 삶은 지속되고 가까운 시일에는 장마와 무더위가 기다리고 있을 테지만 사랑하는 사람이 곁에 있는 한 우리는 어떤 어려움도 거뜬히 헤쳐나갈 수 있을 것이다. 책에 실린 저자의 '아들에게 보내는 편지' 다섯 꼭지가 이채로웠다. 한 사람의 가장으로서, 아빠로서 그는 열심히 살아가고 있는 듯했다. 오늘도 날이 덥다. 내가 살았던 하루하루의 시간들이 다양한 색깔들로 채색되어 언젠가 내 삶의 그림으로 나타날 테지만 그 의미를 이해하기에는 나는 여전히 미욱하기만 하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2)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점심을 먹고 가까운 공원을 가볍게 산책하는데 공원 한켠에 걸린 낯선 현수막을 보게 되었다. 근처를 오가면서 한번도 보지 못했던(어쩌면 관심이 없어서 보이지 않았을지도 모르지만) 이상한 풍경이었다. 그 현수막에는 다음과 같은 문구가 쓰여 있었다.

 

비둘기로 인하여 누군가는 괴로워하고 있습니다.

비둘기에게 먹이를 주지 마세요.

00구청 농축산경제과

 

현수막 옆에서는 한 무리의 비둘기떼가 한가로이 먹이활동을 하고 있었다. 비둘기들이 현수막의 글자를 읽을 수 있었더라면 얼마나 황당했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사람들이 자신들을 마치 공공의 적인 양 취급한다는 사실을 깨닫고 그들의 반응은 어떠했을까. 왠지 나는 미안한 마음이 들었다. 그 옆에 다음과 같은 문구가 쓰인 현수막이 한 장 더 걸려 있었다.

 

개 소유자는 페티켓을 지켜주세요.

공공장소에서 공공장소에서 목줄을 꼭 착용하고 배설물을 반드시 수해주세요.

00구청

 

어젯밤에는 늦은 시각에 귀가하였는데 아파트 앞에서 묘한 풍경과 맞딱뜨렸다. 부부로 보이는 남자와 여자가 밤산책을 나온 듯했는데 여자의 손에는 어린 푸들의 목줄이 쥐어 있었다. 푸들은 여자의 발치에 붙박인 듯 서서 주인의 얼굴만 빤히 쳐다보며 연신 꼬리를 흔들고, 앞서 갔던 남자가 빨리 오라며 보채자 여자는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한 채 있다가 어쩔 수 없다는 듯 강아지의 목줄을 잡아채며 가자고 얼렀지만 제 주인의 사정을 아는지 모르는지 강아지는 도통 움직일 의사가 없는 것처럼 보였었다. 그렇게 한참을 실랑이하던 여자는 남자의 재촉 때문이었는지 아니면 다른 이유가 있었는지 얼른 강아지의 몸통을 낚아채어 가슴에 안고는 남자를 따라 어둠 속으로 총총히 사라졌다.

 

강아지는 아마도 제 주인의 명령을 따르지 않고 조금만 버티면 주인이 알아서 자신을 안고 갈 거라는 사실을 너무도 잘 알고 있었을 것이다. 목 마른 놈이 우물 파라는 식으로 강아지는 제 주인을 길들이고 있었던 것이다. 딱하게도 사람이 강아지를 키우는 게 아니라 개가 사람을 키우는 듯한 모습이었다. 애견 인구 천만 시대라는데 내가 오르는 등산로에는 오늘 아침에도 개의 배설물로 몸살을 앓았다.


댓글(2) 먼댓글(0) 좋아요(1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북프리쿠키 2016-06-17 15:1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꼼쥐님의 일상 들여다보기 능력은 탁월하신 듯 합니다!!

꼼쥐 2016-06-18 17:31   좋아요 0 | URL
그렇게 봐주셔서 고맙습니다. ^^
괜히 부끄럽네요~~
 
테러리스트의 아들 - 나의 선택 테드북스 TED Books 1
잭 이브라힘.제프 자일스 지음, 노승영 옮김 / 문학동네 / 2015년 10월
평점 :
절판


2001년 9·11 테러 이후 우리가 가장 흔하게 들었던 말은 '테러와의 전쟁'이 아닐까 싶다. 그 당시만 하더라도 전 세계 사람들은 그 끔찍한 사건에 경악했고, 놀람이 채 가라앉기도 전에 '테러와의 전쟁'을 선포한 조지 부시 미국 대통령을 적극적으로 지지했다. 그리고 사람들은 미국을 중심으로 전 세계가 지지하는 '테러와의 전쟁'은 가까운 시일 내에 큰 성공을 거둘 것이고, 테러의 공포로부터 벗어난 평화의 시대가 도래할 것이라고 굳게 믿었다. 그러나 15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테러는 수그러들지 않은 채 계속되고 있고, 테러에 대한 공포도 여전하기만 하다.

 

얼마 전에 우연히 보았던 텔레비전 뉴스는 깜작 놀랄 만한 소식을 전하고 있었다. 만수르가 미군 드론의 폭격을 받아 사망했다는 얘기였다. 이럴수가! 내가 알던 만수르는 단 한 사람, 언젠가 텔레비전 개그 프로그램에도 등장했던 중동의 부호이자 아랍에미리트의 왕족인 만수르(본명은 잘 모르겠다)였던 까닭에 미군이 왜 갑자기 만수르를 살해했을까? 궁금했던 것이다. 그러나 그것은 완전한 나의 착각에 불과했을 뿐 만수르는 내가 알던 그 만수르가 아닌, 아프가니스탄에서 활동하는 무장단체 탈레반의 최고지도자인 아흐타르 만수르였다. 만수르라는 인물에 대해 조금 더 찾아본 바에 따르면 그는 10대 때부터 이슬람 저항 운동에 투신해 1987년 교전 중 13군데에 부상을 입었고, 1994년 출범한 탈레반의 창립 멤버로 오사마 빈라덴과도 친분이 있었다고 한다. 2015년 6월 전임자였던 무하마드 오마르에 이어 탈레반의 최고지도자 자리에 오른 그는 알자지라가 공개한 첫 연설에서 "우리의 목표는 이슬람법과 시스템을 구축하는 것이고 이를 위해서는 지하드(성전.聖戰)를 계속해야 한다."며 단합을 강조했다고 한다.

 

이것만 보더라도 지구상에서 테러가 사라질 가능성은 전무한 듯 보인다. 지금도 자행되는 이슬람국가 IS의 무자비한 만행과 그로 인해 발생한 수많은 난민, 그들의 만행에 대한 보복 차원에서 이루어지는 미국과 유럽의 대대적인 폭격, 그 와중에 희생된 사람들과 쌓여가는 분노... 언젠가 읽었던 후지와라 신야의 책에서도 그런 비슷한 이야기가 쓰여 있었다. 바위 투성이의 척박한 땅에서 만난 이란인의 모습은 누구나 할 것 없이 분노에 차 있는 듯 보였다고 그는 썼다. 분노는 결국 테러의 원동력으로 쓰일 터였다. 결국 테러를 지속시키는 악순환의 고리는 튼튼하게 유지되고 있는 셈이었다.

 

그러나 학습된 폭력과 피로 연결된 테러와의 연계성에도 불구하고 평화를 위해, 폭력의 종식을 위해 힘쓰는 사람이 있다. <테러리스트의 아들>로 잘 알려진 잭 이브라힘이 바로 그 사람이다. 그의 아버지 엘사이드 노사이르는 호전적 랍비이자 유대방위연맹 창립자인 메이르 카하네를 암살하고, 1993년에 있었던 미국 뉴욕의 세계 무역 센터 폭탄 테러 사건을 감옥에서 모의한 인물이었다. 잭은 테러리스트였던 자신의 아버지로 인해 그의 가족이 겪었던 고통과 자신의 비극적인 삶을 테드(TED) 강연장에서 담담하게 발표하였고, 그의 이야기는 책으로도 출판되었다.

 

"우리는 늘 위험한 환경에서 살았다. 근처에는 무슬림 가정이 하나도 없었다. 나는 학교에서 폭력에 시달렸다. 다르다는 이유로, 말이 없다는 이유로 얻어맞았다. 어머니는 길거리에서 조롱당했다. 머리쓰개와 베일을 썼다는이유로 유령이나 닌자로 불렸다. 안정적인 것은 아무것도 없었다. 언제나 누군가 우리의 정체를 알아냈다. 우리가 노사이르 가족이라는 소문이 퍼졌다. 두려움과 굴욕감이 다시 찾아왔고 우리는 또 이사했다." (p.73)

 

살아갈 길이 막막해진 잭의 어머니는 잭과 그의 누나와 여동생을 데리고 아이가 셋 있는 무슬림 남자와 재혼했다. 말하자면 잭의 계부였던 그 남자 또한 잭과 그의 어머니에게 무자비한 폭력을 행사했고 이곳 저곳을 떠돌며 힘겨운 생활을 이어갔다. 우연히 사귄 친구가 자신이 그토록 경멸하던 유대인임을 알게 된 후 그는 비로소 자신의 편견으로부터 벗어나 새로운 삶을 살아가게 된다. 테러리스트의 아들 압둘라지즈에서 평화의 메신저 잭 이브라힘으로 새로 태어난 것이다.

 

"어느 날 밤, 코뿔소 랠리 복장을 한 채 집에 돌아와 어머니에게 이렇게 말했다. 아버지와 아메드가 뭐라고 하든 세상을 믿어보겠다고. 어머니는 사람들에 대해 한 번도 험담을 늘어놓지 않았지만 나보다 더 큰 독단에 사로잡혀 있었다. 이날 어머니가 해준 말은 나의 남은 인생을 건설하는 토대가 되었다. "사람들을 증오하는 것에 신물이 나는구나."" (p.118)

 

나는 '사람들을 증오하는 것에 신물이 난다'는 저자 어머니의 말에 강한 인상을 받았다. '그럴 수 있겠구나' 싶었다. 미국에서 태어나 줄곧 카톨릭으로 살았던 그녀가 어느 날 이슬람교로 개종을 하고 무슬림 남편을 만나 결혼하고 아이들을 낳은 후 평생 행복이라곤 모르고 살았던 한 여인의 삶이 오죽했을까 싶었다. 내가 이렇게 공감할 수 있는 것과는 달리 저자는 '아무도 나에게 공감이 무엇인지, 왜 공감이 권력이나 애국심이나 신앙보다 중요한지 알려준 적 없다'고 하면서 '내가 당한 짓을 남들에게 할 수 없다는 사실'을 깨달았다고 말한다.

 

"하지만 나의 세계를 정의하는 것은 가족과 친구에 대한 사랑, 우리 모두가 서로에게 또한 다음 세대에게 더 잘해주어야 한다는 도덕적 확신, 아버지가 끼친 피해의 일부를 사소하나마 힘닿는 데까지 보상하려는 욕구다." (p.126)

 

차곡차곡 쌓인 분노를 폭력이 아닌 다른 방법으로 해소한다는 것이 어디 그리 호락호락한 일이던가. 저자가 말했듯 그것은 단지 폭력과 평화 중 하나를 선택하는 문제이지만 폭력은 또 다른 폭력을 낳는다는 것을 뻔히 알면서도 우리는 습관적으로 폭력을 선택하곤 한다. 게다가 테러리스트의 아들이라는 자신의 신분을 노출시킴으로써 암살의 표적이 될 수도 있는 잠재적 위험성을 뻔히 알고 있었을 텐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대중 강연을 결심했다는 것은 보통 사람의 용기는 아닌 듯싶다. 누적된 분노를 테러라는 극단적인 방법을 동원하여 해소한다는 것은 어쩌면 용기의 부재에서 비롯된 비겁의 상징이 아닐까 싶다. "저는 제 아버지가 아닙니다.(I am not my father.)"라는 말로 끝을 맺었던 잭의 연설이 아직도 귀에 쟁쟁하다. 그것은 어쩌면 흔들리지 않겠다는 그의 다짐이었는지도 모르겠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4)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지금은 그쳤지만 아침에는 비가 살짝 내렸습니다. 돌풍과 벼락이 동반된 요란한 비가 올 것이라는 기상청 예보가 있었는데 그러기 위해서는 사전에 준비운동이 필요하다는 듯 가는 비가 조용히 내렸지요. 이제 본격적인 장마철로 접어든 느낌입니다. 한낮인데도 우중충하니 어둡습니다.

 

요즘 뉴스를 보면 대한민국은 갈수록 '부패공화국'으로 탈바꿈하는 게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곤 합니다. 정운호 리퍼블릭 대표의 법조계 로비를 비롯하여 전 정권에서 있었던 롯데 특혜 의혹 및 수조 원의 세금이 투입된 대우조선해양의 착복에 가까운 비리 등 나라가 도대체 어디로 가고 있는지 의심이 들 정도입니다.

 

어제 뉴스를 잠깐 보는데 회사를 살리라고 대우조선해양에 투입된 수조 원의 돈이 마치 쌈짓돈인 양 멋대로 쓰였더군요. 하는 일이 특별히 없는 이들이 '고문' 타이틀을 달고 수백만 원의 월급은 물론 의료비와 자녀 학자금 그리고 고급 차량에 이르기까지 물 쓰듯 쓰였나 봅니다. 대우조선해양의 비상근임원을 지낸 67명 중에는 정치인, 전직 국정원 간부,수출입 은행과 산업은행 임원 출신, 전직 방위사업청장 등 군 장성 출신뿐만 아니라 이명박 전 대통령 후보 시절 특보 함모 씨와 사진사도 포함되었다고 하니 참 어처구니가 없었습니다. 꼼꼼하신 각하께서 자신을 도와준 사람들을 잊지 않고 자신의 돈이 아닌 국민의 세금으로 의리(?)를 지킨 셈이었죠.

 

이런 뉴스를 보면 피가 거꾸로 솟고 화가 솟구치나요? 그럴 필요 없습니다. 건강에 좋지 않아요. 앞으로 이런 뉴스는 수도 없이 볼 테니까요. 제가 이 글을 쓴 이유는 화를 돋구려는 게 아니라 이와 같은 특권층의 비리가 만연하는 이유가 도대체 뭘까? 하는 것입니다. 저의 주제넘은 생각이지만 고용율 추락과 비정규직의 증가가 상당한 역할을 하지 않았나 싶습니다. 알짜배기 직업이 줄어든다는 건 우리와 같은 서민들뿐만 아니라 부자와 권력층에게도 꽤나 큰 불안 요인으로 작용했을 테니까요. 앞으로는 더 그렇겠지만 그 알짜배기 직업을 차지하기 위해서는 개인의 노오오력보다는 권력층에게 줄을 대는 편이 훨씬 빠를 뿐만 아니라 효과도 클 것입니다. 이미 뉴스에서 본 것처럼 말입니다.

 

그러므로 저는 부모가 돈이 있다면 공부하라고 자식을 닥달할 게 아니라 돈을 이용하여 권력층에게 줄을 대는 게 자식을 위한 길이 되지 않을까 싶습니다. 비례대표로 당선된 국민의당 김수민 의원만 보더라도 그녀의 부모는 얼마나 똑똑했던 것인지요. 사실 말이 나왔으니 말이지만 국회의원만 한 알짜배기 직업이 어디 있겠습니까. 과한 돈을 쓰더라도 제 자식이 그 직업을 가질 수만 있다면 하나 아까울 게 없지요.

 

날이 여전히 어둡고 우중충합니다. 본격적인 비는 아직 내리지 않구요. 이제 점심을 먹으러 나가봐야 할 것 같습니다.


댓글(2) 먼댓글(0) 좋아요(1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2016-06-15 18:10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6-06-16 16:03   URL
비밀 댓글입니다.
 
여자는 허벅지 다나베 세이코 에세이 선집 1
다나베 세이코 지음, 조찬희 옮김 / 바다출판사 / 2016년 3월
평점 :
절판


'호박씨를 깐다'는 말을 들어본 적 있는지. 그닥 좋은 의미로 쓰이는 말은 아닌 까닭에 못 들어봤을 수도 있겠다. 앞에서는 시치미 뚝 떼고 조신한 척 하면서 뒤로는 딴 짓거리를 한다는 뜻의 이 말은 '간통'이 불법이었던 시절의 밤문화와 밀접한 연관성이 있었던 듯하다. 그렇다고 지금은 '간통'이 합법화 되었다는 건 아니지만 법으로 제재를 가하기보다는 개인의 성적 자기 결정권을 온전히 각자의 도덕적 판단에 맡기겠다는 뜻이니 국민의 교육이나 의식 수준이 그만큼 높아졌음을 의미하는 것일 수도 있겠다. 헌법재판소가 내린 '간통법 폐지'의 사유에 있어서도 '혼인과 가정의 유지는 당사자의 자유로운 의지와 애정에 맡겨야 한다.'고 밝힘으로써 이런 점을 간접적으로 밝히고 있다. 그러나 그동안 말도 많고 탈도 많았던 간통법이 폐지되었다고 하여 국민 개개인의 교육수준과 도덕성이 함께 좋아졌다고는 볼 수는 없을 것이다. 오히려 양자 간에는 정의 상관관계가 아니라 부의 상관관계가 있는 것은 아닌지 의심하는 사람도 더러 있고 말이다.

 

우리나라에 비해 성적으로 개방된 듯 보이는 일본도 매춘이 합법화된 것은 아니지만 출판이나 영상매체에서의 성적인 묘사는 우리나라에 비해 확실히 자유로운 듯 보인다. 달리 말하면 이것은 법적으로 규제할 것은 규제하지만 실현 불가능한 엄격한 법률을 만드는 것이 아니라 최소한의 선을 긋고 그 안에서는 대부분 허용한다는 의미로 받아들여지고 있다. 일본의 성문화가 이렇다 보니 작가들의 성적 담론도 거침이 없다. 남에게 피해를 주지 않으려고 실생활에서 극도로 절제하는 일본인의 스트레스가 돌파구를 찾지 못하고 헤매다가 성적인 방면으로 분출되는 게 아닐까 하는 엉뚱한 생각이 들기도 하지만 말이다.

 

다나베 세이코의 에세이 <여자는 허벅지>는 제목만큼이나 여성의 성에 대한 도발적인 내용을 담은 책이다. 여자가 말하는 여성의 성 담론은 자칫 딱딱하고 이론적이어서 재미가 없거나 지나치게 낭만적으로 흘러 공감하기 어렵다는 말을 들을 수도 있다. 그러나 연애소설로는 일가견이 있는 작가의 노련함은 이 책에서도 십분 발휘되어 솔직하면서도 불쾌하지 않고, 지적이면서도 유머와 재치가 넘친다. 1971년부터 1990년까지 주간지 '슈칸분슌(週間文春)'에 연재한 칼럼 중 일부를 묶었다는 이 책은 그동안 흘러간 세월과 함께 시대에 뒤떨어진 한물간 이야기로 넘쳐날 것 같지만 천만에 말씀이다.

 

"여자는 자신의 성욕을 충족시키기 위해 '~의 부인'이라 불리고 싶어 한다. '~의 부인'이라 불러 주었을 때 여자는 비로소 꽃이 된다. 이것은 단순히 '이제는 매일 남자랑 잘 수 있겠다'라는 즉물적이고 쩨쩨한 이유 때문만은 아니다. 남자의 성욕은 한순간 발산하면 그것으로 끝이 나지만, 여자의 그것은 느리고 느긋하고 지긋하며 길고 천천히 피어난다. 다시 말해 남편을 두고 아이를 낳아 키워 세상에 내보내는 그 모든 행위가 성욕인 것이다." (p.37)

 

작가는 자신의 일방적인 이야기로 인해 책을 읽는 독자가 자칫 흥미를 잃지나 않을까, 우려하여 '가모카 아저씨'라는 가상의 인물을 등장시킨다. 이를테면 '가모카 아저씨'는 작가의 이야기 파트너인 동시에 가장 보편적이면서도 평범한 중년 남성의 이미지를 재현함으로써 때로는 작가로부터 심한(?) 공격을 받기도 하고 찌질한 모습 때문에 남성 독자의 동정(?)을 받기도 하지만 무엇보다도 책을 읽는 재미와 함께 남성과 여성의 차이를 이해하는 데 도움을 준다.

 

"가모카 아저씨한테 시험해보자. "이 세상에 명기란 것이 정말 있다고 생각하세요? 아니면 여자가 진심으로 사랑해 몸과 마음 할 것 없이 모든 것을 불태울 때 누구나 명기가 될 수 있다고 생각하세요?" "당연히 어떤 여자든 자신을 불태우면 명기가 될 수 있겠죠." 이것으로 아저씨는 여자 경험이 빈약하다는 걸로 판명되었다." (p.151)

 

두 사람의 성 담론은 성욕, 월경, 바람기, 정관수술, 체위, 불륜 등 다방면으로 펼쳐지지만 단순히 재미와 호기심의 충족에 그치는 것만은 아니다. 말하자면 이 책은 성과 관련된 인생론이라고 말해도 좋을 정도로 이제 막 성에 눈을 뜨기 시작하는 사춘기 시절에서부터 '침소 사퇴식'을 해야 하는 노년에 이르기까지의 다양한 인생 경험을 남성과 여성의 입장에서 다룸으로써 자칫 삼류 외설 문학으로 흐를 수도 있는 여지를 엄격히 차단하고 있다. 일본의 에세이스트 사카이 준코는 이 책의 해설 '어차피 쓸 거라면 다나베 시이코 씨처럼'에서 이렇게 쓰고 있다.

 

"우리는 이 에세이를 통해 '남자와 여자는 서로를 영원히 이해할 수 없는 존재'라는 사실을 재확인합니다. 하지만 상대방을 이해할 수 없기 때문에, 그래서 서로 이해하려고 노력하고 있기 때문에 비로소 생겨나는 묘미에 대해서도 알게 됩니다. 이렇게 긴 음담패설을 읽고 났는데도 기분이 상쾌한 것은 남성을 무참히 때려눕히기보다 우열을 가리지 않은 채 끝맺었기 때문 아닐까요." (p.309)

 

요즘은 성희롱에 대한 처벌 수위가 한층 높아진 까닭에 어떤 자리에서건 성과 관련된 농담이 거의 사라졌지만 내가 대학을 다닐 때만 하더라도 성인 남녀가 모인 사적인 자리에서는 언제든 19금 농담이 성행했었다. 물론 때로는 듣기 거북한 농담으로 인해 어색한 분위기로 이어지는 경우도 없지 않았지만 말이다. 반면에 방송이나 공적인 자리에서는 지금보다도 더욱 엄격하게 금했었다. 돌이켜 생각해 보면 남녀 누구나 공감할 수 있는, 일정한 수위를 넘지 않는 성적 농담이나 성 담론은 경직된 분위기를 풀어주는 일종의 윤활유와 같은 게 아니었나 하는 생각이 들기도 한다. 그러나 수위 조절이라는 게 무척이나 어려워서 농담 한마디로 인생 전체를 망치는 경우도 얼마든지 있다는 게 문제라면 문제일 수 있겠다. 이 책의 재미있는 부분을 인용하기 어려운 것도 다 수위 조절을 신경쓴 탓이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7)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