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제는 대만에서 6개월, 중국(심양)에서 1년을 체류하고 며칠 전에 귀국한 지인 한 분과 점심을 같이 했습니다. 건강한 얼굴로 다시 만날 수 있었던 게 어찌나 반갑던지요. 그간에 있었던 서로의 소식을 전하며 때로는 웃고, 때로는 안타까운 마음에 혀를 차다가 이야기는 점차 아이들 교육 문제와 우리나라의 현실로 이어졌습니다. 그분이 계셨던 곳은 중국에서도 비교적 시골에 가까운, 말하자면 우리나라의 6,70년대의 모습을 간직한 작은 마을이었다고 합니다. 물론 그곳에서만 쭉 있었던 것은 아니고 도시 지역을 방문한 적도 여러 번 있었다고 하는데 중국 사람들이 한국에 대해 내리는 평가는 '북한은 미쳤고, 남한은 부패했다.'는 말 한마디였다고 합니다.

 

최근 이슈가 되고 있는 청와대 민정수석의 사례만 보더라도 대한민국은 확실히 부패공화국으로 변질되고 있는 게 맞는 듯합니다. 그러나 이러한 변화는 개인의 일탈이나 비윤리적인 어느 한 개인의 특수한 사례가 아니라는 데 문제의 심각성이 있는 게 아닌가 싶습니다. 대한민국의 전반적인 경기가 나빠지면서 위기를 느낀 대다수의 사람들 중 스스로 어떤 자구책을 강구할 수 있는 사회 지도층의 보편적인 모습이라는 것이죠.

 

한 사회가 어떤 일정한 방향으로 움직이기 위해서는 많은 것들이 필요하겠습니다만 저는 세 가지 정도로 압축하여 그분과의 대화를 이어갔습니다. 그것은 바로 법과 제도를 비롯한 사회 시스템과, 국민들의 윤리의식과, 사회 공통의 목표라고 할 수 있겠습니다. 해방 후 우리나라를 움직였던 것은 시스템이라기보다는 국민들의 윤리의식과 공통의 목표였던 듯합니다. 어쩌면 윤리의식이나 공통의 목표 없이 시스템 하나만으로 작동하는 나라는 미국이 아닐까 싶습니다. 가장 비근한 예로 미국 내에서 시스템을 움직이고 지키도록 강제하는 조직은 경찰일 텐데 시스템(법 또는 규칙)을 어기는 자는 반사회적 인물로 간주하여 어떤 윤리의식도 없이 처단한다는 것입니다. 예컨대 교통법규를 어긴 흑인을 총으로 쏘아 죽이는 것처럼 말이지요. 반면에 중국이라는 나라는 사회주의 국가임이 분명합니다. 그들에게는 공통의 목표가 있는 것이죠. 거대 중국을 움직이는 힘은 역시 통일된 목표가 아닐까 싶습니다.

 

반면에 우리의 현실은 어떻습니까. 미안한 얘기지만 대한민국에는 잘 갖추어진 시스템도, 국민들의 윤리의식도, 국가 전체의 공통된 목표도 없는 듯합니다. 한마디로 비전이 없는 것이죠. 점차 고착화되는 계급과, 윤리의식의 부재에 의한 묻지마 범죄의 증가와, 뿔뿔이 흩어진 시민의식이 작금의 우리 현실을 적나라하게 보여 주고 있다고 하겠습니다. 젊고 똑똑한 사람들이 해외 이민을 추구하는 것도 무리는 아닌 듯합니다.

 

혁신이나 개조는 조직의 수장이 보여주는 신뢰와 모범적인 행동에서 비롯됩니다. 국민들 대다수가 신뢰하지 않는 민정수석을 끝까지 지키려 하는 대통령의 모습에서 대한민국의 미래를 가늠하게 됩니다. 오늘은 모처럼 비도 내리고 오보청, 아니 기상청의 예보도 맞아 떨어진 날 이런 암울한 이야기를 꺼내서 미안하지만 검찰 조사를 받던 롯데그룹의 부회장이 자살했다는 소식 또한 부패한 대한민국의 한 단면이 아닐까 싶어서 두서도 없이 적었던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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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던 하트 - 제18회 한겨레문학상 수상작
정아은 지음 / 한겨레출판 / 2013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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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판절판


'인생이란 제멋대로 뻗은 나뭇가지처럼 각자가 생각하는 저마다의 셈법이 다 달라서 사는 동안 자신이 원하는 삶을 살아갈 수는 없겠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던 건 어쩌면 날씨 탓이었는지도 모르겠습니다. 절기로 보자면 말복도 지났고 더위도 어지간히 수그러들 만한데 연일 푹푹 찌는 열기로 사람들의 화만 돋우더니 기상청 예보 또한 번번이 엇나가는 바람에 모든 비난의 화살이 기상청으로 집중되었었지요. 그러던 게 처서가 지난 밤기온은 거짓말처럼 한결 시원해졌던 것입니다. 기상청에서 근무하는 사람들이야 나름 항변할 말이 왜 없었겠습니까마는 셈법이 다른 일반 국민들과 언쟁할 필요성은 느끼지 못했겠지요. 한낮의 기온이 33도 이하로 떨어지는 시기를 예측하는 기상청 예보가 서너 번 엇나갔었고 이번 주 금요일로 다시 또 연기된 상황이지만 더위에 지친 사람들은 이제 그 말조차도 믿지 못하는가 봅니다. 그나마 다행인 것은 밤기온이 조금 떨어졌다는 것입니다. 그렇다고 해서 그동안의 갈등과 오해가 모두 풀렸다고 한다면 지나친 억측이겠지만 말입니다.

 

정아은 작가의 <모던 하트>는 셈법이 모두 제각각인 요즘 사람들의 사는 모습을 제대로 그려낸 소설입니다. 개인주의라고도 말할 수 있겠지만 어쩐지 '개인주의'라는 말 속에는 남에게 피해를 주지 않는 선에서 자신만의 독특한 라이프 스타일을 추구하는, 끈적끈적한 욕심이라곤 찾아볼 수 없는 무미건조한 사람들을 지칭하는 의미가 내포된 듯하여 나는 일부러 '셈법'이라는 말을 꺼내들었던 것입니다. 타인의 시선을 의식하지 않는 것까지야 아무래도 상관없지만 그로 인해 피해를 입는 사람이 있다면 얘기가 다르기 때문입니다. <모던 하트>의 주인공 김미연의 프로필은 다음과 같습니다. 나이는 서른일곱 ,전문대 졸업 후 프랑스 화장품 회사 인사부에서 8년 동안 재직하면서 사이버 대학을 나왔고, 서치펌 '헤드 앤 코리아'에 입사한 지 3년차의 헤드 헌터로 미혼입니다. 작가는 주인공인 김미연을 통하여 우리 사회에 만연한 학벌주의와 성 차별, 결혼을 둘러싼 여러 고민과 다양한 시각들을 파헤칩니다.

 

"결혼한 사람들은 싱글인 사람들을 만나면 자유로워서 좋겠다고 하면서도 정작 그 자유를 존중해주지는 않는다. 자기들이 선택한 삶에 따르는 무거운 짐들을 당연한 듯 나누어 들자고 한다. 그들에게 나란 존재는 남편도 없고, 자식도 없어서 시간이 넘쳐나는 인간일 뿐이다. 결혼하지 않은 상태에서 나이를 한 살 두 살 먹을수록 이 현상은 심화된다. 정작 나는 결혼하지도 않았고 자식도 없는데, 점점 다른 사람들의 자식을 돌보거나 그들의 결혼 생활에 대한 이야기를 듣는 시간이 늘어난다." (p.152)

 

소설의 내용을 요약하면 이렇습니다. 군인 출신의 보수적인 아버지와 평생을 전업주부로 살아온 어머니 사이에서 태어난 두 딸 중 장녀인 미연은 직장 근처에 있는 강남의 작은 아파트에서 독립하여 살고 있습니다. 자신이 거래처로 삼고 있는 여러 회사의 인사부로부터 오더를 받고, 그에 적당한 사람을 물색하여 의뢰한 회사에 소개하고, 최종적으로 취업이 결정되면 연봉의 일정 비율을 수수료로 받는 게 그녀와 같은 헤드헌터가 하는 일입니다. 유능한 상사인 최 팀장을 통하여 자신의 영역을 넓혀가고는 있었지만 미연에게도 여러 가지 고민이 있습니다. 가장 시급한 문제는 역시 결혼입니다. 그녀는 현재 외국계 회사에 근무하는 '태환'을 마음에 두고 있으나 일치하지 않는 여러 조건 때문에 관계의 진전을 보지 못하고 있습니다. 예컨대 육식을 배제하는 태환의 식성과 돈에는 도통 욕심이 없으면서도 까칠한 그의 성격과 전문대를 나온 그녀의 학벌은 넘을 수 없는 어떤 장애 요인이었던 것입니다. 반면에 그녀를 죽자 사자 쫓아다니는 사람도 있습니다. 동호회에서 만난 '흐물'(본명은 정경훈)은 지방대를 졸업하고 대전에서 공사를 다니는 평범한 직장인이지만 미연의 요청이 있는 날이면 만사를 제쳐두고 서울로 달려오는 열혈남입니다.

 

회사 정치에도 어둡고 눈치도 빠르지 않았던 미연은 그녀의 상사였던 최 팀장이 회사를 떠나면서부터 어려움에 봉착합니다. 그녀에게는 확실한 거래처도, 회사내에서의 확실한 보호막도 없었기 때문이지요. 삼십대 중후반의 나이에 확실한 경력이나 소득원도 없는 없는 자신이 한심스럽게 느껴집니다. 게다가 그녀 주변에는 뛰어난 정보 수집력과 인맥 동원력을 겸비한 후배들이 얼마나 많은지 그녀들을 볼 때마다 자신은 초라해 보일 수밖에 없는 것이지요. 그녀의 연애전선에도 문제가 발생합니다. 눈이 내리던 어느 겨울 날 대학로로 나오라는 태환의 제안을 거절한 채 흐물을 불러냅니다. 흐물을 만나면서도 온통 태환에 대한 생각으로 가득했던 미연은 결국 태환에게로 달려갑니다. 올 때까지 기다리겠다는 흐물의 경고를 무시한 채 말이지요. 그 날 밤 만취했던 미연은 흐물을 까맣게 잊고 태환의 집에서 하룻밤을 보냅니다. 하루가 멀다 하고 전화를 하던 흐물은 그 날 이후 그녀와의 연락을 끊었고 얼마 후 동호회의 아는 언니와 결혼한다는 소식을 듣게 됩니다.

 

"어차피 생이란 그런 것. 진행 과정에서 조금이라도 경각심이 든다면 그것은 파국이라 할 수 없으리라. 완전한 격정과 놀라운 속도, 그리고 이전의 생에서는 좀처럼 찾아보기 힘들었던 일탈이 혼연일체를 이룰 때 돌이킬 수 없는 파국은 완성된다. 원인과 과정이 선명하게 시야에 들어오는 것은, 인연이 이미 모래알처럼 손가락 사이로 빠져나간 다음, 그 순간에 할 수 있는 일은 오직 한 가지, 받아들이는 것뿐이다. 받아들이고 다시 걸어가는 것. 생에 같은 순간이 두 번 오는 것은 있을 수 없는 일이므로 파국으로 인한 교훈도 실은 불가능하다고 해야 하리라. 그러므로 누구를 원망하거나 스스로 돌아보며 후회하는 것은 가장 어리석은 후일담이다." (p.282)

 

미연이 결국 어떻게 되는지 소설은 말하지 않습니다. 다만 태환에게 달려갔던 그녀의 선택이 과연 옳았던가 하는 문제는 태환을 만나는 그녀의 태도에서 어렴풋이 짐작할 수 있습니다. 헤드 헌터는 쟁쟁한 스펙과 철저한 경력 관리를 통해 신분 상승을 노리는 많은 직장인들을 일차적으로 검증하는 직업입니다. 그들은 어쩔 수 없이 화려한 스펙과 뛰어난 능력, 외모와 학벌, 인맥과 환경 등으로 한 사람을 평가하게 되고 그것은 마치 습관처럼 굳어지게 되는 것인지도 모르겠습니다. 어려서부터 똑똑했던 그녀의 동생 세연도 비록 서울대 출신의 남자를 만나기는 했지만 고시공부를 한다는 명목으로 무위도식 하는 남편 때문에 일간지 기자로, 두 아이의 엄마로, 한 집안의 며느리로 동동거리며 살고 있습니다. 평소에 동생의 그런 모습을 영 못마땅하게 여겼었던 미연도 결국 비슷한 선택을 하고 말았던 것입니다.

 

나이가 든다는 건 오래 전에 형성했던 자신의 낡고 쓸모없는 습관을 과감히 버리고 현 시대에 맞는 새로운 습관을 받아들인다는 의미가 아닌가 봅니다. 그 낡고 쓸모없는 습관들을 신줏단지 모시듯 애지중지 하면서 자신의 보따리에 꽁꽁 숨겨두기만 할 뿐 버려지는 건 도통 없으니 말입니다. 그렇게 보따리 안에 숨겨 둔 자신의 습관들을 겨드랑이에 꼭 낀 채 평생을 살아가는 게 삶인지도 모르겠습니다. 우리 사회에서는 그걸 두고 '보수적'이라고 하던가요? 물론 대가(보수)를 받고 행동하는 사람들을 '보수적'이라고 지칭하기도 하지만 말입니다. 나이가 들면 누구나 보수적인 사람이 될 수밖에 없는 까닭도 자신의 습관 보따리를 버리지 못하기 때문은 아닌지 생각해 볼 문제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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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처서가 지나면 모기도 입이 삐뚤어진다'고 했던가요? 오늘이 처서이니 내일 아침부터는 모기에 물리지 않고 무사히 아침 산행을 할 수 있을지 지금으로서는 알 수 없지만 아무튼 그렇다는군요. 올해는 폭염과 가뭄으로 인해 모기의 개체수도 예년에 비해 현저히 떨어졌다는 뉴스 보도를 여러 번 접하기는 했었지만 제가 직접 체감할 수 있었던 것은 아닙니다. 땀에 흠뻑 젖은 몸으로 산길을 걷다 보면 극성스러운 모기떼의 공격을 피하기는 어려웠기 때문이지요. 저는 막연히 예년과 크게 다르지 않구나, 생각했을 뿐입니다. 그러나 여름내 그토록 극성을 부리던 모기도 처서가 지나고 점차 추위가 찾아 오면 나처럼 매일 아침 산을 찾는 나그네들의 혈관을 뚫고 피를 빨아먹을 만한 기력도 점차 잃게 되겠지요. 어찌 모기만 그렇겠습니까. 온 세상의 뭇 생명들이 다 그러하겠지요. 오죽하면 옛 속담에 '처서가 지나면 풀도 울며 돌아간다'고 했겠습니까.

 

어제 모 방송국의 저녁 뉴스에서는 기후 변화와 관련된 미래의 예상을 보도하더군요. 얘기인 즉 지금처럼 지구 온난화가 지속되면 2040년 이후에는 서울의 열대야가 41일 이상, 2070년 이후엔 72일 이상 이어질 거라는 암울한 전망이었습니다. 10년마다 8일씩 늘어나는 셈이지요. 지금도 죽겠다고 난리인데 생각만으로도 숨이 컥컥 막혀오지요? 그렇게 되면 일 년의 절반이 여름이 될 거라더군요.

 

저는 이따금 내 머릿속에 골수처럼 박힌 생각들을 물끄러미 바라볼 때가 있습니다. 예컨대 그 중에는 '만물의 영장은 사람'이라는 것과 같은 출처도 알 수 없는 지식이 내 머릿속에 들어와 떡하니 자리를 차지하고 있는가 하면 꼭 필요한 지식이 한 귀퉁이로 쫓겨난 것도 보게 됩니다. 때로는 한심하다는 생각마저 듭니다. 그것이 기독교적 세계관일지는 몰라도 저는 아무리 생각해도 전혀 이치에 닿지 않는 말인 듯 들립니다. 인간은 힘으로는 사자나 호랑이 등에 미칠 바가 아니고, 그렇다고 계절에 맞추어 겨울잠을 잘 수 있는 것도 아닙니다. 게다가 식물처럼 제 스스로 영양분을 만들 수 있는 것도 아닙니다. 생각을 할 수 있다는 걸 빼면 도무지 내세울 게 없는 동물이지요. 어쩌면 인간은 자연 속에서 아주 작디 작은 미물에 불과할지도 모릅니다. 그러나 '만물의 영장이 사람'이라는 오만한 발상으로 자연을 무차별적으로 파괴하는 것으로도 모자라 자연을 정복하고 지배하려는 욕심에 이르게 된 지금, 자연을 경외하는 모습은 온 데 간 데 없이 사라졌습니다.

 

마트에 나가 보니 폭염으로 채소와 과일값이 껑충 뛰었더군요. 폭염 피해는 수산물도 예외가 아닌 모양입니다. 양식을 하는 전복, 우럭, 넙치 등이 가두리 양식장의 수온이 높아지면서 대부분 폐사했다더군요. 이런 환경에서 인간인들 성할 리 없겠지요. 더위도 물러간다는 처서, 밤의 더위는 한결 누그러진 듯하지만 낮의 기온은 여전히 30도를 웃돌고 더위에 지친 사람들의 푸념이 오늘도 이어집니다. 우리가 자연을 경외하고 두려워하지 않는 한 인간은 고통을 통하여 그 사실을 깨닫게 되겠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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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과는 잘해요 죄 3부작
이기호 지음 / 현대문학 / 2009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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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명코 처음 읽는 책인데 왠지 모르게 여러모로 기시감이 느껴지는 소설이 있다. 그 이유를 콕 집어 설명할 수는 없다. 그렇지만 왠지 모르게 낯이 익은 것이다. 이기호의 소설 <사과는 잘해요>도 그랬다. 문체와 구성은 확연히 다르지만 소설의 분위기가 박민규의 소설을 연상시키기도 했고, 소설의 주인공이 무엇인가를 대행한다는 점에서 텐도 아라타의 소설 <애도하는 사람>을 떠올리게도 했다.

 

소설에 나오는 시봉과 '나'(진만)의 이야기는 이랬다. 아버지에 의해 시설에 맞겨진 '나'와 택시를 타고 가다가 사고를 당해 부모님을 동시에 잃고 그때의 충격으로 차만 타면 바지에 대변을 보는 바람에 시설에 맞겨진 시봉은 그곳을 관리하는 2명의 복지사들로부터 수시로 폭행을 당하거나 원장에게 끌려가 성추행을 당하기도 한다. 아침 저녁으로 꼬박꼬박 네 알의 알약을 먹었고 나머지 시간에는 양말을 포장하거나 비누에 사진을 붙이는 일을 하면서 보냈다. 상습적인 폭력에 길들여진 시봉과 '나'는 폭력에 앞서 '네가 뭘 잘못했는지 아느냐'고 묻는 복지사들의 질문에 대답하기 위해 일부러 죄를 만들거나 하지도 않은 죄를 미리 고백하기도 한다. 어쨌든 그들은 자신에게 쏟아지는 매를 줄이기 위해 짓지도 않은 죄의 고백과 사과가 필요했던 것이다. 폭력은 그렇게 일상화되고 그들의 영혼을 야금야금 갉아먹었다.

 

"우리는 꼭 고백한 대로만, 꼭 그만큼의 죄만 지었다. 그래야 마음이 놓였고, 잠도 잘 왔다. 깜빡 잊고 그날 치의 죄를 짓지 않고 잠자리에 누운 날엔, 다시 방문을 두들겨 복지사들을 깨우기도 했다. 복지사들은 대개 방문을 열자마자 우리에게 발길질부터 해댔지만, 그래도 시봉과 나는 참고 끝까지 죄를 지었다." (p.30)

 

시설에 원생들이 늘어나자 복지사들은 원생들의 죄를 묻고 사과하는 일을 시봉과 '내'가 대신하도록 한다. 얼떨결에 반장이 된 '나'와 시봉은 원생들의 죄를 묻고 죄에 대해 사과하고 매를 맞기도 한다. 적어도 시설에 구레나룻 아저씨가 들어오기 전까지는 그랬다. 자신은 납치된 채로 강제 입원이 되었다고 말하는 구레나룻 아저씨는 매일 밤마다 도와달라는 말을 종잇조각에 적어 담장 밖으로 던졌다. 이를 보다 못한 '나'와 시봉은 구레나룻 아저씨를 돕기 시작했고, 그들이 메모를 적기 시작한 지 한 달째 되는 날 경찰과 공무원들, 방송사 기자들이 시설로 들이닥쳤다. 원장과 복지사들, 총무과장과 식당 아줌마까지 경찰에 의해 연행되었고 시설은 폐쇄되었다.

 

갈 곳이 없었던 '나'는 시봉과 함께 시봉의 동생 시연이 사는 임대아파트로 가게 된다. 매춘부로 사는 시연과 그녀의 동거남인 '뿔테 안경' 그리고 '나'와 시봉의 어처구니 없는 동거가 시작된 것이다. 경마로 재산을 탕진한 채 특별한 직업도 없이 시연에게 얹혀 살았던 '뿔테 안경'은 '나'와 시봉에게 돈벌이를 종용하지만 정상이 아닌 그들이 할 수 있는 일을 찾는 것은 생각만큼 쉽지 않았다. 시봉과 '나'는 시설에서처럼 '사과 대신하기'에 나선다.

 

'뿔테 안경'은 대신 사과할 의뢰인을 찾는 광고 전단지를 붙이고 그렇게 전단지를 붙인 지 열흘째 되는 날, 젊은 여자한테 눈이 멀어서 부인과 절름발이 아들을 버린 사람이 그들에게 사과를 의뢰하기 위해 찾아온다. 의뢰인의 아내는 한 초등학교 근처에서 김밥집을 하며 아이와 함께 살고 있었다. 그러나 의뢰인의 아내는 그들의 사과를 받아들이지 않는다. 시봉과 '나'는 그렇게 다른 사람의 사과를 대신하며 교도소에 있는 원장을 면회하기도 하고 시설에서 먹던 알약을 구하기 위해 시설을 다시 찾아가기도 한다. 시설에서 알약과 함께 원장의 일기장을 발견하여 집으로 가져온다. 의뢰인 대신 죽어줄 수 있다면 사과를 받아들이겠다는 의뢰인 아내의 제안을 받고 의뢰인을 찾아갔던 '나'와 시봉은 '뿔테 안경'이 이미 의뢰인으로부터 돈을 받았다는 사실을 알게 되고 죽음으로써 사과할 결심을 한다. 그날 술에 취한 '뿔테 안경'은 김밥집에서 죽음을 맞는다.

 

한편 집행유예로 풀려난 복지사들이 시봉과 '나'를 찾아와 시설로 데려간다. 시설에서 죽어나간 두 명의 행적을 알고 있었던 '나'와 시봉이 그들에게는 위협적인 존재가 아닐 수 없었다. '나'와 시봉을 땅에 묻을 계획이었던 복지사들은 원장의 일기장을 내가 갖고 있음을 알게 되고 일기장을 가져오라며 '나'를 시연의 집으로 돌려보냈다. '나'는 그들로부터 도망친다. 시봉을 버려둔 채. 언젠가 시봉은 자신에게 사과할 일이 생기면 자신을 대신해 '나'에게 사과하라고 말한 적이 있었다. '나'는 자살을 시도하여 병원에 입원한 시연을 들쳐업고 시연의 집을 향해 무작정 걷는다.

 

"나는 계속 걸어갔다. 시연은 말없이 내 등에 뺨을 갖다 댔다. 나는 집으로 가는 길이 어디인지 알 수 없었다. 그래도 나는 멈추지 않고 계속 걸었다. 나는 잠깐 뒤돌아, 병원의 파란색 십자가 네온사인을 바라보았다. 멀리 왔다고 생각했지만, 아직도 병원의 십자가는 높은 곳에서, 가까운 곳에서, 우리를 바라보고 있엇다. 나는 말없이 고개를 돌렸다." (p.220)

 

이기호의 소설을 읽은 건 이번이 처음이었다. 그러나 어디서 본 듯한, 소설의 구성이나 스토리를 이미 알고 있기라도 했던 것처럼 느꼈던 건 그의 문체와 사건 전개의 방식이 너무도 자연스러워서 그랬는지도 모른다. 죽을 죄를 짓고도 사과의 필요성을 느끼지 못하는 철면의 시대에 우리는 과연 잘 살고 있는지 작가는 묻고 있는 것이다. 사과할 만큼 큰 죄를 짓는 일이 없었던 시봉과 '나'는 누군가를 향해 언제나 사과할 준비가 되어 있는 반면 사과할 일이 너무나 많은 듯한 우리들은 되도록이면 사과를 피하려 하는 게 과연 옳은 일인가 작가는 묻고 싶었을 것이다. 우리는 병원의 푸른색 십자가로부터, 또는 절대자의 시선으로부터 결코 달아날 수 없다는 사실을 뻔히 알고 있으면서도 무작정 숨기려고만 한다. 어쩌면 범죄 바이러스를 막는 가장 강력한 백신은 사과일런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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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렸을 때 이웃에 살던 할머니 한 분이 생각난다. 경상도 사투리를 어찌나 심하게 쓰시던지 때로는 그게 무슨 뜻인지 몰라 멀뚱히 쳐다보는 경우도 있었지만 시쳇말로 인정만큼은 '갑'이었던 분이다. 언젠가 내가 하루 종일 딸꾹질이 멈추지 않아 고생을 했던 적이 있었다. 시도 때도 없이 '딸꾹 딸꾹' 하면서 돌아다니는 나를 유심히 지켜보시던 할머니는 "머슬 딸가닥 혼자 훔쳐 묵었노?" 하시면서 나를 조용히 불러 식혜 한 사발과 함께 가만가만 등을 쓸어주셨다.

 

어제 오후에 폭염을 뚫고 외출을 했던 나는 두어 시간 동안 원치도 않던 딸꾹질에 시달렸다. 그 모습을 지켜보던 동료가 '어떤 맛잇는 걸 혼자 훔쳐 먹었느냐?' 물어왔다. 나도 모르게 어릴 적 이웃 할머니 얼굴이 떠올랐다. 아무도 모르게 나는 무얼 그리 허겁지겁 훔쳐 먹었던 걸까? 점심도 거른 채 서둘러 나섰던 외출. 말매미 울음 소리에 정신마저 혼미해지는 거리에는 여름 햇살만 가득했었다. 그리고... 생각해 보니 훔쳐 먹은 게 하나 있긴 하다. 내것이 아니라고 나는 배가 부를 때까지 먹었는지도 모른다. '공짜라면 양잿물도 먹는다'는 속담이 무엇 하나 그른 게 없다. 양잿물은 마신 적 없지만 길에 넘쳐나는 오존을 욕심껏 들이켰던 듯하다. 정부에서 무상으로 제공하는 거라고는 하지만 다른 사람도 생각지 않고 너무 많이 마신 게 아니가 하는 생각에 미안한 마음이 슬몃 들었다. 양심도 없는 짓이었다.

 

오늘도 폭염이 지속되고 있다. 거리에는 뜨거운 햇살이 넘실대고, 오가는 행인들을 위해 쉼없이 오존을 만들어내고 있다. 어찌 고맙지 않으랴! 국민들 배 곯지 말라고, 혹시나 세균에 감염되지나 않을까 강력한 소독 효과가 있는 오존을 국민들 몰래 제공하고 있는 것이다. 따지고 보면 현 정부는 자신들의 공을 너무나 많이 감추는 게 아닌가. 우리가 국민들을 위해 이러이러한 일을 했소, 알린다고 해서 누가 뭐랄 것도 아니고 국민들은 오히려 고맙고 황송해 할 텐데 말이다. 겸손함만으로 따진다면 역대 최강의 정부라 할 만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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겨울호랑이 2016-08-20 11:1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생각해보면 우리가 정말 많은 혜택을 받고 있는데, 너무 무능하다고만 생각하고 있는 것 같아요.. 다만, 그 혜택이 부정적인 것이 그렇습니다만...

꼼쥐 2016-08-21 11:00   좋아요 1 | URL
현 정부가 우리에게 제공해주는 혜택이 한두 가지가 아니지요. 국민들 배고플까봐 미세먼지도 주고, 불법으로 축재하는 방법을 국민들에게 가르치기 위해 민정수석을 본보기로 보이기도 하고... 정부는 온통 국민들 생각뿐이지요. ㅎ