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무리 자세한 설명으로도 이해되지 않는 것들이 있는 것처럼 어떠한 논리로도 설명할 수 없는 것들이 있다, 세상에는. 땅 속으로 꺼져들 듯한 한낮의 우울감이나 혹한의 찬바람 속에서 흘렸던 식은땀, 또는 많은 인파 속에서의 뒤꼭지가 서늘했던 공포 등.

 

지난 토요일, 고등학교 동창 모임이 있다는 걸 뻔히 알면서도 나가지 못했다. 팽팽하던 끈이, 어느 순간, 툭, 하고 끊어진 것처럼 나는 바람 빠진 풍선으로 널부러졌다. 모든 게 무의미한 듯 느껴졌고 마지막 입김이 한숨처럼 내 몸을 빠져나가는 것 같았다. 무관과 무기력의 바윗돌이 사정없이 가슴을 내리누르는 듯햇다. '옴짝달싹할 수 없음', 꽝꽝 대못을 친 방에 갇혀 수인이 된 기분.

 

지금까지 미안하다는 전화도, 문자도, 다른 아무것도 하지 않은 채 이러고 있다. 삶이란 결국 무거웠던 주제를 가볍게 만드는 것. 인생의 막바지에 이르면 지금 심각했던 고민은 흔적도 없이 사라지리니. 시간은 풍화되고 먼 쪽에서부터 긴 그림자에 덮여 어두워지면 우리의 고민도 그와 같이 사그라들고 퇴색하여 먼지와 함께 사라질 것이다. 모임에서 보지 못했던 친구들 중 몇몇은 어쩌면 1년 후에나 보게 되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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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인의 밥상
공지영 지음 / 한겨레출판 / 2016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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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지영 작가는 버들치 시인을 보면 일견 답답해하면서도 좋아하고, 볼 때마다 존경을 표하는 이유가 '자기 것을 자기 것이라고 하고 남의 것을 남의 것이라고 하는 사람이기 때문'이라고 했다. 이 어지러운 시절에 그건 너무도 귀한 덕목이라고. 맞는 말이다. 세상이 혼탁하고 어지러운 이유는 그 단순하기 이를 데 없는 규칙을 너도 나도 지키고 살지 못하기 때문일 터, 통장에 자신의 관값 200만 원을 가지고 산다는 버들치 시인이 새삼 달리 보이는 것도 다 그런 연유 때문일 것이다. 몇 해 전 <공지영의 지리산 행복학교>를 재미있게 읽었던 나는 버들치 시인(박남준 시인)의 시를 제대로 읽은 게 없어도 왠지 모르게 친근한 느낌이 드는 것이다.

 

"이 나이에 이르러 이제 나는 안다. 삶은 실은 많은 허접한 것으로 가득 차 있다는 것을. 내 남은 생에 소망이 있다면 그중 무엇이 허접하지 않은지 식별할 눈을 얻는 것인데, 여기 새벽강에 앉아 두런두런 이야기를 나누며 나는 그중 몇 개를 건져 올리는 기분이었다." (p.85)

 

<시인의 밥상>은 시인이 차려낸 스물네 가지 음식과 소중한 사람들과 그 음식을 맛보며 귀한 시간을 보낸 작가의 추억이 어우러져 또 다른 글맛을 더한다. <지리산 행복학교> 이후 지리산으로의 발길을 끊었던 작가가 매달 그곳으로 달려가 시인과 함께 음식을 만들고 밥상을 차리며 다함께 나눴던 삶의 이야기는 된장이나 간장처럼 곰삭은 맛, 전혀 자극적이지 않고 웅숭깊은 맛이었다. 작가가 초대하는 시인의 밥상머리에는 정에 허기진 나와 같은 도시내기들에게 아련한 향수를 안겨준다.

 

"우리들은 말없이 남은 막걸리를 한 잔씩 마셨다. 여름 해가 길게 지고 있었다. 늙어가는 것이 아름답다는 건 어떤 것일까. 씨앗이 바위를 뚫은 게 아니라 늙은 것이 어린 것을 위해 필사의 힘으로 생명을 키워낸 것, 그것이 늙음의 아름다움 아닐까? 문암송 곁에는 바람이 차게 식었다가 불어왔다." (p.295)

 

지난해 가을부터 올해 여름까지 작가를 비롯하여 박남준 시인, '내비도' 교주 최도사, 사진작가 숯팁, 거제도 제이(J)는 지리산, 거제도, 전주, 거문도, 평창, 서울 등을 오가며 밥상을 차렸다. 거문도에서 소설가 한창훈을 만나 항강구국과 해초비빔밥을, 전주에서 콩나물국밥과 굴전을, 거제도에서 볼락 김장김치 보쌈을 먹는 호사를 누린다.

 

"버들치 시인이 맛을 보라면서 내민 숟갈을 받아먹은 순간, 나는 깜짝 놀라고 말았다. 대체 이 향기는 무엇이란 말인지. 아아, 품위 있게 향기롭고 부드러우며 칼칼하고 구수한 국물이 마음마저 위로하고 있었다. 따뜻한 국 한 그릇, 수프 한 그릇은 원래 영혼을 달래주기도 한다는 말이 실감 났다." (p.258~p.259)

 

수필을 일러 자기 고백적이며 작자 개인의 개성이 드러나는 글이라고들 한다지만 글쓴이가 자신이 되는 까닭에 글은 어느 정도 왜곡되거나 미화되게 마련이다. 그러나 시인이 마다한 산문집을 공지영 작가 본인이 대신 나서 시인의 음식 이야기를 기록했으니 이 책은 어지간히 객관성을 띠는 글이라 말할 수 있을 터, 나 또한 시인의 소박한 밥상머리에 수저 한 벌 얹고는 입맛을 다시며 달려들고 싶었던 적이 한두 번이 아니었다.

 

"나는 우리 일행을 둘러보았다. 내게 이 책을 내는 것보다 더 중요한 것이 무엇인지 알 것 같았다. 인생의 어떤 일에서든 똑같겠지만, 그래, 언제나 가장 중요한 것은, 언제나 가장 첫번째에 꼽아야 하는 것은 사람이었다. 나는 너무도 소중한 이들을 얻은 것이다." (p.319)

 

시인의 소박한 밥상을 보는 독자들로 하여금 때 이른 허기를 느끼게 하는 까닭은 아마 따로 있지 싶다. 계절도 잊은 채 도시의 너른 길을 뱅뱅 맴을 도는 우리가 실상 잊고 지냈던 것은 마음의 허기가 아니었을까. 정에 목마른 우리는 육체의 배고픔이 채워져도 언제나 허기가 졌던 것이다. 세상의 욕심이란 욕심은 다 물리고 정만 슴벅슴벅 베어 넣은 음식이니 작가도 나도 시인의 밥상을 보며 허기를 느낄 수밖에. 한 해가 저무는 이 즈음, 사흘여 추웠으니 오늘부터 대략 나흘쯤 따뜻하기를 기원해 본다. 김이 모락모락 피어오르는 하얀 쌀밥처럼 그렇게 우리 모두의 따뜻한 인정으로 새해에는 부디 안녕하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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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워진다는 기상청 예보 때문이었는지 아침 산행길에서 나는 아무도 만날 수 없었습니다. 어제, 오늘 휘영청 밝은 달빛만 나의 곁을 지켜주었고 새벽까지 넉넉했던 달빛을 받으며 나는 아무도 없는 호젓한 산길을 유유자적 걸었던 것입니다. 모자와 장갑까지 중무장을 한 덕분인지 매몰찬 추위는 느껴지지 않았습니다. 이따금 개활지가 나타날 때마다 산을 거슬러 불어오는 차가운 바람에 겉으로 드러난 양볼이 얼얼해지곤 했습니다.

 

나는 어둠이 물러가지 않은 겨울 산길을 좋아합니다. 오늘처럼 인적이 끊긴 산길이라면 더더욱 좋겠지만 비슷한 시각에 비슷한 장소에서 마주치는 단골 산행객이라면 딱히 싫어할 이유가 없겠지요. 어둠 속에서 밝아지는 과거라는 그리움에 취하여 나는 이따금 나 자신을 잊을 때가 있습니다. 그러고 보면 우리는 세월의 절벽에 자신의 몸을 묶어둔 채 지나가는 세월만 바라보고 있는 것인지도 모르겠습니다. 새벽 공기는 더없이 맑았습니다. 코끝을 찡하게 만드는 알싸한 추위도 싫지 않았습니다.

 

사는 게 도무지 허방을 짚은 듯 중심을 잃고 흔들릴 때가 있습니다. 아무리 애를 써봐도 제자리로 돌아오지 않는 것이죠. '내 인생은 이렇게 마냥 흔들리다가 마침내 끝나겠구나' 하는 두려움이 불현듯 들기도 하고 말이지요. 그러나 어느 한 순간 어떤 노력도 하지 않았는데 보란 듯이 제 길을 걷고 있는 자신을 발견하게 됩니다. 인생은 인과관계가 명확한 논리 체계는 아닌가 봅니다. 우리나라 사람들이 좋아하는 자기계발서는 그와 같은 논리 체계로 한 사람의 인생을 해석하려고 하지만 말입니다.

 

며칠 전 미국에 사는 여동생으로부터 전화를 받았습니다. 단순한 안부 전화라고 하는데 나는 왠지 모르게 동생의 목소리에서 촉촉한 슬픔이 배어있는 듯 느껴졌습니다. 타국 생활을 겪어보지 못한 나로서는 동생의 아픔을 헤아리기 어렵겠지요. 오늘처럼 바람이 불고 갑자기 추워지는 날이면 어둠 속에서 보았던 과거의 그리움에 한 발 더 다가서게 됩니다. 오늘 뉴욕의 날씨는 '-5/1 °C, 흐림'이라는군요. 그리움의 온도는 날씨가 차가울수록 뜨거워지나 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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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의점 인간 - 제155회 아쿠타가와상 수상작
무라타 사야카 지음, 김석희 옮김 / 살림 / 2016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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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라타 사야카의 소설 <편의점 인간>은 다수의 편에 속한 인간들이 그곳에 속하지 못한 소수의 인간들에게 얼마나 폭력적인가? 하는 문제에 대해 생각하도록 한다. 우리는 소수자, 약자를 보호해야 한다는 말은 무수히 많이 듣고 자라지만 이 책을 읽는 순간 그것만큼 헛된 구호도 없구나, 하는 생각에 이르게 된다. 왜냐하면 다수의 편에 섰을 때의 편안함을 결코 포기한 적이 없었던 사람들은 소수지의 삶을 진심으로 이해할 수 없기 때문이다. 그들을 의도적으로 배척한 적이 없으니 나는 잘못이 없다는 식의 항변, 그들을 보호하기 위해 적극적으로 나서지 않았을 뿐이라는 변명은 나를 지키기 위한 한낱 위선에 지나지 않았음을 책을 읽는 사람들은 누구나 실감하게 된다.

 

소설의 주인공인 '후루쿠라 게이코'는 18년째 편의점 알바를 하고 있는 서른여섯 살의 노처녀이다. 그녀의 삶은 어렸을 때부터 그리 순탄치 않았다. 말하자면 사회 부적응자의 기미가 어려서부터 보였다는 얘기다. 그것은 자신만의 판단이나 의사가 없는 데서 비롯된 것이었다. 예컨대 같은 반 친구 두 명이 싸우고 있을 때 누군가 "싸우지 못하도록 해!"라고 말한다면 옆에 있던 삽을 들고 싸우는 친구의 머리를 때려서라도 싸움을 멈추도록 만들고 그 행동에 대해 다른 사람들이 비난할라치면 도대체 자신이 무엇을 잘못했는지 깨닫지 못하는 그런 사람이었다. 그때 이후로 후루쿠라는 주변부에서 맴돌 뿐 적극적으로 개입하지 않았고 이따금 머리나 끄덕이면서 조용히 지냈다.

 

"정상 세계는 대단히 강제적이라서 이물질은 조용히 삭제된다. 정통을 따르지 않는 인간은 처리된다." (p.98)

 

은행원인 아버지와 전업주부인 어머니 사이에서 맏딸로 태어난 후루쿠라에게는 그녀와는 다르게 모든 면에서 정상인 여동생이 한 명 있었다. 대학에 입학하면서 편의점 알바를 시작한 후루쿠라를 가족 모두는 진심으로 반겼다. 조금은 특이했던 후루쿠라가 정상적인 사람으로 변하고 있구나 생각했던 것이다. 매일매일의 반복되는 일상과 매뉴얼에 따라 기계적으로 움직이는 편의점 아르바이트가 후루쿠라의 체질에 잘 맞았을 뿐인데 가족들은 그 사실을 미처 알지 못했던 것이다.

 

"나는 어딘가에서 변화를 바라고 있었다. 그것이 좋은 변화든 나쁜 변화든, 교착상태에 빠진 지금보다는 낫지 않을까 생각했다. " (p.113)

 

대학 1학년 때 아르바이트로 시작한 편의점 일을 그녀는 대학을 졸업한 이후에도 다른 곳에 취직 한 번 하지 못한 채 18년째 같은 곳에서 알바를 하고 있는 것이다. 편의점이 오픈하면서부터 시작된 그녀의 알바 인생에서 그녀는 수많은 알바생들과 이별했고, 점장도 지금까지 여덟 번이나 바뀐 상태였다. 그녀는 매일 편의점 음식으로 끼니를 때우며 규칙적으로 일하고 그러면서도 어떤 불만도 품지 않았다. 달라진 것 없이 그렇게 그녀는 나이만 먹어 왔던 것이다. 그녀가 편의점을 쉬는 휴일에 학창 시절의 고향 친구들을 만나기 시작하면서부터 그녀는 자신에 대해 간섭하는 친구들이 부담스럽게 느껴졌다. 동생의 조언에 따라 몸이 허약해서 편의점 알바만 했다고 말하는 그녀의 변명을 친구들은 다들 이상하게 생각한다. 적당한 나이에 결혼을 하고 아이를 낳고 하는 친구들의 평범한 삶과 비교하면 남자 친구를 사귄 경험도, 취직을 한 경험도 없는 그녀의 삶은 그들과 너무나도 달랐던 것이다.

 

"모두가 이상하게 여기는 부분을 내 인생에서 소거해간다. 고친다는 건 그것을 말하는지도 모른다." (p.113)

 

그러던 어느 날 편의점 신참 직원으로 '시라하'가 들어온다. 매사에 불평 불만이 많았던 그는 기계화 된 사회 체계와 규범화 된 승자 독식의 관습을 비판하며 다수로부터 멀어져 온 인물이다.

 

"무언가를 깔보는 사람은 특히 눈 모양이 재미있어진다. 그 눈에는 반론에 대한 두려움이나 경계심, 또는 상대가 반발하면 받아쳐줘야지 하는 호전적인 빛이 깃들어 있는 경우도 있고, 무의식적으로 깔볼 때는 우월감이 뒤섞인 황홀한 쾌락으로 생겨난 액체에 눈알이 잠겨서 막이 쳐져 있는 경우도 있다." (p.81)

 

사회 시스템이 잘못되어 자신의 능력을 인정받지 못한다고 믿는 시라하는 서른다섯 살의 대학 중퇴자이다. 직업도 없고, 결혼도 하지 못한 그는 자신을 걱정하는 세상 사람들의 간섭으로부터 달아나고 싶은 열망만 가득했을 뿐, 매뉴얼화 된 편의점 일은 애초에 관심조차 없었다. 그는 결국 편의점에서 해고된다.

 

"그래요, 정면으로 세상과 맞서 싸워서 자유를 획득하기 위해 일생을 바치는 쪽이 아마 고통에 대해 성실한 걸 거라고 생각해요." (p.112)

 

월세가 밀려 살던 집에서도 쫓겨난 시라하는 거리를 배회하던 중 후루쿠라의 눈에 띈다. 갈 곳 없는 그를 그녀는 자신의 집으로 데려가 같이 살게 한다. 그렇다고 대부분의 사람들이 생각하는 평범한 남녀관계는 아니였다. 그러나 이 소식을 들은 편의점 식구들과 후루쿠라의 여동생, 그리고 친구들은 모두 축하의 말을 하며 반긴다. 그녀의 집에 숨어서 놀고 먹는 시라하의 조언에 따라 그녀는 결국 18년 동안 몸 담았던 편의점을 그만두고 다른 직장을 알아보기 시작한다. 그러나 편의점 알바에 길들여진 그녀의 몸과 마음은 기준을 잃고 헤맨다.

 

내가 대학에 진학하면서 서울이라는 거대도시에 입성했을 때 나는 익명성이 주는 편안함에 한없이 매료되었었다. 특별히 눈에 튀는 행동만 하지 않는다면 서울 사람들은 너무나도 바빴고, 나는 투명인간이 된 듯 자유로웠다. 하루 종일 시내를 싸돌아다녀본들 우연히 아는 사람을 만난다는 건 그야말로 하늘의 별 따기였다. 어쩌면 다수의 편에 선다는 건 평범함 속에 자신을 숨기는 일인지도 모른다. 불과 몇 년 전까지만 하더라도 혼자 밥을 먹는 사람은 다른 사람의 시선을 피하기 어려웠지만 지금은 그마저도 묻혀버리지 않았던가. 평범함의 기준이 점차 사라지고 있는 것이다. 현대 사회의 한 개인은 닮은 듯 서로 다른 파편화 된 존재에 지나지 않는다. 평범함이 주는 익명성을 얻기 위해 우리는 오늘도 자신의 일에 악착같이 매달리고 있는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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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 며칠 날씨 변덕도 심하고 일도 힘에 겨웠던지 화상을 입은 듯 윗입술에 물집 몇 개가 생겼다. 둔한 듯 보여도 사람의 몸뚱어리는 어떤 정밀한 기계보다도 훨씬 더 민감하다. 적당히 쉬면 풀리겠지, 생각했는데 누적된 피로는 쉽게 풀리지 않았다. 세상에 공짜는 없는 법, 살기 위해선 언제나 그에 상응하는 대가를 필요로 한다.

 

겨울볕이 화창하다. 구름도 없는 그저 푸른 하늘이 시린 들녘으로 쏟아진다. 세월의 칼날 위에 맨발로 선 사람들에겐 한낱 사치일 수밖에 없는 그런 날씨. 가까운 공원에선 아이들 웃음소리가 멀리까지 울려퍼진다. 햇볕을 향해 돌아 앉은 노인 몇 분의 등 굽은 그림자가 기괴한 모습으로 그려지고 있다. 혼란한 시국 탓인지 유난히 조용한 올해의 세모 풍경.

 

이따금 순한 바람이 불었다. 뚜껑이 열린 과거에 변명을 하듯 하루를 더하는 일은 그 얼마나 손쉬운 일인가. 그렇게 또 한 해를 훌쩍 살아낸다는 건 손바닥을 뒤집는 것만큼 가벼운 일이다. 알랭 드 보통이 쓴 <슬픔이 주는 기쁨>을 읽고 있다. 그의 글은 마른 먼지를 털어내듯 명료하다. 그리 많지 않은 나이의 작가는 언제 그 많은 지식을 축적한 것인지... 나는 가끔 그의 지식을 부러워한다.

 

제 마음의 안뜰에 누군들 걱정 하나 없으랴마는 사는 게 녹록지 않다는 걸 생각 밖으로 꺼내들 때마다 휑한 바람이 스쳐가곤 한다. 누더기가 될 때까지 그 생각들을 매만지다 보면 길에서 스치는 사람들조차 예사로 보이지 않는다. 짠한 연민이 가슴을 치는 것이다. 나이가 들수록 눈물이 많아지는 건 아마도 그런 이유일 것이다. 겨울볕이 너무도 좋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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