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코다 이발소
오쿠다 히데오 지음, 김난주 옮김 / 북로드 / 2017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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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판절판


내가 탄광지역을 떠나 도시에 정착한 것은 중학교 2학년을 거의 다 마친 그해 겨울방학이었다. 아버지의 지나친 음주와 폭력으로부터 벗어날 수 있다는 사실에 나는 뛸 듯이 기뻤었지만 한편으로는 어린 여동생과 어머니를 남겨둔 채 나만 빠져나가는 것에 대한 죄책감이 가슴 한 구석을 묵직하게 짓눌렀었다. 초등학교(당시에는 국민학교) 6년에 중학교 2년을 더해 도합 8년의 시간을 나는 강원도의 탄광 지역에서 보낸 셈이었다. 석탄 산업이 번성하던 당시의 탄광지역은 일자리를 찾아 전국에서 모여든 사람들로 북새통을 이루었고, 그렇게 친분도 없이 모인 사람들은 사택이라는 주거지에 둥지를 틀었다. 석면을 함유하고 있는 회색 슬레이트 지붕과 엉성하게 쌓아 올린 시멘트 벽돌집은 검은 탄가루와 함께 탄광 지역을 대표하는 흔한 풍경이었다. 무채색의 우중충한 공간이 내 기억에 남아 있는 탄광 지역의 모습이었다.

 

단칸방의 좁디좁은 공간에서도 아이들은 태어나고 복작거리는 틈바구니에서도 아이들은 성장했다. 탄광촌의 학교는 아이들로 미어터질 지경이었다. 그러나 정부의 석탄 산업 합리화 정책으로 북적거리던 탄광 지역은 한순간에 유령 도시로 전락했다. 사람들은 일자리를 찾아 썰물처럼 도시로 빠져나갔고 빈집들은 늘어만 갔다. 적어도 그곳에 폐광지역의 발전과 국가 경쟁력 제고를 명목으로 카지노 시설이 들어서기 전까지 마을은 사람이 살지 않는 유령의 도시였다.

 

오쿠다 히데오의 소설 <무코다 이발소>를 읽으면서 감회가 남달랐던 까닭은 나의 유년기가 소설의 배경과 겹쳐졌기 때문이었다. 오쿠다 히데오가 그의 작품 '공중그네'나 '남쪽으로 튀어'에서 보여줬던 특유의 유쾌발랄한 문체와 작가의 트레이드 마크인 위트와 유머는 이 책에서 보여지지 않지만 작가는 쉽고 사실적인 문체로 마치 쇠락해가는 한 마을의 풍경을 스케치하듯 그리고 있다.

 

"그런데 1960년대 후반에 접어들자 에너지 정책이 석유로 전환된 데다 외국에서 싸게 들어오는 석탄 탓에 경쟁력을 잃어 쇠퇴하기 시작했다. 야스히코의 소년 시절은 고스란히 그 쇠퇴기와 겹쳤다. 탄광이 줄줄이 문을 닫았다. 덩달아 반 아이들도 전학을 갔고, 초등학교와 중학교의 통폐합이 잇달았다. 타계책으로 영화제를 유치하고 레저 시설을 조성하는 등 관광산업에 힘을 쏟았지만 별 효과는 없었다." (p.12)

 

이야기는 일본 북쪽의 홋카이도 산간 지방 도와자와면에서 시작된다. 올해 쉰세 살의 평범한 이발사 야스히코는 아버지로부터 가업을 이어받은 후 부부 둘이서 25년째 무코다 이발소를 꾸려오고 있다. 그에게는 도쿄에서 의류 회사에 다니는 맏딸 미나와 삿포로에서 대학을 마치고 그곳에서 취직을 한 아들 가즈마사가 있다. 취직을 한 지 1년 남짓한 아들이 가업을 잇겠다며 귀향을 선포하는 바람에 야스히코의 고민은 깊어진다. 젊은 사람은 모두 도시로 떠나는 마당에 거꾸로 귀향을 하겠다는 아들의 결정이 영 탐탁지 않았던 것이다.

 

작가는 쇠락해가는 고향 마을의 현실적인 문제를 하나, 둘 풀어놓는다. 고향을 떠난 사람과 고향을 지키는 사람 사이의 현실적인 장벽과 거리감, 부모 세대의 노인들만 남은 고향 마을의 열악한 의료환경을 뻔히 보면서도 부모를 곁에서 모실 수 없는 자식들의 죄의식, 객지를 떠돌다 상처를 입고 귀향한 고향 사람에 대한 편견과 오해, 농촌 총각의 결혼 문제 등 우리도 겪고 있는 여러 문제들을 작가는 현실감 있게 다루고 있다.

 

"나도 도시에 살면 좋겠다고 생각한 적 있어. 도마자와는 프라이버시나 개인의 삶이 없는 곳이니까 말이야. 다들 어렸을 때부터 알고 지내는 사이다 보니 뭘 해도 다 알려지고. 게다가 한 번 잘못하면 평생 얘깃거리가 되고. 그러나 숙명이다 여기고 체념하는 수밖에 없다고. 다이스케, 농사 그만둘 건가? 그럴 수 없겠지. 도마자와를 떠날 건가? 그럴 수 없겠지. 그럼 훌훌 털어버리자고. 모두가 한 연못 안에서 똑같은 물을 먹고 살고 있어. 그게 도마자와야." (P.164)

 

늦은 나이에 중국인 신부를 맞은 다이스케가 마을 사람들과의 접촉을 피하고 자신의 처지를 부끄러워 하는 모습을 보면서 야스히코의 친구인 세가와가 한 말이다. 누구나 다 아는 것처럼 시골의 작은 마을일수록 개인의 비밀은 오래 가지 못한다. 그것이 이웃 간의 훈훈한 정일 수도 있겠지만 때로는 그것이 상처가 될 수도 있다. 옆집 숟가락이 몇 개인지 다 알 정도로 왕래가 잦은 시골 마을의 풍경은 도시의 익명성에 젖은 도시내기들에게는 적응하기 힘든 문제일지도 모른다. 게다가 고향에 뿌리를 내리고 사는 사람들에게 전해지는 도시로 나간 자식들의 좋지 않은 소식은 지울 수 없는 큰 흉이 될 수도 있다. 소설에서도 히로오카의 아들 슈헤이가 텔레비전에 나오는 범죄를 저지르고 지병수배자가 되었다는 소식을 들은 마을 사람들이 동요하는 장면이 나온다. 야스히코의 아들 가즈마사는 슈헤이에게 했던 말을 아버지 야스히코에게 전한다.

 

"우리가 슈헤이 선배에게 그렇게 말했어요. 아직 살 인생이 많이 남았으니까 차라리 도마자와로 돌아와 다시 시작하는 게 어떻겠느냐고요. 그야 뭐 삿포로나 도쿄 같은 도시에 살면 주위에서 뭐라 말하는 사람이 없이 살기는 편할지 모르겠지만, 사람과 친해지거나 여자를 사귀게 되면 피치 못하게 자신의 과거를 털어놓을 수밖에 없는데, 숨기는 일이 있으면 사람과의 교제를 피하게 될 테고, 또 괴로울 테니까 ……. 그렇다면 차라리 다들 얼굴을 아는 도마자와에 돌아와서 지내는 편이 마음 편하지 않겠느냐고요. 과거를 알아도, 그래도 동네 사람들끼리는 친하게 지낼 수 있잖아요. 형기를 마치면 죗값을 치른 거니까, 우리는 받아들일 거예요." (P.312)

 

내가 어린 시절을 보냈던 강원도의 작은 탄광 마을에는 학교를 졸업하고 지금껏 그곳에 살고 있는 친구들이 몇몇 있다. 카지노 시설과 스키장 조성으로 마을은 오래전에 관광지로 변했지만 말이다. 개중에는 카지노에서 돈을 잃은 사람들을 상대로 돈을 빌려주는 전당포를 운영하거나 유흥점을 하는 친구도 있다. 나는 그들에게서 순수했던 어릴 적 모습을 찾아내지 못한다. 세월이 바꿔놓은 풍경은 쓸쓸하기만 하다. 놀러 오면 술 한 잔 거하게 사겠다는 그들의 제안이 그닥 반갑지 않은 것은 나도 또한 세월의 변주에 쉼 없이 변했다는 것이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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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생지사 새옹지마(人生之事 塞翁之馬)'라는 말이 있다. 중국 <회남자(淮南子)>의 인간훈(人間訓)에 나오는 이야기이다. 직역하자면 "인생지사가 새옹의 말"이라는 뜻이지만 여기에는 우리에게도 잘 알려진 이야기 한 편이 숨어 있다.

 

말을 잘 키우기로 유명한 새옹에게는 그가 아끼고 사랑하는 말 한 필이 있었다. 어느 날 그 말이 국경을 넘어 오랑캐땅(胡地)로 도망가버렸고, 이 소식을 들었던 동네 사람들(隣人)이 위문을 왔다. "얼마나 상심이 크십니까?"묻자 새옹은 조금도 슬픈 기색이 없이 "이것이 어찌 복이 될 수 없겠는가?(此何遽不爲福乎?)"라고 말했다.

 

그로부터 여러 달이 지나 그 말이 오랑캐의 준마를 거느리고 돌아왔다. 이번에는 사람들이 몰려와서 그에게 축하의 인사를 하자, 새옹이 말하길 "이것이 어찌 화가 될 수 없겠는가? (此何遽不爲禍乎?)"라고 하였다. 집에 좋은 말이 많아지자 그의 아들이 말타기를 즐겨 하다 말에서 떨어져 다리가 부러졌다. 마을 사람들이 그를 위로하자 그는 다시 "이것이 어찌 복이 될 수 없겠는가?" 하였다. 1년이 지난 후 오랑캐가 쳐들어오자 장정이란 장정은 모두 징발되었고, 그들 중 열에 아홉이 목숨을 잃었다. 그러나 새옹의 아들은 절름발이였기 때문에 새옹과 함께 목숨을 부지할 수 있었다. 그러므로 복이 화가 되고 화가 복이 되는 것은 그 변화가 불측하여 끝을 알 수가 없고, 그 이치가 깊고 깊어 이루 다 헤아릴 수가 없다.(故福之爲禍, 禍之爲福, 化不可極, 深不可測也)

 

오늘은 입춘. 봄의 시작이라고는 하지만 여전히 날은 차고, 시국마저 뒤숭숭하여 사람들의 마음까지 얼어붙었다. 불과 얼마 전까지만 하더라도 무엇 하나 부족한 게 없었고, 뜻하는 바 이루지 못할 것이 없었던 듯 보였던 사람들이 줄줄이 구속되는 걸 보면 '인생지사 새옹지마(人生之事 塞翁之馬)'라는 말을 떠올리지 않을 수 없다.

 

어제는 특검의 청와대 압수수색이 있었다. 청와대는 갖은 핑계를 대며 이를 저지했지만 봄이 오고 사람들 얼굴에 화색이 돌 때면 우리는 또 수의를 입은 대통령의 모습을 텔레비전에서 보게 될 것이다. 지금은 비록 떵떵거리며 큰소리를 치고는 있지만 말이다. 지금의 권력자에게 부역하는 소수의 사람들이 말도 되지 않는 행동으로 저항하며 꺼져가는 불씨를 살려보려 애는 쓰고 있지만 한 번 틀어진 역사의 흐름을 어찌 되돌릴 수 있으랴.

 

KBS의 아나운서였던 정모 여인은 특검의 압수수색에 대해 살의를 느낀다고 했다. 검찰도, 특검도, 영장을 발부한 법원도 한결같이 대통령의 죄가 중하다고 여기는 것인데 그녀는 어느 나라 국민인지 묻지 않을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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캐모마일 2017-02-05 00:3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읽으면서 고개를 끄덕끄덕했습니다. 새옹지마 출전이 회남자였다는 것도 알고 가네요.^^

꼼쥐 2017-02-07 17:58   좋아요 0 | URL
모두가 다가올 봄을 기다리는 것처럼 진정으로 나라를 위하는 대통령이 선출되었으면 좋겠습니다. 그렇게 된다면 ‘새옹지마‘라고 할 수 있을런지도 모르겠습니다.
 
보이는 어둠 - 우울증에 대한 회고
윌리엄 스타이런 지음, 임옥희 옮김 / 문학동네 / 2002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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막연하고 대책없기로는 우울증 만한 게 없다. 약하게든 심하게든 직접 앓아본 사람이라면 너무도 잘 알 것이다. 설령 자신이 직접 앓지는 않고 가족 중 누군가가 앓는 것을 옆에서 속절없이 지켜보기만 했다고 할지라도 내가 말하고자 하는 의미를 충분히 이해할 수 있을 것이다. 차라리 다리가 부러지거나 칼날에 손가락이 베이기라도 했더라면 잠시 잠깐 놀랄지언정 치료를 받고 시간이 지나면 저절로 낫게 마련이니 크게 걱정할 일이 없지만 이 놈의 우울증은 치료는커녕 발병의 원인조차 알 수 없으니 참으로 난감한 노릇이 아닌가.

 

우울증을 흔히 '마음의 감기'라고 한다. 그런데 우리가 간과하는 것은 이 병의 증세가 감기처럼 가볍지 않다는 데 있다. 감기처럼 누구나 걸릴 수 있는 질병이기는 해도 말이다. 영화 <소피의 선택>으로 잘 알려진 윌리엄 스타이런이 쓴 <보이는 어둠>은 우울증을 앓았던 작가 자신의 체험을 적나라하게 보여주는 책이다. 우리는 흔히 우울증을 앓고 있는 사람을 두고 개인의 의지나 마음이 약한 탓이라고 말한다. 그러나 이 병을 직접 앓아보았거나 가족 중 누군가가 우울증을 앓았다면 그런 터무니없는 말은 절대로 하지 않을 것이다. "나는 자기 살해자인 동시에 희생자였으며, 고독한 배우인 동시에 외로운 관객"이라고 했던 작가의 고백처럼 우울증은 결코 가벼이 볼 수 없는 치명적인 질병인 것이다.

 

"그러나 우울증에는 이와 같은 구원에 대한 신념, 혹은 궁극적인 회복에 대한 신념이 존재하지 않는다. 고통은 가혹하다. 이처럼 가혹한 상황을 더욱 못 견디게 만드는 것은, 손쉬운 치유책이 가까운 장래에 나타나지 않으리라는 사실을 스스로가 알고 있다는 점이다. 만약 그럭저럭 견딜 만한 치료법이 있다 하더라도 일시적일 뿐이며 더욱 극심한 고통이 뒤따를 것이라는 사실을 우리는 알고 있다. 다름아닌 이 절망감이 고통보다 더욱 인간의 영혼을 파멸시킨다." (p.75)

 

1985년 가을, 윌리엄 스타이런은 자신의 처녀작인 <어둠 속에 눕다>로 시노 델 듀카라는 프랑스의 권위있는 문학상을 수상하게 된다. 스타이런은 상을 받은 직후 어이없는 실수를 저질렀다. 그리고 얼마 후 술에 대한 몸의 이상 반응을 겪게 되었다. 술을 먹으면 구토가 시작되고 절망적이면서 불쾌하고 멍한 기분에 사로잡혔던 것이다. 이후 오랫동안 편안하게 거주했던 친숙한 우주가 낯설게 느껴졌다. 익숙한 장소로만 여겨졌던 주변 환경이 피부에 와 닿을 정도로 적대적이고 무서운 장소로 돌변했던 것. 병명은 우울증이었다.

 

"처음으로 나는 나 자신의 프라이버시가 침범당하더라도 나의 이야기를 공론화할 가치가 있다고 느끼게 되었다. 이 일을 계기로, 파리에서 우울증으로 인해 초래되었던 상세한 사례들을 기록함으로써 이 병과 그것의 진행 과정에서 겪었던 나의 경험을 기록하는 것이 유용할 수도 있겠구나라는 생각을 품게 되었으며, 한두 가지 가치 있는 결론이 도출됨으로써 우울증에 대한 준거틀이 될 수도 있을 것으로 생각했다." (p.42)

 

작가는 악화일로에 있는 자신의 증세를 꼼꼼히 기록한다. 그러나 우울증에 대해 어느 정도 알고 있는 사람이라면 그 작업이 얼마나 힘들고 처절했을지 짐작할 수 있을 것이다. 그는 작가이기 이전에 우울증을 앓고 있는 한 명의 환자인 동시에 끝없이 자신을 질책하며 증세를 악화시키는 가해자였기 때문이다. 시도 때도 없이 이어지는 고통 속에서 그 고통을 고스란히 감수하는 희생자가 자신의 고통을 객관적으로 관찰하는 관찰자의 입장이 된다는 건 쉽지 않은 일일 터였다. 관찰자가 된다는 건 끔찍한 고통을 정면으로 응시하면서 지극한 공포를 맛보아야 한다는 걸 의미한다.

 

"모든 형태의 상실감은 우울증의 시금석이다. 이 병의 진행 과정과 근원이 되는 것이 바로 상실감이다. 시간이 흐를수록 내가 시달리고 있는 장애의 근원이 유아 시절에 경험한 상실감이라는 점을 점차 수긍하게 되었다. 또 퇴행하여 나의 상황을 지켜보면서 매 단계 상실감을 경험했음을 알게 되었다. 자신감의 상실 역시 이미 알려진 증상이다. 나는 자부심과 더불어 자아 감각을 거의 잃어버린 상태였다. 이런 상실감은 재빨리 의존성으로 퇴행했으며, 의존성에서 유아 시절의 공포로 퇴행했다." (p.68)

 

작가는 돌파구가 없는 극단적 상황에 이른다. 그러나 자기 파멸로 가는 마지막 순간에 작가가 들었던 <알토 랩소디>의 한 소절이 그를 구했다. 작가의 어머니가 즐겨 부르시던 그 노래를 통해 그는 잊고 있었던 유년 시절의 즐거운 기억들을 되살려냈고 그 길로 그는 자신의 발로 정신병원을 찾아 입원했다. 그는 기적적으로 회복되었다.

 

"분노와 죄의식은 슬픔의 둑을 막아놓을 뿐만 아니라 자기 피괴의 일부이자 잠재적인 씨앗이 된다." (p.97)

 

작가는 자신이 앓았던 우울증을 '절망을 넘어선 절망'이라고 말한다. 그러므로 소위 '자살 공화국'으로 지칭되는 대한민국에서 우울증은 가장 위험한 질병인지도 모른다. 내가 이 책에 주목했던 이유도 그 때문이다. 2016년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통계에 따르면 한국의 인구 10만 명당 자살률은 28.7명으로 회원국 중 가장 높은 수준이라고 한다. 이는 2위인 일본(18.7명)과도 큰 차이를 보이는 수치로, 2003년 이후 한번도 OECD 1위라는 불명예에서 벗어난 적이 없다고 했다. 2017년이 시작된 지도 벌써 한 달이 흘렀다. 새해의 희망이 저마다의 가슴에서 파랗게 살아 있어야 하는 지금, 우리들 곁에는 절망의 고통 속에서 자기 파멸의 길을 걷고 있는 사람이 있음을 기억해야 한다. 작가가 말했듯 우리는 그들에게 '종교에 가까운 격려'를 멈추지 않아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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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난히 공기가 맑았다. 일 년 중 반 이상의 날을 미세먼지와 함께 살다 보니 오늘처럼 청명한 날이면 내가 마치 딴 세상에 온 듯 낯설고 어색한 느낌이 든다. 명절 연휴가 짧았던 탓인지 명절 후유증은 앓지 않았다. 간만에 모인 가족들은 뭔가에 쫓기는 듯 분주했고 그저 얼굴을 뵈주었으니 됐다는 식으로 서둘러 떠나갔다. 나 또한 다르지 않았다. 삼형제 중 막내인 나는 2년 전 아버지가 돌아가시면서 명절 때마다 큰형의 집을 찾고는 있지만 진득하니 오래 앉아 있지 못한다. 누가 눈치를 주는 것도 아닌데 말이다.

 

오랜만에 가족들이 모이는 명절 때마다 느끼는 것이지만 한 어미 자식도 아롱이다롱이라고 어느 집이나 형제들의 겉모습은 비슷해 보여도 속마음은 제각각이다. 각자 떨어져 살다가 일 년에 두어 번 만나다 보니 핏줄의 끌림보다는 오히려 격조했던 세월의 무게가 더 무겁게 느껴지곤 한다. 그래서인지 만날 때마다 데면데면하고 마치 처음 보는 사람들처럼 겸연쩍어 하는 것이다. 말 한마디 꺼내기도 조심스럽다. 그런 까닭에 궁금했던 각자의 삶에 대해 묻는 경우는 드물다. 대화의 중심에는 늘 검부러기처럼 가벼운 정치 이야기나 나라 경제 등 나로부터 한참이나 멀게만 느껴졌던 주제들이 등장하곤 한다.

 

지난 설에도 다르지 않았다. 하나 달라진 게 있다면 탄핵정국의 대통령에 대한 일치된 성토가 이어졌다는 점이다. 투표권이 주어진 후 단 한 번도 야당을 찍은 적 없는 큰형과 서울의 모 대학에서 학생회장을 하는 장조카의 격렬한 논쟁도 올해는 볼 수 없었다. 그래서인지 통 대화라곤 없었던 큰형과 장조카는 정상적인 부자관계로 되돌아간 듯했다. 큰형은 오히려 평소의 정치적 신념이 강경 좌파이기라도 했던 것처럼 대통령을 격렬하게 비난했다. 지난 대선에서 지지를 보냈던 자신의 선택에 대한 배신감을 그런 식으로라도 해소하려는 듯. 서로의 정치적 신념 때문에 얼굴을 붉히는 일이 사라졌으니 가족간 유대 차원에서 대통령에게 감사한 마음이 들었던 명절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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속초에서의 겨울
엘리자 수아 뒤사팽 지음, 이상해 옮김 / 북레시피 / 2018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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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가는 이따금 더없이 모질고 독해지려는 경향이 있다. 세상에 존재하는 수많은 소설가가 다 같다고는 말할 수 없겠지만 대체로 그런 경향이 있는 건 사실이다. 이를테면 이런 것이다. 작가가 원하는 극적 반전을 위해서라면 아무리 훌륭한 주인공일지라도 천 길 낭떠러지 밑으로 과감히 밀어버릴 수 있는 준비를 단단히 갖추고 있다는 것이다. 소설을 읽는 독자들이야 눈을 질끈 감은 채 그 끔찍한 장면을 조심스레 열어보겠지만 정작 그것을 쓰는 작가는 아무렇지도 않은 듯, 어쩌면 롤러코스트를 즐기는 사람처럼 활짝 웃고 있을런지도 모른다. 독자의 감정을 자유자재로 움직이는 게 작가의 역량이라 말할 수 있겠지만 말이다.

 

엘리자 수아 뒤사팽이 쓴 <속초에서의 겨울>은 신예작가 답지 않은 거침없는 필력과 대담한 묘사로 독자의 시선을 사로잡는다. 작가의 대담함은 프랑스인 아버지와 한국인 어머니 사이에서 태어났다는 그녀의 정체성에서 기인하는지도 모른다. 그래서인지 여자 주인공이라는 굴레는 작가가 표현하고자 하는 성적 욕망과 가치관에 그닥 장애가 되지는 않는 듯 보인다.

 

"나는 니트 원피스를 입고 있었는데, 스타킹은 벗고 있었다. 그가 손가락으로 내 흉터, 어릴 적 갈고리 위에 넘어져 생긴 길고 가는 흔적을 어루만졌다." (p.33)

 

주인공인 '나'는 프랑스계 혼혈이다. 프랑스인 아버지가 엄마를 유혹하여 내가 태어나게 되었지만 정작 나는 아버지를 모른다. 부둣가 어시장의 42호 점포에서 노점상을 하는 엄마를 돌보기 위해 나는 대학을 졸업한 후 엄마가 있는 속초로 내려왔다. 나는 낡은 펜션에서 일한다. 펜션의 주인인 박씨 아저씨는 일 년 전에 아내를 잃고 혼자가 되었다. 겨울의 속초는 춥고 황량하다. 비수기의 펜션에는 일본인 등산가와 성형수술 후 회복차 묵고 있는 내 또래의 서울 아가씨와 그녀의 남자친구가 묵고 있다. 어느 날 프랑스 노르망디 출신의 만화가 얀 캐랑이 펜션을 방문한다. 그는 세계 곳곳을 돌아다니며 만화를 그리는 인물이다.

 

"노르망디의 해변들, 전쟁은 그 위를 지나갔어요. 전쟁의 흔적이 남아 있긴 해도 삶은 계속되고 있죠. 이곳 해변들은 아직도 전쟁이 끝나기를 기다리고 있어요. 그런데 기다림이 너무 오랫동안 지속되다 보니 결국 더 이상 전쟁은 없다고 믿게 된 거예요. 그래서 호텔도 짓고 반짝이 전등 장식도 하죠. 하지만 그것들 다 가짜예요.. 그건 두 절벽 사이에 길게 늘어져 있는 줄 같아요. 언제 끊어질지 알지 못한 채 몽유병환자가 되어 그 위를 걷는 거죠. 이곳 사람들은 둘 사이에서 살고 있어요. 끝날 듯 끝나지 않는 이 겨울 같은!" (p.101)

 

얀 케랑은 펜션의 별채에서 묵게 된다. 나에게는 모델 지망생인 남자친구가 있지만 그와의 관계는 언제나 겉돈다. 거기에는 나의 엄마가 있다. 늙고 병든 엄마를 돌볼 수 있는 사람은 오직 나밖에 없다. 남자친구인 준오는 나의 엄마를 서울로 모셔오면 되지 않겠느냐 말하지만 나는 엄마가 속초를 떠나지 않을 것이라는 사실을 잘 알고 있다. 만화가인 케랑은 나에게 이것 저것을 부탁하면서도 내가 만든 음식은 절대로 먹지 않는다. 케랑의 모든 것이 궁금했던 나는 그의 주변을 끝없이 배회한다.

 

케랑은 아버지의 고향 출신이라는 지역적 연고로 인해 멀어질 수 없는 대상이었지만, 아버지의 사랑을 단 한 번도 받아보지 못한 채 성장했던 나는 그가 그리는 만화 속에서나마 그의 사랑을 받고 싶다는 욕망을 제어하지 못한다. 어쩌면 나는 케랑을 이성으로 사랑하는 것이 아니라 아버지의 대역으로 생각했는지도 모른다.

 

"이야기가 희미해졌다. 그것은 내 손가락 사이에서, 내 시선 아래에서 방황하듯 희미해졌다. 새가 눈을 감았다. 종이 위에는 이제 오로지 푸른색밖에 없었다. 쪽빛 잉크로 뒤덮인 페이지들. 그리고 그 남자, 겨울 속을 더듬어 나아가던 바다 위의 그 남자는 파도들 사이로 미끄러져 들어갔고, 투명하게 표현된 그의 자취는 서서히 여자의 형태를 취해갔다." (p.171)

 

혼혈이라는 작가의 정체성은 소설 속의 '나'를 통하여 그대로 투영된다. 어느 곳에도 속할 수 없었던 경계인으로서의 삶은 늘 외롭고 고독했을 터, 관광객의 북적임이 사라진 겨울 속초는 서울에서 태어난 작가에게도 낯설지 않은 풍경이었으리라. 파리와 서울, 스위스를 오가며 자란 경험을 바탕으로 쓴 이 소설은 작가의 자전적인 소설에 가깝지만 처음 출간한 이 소설로 인해 그녀는 스위스의 문학상 로베르트 발저상을 수상했다고 한다. 작가는 일제강점기 이후의 재일한국인들의 애환을 차기작으로 생각하고 있다고 했다. 그녀의 다음 작품이 자못 궁금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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