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안에 잠든 작가의 재능을 깨워라
안성진 지음 / 가나북스 / 2016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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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쓰기와 관련된 책들이 정말 많이도 나온다. 마치 무슨 유행이나 시대의 트렌드처럼 신간도서 10권 중 한두 권은 글쓰기 책이고 보면 이건 좀 심하지 않나 하는 생각이 종종 드는 것이다. 책이라는 게 보통 시대의 흐름을 포착하기도 하고, 사람들의 욕구를 반영하기도 하지만 최근 들어 글쓰기 책이 이렇게 범람하는 까닭은 아무리 생각해도 잘 모르겠다. SNS의 발달로 인하여 자신의 블로그나 페이스북 등 자신의 sns 계정에 사진을 찍어 올리거나 짧은 글을 남기는 게 보편적인 일처럼 여겨지는 요즘, 글쓰기의 필요성 또한 증가한 게 사실이지만 글쓰기 책의 범람을 그것만으로 설명하기에는 여전히 미진한 느낌이 든다.

 

"나는 내 아이들에게도 글을 많이 쓰는 사람이 되라고 말한다. 아이들이 지금보다 어릴 때부터 이런 이야기를 했다. 똑똑해지고 싶으면, 지혜롭게 살고 싶으면 책을 많이 읽고, 글을 많이 써야 한다고. 그래서 생각하며 사는 사람이 되어야 한다고."    (p.3)

 

<내 안에 잠든 작가의 재능을 깨워라>의 저자인 안성진 님을 알게 된 건 순전히 블로그 덕분이었다. 책을 읽고 자신의 블로그에 꾸준히 글을 쓰다 보면 자연스레 친구도 생기고, 성향이 비슷한 사람끼리 친분도 쌓이게 된다. 비록 온라인상에서의 일이지만 말이다. 그리고 오프라인에서는 단 한 번도 만나지 않았지만 단지 블로그의 글만 읽어도 '아, 이 사람은 이런 성격의, 이 분야에 관심이 있고, 이러이러한 취향을 가진 사람이구나', 하고 어렴풋이 짐작하게 된다. 저자도 그런 사람들 중 한 분이다.

 

저자의 책을 두 권째 읽었다. 슬하에 두 명의 아들을 두고 있는 것으로 알고 있는데 블로그에 올라오는 글도 아들에 대한 이야기나 사진이 많았고 저자의 자식 사랑이 각별한 듯 느껴졌었다. 어느 부모 치고 제 자식을 사랑하지 않는 부모가 있을까마는 자식의 교육에 대해 고민하고, 책을 통하여 배우고, 그것을 실천하는 사람은 많지 않기에 하는 말이다. 그래서였는지 저자의 첫번째 책은 <하루 10분 아빠 육아>였다. 자신의 육아 경험을 바탕으로 쓴 육아서였다.

 

그런데 이번에는 글쓰기 책을 선보였다. 엄밀히 말하면 책 쓰기 방법이겠지만 말이다. 책을 읽고, 블로그에 글을 쓰고, 그것이 한 권의 책으로 나오기까지, 그리고 자신의 이름이 박힌 한 권의 책을 써낸 후의 달라진 삶을 통하여 저자는 깨달은 바가 많았던 듯하다. Chapter 01 변화를 꿈꾼다면 글을 써라, Chapter 02 당신만의 책을 써라, Chapter 03 본격적인 책 쓰기, Chapter 04 책 쓰기 코칭 받기, Chapter 05 글을 쓸 때 필요한 좋은 습관들, Chapter 06 첫 책을 쓴 작가의 책 쓰는 이야기의 총 6장으로 구성된 이 책에서 저자는 맘만 먹으면 누구든 책을 쓸 수 있다고, 누구든 작가가 될 수 있다고 말한다.

 

"꾸준히 글을 쓰던 사람이 단순한 글쓰기를 떠나 책 한 권을 쓰겠다고 마음먹기만 하면 된다. 그러면 바로 작가의 길로 접어들게 된다. 내가 매일 쓰는 글이 나중에 책이 되어 세상에 나올 것이라고 상상해 보자. 오늘 쓰는 글에 대한 의미는 달라질 수밖에 없다. 매일 쓰는 글이 훨씬 더 큰 의미를 갖게 된다. 마치 적금통장에 돈이 쌓이는 것을 보며 뿌듯해 하듯 매일 써낸 글 때문에 뿌듯한 느낌을 갖게 될 것이다."    (p77~p.78)

 

작가가 되고 싶다고 해서 누구나 다 작가가 되는 것은 아니다. 그렇게 되어서도 안 되지만 말이다. 블로그에 올라오는 저자의 글을 꾸준히 읽어오면서 내가 느꼈던 생각은 저자는 다른 누구보다도 성실하다는 것이었다. 그것은 내가 갖지 못한 것에 대한 부러움일 수도 있었다. 어떤 분야든 자신이 목표하는 바를 이루기 위한 가장 큰 무기는 성실함이다. 그러므로 신이 부여한 가장 훌륭한 재능은 성실함이라고 말할 수 있다. 단 한 권의 책도 내보지 못한 나와 저자의 차이는 그 성실함에서 갈리는 듯하다.

 

"작가는 아침을 활용하는 습관을 가져야 한다. 잠자는 시간을 조금만 조절하면 그 시간을 글쓰는 시간으로 바꾸어 쓸 수 있다. 그게 습관이 되지 않았다면 천천히 시간을 두고 생활습관을 바꾸도록 노력해야 한다. 아침 7시에 일어나던 사람이 5시에 일어나면 오래 실천하지 못한다. 하루 5분씩만 바꿔보겠다는 생각으로 시도해보면 도움이 될 것이다."    (p.213)       

 

언제가 법정 스님의 책에서 이런 구절을 읽은 적이 있다. '사람마다 생각하는 것을 다 버릴 수 있고 사람마다 생각나는 대로 다 얻을 수 있다면 그것이 무슨 인생이라 말할 수 있겠느냐'(사람아 무엇을 비웠느냐 中) 나는 이따금 이 말이 떠오를 때마다 스님이 꼭 나를 두고 하는 말인 듯하여 가슴이 찔리곤 한다. 도둑이 제 발 저리는 것처럼 말이다. 목표를 이루기 위한 가장 뛰어난 재능이자 가장 큰 무기인 '성실함'은 내 안에서 여전히 잠들어 있다. 가수면 상태인 '성실함'을 도무지 깨울 방법이 없다. 저자와 나의 차이는 바로 그것이다. 다시 또 봄이다. '성실함'의 무덤인 이 계절에 나도 책 한 권 쓰고 싶다고 말한다면 지하에 계신 스님이 벌떡 일어나시지나 않을까 몰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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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ark Out !' 차를 밖에 주차하라는 얘기가 아닙니다. 박근혜 전직 대통령의 탄핵을 속보로 타전한 CNN의 기사 제목입니다. 달리 해석하면 청와대에서 차를 빼라는 얘기가 될지도 모르겠지만 말입니다. 당연한 결과이겠지만 결국 박근혜 대통령은 파면되었습니다. 막힌 체증이 확 뚫리는 것 같은 기분입니다만 한 편으로는 뭣 때문에 대한민국 국민들이 그동안 겪지 않아도 될 온갖 고생을 다 겪었나 생각할 때 분하고 억울한 마음도 듭니다. 추운 겨울 날씨를 아랑곳하지 않고 주말의 휴식도 반납한 채, 매주 광화문 광장에 모였던 순수한 국민들의 의지와 잘못된 것을 바로잡아야 한다는 대다수 국민들의 바람이 오늘과 같은 결과를 이끌어 낸 것일 테지요.

 

사필귀정(事必歸正)이라고 해야 할까요? 탄핵 심판에 참여했던 8명의 재판관 모두가 합치된 의견을 보였습니다. 그들도 대한민국의 한 시민으로서 그와 같은 결정을 내렸겠지요. 탄핵 심판의 변론이 진행되는 동안 우리는 상식이 통하지 않는 사람들의 험한 꼴을 수시로 보아왔지만 그들도 이제는 달리 어찌하지 못할 것입니다. 판결문을 낭독하였던 이정미 재판관은 박근혜 대통령의 파면을 선고하면서 "보수와 진보라는 이념의 문제가 아닌 헌법질서를 수호하는 문제로서 정치적 폐습을 청산하기 위하여 파면을 선언한다."는 안창호 재판관의 보충의견을 덧붙였습니다.

 

부끄럽게도 우리는 오늘 우리 스스로 뽑았던 대한민국의 대통령을 우리 스스로 파면시키는 전례를 남기게 되었습니다. 어쩌면 지난 대선에서 우리는 집단지성의 발현에 의한 유능한 지도자의 선발이 아니라 이념이라는 허황된 망령에 덧씌워진 채 전례가 없는 바지 대통령을 뽑았는지도 모릅니다. 오늘 우리는 허울뿐인 대통령을 자리에서 물러나게 했습니다. 내일쯤이면 'Parked Out'(밖에 주차했다)라는 제목의 기사가 실릴지도 모르겠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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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브 - 신은 혼자서 상처받는 것을 허락하지 않는다
윌리엄 폴 영 지음, 한은경 옮김 / 세계사 / 2017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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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도 모르게 스르륵 잠이 들 듯한 순한 햇살이다. 계절을 건너온 노곤한 햇살이 기신기신 창을 넘는 나른한 오후, 윌리엄 폴 영의 신작 소설『이브』 를 마저 읽었다. 소설의 주제가 다분히 종교적인 색채를 띤 영적인 치유와 깨달음에 있다는 걸 제외하면 윌리엄 폴 영의 여성적인 문체와 물 흐르듯 자연스러운 전개 방식으로 별 거부감 없이 읽을 수 있는 소설이다. 게다가 종교적인 성향의 소설이라고는 하지만 누구나 한번쯤 들어봤음직한 성경의 창세기편을 소재로 한 것이니만큼 대중성에 장애가 되지는 않을 듯 보인다.

 

소설은 미지의 섬인 피난처에서 시작된다. 위치도, 연도도 알 수 없는 섬의 해변에서 열두 명의 시체가 담긴 컨테이너가 발견된다. 컨테이너는 그 섬에서 유일한 '수집하는 자' 존에게 인계된다. 존은 그 섬에서 백 년째 살고 있다. 컨테이너에서는 중년 남자 한 명과 열한 명의 소녀들의 시체가 발견되었다. 컨테이너에서 서류철을 살펴보던 존은 한 명의 소녀가 더 있었다는 사실을 알게 되고 냉각기 옆의 작은 공간 안에서 완전히 부서진 소녀 한 명을 추가로 발견한다. 그가 발견한 소녀는 살아있었다. 치유하는 자들이 구한 소녀의 이름은 릴리였다. 릴리는 환상 속에서 '마더 이브'를 만나 태초의 현장을 목격하는 증인이 된다.

 

"내 딸아, 이리 와. 와서 창조의 증인이, 너의 부서진 몸과 깨진 영혼을 치유할 완벽한 증인이 되어줘." (p.26)

 

소설은 세 개의 공간에서 펼쳐진다. 릴리가 자신의 어린 시절을 회상하는 지구, 몸과 마음을 치유하는 피난처, 우주의 탄생과 아담과 이브가 등장하는 에덴 동산이 그것이다. 마약중독자인 릴리의 엄마는 릴리가 6살이 막 지났을 무렵, 약값 대신 그녀를 팔았고 그때 이후로 사람들은 그녀가 이용 가치가 없어질 때까지 계속해서 팔아넘겼고, 그녀는 결국 영원히 아기를 가질 수 없는 만신창이의 몸으로 사고까지 당하여 혼수상태에 빠진다. 섬의 수호자였던 '존'은 이브가 예고한 '태초의 증인'이 그 소녀라는 것을 직감하고 지극정성으로 보살핀다. 릴리가 구사일생으로 살아나자 릴리의 생존에서 의미를 찾기 위한 사람들이 하나둘 모여들었고 그들 중에는 아주 먼 곳에서 온 학자들인 제럴드, 아니타, 사이먼도 있었다.

 

"그녀는 창조의 절정에서 증인이 되려고 여기 소환되었다. 이브는 인간 안에서 탄생될 것이기에 아직 존재하지 않으며, 그녀는 그들의 탄생의 증인이 되기 위해 이 자리에 있는 것이다." (p.266)

 

자신을 무가치한 존재로만 여겼던 릴리는 아내를 잃고 '그림자 병'에 걸린 사이먼의 꾐에 빠져 모든 희망을 잃고 정신적 위기 상황으로 내몰린다. 사이먼이 선물한 '진실의 거울'을 통해 자신의 내면 모습을 비춰본 릴리는 사악한 괴물과 같은 자신의 모습에 충격을 받고 자신의 존재 가치를 완전히 잃고 만다. 릴리가 뱀의 공격을 받은 후 존은 사람들을 데리고 바다밑 피난처인 '볼트'로 이동한다. 그곳에는 학자들이 연구할 수 있는 서재와 증인으로서 릴리가 본 것을 기록하는 기록실과 식당과 휴식 공간 등 모든 것이 갖추어져 있었다. 그곳에서 사이먼은 다시 한 번 릴리를 유혹한다. 아담에게 배신을 당한 이브가 에덴동산에서 추방된 아담에게 다시 돌아가지 못하도록 막을 수만 있다면 이브는 영원히 에덴에 남을 것이고 인류의 역사는 바뀔 것이라고 하면서 태초의 증인인 릴리가 그 현장에서 그런 역할을 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한다.

 

"그녀에게는 수치심과 자기혐오야말로 가장 오래된 친구였다. 그런 감정들은 은혜나 축복과는 반대에 있는 것으로 그녀가 무가치하다고 입증하는 것들이었다.'실망'이라는 단어조차 그녀를 바닥으로 떨어뜨릴 수 있었다. 존은 그녀에게 그런 감정들에 저항하라고, 자신에 대한 애정과 배려가 더 큰 진실이라는 걸 부탁하고 있었다." (p.272~p.273)

 

여러번 위험에 빠진 릴리의 곁에는 언제나 사이먼이 있었다는 걸 눈여겨 보고 있었던 존은 위기의 상황에서 릴리를 구하고 릴리로부터 사이먼을 분리시키는 데 성공한다. 릴리는 환상 속에서 마더 이브와 재회하고 그곳에서 마리아를 만난다. 그동안 진실을 외면한 채 자신의 존재 가치를 부정하기만 했던 릴리는 그곳에서 비로소 진실을 마주하게 되고 아담이 '영원한 이'로부터 돌아섬으로써 앓게 되었던 '그림자 병'의 의미를 깨닫게 된다. 이제 릴리는 존의 헌신적인 노력과 진실한 사랑을 신뢰할 수 있었다.

 

"신뢰란 일생에 단 한 번 내리는 선택이 아니고, 매순간 강물이 흐르듯 선택하는 거야. 우리를 둘러싼 선물에 감사하고, 또 그 선물을 보내고, 혹여 한 번 잃더라도 어느 것도 잊히지 않았다는 걸 신뢰하는 거야."(p.409~p.410)

 

"진정한 사랑은 펼쳐진 두 손을 필요로 하지. 거절할 힘이 없다면 사랑은 절대로 실재가 되지 못하고 환상에 불과하단다."(p.373)

 

그러나 그들 앞에는 피할 수 없는 이별의 순간이 기다리고 있었다. 존과도, 부부인 아니타와 제럴드와도... 소설은 이제 마지막 반전을 향해 달려가고 독자들은 아담을 유혹한 이브에 대한 인식도, 하느님과 인간 사이의 관계에 대한 인식도 서서히 변하고 있음을 느낀다. 늘 하느님을 향해 있던 아담이 태초에 그로부터 '돌아섬'으로써 생긴 하느님과의 단절, 하느님의 존재를 인식할 수 없는 안개의 장막을 작가는 말하고 싶었을 것이다.

 

"슬픔은 참 기이한 거야.기쁨과 똑같이 갑작스레 찾아오거든. 옆으로 툭 하고 말이야. 그건 그냥 우리 삶의 리듬이고 충분히 인간적인 일이야."(p.328)

 

헌재의 탄핵 심판 선고를 하루 앞둔 오늘, 봄빛 완연한 날씨에 나는 온종일 춘곤증에 시달렸고, 윌리엄 폴 영의 소설 <이브>를 읽고 소설 속 주인공 릴리를 떠올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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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둠이 걷히기도 전, 여느 날과 마찬가지로 아침운동을 나서는데 때마침 눈이 내렸다. 가로등 불빛을 배경으로 푸슬푸슬 부서지는 눈발을 보자 한겨울에도 없던 오슬한 추위가 사무치도록 느껴졌다. 하루쯤 눈을 핑계로 아침운동을 거른들 건강에 큰 이상이 올 것도 아닌데, 하는 얄팍한 유혹이 속에서 스멀스멀 피어올랐다. 표표히 날리는 눈발과 모자른 잠을 채우고 싶다는 달콤한 유혹. 꼭 무슨 영화 제목처럼 강렬하다.

나는 끝내 유혹에 넘어가지 않았다. 삶과 시간의 채색은 늘 그런 식이다. 당위를 무시한 채 아무리 약한 척 어리광을 부려도 거기에 대한 응답도 결국 나의 몫이며, 행위에 대한 나의 변명에 대해 세상은 한참이나 늦게 응답하거나 모르는 척 무시할지도 모른다. 그렇다고 외로워 말지니. 세상을 일깨우기에는 나의 목소리는 너무나도 가냘프고 어깨를 맞댄 나의 이웃에게 이제 겨우 알려졌을 뿐이니. 우리가 사는 세상은 그보다도 한참이나 넓어서 적어도 내가 바라는 그 넓이의 사람들에게 끝내 이를 수 없는 나의 목소리.

 

지난 주말, 경찰 차벽을 사이에 두고 벌어진 두 집단의 시위. 소위 탄핵을 반대하는 친박 집회와 탁핵 인용을 촉구하는 촛불 집회는 집회 참가자들 뿐만 아니라 이를 지켜보는 모든 국민들에게 깊은 상처를 남겼을 듯하다. '같음'이나 '같아짐'을 바라는 대다수 국민들의 소망과는 달리 그로부터 한참이나 어긋난 '다름'을 보았을 때, 세상을 이해하는 우리의 태도는 얼마나 어리석었던가. 끝내 시인할 수밖에 없는 2017년의 우매함은 세월의 뭇매를 맞은 먼 훗날에 우리가 떠안을 후회의 무게. 평의를 마친 헌재 재판관들은 선고 기일 발표를 8일 이후로 연기했다. 오늘 아침에 날리던 눈발처럼 계절의 고개를 넘는 시간은 참으로 힘겹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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때로는 길이 아닌 길을 가라 - 조달청장 정양호의 직장별곡
정양호 지음 / 매일경제신문사 / 2016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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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금이라도 인연이 있는 사람의 책을 읽고 그에 대한 리뷰를 쓴다는 건 참으로 어려운 일이다. 지나치게 솔직하자니 그건 좀 아닌 것 같고, 그렇다고 마음에도 없는 얘기를 주저리주저리 늘어놓자니 그것 또한 양심에 찔려 개운치 않은 것이다.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는 진퇴양난의 입장에 처할 바에는 차라리 리뷰를 안 쓰면 되지 않느냐 할 사람도 있겠지만 그것도 못할 짓이다. 책이 출간된 지 한참이나 지났는데 리뷰를 쓰지 않는다는 건 책이 재미가 없어 읽어보지도 않았구나 하는 의심을 살 여지가 충분하기 때문이다. 이래저래 조심스러울 수밖에 없다. 이런 까닭에 아무튼 나는 책을 다 읽고도 어지간히 뜸을 들였던 것 같다. 그렇지만 기왕 리뷰를 쓰기로 작정했으니 책에 대한 소회를 최대한 객관적으로 써 보기로 한다.

 

<때로는 길이 아닌 길을 가라>의 저자인 조달청장 정양호 님과의 인연은 사실 별게 아니다. 수년간 블로그 생활을 하면서 좋은 글벗으로 지냈다는 게 인연의 전부이다. 내가 블로그를 처음 시작하고 얼마 지나지 않았을 때 나는 저자로부터 정영희 작가의 책 <문학의 숲을 거닐다>를 선물로 받았었다. 저자가 직접 쓴 편지와 함께 말이다. 그 바람에 나는 저자에 대하여 더 각별히 생각하게 되었는지도 모른다. 그때 나는 저자의 직업도, 얼굴도, 사는 곳도 알지 못하면서 그저 가까운 사람이려니 생각했었다.

 

<때로는 길이 아닌 길을 가라>는 32년째 공직 생활을 한 저자가 한 사람의 직장 대선배로서 자신의 성공과 실패의 경험을 후배들에게 전하는 '직장 생활 지침서'라고 말하는 게 옳을 듯하다. 물론 사기업에서의 직장 생활과 공직 생활은 직장의 분위기나 추구하는 목표 등에서 많이 다를 수 있다. 그렇지만 2008년부터 블로거로 활동하며 1,300여 권의 북 리뷰를 올렸던 저자의 이력을 감안하면 이 책이 단순히 직장 생활을 오래 한 한 직장인의 서툰 창작물만은 아니라는 걸 미루어 짐작할 수 있을 듯하다.

 

"책에서 다루는 범위는 우리의 직장생활 전반에서 겪게 되는 일상이다. 시기적으로 공직에 첫 입문한 때부터 최고위직 관리자가 되기까지의 경험을 망라했다. 업무 관련 사항과 함께 직장 내에서의 처세 문제, 자기계발 문제까지 다양한 측면을 조망했다. 필자와 비슷한 경험을 가진 공직자들이 가장 많이 공감하겠지만, 공공 기관이나 일반 민간기업 직장인들도 많은 부분에서 비슷한 경험을 하였을 것으로 생각한다."    (p.324)

 

<때로는 길이 아닌 길을 가라>에는 Chapter 1. 직장생활의 기본 갖추기(업무 편) Chapter 2. 당신이 거울입니다(처세 편) Chapter 3. 천리길도한 걸음부터(자기계발 편) Chapter 4. 직장인들이 꼭 읽어야 할 책(정양호의 책꽂이)의 4개의 장에 80여 꼭지가 넘는 글이 실려 있다. 나는 예전부터 블로그에 올라오는 저자의 글을 읽어왔지만 그때마다 들었던 생각은 그의 글이 군더더기 없이 깔끔하다는 것이었다. 왜 아니 그렇겠는가. 수십 년간의 직장 생활 동안 저자가 쓰고 고쳤을 수많은 보고서와 기획안으로도 그의 글쓰기 내공은 충분히 다져졌을 터, 게다가 웬만한 작가보다 더 많은 책을 읽고 그때마다 블로그에 올라오는 많은 리뷰는 나와 같은 게으른 블로거와는 비길 바가 아니었다. 박웅현의 <책은 도끼다>를 소개하면서 저자는 이렇게 쓰고 있다.

 

"양적이고 얕은 독서를 주로 하고 있는 내 모습을 비춰볼 수 있는 거울의 역할을 하는 책이다. 직장인으로 온전히 책 읽기에만 전념할 수 없는 입장이라 온전히 저자의 이야기를 따라가는 데에는 한계가 있다고 본다. 하지만 현재까지의 독서를 바탕으로 이젠 울림이 있는 독서를 하는 것도 가능하지 않을까 하는 긍정적 평가도 해본다. 앞으로의 독서가 다독보다는 정독을, 지식의 습득보다는 감수성을 깨치는 방향으로 한 단계 업그레이드 하겠다는 다짐을 한다."    (p.283)

 

'당신의 친구에 대해서 내게 말해주면, 당신이 어떤 사람인지 내가 말해줄 수 있다.'는 말이 있다. 스페인의 문호 세르반테스가 한 말이다. 그런가 하면 당신이 무엇을 먹었는지 말해 달라. 그러면 당신이 어떤 사람인지 알려주겠다.'는 말도 있다. 프랑스의 미식가 브리아 사바랭이 한 말이다. 이와 비슷한 의미의 말이 더 있는 것으로 안다. 두 말에서 나는 사람은 누구나 주어진 환경에 적당히 적응하고 쉽게 안주한다는 사실을 배운다. 직장 생활도 다르지 않다. 낯설고 어색한 시간은 순간에 그치고 다람쥐 쳇바퀴 도는 그날이 그날 같은 날들이 끝없이 이어진다. 나를 비롯한 대부분의 사람들이 그렇게 느낀다는 것이다.

 

어느 한 곳에 매몰된다는 건 위험한 일이다. 우물 안의 개구리로 살아가기는 쉽지만 그곳에서 벗어나기란 결코 쉽지 않다. 책의 제목을 <때로는 길이 아닌 길을 가라>고 정한 이유도 적당한 선에서 안주하고 타협하려는 대다수 직장인의 나태함을 경계하고자 쓴 말이 아닐까 싶다. 저자도 물론 퇴근한 후의 피곤한 몸을 이끌고 책상 앞에 앉기까지 수없이 많은 말로 자신을 채찍질했을 것이다. 그러나 책에서 길을 찾지 않으면 우물 밖으로 향하는 길은 영원히 보이지 않는다.

 

이제 나의 어설픈 조언으로 짧은 리뷰를 마무리해야겠다. 보고서나 기획안처럼 장황한 이야기를 짧게 요약하는 글만 잘 쓰는 직장인은 무수히 많다. 그러나 문학적 글쓰기를 연습하는 직장인은 드물다. 직장인으로서 작가에 도전하라는 말은 아니지만  서툰 솜씨라고 할지라도 문학적인 글쓰기를 멈추지 말라는 조언을 해주고 싶다. 공감의 능력, 소통의 능력은 정서가 메마른 상태에서는 길러지지 않기 때문이다. 직장 생활이 나 한 사람의 욕심과 이기심을 키우는 장으로 전락하는 걸 나는 많이도 보아왔기에 하는 말이다. 은퇴 후에 남는 것은 결국 돈이 아닌 사람이라는 점을 명심해야 한다. 독서에 있어서도 자기개발과 어학 등 실용서 위주의 독서에서 이따금 벗어날 필요가 있다. 적어도 열 중 셋 정도는 문학책을 읽어야 한다. 무엇이든 편중되면 좋지 않은 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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