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는 날아가면서 뒤돌아보지 않는다
류시화 지음 / 더숲 / 2017년 2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시인 류시화가 우리 사회에 끼친 긍정적인 영향은 '누구나 자신이 원하는 대로 살아도 괜찮다'는 실체적인 진실을 시인 스스로가 증명해 냈다는 데 있지 않을까 싶다. 남들에게는 '구도자'나 '기인'쯤으로 보이는 그이지만 나름 자신의 의지에 따라 충실한 삶을 살고 있고, 그 모든 게 타인에 의한 수동적 선택이 아니라 오롯이 자신의 결정에 따른 자기주도적 삶이라는 사실은 매우 중요한 의미로 다가온다. 일체의 사회적 통념을 거부한 채 시인은 오직 자신이 원하는 것, 자신이 바라는 삶의 방향을 따라 충만한 삶을 살아 왔다는 것을 그의 작품을 한두 권 읽어본 사람이라면 누구나 잘 알고 있을 것이다. 물론 그의 이름조차 모르는 사람들도 여전히 많겠지만 말이다.

 

"마음이 담긴 길을 걷는 사람은 행복을 추구하는 것이 아니라 행복과 나란히 걷는다. 행복은 목적지가 아니라 여정에서 발견되는 것이기 때문이다. 행복의 뒤를 좇는다는 것은 아직 마음이 담긴 길을 걷지 않고 있다는 것이다. 당신이 누구이든 어디에 있든 가고 싶은 길을 가라, 그것이 마음이 담긴 길이라면. 마음이 담긴 길을 갈 때 자아가 빛난다." (p.46)

 

자신은 비록 그렇게 살지는 못했지만 다음 세대를 향해 '너희들은 자신이 원하는 삶을 살아라' 라고 말하는 사람은 무수히 많다. 나도 그런 부류의 사람들로부터 진심이 담긴 조언이나 충고를 수없이 들어 왔고, 그게 옳다는 믿음 한 가닥은 머릿속에 희미하게 남아 있다. 그러나 자신도 하지 못한 것을 인생의 말년에 넋두리 삼아 말하는 것과 자신의 방식 대로 살아 온 사람이 '나처럼 살아도 괜찮다'고 하는 것은 말의 무게에서부터 차이가 난다. 정작 우리가 필요로 하는 것은 삶의 방향을 탐구하는 방법이 아니라 마음 속 두려움을 제거할 수 있는 확신이기 때문이다. 우리는 진실로 삶 자체를 두려워하는 세살배기 어린애에 불과하다.

 

"심리학자들의 연구에 따르면, 우리가 내리는 결정들의 80퍼센트는 두려움에 바탕을 둔 것이다. 가슴이 원하는 것이 아니라 두려움 때문에 결정을 내리고 방향을 선택하는 것이다. 두려워하는 마음은 인생의 비전을 차단시킨다. 안전한 길은 큰 기쁨을 주지 못한다." (p.88)

 

류시화의 신작 <새는 날아가면서 뒤돌아보지 않는다>에는 삶과 인간을 이해하는 데 도움이 될 만한 51편의 산문이 담겨 있다. '마음이 담긴 길', '화가 나면 소리를 지르는 이유'. '운디드 힐러'. '두 번째 화살 피하기'. '수도승과 전갈', '우연한 선물' 등 작가가 써내려 간 글에는 자신의 체험에서 비롯된 진실의 힘이 묻어난다. 내가 특히 놀라워 했던 건 작가도 어린 시절에 급성 신장염으로 병원으로부터 치료 불가의 사형 판정을 받은 적이 있었다는 사실이었다. 같은 병으로 비슷한 경험이 있었던 나로서는 동질감을 느끼지 않을 수 없는 대목이었다.

 

"시름시름 앓는 사이 겨울이 지나갔다. 남향집이라서 창호지 문으로 햇살이 비쳐 들었다. 기어 나가 방문을 열었더니 정말로 마당 가득 봄이 와 있었다. 마지막 봄이라고 생각해선지 괜히 기분이 설레었다. 겨우 몸을 일으켜 마당 한쪽의 화단으로 가서 흙을 헤쳐 보니 화초 싹들이 파릇파릇 올라와 있었다. 내 몸과 마음에도 봄기운이 스몄다." (p.151)

 

'화가 나면 소리를 지르는 이유'도 인상 깊은 글이었다. 그 글에는 메허 바바의 우화가 소개되어 있는데 스승이 제자들에게 "화가 나면 왜 소리를 지르는가?" 하고 묻는다. 제자들의 여러 대답을 들은 뒤 스승이 그 이유에 대해 말하기를 "사람들은 화가 나면 서로의 가슴이 멀어졌다고 느낀다. 그래서 그 거리만큼 소리를 지르는 것이다."고 했다. 화가 난다는 건 상대방으로부터 마음이 멀어진다는 것이고, 그래서 사람들은 소리를 지르게 된다는 명쾌한 논리가 무릎을 치게 만들었다. 나는 왜 여태 그런 간단한 이치를 깨닫지 못했던 것일까?

 

부슬부슬 봄비가 내린다. 사는 게 손 안의 모래알처럼 실체도 없이 흩어지는 듯 느껴질 때면 이 책을 곁에 두고 읽어도 좋을 것 같다. 창밖으로 보이는 자목련의 자태가 유난히 곱다. 우리는 더러 소중한 것을 잊고 사는 건 아닌지 목련을 보며 되묻게 된다. 계절을 알리는 저 꽃들의 개화가 가슴 저린 환희로 다가오는 것도 다 이유가 있을 터이다. 사랑하기 좋은 날이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23)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다양한 봄꽃들이 앞서거니 뒤서거니 다투어 피고 있는 요즘, 몸도 마음도 덩달아 다채로운 색깔로 물들게 됩니다. 오늘 아침 내가 올랐던 산에도 봄기운이 완연한 가운데 다소곳한 진달래가 이제 막 꽃망울을 터뜨리고 있었습니다. 해가 어찌나 길어졌는지 6시쯤이면 벌써 주위가 훤히 밝아오고 바지런한 청설모의 서커스 공연도 일찍부터 시작됩니다. 매일 보아도 질리지 않는 풍경입니다.

 

 

운동을 마치고 산을 내려올 때까지 내내 어둠이 걷히지 않았던 겨울 동안, 새들의 노랫소리는 전혀 들리지 않았습니다. 어둠 속에서 호젓한 산길을 걷는 것 또한 나쁘지는 않았지만 말입니다. 그러나 하루가 다르게 해가  길어지는 요즘 나를 반기는 새들의 노랫소리는 산을 오르는 내내 이어집니다. "잘했어, 잘했어. 반가워, 반가워." 그들은 그렇게 말하는 듯합니다. 

 

 

앙상했던 가지마다 연두빛 새순이 돋아나고 있습니다. 머지 않은 봄날에 우리는 초록의 물결 속에서 감출 수 없는 푸른 웃음을 토해내겠지요. 그렇게 우리는 발목에만 겨우 차던 계절감을 가슴까지 밀어올린 채 부지런한 나날들을 정신없이 살아갈 것입니다. 허락된 삶에 감사하면서 말이지요. 피어나는 꽃과, 새들의 노래와, 청설모의 공연과, 부드러운 바람의 터치. 더없이 완벽한 자연의 조화처럼 나의 삶도 형형색색의 빛깔로 조화로웠으면 좋겠습니다. 나와 그대의 삶 모두가.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2)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자유로울 것
임경선 지음 / 위즈덤하우스 / 2017년 1월
평점 :
절판


전투적으로 책을 읽게 되는 경우가 종종 있다. 책에 빠져서 정신없이 책만 읽는 것을 말하는 게 아니다. 그와는 반대로 재미없는 책을 어쩔 수 없이 꾸역꾸역 읽게 되는 경우를 말하는 것이다. 누가 옆에 서서 무시무시한 채찍을 들고 감시하는 것도 아니고, 작가 코스프레나 지적 허영을 충족시키려는 목적도 아니다. 그것은 어쩌면 나의 독서 성향에서 기인하는지도 모른다. 아무리 재미없는 책도 일단 펼쳐 들었다 하면 좋든 싫든 끝까지 읽어내야 한다는 강박증, 나에게는 그런 성향이 있다. 이때의 독서는 쾌락이 되지 못한다. 오히려 고통에 가깝다. 그래서인지 어쩌다 재미없는 책을 골랐을 때 나는 주어진 고통에서 조금이라도 빨리 벗어나기 위해 눈에 불을 켜고 전투적으로 책을 읽게 된다. 책의 내용도 머리에 잘 들어오지 않는다. 독서는 그저 눈으로만 글자를 읽는 것에 불과하다.

 

임경선 작가의 신작 에세이 <자유로울 것>도 나의 범주에서는 그런 종류의 책으로 분류되었다. 그렇게 어렵게 읽을 거라면 왜 샀느냐고?고 반문하는 사람이 있을지도 모르겠다. 그러게나 말이다. 작가가 무라카미 하루키의 광팬이라는 사실을 잘 알고 있기에 하루키의 작품을 즐겨 읽는 나로서도 임경선 작가의 작품이라면 굳이 마다할 이유가 없었다. 적어도 지금까지는 말이다. 그런데 이 책은 달랐다. 잡담 수준의 수다가 끝없이 이어졌다. 눈물을 찔끔 흘릴 만한 감동도, 배꼽을 잡을 정도의 유머도, '우리 내면의 얼어붙은 바다를 깨부수는 도끼와도 같은' 깊은 깨달음도, 비슷한 경험의 공감대도 일체 없었다. 그리 두껍지도 않은 책을 꼬박 이틀 동안 붙들고 있었다. 문장을 허투루 읽는 바람에 읽었던 문장을 번번이 다시 읽어야만 했다.

 

"골프라는 취미는 한 사람의 삶의 방식을 꽤 정교하게 바꾸어놓는 것만은 분명했다. 남편은 골프를 치기 전까지는 그저 한 명의 책 덕후였다. 주말이면 혼자 혹은 함께 빈 배낭을 메고 보물 사냥하듯 시내의 중고서점들을 훑었고, 빈 배낭을 꽉 채워 귀가하면서 새 장난감을 산 어린아이처럼 행복해했다." (p.215)

 

이 책에서 작가는 글 쓰며 먹고 사는 자신의 삶에 대한 이야기와 행복과 욕망, 솔직함에 대한 생각 등 작가가 강연을 하거나 독자들을 만났을 때 가장 많이 받았던 질문과 고민들을 중심으로 쓰고 있다. 작가로 데뷔하기 전에 회사원으로서의 경험과 회사를 그만둔 후 글을 쓰게 된 계기, 글을 쓰면서 겪은 다양한 일상, 예컨대 강연을 하거나 독자들과의 만남, 맘에 드는 카페에서의 작업 등 작가로서의 일상을 담담하게 쓰고 있다. 특히 사랑에 대한 작가 자신의 생각이 선명하게 드러난다.

 

"내가 소설『단순한 열정』에서 가장 강하게 사랑의 감정을 통감하는 글귀는 다음의 구절이다.

'나는 그 사람이 내게 남겨놓은 정액을 하루라도 더 품고 있기 위해 다음 날까지 샤워를 하지 않았다.'

그에게 만져졌던 그 몸 그대로, 그의 땀과 냄새가 섞이고 배어 있는 그 몸 그대로 가능한 한 오래 두고 싶은 마음을 나는 잘 알고 있다." (p.36)

 

유명인에 별 흥미를 느끼지 않는 탓에 사인회에 부정적인 작가, 친구가 별로 없어서 좋다는 작가, 지금은 끊었지만 대학 2학년 때부터 담배를 피웠다는 작가, 책 추천 요청만큼은 하지 말아달라는 작가, 글을 쓰기 위해서는 재능·노력· 운이 모두 필요하다고 생각하는 작가, 갑상선암 수술을 받기 위해 회사를 그만둔 후 일시적으로 글을 쓰며 쉬엄쉬엄 지내자고 생각했던 게 십삼 년째 글을 쓰면서 살고 있다는 작가.

 

누구에게도 숨길 게 없이 솔직하다는 것, 나에 대한 다른 누군가의 생각에도 별 관심이 없다는 것은 스스로의 삶을 자유롭게 한다. 그것만은 확실하다. 우리가 자주 인용하는 성경 구절에는 "진리가 너희를 자유케 하리라"(요 8:32)는 말이 있다. 이 말에 대한 종교적 해석은 아니지만 우리가 활동하는 체제에 대해 올바른 관점과 지식은 상당한 자유를 준다는 것을 이 말은 시사하고 있다. 달리 말하면 우리가 자유롭기 위해서는 우리의 삶을 둘러싼 기초에 대해 꾸준한 지적 투자가 필요하다는 것을 의미하기도 한다. 진리에 대해 꾸준히 탐구하는 사람은 다른 사람의 말에 쉽게 휘둘리지 않는다. 가짜 뉴스가 판을 치는 요즘, 중심을 잡고 사는 일은 진리에서 나온다는 사실을 되새기게 된다. 정녕 자유로운 인간은 타인으로부터의 일정한 거리를 두는 사람이 아니라 삶의 기초를 탐구하는 인간일 것이다.

 

타인의 생각에 편입되려 하면 할수록 자신을 옥죄는 규칙은 비례하여 증가하게 마련이다. 그러므로 '4차원'이나 '또라이'와 같은 별명은 자유로운 사람에게 붙는 훈장쯤으로 여겨진다. 그들은 타인의 생각에 편입되려는 노력을 하지 않기 때문이다. 작가도 어쩌면 그렇게 불렸을지 모른다. 자유로운 삶에는 반드시 대가가 필요하다는 얘기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8)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나는 인생을 멀리서만 바라보려 애쓰며 살았구나, 생각할 때가 있습니다. 싸움이든 평화든 가급적 멀찌기 떨어진 곳에서 바라보려 했을 뿐 나 스스로 주도하여 인생의 심장을 향해 돌진해 보려 하지 않았다는 것입니다. 어쩌다 누군가의 손에 이끌려 직접적인 삶과 대면했을 때 나는 불에 덴 듯 화들짝 놀라기도 했었고, 서둘러 그 자리를 피하고자 발을 동동 굴렀습니다. 그렇게 나는 방관자의 삶을 이제껏 살아왔는지도 모르겠습니다. 두려움 때문이었겠지요. 마음의 상처를 무엇보다 두려워했던 나였기에 실체도 없는 어렴풋한 삶을 굳이 노력하지 않아도 잘만 견딜 수 있었던 게 아닌가 싶습니다.

 

 3월의 마지막 날이자 한 주를 마감하는 금요일, 잊었던 봄비가 소리도 없이 내립니다. 비에 젖은 보도에서는 비릿한 먼짓내가 피어납니다. 영장실질심사를 받았던 전직 대통령이 서울구치소에 수감되었다는 소식과 인양된 세월호가 목포 신항을 향해 출발했다는 소식이 묘한 대조를 이루는 아침입니다. 저질렀던 죄는 차치하고라도 그녀의 운명도 참 기구하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던 건 인간이 운명 앞에 얼마나 작은 존재인지 착잡한 심정에 휩싸였기 때문입니다. 한 치 앞의 일도 알 수 없는 게 인간이고 보면 누구든 자신의 힘만 믿고 떵떵거리며 오만하게 굴 일도 아닌가 봅니다.

 

벌과 나비가 사라진 처량한 봄입니다. 어쩌다 보게 되는 나비 한 마리가 그리 반가울 수가 없습니다. 구치소에 수감된 전직 대통령은 평범하게 하루를 시작하는 우리와 같은 사람들을 오히려 부러워 할지도 모르겠습니다. 4월이 오고 있습니다. 만개한 꽃들이 사람들을 유혹하겠지요. 소리도 없이 비가 내리고 여러 상념들이 비와 함께 가라앉습니다.


댓글(2) 먼댓글(0) 좋아요(11)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2017-03-31 11:44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7-04-02 16:42   URL
비밀 댓글입니다.
 
빗방울처럼 나는 혼자였다
공지영 지음 / 해냄 / 2016년 11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자신의 인생에서 가장 화려했던 봄날을 꼽으라면 언제라고 말할 수 있을런지요. 해마다 봄이 오면 나는 문득 미안해지는 나이가 되었습니다. 지난해를 돌이켜보면 뭐 하나 변변히 해놓은 일도 없는데 떡 하니 차려진 이 찬란한 봄을 올해도 이렇게 염치없이 도둑 구경을 해도 되는가, 묻지 않을 수 없기 때문입니다. 차라리 저 먼 과거의 어린 시절에는 이만큼 자랐으니 장하지요, 떳떳하게 말할 수 있었을 터인데 지금은 하는 일 없이 나이만 먹고 해마다 빈 손으로 '억장이 무너지는' 봄날을 오롯이 구경만 하고 있으니 말이지요.

 

나는 요즘 봄밤의 미안함을 달래기 위해 공지영의 에세이집 <빗방울처럼 나는 혼자였다>를 변명처럼 읽고 있습니다. 누구에게나 아픈 시절이 있고, 겨울의 눈보라를 속수무책으로 맞을 수밖에 없는 날들이 이따금 찾아온다는 것을 작가는 말하고 있었습니다. 그래요. 그럴지도 모르지요. 봄날의 화려함은 지난 겨울의 처참함을 가리기 위한, 대책도 없이 추레했던 그날의 기억을 잊기 위한 눈홀림에 불과할지도 모르겠습니다.

 

"J, 성장에는 고통이 뒤따른다는 사실이, 인간이 성숙해지기 위해서는 필히 물레방아처럼 많은 눈물이 필요하다는 것이 내게는 여전히 달갑지 않지만 이제는 볼멘소리로 그냥 예, 하게 되었습니다. 그러나 가끔 저 자신에게 묻기도 합니다. 정말 그렇게 울어보았나, 정말 물레방아처럼 온몸으로 울어보았나, 설사 그것이 고귀한 것이 아니라 그저 나 자신의 이기심을 위해서라 하더라도 그렇게 온몸으로…… 온몸으로……." (p.128)

 

추억이라 말할 수 있는 기억이 때로는 고문이 될 수 있다는 걸 압니다. 인간의 능력이란 고작 과거의 기억을 타의적으로만 회고할 수 있을 뿐 떠오르는 기억을 자의에 의해 막을 수는 없기 때문입니다. 삭정이처럼 황폐하고 메마른 심정일 때 아름다운 시절에 대한 기억은 우리를 얼마나 주눅들게 하는지요. 차라리 그것은 육체에 가해지는 형벌보다 더한 고통입니다.

 

작가의 두번째 산문집이라는 이 책을 읽으면서 두서없는 생각들이 자맥질하듯 의식의 표면 위로 떠올랐다 가라앉았습니다. 작가 또한 힘겨운 시간을 보냈다는 걸 언론을 통해서든 지인으로부터의 입소문을 통해서든 들어서 알고 있습니다. 심한 고통을 겪고 난 후 한 인간의 모습은 아름다워질 수 있다는 걸 믿는지요. 폭풍이 몰아친 후 맑게 개인 하늘처럼 말입니다. 그것은 아마도 타인의 고통이 내 고통인 양 느껴지지 않는, 오롯이 타인의 고통이기 때문인지도 모르겠습니다. 작가는 'J'라는 익명의 존재에게 편지를 보내는 형식으로 글을 이어가고 있습니다. 자신의 속내를 털어놓기 위해서는 가상의 누군가가 절실히 필요했을지도 모르겠습니다.

 

각각의 글은 D.H. 로렌스의 '겨울 이야기', 파블로 네루다의 '나는 생각한다', 백석의 '나와 나타샤와 흰 당나귀', 기형도의 '빈 집', 자크 프레베르의 '이 사랑', 김남주의 '철창에 기대어', 문태준의 '살구꽃은 어느새 푸른 살구 열매를 맺고', 베르톨트 브레히트의 '서정시를 쓰기 힘든 시대' 등의 문학 작품들을 매개로 하여 글을 전개하고 있습니다. 아, 그리고 내가 좋아하는 산도르 마라이의 '하늘과 땅'도 등장합니다. '우리가 열어놓은 문으로 운명이 들어오고, 또 우리가 운명에게 더 가까이 오라고 청하는' 거라고 그는 어느 책에선가 말했습니다. '우리의 기약은 아득한 은하수(相期邈雲漢)'라고 끝을 맺는 이백의 시 '월하독작(月下獨酌)'도 보입니다.

 

"산도르 마라이, 아흔이 다 된 나이에 혼자서 미국의 한 도시에서 권총 자살로 생을 마감한 그. 이럴 때는 아흔이라는 복된 장수조차 형벌이었다는 생각도 듭니다. 도대체 무엇이 우리의 행복과 불행을 감히 객관이라는 말로 정의할 수 있단 말입니까?" (p.225)

 

그렇습니다. 책의 제목인 '빗방울처럼 나는 혼자였다'는 이라크 시인 압둘 와합 알바야티의 시 '외로움'에 나오는 구절입니다. 빗방울들이 합쳐져 강으로 바다로 흐르듯, 사람들의 모든 외로움과 상처의 빗방울들이 화해와 용서의 바다로 흘러 위로 받길 바란다는 뜻이라고 합니다. 그러나 아무려면 어떻습니까. 빗방울처럼 서로 비슷해 보이는 수많은 사람들이 지척에 있지만 결국 홀로 존재할 수밖에 없는 것이 인간이라면 나의 지나친 해석일까요.

 

작가가 털어놓는 감정의 부침들은 솔직하다 못해 더러 읽는 것조차 힘에 겨울 때가 있습니다. 글을 쓰지 못하고 칩거하던 시절, 작가에게 위로가 되었던 시와 그때의 단상들을 정리하였다는 이 책은 봄날의 변명을 고해성사처럼 읊어야 하는 세상의 모든 사람들에게 위로의 한 줄이 되지 않을까 싶습니다. 마음의 갈라진 틈은 누군가의 고통과 눈물로 메워진다는 걸 우리는 세월이 많이 흐른 뒤에나 깨닫게 되겠지요. 이제 막 벙글기 시작하는 목련을 그저 바라볼 수밖에 없는 봄입니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9)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