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사단장 죽이기 1 - 현현하는 이데아
무라카미 하루키 지음, 홍은주 옮김 / 문학동네 / 2017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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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야흐로 삼복더위가 한창인 요즘, 더위 얘기를 다시 또 하는 것으로도 모자라 더위를 즐기라고까지 한다면 시원하기는커녕 더 더워지려나. 그럴지도 모르겠다. 그러나 내가 사는 많은 날들 중에 더위라는 달갑지 않은 짐이 여름 내내 얹혀진다고 느끼는 것과 내가 사는 많은 날들 중에 단지 더운 하루하루를 체험하면서 여름이라는 계절을 보낸다고 느끼는 것은 상당한 차이가 있다. 예컨대 새로운 하루를 체험하려고 하는데 막상 뚜껑을 열어 보니 더운 날씨네, 라고 생각하면 더위는 한층 가볍게 느껴진다는 것이다. 더 나아가 습하고 더운 하루일지언정 제법 소중한 시간으로 여겨지기도 하고 말이다.

 

하루의 날씨에 대해 여러 생각이 드는 것처럼 소설을 읽을 때도 나는 작가의 성향을 살펴보곤 한다. 주인공이 자신의 삶을 이러이러하게 생각하고 계획함으로써 이러이러한 인생을 살았다고 쓰는, 다소 관념에 치우치는 작가가 있는가 하면 주인공이 하루하루를 이러이러하게 살았더니 이러이러한 인생이 되었다고 쓰는, 체험을 중시하는 작가가 있게 마련이다. 나이가 들수록 나는 체험을 중시하는 작가가 눈에 띄게 좋아진다. 인생은 결국 계획하여서 되는 게 아니기 때문이다. 그것을 인정하고 나면 남은 건 하루를 어떻게 보내느냐의 문제만 남는다. 인생 전체가 어떤 모습으로 완결되는가 하는 문제는 관심에서 사라지는 것이다. 그러므로 소설을 쓰는 작가가 어떤 관점에서 인생을 바라보느냐 하는 문제는 매우 중요한 듯 보인다. 주인공의 일상을 작가가 직접 보고 듣고 체험하는 것처럼 주인공의 하루하루를 꼼꼼히 기록하다 보니 결국 이런 소설이 되었다고 말하는 것과 소설의 구성과 테마를 미리 계획하고 그에 따라서 주인공의 세부 일정을 기록하였다고 말하는 것은 결과에 있어서 엄청난 차이를 벌려 놓는다.

 

내가 좋아하는 작가 무라카미 하루키는 체험을 중시하는 전형적인 작가 중 한 명이다. 그의 최신작 <기사단장 죽이기>도 작가의 기존 성향에서 벗어나지 않는다. 그러자니 주인공인 '나'가 어떤 생각을 하고, 어떤 냄새를 맡으며, 어떤 음악을 듣고, 어떤 음식을 먹느냐의 문제가 중요해질 수밖에 없다. '나'의 시선에 들어온 상대방의 표정이나 입고 있는 옷, 그(또는 그녀)가 타고 온 자동차, 신발 등 겉으로 드러나는 하나하나의 것들이 모두 중요한 것도 그런 이유이다. 이런 식으로 써나가다 보면 소설은 무한대로 길어질 수도 있지만 작가에 의해 적당한 선에서 멈춰진다. 그것은 곧 주인공의 체험인 동시에 작가의 체험이기도 하다. 나아가서 책을 읽는 독자의 경험이라고도 말할 수 있다. 독자 또한 주인공의 체험을 고스란히 전달받고 있기 때문이다. 관념을 중시하는 독자나 비평가의 눈에 비친 하루키의 소설은 가볍거나 경박하고, 대중적이거나 상업적이며, 때로는 지루할 수도 있다. 매일매일 바뀌는 디테일한 일상에 주목하지 않으면 그날이 그날 같은 반복되는 일상으로 여겨질 테니까 말이다.

 

"시간이 흐른 뒤 돌이켜보면 우리 인생은 참으로 불가사의하게 느껴진다. 믿을 수 없이 갑작스러운 우연과 예측 불가능한 굴곡진 전개가 넘쳐난다. 하지만 그것들이 실제로 진행되는 동안에는 대부분 아무리 주의깊게 둘러보아도 불가해한 요소가 전혀 눈에 띄지 않는다. 우리 눈에는 쉼없이 흘러가는 일상 속에서 지극히 당연한 일이 지극히 당연하게 일어나는 것처럼 비치는 것이다. 그것은 어쩌면 도무지 이치에 맞지 않는 일인지도 모른다. 하지만 이치에 맞는지 아닌지는 시간이 흐르고 나서야 드러난다." (p.94~p.95)

 

당연한 일이지만 하루키 소설에서 주인공의 모든 감각은 생생히 살아 있다. 경험의 축적은 결국 감각으로 인지되는 것이기 때문이다. 그날 입었던 상대방의 옷은 밋밋한 면바지가 아니라 연녹색 치노 바지이거나 크림색 티셔츠여야 하고, 그가 마시는 술은 싱글몰트 위스키처럼 구체적이어야 하며, 그가 타는 차는 은색 재규어처럼 특정한 차여야 하고, 아침은 토스트 세 쪽과 계란 두 개를 먹어야 하며, 연인과의 정사 순간처럼 느낌 하나하나가 생생히 살아 있어야 한다. 그러므로 작가가 쓰는 소설은 살아 있는 장면 하나하나의 결합일 뿐이다. 소설이 주는 메시지나 소설의 구성 등 소설 전체를 갖고 평한다는 게 잘못된 일인지도 모른다. 작가는 그저 순간순간의 경험으로 소설을 완성했기 때문이다. 만일 당신에게 누군가의 1년 치 일기를 읽고 주제를 말해보라면 그처럼 난감한 일이 또 있을까.

 

"숲의 정적 속에는 시간이 지나고 인생이 흘러가는 소리마저 들려올 것 같았다. 한 사람이 가고 다른 사람이 온다. 한 생각이 가고 다른 생각이 온다. 한 형상이 가고 다른 형상이 온다. 나 자신조차 반복되는 나날 속에서 조금씩 무너졌다가 재생된다. 무엇 하나 같은 장소에 머물지 않는다. 그리고 시간은 상실된다. 시간은 내 등뒤에서 조금씩 죽은 모래가 되어 무너지고 사라진다. 나는 그 구덩이 앞에 앉아 시간이 죽어가는 소리에 마냥 귀를 기울였다." (p.369)

 

<기사단장 죽이기> 또한 스토리는 별게 없다. 30대 중반의 초상화가인 '나'는 아내에게 갑자기 결별을 통보받는다. 어떤 이유나 사전 통고도 없이 벌어진 갑작스러운 일이었다. 그렇다고 '나'는 아내의 결정이 부당하다면서 따지거나 화를 내거나 아내가 자신을 두고 바람을 피운 구체적인 이유를 캐묻지 않는다. '나'는 무언가를 납득하는 데 시간이 많이 걸리고, 세상을 살기 위한 열원(熱源)이나 반짝이는 의지 같은 게 부족한 사람이다. '나'는 간단한 생활용품을 챙겨서 집을 나온다. 차를 몰고 정처 없이 떠돌던 '나'는 대학 동기인 아마다 마사히코의 권유로 화가였던 그의 아버지의 거처에 정착한다. 그의 아버지 아마다 도모히코는 일본화로 명성이 자자한 유명화가였지만 나이가 들고 치매가 심해져 요양원에 입원중이다. 도모히코의 거처이자 작업실이었던 그 집에서 '나'는 우연한 기회로 고가의 초상화를 그리게 되고, 초상화의 의뢰인이었던 멘시키와 얽혀들게 되면서 다양한 경험을 겪게 된다는 이야기이다.

 

"즉 우리 인생에는 현실과 비현실의 경계가 잘 보이지 않을 때가 왕왕 있다는 말이죠. 그 경계선은 꼭 쉬지 않고 오락가락하는 것처럼 보입니다. 그날 기분에 따라 멋대로 이동하는 국경선처럼요. 그 움직임에 각별히 주의해야 합니다. 안 그러면 자신이 지금 어느 쪽에 있는지 알 수 없어지니까요. 아까 제가 더이상 구덩이에 머무르면 위험할지도 모른다고 했던 건 그런 뜻입니다." (p.340)

 

소설은 현실과 비현실, 실재와 관념을 오가며 진행된다. 앞에서도 언급했듯 이 소설은 감각이나 체험을 위주로 쓴 소설이다. 그러므로 갑자기 혼자가 된 삼십대 중반의 남자가 가장 관심있어 할 대상 또한 자신의 성적 욕망을 해결하기 위한 여성일 것이라고 작가는 단정한다. 자주 있었던 것은 아닐지라도 주인공인 '나'의 성적 체험이 자주 언급되는 것도 그 당시의 '나'에게 그때의 체험이 머릿속에 깊이 남아서일 테다. 그럴 수밖에 없을 것이다. 화가인 '나'에게 있어 무엇보다 시각이 중요하겠지만 보여지는 어떤 것들은 아주 세밀하게 묘사되곤 하지만 흔한 풍경처럼 독자의 관심을 끌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 하루키 문학에서 단골처럼 등장하는 음식이나 음악 또한 이 소설의 스토리 전개와 어떤 관련이 있을까 생학하면서 읽는 것도 재미있을지 모른다.

 

"지금까지 내 길인 줄 알고 별생각 없이 걸어왔던 길이 갑자기 발밑에서 쑥 사라져버리고, 어디로 어떻게 가야하는지도 모르는 채 그저 허허벌판을 터벅터벅 걸어가는, 그런 느낌이야." (p.556)

 

이 소설은 1권과 2권으로 구성되어 있다. 1권의 리뷰에서 스토리나 인물을 다루지 않았던 까닭도 그런 이유이다. 소설의 인물이나 구성, 스토리 등을 논하기에는 섣부른 감이 없지 않기 때문이다. 나는 이미 2권까지 다 읽은 상황이지만 글의 분량도 나눌 필요가 있고, 내용도 구분할 필요가 있기에 1권의 리뷰에 있어서는 소설에 등장하는 인물이나 구성, 글의 전개 등에 대해서는 가급적 쓰지 않을 작정이다. 2권의 리뷰를 위해 남겨두는 측면도 있다. 오늘도 꽤나 더운 하루였다. 작가가 1권에서 던진 한마디의 말을 화두 삼아 곰곰 생각해보는 저녁이 되길 바라는 의미에서 주인공이 했던 말을 인용해 본다. '진실이 때때로 사람에게 얼마나 깊은 고독을 가져오는지.' 무엇인가 깊은 의미를 발견하기 위해 한참 동안 집중하다 보면 더위도 잊고 스르르 잠이 들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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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도 무척이나 더웠죠? 아닌 척, 짐짓 무덤덤한 척 해보지만 표정을 숨기기는 어렵네요. 오전 내내 끄느름하던 하늘이 오후가 되자 뜨거운 햇살을 마구 쏟아냅니다. 습도도 높고 바람마저 없는 전형적인 여름 한낮입니다. 나는 지금 더위를 피해 도서관에 와 있습니다. 여름 피서지 치고는 이만한 데가 없는 듯합니다. 적당한 냉방과 조용한 분위기, 낡은 책장에서 풍기는 퀴퀴한 곰팡내, 사람들의 숨소리와 책장 넘기는 소리, 이 모든 게 하나의 풍경으로 잡힙니다.

 

그러나 사람들이 오가는 공공장소에서는 으레 이런저런 말썽이 있게 마련이지요. 작든 크든 말이지요. 나는 사실 도서관과 같은 엄숙한 분위기에서는 잘 집중을 하지 못합니다. 오히려 번잡한 생활소음이 상존하는 대형서점의 한 모퉁이에서 집중을 더 잘하는 편입니다. 참으로 이상한 종이지요. 사실 도서관은 그저 책을 읽거나 책을 빌리는 것 이상의 쏠쏠한 재미가 있는 곳이기도 합니다. 오가는 사람들의 걸음걸이며, 표정이며, 걸친 옷이며 악세사리며, 행동거지 하나하나가 다 흥미롭습니다. 때로는 아이들의 귀에 대고 조용히 속삭이는 어느 엄마의 소곤거림도 무척이나 감미롭게 들립니다. 그러나 이런 평화로운 풍경이 순식간에 돌변할 때도 없진 않습니다.

 

열람실에서 책을 읽고 있을 때였습니다. 맞은편 좌석에는 일흔은 족히 넘으셨을 듯한 할아버지 한 분이 앉아 있었고, 할아버지의 오른쪽 좌석에는 중년의 여인 한 분이 책을 읽고 있었습니다. 할아버지는 책을 읽기 위한 목적보다는 더위를 피할 목적이 더 큰 듯 보였습니다. 주머니에서 이따금 사탕을 꺼내 드셨으니까요. 사탕의 껍질을 벗기는 소리가 꽤나 크게 들렸던가 봅니다. 옆에서 책을 읽던 아주머니가 대뜸 할아버지에게 큰 소리로 항의했던 걸 보면 말입니다. 사람들의 시선이 우리 쪽으로 쏠렸던 건 너무나 당연했습니다. 조용하더 도서관이 일순 술렁거렸으니까요. 도서관의 직원이 와서 두 사람의 갈등을 중재하였고, 소란이 잠잠해지자 사람들은 아무일도 아니라는 듯 다시 제 할 일을 하였습니다.

 

머쓱해진 할아버지는 그 길로 도서관 밖으로 나가셨습니다. 처진 어깨가 안쓰러워 보였던 건 나만의 생각이었는지도 모르겠습니다. 할아버지의 행동이 정당했다는 건 아닙니다. 잘못하셨지요. 그러나 할아버지는 반평생이 넘도록 공중도덕이라고는 모른 채 살아오셨을지도 모릅니다. 7,80년대만 하더라도 버스나 기차 안에서 담배를 피우는 게 다반사였고, 영화관도 늘 담배연기로 자욱했었으니까요. 나이차로 보면 딸이나 진배없는 사람에게서 망신을 당했으니 할아버지에게는 오늘이 정말 운수 없는 날이었는지도 모르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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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07-29 22:02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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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08-01 19:27   URL
비밀 댓글입니다.
 
서툰 감정
일자 샌드 지음, 김유미 옮김 / 다산지식하우스(다산북스) / 2017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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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 예능 프로에 나와서 했던 유시민 작가의 말이 문득 떠오른다. 정치를 그만두기로 결심한 후 최종 결정을 내리기 전에 그는 포털에 올라온 자신의 이미지 10년 치를 모두 검색해 보았다고 밝히면서 "내가 이 얼굴로 10년을 살았나 싶더라"고 말했다. 자신의 얼굴이 날카로워 보였을 뿐만 아니라 고통스러워 보여서 더는 이렇게 인생을 살면 안 되겠다 생각했다는 것이다. 자신의 과거 경험을 들려주던 작가는 이야기의 말미에 덧붙여서 같은 공간에서 많은 시간 생활하는 사람들끼리 일주일 동안 많은 사진을 찍어 서로 교환해 보라고도 권했다. 사람들은 평상시에 자신의 얼굴을 잘 못 보기 때문에 스스로의 마음 상태를 알 수 없기 때문이란다. 만약 타인이 찍은 사진 속의 자기 얼굴이 다 안 좋다면 직장을 바꿔야 한다고도 했다. 잘 생기고 못 생기고가 아니라 자기 자신의 얼굴이 주는 느낌, 그것이 좋을 때 그 사람은 행복한 삶을 살고 있다는 뜻이라면서.

 

맞는 말이다. 이미 결정된 자신의 인생을 획기적으로 바꿀 방법은 없다 할지라도 적어도 남은 인생을 어떻게 살면 불행하지 않을까 고민해 볼 수는 있을 것이다. 나는 그 방법론 중 하나로 '감정수업'을 꼽고 싶다. 더구나 자신의 감정 표현에 있어서는 세계의 다른 어느 나라 사람들보다 서툰 우리나라 국민이기에 '감정수업'은 행복한 삶을 위한 필수적 전제 조건이 아닐까 싶다.

 

"과거에 일어났던 일을 수용하는 것보다 실패한 관계에 분노를 쏟아붓는 것이 더 편하게 느껴질 수도 있다. 그러나 과거는 결코 바뀌지 않는다. 이전에 받은 상처를 지닌 채 그 상처와 연관된 상실감과 더불어 살아가야 한다. 그것을 현실로 받아들일 때, 당신의 분노는 슬픔으로 바뀌게 된다. 슬픔은 치유의 능력을 가지고 있다." (p.90)

 

덴마크의 심리치료사 일자 샌드가 쓴 <서툰 감정 The Emotional Compass>은 우리가 자신의 감정에 대해 얼마나 무지하고 대책이 없는지 다시 한 번 깨닫게 하는 책이다. 더구나 되도록이면 자신의 감정을 드러내지 않는 게 미덕인 양 교육을 받아왔던 우리로서는 감정에 서툴 수밖에 없는 것이 현실이다. 그러나 언제까지고 자신의 감정을 억제만 하면서 살 수는 없을 것이다. 임계점에 이른 감정은 결국 아무도 예측할 수 없는 행동으로 폭발하고야 말 것이고 우리를 둘러싼 관계를 일시에 악화시킬 것이기 때문이다.

 

저자는 군더더기 없는 간결한 문체로 문제의 핵심을 제시하고 그에 대한 자신의 경험과 해결 방안을 피력한다. 총11장으로 구성된 이 책은 '1장 우리는 감정에 속고 있다, 2장 감정에 휘둘리지 않으려면, 3장 분노는 현실에 대한 오해에서 비롯된다, 4장 분노는 전염성이 강한 감정이다, 5장 자존감, 자신의 가치를 인정하는 습관, 6장 슬픔은 잃어버린 것을 애도하는 과정이다, 7장 질투는 수치스러운 게 아니다, 8장 불안한 게 당연하다, 9장 행복해야 한다는 강박을 버리자, 10장 우리는 왜 끝없이 관계를 맺는가, 11장 설명하지 말고 느낌을 표현하라'의 순서로 인간의 감정 전반을 다루고 있다.

 

심리 치료사들은 대체로 인간의 기본적인 감정을 행복, 슬픔, 불안/두려움, 분노의 네 가지로 규정한다. 그러나 인간의 감정은 대체로 혼합되고 변형되는 경향이 있을 뿐만 아니라 감정의 강도가 약할 때에는 스스로도 인지하지 못하는 경우가 허다하다. 어떤 사람은 갈등을 일으키는 게 싫어서 문제를 외면하기도 한다. 그런가 하면 겉으로 표출되는 행동이 우리가 예측하는 감정이 아닌 경우도 많다. 예컨대 울고 있는 여자가 단순히 슬퍼서가 아니라 겁을 먹거나 화가 났기 때문일 수도 있고, 남자가 화를 내는 원인이 분노가 아닌 두렵거나 우울하기 때문일 수도 있다. 이처럼 감정은 그 종류를 파악하기도 어려울 뿐만 아니라 원인도 알기 어렵다. 그러나 우리가 스스로의 감정수업을 통해 감정의 종류와 원인을 파악할 수만 있다면 타인과의 관계도 좋아질 뿐만 아니라 삶의 질 또한 향상시킬 수 있을 것이다.

 

"어떤 감정을 느끼는 이유나 어떤 것을 원하는 이유를 설명하지 말고, 당신이 느끼고 감지하고 원하는 것을 표현하라. 상대방은 당신에게 훨씬 더 큰 공감과 친밀감을 느낄 것이다. 굳이 자신을 설명하고 옹호하고 정당화하려고 하지 않아도 된다. 당신이 느낀 것을 그대로 표현하라. 그것으로 충분하다." (p.201)

 

감정은 자신의 의지로 선택할 수 있는 게 아니다. 이런 상황이니까 이런 감정을 느껴야겠군, 하면서 물건을 고르듯 골라잡을 수만 있다면 오죽이나 좋을까. 그러나 우리는 형체도 없고 선택할 수도 없는 감정이라고 해서 버리거나 그로부터 멀리 벗어날 수있는 방법도 알지 못한다. 좋든 싫든 평생을 같이 가야 하는 것이다. 그렇다면 좋은 감정을 남들보다 더 크게 느끼며 사는 게 상책이다. 범사에 그저 무덤덤할 게 아니라 남들이 보기에는 작은 행복일지언정 크고 강하게 느낄 필요가 있는 것이다. 행복은 감나무에서 감이 떨어지듯 우연히 얻어지는 게 아니라 스스로의 노력에 의해서 발견되는 것임을 <서툰 감정>을 통하여 깨닫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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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정부와 지금의 제1야당인 자유당(새누리당)이 내놓았던 정책이나 법안에 대해 찬성하거나 반기는 건 별로 없었지만 단 하나 고마워하는 게 있습니다. 그게 뭔고 하니 그것은 바로 담뱃세 인상입니다. 저는 헤비 스모커라고 하기에는 뭐하지만 오랜 시간 담배를 즐겨왔던 건 사실입니다. 하루에 대략 열다섯 개비 이상은 늘 피워왔으니까요. 애국자였던 셈이죠. 자신의 몸을 희생해가면서 세금을 충실히 낸 셈이니까 말입니다. 그런데 어느 날 갑자기 2000원대였던 담뱃값을 4000원대로 올리겠다는 정부 발표에 강한 반감이 들었습니다. 애연가들에게는 그야말로 날벼락이 아니었을까 싶습니다. 꼬우면 담배를 끊으라는 얘기였죠. 자유당이나 그 당시의 정부 태도는 '담뱃값을 이렇게 올려도 너희같은 의지 박약아들은 담배를 절대 끊지 못할걸. 적이나 불만이면 한번 끊어보시든가.'하는 표정이 역력했습니다.

 

'아, 이제는 나도 담배를 끊어야 할 때가 왔구나' 하는 생각이 절로 들었습니다. 아침운동을 거르지 않고 한 덕분인지 그렇게 담배를 피우면서도 건강에는 딱히 문제가 없었던 까닭에 담뱃값만 크게 오르지 않았더라면 굳이 금연을 결심하지는 않았을 듯합니다. 그게 2014년 하반기의 일이었고, 저는 실제로 담뱃값이 올랐던 2015년 1월 1일부터 담배를 끊었습니다. 저에게는 크나큰 결심이었습니다. 금연을 실행에 옮긴 지 벌써 2년 반이 지났습니다. 누구나 그렇겠지만 저에게도 위기가 없었던 건 아닙니다. 다만 그 당시의 자유당과 정책 입안자들에게 지고 싶지 않았을 뿐입니다. 그들이 아니었더라면 저는 백해무익하다는 담배를 지금도 피우고 있었겠지요.

 

혹시 자유당 대표의 예전 꿈이 뭐였는지 아시나요? 어디선가 얼핏 듣기로는 코미디언이라고 하더군요. 그래서인지 그는 자유당의 대표가 되자마자 당원들에게 지시를 내렸던 듯합니다. 웃을 일 없는 국민들을 위해 국회의원 신분은 잠시 잊고 코미디를 선보이라고 말입니다. 그렇게 해서 나온 코미디 대본 1호가 담뱃세 인하입니다. 자신들이 했던 담뱃세 인상을 뒤집겠다는 건 절대 아닙니다. 그저 한번 웃겨보려는 것이죠. 거기에는 당대표의 꿈을 뒤늦게나마 실현시켜 드리겠다는 당원들의 깊은 충정도 있을 것입니다.

 

 

 

저는 오늘 아침에도 산에 올랐습니다. 그들이 다음에 내놓을 코미디 대본을 생각하면서 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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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학상 수상을 축하합니다 - 세계 8대 문학상에 대한 지적인 수다
도코 고지 외 지음, 송태욱 옮김 / 현암사 / 2017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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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면의 습기가 말라가는 동안 인적이 끊긴 거리에는 말매미 소리만 가득했다. 때로는 하나의 소리가 다른 소리를 잠재움으로써 새로운 침묵을 만들어내는 경우가  있다. 말매미 소리만 요란한 고요. 열대야로 연일 잠이 부족했던 사람들은 그 고요 속으로 자신의 밀렸던 잠을 슬몃 들이밀었는지도 모른다. 한껏 드높았던 인간의 힘이 이렇듯 힘없이 수그러드는 날에는 자연의 범주에서 인간만 소외되는 듯한 느낌을 받는다. 자연의 뜨락에서 멀리 밀려난 듯한 인간의 모습은 초라하기 그지없다. 추레한 인간을 구제하는 것은 예술이다. 예술이라는 가교가 없었더라면 우리는 어쩌면 자연과의 친화를 영원히 포기했을런지도 모른다. 문학도 예외는 아니어서 인간과 자연의 순리를 끝없이 되내일 뿐만 아니라 자연에 속한 인간 존재의 자각을 선명히 드러내곤 한다. 결국 우리가 기억하는 문학상은 자연과 인간 사이의 가교 역할을 충실히 수행했던 것에 대한 우리 모두의 감사의 표시가 아닐까 싶다.

 

최근 도서출판 현암사에서 출간된 <문학상 수상을 축하드립니다>는 각종 문학상에 대한 여러 전문가의 대담을 책으로 엮은 대담집으로서 대담집 치고는 상당히 재미있는 책이라 할 수 있다. 노밸문학상, 맨부커상, 콩쿠르상, 퓰리처상, 카프카상, 예루살렘상, 아쿠타가와상, 나오키상, 이렇게 여덟 개 문학상을 다루었는데, 일본 책인 만큼 일본의 문학 교수와 평론가, 작가, 번역가 등 14명의 대담자가 등장한다. 물론 이 책에서 다루고 있는 문학상이 세계 최고의 문학상이라는 데에는 이견이 있을 수 있지만 말이다.

 

와세다대 문학학술원 교수인 도코 고지는 각각의 문학상에 모두 참여하였고, 다른 두 명의 대담자는 문학상마다 다르게 편성되었다. 이를테면 노벨문학상에는 도코 고지와 나카무라 가즈에, 미야시타 료가 참여하였고, 아쿠타가와상에는 도코 고지, 다케다 마사키, 다키이 아사요가 참여하는 식이다. 대담에 참여하는 세 명의 대담자는 수상작 한 편씩을 집중적으로 논의함으로써 모두 24편의 소설을 다루게 된다. 대담자들은 수상작을 논의하기 전에 각각의 문학상에 대한 성향을 다루면서 독자의 예상과는 상당히 다른 작가가 수상자로 선정되는 이유를 설명하기도 한다.

 

"또 한 가지 말할 수 있는 것은, 수상자 중 고령자가 많다는 사실입니다. 도리스 레싱Doris Lessing이 수상했을 때 "죽기 전에 줘야지 싶었겠지요"라는 코멘트를 한 것처럼 연령이 높을수록 받기 쉽습니다. 그리고 무엇보다 유럽의 주요 언어밖에 못 읽는 사람이 선정 위원이기 때문에 그 언어로 쓰는 사람이 압도적으로 유리합니다. 또 북유럽 출신이라면 더욱 유리합니다." (p.20)

 

흥미로웠던 것은 맨부커상에 대한 대담자들의 평가였다. 선정 위원의 구성이 문학 관련자들뿐만 아니라 다방면에 종사하는 이들로 구성된다는 점과 선정 위원들이 매년 교체된다는 점, 각각 100권이 넘는 후보작 전체를 읽고서 수상작을 선정함으로써 신뢰도를 높인다는 것이었다. 한 작가가 여러 번 수상할 수 있다는 점도 이채롭다. 살만 루슈디, 이언 매큐언, 줄리언 반스, 존 쿳시 등이 수상한 맨부커상의 수상작은 문학성에 재미까지 갖췄다는 평가다.

 

일본의 순문학과 대중문학을 대표한다고 인식되는 아쿠타가와상과 나오키상에 대한 대담자들의 평가는 신선하다. 사실 아쿠타가와상은 일본 문학계의 신인상으로서 문학계에 데뷔하는 정석 코스의 마지막 단계가 아쿠타가와상 수상이라는 말이 있을 만큼, 이 상을 수상했다는 것은 이제 본격적으로 시작이라는 선언과도 같다. 반면 나오키상은 중견 작가에게 주어지는 상으로서 어느 정도 예술성을 인정받고 인지도가 있는 작가의 대중적인 소설에 주어진다. 이쿠타가와상이 '유럽 문학처럼 쓴 일본 문학'이라면 나오키상은 '아시아에서 본 일본'이라는 관점이 반영된 작품이 많다는 평가와 함께 대담자들은 '아시아에 있으면서도 스스로 유럽의 일부로 여기는' 일본인들의 망상을 꼬집기도 한다.

 

책은 이들 문학상에 더해 문학과 음악, 보도 부문을 아우르는 퓰리처상(미국), 무라카미 하루키가 자신의 작품 '해변의 카프카'로 수상한 바 있는 카프카상(체코), 2009년 하루키의 수상 연설을 통하여 널리 알려진 예루살렘상(이스라엘), 1903년에 제정된 콩쿠르상(프랑스)을 다루고 있다.

 

"퓰리처상이란 미국의 문학상으로, 아마 일본에서 가장 이름이 알려져 있는 상일 겁니다. 하지만 어떤 상인지 물어보면 아무도 대답하지 못할걸요(웃음). 왠지 모르게 유명하고 번역서의 띠지에 '퓰리처상 수상'이라고 큼지막하게 쓰여 있기도 하지만요." (p.202)

 

대담은 문학상에서 그치지 않고 문학상과 인연이 없는 작가에 대한 이야기로 이어진다. 퓰리처상 최종 후보작에 다섯 번이나 이름이 올랐지만 매번 상을 놓쳤던 조이스 캐롤 오츠, 높은 인기에도 불구하고 수상 실적이 없는 폴 오스터 등 책을 좋아하는 독자들의 관심을 불러일으킬 만한 다양한 주제의 이야기를 들려준다.

 

지난해 우리나라 작가 한강은 <채식주의자>를 통하여 맨부커상 수상 소식을 알렸다. 덕분에 한강 작가의 다른 작품들, 이를테면 <소년이 온다>, <희랍어 시간> 등도 덩달아 인기를 끌었고, 여타의 다른 한국 소설들이 모처럼 베스트셀러 목록의 상위권에 오르기도 했다. 그러나 순간에 그치는 관심은 한국 문학의 장기적인 발전을 도모하지 못한다. <문학상 수상을 축하합니다>는 사실 문학상과 연관된 다양한 주제의 소설에 대해 문학 전문가들이 펼치는 깊고 풍성한 이야기 한마당이다. 그럼에도 일반 독자의 관심을 끌지 못하는 이유는 아마도 정보의 비대칭성에 있지 않은가 싶다. 문학상 수상 작품과 여러 수상작가들에 대한 지식의 폭이 넓은 대담자들에 비해 나를 비롯한 일반 독자들의 지식은 일천하기 짝이없다는 것이다. 우리나라의 문학상이 세계적인 문학상으로 격이 높아진다면 얘기는 또 달라질 것이다. 한 나라의 문화 발전은 결국 예술을 창조하는 사람에게서 그치지 않는다. 예술을 향유하는 사람의 수준이 높아지지 않으면 그것은 한낱 공염불에 그칠 것이다. 고은 시인의 노벨상 수상을 바라면서도 정작 고은 시인의 시는 읽지 않는 한국인의 이중적인 태도를 감안할 때 한강 작가의 수상은 '한국 문학의 쾌거'라고 확대 해석할 게 아니다. 그것은 단순히 문학 볼모지에서 태어난 한 작가의 지난한 노력의 결과일 뿐이다. '제4차 산업혁명'을 주도하는 것도 결국 그 나라의 독서력에 달려 있을 것이다. 문화는 사회 전반을 아우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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