갑자기 변한 날씨에 다들 어리둥절한 표정입니다. 뚝 떨어진 기온과 물기를 쏙 뺀 바람, 사라진 매미 울음 소리에 사람들은 '이거 실화야? 아직 8월인데?'라는 질문을 누군가에게 묻고 확답이라도 받고 싶어 하는 듯했습니다. 8월 내내 비를 뿌리던 덥고 습한 날씨가 손바닥 뒤집 듯 한순간에 확 바뀌다 보니 얼떨떨한 느낌이 들지 않을 수는 없지만 문제는 날씨에 맞춰 몸이 잘 적응하지 못한다는 것입니다. 주변에도 감기에 걸린 사람들이 두서너 명 보이고 말이죠.

 

오늘은 원세훈 전 국정원장에 대한 선고가 내려진 날입니다. 무려 4년을 질질 끌던 재판이었죠. 물론 정권이 바뀌지 않았더라면 무죄 취지의 벌금형이나 잘해야 집행유예 정도의 선고가 내려졌을런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러나 정권도 바뀌었고 이미 언론보도를 통해 조직적 선거개입이 확인된 만큼 그럴 수는 없었겠지요. 법원은 국가정보원법.공직선거법 위반 혐의 등으로 기소된 원 전 원장에게 징역 4년과 자격정지 4년을 선고하고 법정구속했습니다. 그의 범죄 사실에 비하면 턱없이 약한 처벌이 아니냐고 분개하실 분들이 있을지도 모르겠습니다. 흡족하지는 않을지라도 그나마 실형이 선고되었다는 사실에 만족하고 자위하는 수밖에 없을 듯합니다.

 

요즘 뉴스를 보면서 우리나라 언론이 참으로 문제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초등학교 교사가 6학년 학생과 성관계를 가졌다는 선정적인 보도를 무차별적으로 반복해서 내보낼 필요가 있었을까 싶은 것이죠. 조금 과하고 절제되지 않은 표현들도 난무하고 말입니다. 뉴스인지 가십인지 도무지 분간을 할 수가 없습니다. 게다가 왜 콕 집어 교사가 아닌 '여교사'라고 해야 하는지 이해가 되지 않습니다. 세상에는 남자든 여자든 이상한 사람이 있게 마련이고 교사 중에 이상한 사람이 있었구나, 하는 정도에서 그칠 일이지 그걸 꼭 '여교사'와 6학년 남학생으로 보도했어야 하는지 저는 지금도 이해가 되지 않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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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2년생 김지영 오늘의 젊은 작가 13
조남주 지음 / 민음사 / 2016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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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세대를 대략 30년으로 칠 때, 그 세대를 대표하는 출생연도는 반드시 있게 마련이다. G(Global) 세대를 대표하는 건 서울 올림픽이 있었던 1988년에 출생한 사람들이라거나, X 세대를 대표하는 1971년생처럼 말이다. 그 중에서도 가장 널리 회자되는 건 아마도 '58년 개띠'가 아닐까 싶다. 그것은 단순히 1958년 출생자라는 생물학적 개념을 넘어 격동의 현대사를 온몸으로 헤쳐온 베이비 부머 세대의 상징처럼 받아들여지고 있기 때문이다. '58년 개띠'는 미처 말도 떼기 전에 4. 19를 겪고, 이후 5.16, 10.26, 5. 18, 6. 10 등 격변하는 대한민국 근현대사의 중심에 있었다. 개인의 출생마저 자신이 직접 선택할 수는 없는 일이지만 복도 지지리 없는 세대는 분명 존재하는 것이다. 그렇다면 베이비 부머 세대의 자녀들이라고 말할 수 있는 '에코 세대'(1979 ~ 1992년 출생자를 일컫는 말)는 행복했을까?

 

소설가 조남주는 자신의 소설 <82년생 김지영>을 통하여 '에코 세대'의 고충을 사실적으로 그려냈다. 소설이라기보다 르포나 다큐멘터리에 가까운 이 소설은 베이비 부머 세대가 겪었던 가난(모두가 가난했던 시대에 절대적인 경험으로서의 가난)과는 또 다른 의미에서의 가난, 이른바 비교우위에서 오는 상대적인 가난, 성장 과정에서의 갖가지 성 차별, 핵가족화 된 독립세대의 고립과 홀로서기를 주인공 김지영의 시선으로 가감없이, 그리고 담담하게 기록하고 있다. 그래서 이 소설의 주인공은 '김지영'이나 '지영이'가 아니고 '김지영 씨'가 되어야만 했다. '에코 세대'를 대표하는 상징적이고 보편적인 인물, 그러면서도 여성으로서의 차별은 여전히 견뎌야만 했던 '김지영 씨'에게 많은 사람들이 공감하는 이유는 바로 거기에 있다. 82년생 '김지영 씨'가 겪었던 경험들이 바로 책을 읽는 우리 자신의 경험이었기 때문이다.

 

"길게 늘어진 치맛자락 끝을 꾹 밟고 선 작지만 굳건한 돌덩이. 김지영 씨는 그런 돌덩이가 된 기분이었고 왠지 슬펐다. 어머니는 김지영 씨의 마음을 알아채고는 너저분하게 흐트러진 딸의 머리칼을 손가락으로 다정하게 넘겨주었다." (p.37)

 

그렇다면 이 소설의 인기는 도대체 무엇에서 비롯되었던 것일까? 주인공의 화려한 성공담도 아니고, 그렇다고 주인공의 비극적인 삶을 다룬 이야기도 아닌데 말이다. 위로는 공부 잘 하는 언니가 한 명 있고, 밑으로는 남동생이 한 명 있는 집안에 공무원으로 명예퇴직한 아버지와 배운 건 없지만 이재에 능한 어머니 밑에서 그럭저럭 공부하여 수도권의 대학에 입학하고, 빚지지 않고 대학을 졸업했고, 산악 동아리에서 만난 남자 친구를 군대에 보내기도 하는 지극히 평범한 김지영 씨. 말하자면 그 세대에 해볼 만한 경험은 다 해본 셈이다. 그렇다고 지방의 그렇고 그런 대학에 입학하여 학비와 생활비를 조달하기 위해 알바를 전전하지도 않는다.

 

"김지영 씨는 가슴속에 눈송이들이 설기게 가득 들어차는 느낌이었다. 충만한데 헛헛하고 포근한데 서늘하다. 남자 친구의 말처럼 덜 힘들고, 덜 속상하고, 덜 지치면서, 어머니의 말처럼 막 나대면서 잘 해내야겠다고 생각했다." (p.109)

 

김지영 씨는 대학을 졸업한 후 중견 홍보대행사에 입사한다. 회사에서 나름 인정도 받고 직장 동료들과의 사이도 무난하다. 모나지 않은 성격의 정대현 씨와 결혼도 한다. 아이를 낳고, 회사를 그만둔다. 전업주부가 된 김지영 씨의 모든 이력은 물거품처럼 사라진다. 그게 다였다.

 

"첫 직장이었다. 첫발을 내딛은 세상이었다. 사회는 정글이고, 학교 졸업 후 만난 친구는 진짜 친구가 아니라고들 했지만 꼭 그렇지도 않았다. 합리보다 불합리가 많고, 한 일에 비하면 보상도 부족한 회사였지만, 어디에도 소속되지 않는 개인이 되고 보니 든든한 방패막이었다는 생각이 들었다." (p.145)

 

소설에 등장하는 인물들의 낱낱은 매우 사실적이고, 문장은 마치 범죄 사실을 기록하는 형사의 경찰 조서처럼 건조하게 이어진다. 때로는 각주를 달아 페이지의 하단에 참고도서를 명기하기도 한다. 김지영 씨는 이제 일주일에 두 번, 45분씩 정신과 상담을 받고 있다. 김지영 씨를 맡은 의사는 김지영 씨가 산후 우울증에 육아 우울증이 더해진 결과라고 진단한다. 그러나 의사는 자신의 진단이 성급했음을 고백한다.

 

"내가 평범한 40대 남자였다면 끝내 알지 못했을 것이다. 대학 동기이자 나보다 공부도 잘하고, 욕심도 많던 안과 전문의 아내가 교수를 포기하고, 페이닥터가 되었다가, 결국 일을 그만두는 과정을 지켜보면서 나는 대한민국에서 여자로, 특히 아이가 있는 여자로 산다는 것이 어떤 것인지 알게 되었다. 사실 출산과 육아의 주체가 아닌 남자들은 나 같은 특별한 경험이나 계기가 없는 한 모르는 게 당연하다." (p.170)

 

마음에 새겨진 상처는 한순간에 덧나지 않는다. 그것은 어쩌면 그 사람이 살아온 인생 전체에서, 삶의 궤적 모두에서 수없이 부서지고 찢기다가 어느 순간 갑자기 반짝 하고 조금쯤 치료되는 듯하다가 다시 또 아팠던 상처가 덧나면서 진행된 결과물일지도 모른다. 김지영 씨의 삶도 다르지 않았다. 부모님 세대나 이 시대의 남자들에게는 보이지 않았을 작은 상처들, 예컨대 버스나 지하철에서 임산부에 대한 배려보다는 자신들의 불편만 호소하는 것이라든가, 무심코 내뱉는 성희롱성 농담이라든가 하는 것들이 가슴에 치유되지 않는 상처로 남아 있을 터였다. 작가 조남주의 담담한 고백이 우레보다 더 큰 울림으로 다가오는 이유도 그런 까닭이다. 자세히 들여다보지 않으면 아무것도 알 수 없는 게 나 아닌 다른 이의 삶이다. 어림짐작이 통하지 않는다. 작가가 르포나 다큐멘터리처럼 쓸 수밖에 없었던 까닭을 독자는 고개를 끄덕이며 이해하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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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틴어 수업 - 지적이고 아름다운 삶을 위한
한동일 지음 / 흐름출판 / 2017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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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도 그만 안 해도 그만인 아주 작고 사소한 일을 하려고 할 때는 오히려 신중을 기하는 게 좋다는 게 내 생각입니다. 그런 일일수록 한 번으로 그칠 수 없는, 이를테면 반복을 요하는 일일 경우가 많기 때문입니다. 예컨대 직장인인 남편이 전업주부인 아내를 대신하여 저녁 설거지를 하게 되는 경우라거나, 신입사원이 다른 직원보다 일찍 출근하여 창문을 열어 환기를 시킨다거나 정수기 물통을 갈아 끼우는 일 등과 같이 한 번으로 그친다면 누구나 크게 힘 들이지 않고 수월하게 할 수 있는 일들 말입니다. 그러나 이런 일도 두어 번 반복하게 되면 슬슬 꾀가 나거나 '왜 나만 해야 해?' 하는 반감이 스멀스멀 생겨난다는 것입니다. 게다가 크게 표시도 나지 않는 이런 일들은 대개 늘 하던 사람이 그 일을 하지 않았을 때는 그 빈자리가 크게 보인다는 것입니다. 비난이 이어지는 것도 다반사죠. '어이, OOO 씨, 오늘 아침 환기 안시켰어? 그게 뭐 힘든 일이라고...'와 같은 말들. 그동안에 들인 노고는 아무것도 아닌 게 되고 그저 오늘 안 햇다는 사실만 부각되는 순간입니다. 집안일을 전적으로 책임지는 전업주부라면 이런 상황이 너무도 익숙할지 모르겠습니다.

 

"'베아티투도beatitudo라는 라틴어가 있습니다. '행복'을 뜻하는 단어인데 '베오beo'라는 동사와 '아티투도attitudo'라는 명사의 합성어입니다. 여기에서 '베오'는 '복되게 하다, 행복하게 하다'라는의미이고 '아티투도'는 '태도나 자세, 마음가짐'을 의미합니다. 즉 '베아티투도'라는 단어는 '태도나 마음가짐에 따라 복을 가져올 수 있다'라는 뜻이기도 합니다." (p.128)

 

우리가 살아가는 데 필요한 일은 작고 사소한 일이 대부분일 뿐만 아니라 그런 일은 대개 여러 사람에게 도움이 되는 경우가 많습니다. 또한 그런 일들은 전적으로 개인의 판단에 의해서 실행에 옮겨지게 된다는 사실입니다. 오히려 우리가 생각하는 큰일일수록 운명에 등 떠밀려 어쩔 수 없이 하는 듯한 그런 느낌을 받을 때가 많습니다. 결혼이나, 아이를 갖는 것이나, 죽음과 같은 그런 일들 말이지요.

 

"어쩌면 삶이란 자기 자신의 자아실현만을 위해 매진하는 것이 아니라 타인을 위한 준비 속에서 좀 더 완성될 수 있는 것인지도 모릅니다. 그 안에서 자아실현은 덤으로 따라오는 것이 아닐까요? '도 우트 데스.' 이 시간이 짧은 말 속에 담긴 많은 의미들을 생각해보는 기회가 되었으면 합니다." (p.122)

 

입사한 지 며칠 되지도 않은 신입사원이 회사의 중대사를 잘못 처리하였다고 해서 욕을 먹거나 책임을 지게 되는 경우는 아마 없지 않을까 싶습니다. 그보다 더 높은 직급에 있는, 책임질 위치에 있는 사람을 찾아 문책을 하겠지요. 그러나 작고 사소한 일은 얘기가 다릅니다. 그 일을 한다고 해서 직원들이 모두 할 때마다 고마워한다거나 기뻐하지는 않지만 하지 않았을 때는 그들로부터 비난을 받을 수도 있다는 사실입니다. 그리고 큰일은 대개 실행에 앞서 어떤 직관이나 참고할 만한 자료 검토를 통하여 할지 말지가 결정되지만 작은 일은 전적으로 타인에 대한 배려나 봉사정신, 또는 사랑에 의해 실행의 가부가 결정된다는 것입니다.

 

최근에 출간된 한동일의 <라틴어 수업>을 읽으면서 들었던 생각입니다. 저자도 강조하고 있지만 많은 사람들에게 어렵다고 정평이 나 있는 라틴어를 배우기 위해서는 '해야 할 일을 그냥 해나가는' 자세가 중요하다고 합니다. 우리가 마치 태도 나지 않는 작은 일을 꾸준히 해나가는 것처럼 말입니다. 거기에는 어떤 구도자와 같은 인내와 성실한 자세가 요구되는지도 모르겠습니다.

 

"이처럼 매일 출근해 일하는 노동자처럼, 공부하는 노동자는 자기가 세운 계획대로 차곡차곡 몸이 그것을 기억할 수 있을 때까지 매일 같은 시간에 책상에 앉고 일정한 시간을 공부해줘야 합니다. 머리로만 공부하면 몰아서 해도 반짝 하고 끝나지만 몸으로 공부하면 습관이 생깁니다. '하비투스'라는 말처럼 매일의 습관으로 쌓인 공부가 그 사람의 미래가 됩니다." (p.88)

 

우스갯소리입니다만 결혼 전의 남자들은 대개 자신이 원하는 목적을 달성하기 위해 이벤트에 목을 매곤 합니다. 사귀고 있는 여성분이 원해서일 수도 있고 그렇지 않을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이벤트에 목을 매는 남자들의 심리를 가만히 들여다보면 그들이 하는 이벤트 속에는 일회성의 크고 화려한 행사를 통하여 상대방 여성의 눈을 속이고 자신이 원하는 목적을 쉽게 달성하려는 조급함이 숨어 있기도 합니다. 게다가 작고 사소한 일은 꾸준함과 인내가 필요하지만 이벤트는 그런 게 요구되지 않기 때문에 비교적 수월하다는 장점도 있습니다. 그러나 우리의 삶은 이벤트가 아닌 소소한 일상으로 꾸려진다는 사실을 결혼 전의 여성들은 깊이 생각하지 않는 듯 보입니다.

 

"이런 훈련은 나아가 인간관계에서 나의 태도, 나의 대화법 등 인생의 많은 것들을 생각하게 합니다. 살아가는 데 중요한 것은 타인의 방법이 아니라 나의 방법이 무엇인지 끊임없이 묻고 찾아야 한다는 겁니다. 남다른 비결이나 왕도가 없다는 사실은 우리를 힘들게 하지만 그렇기에 묵묵히 해나가는 수밖에 없습니다." (p.242)

 

회사에서는 신입사원의 일상을 매의 눈으로 살피는 상사가 있게 마련입니다. 상사가 주목하는 것은 신입사원이 큰일을 성취했느냐 아니냐를 보는 게 아닙니다. 태가 나지 않는 작은 일이지만 규칙적으로 꾸준히 하고 있는가를 살피고 있을 뿐입니다. 그것은 곧 그 사람의 성품을 나타내기 때문입니다. 타인을 위한 배려, 인내심, 성실함 등 개인을 객관적으로 평가할 수 있는 많은 자료들이 그의 행동 하나하나에 숨어 있습니다. 우리의 일상도 그렇겠지요. 정작 우리가 눈여겨 보아야 할 것은 이벤트의 화려함이 아니라 일상의 지속성일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러나 우리는 종종 이벤트의 화려함에 눈과 귀가 멀곤 합니다. 그게 인간인가 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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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을이 성큼 다가온 것 같지 않았나요? 그래서인지 나는 오늘 지난주 내내 생각했던 결심을 끝내 실천으로 옮기지 못했습니다. 주말의 한가한 시간을 골라 그동안 미뤄두었던 리뷰를 한꺼번에 몰아 써보자 생각했던 것이죠. 그야말로 폭풍 리뷰를 쓰려고 결심했던 것인데 처음에는 아주 미약했던 유혹의 목소리가 조금씩 조금씩 커지더니 나중에는 폭풍 리뷰를 쓰자는 목소리를 압도하고 말았습니다. '오늘만 날은 아니잖아. 내일도 있고, 모레도 있고... 쇠털같이 많은 날, 꼭 오늘 하라는 법도 없잖아?' 하는 미약한 목소리가 어제만 하더라도 아주 멀리서 들리는 듯 미약하기만 하더니 일요일 오후가 되자 그 말은 내게 아주 논리정연하고 지당한 말처럼 들렸던 것입니다.

 

베란다 창문을 통해 불어오는 바람 탓이엇는지도 모르겠습니다. 사람의 마음을 가볍게 일렁이도록 했었지요. 손등을 스치는 바람결이 마치 엄마의 손길처럼 부드러웠습니다. 금방이라도 잠에 빠져들 것만 같았지요. 실제로 나는 점심을 먹고 까무룩 낮잠에 빠져들기도 했었습니다. 마음 한편에서는 '아, 리뷰를 써야 하는데...'하는 목소리가 희미하게 들려오는 듯했습니다.

 

카피라이터 김하나의 <힘 빼기의 기술>, 소설가 김애란의 <바깥은 여름>, 한동일 교수의 <라틴어 수업>이 내가 써야 할 리뷰 목록입니다. 아무때나 쓰면 되지 않겠느냐고요? 그럴지도 모르지만 나의 기억력이 문제입니다. 하루만 지나도 쓰고자 했던 내용의 절반쯤을 잊어먹게 되니까 말이죠. 리뷰를 쓰기 위해서는 책을 다시 읽어야만 하는 경우도 생깁니다. 그게 영 귀찮다 싶으면 숫제 그만두는 경우가 허다하고요. 실천에 앞서 내가 지어낸 유혹의 말이지만 나는 왜 매번 그 유혹의 말에 못 이기는 척 지고 마는 것일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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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초언니
서명숙 지음 / 문학동네 / 2017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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헤살거리는 햇살이 마냥 좋았던 오늘, 나는 벌써 힘겨웠던 여름을 저만치 떠나보낸 듯 가슴 한켠이 설레었습니다. 시나브로 변해가는 날씨에 이렇듯 들뜨고 기꺼워하는 까닭은 그날이 그날 같은 고만고만한 일상에 적이나 지치고 무력해졌기 때문인지도 모릅니다. 뒤돌아보면 바람 같은 인생입니다. 수십 번의 여름을 지나왔건만 나는 그 중 절반도 기억하지 못합니다. 그럼에도 나는 오매불망 가을을 기다리고 여름의 기억을 차례로 잊어갑니다. 그러나 오래도록 지워지지 않는 여름도 있습니다. 누구에게나 그런 여름이 한두 해쯤은 있을 테지요. 살다 보면 말입니다.

 

"뿌리 뽑힌 채 이식된 것 같은 낯설고 삭막한 서울에서의 삶, 철저하게 '기브 앤드 테이크'로 일관하는 듯한 도시 사람들 사이에서 마음 붙일 곳 없어 서성대던 나였다. 그런 내게 언니는 무조건적인 사랑과 절대적인 지지를 보내주었다. 나는 물 만난 고기처럼, 오랜만에 햇볕을 쪼인 화초처럼 쑥쑥 자랐다."    (p.53)

 

서명숙의 <영초언니>를 읽었던 건 열흘쯤 전이었습니다. 그길로 내처 리뷰를 썼더라면 좋았을지도 모릅니다. 그러나 쓸 수가 없었습니다. 작가가 40여 년만에 불러낸 천영초에 대한 기억이 80년대 후반의 잊혀지지 않는 어느 여름으로 나를 이끌었기 때문입니다. 격변의 시대를 온몸으로 부딪치며 살아온 사람들에겐 시간이 아로새긴 삶의 무늬가 있게 마련입니다. 어떤 강력한 레이저 불빛으로도 결코 지울 수 없는 그 기억의 문신들을 나는 잘 알고 있습니다.

 

"비록 내게 고통도, 실망도 안겨주었지만 찬란한 청춘의 봄날을 함께했던 내 인생의 첫 멘토 영초언니, 풀각시처럼 영롱했던 그녀가 서서히 부서지고 망가져가는 걸 눈뜨고 지켜보기가 힘들고 고통스러웠던 터. 그녀가 떠나는 날 공항에 나가지는 못했지만 부디 새로운 땅에서 새롭게 출발하기를 마음속으로 기도했다."    (p.263)

 

고려대학교 학보사 기자였던 교육학과 76학번 서명숙과 신문방송학과 72학번 천영초가 만났던 건 어쩌면 예정된 운명이었는지도 모릅니다. 1977년 11월 3일 고대신문 창간기념일 뒤풀이 자리에서 만난 천영초는 고대신문사 역사상 가장 뛰어난 미모에 훌륭한 문장가로 알려졌다고 합니다. 제주도 매일시장 내 '서명숙상회'집 딸 서명숙과 신문사의 전설 천영초는 그렇게 만나 친해졌고 급기야 그해 겨울방학 서명숙은 천영초의 자취방으로 거처를 옮기게 됩니다. 그들의 자취방은 자연스레 고대 여자 선후배들의 사랑방이 되었고 자주 모이던 열 명은 '고려대 내에 읽고 생각하고 떠드는 모임'인 '가라열'을 조직하기에 이릅니다.

 

"1977년 그해 겨울, 기록적인 한파가 한반도를 덮쳤다. 그러나 남자들에게 둘러싸여 각자 섬처럼 외로웠던 여자들끼리 모여서 추운 날 서로 깃털을 부비는 작은 새들처럼 체온을 함께 나누었기에, 우리는 정신적으로 따뜻했다. 유신체제하의 대한민국은 '겨울공화국'처럼 점점 얼어붙어가고 있었지만, 우리는 가라열을 통해 어둠이 짙은 만큼 새벽도 머지않았다는 강력한 믿음을 갖게 되었다. 돌이켜보면 뜨거운 청춘, 아름다운 젊은 날이었다."    (p.59)

 

1978년 학보사 기자 시절 마음에 두고 있던 엄주웅의 권유로 구로동에서 야학을 시작한 서명숙은 영초언니와 종로에서 처음으로 가투(가두투쟁)를 경험하고, 가라열의 선배 혜자언니가 데모를 주도하여 연행되는 현장을 목격하고, 성금을 모아 구속자들에게 영치금을 전달하던 중 마침내 엄주웅마저 구속되는 참담한 시절을 겪게 됩니다. 그런 와중에 영초언니의 주도로 유인물을 작성하여 대규모 시위를 계획하기도 하였으나 결국 실패로 끝나고 맙니다. 다만 감옥에 있는 엄주웅과의 관계가 부쩍 가까워졌던 것이 소득이라면 소득이었습니다.

 

1979년 2월 영초언니의 자취방을 나와 학교 앞으로 이사를 했던 서명숙은 그해 봄 자신의 모교인 제주도의 신성여고에서 교생실습을 하기로 되어 있었습니다. 그러나 교생실습을 시작하기도 전에 서명숙은 서울로 연행됩니다. 영초언니의 주도로 유인물을 제작했던 게 빌미가 되어 긴급조치 위반 혐의가 적용된 것이지요. 경찰의 협박과 회유, 고문이 있었고, 길고 힘들었던 수감생활이 이어졌습니다. 독재자 박정희의 죽음이 아이러니하게도 그들을 석방시켰습니다. 236일만이었습니다.

 

그러나 그것이 끝은 아니었습니다. 5.18 광주 민주화 운동과 6월항쟁 등 대한민국 근현대사의 굵지굵직한 사건들이 펼쳐집니다. 민주화 운동의 동지였던 정문화와 결혼을 했던 영초언니, 극심한 생활고와 아들의 탄생, 이혼과 캐나다로의 이민 등 굴곡진 삶이 계속됩니다. 엄주웅과 어렵사리 결혼했던 서명숙의 삶도 마냥 행복했던 것은 아니었나 봅니다. 그렇게 그들의 삶은 방향이 엇갈린 채 진행되었고 2002년 이국땅 캐나다에서 큰 교통사고를 당한 영초언니는 시력을 잃고 뇌의 6,70 퍼센트가 손상된 채 영구귀국했습니다. 23년간 언론계에 몸담았던 서명숙도 2007년 귀향을 하였습니다.

 

책에서도 야학교사로 잠깐 등장하는 유시민 작가의 말이 떠오릅니다. '각자 세대가 짊어지는 십자가는 다르며, 그 십자가들을 두고 왈가왈부하는 건 옳지 않다.'고 그는 어느 예능 프로그램에서 말했습니다. '6.25전쟁 때 배고팠던 이야기와 지금의 청년실업 문제를 비교하는 건 맞지 않는 것'이라고 덧붙이기도 했지요. 과연 서명숙과 영초언니 등 이 책에 등장하는 많은 사람들을 힘들게 했던 건 무엇이었을까요? 그들의 선택에 모든 누명을 덧씌운다는 것은 뭔가 억울하고 불공정한 느낌이 든다는 건 나만의 생각일까요?  혹은 실체도 없는 '세대의 십자가'에 그 책임을 물어야 할까요. 알 수 없습니다.

 

이제 나는 80년대 후반의 나의 기억을 말해야 할 듯합니다. 꾹꾹 눌러두었던 그 시절의 기억이 이 책 <영초언니>로 인해 내 의식의 수면 위로 스프링처럼 튀어올랐다고 말한다면 억지처럼 들릴지도 모르겠습니다. 1989년 6월 30일, 평양축전 시국대회가 한창이었습니다. 시험 거부로 맞섰던 학생들은 비장한 결의에 차 제가 다니던 학교로 모여들었습니다. 모든 출입로는 전경들로 인해 봉쇄된 상태였습니다. 그런 와중에도 시험을 강행했던 교수님 한 분이 있었고 나는 무사히 시험을 치른 후 학교를 벗어나고 있었습니다. 그 순간 최루탄이 곳곳에서 발사되었고 교정은 순식간에 최루탄 연기로 가득찼습니다. 마치 연막탄을 뿌린 듯 앞을 분간할 수 없는 동시다발의 강력한 공격이었습니다. 가방을 든 채 화장실로 향했습니다. 화장실에는 최루탄을 피해 몰려든 사람들이 나 말고도 여덟 명이나 더 있었습니다. 수위 아저씨와 남학생 한 명, 그 외에는 모두 여학생이었습니다. 그 순간 흰 헬멧에 청카바를 입은 백골단의 무리가 뛰어들었고, 무자비한 공격이 이어졌습니다. 그들이 휘두른 쇠파이프에 의해 한 여학생이 머리를 맞고 쓰러졌습니다. 선연한 피가 화장실 벽면으로 번졌고, 이를 본 다른 여학생이 놀라 몸이 굳은 채 거품을 물고 쓰러졌습니다. 전쟁과 같은 아수라 난장이었던 그날 학교 주변의 모든 대학생들을 잡아들였고, 심지어 하숙집에서 한가하게 바둑을 두던 학생들까지 모두 연행되었다고 합니다. 오죽하면 서울 시내 전체의 유치장이 부족했을 정도였으니까요. 조사를 받고 대부분의 학생들이 풀려나기는 했지만 그날의 기억은 그해 여름 그 순간에서 정지된 채 지워지지가 않습니다. 어느 여학생이 흘린 선연한 핏자국으로 말이지요. <영초언니>는 아마도 내가 목격했던 어느 여학생의 피흘림처럼 시대에 영합하지 않았던 젊은 몸짓, 그 시대의 십자가를 두 어깨에 짊어진 숭고한 희생이었는지도 모르겠습니다. 누구에게나 지워지지 않는 여름이 한두 해쯤은 있을 테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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