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직 두 사람
김영하 지음 / 문학동네 / 2017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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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소설은 읽는 사람에 따라 천차만별의 평가가 내려질 수 있다는 걸 안다. 그게 바로 소설의 매력이기도 하지만 말이다. 그에 비하면 르포나 다큐멘터리는 얼마나 밋밋한가. 권력자가 소설을 싫어하는 것도 그래서일지도 모른다. 일사분란함이 없는 것이다. 장편소설에 대한 평가가 이럴진대 짧디짧은 길이의 단편소설이야 말해 뭣하겠는가. 그래서인지 인생의 한 단면을 압축적으로 담아낸 글이 단편소설이라고 배웠던 학창시절의 지식은 우리가 시험과 무관한 나이가 되어서 단편소설을 읽게 되었을 때 아무짝에도 쓸모 없는 무용한 것이 되고 만다. 한토막의 짧은 이야기를 시간이 날 때마다 이리 굴려보고 저리도 굴려보면서 질리지 않고 한나절 갖고 놀 수 있는 영혼의 장난감이 바로 단편소설이 아닌가 생각하게 된다는 의미이다.

 

김영하의 소설집 <오직 두 사람>을 읽었던 게 2주도 더 지난 듯하다. 표제작인 '오직 두 사람'을 비롯하여 일곱 편의 중단편소설이 실린 이 책은 작가가 지금껏 써온 작품에 견주어 볼 때 잘 쓰겠다는 욕심을 일부 내려놓은 채 비교적 가벼운 마음으로 쓴 소설들로 꾸려지지 않았나 싶다. 초기작품이었던 '나는 나를 파괴할 권리가 있다'를 출간했을 때만 하더라도 그는 자신의 모습을 독자들에게 꽤나 철학적으로 인식시키려 했는지도 모른다. 물론 그 나이대에 있음 직한 젊은이의 허세였을 수도 있겠지만 말이다. 그랬던 그도 이제는 중견작가라는 호칭이 어색하지 않은 나이가 되었고, 소설보다는 산문이 더 좋다는 일부 독자들의 평을 거부감 없이 받아들여야 할 위치에 있는 것이다.

 

표제작인 '오직 두사람'은 특별했던 부녀간의 사랑을 다룬 작품이다. 대학교  교수인 아버지와 딸 현주는 각별한 사이였다. 현주가 고등학교를 졸업하던 무렵 군에 간 오빠와 수험생인 여동생을 두고 아버지는 두 사람만의 유럽여행을 강행했다. 그 일로 인하여 가족간의 균열은 급속도로 진행된다. 현주에 대한 편애가 노골적으로 드러난 사건이었다. 가족들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두 사람만 떠나게 된 한 달간의 유럽여행. 결국 엄마는 아버지와 이혼을 하고 동생 현정과 함께 미국으로 떠나고 독립을 한 오빠는 거제도에 산다. 아버지는 이제 죽음을 코앞에 둔 환자로 남았다. 그 부담은 오직 현주에게 지워진다. 익명의 언니에게 쓴 현주의 편지 형식으로 쓰인 이 소설은 끝내 어떤 해답도 안겨주지 않는다.

 

"아빠가 쓰러졌다는 소식을 들었을 때, 분명히 알았어요. 내 삶의 더 커다란 결락, 더 심각한 중독은 아빠였다는 것을. 엄마나 현정이와 나누는 대화에는 어둠이 없어요. 밝고 따뜻해요. 특히 현정이는 모든 면에서 논리적이고 명쾌하죠. 외국어 같았어요. 왜 외국어로 말을 하면 좀더 이성적이 된다잖아요. 아빠하고는 달라요. 저에게는 아빠가 모국어예요. 굳이 말을 하지 않아도 통한다는 느낌이 잇어요. 좋고 나쁘고의 문제가 아니에요. 그냥 운명 같은 거예요."    (p.38 '오직 두 사람' 중에서)

 

아이를 잃어버렸던 부부가 11년만에 극적으로 되찾은 아들로 인해 또 다른 갈등과 불행을 맞게 된다는 이야기의 '아이를 찾습니다', 어른이 되어 만난 두 남녀의 이야기를 다룬 '인생의 원점', 한때 잘나가던 소설가인 '나'는 계약금만 받고 글은 쓰지 않는다는 이유로 출판사로부터 소설 집필을 종용받고 뉴욕으로 갔으나 본의 아니게 사장의 아내와 동침을 하고 미친듯이 소설을 쓰게 된다는 이야기의 '옥수수와 나', 연락을 끊은 채 살던 아버지의 부고 소식을 듣고 뉴욕에 간 주인공의 이야기를 다룬 '슈트', 출판사 사장인 주인공과 그의 직원인 최은지, 동종업계의 사장이자 주인공의 친구인 박인수의 이야기가 그려지는 '최은지와 박인수', 신입사원 연수를 온 4명의 주인공들이 한 방에 갇힌 채 생활하며 탈출을 꿈꾼다는 이야기의 '신의 장난'이 이어진다.

 

"할 수 있다고 믿는 것과 실제로 할 수 잇는 일은 큰 차이가 있어. 대부분의 사람이 그래. 지금은 날 위해 뭐든지 할 수 있을 것 같겠지만 말야. 물론 그 마음이 진심이라는 것 알아. 하지만 진심이라고 해서 그게 꼭 행동으로 이어진다는 법은 없어."    (p.92 '인생의 원점' 중에서)

 

작가는 이 책에 실린 7편의 중단편에서 다양한 상상을 펼쳐 보인다. 소설이 픽션이라는 걸 모르는 바 아니지만 때로는 '너무 심한데...' 생각한 적도 있다. 그것은 작가에게도 실험적인 글쓰기와 같은 일종의 도전이였을지도 모른다. 이를테면 책의 마지막에 실린 '신의 장난'은 인생을 빗대어 쓴 우화처럼 읽힌다. 남자, 여자 각각 2명씩인 점도 그렇고, 그들을 한 방에 몰아 넣은 사람이 누구인지 끝내 밝혀지지 않는 것도 그렇고, 그들 각자가 탈출을 시도하는 방식도 다 제각각인 점도 그렇다. 지구를 하나의 방으로 생각했을 때 '신의 장난'에 펼쳐진 소설 속 공간은 우리 인생의 축소판인 셈이 된다.

 

"이제 우리도 알게 되었습니다. 완벽한 회복이 불가능한 일이 인생에는 엄존한다는 것, 구런 일을 겪은 이들에게는 남은 옵션이 없다는 것, 오직 '그 이후'를 견뎌내는 일만이 가능하다는 것을."    (p.270 '작가의 말' 중에서)

 

어제까지 청명하던 날씨는 오늘 들어 급변했다. 중국에서 몰려온 미세먼지와 낮게 드리운 구름, 후텁지근한 날씨... 아침에 도로변에 떨어진 낙엽을 열심히 쓸어 모으고 있는 환경 미화원을 보았다. 이른바 조락의 계절이 도래한 것이다. 가을을 독서의 계절이라는데 실상은 그 반대인 경우가 많다. 잦은 행사에 일일이 다 참석하는 일도 버겁지만 밖으로만 뛰쳐나가려는 마음을 다잡는 일도 쉽지 않기 때문이다. 2주도 더 전에 읽은 김영하의 소설집. 그 책에 실린 짧은 이야기들을 머릿속에서 한나절 이리 굴리고 저리 굴려보면서 시간만 소일했다. 영혼의 장난감 삼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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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늘한 침묵의 느낌을 너는 알까? 물론 전혀 모르지는 않겠지. 너도 나이가 있으니까. 싸늘한 분위기와 냉랭한 시선이 마치 눈에는 보이지 않는 포승줄처럼 옥죄어오고, 어느 순간 신부님 앞에서 고해성사를 하듯 기억에도 없는 죄를 마구 만들어내야 할 것 같은 느낌 말이야. 엄마로부터, 선생님으로부터, 연인으로부터, 또는 사랑하는 누군가로부터 받았던 그와 같은 시선에 잔뜩 주눅이 들었던 적이 적어도 서너 번 이상은 있을 거야. 중요한 것은 그 대상이 사랑하는 사람이었다는 거지. 관계의 단절이 그닥 두렵지 않은 사람이라면 아마도 그 자리를 그냥 박차고 나가지 불편함을 참아가면서 상대방의 심기를 살피지는 않았을 거야. 자리를 피하지 못했던 건 결국 사랑을 잃고 싶지 않았던 게 아닐까. 이전처럼 관계를 지속할 수만 있다면 그 정도의 수모쯤이야 감수할 수 있다는 얘기일 테니까 말이야.

 

그러나 둘 사이가 사랑으로 맺어지지 않은 관계일지라도 그런 상황은 언제든 발생할 수 있다는 걸 내 모르는 바가 아니란다. 예컨대 어렵게 들어간 회사의 직장 상사로부터 그런 따가운 시선을 받기도 하고, 자신이 가입한 어느 모임에서의 작은 실수로 인해 그 자리에 모인 여러 사람으로부터 냉랭한 시선을 받기도 하지. 범죄 피의자가 문책을 받는 느낌일 거야. 그러나 가만히 생각해 보면 자신이 그 억울함을 감내하고 있다는 건 본인도 상대방으로부터 뭔가 얻고 싶은 게 있다는 사실이야. 이를테면 어떻게 들어간 직장인데 이런 어처구니 없는 일로 쉽게 그만 둘 수는 없다거나 모임원 중에 한 사람을 맘에 두고 있는 까닭에 모임을 그만둘 수가 없는 것이지. 차라리 말로 질책을 하거나 욕이라도 한마디 퍼붓는다면 오히려 견딜만 하다고 느꼈을지도 몰라. 그러나 상대방도 차마 그럴 수가 없어서 그저 침묵의 시선만 보낼 뿐이라는 걸 너도 언젠가 알게 될거야. 워낙 소심하고 내성적인 성격이라 차마 말로 내뱉지 못하는 경우도 분명 있을 거야. 그러나 대부분의 경우는 그렇게 하는 게 상대방에 대한 최소한의 배려라고 생각한다는 것이지.

 

어렸을 때의 너는 당차고 똑 부러지는 아이였지. 어느새 대학을 졸업하고 취업을 하여 직장 생활의 어려움을 털어놓는 너를 보면서 세월이 빠르구나 생각했단다. 사회생활이 쉽다고는 말할 수 없지만 네가 생각하는 만큼 힘든 것도 아니란다. 다만 익숙하지 않은 데서 오는 어색한 상황들을 이따금 만날 수는 있을 거야. 그러나 너라면 잘 헤쳐나갈 거라고 나는 굳게 믿는단다. 건투를 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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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기가 아니면 어디라도
이다혜 지음 / 위즈덤하우스 / 2017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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잠시의 시간적 여유만 생겼다 하면 뻔질나게 해외여행을 다니는 친구가 있다. 그런 까닭에 친한 친구들마저 그의 얼굴을 보기가 어려운 것은 물론 전화 목소리를 들었던 게 언제인지도 모를 지경이다. 친구와의 대면이 이렇게 어렵다 보니 그의 아내가 이따금 이쪽 소식을 저쪽에, 저쪽 소식을 이쪽에 전해주곤 한다. 그러면서도 그의 아내는 불평 한마디 없다. 대학 시절 캠퍼스 커플로 만나 졸업도 하기 전에 서둘러 결혼했던 친구는 슬하에 여식을 한 명 두었으나 지금은 취직하여 제 밥벌이를 할 정도로 장성했으니 가장으로서 그의 책임도 반쯤 감해진 듯 보인다. 그런 까닭에 친구들이 모인 자리에서는 언제나 그 친구에 대한 '유비통신'이 안주처럼 올라오곤 한다. 어디어디에 현지처가 있다는 둥, 돌쟁이 아들이 있다는 둥 근거도 없는 이야기들이 끝없이 생성되곤 한다.

 

"왜 그렇게까지 여행을 다니냐고 묻는 사람이 많아서 이제는 여행간다는 말을 가능한 한 주변에 하지 않게 됐다. "뭐 하러 또?"라고 물으면 답할 말이 궁색하기도 하고, 사실 뭘 하러 가는 게 아니다. 목적 없이 있으려고 간다." (p.158)

 

'씨네21' 이다혜 기자의 첫 여행에세이 <여기가 아니면 어디라도>를 읽었다. 책을 읽는 동안 여행을 좋아하는 친구 생각이 났던 건 어찌 보면 당연한 일이었는지도 모른다. 책의 저자인 이다혜 기자 또한 여행에 있어서는 중독자처럼 보이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이다혜 기자나 친구가 생계를 작파한 채 일 년이고 이 년이고 오직 여행만 하고 있다는 얘기는 아니다. 한국에 있을 때는 친구 역시 주어진 직분에 성실히(?) 임한다는 걸 알기에. 그러므로 이 책은 장기여행자를 위한 안내서는 아니다. 주말이나 단기간 휴가를 이용하여 짬짬이 떠나는 평범한 여행자에게 꼭 맞는 책이다.

 

"여행의 무엇이 좋으냐고 묻는다면 지금 나의 대답은 이렇다. 공기가 다르고, 그 안에 있는 게 좋다. 그 나라의 음식 냄새, 사람들의 분위기, 역사의 문화자본 같은 모든 것들이 그냥 그 안에 서 있는 것만으로 어느 정도 느껴진다. 낯선 풍경에 노출되는 것만으로 더 공부하고 싶어지고 호기심이 생기고 정신적으로 건강해진다." (p.263)

 

친구에게 해외여행이 취미로 굳어진 것은 그리 오래된 일이 아니다. 불과 몇 년 전의 일이다. 어느 날 갑자기 배낭여행을 간다며 짐을 꾸려 떠나더니 연휴가 다 끝날 즈음해서 귀국했다. 몇 년 전 설연휴 기간이었던 걸로 기억한다. 그 후 틈만 나면 홀로 여행을 떠났다. 여행사를 통한 패키지 여행을 가는 것도 아니었다. 그렇다고 몇 달 전부터 여행 목적지를 알아보고 준비물이나 교통편, 숙박시설 등 여행에 필요한 일반적인 정보를 꼼꼼하게 알아보는 것도 이니었다. 여행을 떠나기 일이 주 전부터 이용 가능한 비행기 티켓을 알아보는 게 다였다. 말하자면 비행기 티켓에 맞춰 여행지가 결정되는 셈이었다.

 

"내가 여행과 관련해서 유일하게 되뇌는 점이 있다면, "예정대로 되지 않는 일을 받아들일 것." 오로지 그것을 더 여유 있게 경험하기 위해 여행을 떠난다." (p.14)

 

친구는 그나마 건강한 남자 여행자이기 때문에 한국에 남겨진 가족들의 걱정과 근심을 조금쯤 덜어내는 게 아닌가 싶다. 그러나 저자인 이다혜 기자는 여자 홀로 여행하는 것에 대해서 '혼자 여행하는 독신녀의 건강 염려증'이나 '여자에게 여행이란'과 같은 소제목의 글을 통하여 여성 여행자로서의 어려움을 토로하기도 한다. 책을 좋아하는 저자이기에 여행과 독서에 대한 이야기도 빠지지 않는다. 그 외에도 부모님과 함께 여행하는 팁, 여행지에 사는 지인의 집에 폐를 끼치지 않고 얹혀 지내는 기술 등 참고할 만한 정보들이 빼곡하다.

 

언젠가 나는 늦은 저녁 친구와 술잔을 기울이며 여행에 대한 그의 생각을 들었던 적이 있다. 그를 여행 마니아로 이끌었던 첫 여행은 남들과 크게 다르지 않았다고 했다. 쌓인 스트레스가 워낙 심해서 어디든 훌쩍 떠나고 싶었고 아무도 없는 곳에서 누구의 방해도 받지 않고 며칠 쉬고 나면 그래도 살 만하지 않을까 싶었단다. 그런데 여행의 후유증은 생각보다 심했고 다시 다시 떠나지 않고서는 도저히 살아갈 자신이 없었다고 했다. 그런 식으로 짧은 여행을 두어 번 반복하고 나자 자신이 왜 떠날 수밖에 없었는가 하는 문제에 대해 여러 생각이 들더란다. 단순히 스트레스 때문에? 사는 게 무의미해서? 미래에 대한 걱정 때문에? 등등 자신을 향해 할 수 있는 여러 질문을 다 던져보았다고 했다.

 

"여행 중독도 여러 종류가 있다. 인 가본 땅은 다 밟아보아야 직성이 풀리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일단 무조건 나가고 봐야 하는 인간도 있다. 난 후자 쪽이다. 안 가본 땅에 대한 신비가 적은 편이다. 내가 아는 곳을 더 잘 알고 싶다." (p.114)

 

그러나 친구의 대답은 나의 예상과는 사뭇 다른, 의외의 지점으로 나를 이끌었다. 두어 번의 여행 후 고민하던 문제도 어느 정도 해결되었을 때, 가벼워진 마음으로 문득 뒤돌아보니 자신의 나이가 벌써 이렇게 되었나? 하는 생각이 들었고 그 순간 말할 수 없이 두려워지더란다. 첫번째 여행을 떠날 때의 스트레스는 비길 바가 못될 정도로 그 두려움은 컸다고 했다. 팔십 년의 인생에서 자신은 이미 죽음 쪽으로 더 가까워졌다는 사실을 도저히 받아들일 수가 없더란다. 지난 시간을 돌아보면 허방을 짚은 듯 아득하기만 할 뿐, 한줌도 되지 않는 시간을 걸어온 듯한데 벌써 죽음을 향해 가고 있다는 게 믿기지 않았다고 했다. 여유로운 시간이면 그 생각이 머릿속에서 떠나지 않았고 자신은 그것을 잊기 위해서라도 익숙하지 않은 곳으로 떠날 수밖에 없었다고 했다. 일과 집안의 대소사로 정신없이 지내다가도 모든 게 멈춘 듯 한가한 시간이 찾아오면 그 생각을 떨쳐낼 수가 없더란다. 자신이 외국을 찾는 건 어쩌면 허무로부터의 도피일지도 모른다고 했다. 낯선 나라에서는 생각을 접고 긴장하며 살 수밖에 없으니까 그나마 다행이라고. 자신은 그래서 떠날 뿐 여행 자체를 즐기는 건 아니라고. 나는 친구의 생각에 모두 동의하는 건 아니었지만 고개를 끄덕일 수밖에 없었던 것들도 많았다. 그것이 삶의 허무일지라도. 여행을 떠나기 위한 구차한 변명일지라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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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위 '뻘-짓'에도 등급이 있다는 걸 아시는지. 제 경험으로는 그렇더군요. 이를테면 조직폭력배들도 저희들끼리 건달이니 양아치니 하면서 등급을 매기거나 계급에 따라 넘버 원, 넘버 투, 넘버 쓰리 하는 것처럼 말이지요. 이런 것을 보면 헛짓거리에도 분명 등급이 존재하는 듯합니다.

 

제가 경험한 '뻘-짓'의 등급은 대략 다음과 같습니다. 개인이나 조직의 사적 이익이나 쾌락을 목적으로 한 '뻘-짓'이 가장 낮은 등급(3등급)이고, 자신이 하는 짓이 어떠한 결과를 초래할지도 모르면서 상급자의 명령이나 잘못된 신념에 의해 저지르는 '뻘-짓'이 다음(2등급)이며 비록 자신에게는 어떠한 이득도 없는 듯 보이지만 타인의 즐거움을 목적으로 하는 행위가 가장 상위(1등급)의 '뻘-짓'이 아닐까 싶습니다.

 

3등급의 '뻘-짓'은 주로 조직폭력배와 같은 좀 덜 떨어진 사람들의 행위가 대부분인 듯합니다. 남들에게 혐오감을 주는 용이나 호랑이와 같은 문신을 온 몸에 새긴다거나 과도하게 체중을 늘리는 것들이 그에 해당하겠지요. 아, 또 있군요. 조직폭력배는 아니지만 요즘 보이는 자유당의 행태가 조직폭력배와 비슷하기는 합니다. 나라의 안보가 엄중한 시기에 아무도 동조하지 않는 장외투쟁을 한다거나 김이수 헌재소장 후보자를 부결시킨 후 얼싸안고 기뻐하는 모습을 보면 조폭들의 '뻘-짓'을 능가하는 면이 있지요. 국민의당도 자유당의 '뻘-짓'이 몹시 부러웠는지 질세라 그들과 동조하는 모양새입니다. 물론 다음 총선까지 국민당이 존재할 수 있을지는 미지수입니다만 말이죠. 당대표인 빨간놈과 안찰스의 '뻘-짓'은 그렇다 치더라도 자신이 뭔 짓거리를 하는지도 모르면서 아무런 이의도 달지 않고 동조하는 당원들과 동조자들을 보면 참으로 한심스럽습니다.

 

이런 '뻘-짓'들에 비해 남을 웃기기 위해 하는 몸개그나 슬랩스틱(slapstick)은 얼마나 건전한 '뻘-짓'인지요. 자격 미달의 국회의원들의 '뻘-짓'을 보면서 국민의 세금으로 꼬박꼬박 세비를 주느니 차라리 그 돈으로 개그맨의 몸개그 대가를 올려주는 게 나을 듯합니다. 댓글부대를 동원하고 블랙리스트를 작성했던 전 정권의 수장들이 했던 '뻘-짓'도 다르지 않을 듯합니다. 우리는 아직도 '뻘-짓'공화국에 살고 있는 듯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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읽어가겠다 - 우리가 젊음이라 부르는 책들
김탁환 지음 / 다산책방 / 2014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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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득한 기억을 소환하려는 듯 미세먼지의 농도가 짙다. 밭은 기침. 우울한 하늘. 화석연료를 불태워 식어가는 체온을 덥혀야만 하는 시기가 다시 또 도래한 것이다. 반복되는 미세먼지의 공습. 달아날 곳이 없다는 사실이 탁한 하늘만큼이나 나를 또 우울하게 한다. 달아날 공간이 없는 막다른 골목의 사람들은 어쩌면 과거의 어느 시간대로 자신의 기억을 되돌리려 하지 않을까? 현실을 잊기 위해, 푸르렀던 과거의 어느 가을날을 소환하기 위해. 김탁환의 에세이 <읽어가겠다>를 읽으며 나도 또한 과거를 향해 달아나본다.

 

"누군가를 다른 시간 다른 장소에서 네 번이나 만났다면 특별한 인연이라 여기고 연인이 되거나 벗이 될 겁니다. 저는 스물세 편의 소설과 지금까지 네 번 만났군요. 어떤 책과 사람은 스치듯 잊히지만, 어떤 책과 사람은 마음에 머물며 또 한 번의 재회를 기대하게 만듭니다." (p.7~p.8)

 

소설가 김탁환은 그의 기억 속에서 길어올린 스물세 편의 소설을 <읽어가겠다>에 담았다. SBS 라디오 프로그램 '책하고 놀자'에서 그가 소개했던 150여 권의 책 중에서 가려 뽑은 소설들을 이 책에 실었다고 했다. 대개는 각기 다른 작가의 소설을 한 편씩 소개하고 있지만 같은 작가의 작품이 두 권 소개되는 경우도 있다. 생텍쥐페리의 '어린 왕자'와 '남방우편기', 가즈오 이시구로의 '남아 있는 나날'과 '녹턴', 존 버거의 '존 버거의 글로 쓴 사진'과 '여기, 우리가 만나는 곳'이 그렇다.

 

2부로 구성된 이 책은 part 1. '그를 잊지 않기 위해 내가 하는 것들'에 12권의 책이, part 2. '자부심도 나의 것, 경멸도 나의 것'에 11권의 책이 소개되었다. 1부의 시작은 헤르만 헤세의 소설 '크눌프'로부터 시작된다. 작가는 '크 눌 프, 소리내어 한 자씩 끊어 읽기만 해도 가슴이 뛰는 이 남자가 어렸을 때부터 무척 맘에 들었다'고 했다. 그리고 '지치고 힘들 때면 집는 여러 권의 책들 중에 꼭 '크눌프'가 들어 있다'고 작가는 고백한다.

 

에밀 아자르의 소설 '자기 앞의 생'은 작가가 읽은 소설 중에서 가장 슬픈 책으로 꼽는다. '너무나도 힘든 상황에서 희망을 찾으려고 몸부림치는 한 인간에 대한 이야기'이기 때문이란다. 어린 시절 '플랜더스의 개'라는 텔레비젼용 애니메이션을 보면서 지독한 슬픔을 배웠다는 작가는 52부작의 만화가 방영되는 매주 아침마다 삼십 분을 울고 일주일을 기다렸다가 또 삼십 분을 울었다고 고백하기도 한다.

 

"죽음을 직시하라고 알려주는 동화가 무척 드물지요. 산다는 게 얼마나 좋은지만 보여주는 동화가 대부분입니다. 죽음을 다루더라도 아주 아름답게 살짝 겉만 건드리고 넘어가지요. 소멸에 관한 책, 불행에 관한 책, 죽음에 관한 책이 동화에도 핵심으로 자리 잡아야 합니다." (p.37)

 

작가가 소개하는 대개의 책들은 제목이 낯설지 않다. '어린 왕자', '모모', '모두 다 예쁜 말들', '한 여자', 남아 있는 나날', '디어 라이프', '이것이 인간인가', '서부전선 이상 없다', '태양은 다시 떠오른다', '달과 6펜스', '폭풍의 언덕' 등 누구에게는 인생의 책이 될 수도 있는 그런 책들 일색이다. 그러나 각각의 책에 대한 작가의 소감은 일반 독자의 그것과는 사뭇 다르다. 작가의 직업이 소설가이기 때문에 일반 독자들의 생각과 다르다고 말하기는 어렵다. 그 이유라기보다는 한 권의 책을 반복해서 읽음으로써 책과 더 가까워진 까닭이 아닐까 싶다. 앨리스 먼로의 소설집 '디어 라이프'에 대해 작가는 이렇게 말하기도 한다.

 

"이 뻑뻑한 단편들을 한꺼번에 읽으면 안 됩니다. 한 편 읽고 하루 쉬었다가 또 한 편 읽고, 단편이 열 편, 자전적 이야기가 네 편 정도 실려 있으니까, 한 달 정도 천천히 읽었으면 좋겠어요. 각 편마다 생각할 부분이 많기 때문에 빨리 읽으면 중요한 지점들을 놓친다는 생각이 듭니다." (p.132)

 

'장정일의 독서일기'를 읽는 독자가 책에 대한 이야기를 책으로 읽으면서 또 다른 독자나 작가로 성장하듯이 김탁환의 '읽어가겠다' 역시 이 책을 읽는 독자의 독서력을 자극하여 작가가 소개하는 소설 모두를 읽고 싶어하도록 만든다. 그러나 조심해야 할 것이 있다. 사실 존 버거는 작가들이 좋아하는 작가로 잘 알려져 있는 만큼 일반 독자가 읽기에는 쉽지 않을 수도 있다는 점이다. 또는 기억들로 가득 차 있는 가즈오 이시구로의 작품들이 지루하게 읽힐 수도 있겠다. '우리가 젊음이라 부르는 책들'이라는 부제가 붙은 이 책은 작가가 좋아하는 책에 대한 소개의 글이라기보다 자신의 젊은 시절에 대한 회상이자 그리움이 아닐까 싶다. 우리는 종종 자신이 즐겨 읽었던 책을 통하여, 자신이 즐겨 들었던 음악을 통하여 내가 있는 지금 이곳으로부터 달아나기도 한다. 그 오래된 기억들이 우리를 행복하게 하기도 하고, 슬픈 현실을 벗어나도록 하게도 한다. 자신이 읽었던 책을 누군가에게 소개한다는 것은 나의 경험을 누군가와 나누고 싶다는 구애의 몸짓인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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