몇 달 전에 명예퇴직을 한 친구가 있다. 나는 그 친구의 소식을 건너 건너 소식으로만 전해들었을 뿐 직접 연락하거나 위로주를 산 적도 없다. 생각해보면 나는 참으로 무정했었다. 허투루 대할 친구는 아니었지만 내가 그렇게 한 데에는 나름 이유가 없었던 것도 아니다. 지금에 와서 변명을 하자면 이러했다. 친구가 명예퇴직을 했다는 소식은 빠르게 퍼져서 나에게도 그 다음날 바로 전해졌었다. 나는 그때 집안의 작은 고민거리로 며칠째 머리를 싸매고 있었던지라 친구의 소식은 금세 잊혀졌고, 날짜가 많이 흐른 후 다른 친구의 입을 통해 다시 그 소식을 듣고나서야 '아, 맞다. 그런 일이 있었지.' 하고 기억을 되살렸던 것이다. 납덩이처럼 무거운 죄책감이 가슴에 쿵 하고 떨어지는 듯했다.

 

고민거리만 해결되면 문자나 전화로 끝낼 게 아니라 직접 만나 따뜻한 밥이라도 한끼 사줘야겠다, 생각했던 게 그만 머릿속에서 까맣게 잊혀지고 말았던 것이다. 시일이 한참이나 지난 뒤에 친구의 소식을 다시 들었던 나는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한 채 속만 끓였다. 이따금 소식으로만 친구의 안부를 전해들으면서 말이다. 그렇게 나는 '무정한 놈'으로 변해가는 나 자신을 그저 멀뚱히 지켜보면서 죄책감만 키워왔었다.

 

오늘 낮에 그 친구로부터의 전화가 걸려왔다. 휴대폰 벨소리만 들으며 머뭇머뭇 받지를 못하던 내가 어렵게 통화 버튼을 눌렀을 때 저 건너편에서 전해지는 친구의 목소리는 무척이나 따뜻했다. "많이 바쁘지? 일하는 데 방해가 될까봐 전화 걸기도 조심스럽더라구. 진작 했어야 하는데..." 나는 친구에게 무릎이라도 꿇고 싶은 심정이었지만 짐짓 바쁜 척 시치미를 뗐다. "응. 그동안 좀 바빴지뭐야. 전화라도 한다는 게 그만... 미안하다." 했더니 친구는 손사래를 치며, "아니야. 너가 미안할 일이 뭐 있다고. 지금 시간 괜찮으면 점심이나 같이 할래?" 하였다. 나는 그렇게 오래 미뤄두었던 밥 한끼를 어렵게 대접했다. 내가 만일 그 친구 입장이라면 어땠을까, 하는 생각을 오늘에서야 하면서 말이다.

 

헤어지면서 했던 친구의 말이 지금도 뇌리에 떠돈다. 어떻게 지내느냐는 나의 물음에 "사는 게 다 그렇지."하면서 담담히 답하던 친구의 목소리는 전에 없이 맑았다. 오늘은 대설, 친구에게 밀린 숙제를 하듯 밥 한끼를 대접했던 나는 찬바람 속에서도 훈기를 느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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디어 랄프 로렌
손보미 지음 / 문학동네 / 2017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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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사람의 삶은 그 사람의 '비밀'로 완벽히 치환된다. 그러므로 삶은 곧 하나의 비밀 덩어리인 셈이다. 평생에 걸쳐 생성된 비밀은 오롯이 한 사람에게 귀속되지는 않는다. 시간에 풍화되기도 하고 새로운 비밀과 합쳐져 새로운 비밀을 만들기도 한다. 사는 동안 드러나지 않은 비밀은 죽음과 함께 영속하는 우주의 언어로 저장된다. 그러나 시간에 풍화된 비밀은 망각의 공간 속으로 흔적도 없이 사라지기도 하고 떨어져 나간 부스러기가 누군가의 기억 속으로 조용히 스며들기도 한다. 하나 분명한 사실은 한 사람의 삶이, 또는 한 사람의 죽음이 가치 있는 어떤 것으로 남기 위해서는 그가(또는 그녀가) 평생을 바쳐 만들었던 비밀을 비밀 그 자체로 유지해야 한다는 것이다. 비밀은 비밀로 유지될 때 아름답기 때문이다.

 

손보미의 장편 소설 <디어 랄프 로렌>의 이야기 또한 주인공 종수의 비밀 서랍장에서 출발한다. 미국에서 구 년째 유학생활을 하던 종수는 대학원 지도교수인 기쿠 박사로부터 사실상 자퇴 압력을 받는다. 종수가 전공하는 물리학이 그와 어울리지 않는다는 게 구실이었지만 기쿠 박사의 충고는 대학원을 떠나라는 명령이나 진배없었다. 종수는 자신의 모멸감을 숨긴 채(말하자면 기쿠 박사와 자신에 의해 만들어진 비밀을 숨긴 채) 자신의 기숙사 방에 칩거한다. 대학원 기숙사에 있는 그 누구와도 마주치지 않은 채 침거하던 그는 잠겨 있는 책상 서랍을 열어 오래전에 만들어진 자신의 비밀과 조우하기도 하고 우스꽝스러운 복장으로 피겨스케이팅을 하는 기쿠 박사의 모습을 보기 위해 브라이언트 파크에 다녀오기도 한다.

 

"수영의 청첩장을 앞에 두고, 나는 분노와 좌절감과 패배감과 슬픔과 외로움이라는 온갖 감정의 소용돌이 속을 헤매고 있었다. 왜 그런지 몰랐다. 그냥 내 안의 어떤 부분이 통째로 사라진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비밀의 서랍'이 나를 구원해줄 거라고 믿었지만, 그건 완전한 착각이었다. 나는 이미 낭떠러지 바깥 허공에 있는 거나 마찬가지였다." (p.33)

 

잠겨 있던 책상 서랍에서 종수가 발견한 것은 받았던 사실조차 잘 기억나지 않는 '수영'이 보낸 청첩장이었다. "디어 종수, 나는 잘 지내. 곧 결혼식을 올릴 거야. 나는 무척 행복해. 너도 잘 지내길 바란다."는 짤막한 내용의 청첩장에서 종수는 그가 열여덟 살이던 그해 여름, '수영'과의 추억(둘만의 비밀일 수도 있는)을 떠올린다. 수영은 그때 자신이 랄프 로렌에게 편지를 쓰려고 하는데 번역을 해달라고 부탁했었다. 그녀의 주장에 따르면 랄프 로렌은 니트, 헤어슈슈, 향수 등 온갖 것을 만들면서도 오직 시계만은 만들지 않는다는 것이었다. 그래서 '머리부터 발끝까지 랄프 로렌으로 걸치고 싶은' 그녀는 시계를 만들어달라는 편지를 써서 랄프 로렌에게 보낼 작정이었다. 종수는 '수영'과 조금이라도 더 오래 같이 있고 싶어서 편지를 번역하는 일에 생각보다 더 많은 시간을 썼던 걸로 기억한다.

 

대학원에서도 쫓겨나는 바람에 마땅히 할 일이 없어진 종수는 남들이 뭐라 하든 자신만의 세계에서 자신만의 방식으로 피겨스케이트를 타는 기쿠 박사의 우스꽝스러운 모습을 보고 면전에서 그를 조롱하려던 처음의 계획을 접고 만다. 돌아오는 길에 그는 랄프 로렌 매장을 보았고 매장에 들어가는 대신 뉴욕 도서관에 들러 고인이 된 랄프 로렌의 정보를 검색하기 시작했다. 그리고 그는 그닥 알려진 게 없는 랄프 로렌의 삶을 탐구하기 시작한다.

 

종수는 대학원에서 쫓겨난 후 미국에 머물렀던 일 년 동안 랄프 로렌이 시계를 만들지 않은 이유를 찾아나선다. 그와 관련된 많은 자료를 찾아 읽고, 주변 인물들을 만나 이야기를 나누기도 한다. 소설은 이제 종수의 이야기인 동시에 종수가 탐색하는 랄프 로렌의 이야기가 된다. 열한 살에 야반도주를 하여 뉴욕에 왔던 랄프 로렌이 구두닦이를 할 때, 그를 데려가 아들처럼 키워주었던 조셉 프랭클, 조셉 프랭클의 오랜 이웃이었던 백네 살의 할머니 레이첼 잭슨, 레이첼 잭슨을 돌보는 입주 간호사 섀넌 헤이스 등 랄프 로렌을 탐색하는 과정에서 종수가 만난 인물들의 이야기도 더해진다.

 

"수영은, 수영은 그 시절을 기억하고 있을까? 그런 생각을 하니까 가슴이 무너지는 것 같은 느낌에 사로잡혔다. 나중에 섀넌 헤이스는 그게 바로 상실감이라고 말했다. "마음속에 구멍이 난 것 같죠. 안 그래요?" 그리고 그녀는 이렇게 덧붙였다. "누군가가 당신 마음속 서랍에서 무언가를 꺼내서 가지고 가버린 거죠." (p.41)

 

종수는 끝내 랄프 로렌이 시계를 만들지 않았던 구체적인 이유를 찾지 못한다. 그렇다면 그가 랄프 로렌을 탐색하며 미국에 머물렀던 일 년의 시간이 무의미하기만 했던 것일까? 종수가 읽었던 여러 자료와 주변 사람들이 들려주었던 여러 이야기, 그 모든 게 랄프 로렌의 삶을 완벽히 재현한다고 할 수 있을까? 개인이 취득한 평생의 비밀은 결국 그 사람의 온전한 삶이 된다. 독일의 심리학자 우르술라 누버는 자신의 책에서 이렇게 말했다. '비밀은 우리 인생에 어떤 권한도 없는 사람이 우리 삶에 함부로 기웃거리지 못하게 막아주는 울타리'라고 말이다.

 

타자화 된 어떤 대상이나 광대한 이 우주의 시공간에는 우리가 채 밝혀내지 못한 무수히 많은 비밀이 존재한다. 비밀이 존재하는 까닭에 우리의 관심과 호기심이 이어지고 그로 인하여 어떤 관계와 질서가 맺어진다. 나와 타자와의 관계에서 비밀은 곧 대상과의 관계를 부드럽게 하는 윤활유이자 촉매제인 셈이다. 투명함이 보편적 미덕처럼 여겨지는 요즘 세상에 자신의 비밀을 지키며 산다는 건 그리 호락호락한 일이 아닐지도 모른다. 매일 조금씩 자신의 비밀을 잃어가는 것으로도 모자라 없는 비밀까지 탈탈 털어버리는 작금의 세태에 누구 한 사람쯤은 굳건히 자신의 비밀을 지키며 산다는 건 우리에게 얼마나 큰 위안이 되는가. 나는 누군가의 비밀을 열렬히 응원하고 싶은 것이다. 당신의 마음속 서랍에서 무언가를 꺼내가지 못하도록 나 한 사람이라도 꼭 지켜주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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애견인, 애묘인 등 반려동물을 키우는 가구가 획기적으로 늘었다는 걸 실감하고 있다. 내가 평일에 머물고 있는 집은 20평대의 다소 오래된 아파트인데 주로 젊은 부부나 연세가 많은 부부 또는 나처럼 독신인 사람들이 산다. 그래서인지 반려동물을 키우는 가구가 유난히 많다. 날씨가 무더운 여름철이면 현관문이나 창문을 열어 놓고 지내는 경우가 다반사인데 아파트 구조가 복도식이다 보니 엘리베이터에서 내려 집으로 가다 보면 본의 아니게 이웃의 집안을 훔쳐보게 된다. 특별히 신경 서서 보지 않아도 이웃 가구의 구성원이며 살림 형편을 자연스레 알게 되는 셈이다. 한 층에 15가구가 사는데 반려동물 분변의 냄새 때문인지 여름이면 쓰레기 봉투를 복도에 두고 사용하는 집도 있고, 열어 놓은 현관문 앞을 지키던 강아지가 복도를 통행하는 이웃을 향해 사납게 짖어대는 경우도 더러 있다.

 

며칠 전에는 집을 나서는데 개 짖는 소리가 어찌나 우렁차고 크던지 아파트 건물 전체가 흔들리는 것만 같았다. 주인이 집에 없었는지 열려진 베란다 창문을 통해 개 짖는 소리가 쩌렁쩌렁 울리는데 개를 달래거나 제지하려는 사람은 전혀 보이지 않았다. 그나마 밤이 아니었으니 망정이지 깊은 밤에 벌어진 일이었더라면 동네 사람들의 원성깨나 샀을 것이다. 나는 8호실에 사는데 결혼을 하지 않은 아들과 나이 지긋한 부부가 사는 7호와 어린 딸 둘과 젊은 부부가 사는 9호에도 강아지를 키우고 있다. 게다가 7호에는 한두 마리가 아니다. 정확한 숫자는 모르지만 적어도 강아지 서너 마리와 고양이 두세 마리를 키우고 있는 듯했다. 그닥 넓지 않은 아파트에서 그렇게 많은 개체수의 반려동물을 키우다 보니 개들도 스트레스를 받았는지 복도에서 작은 발자국 소리만 들려도 왕왕 짖는다. 반려동물을 키우지 않는 나는 소리와 냄새에 민감할 수밖에 없는데 새벽녘에 짖는 강아지 소리에 몇 번 잠이 깬 적도 있다. 대용량 쓰레기 봉투를 사용하는 7호는 반려동물의 분변을 처리한 쓰레기를 봉투에 담아 복도에 내놓곤 하는데 여름에는 그 냄새가 정말 지독하다.

 

불과 10여 년 전만 하더라도 공동주택에서 반려동물을 키우는 건 여간 조심스러운 일이 아니었다. 반려동물의 소리 때문에 이웃과 마찰을 빚을까봐 소리가 나지 않도록 성대수술을 하기도 했고 이웃과의 마찰 때문에 단독주택으로 이사를 가기도 했었다. 며칠 전에도 의정부시에서는 산책을 하던 60대 여성이 목줄이 풀린 개에 물려 큰 부상을 입었다는 뉴스가 있었다. 반려동물 인구 천만시대라고는 하지만 우리나라의 페티켓 문화는 턱없이 낮은 수준에 머물고 있지 않나 싶다. 애견인들도 자신이 키우는 동물보다는 '사람이 먼저'라는 생각을 갖고 이웃을 배려한다면 사람과 동물이 평화롭게 공존할 수 있을 텐데 말이다. 적어도 지금보다는... 문재인 대통령의 대선 캐치 프레이즈 '사람이 먼저다'는 이럴 때 써야 하는 게 아닌가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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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빗 스태킹 - 쌓일수록 강해지는 습관 쌓기의 힘
스티브 스콧 지음, 강예진 옮김 / 다산4.0 / 2017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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벌써 12월, 엊그제 새해가 시작된 듯한데 2017년의 마지막 달을 맞고 있다. 지금은 송년 분위기도 많이 달라져서 거리에 크리스마스 캐롤이 울려퍼지던 8,90년대의 시끌벅적한 분위기는 많이 없어진 듯하다. 차분해졌다기보다 쓸쓸하거나 울적해진 느낌마저 감돈다. 그래도 빼놓지 않고 하는 것들이 있다. 송년모임이나 신년 계획 세우기, 해돋이·해넘이 행사 등이 그것이다. 어떤 특별한 구실이 없으면 한 자리에 모여 얼굴 한 번 마주할 기회조차 좀체 내기 힘든 바쁜 현대인들에게 송년모임이야 그렇다손 치더라도 요식행위처럼 매년 반복하는 신년 계획 세우기는 그야말로 무의미한 일이 아닌가 싶을 때가 더러 있다.

 

대표적인 신년 계획만 하더라도 '다이어트 및 외모관리', '체력관리 및 운동', '금연 및 금주', '취업', '영어공부' 등 거창하지만 어느 것 하나 제대로 이루어지지 않는 걸 보면 우리는 너무 욕심이 많거나 성급한 게 아니가 싶은 것이다. '바쁠수록 돌아가라'는 옛말도 있는 것처럼 우리들 삶의 여러 분야에 긍정적인 영향을 미치는 '핵심 습관'이 아무리 탐나고 부러울지라도 그것을 향해 곧바로 돌진하는 것은 매우 위험하다. 성공하기도 어렵고 말이다. 그보다는 '핵심 습관'을 뒷받침하는 '보조 습관'을 신경쓰거나 '코끼리 습관'을 이루기 위해 '미니 습관'을 관리하는 게 중요하다. 예컨대 운동을 하기(핵심 습관) 위해 맘에 드는 운동복을 준비해 놓거나 매일 체중계에 올라서기(보조 습관)를 실천하는 식이다. 또는 이삿짐 싸기(코끼리 습관)를 실행하기 위해 책정리(미니 습관)부터 하자는 식이다.

 

습관 전문가로서 신망이 두터운 스티브 스콧은 '작은 습관이 중요하다'는 사실을 그의 책 <해빗 스태킹>에서 강조하고 있다. 탄탄한 습관 근육을 키우기 위해 지속적으로 할 수 있는 작은 습관 계획을 세우는 게 무엇보다 중요하다는 점을 설명하고 있는 것이다. 좋은 습관이 어느 날 갑자기 뚝딱 만들어지는 게 아니라 오랜 시간 동안 쌓이고 쌓여 형성된다는 점을 독자들에게 주지시킨다.

 

"습관 쌓기의 가치는 각각의 습관 하나하나에 있는 것이 아니다.사람들 대부분은 이미 우리 삶을 '어떻게' 향상시킬 수 있는지 알고 있다. 사람들이 모르는 부분은 작은 습관을 '지키기 쉬운 구조'로 바꾸는 방법이다." (p.90)

 

습관에 관련된 책은 무수히 많다. 언뜻 생각나는 것만 해도 '습관의 힘'(찰스 두히그), '인생을 바꾸는 부자 습관'(토마스 C. 콜리), '나를 변화시키는 좋은 습관'(한창욱), '성공하는 사람들의 7가지 습관'(스티븐 코비), '퍼스트클래스 승객은 펜을 빌리지 않는다'(미즈키 아키코), '이중세뇌'(이소무라 다케시) 등이다. 이것을 다시 주제별로 나눈다면 수십 권도 넘을 것이다. 그러나 불공정한 사회에서 정의가 강조되는 것처럼 습관에 관련된 책이 매년 차고 넘치게 발간된다는 것은 자신이 원하는 핵심 습관을 게획하여 지속적으로 지킬 수 있는 사람이 그만큼 적다는 것을 의미하는 건 아닐까.

 

"사람들이 습관 들이기를 그만두는 이유는 '게을러서'가 아니다. 어려움이나 문제가 생겼을 때 극복하는 방법을 모르기 때문이다. 습관을 방해하는 사건이 생겨 '달리던 말에서 떨어졌을 때 다시 올라타는' 방법을 모르기 때문이다. 어떤 유형의 습관이든 지속성을 유지하는 비결은 계획된 일상을 방해할만한 문제를 미리 파악하고 이에 대비한 계획까지 세워두는 것이다." (p.299~p.300)

 

스티브 스콧은 이 책에서 우리의 하루가 작은 습관들로 채워질 수 있도록 그 방법을 세세하게 기록하고 있다. 1부 '습관은 바꾸는 것이 아니라 쌓는 것이다', 2부 '습관 쌓기를 완성하는 하루 5분 습관 127', 3부 '성공한 사람의 하루는 습관 쌓기로 이루어져 있다'로 구성된 이 책은 작지만 중요한 습관을 잊거나 뒤로 미루지 않기 위해서는 습관을 차곡차곡 쌓아 올려 하나의 일과로 만들어야 한다고 강조하면서 우리가 이 과정을 자연스럽게 받아들일 수 있도록 매우 친절하게 설명하고 있다. 저자는 '인생을 완성하는 7가지 목표 영역'(커리어, 자산 관리, 건강, 여가생활, 정리정돈, 인간관계, 영성)을 분류하고 이에 필요한 127가지 실천 항목을 제시한다.

 

헤비 스모커였던 나는 2015년 1월에 담배를 끊었다. 금연을 실천한 지 이제 만 3년이 되어간다. 갑작스러운 담뱃값 인상도 내가 금연을 결심하게 된 하나의 계기였지만 이소무라 다케시의 <이중세뇌>가 큰 도움이 되었다. 만 하루도 담배 없이 지낸 적 없었던 내가 금연을 실천한 지 하루, 이틀, 사흘 날짜가 흘러가는 걸 확인하면서 나는 무한한 희열을 느꼈었다. 그 시간이 얼마나 힘들고 고통스러웠는지 잘 알기에 그 인내의 시간이 아까워서라도 나는 두 번 다시 담배를 피울 생각이 없다. 매일 새벽 5시 30분에 하는 산행도 다르지 않다. 습관은 쌓여가는 것이라는 스티브 스콧의 주장에 고개를 끄덕이며 이 책을 읽었다. 이제 나는 인생의 다른 목표를 세우고 그에 필요한 작은 습관들을 꼼꼼히 메모하여 실천하고자 한다. 2018년이 기다려지는 이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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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일 아침 빼놓지 않고 확인하는 게 있다. 오늘의 날씨이다. 더 정확히 말하자면 아침 최저기온과 미세먼지 농도를 확인하는 것이다. 새벽 운동을 나갈 때 챙겨 입어야 할 옷의 두께와 마스크 착용 여부를 결정하려면 귀찮기는 하지만 어쩔 수 없는 노릇이다. 오늘처럼 아침 기온이 뚝 떨어지거나 연일 춥던 날씨가 갑자기 푸근해진 아침에 전날 기준으로 옷을 입었다가는 여간 고생을 하는 게 아니다. 산길을 걷는 내내 등을 구부리고 몸을 잔뜩 움츠리게 되거나 더워서 코트의 앞섶을 열게 되기도 한다.

 

그러나 기온의 변화는 그나마 나은 편이다. 잘만 확인하면 큰 불편 없이 다닐 수 있기 때문이다. 옷이나 장갑 등을 활용하면 추위나 더위쯤은 크게 문제가 되지 않는다. 말하자면 날씨는 나 스스로 얼마든지 통제가 가능하다는 애기다. 문제는 미세먼지이다. 미세먼지의 농도가 높은 날이면 운동을 나가야할지 말아야할지부터가 고민이다. 마스크를 쓰고 산을 오르는 것도 곤욕이지만 마스크가 공기 중의 미세먼지를 얼마나 걸러줄지 의심이 들기 때문이다. 그런 날이면 호흡도 가쁘고 기분도 영 좋지 않다. 가만히 생각해 보면 내가 미세먼지에 이렇게 예민하게 반응하는 이유는 미세먼지를 나 스스로 통제할 수 없기 때문이지 싶다. 통제 가능한 날씨와 통제 불능의 미세먼지.

 

우리가 정치인들의 막말이나 꼴통 짓에 분개하는 이유도 이와 비슷하지 않을까 싶다. 정치인이 나에게 알게 모르게 영향을 미치는 건 분명한데 나는 도무지 그의 행동이나 말을 통제할 수 없는 것이다. 이렇게 답답한 노릇이 또 있을까. 화가 날 수밖에 없다. 최근에 불거진 심 모 국회부의장의 뜬금없는 막말도 국민들의 분노를 유발하게 했다. 아무런 존재감도 없었던 그는 이번 막말로 인해 전국적으로 유명세를 탔다. 잘 짜여진 노이즈 마케팅이라면 소기의 목적을 달성한 셈이다.

 

문재인 정부의 적폐청산 작업에 대해 불만이 많은 듯 보였던 그는 문재인 대통령, 임종석 대통령 비서실장, 서훈 국정원장, 윤석렬 서울지검장을 내란죄와 국가기밀누설죄 등으로 형사고발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의 주장대로라면 문재인 정부의 적폐청산 작업을 지지하는 대다수의 국민들 또한 내란죄로 고발해야 마땅하다. 이게 말이 되는가 말이다.

 

2013년 국회 본회의장에서 자신의 스마트폰으로 여성의 누드사진을 검색하다가 기자에게 딱 걸려서 자신의 존재감을 전국에 알렸던 그였지만 너무 오랫동안 존재감이 없었다는 사실을 스스로 깨닫고 다선 국회의원으로서 자괴감이 들었는지도 모른다. 김대중 내란음모사건 피의자로 치안본부 특수대에 끌려가 혹독한 고문을 받은 바 있는 그가 자신있게 내뱉을 수 있는 죄명은 오직 '내란죄'밖에 없었는지도 모르지만 말이다.

 

 

외부 환경에 잘 적응할 수 없거나 자신의 통제력이 미치지 않는 어떤 일이나 대상은 필연적으로 짜증이 나게 마련이다. 정치인의 막말이나 꼴통 짓은 미세먼지보다도 더 심한 화를 불러일으키곤 한다. 미세먼지는 그나마 마스크를 착용함으로써 어느 정도 피해를 줄일 수 있지만 정치인의 막말이나 꼴통 짓은 도무지 통제 불능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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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12-01 19:30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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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12-02 16:45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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