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사랑한 백제 - 백제의 옛 절터에서 잃어버린 고대 왕국의 숨결을 느끼다
이병호 지음 / 다산초당(다산북스) / 2017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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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백하자면 학창시절의 나는 우리나라의 역사에 그닥 많은 관심을 두지는 않았다. 그렇다고 아예 제쳐놓거나 등한시했다는 얘기는 아니다. 정말 열심히 공부하기는 했지만 그것이 꼭 자발적인 동기에서 비롯되지는 않았다는 말을 하고 싶은 것이다. 당시만 해도 국사는 대학 입시뿐만 아니라 공무원 시험 등 대부분의 시험에서 필수과목이었고 국사를 공부하지 않은 채 사회에 진출한다는 건 꿈도 꿀 수 없었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아무리 국사에 관심이 없는 학생일지라도 국사로 인해 제 인생의 앞길이 막히는 걸 바라지 않았기에 다들 열심히 국사를 공부했었다. 물론 그런 분위기 탓에 마음에서 국사와 가까워질 수 있었던 많은 기회를 박탈당했는지도 모르지만 말이다.

 

국립미륵사지유물전시관 이병호 관장이 쓴 <내가 사랑한 백제>를 읽으면서 나는 문득 무미건조했던 나의 학창시절을 떠올렸다. 딱딱한 문체와 간간이 흑백 사진이 실린 국정 역사교과서처럼 공부는 그저 흥미나 관심보다는 선택의 여지가 없는 의무일 뿐이라는 사실이 크게 부각되던 그 시절. 국사 교과서를 통째로 외우는 수고도 마다하지 않았던 그 시절의 열정에 우리나라 역사에 대한 흥미와 관심이 단 한줌이라도 더해졌더라면 얼마나 좋았을까 하는 아쉬움이 남았다.

 

"오늘날 한국 고대사 학계는 고조선의 위치 문제나 고구려사의 귀속 문제, 임나일본부의 실체 등과 관련해 첨예한 역사 전쟁을 치르고 있다. 그러한 국내외적 소용돌이 속에서도 백제는 소외되거나 그다지 쓸모없는 것처럼 보인다. 하지만 나는 백제와 관련된 자료를 접할 때마다 항상 간절함과 뜨거운 가슴으로 대했다. 나는 역사라는 것이 기본적으로 사람 사는 이야기이고, 관계에 대한 해석이며, 교훈을 주는 것이어야 한다고 믿고 있다." (p.17)

 

딴은 우리나라 역사에 대해 열심히 공부했다고 생각하지만 나는 유독 백제의 역사에 대해서는 별반 아는 게 없었다. 저자도 이 책에 쓰고 있다시피 나만 그런 건 아닌가 보았다. 생각해 보면 우리나라의 역사에서 백제가 차지하는 위상은 정말 보잘것없는 게 아니었던가. 단 몇 쪽으로 백제의 역사 전체를 기술한다는 건 어찌 보면 옛 백제인에 대한 모독이자 후손으로서 백제 역사를 등한시했던 우리들의 부끄러운 민낯이기도 했다. 순천고를 졸업하고 한국교원대에서 역사교육과 학사를, 서울대대학원에서 문학 석사를, 와세다대학에서 문학 박사 학위를 받았던 저자의 화려한 이력 뒤에는 백제 역사에 대한 저자의 관심과 뜨거운 열정이 숨어 있었음을 느낄 수 있었다.

 

"사람마다 삶의 목표나 의미가 다르지만 나는 삶을 꿈을 실현하는 과정이라고 생각한다. 짧은 인생이지만 꿈을 이루기 위해 부단히 노력하고, 그것을 다시 사회에 '되돌려 주는 삶'이야말로 가장 고귀한 것이라고 믿고 있다. 내 꿈은 사춘기를 지나면서 오직 하나밖에 없었다. 바로 백제를 연구하다가 죽는 것이다. 꿈을 얘기하다 갑자기 죽음을 이야기하는 게 다소 생뚱맞게 들릴지 모르지만 죽을 때까지 한결같이 공부하는 모습을 꿈꾸기 때문에 어쩔 수 없다." (p.27)

 

사료 중심의 연구가 주류를 이루던 시기에 유물과 유적을 조사하여 백제의 숨겨진 역사를 밝혀온 저자는 자신의 이력과 연구 성과가 담긴 이 책에 대한 자부심이 매우 강한 듯 느껴졌다. 그것은 자신의 성취에 대한 뿌듯함도 있겠지만 1,400년 전 동아시아 국제 교류의 중심이었던 문화 강국 백제의 진면목을 자신이 쓴 책을 통해 더 많은 사람들에게 알릴 수 있겠다는 기대감이 더 큰 듯했다. 백제역사유적지구가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으로 등재되고, '백제왕도 핵심유적 복원 사업'이 국정과제로 선정되는 등 그동안 소외되었던 백제의 위상이 조금씩 높아지고는 있는 현실에 비추어 볼 때, 백제에 대한 국민들의 관심이 여전히 제자리걸음인 채 개선되지 않고 있는 현실은 저자의 입장에서 그저 안타깝기만 할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이 책은 백제를 사랑하는 한 명의 역사학자로서 안타까움이 깊게 배인 저작물이라고 할 수 있다.

 

제1부 왜 백제를 공부하는가, 제2부 유물은 어떻게 역사가 되는가, 제3부 이제 백제를 어떻게 할 것인가 등 총 3부로 구성된 이 책은 프롤로그와 에필로그, 후기와 참고도서 목록, 부여지역의 주요 유적 분포도까지 꼼꼼하게 실었다. 책을 읽다보면 세계가 인정하고 일본이 탐낸 백제 시대의 역사를 정작 우리만 잊고 지냈던 게 아닌가 하는 미안함과 함께 교과서에서는 본 적 없는 다양한 유물과 사료들이 책의 곳곳에 등장하는 것을 보면서 백제 유물이 이렇게 많았던가, 하고 놀라게 된다. 대한민국 국민으로서가 아니라 백제 역사를 잘 몰랐던 한 명의 독자로서 나는 백제인의 예술성과 독창성에 감탄을 금할 수 없었다.

 

며칠 전, 신문에 보도된 뉴스에는 예산 봉산면 효교리 일원에서 진행되는 발굴조사 현장에서 사비도읍기 백제시대의지역 수장급 인물이 묻힌 것으로 추정되는 횡혈식 석실분이 발견되었고, 그곳에서 직물 조각이 붙어 있는 두개골이 나왔다는 기사가 실렸다. 두개골에 붙은 직물은 베로 추정되고 수장급 무덤에서 거의 나오지 않는 목관 부재도 함게 나왔다는 기사였다. 중요한 역사의 흔적이나 유물에 대한 기본적 상식조차 없는 나와 같은 일반인들이 그와 같은 유물 발굴이 어떤 의미가 있는지, 얼마나 대단한 가치가 있는 것인지 직접 체감할 수는 없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그것에 의미를 부여하는 큐레이터로서 저자와 같은 사람들이 있기에 우리도 작게나마 고개를 끄덕일 수 있는 것이다.

 

"지금까지 내가 만들어 온 백제 이야기를 갈무리하고, 새로운 미래로 나아가는 모멘텀을 설정하고 싶었다. 나는 여전히 백제에 대한 간절함과 열정이 사그라들지 않기를 꿈꾸고 있다. 10년 뒤에는 좀 더 새롭고 알찬 나의 백제에 대한 사랑 이야기를 들려줄 것을 약속한다." (p.366)

 

역사는 승자의 기록이라고는 하지만 우리는 그동안 승자에 대한 편애를 너무 심하게 유지해 왔는지도 모른다. 이제 우리는 신라가 아닌 백제의 역사, 나아가서는 가야의 역사에 대해 관심과 사랑을 보여줄 때이다. 역사의 균형을 찾아가는 일이 우리가 할 수 있는 후손된 임무임을 자각할 때, 우리의 문화는 세계 무대에서 더욱 빛날 것임은 자명한 일, 저자가 사랑한 백제는 이제 대한민국을 넘어 세계인이 사랑하는 백제로 거듭나지 않을까. 그날을 기다려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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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부분의 블로거들이 한 번쯤 맞닥뜨리게 되는 고민은 블로그에 글을 쓰거나 사진을 올리는 데 너무 많은 시간을 허비하고 있는 게 아닌가 하는 문제이다. 블로그를 처음 시작할 때만 하더라도 한 편의 글을 완성함으로써 얻는 기쁨이나 충만함은 시간의 손실을 생각할 수 없을 정도로 크고도 벅찬 것이었다. 그러나 이러한 기쁨은 시간이 흐르면서 또는 횟수가 반복되면서 차츰 그 효용가치가 떨어지게 마련이고 급기야 글을 쓰는 데서 오는 기쁨과 그 시간에 다른 일을 함으로써 얻을 수 있는 기쁨을 비교하기에 이르는 시기가 온다. 말하자면 기회비용을 생각하는 것이다. 그 시간에 다른 일을 하지않고 오롯이 글을 씀으로써 얻을 수 있는 편익이 마침내 제로 상태가 되었거나 이미 마이너스 상태가 된 게 아닌가 하는 회의감이 들지 않을 수 없다. 한계효용체감의 법칙을 들먹이지 않더라도 말이다.

 

또 하나의 문제는 소재의 빈곤에 있다. 대부분의 블로거들이 시작 단계에서부터 자신이 추구하는 블로그의 방향을 결정하기는 하지만 방향이 결정되었다고 해서 무한정의 소재가 제공되는 것은 절대 아니다. 한 분야의 글만 집중적으로 올리면 글을 쓰는 자신도 재미가 없거니와 글을 읽는 다른 네티즌들의 새로운 흥미를 유발하지 못하기 때문이다. 나의 경우에도 다르지 않았다. 책을 읽고 간단한 메모 겸 감상평을 올리자는 게 주목적이었지만 하루에 한 권의 책을 읽어낸다는 것도 어렵지만 책을 읽은 후에도 매번 이번에는 어떤 식으로 글을 써야하나 하는 고민이 반복적으로 이어졌다. 그러다 보면 글을 쓰는 데서 오는 기쁨은 온데간데없고 블로그를 유지한다는 게 하나의 큰 부담으로 느껴진다.

 

다른 고민도 있다. 이건 물론 블로그를 유지하느냐 마느냐 하는 고민과는 하등 관련이 없는 문제이다. 길을 걷거나 잠시 산책을 하다가 머릿속에 우연히 떠오르는 생각이 있어서 다음에는 이러이러한 글을 블로그에 올려야겠다고 생각하지만 막상 글로 옮기게 되면 글의 주제나 구성이 처음의 생각과는 전혀 다른 방향으로 흘렀다는 사실을 발견하게 된다는 점이다. 그렇다면 처음부터 다시 쓰면 될 게 아니냐 생각하실 분이 있을지 모르겠다. 그러나 그게 말처럼 쉽지가 않다는 게 문제라면 문제다.

 

미세먼지로 바깥 공기가 워낙 안 좋아 이러고 있다. 발표를 보니 우리나라의 공기질(Air Quality) 수준이 전 세계 180개국 중 173위라고 한다. 미국 예일대와 컬럼비아대 공동연구진이 발표한 '환경성과지수(EPI) 2016'에 따르면 우리나라는 공기질 부문에서 100점 만점에 45.51점으로 이는 전체 조사대상 180개국 중 173위라는 것이다. 오늘도 나는 처음에 생각했던 간결하고 명쾌한 글을 쓰지 못하고 두서없는 글을 쓰고 말았다. 늘 이런 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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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17-12-23 16:3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제가 온라인 유목민이 된 이유를 이 글에서 알게 되네요 ㅜㅜ

꼼쥐 2017-12-24 17:04   좋아요 0 | URL
블로그를 유지하는 자체만으로도 대단한 거죠. 그렇지 않을까요?
 
늘 괜찮다 말하는 당신에게
정여울 지음 / 민음사 / 2017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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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체적으로 놓고 볼 때 인생은 밍밍하거나 슴슴하다. 이렇다 할 특색이 없는 것이다. 물론 개개인의 인생을 하나하나 뜯어보면 각기 다른 수많은 사건들을 겪고 헤쳐나가느라 정신을 차리지 못할 정도로 변화무쌍하다 느끼는 게 사실이지만 말이다. 그러나 그 모든 것들도 크게 보면 나고, 자라고, 늙고, 병들어 죽는 최소한의 범주를 구성하는 작은 알갱이들에 불과할 뿐이다. 그럼에도 우리는 낱낱의 그 작은 사건들에 울고 웃고, 때로는 인생 전체에 타격을 줄 정도로 휘청거리게도 된다.

 

"우리는 익숙한 공간, 한정된 시간, 지금까지 '나다운 것'이라 믿어 왔던 세계의 매트릭스에서 단 며칠만이라도 벗어나봐야 한다. 가능하다면 정기적으로 '자기로부터의 탈주'를 꿈꾸는 시간을 짧게라도 가져야 한다. 그러지 않으면 거대한 조직사회나 자본의 톱니바퀴가 굴리는 대로 굴러가거나, 가족이라는 블랙홀에 빠져 진정한 '나'를 찾을 길이 없어지게 된다." (p.263)

 

문학평론가 정여울이 쓴 <늘 괜찮다 말하는 당신에게>는 하루에도 몇 번씩 아주 작은 일에도 천당과 지옥을 수시로 오가는 우리네 보통 사람들을 위한 책이기도 하다. 일희일비 하느라 제풀에 지쳐 나가떨어지는 보통의 사람들이 자신이 겪은 개별적인 사건의 모든 정황을 문학을 통해 확인하고, 심리학적인 관점에서 그 인과관계를 규명해보자는 것이다. 마음의 상처는 단순히 괜찮다며 덮는 것으로 치유되는 게 아니라 그 아픔의 근원을 찾아 스스로를 납득시켜야 하기 때문이다. 그러기 위해서는 심리학적 도구를 이용해야 한다고 작가는 말한다.

 

"심리학의 눈으로 문학을 바라보는 훈련을 통해서 나는 나도 모르게 내 상처와 천천히 작별하고 있었던 것 같다. 사실 이토록 심리학에 관심을 가지게 된 이유도, 그 첫 번째 동기는 '내 상처를 극복하기 위해서'였으니 말이다. 예전에는 그저 '아름다운 작품'이라고만 생각했던 소설이 심리학의 눈으로 보면 '우리의 무의식을 이해하는 데 특별한 관점을 제공하는 작품'이 된다." (p.36)

 

작가가 소개하는 소설 속 인물들은 다양한 트라우마의 유형을 보여준다. 서로 극과 극의 이질적인 성격으로 공통점이라고는 눈곱만큼도 없어 보이는 '오만과 편견'의 주인공 엘리너와 매리앤 자매가 각자 고통을 겪은 후 서로에 대해 공감하게 되는 과정에서의 심리학적 설명, 관계 맺기에 실패한 '연인'의 백인 소녀, 고향에서 자신의 거짓된 페르소나를 벗고 진정한 자신의 그림자와 만나는 '무진기행'의 윤희중, 불안으로부터 자신을 보호하기 위해 끝없이 방어기제를 사용하는 '바람과 함께 사라지다'의 스칼릿, 서로의 상처를 어루만지며 한 사회에 내재하는 집단적 죄의식을 인식해가는 '책 읽어주는 남자'의 미하엘과 한나 등을 통해 작가는 감동과 교훈이라는 측면에서만 바라보던 문학작품 속 인물의 행동에 대해 심리학적 관점에서의 분석을 통해 독자의 이해를 돕는다. 그것은 어쩌면 우리 각자의 내면을 말하고 있는 것인지도 모른다.

 

"어쩌면 이토록 우리네 인생을 닮았을까? 우리 자신을 보호하려는 그 모든 방어기제들, 즉 자존심과 명예욕과 질투심과 자기연민이야말로 우리에게서 용기를 빼앗아 가는 '내 안의 적들' 아닌가? 우리는 그들을 통해 인간의 욕망을, 관계의 허무를, 무의식의 반격을 성찰할 수 있다. 우리는 저마다의 가슴 속에 꿈틀거리고 있는 '자기 안의 스칼릿'을 잘 다독이고 설득하며, 때로는 눈물을 쏙 빼도록 혼구멍을 내야 할지도 모른다." (p.110)

 

작가는 아들을 낳아야 한다는 압박 속에 세 딸을 낳아 기른 어머니 밑에서 '열 아들 부럽지 않은 맏딸'로 자라며 갖게 된 트라우마가 있다고 고백한다. 그런 까닭에 엘리너처럼 모범적으로 살기를 강요받았지만 실은 매리앤의 자유분방한 영혼을 지닌 사람이라는 걸 심리학 공부를 통해 알게 되었다고 한다. 심리학의 관점에서 "결국 우리가 평생 고통받는 상처의 기원이 대부분 부모를 비롯한 가까운 사람들의 상처에서 연원"하는 까닭에 이와 같은 상처와 결핍, 트라우마와 콤플렉스를 그대로 놔둔다면 자녀에게 고스란히 대물림될 가능성도 있는 것이다. 트라우마의 사슬을 끊기 위해서라도 현재의 '나'는 과거 속의 '나'와 대면하고, 그것을 통하여 영원히 자라지 않는 자신의 내면아이를 다독이고, 의식하지 못한 채 지나쳤던 상처를 돌보고 치유해야만 한다.

 

"내가 글쓰기를 시작한 것은, 실은 말하기 콤플렉스 때문이었다. 말하기가 싫어서 글쓰기로 도피했다. 많은 사람들 앞에서 시선 처리는 물론 목소리 강약을 조절하는 것도 어려웠기에, 나는 무대공포증을 피해 조용히 글 쓰는 삶을 선택했다." (p.172)

 

문학작품에 등장하는 각각의 인물과 그들이 보여주는 여러 행동이나 심리는 사실 우리들 모두에게 내재된 인생 속 한 단면이었을지도 모른다. 그러므로 우리는 그들 인생에 깊이 공감하고 울고 웃게 되는 것이다. 문학작품을 읽는다는 것은 자신의 내면을 들여다보는 일차적인 행위라고 해도 과히 틀린 말은 아닐 것이다. 그러나 문학작품을 읽으면서 각자가 울고 웃는 까닭을 문학작품이 나서서 설명해주지는 않는다. 따라서 심리학이라는 다른 도구를 동원하지 않는다면 아무리 많은 문학작품을 읽는다 해도 자신의 내면아이와 대면할 수 있는 기회는 영영 잃게 될지도 모른다.

 

오늘은 일년 중 밤이 가장 길다는 동지(冬至). 큰 틀에서 보면 올 한해도 지난해와 크게 다르지 않고, 인생은 그저 밍밍하거나 슴슴한 것이지만 생명이 붙어 있는 우리는 시간 앞에서 한시도 방심할 수 없는 까닭에 문학을 읽고 심리학을 공부는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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눈에 덮인 인도를 조심스레 걷고 있는 어르신들을 볼 때마다 보고 있는 내가 더 마음이 조마조마하고 손에선 땀이 쥐어진다. 마음의 불안이 그들의 육체를 지면으로부터 반보쯤 밀어올린 듯 내딛는 발걸음에 자신의 체중을 온전히 싣지 못하고 마치 허공을 휘적휘적 걷고 있는 듯 보인다. 보고 있는 나로서도 아슬아슬 불안하기만 하다. 이렇듯 불안은 사람들로 하여금 지면에 또는 현실에 안착하지 못하도록 한다.

 

지면으로부터, 현실로부터 멀어진다는 건 불안이 그만큼 가중된다는 걸 의미하는지도 모른다. 길이 아무리 미끄러울지언정, 현실이 아무리 팍팍할지언정 가슴을 펴고 자신있게 걸어야 한다. 자신을 쓰러트리는 건 미끄러운 길도, 팍팍한 현실도 아니다. 오히려 지레 겁을 먹었던 자신의 불안 때문에 넘어지는 것이다. 그러나 야속하게도 세월은 불안의 깊이를 점점 키워만 간다. 노년의 삶이란 결국 현실로부터 멀어진 불안의 시기를 힘겹게 사는 것인지도 모른다.

 

자주는 아니지만 현실과 멀어졌다고 느낄 때마다 들춰보게 되는 책이 있다. 김소연의 <마음사전>이다. '외롭다는 말을 설명하기 위해서 하룻밤을 꼬박 새워본 적이 있다'는 작가의 고백처럼 이 책은 작가가 공을 들인 흔적이 곳곳에서 드러난다.

 

거짓말을 가장 확실하게 실천하는 관계는 가족과 연인이다. '사랑'이라고 하는 매개체를 통하여 굳게 맺어진 이 관계는, 사랑한다고 믿는 사람을 향하여, 사랑한다고 말한 대가를 치르기 위해 가장 많은 약속을 하면서 영위되고 있다. 약속은 범람하면 할수록 지켜질 수가 없다. 그래서 약속을 꼭 지키겠다는 약속마저 하게 된다. 약속은 사랑하는 관계 속에서 일종의 '노을'이고, 그 약속을 마치 다 지켜줄 사람으로 착시하는 것이 바로 '사랑'인 셈이다. 그 착시를 통하여 관계는 강인하게 매수되고 단련된다. (김소연의 '마음사전' 중에서)

 

연예인들의 갑작스러운 죽음이 어느 때보다 더 크게 다가왔던 2017년의 세모. 불안이라는 막다른 골목은 마치 블랙홀처럼 사람들을 끌어들이고, 당신의 그늘엔 여전히 어제 내린 눈이 소복할지라도 2018년 새해에는 희망의 햇살이 가득했으면 좋겠다.

 

파스빈더는 "불안은 영혼을 잠식한다"고 말했지만, 영혼을 잠식당하면서도 가보고 싶은 곳이란, 사람에게는 있는 법이다. 영혼을 담보하여 큰 대가를 치를 때에만 얻을 수 있는 것들이 이 세상엔 있다. 어쩌면 이 세상 바깥에 더 많을지도 모른다. (김소연의 '마음사전'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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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니데이 2017-12-22 20:3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꼼쥐님, 2017년 서재의 달인 축하드립니다.^^

꼼쥐 2017-12-23 16:21   좋아요 1 | URL
감사합니다. ^^
서니데이 님도 축하드립니다.
 
골목길 자본론 - 사람과 돈이 모이는 도시는 어떻게 디자인되는가
모종린 지음 / 다산3.0 / 2017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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골목길의 매력은 그 지역의 풍경과 무관치 않다. 골목길을 따라 꼬불꼬불 오르다 보면 마을의 끄트머리 언덕배기의 작은 공터가 나오거나 아카시아 몇 그루가 다인 작은 녹지가 나온다. 공터는 동네 조무래기들의 놀이터가 되기도 하고 밤이면 동네 언니 오빠들의 데이트 장소가 되기도 했다. 골목과 골목이 갈리는 교차점에는 밤이 이슥하도록 불이 훤하게 밝았던 구멍가게가 있었고, 신 김치를 안주 삼아 소주를 마시는 동네 아저씨들이 있었다. 가로등도 없는 어두운 골목길엔 집집마다 어른 어깨 높이의 작은 창들이 나 있었고, 창을 통과한 백열전구의 희끄무레한 불빛이 늦게 퇴근하는 어느 집 여식의 안전을 지켜주었다.

 

생각해 보면 아주 먼 옛날도 아니다. 얼큰하게 취한 남자와 당장의 생활비가 궁한 여자의 날선 목소리가 부딪히고, 아이를 나무라는 어느 집 젊은 엄마의 새된 음성과 걸음아 나 살려라 내달리는 꼬마의 발자국 소리, 그 왁자했던 골목길의 소음이 당장이라도 들려올 듯하다. 8,90년대만 하더라도 이런 풍경은 서울의 변두리에서 흔히 볼 수 있었다. 그 시절을 겪어보지 못한 젊은 세대는 신기한 눈으로, 그 시절을 살아온 사람들은 아득한 그리움으로 골목길을 대하고 있다.

 

"건축가 유현준은 소비자들이 골목 안의 상업시설에 매력을 느끼는 이유를 골목길의 밀도와 우연성으로 설명한다. 인위적이고 정형화된 쇼핑센터와 달리 골목의 구조는 여러 형태의 가게를 품을 수 있다. 저마다의 취향대로 가게를 꾸밀 수 있고, 1층뿐 아니라 지하까지도 다양하게 자리를 잡을 수 있는 것이다. 골목길 구조의 다양성과 밀도로 인해 우리는 우연한 볼거리들과 마주하게 된다. 예측하지 못했던 곳에서 새로운 골목과 새로운 가게들이 열린다. 층별 입점 브랜드 안내서 한 장이면 모든 것이 한눈에 파악되는 쇼핑몰이나 백화점과 달리, 미로처럼 얽혀 있는 골목의 구석구석은 우리를 예상치 못한 즐거움의 세계로 안내한다."    (p.23~p.24)

 

모종린 교수의 <골목길 자본론>은 경제학자의 시선으로 바라본 골목길의 잠재가치를 논하는 좋은 책이다. 딱딱하기 이를 데 없는 경제학 서적의 면모는 크게 보이지 않고 경제학 관련 수필집쯤으로 읽힌다. 최근에 핫플레이스로 부상한 부산 보수동 헌책방거리, 대구 방천시장 김광석 거리, 서울 문래동 철강문화거리, 서울 이화동 벽화마을 등에 주목하면서 저자는 이 책에서 우리의 소중한 골목문화를 지켜내고 발전시킬 수 있는 방안을 제시한다.

 

1장 왜 골목길에 사람이 모이는가, 2장 사랑받는 도시에 없어서는 안 될 것, 3장 골목상권 경쟁력 확보를 위한 물리적 조건, 4장 골목을 골목답게 만드는 정체성과 문화, 5장 장인 정신과 기업가 정신, 6장 젠트리피케이션의 신화와 대안, 7장 더 나은 미래를 위한 골목길 정책 등으로 구성된 이 책에서 유독 눈길이 가는 부분이 있었다. C-READI 모델로 지칭되는 골목상권 활성화 정책이 그것이다. 문화자원(culture), 임대료(rent), 기업가정신(entrepreneurship), 접근성(access), 도시 디자인(design), 정체성(identity)이 잘 갖추어져야만 골목상권이 성공적으로 발전한다는 것이다.

 

"성공적으로 발전한 골목상권은 공통적으로 뛰어난 창업자(E)가 접근성(A)이 좋고 골목 자원(D)과 문화 자원(C)이 풍부하지만 임대료(R)가 싼 지역에서 성공적으로 창업하고, 이를 본 다른 창업자가 주변에서 새로 가게를 열어 지역만의 정체성이 뚜렷한 하나의 상권으로 발전시키는 과정을 거쳤다."    (p.330)

 

내가 대학에 다니던 과거에 친하게 알고 지내던 외국인이 한 명 있었다. 그 당시 서울 중심부의 유명 외국어 학원에서 영어를 가르쳤던 그는 옥수동의 허름한 주택의 단칸방을 얻어 세 들어 살았다. 그의 한 달 수입을 생각할 때 무척이나 검소한 모습이었다. 어느 주말 저녁, 금호역 근처의 시장통에서 그와 함께 술잔을 기울이던 나는 그가 그곳에 사는 이유를 슬쩍 물어보았다. 그의 대답은 명쾌했다. 옥수동의 가파른 언덕을 오르내리면 건강에도 좋고 무엇보다도 서울 시내의 야경을 매일 밤 감상할 수 있으니 그것만으로도 사는 데 최적의 장소라고 할 수 있는데 그에 더하여 임대료까지 저렴하니 마다할 이유가 없지 않겠느냐는 것이었다.

 

서울의 대표적 달동네. 그가 살던 옥수동이 재개발 지역으로 지정되자 그는 마치 자신의 일처럼 몹시 서운해 했었다. 가파른 계단과 올망졸망한 집들이 늘어선 정다운 풍경을 더는 보지 못하게 되었다는 사실이 믿기지 않는다는 눈치였다. 그가 자신이 태어난 캐나다로 돌아가기 전까지 옥수동의 낡은 집들과 오래된 계단은 주민들만 떠난 채 흉물스럽게 남아 있었다. 서울의 역사가 고스란히 담겨 있는 옥수동의 아름다운 풍경은 아무리 많은 돈을 준다 한들 다시 살 수 없을 텐데 왜 그렇게 모두 없애버리지 못해 안달을 하는지 한국인들의 생각을 도무지 이해할 수 없다고 그는 말했었다.

 

"이제 우리의 골목길은 미래 인재와 여행자를 두고 세계의 다른 골목길과 경쟁한다. 계속 더 성장하기 위해서는 골목문화의 생산자인 창조적인 문화예술인과 지역사업가를 불러 모아야 하고, 골목문화의 소비자인 여행자들을 행복하게 만들어야 한다."    (p.387)

 

산업화를 거치면서 서울로, 서울로만 몰려들었던 까닭에 수도 서울의 주택 정책은 그야말로 개발 일변도의 정책을 지속해 왔다. 그 과정에서 우리의 귀중한 자산이 될 수도 있었던 역사의 흔적들이 대부분 사라진 것도 사실이다. 난개발과 투기 광풍의 회오리가 이제는 좀 잠잠해졌는지도 모른다. 지금은 우리의 지난 날을 반성하면서 미래의 청사진을 새로 만들어가야 할 시점이 아닌가 싶다. 골목뿐만 아니라 옛것에 대한 가치를 다시 생각해봐야 한다. 시간의 가치보다 편리의 가치만 강조했던 우리의 무지가 조금쯤 부끄러워지는 오늘, 모종린 교수의 <골목길 자본론>을 읽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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