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타까운 소식이 전해질 때마다 드는 생각은 우리 사회의 인명 경시 풍조가 얼마나 심각한가 하는 데서 오는 자괴감과 깊은 비애입니다. 한국 전쟁 이후의 모진 가난으로부터 벗어나기 위해 무진 애를 썼던 우리 국민의 열망이 지금 이 정도의 성과로 이어졌다는 것은 잘 알고 있지만 아무리 그렇더라도 어떤 금은보화로도 사람의 목숨을 살 수 없다는 사실은 과거에도 지금도 변할 수 없는 진리이겠지요. 제가 이런 말을 하는 까닭은 매 사건마다 사업주의 또는 건물주의 욕심이 사건 깊숙이 개입되어 있는 듯 보이기 때문입니다. 세월호 사건도, 가습기 살균제 사건도, 제천 화재 참사도, 그리고 오늘 아침의 밀양 세종병원 화재 참사도 마찬가지였습니다.

 

기업 프렌들리, 규제는 암덩어리를 외쳤던 이전 정부의 자유주의 시장경제 정책은 인간 욕심의 폭주 기관차에 속도 제어장치마저 풀어준 셈이었습니다. U.A.E 원전 수주를 위해 우리나라 청년의 목숨을 담보로 했다는 사실은 국민들을 경악하게 만들 일이었음에도 돈 앞에 모든 것이 용서되는 듯한 모습으로 마무리되는 걸 보고 있노라면 개탄스럽기 그지없습니다. 게다가 스프링클러도 설치돼 있지 않은 병원이 합법적이었다는 건 정말 납득이 되지 않더군요. 기업 경영에 장애를 주는 규제는 과감히 풀어야 하지만 인간의 목숨과 관련된 사안은 규제에 규제를 더해야 하지 않을까요.

 

인간의 목숨보다 돈이 우선했던 사회, 정의보다는 불법과 탈법이 만연하던 사회, 불공정과 뒷거래가 판치던 사회를 혁신하겠다는 현 정부의 외침이 한낱 정치보복으로 폄훼되는 작금의 현실 앞에서 우리 국민은 정말로 반성해야 마땅할 듯합니다. 어떤 순간에도 돈이 인간의 목숨보다 소중할 수는 없는 것입니다. 그것은 설명할 필요도 없이 너무나 자명한 사실이지요. 2018년 1월의 마지막 주말, 우리는 이유도 모른 채 죽어야 했던 안타까운 영령들 앞에서 진심으로 뉘우쳐야 합니다. 2018년 우리의 민낯은 참으로 추한 모습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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면장 선거 닥터 이라부
오쿠다 히데오 지음, 이영미 옮김 / 은행나무 / 2007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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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내에도 많은 팬을 두고 있는 오쿠다 히데오이지만 내가 그의 작품을 처음 접한 건 그리 오래된 일이 아니다. 그러나 누군가의 추천으로 우연히 읽게 된 <공중그네>가 어찌나 재밌던지 시니컬한 그의 유머와 탁월한 전개 방식에 금세 매료되고 말았다. 책을 다 읽기도 전에 말이다. 나는 한동안 다른 책은 거들떠도 보지 않은 채 오직 오쿠다 히데오의 작품만 찾아 읽었다. <남쪽으로 튀어!>, <나오미와 가나코>, <무코다 이발소>, <꿈의 도시> 등 그의 소설은 꽤나 많았다. 때로는 <연장전에 들어갔습니다>와 같은 수필집도 함께 읽었다. 그는 언제나 현실에 대한 풍자와 비판을 잊지 않았다. 그러나 그의 풍자는 그저 소설의 맛을 살리는 데서 그칠 뿐 이러이러해야 한다는 식의 훈계조로 발전하지는 않았다. 그것은 어찌 보면 그가 어떻게 인기 작가로서의 위치를 오랫동안 유지할 수 있는지에 대한 설명이기도 했다.

 

그러나 일본이라는 공간적 배경에 대한 이질감이 전혀 없었던 것은 아니다. 그런 이유 때문인지 이따금 크게 실망한 작품도 더러 있었다. <꿈의 도시>는 내가 읽었던 오쿠다 히데오의 작품 중 가장 크게 실망한 작품으로 기억된다. 그럼에도 내가 오쿠다 히데오에 대한 미련을 버리지 못하는 이유는 단 하나, 시니컬한 그의 유머 감각 때문이다. <면장 선거>를 읽게 된 것도 아마 그런 맥락에서 비롯되었지 싶다.

 

"아무래도 이번 작품의 가장 두드러진 변화는 작중인물, 즉 환자 계층이라고 할 수 있다. 이 책에는 네 편의 단편이 실려 있는데, <면장 선거>를 제외하면 일본 사회에서 스포트라이트를 받는, 누구나 다 아는 유명인이 주인공이다. 다시 말해 유명인 패러디 편 내지 매스컴 편인 셈이다." (p.306 '옮긴이의 말' 중에서)

 

표제작인 '면장 선거'를 비롯하여 '구단주', '안퐁맨', '카리스마 직업' 등 네 편의 단편이 실린 이 소설집은 <공중그네>의 주인공인 의사 이라부가 등장하는 작품으로서 이라부 시리즈 3편으로도 잘 알려져 있다. 제1편 <공중그네>, 제2편 <인 더 풀>, 제3편 <면장 선거>로 이어지는 이라부 시리즈는 각각의 작품이 서로 닮은 듯하면서도 확연히 다른 느낌을 준다. 정신과 의사 이라부와 함께 등장하는 미녀 간호사 마유미를 내세운다는 점은 앞의 두 작품과 크게 다르지 않다. 그러나 이번 작품에서 두드러진 점은 간호사 마유미의 파격적인 행보에 있다. 록밴드 멤버로 활동하며 수당을 챙기기 위해 열심히 주사를 놓는 그녀의 활약상은 독자들의 시선을 사로잡는다.

 

"마유미, 부탁이 좀 있는데, 방 잠깐만 빌릴 수 있을까?"

구미가 한 손으로 합장하는 시늉을 했다. 가오루가 안을 들여다보니 마유미라고 불린 간호사는 벤치 의자에서 기타를 치고 있었다. 흰색 미니스커트 가운 아래로 넓적다리가 다 드러나 있었다. 간호사는 나른한 표정으로 고개를 들더니, "뭐?" 하고 낮게 중얼거렸다. (p.152 '카리스마 직업' 중에서)

 

천방지축의 정신과 의사 이라부는 의사라기보다 차라리 환자에 가까운 기괴한 행동을 보여준다. 또한 육감적인 몸매로 환자를 유혹하여 폭력적 주사를 놓는 마유미의 행동 역시 만만치 않다. 이라부와 마유미의 이러한 돌출 행동은 소설에 등장하는 다양한 등장인물들의 강박증을 순화하는 역할을 한다. 책을 읽는 독자들 역시 여러 증세의 강박증에 시달리는 현대인이 이라부의 치기어린 행동과 마유미가 놓아 주는 포도당 주사 한 방이면 금세 씻은 듯이 낫게 될 것이라고 믿게 된다.

 

야쿠자, 베테랑 곡예사, 인기 작가 등 특정 분야의 전문인이 환자로 등장했던 <공중그네>와는 달리 <면장 선거>에서는 거대 기업인 신문사 사주, 잘 나가는 벤처 기업가, 인기 중년 여배우 등 우리 주변의 유명인을 전면에 내세우고 있다. 실제로 작가는 요미우리 신문사 대표인 와타나베 쓰네오를 모델로 '구단주'의 주인공인 다나베 미쓰오를 설정했고, '안퐁맨'의 주인공 안포 다카아키는 '일본의 빌 게이츠'로 불리는 젊은 기업가, '라이브도어'의 대표이기도 한 호리에 다카후미를 모델로 쓴 작품이다. 게다가 '카리스마 직업'의 주인공 시로키 가오루는 영화 <실낙원>의 여주인공 구로키 히토미가 모델이다. 표제작인 '면장 선거'를 제외하면 모두가 실제 인물을 모델로 삼았다는 게 이 소설집의 특징이라고 할 수 있다.

 

작품에 등장하는 인물들은 권력과 부를 거머쥐었으나 코앞에 닥친 죽음에 대한 공포로 패닉 장애를 일으키면서도 현직에서 떠날 줄 모르거나, 젊은 나이에 재계의 스타가 되었으나 지나친 효율성 추구로 문제를 일으키거나, 미모와 젊음을 유지하는 중년의 여배우가 미용과 다이어트에 병적으로 집착하거나 하는 등 현대인이 앓고 있는 다양한 강박증을 보여준다. 그러나 이러한 갈등과 혼란은 이라부가 2개월간 임시 부임해간 외딴 섬에서 치러지는 면장 선거의 회오리를 통해 융화되고 희석된다.

 

흰 바다표범을 연상시키는 우스꽝스러운 용모와 어디로 튈지 모르는 돌출행동으로 환자들의 혼을 쏙 빼놓고 독자들의 웃음보를 터뜨리는 이라부. 육감적인 몸매로 환자들을 홀리는 마유미. 두 주인공의 상반된 이미지는 작가의 상상력에 의해 창조된 가공의 인물이지만 도대체 정신과 의사나 간호사의 처방 치고는 어이없을 정도로 과장된 게 아닌가 싶은 두 사람의 웃음 치료는 작가에 의해 철저히 계산된 게 아닌가 싶기도 하다. 어쩌면 이라부가 향하는 외딴 섬은 꽉 막힌 제도나 끝도 없는 인간의 욕심에서 한발 비껴난 이상적인 공간이 아닐까 싶기도 하다. 비록 난장판의 모습으로 보일지라도 날것의 건강함이 살아있는 그런 곳 말이다. 지나친 욕심과 과도한 경쟁으로 지치고 힘겨울 때면 나 역시 모든 걸 내려놓고 그런 곳으로 떠나고 싶어진다. 이라부가 향한 그런 외딴 섬으로.

 

"료헤이는 가슴이 뜨거워졌다. 어느 쪽이 이기든 이 섬은 아무 문제 없을 거라는 확신이 들었단. 이해는 서로 대립될지 모르지만, 섬을 사랑하는 마음은 똑같았다." (p.304 '면장 선거'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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몹시 추운 날씨였어요. 그렇지 않나요? 이렇게 추운 날은 왠지 수다를 떨고 싶어집니다. 주제는 딱히 상관없어요. 그저 말이 하고 싶을 뿐이죠. 모든 게 꽁꽁 얼어붙는 날씨에 혹시 입이라도 얼어붙을까 저어하는 때문일까요? 남자도 나이가 들면 여성호르몬의 일종인 에스트로겐이 분비되어 감성적으로 변한다고들 하는데 저도 그런 게 아닌가 싶기도 하고 그렇습니다.

 

모처럼 새벽 산행을 했더니 몸은 가뿐하고 오후가 지난 지금도 컨디션이 좋습니다. 코끝이 찡한 추위였지만 산속 공기는 더없이 맑았었죠. 모두가 잠든 그 시각에는 바람도 잠에 취했는지 그저 잠잠했습니다. 미세먼지가 극성이던 며칠 동안 산행은 고사하고 외출마저 조심스러웠었죠. 하나를 얻으면 하나를 잃게 되는 게 자연의 이치인가 봅니다. 미세먼지가 사라지자 추위가 극성이니 말입니다. 온종일 바람이 불고 기온마저 뚝 떨어져 체감온도로 치자면 제가 산행을 하던 새벽 시간과 크게 달라지지 않은 듯합니다. 맑고 화사한 겨울 햇살이 넘실대고 있지만 한 줌 온기마저 느껴지지 않네요.

 

사람들의 시선은 온통 호주오픈 테니스 경기에 쏠려 있었습니다. 만년 비인기 종목이었던 테니스 경기를 이렇게 손에 땀을 쥐고 지켜본 적이 있었던가 싶습니다. 아마 없지 않았을까요? 제 기억으로는 그렇습니다. 정현 선수의 서브 하나하나에, 리턴 하나하나마다, 이어지는 스트로크에 감탄과 아쉬움의 탄성이 절로 흘러나왔습니다. 화면에서 눈을 뗄 수가 없었죠. 완벽한 경기였습니다. 4강이라니, 믿어지지가 않았죠. 정현 선수의 피와 땀이 만들어 낸 위대한 성과였습니다.

 

기욤 뮈소의 소설 <파리의 아파트>를 손에 잡았지만 좀처럼 진도는 나가지 않네요. 매일 마주치는 사람들과의 따분하고 일상적인 대화가 아닌, 따뜻한 커피 한 잔 앞에 놓고 누군가와 시간 가는 줄 모르고 온종일 수다를 떨고 싶은 그런 날씨였습니다. 몹시도 추운 날씨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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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벼움의 시대 - 우리 시대를 지배하는 가벼운 것의 문명
질 리포베츠키 지음, 이재형 옮김 / 문예출판사 / 2017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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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이 생각하는 '가벼움'의 의미는 무엇일까요? 흔하디흔한 의미의 '무게가 적다'는 뜻일까요. '옷차림이나 마음 따위가 가뿐하고 경쾌하다'는 뜻일까요. 아니면 '생각이나 언행 따위가 침착하지 못하고 경솔하다'는 의미일까요. 나는 지금 막 프랑스의 철학자 질 리포베츠키가 쓴 <가벼움의 시대: 우리 시대를 지배하는 가벼운 것의 문명>을 어렵사리 다 읽었습니다. 읽었다기보다 읽어냈다고 말하는 편이 옳을 듯합니다. 책을 읽기 전만 하더라도 내게 '가벼움'은 그저 무게가 적다거나 경쾌하다는 의미의 긍정적인 단어가 아니었나 싶습니다. 어쩌면 큰 관심을 두지 않았거나 의미도 없는 단어였을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러나 이 책의 저자인 질 리포베츠키가 설명하는 '가벼움'의 의미를 다 이해하지는 못했다 할지라도 '가벼움'에 정복당한 우리 시대의 슬픈 자화상은 한동안 나를 우울하게 했던 게 사실입니다. 이 시대를 살고 있는 많은 사람들 또한 자신들도 역시 '가벼움'에 조종되고 있다는 사실을 미처 깨닫지 못하고 있겠지만 말입니다.

 

"소비지상주의의 세계와 불가분의 관계에 있는 가벼움을 악마화해서는 안 된다. 그러나 그것은 아름답고 분별 있는 삶을 이끌어 나가기에는 부족하다. 무한히 작은 세계의 정복은 특별한 가능성으로 가득 차 있다. 아마도 그것은 지상에서 살아가는 우리 삶의 조건을 근본적으로 바꿔 놓을 수 있을 것이다. 그런데 어떤 분야에서 그런 변화가 일어날까? 가장 좋은 부분뿐 아니라 가장 나쁜 부분도 포함하고 있는 이 엄청난 혁명이 어떤 결과를 낳을지, 당분간은 아무도 모른다. 어쨌든지 간에 이것은 지금까지는 부차적이고 평범했지만 이제는 우리 운명을 결정지을 만큼 중요한 문제가 되었다." (p.22)

 

책은 긴 서문에 이어 총 8장으로 구성되어 있습니다. 제1장 '삶을 가볍게 하기: 안락함, 경제, 소비', 제2장 '새로운 몸', 제3장 '마이크로, 나노, 비물질적인 것', 제4장 '패션과 여성성', 제5장 '예술 속의 가벼움에서 예술의 가벼움으로', 제6장 '건축과 디자인: 새로운 가벼움의 미학', 제7장 '우리는 쿨한가?', 제8장 '자유, 평등, 가벼움'에서 보는 바와 같이 저자는 우리 삶과 연관된 모든 분야를 아우르며 '가벼움'이 이끌어 갈 우리 시대의 미래를 조망합니다. 그리고 그 시작은 우리의 일상을 지배하는 소비 경제이고 마지막을 장식하는 건 이념과 철학의 문제로 귀착됩니다.

 

"물론 행복이 인간들을 도와줄 수는 있지만, 그렇다고 해서 성공을 보장하는 것은 아니다. 그만큼 행복의 내적 변화는 개별적으로 이루어지는 것이다. 각 개인은 시행착오를 거듭해 가며 자기 삶의 흐름을 바꾸고, 그 삶을 가볍게 만들려고 애쓰다가 행복한 결과를 얻기도 하고, 이따금은 덜 행복한 결과를 얻기도 한다. 어쨌든 가벼움의 정복은 불확실하고, 불안정하고, 매우 개인적이다. 그 비밀은 책 속에도 있지 않고, 다른 어떤 곳에도 있지 않다. 왜냐하면 이 비밀은 존재하지 않기 때문이다." (p.367)

 

'가벼움'을 추구하기 위해 우리가 자신의 몸무게를 덜어내기 위해 필사적인 것처럼 개인은 정치나 제도에 있어서도 탈정치화를 가속화함으로써 정치적 무게를 줄이고 극도로 가벼워진 자유주의적 민주주의를 지향하는 쪽으로 나아가고 있는 듯 보입니다. 사회 전반을 지배하는 정치 제도나 이념은 사회 구성원의 행동 양식이나 유행, 건축, 예술, 과학의 발전 등 여러 개별 분야와는 별개로 독자적인 발전 단계를 거치지는 않습니다. 그보다는 오히려 우리의 실생활을 지배하는 현실 영역에 있어서의 발전이 제도와 이념을 변화시키는 기폭제의 역할을 한다고 하겠습니다.

 

말하자면 하부구조가 상부구조를 지배한다는 유물론적 관점이 꼭 옳은 것은 아니지만 우리 시대 전반을 이해하고 우리의 미래상을 조망하기 위해서는 사회 각 분야의 모습을 관찰하고 그 변화를 감지해야만 하겠지요. 시나브로 '가벼움의 추구'는 이 시대의 가치관이 되어가고 있다는 것은 분명한 사실인 듯 보입니다. '무거운 것'을 버리고 '가벼운 것'을 취하고자 하는 자세는 '나노'로 대표되는 물질 세계의 경량화에서 그치는 것이 아니라 짧아진 유행의 지속성뿐만 아니라 인간 관계에 있어서도 느슨하거나 쿨한 상태로 나아가고 있음을 의미합니다. 이런 변화는 감정에 충실하고 개인의 자유를 존중하는 것은 좋지만 자신 또한 언제든 버려질 수 있다는 불안감을 증폭시키기도 합니다.

 

"삶을 가볍게 만들겠다는 현대적 이상은 물질생활의 영역을 넘어서서 남녀의 내밀한 부부관계, 성관계의 세계에까지 퍼져 나갔다. 하이퍼개인주의 사회에서 행복에 대한 갈망은 사생활에 영향을 미치는 집단적 강제와 중압감에서 벗어난 자신만의 삶이라는 거푸집 속에 스스로를 부어 주조한다." (p.297)

 

가볍고 유동적인 어떤 것은 우리의 부담을 줄여주는 반면 빠른 변화로 인한 불안정과 변덕스러운 유행에 적응해야 하는 스트레스와 새로운 의무가 주어진다는 것을 의미할지도 모르겠습니다. 또한 느슨해진 인간관계는 사회와 가정에 대한 책임을 조금쯤 덜어낼 수는 있다고 할지라도 그로 인해 울타리를 잃어버린 현대인의 우울과 고독은 또 다른 문제를 야기하기도 합니다. 결국 개인의 행복을 위해 추구하는 가벼움은 삶의 전 영역에서 무차별적으로 진행되어서는 안 된다는 것을 저자는 이 책에서 말하고 싶었는지도 모르겠습니다. 오직 '가벼움'만이 선이고, '무거움'은 곧 악이라는 식의 시대적 가치관을 무작정 추종할 것이 아니라 개인의 성향에 맞게 선별적으로 받아들이는 지혜가 절실한 시기입니다. '가벼움'의 의미가 무겁게 느껴지는, 역설적인 책이었습니다. 우리는 지금 '가벼움'과 '무거움'이 상존하는 역설의 시대에 살고 있는지도 모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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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따금 그럴 때가 있습니다. 하루의 시간이 무척이나 조용히 흘러가고 있는 듯한 느낌? 시계의 초침이 째깍째깍 멈춤과 움직임을 반복하는 게 아니라 소리도 없이 미끄러지는 듯한 그런 느낌을 받는 것이죠. 마치 맑은 시냇물이 평지를 흘러가고 있는 것처럼. 나의 느낌에 따라 주변을 감싸고 있는 모든 사물들도 조용히 숨을 죽인 채 지금의 고요를 감상하고 있는 듯한 느낌이 들기도 합니다. 서로가 서로에게 방해가 되지 않으려고 애쓰는 듯한 그런 무겁지 않은, 오히려 무게가 느껴지지 않는 가벼움이 상존하는 그런 시간을 나는 무척이나 사랑합니다. 인생에서 그런 시간은 참으로 귀하게 찾아오는 까닭인지도 모르겠습니다.

 

평창 동계 올림픽이 그야말로 코앞으로 다가왔습니다. 하계 올림픽에 비해 동계 올림픽은 그닥 인기가 없다는 것은 사실일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러나 세계 유일의 분단 국가인 우리 민족에게는 이번 동계 올림픽이 역대 어느 올림픽보다 더 의미가 크지 않을까 싶습니다. 우리에게는 그동안 단절되었던 만남과 대화의 시간이 그 어느 때보다 절실하기 때문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야당의 어느 의원은 남북 단일팀 구성에 반대하는 서한을 국제올림픽위원회에 보냈다고 하더군요. 그 소식을 듣고 저는 정말 놀랐습니다. 아무리 권력에 눈이 먼 정치인이라고 할지라도 민족의 안녕과 평화통일이라는 장기적인 목표를 등한시한 채 제 나라에서 열리는 올림픽마저 분열과 적대 감정을 고조시키려 한다는 게 믿기지 않았습니다. 그게 과연 한 인간으로서 할 짓인가 의심이 들기도 했고 말이죠.

 

그들의 속내를 이해하지 못하는 바는 아닙니다. 해방 이후 지난 반세기 동안 그들은 이념 대결과 안보 팔이로 자신들의 권력을 다져왔고, 그 바탕 위에서 자신들의 부정과 축재가 숨겨져왔던 것이니까요. 남과 북의 평화는 그들이 누려왔던 권력의 맛과 향수를 모두 내려놓아야 한다는 것을 의미할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러므로 그들은 남과 북의 평화를 저지하기 위해 모든 방법을 동원해야 하겠지요. 그들이 저질렀던 부정과 부패의 죄악이 하나둘 드러나고 있는 것도 두려울 테고 말입니다. 어떻게든 그들은 안보 팔이로 재미를 보았던 과거의 영광을 되살리고 싶을 것입니다.

 

단언하건대 한반도에 평화가 정착하는 순간 자유당은 제1야당으로서의 지위를 잃고 소멸하거나 군소정당으로 전락하고 말 것입니다. 자신들을 선전할 더 이상의 수단이 없기 때문입니다. 그들은 그것이 두려운 것이지요. 그러나 역사의 흐름은, 오늘처럼 고요히 흐르는 시간은 침묵 속에서 많은 것을 바꿔놓게 마련이지요. 한치 앞의 미래를 바라보지 못하는 게 인간인가 봅니다. 조용한 휴일 오후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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