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가 녹는 온도
정이현 지음 / 달 / 2017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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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이현의 이야기 산문집 <우리가 녹는 온도>를 읽다 보면 작가가 하루 종일 매만지던 생각의 조약돌을 독자에게 살며시 쥐어 주는 듯한 느낌이 든다. 오래 주물러 까맣게 손때가 묻은 애착인형처럼 여러번 지우고 다시 고쳤을 생각의 조약돌. 반질반질 윤이 나는 작가의 생각들이 독자의 머릿속으로 오롯이 스며드는 듯한 느낌과 작가의 체온이 그대로 전해지는 듯한 착각 속에 책을 읽는 시간은 그저 편안했다.

 

"모든 이별은 크고 작은 후유증을 남긴다. 그뒤로 나는 어떤 관계든 괜찮다고 말하는 사람 곁에는 너무 가까이 가지 않는다. 그 곁에서 마음을 푹 놓아버릴까봐, 마음을 푹 놔버리곤 부지불식간에 상대가 괜찮지 않은 일들을 하게 될까봐 먼저 몸을 사리게 된 것이다." (p.43)

 

구성이 재미있는 책이다. 만나고 헤어지는 사람들에 관한 10편의 에피소드가 소개되고 각각의 이야기에 작가 자신의 생각이나 경험이 이어진다. 책에 등장하는 이야기는 작가가 직접 전해 들었거나 출판사를 통해 받은 실제 사연을 각색한 것으로 누군가는 만남을 누군가는 이별을 준비하는 이야기가 펼쳐진다. 마치 잘 다듬어진 한 편의 단편소설을 읽는 느낌이다. 각각의 이야기는 연인, 부부, 모녀, 강아지와 아이 등 등장하는 인물이나 도시도 제각각이다. 소제목에 이어 '그들은,'으로 시작되는 실제 이야기와 '나는,'으로 시작되는 작가의 이야기는 서로 충돌하거나 모순되지 않는다.

 

"그는 가슴께에 이상한 통증을 느꼈다. 아주 오래전에, 어쩌면 꿈속에서 지금과 똑같은 상황을 겪은 적이 있는 것만 같은 느낌에 휩싸였다. 여름에도 뜨거운 커피를 마시는 여자가 있었다. 그 여자는 아무리 더워도 얼음이 들어간 커피는 마시지 않았다. 그는 작고 딱딱한 나무의자에 붙들린 듯, 영원히 몸을 일으킬 수 없을 것만 같았다." (p.122)

 

이제 막 만남을 시작하는 도시 뒤편의 청춘 남녀와 바쁘게 꾸려가던 결혼생활을 접고 곧 이별을 준비하는 중년 부부의 이야기 등 작가가 들려주는 이야기는 사랑 그 언저리를 맴돈다. 사랑이 꼭 밝고 화려할 필요는 없겠지만 책 속 이야기에서 나는 이따금 가슴 저릿한 느낌을 받는다. '세상이 낙관보다는 비관이 어울리는 곳일지 모르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살아가야 하는 세상이 아니냐'고 작가는 말한다.

 

추위와 어둠뿐인 인생에도 꼬마전구에 불이 들어오듯 반짝하고 빛나는 순간이 있게 마련이다. 어쩌면 작가는 이 시대를 살아가는 도시 소시민의 그닥 특별하지 않은 인생을, 아주 짧은 순간 빛나던 그들의 모습을 포착하려고 했는지도 모른다. 돌이켜보면 힘들었던 어떤 순간이 내 인생의 가장 빛나던 때라고 생각되기도 하고 즐겁고 편안했던 어느 순간은 기억조차 희미하기도 하다. 인생은 멈추지 않고 지나칠 때는 스스로 그 순간의 의미를 파악하기는 어렵다.

 

"완전히 녹지 않은 채 도심 길가 한편에 아무렇게나 쌓인 눈의 형상은 '한순간 찬란하게 아름다웠던 것들'의 운명을 암시한다. 한순간 아름다웠으나 한순간 깨끗하게 소멸하지는 못하는 것들. 구질구질하게 남겨졌다가 결국엔 자취도 없이 사라지고 마는 것들의 남루한 운명 말이다." (p.168)

 

시인도 아닌 소설가의 산문이 이토록 아름다울 수 있는지, 나는 문득 생각한다. 작가가 한나절 공글렸을 생각의 조약돌을 내 손 안에서 살포시 쥐어 본다. 유난히 추웠던 올해 겨울, 누군가의 체온으로 얼었던 눈이 녹아내리듯 작가가 들려주는 그들의 이야기가 얼었던 독자의 마음을 녹인다. 많은 의미가 담긴 그들의 미소와 한줄기 눈물이 작가와 나에게, 이 책을 읽는 또 다른 그들에게 무한한 힘이 되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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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서웠던 한파의 기세가 한풀 꺾이면서 거리를 오가는 사람들의 표정에도 짐짓 여유가 묻어납니다. 드러난 뺨과 손등에 닿는 바람도 한결 부드러워졌고 말이죠. 추위가 극성일 때만 하더라도 새벽 산행길에는 산행 내내 정적만 감돌뿐 인적은커녕 짐승의 움직임조차 찾아볼 수 없었는데 오늘 아침에는 전에 자주 뵙던 아주머니 한 분을 만났습니다. 얼마나 반갑던지요. 어둠 속에서 서로의 안부만 묻고 헤어졌건만 서로에 대한 반가움이 느껴지는 듯했습니다.

 

현직에 있는 한 여성 검사의 방송 인터뷰가 우리 사회에 만연한 성추행 및 성폭행 실태를 적나라하게 보여준 듯합니다. 군대와 같은 상명하복의 검찰 조직에서 그와 같은 비리(가 아닌 범죄 행위가 맞겠지만)는 누군가의 용기 있는 제보나 증언이 아니고서는 결코 밖으로 알려지지 않았겠지요. 수년간에 걸친 지속적인 군대 내 성폭행을 견디다 못해 스스로 목숨을 끊음으로써 그간의 내막 일부가 비로소 세상에 알려지게 되는 경우, 우리는 그저 짧게 보도되는 방송 뉴스에 잠시 분노하다가 채 며칠도 지나지 않아 금세 잊어먹고 마는 일이 다반사였고 그런 까닭에 가해자는 견책 수준의 경징계만 받고 세간의 기억에서 잊히곤 했습니다. 우리 모두는 일종의 성폭행 방조범으로 지내왔던 셈이지요. 피해자가 오히려 미안해해야 하는 이런 어처구니없는 세태를 키워온 것은 바로 부끄러운 수컷 문화가 아닐까 싶습니다.

 

과거 성매매는 범죄도 아니었던 시기에 성추행이나 성폭행은 마치 경범죄 정도의 가벼운 범죄로 취급되기도 했습니다. 그야말로 재수가 없는 사람만 처벌을 받곤 했었죠. 유교문화가 확고한 한국 사회에서 자의든 타의든 여성이 순결을 잃었다는 건 앞으로의 삶에서 치명타가 될 수밖에 없는 까닭에 피해자의 가족은 입을 닫은 채 쉬쉬할 수밖에 없었고 말이죠. 피해자가 오히려 범죄자보다 더한 형벌을 받는 셈이었죠. 저는 그런 시기에 대학을 다녔었고 방학 때마다 모 기업에서 아르바이트를 했습니다. 술을 전혀 못 마시는 까닭에 저는 사장의 술자리에 수시로 참석하기도 했었죠. 비서 겸 보호자 겸 따라나설 수밖에 없었는데 그때마다 펼쳐지던 난잡한 술자리 풍경을 지금도 잊을 수가 없습니다. 낮에 보았을 때는 그토록 점잖고 도덕적으로 보이던 사람이 술에 취하자마자 어쩌면 그렇게 짐승만도 못한 인간으로 돌변할 수 있는지 잘 이해가 되지 않았습니다. 사장을 통해 소개를 받았던 사람 중에 '저 사람은 절대 그럴 사람이 아니다'고 생각했던 사람도 술과 여자 앞에서 품위를 지켰던 사람은 단 한 명도 보지 못했습니다. 저도 남자이지만 저는 그때 이후 남자의 도덕성을 크게 믿지 않습니다. 그것은 정말 부끄러운 수컷 문화일 따름입니다.

 

시대가 바뀌었다고는 하지만 남성 위주의 유교문화가 굳건한 한국 사회에서 여성 검사의 증언은 참으로 용기 있는 행동이었습니다. 그와 같은 용기를 내기까지 수많은 날들을 고민하며 보냈을 것입니다. 법적 처벌을 떠나서 한 사람의 인격을 나락으로 떨어트렸던 당사자들은 정말 부끄러운 줄 알아야 합니다. 교회에서 회개할 것이 아니라 피해자 앞에 무릎을 꿇고 용서를 빌어야 마땅하겠지요. 침팬지나 원숭이보다도 못한 인격의 소유자가 교회에서 백날 회개를 한들 하느님이 응답하실 리 없습니다. 그런 하느님이라면 저는 절대 믿지 않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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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02-02 01:14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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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02-03 15:28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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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부귀신들 - 대한민국 수재 2,000명이 말하는 절대 공부법
구맹회 지음 / 다산북스 / 2018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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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민국에서 공부만큼 중요한 화두가 또 있을까 싶다. 예나 지금이나 세 사람 이상 만나면 대화의 주제는 온통 아이의 교육과 공부에 쏠리게 되니 말이다. 부와 권력이 개개인의 학창 시절 성적에 의해 분배되던 산업사회의 기억이 사람들 뇌리에 깊이 각인된 까닭도 있겠지만 인구는 많고 먹을 건 부족했던 시절의 치열했던 경쟁이 세대를 이어 지금껏 전해지는 탓도 있을 것이다. 그렇다 보니 일 년에 두세 번 모이는 명절이면 공부 잘하느냐는 말이 인사처럼 쓰이기도 하고, 각 방송사마다 명절에 쓰지 않아야 할 말 일 순위에 오르곤 하는 이 말을 우리는 습관처럼 달고 살기도 한다.

 

공부라면 나는 꽤나 할 말이 많은 사람 축에 속한다. 대한민국 국민치고 공부에 대해 한두 마디 하지 못할 사람이 없겠지만 가난하고 형제도 많은 집에서 태어나고 자란 나로서는 공부만큼 간절한 것도 없었기에 다른 사람에 비해 각별한 느낌이 드는 것 또한 사실이다. 그러나 다른 누군가로부터 막상 공부 요령에 대해 설명해 줄 것을 요청받는다면 영 자신이 없다. 나의 경험을 주저리주저리 털어놓을 수는 있어도 체계적인 공부 노하우를 한 번도 생각해 본 적이 없기 때문이다.

 

구맹회의 <공부 귀신들>을 꼼꼼히 읽어보았다. 공무원 시험이라도 다시 볼 생각이냐며 주변 사람들로부터 핀잔 아닌 핀잔을 듣기도 했다. 크게 관련도 없어 보이는 공부에 관한 책을 마치 수험서 공부하듯이 했으니 그럴 만도 했다. 다른 때 같으면 나도 이런 종류의 책은 목차만 대충 보고 책장을 건성건성 넘기고 말았을 테지만 곧 중3이 되는 아들도 있고 지금껏 단 한 번도 공부에 대해 체계적으로 생각해 본 적이 없었기에 책으로나마 한 번쯤 정리를 해보자는 속셈도 있었다.

 

"이 책에는 머릿속의 눈을 비롯해 지난 30년 동안 2,000명의 공부귀신들이 성적을 올린 공부법이 체계적으로 정리되어 있다. 이 책에 나오는 공부법은 나의 머릿속에서 나온 이론이 아니다. 2,000명이 넘는 공부귀신들이 직접 실천하면서 효과를 입증한 검증된 공부법이다. 암기, 이해, 반복, 핵심 과목, 시간 관리, 자기 주도, 시험 공략, 자기 관리 등 공부귀신들의 비결을 배우고 익히면 누구나 공부귀신이 될 수 있다." (p.10 '들어가는 말' 중에서)

 

내가 이 책을 꼼꼼히 살펴본 이유를 알기 위해서는 목차부터 살펴볼 필요가 있다. 제1장 '동기 공부귀신은 분명 있다', 제2장 '암기 머릿속의 눈으로 지도를 그려라', 제3장 '이해 나침반이 가리키는 방향으로 걸어라', 제4장 '반복 오르고 싶다면 걷고 또 걸어라', 제5장 '핵심 과목 반드시 넘어야 하는 모든 공부의 기본', 제6장 '시간 관리 천천히 하지만, 오래 달린다' 제7장 '자기 주도 배우지 않고 가르친다', 제8장 '시험 공략 마지막까지 멈추지 않는다', 제9장 '자기 관리 결국 나와의 싸움이다', 제10장 '의지 공부귀신은 우리 안에 있다'의 총 10장으로 구성된 이 책은 목차에서 보는 바와 같이 매우 체계적으로 씌어 있다. 물론 단점도 있다. 미주알고주알 세세하게 설명하다 보니 어디선가 들어본 말일 수도 있고, 선생님이나 인생 선배로부터 배웠던 내용일 수도 있어서 흥미를 반감시킬 수 있다.

 

"공부는 일정 단계에 도달하기 전까지는 노력이 성적으로 나타나지 않는다. 몸에 완전히 익숙해질 때까지 연습하고 반복하지 않은 공부는 하지 않는 것이나 마찬가지다. 서울대에 합격한 구본석은「공부의 왕도」에 출연하여 수능 기출문제를 100번, 200번 풀었다고 말했다. 공부와 친숙해지기까지 그만큼 오랜 시간이 걸렸다." (p.70)

 

30년 가까이 일선 중고등학교에서 국어를 가르치며 수많은 학생을 명문대에 진학시킨 이력이 있는 저자에게도 공부 노하우는 여전히 어려운 문제였음에 틀림없다. 그렇지 않았더라면 굳이 공부 노하우를 체계적으로 정리하여 책으로 낼 생각은 하지 않았을 테니까 말이다. 공부는 기본을 철저하게 훈련하는 과정이라고 할 수 있다. 그러므로 이 책에 실린 공부 노하우를 마치 다 알고 있다는 듯 말하는 학생이 있다면 그 학생은 아마도 성적 향상을 기대하기는 힘들 것이다. 왜냐하면 기본적인 규칙을 하나하나 꼼꼼히 점검하고 자신이 미처 알지 못했던 규칙을 새로이 적용하지 못한다면 공부에 진전은 좀처럼 기대할 수 없기 때문이다.

 

"사람들은 공부법이 다 똑같은 줄 안다. 자신이 학교 다닐 때 공부했던 방법밖에 모르기 때문이다. 그러나 벽에 못 하나를 박는 단순한 일조차 어떻게 하느냐에 따라 모양이 다르듯, 공부도 어떤 방법으로 하느냐에 따라 성적이 다르다. 그 차이가 공부귀신을 만들기도 하고, 공부를 포기하게도 한다." (p.324 '나가는 말' 중에서)

 

자랑 같지만 나는 중학교 2학년 때부터 자취를 하면서 공부를 했고, 장학금을 받아 대학까지 마칠 수 있었다. 공부와 관련된 나의 경험을 블로그에 올린 적도 더러 있었다. 과거의 경험을 다시 올릴 수는 없지만 공부는 뭐니 뭐니 해도 간절함이나 절실함에서 비롯되는 게 아닐까 싶다. 무엇보다도 나는 지긋지긋한 가난에서 벗어나고 싶다는 열망을 단 한 순간도 손에서 놓아 본 적이 없다. 그것이 나를 쓰러지지 않게 하였고 자력으로 대학까지 마칠 수 있게 하였다. 공부의 핵심 요소인 집중력 또한 간절함에서 나온다고 나는 생각한다. 간절함이 스스로의 행동을 절제하게 만든다. 몸가짐을 삼간다는 의미의 '근 독(謹獨)'을 마음에 품었던 것도 그런 연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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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제는 공권력에 의한 반인권적 범죄인 고문 조작의 피해자들과 무고했던 그들의 삶을 폐허로 만들었던 가해자들의 이야기가 모 방송국의 교양 프로그램을 통하여 전파를 탔다. 끔찍했다. 암울했던 군부 독재 시절 얼떨결에 끌려가 고문을 받고 고통에 못 이겨 없던 범죄를 자백해야만 했던 사람들이 어디 한둘일까마는 공권력에 의해 통째로 망가진 그들의 삶은 지금도 여전히 진행중이었다. 고문보다 더한 그때의 기억과 공포를 되씹으면서.

 

남영동 대공분실로 상징되는 인권유린의 현장은 이제 역사책에나 나오는 아득히 먼 일처럼 생각했었다. 그러나 그것은 우리의 관심에서 잠시 멀어져 있었을 뿐 죽은 역사가 결코 아니었음을 텔레비전을 보며 깨달았다. '지옥에서 온 장의사'로 불렸던 고문 기술자 이근안과 치안본부 대공분실, 중앙정보부, 안기부,보안사에서 근무했던 이름도 밝혀지지 않은 수많은 가해자들. 어디 수사관들만 나쁘다고 말할 수 있으랴. 간첩으로 조작된 피해자들의 진술조서에 의거 둑재자들의 편에 서서 재판을 담당했던 검사와 판사들. 그들 역시 이 좁디좁은 땅덩어리 대한민국에서 두 눈 시퍼렇게 살아 있으니.

 

그때의 피해자들이 형장의 이슬로, 의문의 죽음으로, 자살로 하나 둘 사라지는 동안 가해자들은 국회의원으로, 장관으로, 대법원장으로 승승장구하며 편안한 삶을 누려왔다. 당시 판사로서 1심 재판을 담당했던 여상규 의원은 "당시 1심 판결로 한 분의 삶이 망가졌는데 책임을 느끼지 못하냐"는 제작진의 질문에 "웃기고 앉아있네. 이 양반이 정말." 하면서 발끈하는 모습을 보였다.

 

허물이 없는 사람이 어디 있으랴. 한평생 살다 보면 누구나 때로는 실수도 하고, 몸쓸짓도 하게 마련이지만 그래도 사람이 사람다움을 유지할 수 있는 건 자신의 잘못을 솔직하게 인정하고 용서를 구하기 때문이 아닐까. 과거의 잘못이 모두 드러나고 있는 이 마당에 발뺌을 하고 그것으로도 모자라 화까지 낸다는 건 그는 이미 인간의 품격을 잃고 자신이 금수만도 못한 놈이라는 사실을 자인한 꼴이니 말해 뭣하랴.

 

생각해 보면 군부독재에 부역했던 많은 사람들이 불법과 탈법을 일삼을 수 있었던 것도, 그들의 죄가 철저히 숨겨질 수 있었던 것도 따지고 보면 북한 정권의 도움이 컸다고 하겠다. 물론 북한 정권도 남한 보수 정권의 반공주의 덕분에 추악한 권력을 지금까지 유지할 수 있었지만 말이다. '반공'이라는 한 단어로 자신들의 죄를 감추고, 부를 축재하고, 대대손손 권력을 누릴 수 있었으니 그들 또한 북한 정권에 감사해야 할 일 아닌가. 추악한 범죄자들이 이 땅에서 떵떵거릴 수 있도록 한 일급 도우미는 북한 정권이었다. 여상규 국회의원 그를 기억하며 이 글을 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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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01-28 22:08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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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01-30 18:33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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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다리는 행복 - 이해인 수녀가 건네는 사랑의 인사
이해인 지음, 해그린달 그림 / 샘터사 / 2017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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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해 여름이었던가 보다. 피서 겸 고민상담 겸 겸사겸사 찾곤 하는 강원도 한 사찰의 스님께 어쭙잖은 질문을 드렸다가 혼쭐이 난 적이 있다. 사건의 전말인 즉, 언제부턴가 유행처럼 떠도는 '미니멀 라이프'나 '내려놓기', 혹은 '소박한 삶'이나 '비우는 삶' 등에 대해 스님은 어찌 생각하느냐 여쭈었던 것인데 살면서 집착과 욕심을 버려야 한다는 너무도 당연한 대답과 함께 이러이러하게 살아라 하는 충고의 말씀이 돌아오리라 기대했던 내 예상과는 달리 정색을 하고 나무라시는 스님 말씀에 나는 일순 어찌할 줄 모르고 얼굴만 벌겋게 달아올랐었다.

 

스님 말씀인 즉 '속가인의 삶과 종교인의 삶이 근본적으로 다르며 방향에 있어서는 극과 극이라는 것'이었다. 사람의 육체가 음식을 통하여 에너지와 활력을 얻듯 우리의 영혼은 욕심을 통하여 에너지를 얻는 법이라며 다만 속가에서는 삶에 필요한 돈과 재물을 취하고자 하는 욕심을, 출가인은 속가에서 배웠던 욕심을 하나씩 하나씩 털어버리고자 하는 열망을 갖게 되며 그런 것들이 개인의 영혼을 지탱하는 원동력이 된다는 것이었다. 재물에 대한 큰 욕심이 없거나 그만 한 능력도 되지 않는 사람이 어쭙잖게 욕심을 내려놓게 되면 영혼의 에너지만 고갈되어 절망과 우울감 속에 빠지게 된다는 충고와 함께 현대인의 병은 주로 그런 절망감에서 비롯된다는 말씀도 덧붙이셨다. 반면에 수도자는 집착과 욕망을 하나씩 하나씩 털어버리는 과정에서 더 많은 것들을 내려놓기를 염원하게 되는데 어느 순간 이쯤이면 된 게 아닌가 하는 판단에서 자신의 원(願)을 내려놓으면 그 순간 영혼을 지탱하던 삶의 동력을 잃게 된다고 하셨다. 그러므로 속가인은 재물에 대한 욕심으로, 수도자는 속가에서 배웠던 욕심을 내려놓고자 하는 갈망으로 살아가는 게 자연스러우며 속가인이 출가도 하지 않은 채 수도자의 삶을 모방하거나 출가인이 파계도 하지 않은 채 속가의 삶을 탐하게 되면 탈이 날 수밖에 없지 않겠느냐 말씀하셨다.

 

이해인 수녀님의 <기다리는 행복>을 읽으며 나는 그때의 일을 곱씹어 생각했다. 수도서원 50주년을 기념하여 1968년 첫 서원 이후 일 년간의 일기가 수록된 이 책은 1부 '일상의 행복', 2부 '오늘의 행복', 3부 '고해소에서', 4부 '기다리는 행복', 5부 '흰구름 러브레터', 6부 '처음의 마음으로 -기도 일기'로 구성되어 있으며 수녀님이 쓴 시와 일상이 빼곡하게 적혀 있다. 이해인 수녀님의 열혈 애독자는 대개 그렇듯 나 역시 1976년에 발간된 수녀님의 첫 시집 <민들레 영토>에서부터 수녀님을 향한 짝사랑이 시작되었다. 일상의 쉬운 단어들을 그저 평이하게 옮겨놓은 듯한 수녀님의 시는 이상하게도 수녀님의 따스한 체온이 고스란히 전해지는 듯한 느낌을 받곤 한다. 내가 믿는 종교의 수도자라는 이유 때문이 아니라 작가로서의 순수한 영혼에 반하지 않을 수 없는 이유다.

 

"수도자라는 이유만으로 내 인간적인 부족함과 많은 결함에도 불구하고 많은 이들의 벗이 되고 가족이 될 수 있는 특혜. 오랜 세월 시를 쓰는 덕분에 모르는 이웃을 많이 알게 되고 때로는 가족 못지않은 우정의 친교가 이루어지는 신비. 이 모두를 선물로 받아 안으며 나는 새삼 행복하다. 사랑받는 그만큼 더러는 오해도 받고 구설에 오르고 예기치 않은 힘든 일이 생길 때도 없진 않지만 이미 내가 받은 선물만으로도 나는 모든 어려움조차 축복으로 받아안으리라 기쁘게 다짐해본다." (p.203)

 

1, 2, 3, 4부가 수녀님의 일상과 사물에서 얻은 지혜의 글이라면 5부는 편지 글들이 모아져 있다. 법정 스님이나 박완서 작가, 이해인 수녀의 어머니를 비롯하여 이런 저런 사연으로 알게 된 사람들의 편지. 그 중에는 탈주범 신창원의 편지도 있다. 이와 같은 편지 글들을 읽다 보면 내가 왜 수녀님의 글을 좋아하는지, 수녀님의 글이 왜 많은 사람들에게 사랑을 받는지 조금쯤 알 것 같기도 하다. 수녀님의 글이 수도자로서의 한 차원 높은 곳에 있지 않고 우리와 같은 평범한 사람들의 감정에 머물고 있기 때문이다. 달리 말하면 구분이 없는 것이다. 1968년 5월 23일에 첫 서원을 하여 2018년 5월 23일이면 수도서원 50주년이 된다는 수녀님. 1969년 4월의 어느 날에 쓴 수녀님의 일기는 다음과 같았다.

 

"본당 미사에 가는 길. 라일락이 많이도 피었다. 때가 되면 자기를 꽃피우고 또 때가 되면 살며시 자신을 감추는 그 온갖 식물들은 얼마나 정직한 것일까. 해가 좀 길어진 것 같다. 주일에는 평온한 마음으로 내 영신 생활이 윤택하도록 기름을 부어주어야 한다. 스크랩북 위한 신문을 좀 오리고 조금 쉬었다. 참된 예술인이 되고 싶다. 창조하는 인간이 되고 싶다." (p.383)

 

여전히 바람이 차다. 하루 하루 죽음을 향해 나아가는 삶이지만 우리가 죽음을 잊고 행복할 수 있는 이유는 삶이 목표가 아닌 과정을 즐기도록 짜여져 있기 때문이다. 우리는 과정을 즐기는 방법을 자신의 인생 전체를 통해 배우고 익힌다. 그러나 목표만 중시했던 사람은 별 탈 없이 평생을 살아도 산 게 아니다. 아무것도 배운 게 없기 때문이다. 목표를 세우되 과정을 즐길 수 있는 여유, 나는 수녀님의 기다림 속에서 그것을 배운다. 스님은 내게 죽기 전까지 욕심을 부리라 했다. 다만 타인의 삶을 해치지 않는 범위에서 그리 하라는 것이다. 생각해 보면 그런 지혜는 쉽게 얻어지지 않는다. 과정을 즐기며 이웃을 돌아보는 지혜, 나는 그것을 배우기 위해 쉼 없이 책을 읽는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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