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랜만에 맞는 포근한 오후입니다. 미세먼지 탓인지 시야는 온통 희끄무레 탁하기만 하지만 말입니다. 평창 동계 올림픽의 개막식이 있는 오늘, 연일 계속되는 한파로 많은 사람들이 한걱정을 했는데 이만한 게 얼마나 다행인지요.

 

서지현 검사의 용기 있는 고백 이후 대한민국 곳곳에 숨겨져 왔던 추악한 관행들이 속속 드러나고 있는 듯합니다. 그중에서도 압권은 최영미 시인에 의해 폭로된 문단 내 성폭력이 아닐까 싶습니다. 그게 어제오늘의 일도 아닌데 우리는 어지간히도 오랫동안 그깟 것 하나 말끔하게 해결하지 못한 채 관행이라거나, 예술이라거나 그딴 식으로 포장해 왔던 것이지요. 남성 문인들의 에세이를 읽다 보면 성희롱의 경계를 넘나드는 그들의 경험담이 무시로 나오기도 하고, 그들은 자신의 그런 행동이 마치 훈장이라도 되는 양 자랑스럽게 떠벌리는 듯한 느낌을 받곤 합니다. 그럼에도 그들은 예술이나 관행이라는 이름 뒤에 숨어 법망을 잘도 피해 왔던 것입니다. 예술이냐, 외설이냐의 해묵은 논쟁으로 그때그때의 사건을 무마하면서 성과 관련된 중대 범죄를 한낱 가십거리로 폄하하거나 싸구려 연예 기사쯤으로 치부해 왔던 것이지요.

 

그게 비단 문단만의 문제는 아닐 테지요. 소수의 몇몇 사람에 의해 권력이 독점되는 분야, 이를테면 의료계나 미술계나 음악계 등도 예외는 아닐 것입니다. 정권이 바뀌었는데도 대기업의 오너에게 줄을 대려는 사법부의 인사가 관행이라는 명목으로 봐주기 재판을 하는 것처럼 우리 사회의 적폐는 곳곳에 산재하지만 이를 유지하려는 자들은 여전히 개혁을 거부한 채 관행이라거나 정치보복이라는 프레임으로 사실을 호도하고 있지요. 그러나 손바닥으로 하늘을 가릴 수는 없는 법, 만천하에 진실이 드러나는 건 생각보다 오래 걸리지 않을지도 모릅니다. 최영미 시인의 인터뷰는 그저 시작일 뿐입니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28)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빅 커리어 - 업의 발견 업의 실행 업의 완성, 개정판
박상배 지음 / 다산북스 / 2018년 1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삶에서 우리가 흔히 범하는 실수 중 하나는 세월이 모든 걸 해결해 줄 거라는 막연한 믿음을 품게 된다는 사실이다. 현재의 시간을 설렁설렁 흘려보내다 보면 좋든 싫든 미래의 어느 때를 맞이하게 될 테고 그 순간에 우리는 지난 과거부터 쭉 바라 왔던 시공간에 내가 완벽한 모습으로 나타나지 않을까 생각하는 것이다. 말하자면 우리는 미래의 어느 순간만 기다리며 현재의 순간순간을 지우개로 지우듯 지나쳐가는 것이다. 그렇게 우리는 시간에 등 떠밀려 떼기 싫은 발걸음을 억지로 떼는 셈인데 현실과 맞바꾼 우리의 미래는 과연 자신이 간절히 바라던 모습이었을까? 우리는 미래라는 신기루만 좇으며 그 실체와는 영원히 조우하지 못한 채 생을 마감하는 건 아닐까.

 

"연금에 기대는 것보다는 더 확실하게 노후를 준비할 방법이 있다. 바로 '빅 커리어(Big Career)'를 만들어 '원할 때까지 현역'으로 남는 것이다. 나이가 들어도 은퇴하지 않고 현역으로 일하는 것보다 좋은 노후 대비책은 없다." (p.16)

 

박상배 본깨적연구소 대표의 신작 <빅 커리어>는 불확실한 우리의 미래에 대한 불안을 조목조목 짚으며 장기적인 플랜으로서의 대비책을 제시한다. 인생 전체를 학업(1~30세), 의업(31~50세), 근업(51~70세), 전업(71~100세)으로 나누고, 인생의 중추적인 역할을 하는 시기인 의업 단계를 다시 습득자, 근로자, 숙련자, 창조자로 세분화함으로써 향후 노년의 시기를 어떻게 대비해야 할지에 대한 로드맵을 제시한다.

 

"이 책에 소개한 빅 커리어는 '단순 직무'를 벗어난 '나만의 업(Life Work)'을 찾고, 현재의 자리에서 업(業)을 개척하고 만들어 미래를 준비하는 과정이다. 즉 한마디로 요약하면 경력을 잘 쌓아 대체 불가능한 사람이 되는 것이 '빅 커리어'다." (p.28)

 

사실 대부분의 직장인들이 퇴직금을 비롯한 약간의 금전적인 준비를 제외하면 노후 대책이라고는 손을 놓고 지내는 것이나 다름없다. 멀리 갈 것도 없이 나부터가 그렇다. 있는 돈 없는 돈 다 끌어 모은다 할지라도 막상 하던 일을 그만두면 이후의 삶을 지탱하기에는 턱없이 부족하다는 걸 잘 알지만 달리 뾰족한 대책이 없는 것이다. 뭔가 대책을 세워야 하지 않겠느냐는 말은 자주 듣지만 현실에서 부대끼는 잡다한 일도 버거워하는 마당에 시간을 쪼개어 자기계발에 힘쓴다는 건 언감생심 꿈도 못 꿀 일이다. '어떻게 되겠지' 하는 막연한 기대가 유일한 버팀목이다. 때로는 로또복권과 같은 뜻밖의 행운을 바라기도 하지만 말이다. 그래서인지 비트코인과 같은 가상화폐에 대한 광풍도 어느 정도 이해가 되지 않는 건 아니다.

 

"자신의 현장에서 자신이 무엇을 하고 있는지 볼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은 기록하는 것이다. 자신의 업무 방식이 최선이었는지, 상대가 만족했을지, 어떻게 하면 수준을 향상시킬 수 있을지를 고민하고 기록하다 보면 어느 순간 자신만의 현장이 나타나게 될 것이다." (p.232)

 

자신의 일을 깊숙이 들여다보고, 필요한 일을 실행하고, 실제로 업무에 적용해 나이에 개의치 않고 원하는 만큼 일하며 걱정 없는 노후를 맞고 싶다면, '나만의 업'을 완성하는 빅 커리어 프레임으로 자신만의 경쟁력을 발견해야 한다고 저자는 충고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자신이 지금 하고 있는 일을 프로젝트, 취미, 스트레스, 쓰레기로 구분하여 저자가 제시하는 다양한 방법으로 선택과 집중을 반복할 필요가 있음을 강조한다. 그러다 보면 지금 자신이 하고 있는 일 속에서 미래 걱정 없는 새로운 일을 발견하게 된다는 것이다.

 

"빅 커리어는 대단한 한방으로 만들어내는 퍼포먼스가 아닙니다. 당신이 속해 있는 현장에서 하루에 단 1 퍼센트의 시간을 어제와 다른 관점으로 질문하는 과정 속에 싹이 트는 것이지요. 사람은 늘 어제와 같은 방식으로 접근하고 생각하고 일하는 경향이 강합니다. 그래서 새로운 방식으로 현장을 바꿔 성과를 내고 싶어 하는 분들을 위해 이 책을 썼습니다." (p.253)

 

불확실한 미래를 위해 자신을 단련하고 확실한 대안을 찾는 일은 누구에게나 필요하다. 그러나 '자기계발서'로 분류되는 책으로부터 도움을 구하지 않는 까닭은 특별한 노력 없이도 저자가 제시하는 간단한 방법으로도 누구나 부러워하는 행복한 미래를 맞을 수 있다거나 지금 자신이 처한 위치에서 과도한 노력을 요구하는 책들이 대부분이기 때문이다. 이를테면 상상만으로 부자가 될 수 있다거나 잠을 줄여서라도 하루에 한 권의 책을 읽어야 한다는 식의 방법론은 '자기계발서'에 대한 불신만 조장하는 게 사실이다.

 

이 책에서 권하고 소개하는 방법들이 누구나 쉽게 따라할 수 있는 것들이라고 말할 수는 없다. 그러나 적어도 현재 자신이 하고 있는 일을 점검하고 미래의 대안을 찾는 일에 도움이 된다고는 확실히 말할 수 있을 듯하다. 2016년 5월 삶을 변화시키고 싶은 열 명의 참가자들과 함께 시작했던 빅 커리어 프로그램을 바탕으로 쓰인 이 책은 다양한 사람들의 사례도 싣고 있다. 일본의 야마로쿠 간장이나 전지현 GS25 점주, 김수용 엠케이메탈(주) 대표 등 빅 커리어를 실행했던 사람들의 사례를 읽는 것만으로도 의욕과 열정이 샘솟는다. 세월은 누구에게나 약간의 후회와 아쉬움을 남겨주게 마련이다. 돌이켜 보면 나도 또한 그런 세월을 많이도 흘려보냈다. 그러나 무심히 흘려보낸 세월의 대가가 자신이 바라던 미래로 직결되지는 않는다. 그리고 세월의 속도는 우리가 생각하는 것보다 훨씬 빠르다는 사실이다. 지금 당장 무엇인가 실천하지 않으면 바라는 미래는 결코 오지 않을지도 모른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2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어젯밤에 잠을 설친 탓인지 커피를 서너 잔이나 마셨는데도 나른하고 졸리기만 하다. 게다가 새벽에는 평소보다 한참이나 빠른 시각에 잠이 깨어 피곤한 몸을 이끌고 아침 산행을 나섰었다. 볼에 닿는 차가운 바람이 잠을 깨우기는커녕 자꾸만 움츠러드는 어깨와 속살을 파고드는 한기는 부족한 수면으로 가뜩이나 방전된 체력을 바닥까지 끌어내리는 듯했다. 어렵사리 산행을 마친 후 씻고 간단하게 아침을 먹고 집을 나설 때까지 몽롱한 정신은 쉽게 회복되지 않았다.

 

이렇게 된 사건의 전말을 이러했다. 저녁을 먹고 책을 조금 읽은 후 자정이 가까운 시각에 잠자리에 들었다. 어렴풋이 잠이 들려고 하는데 아파트 실내의 스피커를 통해 갑자기 들려오는 비상벨 소리. 복도에서는 화재 경보음이 시끄럽게 울려 퍼지고 영문도 모른 채 달려 나온 주민들이 옹기종기 모여 화재 경보음이 울린 이유를 서로에게 묻고 있었다. 다행히 같은 동의 어느 집도 화재가 나지는 않은 듯했다. 그럼에도 경보음은 한동안 지속되었고 잠은 저 멀리 달아나고 말았다. 10여 분 이상 시끄럽게 울리던 경보음이 잠잠해지더니 아무 일 없으니 안심하고 자도 된다는 관리사무실의 안내 방송이 이어졌다. 그때는 이미 까무룩 잠 속으로 빠져들던 의식이 되돌아와 정신이 말똥말똥한 상태였다. 한동안 뒤척이다 어찌어찌 잠들었던 게 새벽녘이었다. 그러나 늘 일어나던 기상시간보다 일찍 잠이 깨는 바람에 피곤한 몸을 이끌고 어쩔 수 없이 산행에 나섰던 것이다.

 

사람들은 어제 있었던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의 항소심 선고 공판에 대한 의견이 분분했다. 대체로 그럴 줄 알았다는 의견이었고, '무전 유죄, 유전 무죄'의 전통은 전혀 달라진 게 없다며 앞으로도 쭈욱 그렇지 않겠느냐는 비관 섞인 전망을 내세우는 사람도 많았다. 판사들 대부분이 돈과 권력을 좇아 부나방처럼 부유하는 족속이라는 건 이전부터 알고 있었지만 정형식 판사의 판결은 너무 노골적이지 않느냐며 분개하는 사람도 많았다.

 

어디 정형식 판사 한 사람뿐이랴. 법과 양심에 따라 재판을 하는 판사가 과연 몇이나 될 것이며 범죄 피의자의 영장 청구를 번번이 기각하는 기각 요정 오민석 판사나 돈이 된다면 양심도 팔 기세인 정형식 판사나 그들과 비슷한 성향의 드러나지 않은 판사들은 과연 얼마이겠는가. 게다가 그들을 지지하는 얼빠진 국민들도 다수 존재하지 않는가. 입춘이 지난 오늘도 동장군의 기세가 매섭기만 하다.


댓글(4) 먼댓글(0) 좋아요(19)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syo 2018-02-06 17:1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이 나라 사법 정의에 또 불났다는 경보음이었나 봐요....

꼼쥐 2018-02-08 12:39   좋아요 0 | URL
그랬었나 봅니다. 이런 주관적인 판결은 해서는 안 되는데 말이죠.

2018-02-06 19:45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8-02-08 12:41   URL
비밀 댓글입니다.
 
무엇이든 쓰게 된다 - 소설가 김중혁의 창작의 비밀
김중혁 지음 / 위즈덤하우스 / 2017년 12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오늘은 입춘, 24절기 중 봄의 시작을 알리는 날이라지만 동장군의 기세에 그 의미마저 무색해진다. 오늘날은 입춘축을 써 붙이는 우리의 옛 풍습이 대부분 사라졌지만 내가 어렸을 때만 하더라도 한 해의 무사안녕을 기원하는 입춘축이 집집마다 내걸렸고, 붓글씨로 크게 쓴 '입춘대길 건양다경(立春大吉 建陽多慶)'의 입춘축이 낯설지 않았다. 입춘축을 붙이는 게 굿 한번 하는 것보다 낫다는 옛말처럼 새해의 소원을 입춘축에 씀으로써 사람들은 어쩌면 한 해의 행운을 모두 얻은 듯한 그런 기분을 느꼈는지도 모른다.

 

"글을 쓴다는 것은 시작과 끝을 경험하는 일이다. 글의 시작이 어떠해야 할지 생각하고, 글의 끝까지 달려가본 다음, 다시 처음으로 돌아와 글을 마무리하게 된다. 글쓰기 경험은 삶의 경험과 본질적으로 다르지 않다. 우리는 글을 쓰면서 내가 어떤 나인지 알 수 있고, 내가 중요하게 생각하는 건 무엇인지, 내가 무의식적으로 피하고 싶은 것은 어떤 것인지 알 수 있다." (p.82)

 

'소설가 김중혁의 창작의 비밀'이라는 부제가 붙은 <무엇이든 쓰게 된다>를 읽으면서 나는 문득 블로그를 시작했던 몇 년 전을 떠올려보았다. '아무런 대가도 주어지지 않는 일을 나는 참 오래도 했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경제적 효용으로 따지자면 시쳇말로 '1도 가치가 없는' 일을 이렇게 오랫동안 했다는 사실에 나 스스로도 조금 놀란다. 충동에 가까운 무작정 시작했던 일, 몇 번 위기는 있었지만 성마른 성격의 내가 수년째 이어오는 일, 나는 아직도 그 배경을 알지 못한다.

 

"우리는 글을 통해 끊임없이 어떤 명제를 만들거나 정의를 내리고 싶어 한다. 자신을 표현하기 위해 글을 쓰지만, 그 글로 자신이 온전하게 표현되지 않는다는 것을 안다. 우리는 단언하듯 문장을 만들지만 그 문장이 얼마나 불안정하며 바보 같은 것인지도 알고 있다. 바보 같은 줄 알면서도 계속 쓰고, 단언하지 않으려 하면서도 '하얀 눈 위의 구두 발자국' 같은 문장을 끊임없이 찍어낼 수밖에 없다. 우리는 그 속에서 흔들리며 글을 쓴다." (p.123)

 

사실 이 책은 글쓰기에 관한 보편적인 조언을 담고 있지는 않다. 그런 의미에서 객관적이라거나 대중적인 글쓰기 책은 아니라고 말할 수 있겠다. 물론 글쓰기는 지극히 주관적인 작업이기는 하지만 말이다. 글을 쓰는 직업인으로서의 작가 자신을 한 꺼풀 벗겨낸 듯한 모습을 누군가 객관적으로 써내려 간 듯한 느낌이 들기도 한다. 목차만 봐도 충분히 알 수 있다. 1부 '창작의 도구들', 2부 '창작의 시작', 3부 '실전 글쓰기', 4부 '실전 그림 그리기', 5부'대화 완전정복' 등 자신의 글쓰기 환경을 세세하게 보여주고 있다. 작가의 책상 위에 놓인 메모지나 연필, 스마트펜, 해마다 업그레이드된다는 컴퓨터에 이르기까지 작가는 '굳이 이런 것까지...' 하는 생각이 들 정도로 자세하게 밝히고 있다. 딱히 쓸 얘기가 없어서일 수도 있겠지만 말이다.

 

"서른 살에 쓴 내 소설과 마흔여섯 살에 쓴 내 소설은 무척 다르다. 패기는 줄어들었지만 여유는 늘어났다. 형식적인 실험은 줄어들었지만 소설의 내용으로 하는 실험은 늘어나고 있다. 문장은 짧아졌고, 사람들의 대화는 부드러워졌다. 앞으로 나는 어떤 소설을 쓸 수 있을까. 힘들고 막막하지만 앞으로 내가 쓸 소설이 기대되기도 한다. 나이만 잘 먹으면 글 같은 건 어찌 되어도 상관없지 않을까. 나이를 잘 먹어야만 글이 좋아지는 것은 아닐까." (p.204)

 

'글을 쓰면서도 최대한 말에 가깝게 쓰고 싶고, 말을 할 때는 최대한 글에 가깝게 쓰고 싶다'는 말에는 고개가 끄덕여진다. 이렇게 쓰고 보니 내가 무척이나 글을 잘 쓰거나 글쓰기에 대해 오랫동안 고민해 온 사람처럼 생각될 테지만 전혀 그렇지가 못하다. 블로그에 글을 올리기 전에 '이러이러한 내용의 글을 써야지' 생각했는데 막상 쓰고 나면 전혀 다른 내용의 글이 떡하니 올라 있는 경험을 수차례 반복하는 까닭에 '내 글은 왜 말하고 싶은 내용을 담지 못할까' 화가 나기도 하고 나 자신이 바보 같다는 생각도 들기 때문이다.

 

작가는 '끝끝내 쓰고 싶은 글의 롤모델이 어머니의 글'이라고 한다. 어머니의 글에는 맞춤법이나 문장은 엉망이어도 리듬이 있다는 게 그 이유였다. 그리고 세상을 바라보는 리듬을 찾는 게 글쓰기의 완성'일 것이라고도 했다. 결국 세상을 바라보는 자신만의 리듬을 찾는다는 건 세상 속에서 온전한 인간으로 거듭나는 걸 의미하는 건 아닐까. 생각하기에 따라서 그것은 무척이나 어려운 일인지도 모른다. 모든 게 불안정한 내가 타인으로부터 '너답다'고 인정받기 위해서는 앞으로 넘어야 할 산이 너무 높아 보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생각해 보면 이정표가 없는 삶의 행로에서 자신이 가야 할 삶의 좌표를 설정하는 데 글쓰기만큼 유용한 수단도 달리 없는 듯 보인다. 끝없이 흔들리면서도 멈추지 않고 글을 쓰는 이유는 결국 삶의 방향을 찾기 위함은 아닐까. 오늘은 입춘, 매운 바람이 불었고 천진한 나는 봄의 향기를 맡지 못했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4)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우유부단한 성격 탓에 손해를 보는 경우가 더러 있다. 무 자르듯 싹둑 단칼에 잘라버리는 결단이 필요한 시점에도 결정을 미룬 채 마냥 뭉개고 앉아 있다가 결국 손해를 본 후에야 비로소 등 떠밀려 결정을 하게 될 때, 마음속으로는 '이제 다시는 그러지 말자' 결심하지만 개 버릇 남 못준다는 속담처럼 같은 실수를 번번이 반복하는 것이다. 이런 나에 대하여 항상 비난의 말만 있는 건 아니고 이따금 '인간적이다'고 말해 주는 사람도 있다. 물론 내 앞에서 하는 말이니 속마음은 다를 수 있겠지만 말이다. 반대로 좋은 점도 있다. 한 번 들인 습관은 싫다 하지 않고 꾸준히 하는 게 그렇다. 사람 관계도 단박에 끊어야 할 시점에 끊지 못하면 때로는 손해를 본다는 걸 잘 알지만 그게 참 어렵다.

 

제1야당의 대표가 자신을 성희롱자로 보도한 모 방송국의 '당 출입금지 및 부스 제거, 당 소속 의원 및 당직자 등 취재거부, 해당 언론 시청거부 운동 독려'를 결정했다는 소식을 들었다. 국민들의 지지와 외연 확장을 위해서는 언론의 도움이 절실할 텐데 그런 손익 계산과 상관없이 단칼에 내려칠 수 있는 그의 결단력이 한편으로는 어이가 없으면서도 한편으론 부럽기도 하다.

 

아침에 잠깐 눈발이 날리더니 지금은 쨍하니 개었다. 바람이 불고 체감온도마저 뚝 떨어진 주말 오후, 인근의 칼국수집에서 칼국수 한 그릇을 먹고 들어왔다. 밥 짓는 것도 귀찮은 휴일 오후, 식당에는 가족 단위 외식객이 대부분이었다. 가리는 음식도 없지만 딱히 좋아하는 음식도 없는 나는 음식 선택에 있어서도 때로는 애를 먹는다. 사는 게 만만치 않구나 생각하면서 말이다. 음식 선택 가지고 사는 문제까지 들먹일 필요는 없지 않겠느냐고? 그렇지가 않다. 거의 매일 하루 한 끼 이상을 사 먹다 보면 음식 선택이 무슨 대학수능시험만큼이나 어렵게 느껴진다. 내가 우유부단해서 그런가? 그럴지도...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4)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