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학자의 공부 - 완벽한 몰입을 통해 학문과 인생의 기쁨 발견하기
오카 기요시 지음, 정회성 옮김 / 사람과나무사이 / 2018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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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가뜩이나 적은 일수의 달인데 중간에 설 연휴마저 끼이다 보니 한 달이 어찌 흘렀나 싶은 게 도통 정신이 없다. 틈 나는 대로 읽으려고 책상 한편에 쌓아 놓은 책들은 좀체 줄어들 기미가 보이지 않고 되레 권수를 더하여 그 높이만 키우고 있다. 한숨 돌릴만한 짬이 나지 않는 까닭에 어떤 내용의 책인지 대충이나마 훑어볼 여유도 갖지 못했다. 이러다가는 입안에 가시가 돋는 형국을 지나 숫제 철조망이 쳐지는 게 아닐까 싶다. 그래서일까 입맛도 없고 매사가 그저 시큰둥할 뿐 활력이 생기지 않는다. 봄이 오려나 보다.

 

"몰입은 그런 식으로 찾아오는 것 같다. 약간의 긴장감을 유지한 채 난생처음 가는 길을 걷듯 아무것도 모르는 상태에서 일을 계속 진행하기. 거기에 더해 졸음만 쏟아지는 일종의 방심 상태에 놓여 있기. 이 두 가지가 '발견'의 중요한 밑거름이 되었던 게 아닌가 싶다." (p.23)

 

2월도 끝을 향해 가는 오늘, 하루의 노력으로 한 달의 무위도식을 만회할 수는 없겠지만 좋아하는 소설은 왠지 놀고먹는 듯한 느낌이 들어서 고민 끝에 선택한 책이 오카 기요시의 <수학자의 공부>였다. 1901년에 태어난 오카 기요시는 제국주의 일본을 대표하는 수학자였다. 다변수 함수론 분야의 최대 난제였던 '3대 문제'를 해결해 세계적 명성을 얻기도 했던 저자는 이 책에서 학문과 예술, 인생과 공부법에 대한 자신의 생각을 허심탄회하게 적어 놓았다. 그러나 저자가 정립했던 '다변수 복소함수론'에 대한 설명은 없었다. 설명이 있었다 해도 그러려니 하고 못 본 척 건너뛰었을지도 모르지만 말이다.

 

1963년 일본에서 처음 출간된 이후 반세기가 넘는 긴 세월 동안 세대를 관통하며 대를 이어 읽히고 있는 까닭에 나는 이 책의 내용이 궁금했던 게 사실이지만 저자의 업적보다는 천재 수학자의 일상적 태도와 생각을 엿보고 싶었다. 학문에 있어 조화와 균형을 중시하는 저자는 자신의 학문적 성과의 근원으로 '정서를 귀하게 여긴 삶'을 내세웠다. 조화와 균형을 배우기에 가장 좋은 대상은 '자연'이며 '수학적 자연'을 일궈내는 열쇠가 '정서'라는 것이다.

 

"수학교육의 목적은 계산이 아니다. 굳게 닫힌 마음의 문을 억지로라도 열어 신선한 바람을 쐬게 해주어야 한다. 수학교육은 대자연의 직관이 인간의 마음 중심에 닿도록 하는 데 큰 도움을 준다. 우리의 통념대로, 계산을 잘하게 해주는 차원의 문제가 아니다. 우리는 한 인간을 계산기로 만드는 일을 목적으로 삼지 않는다." (p.77)

 

저자는 스스로를 '자연순응자'라고 칭한다. 인생을 살아가는 자신의 방식이 '자연을 따르는 삶'이라는 것이다. 중학교 입시에 낙방한 전력이 있던 저자는 대학에서도 물리학에서 수학으로 전공을 바꾸었다. 수학에 있어 천부적 재능을 타고 태어난 것도, 자신의 재능을 남보다 일찍 발견한 것도 아니었던 저자가 '층 이론'의 수학적 토대를 이룬 위대한 수학자로 성장할 수 있었던 데에는 자연과 정서를 중시하고 수학의 영역에 정서를 도입하려 했던 했던 획기적 발상, 즉 '정서적 수학'에서 알 수 있듯이 자신의 인문학적 소양을 바탕으로 자연과 학문을 매개함으로써 인류의 지적 성장을 이끌고자 했던 그의 열망이 한몫했다고 말할 수 있다.

 

"사람들은 내게 묻는다. 무엇에 쓰려고 그렇게 열심히 수학을 연구하느냐고. 봄 들녘의 제비꽃은 제비꽃으로 피어 있으면 그뿐이지 않은가. 피어 있는 것의 소용은 제비꽃이 알 바 아니다. 피어 있느냐 피어 있지 않으냐, 중요한 문제는 그것뿐. 나도 마찬가지다. 나로 말하자면, 단지 수학을 배우는 기쁨을 먹고 마시며 살아갈 뿐이다. 수학을 배우는 기쁨을 먹고 마시며 살아갈 뿐이다. 수학을 배우는 기쁨을 먹고 마시며 사는 존재일 뿐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다." (p.19)

 

봄으로 향하는 2월의 마지막 날, 온 국민의 바람처럼 단비가 내렸다. '인간의 중심을 이루는 것은 정서다.'라고 했던 저자의 말은 학문하는 자의 향기로운 삶을 새삼 떠올리게 한다. 도덕적으로 타락한 자가 감언이설의 붓끝으로 세상을 현혹시켰던 대한민국의 어느 노시인에게서 나는 썩은 내가 아닌, 학문 이외의 다른 어떤 것에도 한눈 팔지 않았던 한 수학자의 단순하고 청초한 삶에서 나는 은은한 향기를 나는 이 봄에 맡고 싶었는지도 모른다. 봄이 오고 있다. 대한민국 전역에 내리는 이 비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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블로그에 글을 올리는 게 꽤나 오랜만인 듯하다. 그래서인지 뭔가 낯설고 어색한 느낌이 든다. 순전히 기분 탓이겠지만 말이다. 명절도 명절이지만 연휴를 전후해서 처리해야 할 일들이 산적한 까닭에 나이가 들수록 명절은 그저 부담만 될 뿐 홀가분하고 설레던 분위기는 점차 사라지는 듯하다. 명절 연휴도 다 지났고 2월도 이제 막바지를 향해 치닫고 있는 요즘, 볼에 와닿는 바람은 제법 부드러워졌구나 하는 생각이 절로 든다. 아직도 아침 저녁으로는 제법 쌀쌀하지만 계졀은 바야흐로 봄 쪽으로 살짝 기울어지지 않았을까.

 

평창 동계 올림픽도 얼추 끝을 향해 가고 있다. 말도 많고 탈도 많았던 시작과는 달리 제법 안정을 찾았구나 싶으니 벌써 끝이라고 하니 살짝 서운한 느낌이 드는 것도 사실이지만 말이다. 여자 컬링팀과 걱정했던 아이스하키 남북 단일팀의 선전, 기대를 저버리지 않았던 쇼트트랙 선수들, 이상화와 고다이라의 가슴 뭉클했던 우정 등 볼거리도 많았다. 물론 스피드스케이팅 여자 팀추월 경기에서 선수들과 빙상연맹이 보여준 고질적인 파벌주의와 헬멧에 그려진 노란리본을 문제삼았던 어느 무식한 기자의 흠집내기로 인해 눈살을 찌푸리기도 했지만 그 정도면 무난한 올림픽이 아니었나 싶다. 아직 다 끝난 건 아니지만.

 

올림픽도 올림픽이지만 지금 대한민국에서 가장 큰 이슈는 미투 운동이 아닐까 싶다. 서지현 검사의 용기있는 고백으로 촉발된 미투 운동은 문학계와 연극계를 넘어 관행처럼 이어져 온 남녀차별과 부족한 성의식의 차원으로 번질 기세다. 당연히 치뤄야 했던 혼란이고 한번쯤 곪아 터져야 했던 종양이 아닐까. 자신의 치욕적인 경험을 고백할 수 있는 용기는 처음 한 사람에게만 필요했을 뿐 다음, 그 다음 사람에게는 약간의 결단만으로 족했을 터, 부당했던 관행에 대한 고발은 들불처럼 번지지 않을까 싶다. 나는 그렇게 되리라고 본다. 지금은 그저 시작일 뿐, 드러나지 않은 일들과 앞으로 누군가의 입을 통해 세상에 알려질 일들이 얼마나 많을지 지금은 상상조차 하기 어렵다. 전혀 상상하지 못했던 어떤 일을 계기로 세상은 또는 역사는 그렇게 조금씩 앞을 향해 나아간다는 사실을 새삼 깨우치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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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도 괜찮지 않습니다 - 감정 오작동 사회에서 나를 지키는 실천 인문학
오찬호 지음 / 블랙피쉬 / 2018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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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별은 물리적인 힘이 직접적으로 가해지지 않는다 하더라도 가장 비열한 폭력이라는 생각이 든다. 그러므로 차별이 있는 사회는 비록 겉으로는 평온해 보여도 그렇지 않은 경우가 많다. 가뜩이나 지연이나 학연 등 어떤 이유로든 틈만 나면 뭉치고 싶어 하는 우리나라의 패거리 문화에서 차별과 소외는 어느 사회에나 존재하는 단순한 사회 현상이 아니라 한 사람을 나락으로 떨어뜨릴 수 있는 중대한 범죄로 변질될 가능성이 농후하다. 결코 가벼이 볼 문제가 아니라는 얘기다.

사회학자 오찬호의 신작 <하나도 괜찮지 않습니다>는 차별과 소외에 대한 우리나라의 민낯을 가감 없이 드러내고 있다. 저자는 우리의 일상에 만연한 혐오와 폭력, 강박과 차별의 현장을 끄집어내어 하나도 괜찮지 않은 우리의 자화상을 그려냄으로써 반성과 성찰의 기회를 제공한다. 그러나 다른 한편으로는 은근한 걱정이 되는 것도 사실이다. 우리나라와 같이 갈등이 심한 국가에선 사회 곳곳의 치부를 드러냄으로써 반성을 유도하기보다는 자칫 새로운 갈등만 부추길 수 있기 때문이다.

 

"호랑이 굴에서 정신만 차려봤자 산 채로 죽듯이 사회구조라는 벽은 개인의 의지로 쉽사리 깰 수 없다. 깨져야 할 벽은 안 깨지는데 역효과는 크다. 무엇이든 개인이 마음먹기 나름이라는 식의 접근은 피해자에게 문제의 원인을 돌리는 우를 범한다. 왕따의 피해자에게 '너도 원인 제공이 있다'면서 폭력을 묵인하는 사회, 성범죄를 걱정하는 여성들에게 '늦게 다니지 않고 노출이 심한 옷을 입지 않으면' 위험해지지 않는다는 망언을 조언이랍시고 하는 사람들이 한국에 많은 건 우연이 아니다." (p.230)

 

주지하는 바와 같이 사회 갈등을 객관적으로 바라볼 수 있게 하는 지표가 사회 갈등 지수이다. 한 사회의 노사 갈등, 윤리적 갈등, 문화적 갈등, 세대 갈등, 남녀 갈등, 계층 갈등, 지역 갈등 같은 그 사회에 존재하는 모든 갈등을 합쳐 수치로 표현한 것으로서 민주주의 성숙도와 정부 정책의 효율성이 낮을수록, 소득 불균형이 높을수록 사회 갈등 지수가 높아지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그러나 대한민국의 갈등구조는 좀 더 특이한 측면이 있는 듯하다. 2016년 우리나라는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34개 국가 중 멕시코 터키에 이어 3위를 차지했으니 말이다.

 

총 3개의 PART로 구성되어 있는 이 책은 PART 1 '하나도 괜찮지 않습니다만', PART 2 '그게 다 강박인 줄도 모르고', PART 3 '불균형 사회, 나와 너를 성장시키는 법'을 통하여 우리 사회에 만연한 여성혐오, 양성평등, 노키즈존, 사회적 약자와 성 역할에 대한 편견, 다이어트에 대한 강박 등을 살펴보고 어떻게 하면 실패를 두려워하지 않게 될지, 주변에 흔들리지 않으려면 어떻게 해야 하는지, 진심을 전하고 싶거나 존엄한 개인으로 살기 위한 방법은 무엇인지, 정말로 행복해지려면 어떻게 해야 하는지 등 우리 사회의 병폐를 치유할 대안을 제시하고 있다.

 

"한걸음만 떨어져서 보면 너무나 부끄러워 얼굴이 화끈거리겠지만, 문화라는 오래된 습속에 길들여지면 원래의 길에서 한 걸음조차 옆으로 내딛기가 힘들다. 나아가 타인이 다른 방향으로 한 걸음만 옮기려는 것도 쉽사리 용납하지 않는다. 한국인들은 사람이라면 정말로 필요한 부끄러움을 자의적으로 해석하며 누군가를 상식적으로 아프게 한다." (p.113)

 

조금만 생각해보아도 지금의 우리 사회가 정상이 아리라는 건 쉽게 알 수 있다. 내 집이니까 아무리 쿵쾅거려도 괜찮다는 발상, 일상적인 외모 비하나 성 소수자에 대한 지나친 적대의식,자신의 기준에만 사로잡혀 타인의 영역을 무시로 넘나드는 꼰대 행각, 남자다움과 여자다움이라는 강박에서 비롯된 수많은 차별, 예외적인 기준만 주입하여 보편적 기준이 무시되는 사회, 자신의 신체와 외모, 패션감각을 부끄러워해야 하는 사회 등 외부의 객관적 시각에서 바라보면 비정상도 그런 비정상이 없을 듯한데 우리는 오히려 그런 모습을 당연시하거나 우리의 틀에서 벗어난 정상적인 사람들을 강하게 배척하곤 한다.

 

"웃자고 하는 말처럼 들리지만 사회를 튼튼하게 하는 데 지출하지 않고 사회가 좋아지길 희망하는 건 모순이다. 구체적인 정책을 만들어 내는 사람들을 도와주고 그 정치인들을 감시할 사람들의 생활을 안정적으로 유지시켜 주면 결국 사회는 한 단계 성장한다. 내가 발 뻗고 잘 지름길이다. '한때'가 지독히도 오랫동안 우리 주변을 부유하면서 '부끄러움'의 본질을 망각시키는 현실이 싫다면 그 반대의 가치를 객관적으로 지향하는 단체에 구체적인 도움을 주어야 한다." (p.272~p.273)

 

설 연휴를 하루 앞둔 오늘, 이른 귀성 차량의 행렬이 고속도로 곳곳에서 꼬리에 꼬리를 물고 이어지고 휴게소마다 몰려든 사람들로 북새통을 이루지만 마음만은 그 어느 때보다 넉넉했으면 좋겠다. 명절에 고향을 찾지 않는 사람이 있어도, 식당에서 혼자 밥을 먹는 사람이 있어도 무례한 시선으로 그들을 당혹스럽게 만들지 않았으면 좋겠다. 우리는 언제나 자신의 기준과 다른 사람은 모두 비정상으로 취급하는 경향이 있다. 다만 기준이 다를 뿐인데 말이다. 명절이 명절다우려면 말과 행동에 앞서 상대방의 입장을 다시 한 번 되짚고 생각해야 한다. 갈등 유발 요인은 많고 갈등 관리는 현저히 부족한 우리 사회이기에 구조적 모순을 극복하고 앞으로 나아가기 위해서는 역지사지의 자세가 무엇보다 중요한 게 아닌가 싶다. 대화도 없이 무작정 배척할 게 아니라 상대방의 말에 귀를 기울이려는 적극적인 자세가 우리 모두에게 평화를 가져다 준다면 굳이 피할 일도 아니지 않은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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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의 감정도 필요에 따라 말끔히 없애버리거나 상황에 맞는 적당한 감정을 새로이 만들어내거나 뒤섞을 수 있으면 좋겠다고 생각할 때가 더러 있다. 나이만 먹었지 수양은 되지 않아서인지 감정 조절에 애를 먹는 경우가 종종 있어서 하는 말이다. 이런 모습의 나를 향해 '그 나이 먹도록 도대체 뭐했누?' 하고 혀를 끌끌 찰 분이 있겠지만 어쩌겠는가. 인간의 됨됨이란 게 제 스스로 깎고 다듬어가는 것이어서 조금만 게을리해도 사람이 감정을 지배하는 게 아니라 되레 감정이 사람을 지배하는 꼴이 되고 만다는 걸 진즉 알았더라면 인격의 수양에 좀 더 힘을 쏟았을 텐데 나는 이미 그 시기를 놓친 게 아닐까 싶다.

 

평창 동계 올림픽이 개막되자 이런저런 소식이 쏟아지지만 나는 그중에서도 미국을 대표하여 방문한 펜스 부통령과 일본의 아베 신조 총리의 행보를 보면서 지난 정권의 실정으로 인한 국격의 실추가 이토록 심각하구나, 하는 생각이 들어 치솟는 화를 누르기 어려웠다. 한반도기를 앞세우고 남북한이 동시 입장하자 모두 박수를 치며 환호했지만 펜스와 아베는 미동도 하지 않았다. 그뿐인가. 문 대통령이 주최하는 개막 리셉션장에도 늦게 나타나 빈축을 사는 등 외교적 결례를 서슴지 않았다. 아베는 한 발 더 나아가 문 대통령과의 정상회담 자리에서 한미 합동 군사훈련을 연기할 단계가 아니라며 예정대로 진행하는 게 중요하다는 말도 했다. 주권침해이자 내정간섭으로 비칠 수 있는 말도 거리낌이 없었던 것이다. 그야말로 아베와 펜스는 대한민국을 주권국가로 보지 않은 셈이다.

 

이런 문제는 정치인에게 국한되지 않았다. 미국 NBC의 중계방송 아나운서는 "일본이 한국을 1901년부터 1945년까지 강점했지만 모든 한국인들은 일본이 문화 기술 경제적으로 매우 중요한 본보기였다고 말하게 될 것'이라고 말했다. 영국의 일간지 '더 타임스'도 남북 선수단이 들고 공동 입장한 한반도기 사진을 설명하면서 "독도는 일본이 소유한 섬"이라고 보도해 물의를 빚었다.

 

 

대한민국의 국민이라면 누구나 화를 내야 마땅한 기사였다. 그러나 보수 야당은 김정은의 특사단과 북한 응원단은 비난하면서도 펜스와 아베의 행보에 대해서는 일언반구 말이 없었다. '때리는 시어머니보다 말리는 시누이가 더 밉다'는 말은 이럴 때 쓰는 말이 아닐까. 펜스와 아베를 향해 체면상 호래자식이라고는 못할지언정 비난의 말은 한마디 해야 하지 않았나. 자유당이 미국이나 일본의 정당이 아니라면 말이다. 개막식이 있은 지 며칠 지났건만 생각할수록 화가 치민다. 모처럼 날씨는 화창한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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달의 영휴
사토 쇼고 지음, 서혜영 옮김 / 해냄 / 2017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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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가 환생을 소재로 한 소설에 끌리는 이유는 역설적으로 환생 자체가 불가능하다고 믿기 때문이 아닐까 싶다. 불가능하다고 믿는 것에 대한 갈망이나 염원 또는 호기심과 같은 복합적인 감정이 더해져서 환생은 그저 누군가가 꾸며낸 상상의 이야기겠거니 생각하던 사람도 결국에는 '나의 삶도 이번 생에서 완전히 끝나는 게 아닐지도 몰라.' 하는 실낱 같은 희망을 품게 되는 게 아닌가 하고 말이다.

 

"하느님이 이 세상에 태어난 최초의 남녀에게 죽을 때 둘 중 하나의 방법을 선택할 수 있다고 했어. 하나는 나무처럼 죽어서 씨앗을 남기는, 자신은 죽지만 뒤에 자손을 남기는 방법. 또 하나는 달처럼 죽었다가도 몇 번이나 다시 태어나는 방법. 그런 전설이 있어." (p.181)

 

사토 쇼고의 <달의 영휴> 또한 환생에 대한 우리의 판타지를 소설로 쓴 작품이다. 사람이 태어나고 죽는 것을 달이 차고 기우는 '영휴(盈虧)'로 은유한 이 소설은 자신이 사랑했던 한 사람을 만나기 위해, 다시 만나서 사랑하기 위해 몇 번이고 다시 태어나는 주인공 루리의 삶을 주 테마로 하면서도 소설을 한 꺼풀 더 들여다보면 겉모습이 아무리 변한다 해도 결코 변하지 않는 건 사랑이라는 변하지 않는 진리를 독자들에게 전달하고 있다.

 

소설의 도입부는 상당히 복잡하게 시작한다. 영문을 모르는 독자들로서는 어리둥절할 수밖에 없다. 소설의 주인공인 오사나이 쓰요시는 유명 여배우가 된, 오래전에 사고로 죽은 자신의 딸의 친한 고교 동창생이었던 미도리자카 유이와 그녀의 어린 딸 미도리자카 루리를 만나기 위해 도쿄로 나왔지만 지하철역 출구를 찾지 못해 헤매고 있다. 11시 약속 시간보다 훨씬 빠르게 도착할 줄 알았는데 출구를 찾지 못하고 헤매는 바람에 약속 장소에는 시간에 맞춰 겨우 도착할 수 있었다. 자신의 딸이었던 오사나이 루리와 이름이 같은 미도리자카 루리는 일곱 살 소녀 같지 않은 말투와 행동으로 주인공조차 기억하지 못하는 과거의 일들을 끄집어내고, 자신이 교통사고로 죽은 주인공의 딸이라고 주장한다. 주인공과 독자들을 혼란스럽게 만든 도입부를 지나면 이야기는 환생을 계속하게 된 루리의 삶을 좇아 과거로 거슬러 올라가게 된다.

 

시골 출신인 오사나이 쓰요시는 고등학교를 졸업한 후 도쿄의 한 사립대에 진학한다. 그를 깊이 사랑했던 한 여인도 그를 쫓아 도쿄로 왔다. 같은 고등학교 2년 후배이기도 했던 그녀는 그 사실을 숨긴 채 오사나이가 속했던 클럽에 가입하여 자연스럽게 만남을 이어갔고 대학을 졸업하여 직장에 취직을 한 후에도 두 사람의 교제는 끊어지지 않았다. 장거리 연애를 하던 둘 사이에 갑자기 아이가 생기는 바람에 둘은 결혼하였고 결혼한 지 얼마 지나지 않아 딸 오사나이 루리가 태어난다. 평범했던 딸은 독한 감기에 걸려 고열에 시달린 이후 다른 사람처럼 변해갔다. 눈치가 빠르고 운전도 척척 잘하는 아내 고즈에와는 달리 오사나이는 둔하고 눈치 없는 사람이었던 까닭에 딸이 이상하다고 말하는 아내의 말을 한 귀로 듣고 한 귀로 흘려보낸다.

 

"오늘 당신이 없을 때 딱 한 번 그런 눈빛으로 나를 봤어. 소름 돋을 정도로 어른스러운 눈빛이었어. 아키라 군은 어디서 왔니, 하고 물어봤는데, 그랬더니 루리가 내 쪽을 돌아보고 아무 말도 안 하고 내 얼굴을 가만히 바라보는 거야. 안색을 살피는 눈으로. 마음속을 들여다보는 것 같은 눈으로. 이 사람한테 어떻게 얘기해야 좋을까? 하는. 나쁘게 말하면 생판 처음 본 사람을 보는 것 같은 눈빛으로. ……역시 표현이 잘 안 돼. 하지만 지금까지와 다른 건 분명해." (p.36)

 

루리가 행방불명이 되어 오사나이와 고즈에를 깜짝 놀라게 했던 사건이 있었다. 경찰로부터 루리를 인계받은 오사나이는 집을 무작정 나갔다가 다시 되돌아오게 된 루리를 향해 여행이 하고 싶으면 고등학교를 졸업한 이후에 하라고 타이른다. 그 후 루리는 완전히 다른 사람으로 변했고 말썽 한 번 부리지 않았다. 적어도 고등학교를 졸업할 때까지는 말이다. 그러나 고등학교를 졸업한 루리는 엄마인 고즈에의 차를 타고 누군가를 만나러 가다가 교통사고로 사망한다. 아내와 딸을 잃은 오사나이는 자신의 부모님이 계시는 고향으로 돌아간다. 시간이 한참 흐른 후 고즈에의 친구의 남동생인 미스미 아키히코가오사나이를 찾아오고 그로부터 길고 긴 이야기를 전해듣게 된다.

 

"18년의 시간이 지나서 다시 시작된 동일한 망상. 환생의 시나리오. 신혼 생활을 시작한 뒤에도 아니, 분명 신혼 이후 몇 년이 지나서도 그 생각이 그를 놓아주지 않았을 것이다. 미스미가 멍하니 생각에 잠겨서 아내에게 의심을 받는 횟수는, 오히려 해마다 늘어갔을 것이다." (p204)

 

스무 살의 미스미 아키히코를 지독히 사랑했던 여인이 있었다. 그녀의 이름은 마사키 루리. 승승장구하는마사키 류노스케의 아내이기도 했던 그녀는 아이가 생기지 않자 노골적으로 바람을 피우는 남편 때문에 불행한 결혼생활을 이어가고 있었다. 그런 그녀가 어느 날 비를 피하러 들어간 비디오 가게에서 아르바이트생 미스미 아키히코를 만난다. 그리고 둘은 가까워진다. 그러나 스물일곱 살의 유부녀인 그녀와 대학생인 미스미 사이에는 넘을 수 없는 장벽이 있었다. 어느 날 마사키 류노스케의 선배인 야에가시 씨가 '좀 죽어본다'는 묘한 유서를 남긴 채 자살하는 사건이 발생하자 마사키 루리는 그를 이해할 수 있을 것 같다고 말한다. 그 후 얼마 지나지 않아 마사키 루리 역시 지하철 전동차에 치여 죽는다. 그리고 환생을 거듭하며 사랑을 이루려는 루리의 이야기가 펼쳐진다.

 

사토 쇼고의 소설 <달의 영휴>는 사랑을 위해 환생을 거듭하는 한 여인의 이야기를 드라마틱하게 그리고 있지만 실상은 독자들에게 '사랑은 과연 무엇인가?' 끊임없이 묻고 있다. 달이 차고 기우는 것처럼 사랑의 열기도 자연스럽게 높아졌다가 흔적도 없이 스러지는 게 옳은 것인지, 죽음과 같은 어둠의 흔적을 이겨내고 달처럼 밝은 사랑을 흐트러짐 없이 이어가는 게 옳은 것인지 각기 다른 독자들의 대답을 묵묵히 기다리는 것이다. 한 생애를 살면서도 끝없이 흔들리는 사랑의 덧없음으로 인해 우리는 이런 불가능의 판타지를 끝없이 만들어내는지도 모른다. '사랑이 어떻게 변하니?'라고 묻던 어느 영화의 대사처럼 사랑의 호흡은 생각보다 길지 않다는 걸 우리 모두는 잘 알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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