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전에 만났던 사람들은 대개 어제의 피곤이 채 풀리지 않은 듯한 푸석한 얼굴이었다. 이따금씩 하품을 할 때마다 충혈된 눈에 눈물이 고이곤 했다. 우리나라 축구 대표팀으로서는 러시아 월드컵의 최종전이나 다름없었던, 어쩌면 승리에 대한 기대보다는 혹시나 하는 기적에 기대어 경기를 관전해야만 했던, 그럼에도 경기에 질 것 같다는 예감은 전혀 들지 않았던 그런 경기였다. 아무런 근거도 없는 괜한 자신감은 경기를 지켜보는 국민들이나 그라운드에서 뛰는 선수들 모두에게 팽배했었던 듯하다. 16강에 대한 기대가 눈곱만큼도 없었기 때문이었는지도 모른다.

 

0:0의 동점 상황에서 예상보다 길게 주어졌던 추가시간. 추가시간이 조금이라도 짧았더라면 차라리 무승부로나 끝날 수 있을 텐데 하는 아쉬움으로 심판이 야속하기만 했던 그 순간에 우연처럼 또는 기적처럼 터졌던 골. 아파트에 울려퍼지던 함성은 골이 터진 후 약간의 시차를 두고 터져나온 것이었다. 다들 나처럼 믿을 수 없는 상황에 잠시 혼란스러웠으리라. 그러나 기적과 같은 현실을 받아들이는 데는 많은 시간이 필요치 않았다. 골키퍼까지 나와 무인지경이 된 독일의 골문을 향해 사력을 다해 뛰어간 손흥민 선수의 발끝에서 또 하나의 골이 터졌으니까.

 

수시로 반복되는 행복은 더이상 행복이 될 수 없는 것처럼 승리만 하던 팀에게 또 다른 승리란 기적이 될 수 없었을 터, 우리는 연이은 패배 이후 그렇게 기적을 만들었다. 독일에게는 미안한 말이지만 독일 역시 우리와 같은 기적을 일구었다고 나는 생각한다. 습관처럼 이어지던 독일의 승리는 한국이라는 작은 나라에게 불의의 일격을 당함으로써 가까운 미래에 있을 독일팀의 승리는 그들에게도 오히려 더욱 값지게 여겨질 테니 말이다. 관전하는 독일 국민들도 우리처럼 기쁨의 눈물을 흘리게 될 테고. 승리만 하던 팀에게는 패배를, 패배만 하던 팀에게는 승리를 기적이라 여겨도 좋다. 길게 보면 행복도 크게 다르지 않다. 좌절만 하던 사람에게는 작은 행복이, 행복만 누리던 사람에게는 단 한 번의 좌절이 아주 우연히 찾아온 기적이라 믿으며 살면 된다. 늘 있는 행복은 더이상 행복이 되지 않으며 늘 있는 좌절은 더이상 고통이 되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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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기괴괴 : 저주받은 갤러리 기기괴괴
오성대 글.그림 / (주)태일소담출판사 / 2018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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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화책은 정말 오랜만이다. 스마트폰이 보편화된 요즘, 젊은 세대에게는 만화보다는 웹툰이 더 익숙하겠지만 말이다. 심심하기 이를 데 없는 지하철 공간에서 자신의 스마트폰으로 웹툰을 보고 있는 어린 학생들을 이따금 마주칠 때마다 나는 무력한 격세지감을 느끼곤 한다. 예나 지금이나 어린 시절에 만화를 좋아하는 건 달라지지 않은 듯하지만 퀴퀴한 냄새가 나는 만화방에서 손에 침을 묻혀가며 책장을 빠르게 넘기던 우리 때와 한 컷 한 컷을 오른손 검지 하나로 가볍게 넘기는 요즘 세대와의 간극은 지나간 세월만큼이나 커 보였기 때문이다. 디지털 테크놀로지와 만화의 결합이 만들어 낸 이러한 변화를 아날로그 세대의 나는 어쩌면 기술의 진보에 대한 강한 거부감과 과거에 대한 진한 향수를 동시에 느끼고 있는지도 모른다. 그런 까닭에 만화는 역시 종이책으로 봐야 제맛이지, 하는 말은 변화를 두려워하는 구세대의 어설픈 변명처럼 들린다.

 

오성대 작가의 <기기괴괴: 저주받은 갤러리> 역시 네이버 웹툰에 연재되던 것을 단행본으로 출간한 책이다. 화면으로 보는 웹툰보다는 책장을 넘기면서 보는 만화책에 더 익숙한 나와 같은 구세대에게는 꽤나 반가운 책이 아닐 수 없다. 물론 과거처럼 침을 발라가며 책장을 넘길 수는 없지만 속도감 있게 후루룩 읽는 만화책의 묘미에서 지난 시절에 대한 향수가 몽글몽글 피어오르곤 한다.

 

"그 기세를 몰아『기기괴괴』라는 이 웹툰을 연재하게 되었습니다. 에피소드 형식이라 항상 새로운 일을 하는 기분으로 재미있게 작업하다 보니, 어느새 각종 영상화에 이어 이제 책이라는 것도 출간하게 되었네요. 그동안 다른 작가들 책이 나오는 걸 보면서 딱히 부러웠던 적은 없었지만, 막상 출간을 준비하게 되니 마음이 조금 들뜨더군요. 종이책을 보고 자란 세대라 그런지 마음 한편엔 종이책에 대한 환상이 조금은 있었나 봅니다." (p.491 '작가의 말' 중에서)

 

책에는 지면의 반 이상을 차지하는 '저주받은 갤러리'와 짧은 에피소드 형식의 '괴모수', '당첨번호', '살의', '불면증'과 부록 형식의 '장르파괴괴'가 실려 있다. 만화라는 특성상 여기서 줄거리를 낱낱이 말하는 건 곤란하겠지만 '저주받은 갤러리'는 학교라는 공간을 배경으로 학원 폭력의 가해자와 피해자의 기이한 복수극과 그 속에서 벌어지는 인간관계의 단절을 소재로 하고 있다. '당첨번호'는 공무원 시험을 준비하는 남녀 커플의 일상과 과도한 욕심이 부른 비참한 결말을, '괴모수'는 탈모로 고민하는 사람들의 고민을, '살의'는 원인도 불분명한 학생들의 연이은 사고사와 형사들의 추적을, 불면증에 시달리는 한 여인의 특별한 일상을 그리고 있다.

 

"난 갤러리 문 처음 연 지 이주일 조금 넘었다. 지금까지 걸은 사진은 넉 장 정도 되는데 아직 한 장밖에 안 찢었고. 근데 어젯밤에 들어갔다가 까무러치는 줄 알았다. x발.. 누가 벽에 내 사진을 걸어 놨더라고." (p.115)

 

옴니버스 형식의 공포 스릴러인 <기기괴괴>는 읽는 동안에는 그저 우리가 익히 알고 있는 여러 괴기담 중 하나인 듯 여겨지지만 막상 다 읽고 나면 등줄기를 타고 내려가는 오싹한 한기와 함께 작가가 전하고자 했던 메시지가 머릿속에 희미하게 번져온다. 포털 사이트의 웹툰을 일부러 찾아보는 것도 아니니 나로서는 오성대 작가의 작품인 '기기괴괴'가 네이버 웹툰에 처음 선을 보였던 2013년 이후 줄곧 웹툰 조회수 정상권에 있었다는 사실도 잘 알지 못했다. 그러나 단행본으로 나온 책을 읽어본 경험만으로도 그럴 만하다고 느꼈다. '사람들은 일상에서 살짝 비틀림이 생겨도 거기에서 공포감을 느낀다'고 말하는 작가의 언질. 맞는 말이다. 우리의 불안은 뭔가 거대한 공포에서 비롯되는 게 아니라 아주 작고 사소한 변화에서 시작된다. 장마가 잠시 소강상태를 보이는 오늘, 만화를 읽었던 짧은 시간 동안 후텁지근한 더위도 조금쯤 잊었던 듯하다. 인간 본성을 탐구하는 작가이니 만큼 새로운 작품이 끝없이 이어지길 기대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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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마가 시작되었다는 기상청의 예보를 확인이라도 시켜주려는 듯 하루 종일 비가 오락가락했습니다. 점심 무렵에는 천둥이 치고 벼락이 떨어지기도 했었죠. 아주 짧은 시간 장대비가 쏟아지기도 했습니다. 장맛비 때문인지 거리로 쏟아져 나온 차량으로 도로는 가는 곳마다 지체와 정체가 빚어졌습니다. 낮에 차를 몰고 잠시 외출을 했었는데 이 길이 밀리는 걸 보고 다른 길을 선택하면 그 길은 오히려 더 길게 밀려 있곤 했습니다. 좀 더 빨리 가려고 이 길 저 길 한참을 돌다 보니 평소보다 한참이나 지체되었습니다. '머피의 법칙'을 생각하지 않을 수 없는 하루였습니다.

 

우리네 인생도 그렇지 않을까 싶습니다. 비 오는 날이면 으레 밀리겠거니 생각하고 가던 길에서 느긋하게 기다리면 될 것을 조급한 마음에 이 길 저 길 헤매다 보면 시간과 돈을 모두 잃곤 하지요. '머피의 법칙'을 자주 경험하게 되는 까닭도 모름지기 그런 조급함에서 비롯되지 않을까 싶습니다. 인간이란 참으로 조급하고 경박스러운 존재인지도 모릅니다. 어쩌면 나만 그렇고 다른 사람들은 다들 느긋한데 잘 알지도 못하면서 일반화의 오류를 범하고 있는지도...

 

비가 많이 내린 것도 아닌데 방안은 온통 꿉꿉하고 눅눅한 기운으로 가득합니다. 쉽게 잠이 올 것 같지 않아 책을 집어들었는데 그마저도 눈에 들어오지 않습니다. 진득하게 할 수 있는 일이 딱히 없어서 퀴퀴한 세월이 묻은 오래된 음악을 듣다가 습관처럼 몇 자 적었습니다. 끈적끈적하고 후텁지근한 공기, 밖에는 다시 비가 내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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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익환 평전 - 문익환 탄생 100주년 기념 특별판 문익환 평전
김형수 지음 / 다산책방 / 2018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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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90년대의 민주화 투쟁을 경험하지 못한 20대의 젊은이들에게 문익환은 어쩌면 낯선 이름일지도 모른다. 그러나 대한민국의 근현대사에서 문익환이라는 이름 석자는 통일과 민주주의의 상징처럼 각인되었다. 시를 노래하며 세상의 온갖 부조리를 외면한 채 오직 자신의 길만 고집스럽게 걷던 그가 쉰아홉이라는 적지 않은 나이에 민주화운동에 뛰어들었던 것은 어쩌면 시대의 부름에 호응한 결과였는지도 모른다. 그렇다면 그를 시대의 외침에 호응하도록 했던 것은 과연 무엇이었을까. 그것은 아마도 성직자로서의 문익환이 보기에 남과 북의 우리 민족의 삶이 너무나도 애잔하다고 느꼈을 터였다.

 

아직 이런 말을 할 만큼 나이가 든 건 아니지만 한 사람의 삶에는 분명 거역할 수 없는 운명이 존재한다는 생각이 강하게 든다. 문익환의 삶도 다르지 않았다는 느낌이 든다. 1918년 만주 북간도에서 3남 2녀의 장남으로 태어난 문익환은 독립운동의 주요 거점이었던 그곳에서 어린 시절을 보냈다. 만주의 한인들이 세운 명동소학교와 은진중학교를 거쳐 평양의 숭실중학교, 북간도의 용정광명학교를 다녔다. 그 시절의 문익환은 여리고 행복했던 듯 보인다.

 

"그 속에서 문익환은 겨울 동화를 살았다. 친구 윤동주, 송몽규, 김정우와 함께 아버지가 장로로 있는 주일학교를 다니며 성탄 때는 교회당 옆의 윤동주 집에서 새벽노래 준비를 하고 밤새워 꽃종이를 만들었다. 옷을 두툼하게 껴입고 벙거지를 뒤집어쓰고 개가죽 버선을 신고 새벽 눈길을 걸어 다니며 찬송가를 부를 때는 하느님의 나라가 따로 없었다." (p.101)

 

순진하고 천진난만했던 그가 민주화 운동의 선봉에 서서 여섯 차례에 걸쳐 12년간의 옥살이를 감내할 만큼 강인한 투사의 길을 걷게 될 줄 누가 알았을까. 열렬히 사모하던 여인 박용길과 결혼하여 만보산 골짜기에 터를 잡고 신접살림을 시작하자마자 태어난 첫 아이. 그 모습이 안쓰러워 신경 중앙교회 목사가 문익환을 부목사로 초빙하여 부부를 불러줄 때까지만 하더라도 그들의 앞날은 힘들지만 순탄한 듯 보였다. 그러나 갑자기 날아든 비보는 문익환의 삶을 현실 세계의 한가운데로 인도하기에 충분했다. 아끼던 친구 윤동주가 후쿠오카 감옥에서 죽었다는 소식.

 

"문익환은 자신이 구겨진 휴지처럼 역사의 구석지에 버려져 있는 것을 느꼈다. 그것은 확실히 문익환이 생각지 못한 제2의 길을 간 장준하와, 그보다 더한 제3의 길을 선택한 윤동주, 송몽규의 진로에 비추어 형편없이 초라한 것이었다. 문익환은 엄청난 절망감에 빠졌다. 육체는 밥으로 살찌지만 정신은 기아와 고통으로 성장한다. 구체적인 현실 속에서 생각하는 것이 아니라 상징에 의해 생각하는 것을 그만두어야만 비로소 행동할 수 있게 된다." (p.178)

 

젊었을 때 종교에 대해 그다지 관심이 없었던 나는 성직자나 신학자로서의 문익환에 대해 아는 게 많지 않았다. 그보다는 오히려 민주화 운동에 앞장서던 투사로서의 문익환이 더 익숙했다. 검은 뿔테 안경에 듬성듬성한 수염을 하고서도 얼굴에는 늘 미소를 잃지 않던 모습은 투사의 이미지와는 영 딴판이었던 걸로 기억된다. 1989년 3월 조평통의 초청으로 소설가 황석영과 함께 북한을 방문했던 사건은 마치 어제의 일인 양 기억에 또렷하다. 군사정권의 엄혹했던 시기에 국가 기관 소속이 아닌 일반인의 신분으로 북한을 방문할 수 있었다는 게 도무지 믿어지지 않았다.

 

"마침내 문익환이 법정에 섰을 때 두 손이 밧줄에 묶인 채 사진기자들에게 보여주었던 소년 같은 미소는 그가 고령임에도 불구하고 흉악범처럼 묶여 있는 처지와 미묘한 부조화를 이루어 보는 사람들의 마음을 안타깝게 했다. 물론 그의 표정과 눈에는 통일에 대한 확신과 열정이 빛나고 있었지만 재판은 구역질이 날 만큼 유치한 여론몰이에 활용되었다." (p.606)

 

성직자라는 가면을 쓰고 정권에 빌붙어 호의호식하는 자들을 우리는 수없이 많이 보아왔다. 목회자라는 지위와 권력, 신앙심을 이용해 여성신도에게 차마 못할 짓을 저지르거나 신도들의 헌금을 개인의 사적 치부 수단으로 활용하여 부를 쌓는 등 보이지 않는 곳에서는 온갖 악행을 저지르면서도 겉으로는 목회자입네 우리 사회에서 존경과 신뢰를 받는 아이러니한 현실 앞에서 문익환 목사는 얼마나 한결같았던가.

 

"그는 자신의 마음을 글자가 아니라 발바닥으로 쓰고자 했으니, 세월이 흐르면서 숱한 존재들의 발자국이 덮어버리면 점점 지층 밑으로 사라져갈 것이었다. 그렇다고 살아 있는 사람들을 못 돌아다니게 할 수도 없는 일 아닌가. 그러나 그것이 문익환이 지상의 사람들에게 남긴 선물이었다. 그가 예수의 말 중에서도 가장 경외하는 말이 이것이었다. "나는 섬김을 받으러 온 것이 아니라 섬기러 왔노라." 문익환! 그의 민중 사랑은 이렇게 넓고 컸다. 넓고 컸던 사랑도 떠난 뒤에야 확인할 수 있었다. 그 헌신적 인간애와 지사적 풍모에 거듭 감복했던 사람들도 그가 말하는 민족의 위기에 대해서는 그것이 드러날 때까지 알지 못했다." (p.646)

 

돌이켜 생각해 보면 문익환 목사와 같은 선각자가 있었기에 평화를 향해 나아가고 있는 지금의 대한민국이 있지 않나 싶다. 평화주의자가 곧 빨갱이로 매도되던 시기에 지속적으로 평화를 주장하던 많은 희생자들이 있었다는 사실을 우리는 종종 잊고 지낸다. 나이가 들수록 한 인간이 걷게 되는 항거할 수 없는 운명이 존재한다는 걸 믿게 되는 것처럼 한반도에 항구적인 평화가 정착되는 날 그 하나의 목적을 향해 한결같이 달려왔던 수많은 희생자들이 있었음을 기억하게 될 것이다. 그날 우리는 문익환이라는 이름 석자를 제일 먼저 호명할런지도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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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다 보면 이따금 시계열의 연속선상에서 누군가 한 부분만 뚝 떼어 들어낸 듯 도통 기억이 나지 않는 공란의 삶이 있게 마련입니다. 밤꽃이 피고 지던 지난 보름여의 시간 동안 나는 그야말로 목숨만 겨우 유지한 채 죽은 듯 지냈었나 봅니다. 아무런 생각도 없이, 꼭 해야 할 일만 겨우 하면서. 마치 나는 내 삶이 아닌 누군가의 삶을 조용히 지켜보는 듯 그렇게 방관자의 삶을 살았던 것입니다. 한낮의 더위도 아침저녁으로 부는 선선한 바람에 슬몃 씻겨 사라지고 바람을 벗 삼아 저녁 산책에 나선 날이면 하루의 기억도 바람결에 무심히 흩어지곤 했습니다.

 

아픈 아내를 돌보며 크게 달라지지 않는 일상을 살아내는 동안 6.13 지방선거가 있었고, 2018 러시아 월드컵이 개막했고, 연분홍 자귀나무 꽃이 만개했습니다. 슬쩍 스치기만 해도 금세 초록물이 들 것 같은 한여름의 시간들이 지금도 무심히 흘러가고 있습니다. 뉴스에서는 오늘 김종필 전 국무총리가 향년 92세의 나이로 사망했다는 소식을 전하고 있습니다. 3김 시대로 통칭되던 민주화의 시기에 그도 어쩌면 자신의 지난 삶을 조금쯤 반성하며 살았을지도 모르겠습니다. 누구나 영욕의 삶을 살게 마련이니까요.

 

김형수가 쓴 <문익환 평전>을 읽고 있습니다. 손에 잡고 읽은 지 꽤나 오래되었는데 진도는 잘 나가지 않습니다. 멍하니 글자만 읽다가 처음 읽었던 부분으로 다시 되돌아가기를 여러 번, 온전히 책에 집중하지 못하는 건 날씨 탓인지도 모르겠습니다. 오늘도 햇살은 무척이나 따갑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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