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신의 삶이 기우뚱 균형을 잃은 듯한 느낌을 받을 때가 있습니다. 그러나 남들이 보기에는 심각하게 균형을 잃은 듯 보여도 정작 본인은 그렇게 느끼지 못하는 사람도 있습니다. 태어나는 순간부터 심각하게 기울어진 인생을, 가파른 경사를 한쪽 팔로 간신히 지탱한 채 겨우겨우 살고 있지만 기울어진 삶에 평생 동안 길들여진 까닭에 가파른 경사의 심각성을 미처 깨닫지 못하는 것이지요. 어쩌면 그들은 남들처럼 평탄한, 특별할 것 없는 '보통의 삶'으로 회귀했을 때, 이제야 비로소 삶의 균형을 찾았다는 안도감보다는 오히려 팍팍한 삶의 경사에서도 느끼지 못한 지독한 삶의 멀미를 하게 될지도 모르겠습니다.

 

죽는 날까지 지독한 삶의 경사를 겪으며 인생이라는 원판에 대롱대롱 매달린 채 살아냈던 사람들의 인생을 조용히 회고할 때가 있습니다. 그때마다 나는 그들은 어쩌면 자신의 삶이 균형을 잃었다는 사실을 미처 감지하지 못했을 수도 있겠구나, 하는 생각에 이르곤 합니다. 자기의 상태를 그대로 유지하려는 관성의 법칙을 따르는 것처럼 기울어진 경사에서 더 편안함을 느꼈거나, 숙명처럼 감수하며 받아들였던 게 아닌가 하고 말이죠. 타인과 나를 비교조차 하지 못한 채.

 

견딜 수 없이 심한 불안이 엄습할 때 자신을 지키기 위한 유일한 방법은 외부로부터의 새로운 정보를 차단하는 일이 아닐까 싶습니다. 타인의 삶과 자신의 삶을 비교하여 자신이 얼마나 가파르고 팍팍한 삶을 살아가고 있는지 확인한다고 한들 자신에게는 심한 자괴감과 열등감만 주어질 뿐 현실에서 자신의 삶은 무엇 하나 달라지는 게 없기 때문이지요. 자신의 삶이 기우뚱 균형을 잃었다고 느낀다는 건 그동안 자신의 삶이 평탄하게 유지되어 왔다는 것의 반증일지도 모르겠습니다. 미처 깨닫지는 못했지만 그만큼 행복한 삶을 살아왔다는 것이지요.

 

물론 반대의 경우도 있을 수 있습니다. 무엇 하나 부족한 것 없이 살아왔음은 물론 원하는 일은 얼마든지 할 수 있는 여건을 갖춘 삶이지요. 우리 주변에서 그런 사람이 몇이나 되겠어, 하겠지만 물론 그 수는 적다고 할지라도 충분히 예상 가능한 일일 테지요. 그러나 삶의 원판이 아래로 기운 사람과 극히 적은 수이기는 하지만 위로 기운 사람 중 삶의 변화에서 누가 더 취약할까요? 나는 아무래도 위로 기운 사람이 아닐까 추측하게 됩니다. 자신과 비슷한 사람이 많다는 건 그들로부터 보고 듣는 게 있을 수 있지만 그렇지 않은 경우 참고할 만한 사람이 없기 때문입니다.

 

무라카미 하루키의 소설집 <여자 없는 남자들> 중에는 극단적인 경향의 한 남자를 스토리의 전면에 내세워 독자들의 흥미를 자극하는 단편이 실려 있습니다. <독립기관>이라는 제목의 단편이 그것인데, 그 소설에 등장하는 '도카이'라는 인물은 특이하기 이를 데 없지요. 롯폰기에서 '도카이 미용 클리닉'을 운영하는 성형외과 의사인 그는 쉰두 살의 독신남입니다. 의사였던 아버지에게서 물려받은 클리닉은 경영이 매우 순조로워서 높은 수입을 올릴 수 있었고 좋은 환경에서 자란 까닭에 언행이 점잖고 교양도 있는 사람이지요. 고급 아파트에서 혼자 살지만 요리도 척척 해내고 집안일도 별문제 없이 해내는지라 부족함 없는 삶이었습니다. 다만 결혼해서 가정을 꾸리고픈 마음이 아예 없었던 그는 젊은 시절부터 결혼을 전제로 하는 여자는 처음부터 멀리했습니다. 그것 하나가 문제라면 문제였지요. 그가 여자친구로 선택하는 상대는 대개 유부녀이거나, 따로 '진짜' 연인이 있는 여자들로 한정되었습니다.

 

여자 문제로 트러블을 겪었던 적은 단 한 번도 없었던 그였지만 결국 그는 한 여자를 만나 사랑에 빠지고 맙니다. 고등학생 시절 이후로 처음 있는 일이었습니다. 그러나 그 여자는 단순한 만남만 이어가고자 할 뿐 가정을 깨고 싶지는 않다고 말합니다. 그녀는 아이가 하나 있는 가정주부였죠. 도카이로서는 그녀를 사랑하는 자신의 마음도, 가정을 깨기 싫다는 그녀의 마음도 어떻게 통제할 방법이 없었기에 모든 걸 내려놓고 무기력한 사람으로 변해갑니다. 급기야 그는 곡기마저 끊고 서서히 죽어갑니다.

 

"하지만 우리 인생을 저 높은 곳으로 끌어올리고, 나락으로 떨어뜨리고, 마음을 뒤흔들고, 아름다운 환상을 보여주고, 때로는 죽음에까지 몰아붙이는 그런 기관의 개입이 없다면 우리 인생은 분명 몹시 퉁명스러운 것이 될 것이다. 혹은 단순한 기교의 나열로 끝나버릴 것이다." (p.169 '독립기관' 중에서)

 

작가는 최근에 나온 그의 인터뷰집 <수리부엉이는 황혼에 날아오른다>에서 도카이라는 인물이 '죽음에 붙들려버린 사람'이라고 언급합니다.

 

"그 도카이라는 인물은 죽음 자체에 홀렸다고 할까, 죽음에 붙들려버린 사람이니까요. 도망치려야 도망칠 수 없는, 일종의 숙명이죠. 작가인 제게는 기정사실이었고. 도카이라는 인물은 지금껏 자신만의 시스템에 따라 매우 편하고 쾌적하고 즐겁게 살아오다가 어느 순간 갑자기 '죽음'에 뒷덜미를 잡혀버려요. 더는 벗어날 수 없게. 이제껏 쌓인 청구서가 날아온 건지, 혹은 숙명이었는지, 인간의 업 같은 것인지, 그저 운이 나빴는지는 저도 모릅니다. 어쨌거나 죽음이 덜미를 잡고 놔주지 않는다. 다른 수가 없죠. 그런 것에는 리얼리즘이고 뭐고 없거든요. 한번 붙들리면 끝장이니까." ('수리부엉이는 황혼에 날아오른다' 중에서)

 

'명랑하고 건강하고 미식가에 멋쟁이였던' 도카이가 하루아침에 무너져버린 까닭은 무엇일까요? 어쩌면 그는 자신의 모습을 반추할 만한 주변 사례를 찾지 못했을 수도 있습니다. 앞에서도 언급했지만 삶의 원판이 위로 기울어진 사람은 그 사례가 매우 드물기 때문입니다. 모든 것을 자신의 시스템과 통제 하에 두던 사람이 어느 날 갑자기 자신의 시스템으로도 어찌할 수 없는 막다른 절벽을 만났을 때 그는 아마도 손을 쓸 수조차 없었을 것입니다. 물론 작가는 그런 의외성, '그런 기관의 개입이 없다면 우리 인생은 몹시 퉁명스러운 것이 될 것'이라고 말합니다. 누군가에게는 최악의 결과로 작용할지라도 우리도 모르는 어떤 '기관이 개입'하는 듯한 돌발적인 상황을 맞는 것이 삶을 살아가는 또 다른 재미일지도 모르겠습니다. 당신도 가끔은 삶이 기우뚱 균형을 잃은 듯한 느낌을 받을 때가 있겠지요? 저도 그렇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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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크맨
C. J. 튜더 지음, 이은선 옮김 / 다산책방 / 2018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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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이는 게 전부는 아니다. 어떤 순간에도 그것만은 진실에 가깝지 않을까. 이를테면 청소년기에 저질렀던 우연한 범죄와 그것에서 잉태된 수많은 이차범죄는 모두 자신의 범행을 숨기고자 했던 본능적 동기에 직간접적으로 연결되게 마련이다. 그것은 어쩌면 자신과 관계를 맺고 있는 수많은 사람들에게 자신의 이미지를 나쁘게 각인시키고 싶지 않은 인간의 원초적 본능과 맞닿아 있을지도 모른다. 인생의 절반도 살지 않은 이른 나이에 별 뜻도 없이 저지른 범죄로 인해 평생 동안 범죄자라는 오명과 주변 사람들의 손가락질을 받으며 살아가야 한다면 무슨 수를 써서라도 자신의 죄를 감추고 싶지 않겠는가. 그런 까닭에 죄는 또 다른 죄를 낳고 거짓과 위선은 타인의 시선으로부터 자신을 지키려 했던 작은 몸짓에서 잉태되었을 것이다. 더구나 옆집 숟가락이 몇 개인지까지 다 알고 지내는 아주 작은 마을이라면 자신의 범죄를 숨기는 일이 다른 무엇보다도 중요한 일이 될 터였다. 그것은 어쩌면 자신의 남은 인생과도 직결되는 문제일 테니까 말이다.

 

"관건은 그거야, 에디. 찬송가를 부르거나 가공의 신에게 기도를 드리는 사람이 착한 사람이 아니라는 거. 십자가를 걸고 다니거나 일요일마다 교회에 가는 사람이 착한 사람이 아니라는 거. 남을 대하는 태도가 중요한 거지. 착한 사람은 종교가 필요 없어. 자기가 옳은 일을 하고 있다는 자기만족감이 있거든." (p.230)

 

영국의 신예 작가 C.J. 튜더는 그녀의 데뷔작 <초크맨>을 통하여 평화로운 작은 마을 앤더베리로 독자들을 안내한다. 그곳에 사는 다섯 명의 열두 살 또래 친구들은 1986년 어느 날 숲 속에서 끔찍한 사건 현장을 목격한다. 낙엽 더미에 숨겨진 여자의 시신. 마을 축제에서 춤을 추던 댄싱걸 일라이저의 시신이었다. 소설의 주인공이자 화자인 에디는 또래 친구들 중 한 명이다. 학교에 새로 부임하게 된 핼로런 씨와 에디는 축제 현장에서 큰 부상을 입은 일라이저를 함께 구조하면서 이야기는 시작된다. 죽은 일라이저와의 조우는 그렇게 시작되었다.

 

"죽음은 우리 같은 어린 아이나 우리 주변이 아니라 다른 데서 벌어지는 일이었다. 죽음은 추상적이고 먼 일이었다. 나는 아마 션 쿠퍼의 장례식을 통해 서늘하고 시큼한 입김 바로 그 너머에 사신이 도사리고 있다는 사실을 처음으로 깨달았을 것이다. 자신의 존재를 느끼지 못하게 하는 것이 그의 가장 놀라운 전략이다. 그의 차갑고 어두컴컴한 소매 속에는 전략이 많이 숨겨져 있다." (p.164)

 

또래 친구들의 면면은 이러했다. 바를 운영하는 부모님 덕분에 풍족한 생활을 하는 뚱뚱보 개브, 불량배 형을 둔 메탈 미키(교정기를 끼고 있어서), 청소 일을 해주며 생계를 이어가는 어머니와 단 둘이 사는 호포, 마을 교회의 목사인 마틴 씨의 딸인 니키(또래 중 유일한 여자였다), 그리고 의사인 엄마와 작가인 아빠를 둔 에디. 핼로런 씨가 부임하면서 아이들은 선물로 받은 분필로 그림을 그리기 시작한다. 각자 자신만의 색을 정하고 약속한 막대 그림을 통하여 비밀 메시지를 전달하곤 했다. '놀이터로 와' 또는 '숲 속으로' 등과 같은 그들만의 메시지를.

 

"나뭇잎들이 오그라들고 쭈글쭈글해지다 결국에는 힘없이 나무를 잡고 있던 손을 놓았다. 시들시들하게 죽어가는 분위기가 모든 것에 스며들었다. 이제는 그 어떤 것도 신선하거나 다채롭거나 순수하게 느껴지지 않았다. 온 마을이 자기만의 부연 타임캡슐 안에 갇혀서 잠시 유예됐다." (p.255)

 

숲에서 미키의 형인 션 쿠퍼의 패거리들과 우연히 마주쳤던 에디와 그의 일당들은 서로에게 상처를 입히게 되고 그 후 에디는 션을 피해 다니다가 결국에는 붙잡혀 곤욕을 치른다. 그 장면을 목격한 핼로런 선생님의 도움으로 션 패거리들의 손아귀에서 벗어난 에디는 자신의 몰골을 보고 걱정하실 부모님을 생각해서 핼로런 선생님의 집에서 샤워를 하고 가기로 한다. 에디는 일라이저를 그린 핼로런 선생님의 그림을 우연히 보게 된다. 서른이 넘은 독신남과 십대 후반의 일라이저는 어울리지 않는 듯했다.

 

션 쿠퍼는 자신이 애지중지하던 자전거가 물속에 있는 것을 보고 건지러 들어갔다가 물에 빠져 익사한다. 션이 사고를 당한 지점에서도 누군가가 그린 분필 그림이 있었다. 형을 사고로 잃은 미키는 형의 패거리들과 어울리며 또래 친구들로부터 멀어진다. 에디의 엄마는 그들이 사는 앤더베리에 병원을 개원하려 한다. 그러나 낙태를 반대하는 마틴 목사를 중심으로 마을 사람들의 극렬한 반대에 부딪힌다. 일라이저의 친구도 그중 한 명이었다. 어느 날 마틴 목사는 교회에서 누군가로부터 심한 폭행을 받고 쓰러진다. 교회에는 초크맨 그림이 가득했다. 니키는 마틴 목사와 이혼한 엄마의 집으로 이사한다. 그러던 어느 날 초크맨 그림을 따라 숲 속으로 갔던 아이들은 숲 속에서 일라이저의 토막 난 시신을 발견한다.

 

"그웬은 의자에 제대로 앉아서 텔레비전을 들여다본다. 그렇게 그녀의 세상 속으로 아니면 제삼의 세상 속으로 길을 잃는다. 현실과 현실 사이의 그 얇은 막 속으로. 어쩌면 이성이 길을 잃는 게 아닐지도 모른다. 그 사이로 미끄러져 들어가 다른 공간을 거니는 것일지도 모른다." (p.264)

 

그로부터 30년이 지난 2016년, 에디는 학교 선생님이 되었고, 교통사고로 불구가 된 개브는 부모님의 바를 물려받았고, 호포는 치매를 앓는 그의 어머니를 모시고 살고 있다. 또래 친구들 다섯 명 중 마을에는 이제 그들 세 명만 남았다. 그들에게 전해진 초크맨 그림과 분필. 일라이저의 죽음을 소재로 책을 쓰고 싶다던 미키가 에디의 집을 방문했던 그날 술에 취해 돌아가던 중 물에 빠져 숨을 거두게 되는데... 소설은 그렇게 마지막을 향해 달려간다.

 

작가는 2016년과 1986년을 오가는 방식으로 이야기를 풀어간다. 사춘기 시절을 함께 보냈던 또래 친구들의 유대와 그럼에도 어린 시절에는 차마 밝히지 못했던 그들 개개인의 비밀들, 그리고 어른들의 위선과 폭력이 조금씩 드러난다. 작가는 유려한 필체와 세밀한 묘사를 통해 장르 소설로서의 한계를 극복해나가고 있다. 데뷔작이라고는 전혀 믿기지 않는 탁월한 구성과 빼어난 글솜씨에 그저 감탄하게 된다. 보이는 게 전부는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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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분을 만지다
김은주 지음, 에밀리 블링코 사진 / 엔트리(메가스터디북스) / 2018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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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시답잖은 이야기를 책으로 내는 사람들은 대개 꼭 필요한 말보다는 필요하지 않은 말이 더 많은 부분을 차지하게 된다. 우리네 인생도 이와 크게 다르지 않다. 살아가는 데 꼭 필요한 일보다는 그닥 필요하지도 않은 일에 많은 시간을 할애하는 게 보통이니까 말이다. 그래서인지 읽어서 크게 도움도 되지 않을 듯한 그런 책이 많은 사람들로부터 지지를 받고 판매도 더 잘 되는 경우를 심심찮게 목격하게 된다. 책을 펼쳐 읽는 순간 '아, 작가라는 사람도 우리네 보통 사람들과 크게 다르지 않구나.' 하는 생각이 드는 것과 동시에 책을 읽고 있는 자신도 남들과 비교해서 크게 빠지지 않는다고 자평하거나 저으기 안심하게 되는 까닭인지도 모른다.

 

『1cm』시리즈로 유명한 김은주 작가의 신작 <기분을 만지다>를 읽으면서 문득 들었던 생각이다. 작가는 시시각각 달라지는 자신의 기분을 마치 모노드라마를 연기하는 배우처럼 실감 나게 보여준다. 그러자면 그때그때의 기분을 아주 세심하게 살펴야 한다. 기분이란 게 있으란다고 있고 사라지란다고 사라지는 게 아니기 때문이다. 언제 어떤 순간에 사라질지 알 수 없는 까닭에 오는 줄도 모른 채 흘려보내는 행운처럼 이때다 싶으면 주의를 집중하여 살펴보아야 하는 것이다.

 

"손가락에 상처가 나면 손을 움직일 때마다 아픔이 전해 온다. 그제야 손을 움직이는 순간이 이렇게 많았구나, 깨닫게 된다. 사랑에 상처가 나면 그냥 걷기만 하는데도 아픔이 느껴진다. 그제야 숨 쉬는 모든 순간 넌 나와 함께였구나, 깨닫게 된다." (p.168)

 

유명한 포토그래퍼 에밀리 블링코의 사진을 함께 실어 완성도를 더한 이 책은 사소할지도 모르는, 그래서 더욱 빠르게 사라질 수도 있는 소소한 일상의 기분들을 소중히 하는 게 결국 우리의 삶을 더 나은 곳으로 인도한다고 말해준다. 치열한 생존 경쟁으로 인한 스트레스와 시시때때로 마주하게 되는 부당한 대우, 사람과 사람 사이의 관계에서 오는 상처 등 우리가 살아가는 이 세상은 평화를 갈구하기에는 결코 적합하지 않은 곳이지만 그곳을 딛고 평생을 살아가야 하는 우리는 수시로 스스로를 위로하고 다독여야 하지 않을까. 그럼에도 우리는 타인의 기분을 살피는 데에는 익숙하면서도 정작 자신의 기분은 살뜰히 보살피지 못하는 게 아닌가.

 

"15분의 기분을 위해 커피 한 잔을, 2시간의 기분을 위해 영화 한 편을, 한 계절의 기분을 위해 옷 한 벌을, 그리고 매일의 기분을 위해 책 한 권을. 사소한 절망, 잊히지 않는 후회, 관계로 인한 상처, 문득 마주친 우울로부터 매일의 기분을 구하는, 완벽하진 않아도 여전히 좋은 하루를 만드는, 가장 간단하고도 섬세한 방법-. 당신에게 말을 거는 한 권의 책을 찾아 한 페이지 한 페이지 즐겨볼 것. 그것이 결국 기분 좋은 매일을 만들고 기분 좋은 매일은 결국 더 나은 삶, 무엇보다 마음에 드는 나 자신을 만든다." (p.6~p.7)

 

이 책에서 작가가 제안하는 방식은 다음과 같다. 나의 기분이 가리키는 곳에 마음의 답이 있음을 가만가만 들어보고(Listen), 내 기분의 열쇠를 타인의 손에 맡기지 않기를 바라지만 그 손은 의외로 따뜻할 수도 있다는 사실을 껴안으며(Hug), 잠시 흐려도 맑은 날이 될 수 있기에 지금 이 순간을 극복하고(Overcome), 설레는 기분과 편안한 기분 사이의 그 공간을 사랑하며(Love), 세상으로부터 살아있는 기분을 얻을 수 있는 지혜를 배우고(Learn), 단단한 기분이 더 빛나는(Shine) 나를 만들 수 있다는 것.

 

"인생에는 다양하고도 완전무결한 순간이 있다. 친구에게 쓸 크리스마스카드를 고르는 순간, 어린 아들의 웃는 얼굴을 바라보는 순간, 입술과 입술이 만나는 순간, 생일 케이크 위 촛불을 끄는 순간, 자신이 영화배우라면 여우주연상 수상 소감을 말하는 순간, 자신이 초상화 화가라면 마지막 눈동자를 완성하는 순간, 좋아하는 뮤지컬 공연의 클라이맥스에 빠져 있는 순간, 좋아하는 전복 요리를 입에 가져가는 순간, 프러포즈를 하는 순간, 프러포즈를 받는 순간, 산의 정상에서 야호! 하고 외치는 순간, 먼지 같은 잡념이나 안개 같은 걱정이 새어 들어올 틈 없이 완전무결한, 오직 그 순간에 집중할 수 있는 순간. 인생에 그러한 순간들이 많아질수록 완전무결한 인생에 가까워진다." (p217)

 

내가 좋아하는 책 안셀름 그륀 신부님의 <자기 자신 잘 대하기>에는 이런 구절이 있다. '우리가 자신을 자비롭게 대하고 자신의 어두움과 화해를 할 때에만 다른 사람에게 자비로울 수 있다. 자기 영혼의 나락을 들여다본 사람만이 존경심을 갖고 선입견 없이 다른 사람을 만날 수 있다.' 내 기분을 안다는 것은 자신의 영혼을 들여다보는 것과 크게 다르지 않다. 시답잖은 말이 누군가에게 더 큰 위로가 되는 것처럼 시답잖은 하루가 인생의 가장 빛나는 순간이 될지도 모른다. 다음 주 화요일이 입추라는데 볕은 여전히 뜨겁고 시답잖은 한낮에 시답잖은 글을 이리도 길게 써내려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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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 날 아침 잠에서 깨었을 때 어제와는 확연히 다른, 감쪽같이 달라진 풍경을 마주할 수 있으면 얼마나 좋을까 생각할 때가 있습니다. 예컨대 아픈 아내가 예전처럼 따뜻한 아침 식사를 차려놓고 나를 깨운다거나 요즘처럼 연일 계속되는 기록적인 폭염이 언제 그랬냐는 듯 말끔히 사라지고 문틈으로 선선한 바람이 불어오는 그런 상상을 하는 것이지요. 그러나 간절함은 매번 상상 속에서만 그치고 팍팍한 현실은 한동안 길게 이어지곤 하지만 이따금 그렇게 상상의 세계로 피난을 떠났다가 돌아올라치면 그것만으로도 사라졌던 삶의 의지가 불현듯 되살아나는 듯 느껴집니다.

 

인간이 갖고 있는 상상의 능력이란 얼마나 대단한 것인지요. 우리가 소설을 읽는 이유도 그런 게 아닐까 싶습니다. 현실을 피해 잠시 다른 세상에서 거닐다 오는 것. 그렇게 걷다 보면 힘겨워하는 자신의 모습이 눈에 띄고, 그런 모습이 안쓰럽고, 무언가 위로의 말을 건네며 스스로를 격려하고 싶고, 소설 속의 어느 구절, 그다지 특별하지도 않은 한 문장에서 위안을 얻고 다시 용기를 내게 되는 것이지요.

 

그러나 사람들은 종종 위로가 필요한 시기에도 자신을 독려하고 채찍질하려 듭니다. 자기계발서가 잘 팔리는 이유도 아마 그런 까닭이 아니겠나 싶습니다. 다 그런 건 아니지만 우리가 말하는 자기계발서는 인생의 중요한 가르침을 요약하여 기록한 것에 불과합니다. 벼락치기를 하는 수험생이 시험에서 기본 점수라도 받기 위해 필요한 것이 요약문인 것처럼 인생에서 큰 깨달음이나 번듯한 성공을 기대하는 사람들은 결코 자기계발서와 같은 요약문을 읽지는 않겠지요. 비록 시간은 많이 걸릴지라도 직접적인 체험이나 고전문학을 독파함으로써 하나씩 하나씩 체계적으로 터득하여 가는 길을 선택할 듯합니다.

 

저의 경험으로는 짧은 시간을 들여 고득점을 얻고자 하는 학생들은 오히려 조급함만 키우게 되고 고득점은커녕 평균 점수에도 못 미치는 성적을 받는 경우가  대부분이었지요. 어떤 일이든 속성으로 성취할 수 있는 방법, 말하자면 편법에 익숙했던 학생들은 자신의 인생에서도 속성으로 이룰 수 있는 편법을 찾는 듯합니다. 인생은 속성과 편법이 통하지 않는 실질적인 장(場)인 셈이죠.  그러므로 더디더라도 하나하나 꼼꼼하게 배울 수 있는 느림의 미학을 배우는 것이 최선일 듯합니다. 이 더위를 이길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이 인내와 기다림인 것처럼 말이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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깊이에의 강요
파트리크 쥐스킨트 지음, 김인순 옮김 / 열린책들 / 2002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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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판절판


우리 사회는 어쩌면 다른 누군가를 낙인찍는 일에 아주 익숙할지도 모르겠습니다. 아무런 죄의식도 없이 말이지요. 국민성이 나쁘거나 교육이 잘못되어서 그렇게 되었다고는 생각하지 않습니다. 그보다는 오히려 그런 문화에 오래도록 익숙했던 까닭이 아닐까 싶습니다. 이를테면 이런 것이지요. 약자나 소외된 사람을 돕는 사람은 무조건 빨갱이라거나 종북으로 낙인을 찍고, 자신의 잘못을 순순히 인정하는 사람 또한 바보 천치로 인정받기 십상인지라 한 번 그렇게 낙인이 찍히면 그 주변 사람들 역시 그 사람으로 인해 자신들도 덩달아 피해를 입을까 봐 그 사람을 멀리하곤 하는 식이었습니다. 이런 문화로 인해 잘못을 저지르고도 쉽게 인정하기는커녕 되레 큰소리를 치거나 약자를 경멸하고 더욱더 따돌리려 했던 것이지요.

 

한 분야의 전문가라고 하는 사람들 역시 다르지 않았습니다. 자신의 이익을 위해서는 언제든 다수의 편에 설 준비가 되어있었지요. 파트리크 쥐스킨트의 소설 <깊이에의 강요>를 읽은 사람이라면 누구나 전문가 그룹의 '낙인찍기'에 대한 생각을 하지 않을 수 없을 듯합니다. 소위 지식인이라고 하는 사람들의 적나라한 민낯이 만천하에 드러나는 것이지요.

 

"소묘를 뛰어나게 잘 그리는 슈투트가르트 출신의 젊은 여인이 초대 전시회에서 어느 평론가에게 이런 말을 들었다. 그는 악의적인 의도는 없었고, 그녀를 북돋아 줄 생각이었다.「당신 작품은 재능이 있고 마음에 와 닿습니다. 그러나 당신에게는 아직 깊이가 부족합니다.」평론가의 말을 이해할 수 없었던 젊은 여인은 그의 논평을 곧 잊어버렸다. 그러나 이틀 후 바로 그 평론가의 비평이 신문에 실렸다." (p.11)

 

그 젊은 여인은 어찌 되었을까요? 안타깝게도 비극적인 결말을 맺습니다. 아름답고 재능이 있던 젊은 여인은 깊이가 없다는 세간의 혹평으로 인해 스스로의 삶을 마감했던 것이지요. '좀머 씨 이야기'와 '향수'를 통해 우리에게도 잘 알려진 작가 파트리크 쥐스킨트가 바라보는 세상은 결코 관대하지 않습니다. 관대하기는커녕 냉정하고 몰강스러운 곳이죠. 약자나 소수자에게는 더더욱 살기 어려운 곳일 뿐이라는 사실을 작가는 냉정하게 드러냅니다.

 

소위 전문가라는 사람들의 평은 항상 그런 식입니다. 조목조목 구체적으로 지적하거나 칭찬하는 대신 추상적인 단어를 사용하여 두루뭉술하게 넘어가는 경우가 대부분입니다. 그래야 나중에 빠져나갈 구멍이 생기는 법이지요. 작품에서 '깊이가 없다'는 평론가의 평은 그야말로 흔하디 흔한 평이 아닐까 싶습니다. 그러나 깊이가 무엇이냐는 질문이나 깊이가 있다 없다를 어떤 기준으로 가름할 수 있느냐고 질문한다면 평론가 자신도 쉽게 대답할 수 없을 듯합니다. 그러나 평론가의 평이 그 한 사람에서 그치지 않는다는 데 문제점이 있습니다. 평론가의 평은 아무런 비평이나 근거도 없이 언론을 통해 세상에 전파된다는 사실입니다. 그렇게 전파된 평은 일반인에 의해 아주 쉽게 인용될 테고 말이지요.

 

'그래 맞아, 나는 깊이가 없어'라고 생각하게 된 젊은 여인은 외출도 하지 않고 방문도 거부한 채 알코올과 약물 남용에 빠지고 맙니다. 어느 날 텔레비전 방송탑으로 올라간 여인은 139미터 아래로 뛰어내림으로써 생을 마감합니다. 젊은 여인의 그림에 대해 평했던 평론가는 젊은 여인이 그렇게 끔찍하게 삶을 마감한 것에 대해 당혹감을 표현하는 단평을 문예란에 기고합니다.

 

"사명감을 위해 고집스럽게 조합하는 기교에서, 이리저리 비틀고 집요하게 파고듦과 동시에 지극히 감정적인, 분명 헛될 수밖에 없는 자기 자신에 대한 피조물의 반항을 읽을 수 있지 않은가? 숙명적인, 아니 무자비하다고 말하고 싶은 그 깊이에의 강요를." (p.17)

 

이와 같은 낙인찍기는 우리 주변에서도 흔히 접할 수 있는 일이지요. 이명박 정권 시절의 환경부 장관이었던 이만의 씨는 "역사적 소명의식의 바탕에서 4대강 사업을 반드시 해야겠다는 신념으로 말씀드린다. 나중에 4대강 정비 사업이 잘못되면 책임을 지겠다."고 했습니다만 지금까지 그가 책임을 진 것은 아무것도 없으며 그 당시 4대강 사업을 반대했던 수많은 사람들을 배척하고 여러 단어로 낙인찍었던 사실에 대해서도 사과 한마디 하지 않았습니다. 좌파, 빨갱이, 용공... 저속한 언어로 상대방을 비난하고 언론을 통해 낙인을 찍어왔던 정치인이 어디 그뿐이겠습니까. 자신의 영달을 위해 전문가 입네 떠드는 이들이 우리 주변에는 너무도 많습니다. 고 노회찬 의원의 죽음에 대해서도 자살을 미화한다는 둥 온갖 잡설을 내뱉는 잊혀진 인물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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