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세먼지로 인한 일상의 변화는 갈수록 커지는 것만 같다. 하루에도 몇 번씩 대기 상황을 체크하기도 하고 날씨예보와 함께 미세먼지 예보도 동시에 확인하게 된다. 과거 비디오 영화를 볼 때마다 어김없이 나오던 건전비디오 캠페인이 생각난다. 동영상에서는 호환 마마보다 무서운 것이 불법 비디오임을 강조했었다. 그러나 요즘에는 호환 마마보다 무서운 게 미세먼지가 아닐까 싶다.

 

오늘 아침에는 미세먼지가 어찌나 심하던지 매일 하던 아침 운동도 거를 수밖에 없었다. 얇은 마스크 한 장으로는 감당이 되지 않을 것 같아서 말이다. 하루 종일 뿌연 하늘을 본다는 게 영 답답하기만 했다. 미세먼지가 체내에 쌓이는 건 물론 뇌에까지 영향을 준다는 과학적 연구 결과가 있는 걸 보면 정신질환자가 늘어나는 것도 미세먼지와 전혀 관련이 없어 보이지는 않는다. 이쯤 되고 보면 미세먼지 대책을 경제 논리로 바라볼 시점은 지난 듯하다. 억만금의 돈이 들지라도 사람이 살고 봐야 하니 말이다. 경유차에는 환경개선 부담금을 크게 지우고 대기오염물질을 배출하는 공장은 과태료를 대폭 올려야 하지 않을까.

 

오죽하면 많은 사람들이 기온이 남극만큼 떨어지더라도 미세먼지나 없었으면 좋겠다고 할까. 중국발 황사나 미세먼지도 무시할 수 없는 건 잘 알지만 국내 요인부터 제거하는 게 우선 아닐까. 미세먼지가 심한 날은 괜스레 화가 나고 우울하기만 하다. 이러다 대한민국 국민 전체가 화병에 걸리는 건 아닐까 몰라. 아침보다 나아지긴 했으나 하늘은 여전히 뿌옇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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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 그릇 (50만 부 기념 에디션) - 비울수록 사람을 더 채우는
김윤나 지음 / 오아시스 / 2017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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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은 종영이 되어 볼 수 없지만 KBS의 주말 간판 프로그램 개그콘서트의 인기 코너였던 '아무 말 대잔치'를 종종 챙겨 보곤 했었다. 두 명의 사회자를 비롯한 여러 명의 출연자들이 상황에도 맞지 않는 말들을 마구 쏟아내는 것인데 이게 은근히 중독성이 있어서 한 번 빠져들면 그 매력에 흠뻑 취하게 되는 것이다. 개그콘서트의 애시청자들이라면 잘 알겠지만 그 코너는 논리도 없고, 의미도 없는 말들이 무대 위에서 난무하고, 현장을 지켜보는 방청객이나 시청자들은 코너가 진행되는 짧은 시간 동안 그들이 내뱉는 황당한 말의 향연에 그저 킥킥대다가 코너가 막을 내리곤 했다. 그렇게 한 주 두 주 시청 횟수가 늘다 보니 문득 그런 생각이 들었다. 남들을 웃겨야 하는 개그맨들이야 과장된 몸짓과 상황에 맞지도 않는 말들을 마구 쏟아낸다는 게 어떤 목적과 의도가 있는 행동이라고 하겠지만 나를 비롯한 일반인들이 일상에서 빈번하게 쏟아내는 의미 없는 말들은 도대체 뭔가 하는 생각.

 

코칭 심리 전문가 김윤나의 <말 그릇>을 읽는 사람들은 어쩌면 나처럼 '아무 말 대잔치'를 떠올릴지도 모르겠다. 우리는 일상에서 코미디보다 더 코미디 같은 상황을 수시로 경험하기 때문이다. 그렇게 된 까닭은 도대체 무엇인가. 대화에서 상대방에 대한 공감은 존재하지 않고 자신이 하고픈 말만 일방적으로 내뱉다가 성에 차지 않으면 돌아서서 씩씩대거나 있지도 않은 험담을 늘어놓게 되는 코미디와 같은 상황. 이런 관계가 싫어 숫제 만남 자체를 꺼리거나 온라인에서의 관계만 허락하는 작금의 현실. 저자는 이러한 현상이 벌어지는 근본적인 원인이 '말 그릇'이 작기 때문이라고 지적한다.

 

"말은 한 사람의 인격이자 됨됨이라고 한다. 말을 들으면 그 말이 탄생한 곳, 말이 살아온 역사, 말의 나이를 짐작할 수 있다. 말은 한 사람이 가꾸어 온 내면의 깊이를 드러내기 때문에 말 그릇을 키우기 위해서는 내면이 성장해야 한다." (p.31)

 

누구의 말은 듣는 이의 가슴에 오래도록 남아 그 사람의 성장에 자양분이 되고, 어떤 이의 말은 분노만 유발하여 끝내 관계마저 위태롭게 하는 이와 같은 차이는 단순한 말 한마디의 차이가 아니라는 게 저자의 지적이다. 우리가 대화에 서툰 이유를 저자는 세 가지 측면에서 바라보고 있다. 감정, 공식, 습관이 그것이다. 우리는 대개 어려서부터 자신의 감정을 억제하도록 훈련을 받는다. 아이의 감정을 이해하고 살뜰히 보듬어주는 부모는 많지 않다. 그러므로 우리는 자신의 감정에 서툴 수밖에 없고 대화에 앞서 자신의 진짜 감정이 무엇인지 파악도 못한 채 화부터 내게 된다. 뿐만 아니라 체험된 경험을 통해 행동 양식을 공식화하기도 하고, 자주 듣고 보고 배운 말이 기억 속에 저장되어 자신의 말 습관이 만들어지기도 한다. 우리는 자신도 모르게 체화된 '말 그릇'을 품고 평생을 살아가는 것이다.

 

저자가 독자에게 전달하려는 핵심은 우리가 가진 '말 그릇'을 어떻게 하면 키울 수 있을까에 대한 대답이다. 저자는 그 대답으로 '경청'과 '질문하기'를 제안한다. 상대방의 말을 단순히 참고 들어주는 것에서 그치지 않고 상대방의 마음에 관심을 두면서 진심을 다해 듣는 것이다. 이에 더하여 상대방을 마음을 열 수 있는 적절한 질문을 할 수 있다면 우리의 '말 그릇'은 한층 깊어질 수 있다는 것이다.

 

"말 그릇을 다듬는다는 것은 결국 자신의 내면을 돌아보는 것과 같다. 살면서 반드시 후배들의 존경을 받아야 한다거나, 완벽한 부모가 되어야 한다거나, 대단한 업적을 쌓아야 하는 것은 아니지만 자신의 말 그릇을 매만지고 보듬는 일만큼은 소홀히 해서는 안 된다. 자신의 마음과 생각과 움직임을 의식하고, 살피고, 책임을 지는 일이 곧 나 자신을 돌보는 일이기 때문이다." (p.304)

 

우리는 관계를 통해 성장하고 관계를 통해 세상과 소통한다. 그것을 가능하게 하는 수단이 곧 '말'이다. 말을 잘 못한다거나 말 때문에 관계가 어그러졌던 경험이 있다고 해서 관계를 끊고 세상으로부터 등을 돌릴 수는 없는 법이다. 그보다는 우리의 '말 그릇'을 키워 세상 사람들과 원만한 관계를 형성하고 행복한 삶을 영위하는 게 자신을 위해서도, 사회 전체를 위해서도 유익한 일이 아닐까. 오늘도 나는 세 살배기 어린아이처럼 말을 배우고 있는 것인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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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들은 오늘 시험공부를 하겠다며 도서관으로 갔다. 중학교에서의 마지막 시험인 3학년 2학기 기말고사가 다음 주에 있다. 기온이 오르자 미세먼지의 수치가 높아졌는지 목이 칼칼하다. 건강을 위해서 마스크를 써야 하지만 습관이 안 된 탓인지 웬만해선 쓰지 않게 된다. 답답한 느낌이 드는 것이다.

 

학교나 학원에서 내준 숙제를 하는 아들을 지켜볼 때가 있다. 고지식하기 짝이 없는 아들은 도통 요령을 부릴 줄 모른다. 내가 보기에 그냥 설렁설렁해도 될 만한 숙제도 열과 성을 다하는 까닭에 남들보다 시간은 배나 들고, 그 여파로 육체적 피곤을 고스란히 떠안게 된다. 얼마 전에도 사회 과목 수행평가를 한답시고 주말을 포함한 며칠을 UCC 촬영 및 편집에 매달리는 걸 보고, '같은 조원들은 뭐하는데 너만 혼자 촬영과 편집을 도맡아 하느냐?'고 물었더니 친구들은 영상 편집을 할 줄 몰라서 자기가 할 수밖에 없다는 대답이 돌아왔다. 속에서는 부아가 치밀었지만 아들에게 화를 낼 수는 없었다.

 

고양이 목에 방울 달기처럼 누구도 선뜻 나서기 어려운 순간이 있다. 학교에서 내준 조별 과제의 어려운 부분을 떠맡는다는 게 어디 유쾌한 일이기만 했을까. 아들은 UCC가 아닌 조별 발표에 있어서도 자료 탐구며 파워포인트 작성에 이르기까지 발표에 필요한 전반적인 사항을 도맡아 하는 경우가 비일비재하다. 그러니 지켜보는 나로서는 속이 터질 수밖에. 이제 수행평가는 모두 끝났고 지필고사만 보면 된다. 시험을 치르고 나면 여행도 하면서 좀 여유 있는 시간을 보냈으면 좋으련만 우리나라 사정이 어디 그런가. 고등학교 과정을 선행학습하지 않으면 큰일이라도 날 듯 호들갑을 떠니 말이다. 더구나 금년에 치러진 불수능의 여파로 학원가는 연일 문전성시를 이루고 있으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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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악몽 일러스트와 함께 읽는 세계명작
기 드 모파상 지음, 송의경 옮김, 토뇨 베나비데스 그림 / 문학동네 / 2013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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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 드 모파상의 단편은 때로 에세이나 수기처럼 읽힌다. 전형적인 소설의 구성을 따르지 않는다는 점에서 그렇고 여러 번 읽어보아도 특별한 사건이 눈에 띄지 않기 때문에도 그렇다. 게다가 기 드 모파상의 화려하고 감각적인 문장 구사력에 현혹되어 굳이 장르를 구분해야 할 필요성을 찾지 못하는 것도 한 이유가 될지 모른다. 작품 활동을 했던 십 년 남짓의 길지 않은 시간 동안 100여 편의 시평과 6편의 장편소설, 300편 이상의 단편소설을 썼던 그였지만 기 드 모파상의 삶은 순탄치 않았다. 유전적 요인에 의한 신경증, 심장질환, 매독, 간질환, 소화기 장애, 장출혈, 만성 두통, 류머티즘과 안질환에 시달리다가 결국에는 실명 상태에서 정신병으로 사망했으니 그런 상태에서 후세에 남길 만한 수작들을 쏟아냈다는 게 놀라울 따름이다. <밤:악몽>을 발표할 무렵 그는 인간 정신을 지배하는 광기와 환각을 집요하게 탐구했던 시기라고 한다. 소설을 읽는 독자는 작품 전체를 관통하는 그런 의식의 흐름을 자연스레 느끼게 된다.

 

"하지만 뉘엿뉘엿 해가 지면 막연한 기쁨이 밀려들어 온몸으로 퍼져나간다. 나는 깨어나고 활기를 되찾는다. 어둠이 확산될수록 전혀 다른 사람, 더 젊고 더 기운차고 더 날렵하고 더 행복한 사람으로 변하는 듯한 느낌이 든다. 나는 하늘에서 내려온 거대하고 감미로운 어둠을 바라본다. 차츰 짙어가는 어둠이 손으로 잡을 수도, 헤치고 들어갈 수도 없는 파도처럼 도시를 집어삼킨다. 색깔과 형태를 감추거나 지우고 파괴한다. 집과 사람과 건물들을 보이지 않는 손길로 감싸안는다. 그러면 나는 부엉이처럼 기쁨에 들떠 울부짖으며 고양이처럼 지붕 위를 달려가고 싶어진다. 내 혈관 속에서 억누를 수 없는 맹렬한 사랑의 욕망이 점화된다." (p.9)

 

소설에서 화자인 '나'는 그날도 가스등과 별빛이 가득한 파리의 대로변을 거닐며 북적북적한 카페를 관찰하고, 샹들리에 불빛이 휘황찬란한 극장도 들어가보고, 개선문 앞에 서서 밤하늘을 바라보며 몽상에 잠기기도 한다. 걷고 싶은 욕구에 부추겨진 나는 바스티유까지 걷게 되고, 문득 이토록 캄캄한 밤을 본 적이 없었다는 사실을 알아차린다. 가스등이 꺼진 어둠 속에서 '나'는 공포감에 사로잡혀 시간 감각이 흐려진다. '나'는 활기를 느낄 수 있는 시장으로 가보자고 생각한다. 레알 시장은 텅 비고 아무 움직임 없이 버려진 채 죽어 있었다. 도시는 침묵과 어둠 속에 갇혀 있고, '나'의 회중시계마저 멈춘 순간 센 강변에 다다른 '나'는 여전히 센 강이 흐르고 있는지 궁금해졌다. 계단을 찾아 강으로 내려간 '나'는 강물이 흐르고 있음을 확인하며 자신의 죽음을 예감한다.

 

어이없게도 인간의 호기심과 열정은 공포의 크기가 크면 클수록 그에 비례하여 실체를 확인하고 싶은 욕망 또한 증가하도록 부추긴다. 그러므로 공포는 사람들의 생명을 기반으로 세력을 키워간다고 말할 수 있다. 소설에 등장하는 '나' 역시 밤의 실체를 확인하고 싶어하는 강한 욕구와 밤에 대한 공포를 동시에 드러낸다. '우리가 열렬히 사랑하는 것은 결국 우리를 죽음으로 이끄는 법'이라고 작가는 경고한다. 익스트림 스포츠를 사랑하는 사람이 스포츠를 즐기는 도중에 생을 마감하는 것처럼. 실체도 없는 공포, 그것으로 인해 우리는 결국 죽음에 이르게 되는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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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게 첫눈이 내리는 동안, 그리움과는 별개의 슬픔이 쏟아졌다. 카톡 문자 메시지를 알리는 진동음이 끝없이 이어졌고, 응답이 없는 나를 걱정하는 몇몇은 전화를 걸어오기도 했다. 어둑어둑 그늘이 진 방에는 진득한 침묵이 내려앉았고, 다리께서부터 차오르던 슬픔이 목과 얼굴을 거쳐 마치 나를 익사시키려는 듯 온 몸을 짓누른다. 나는 손가락 하나 까딱할 힘도 없이 무기력한 시간을 흘려보냈다. 정호승 시인의 시를 나즉나즉 읊어보았다.

 

 

첫눈이 오는 날 만나자

정호승

사람들은 왜 첫눈이 오면
만나자고 약속을 하는 것일까
사람들은 왜 첫눈이 오면
그렇게들 기뻐하는 것일까

왜 첫눈이 오는 날
누군가를 만나고 싶어하는 것일까
아마 그건
서로 사랑하는 사람들만이
첫눈이 오기를 기다리기 때문일 것이다

첫눈과 같은 세상이
두 사람 사이에 늘 도래하기를
희망하기 때문일 것이다

나도 한때 그런 약속을 한 적이 있다
첫눈이 오는 날
돌다방에서 만나자고

첫눈이 오면
하루종일이라도 기다려서
꼭 만나야 한다고 약속한 적이 있다

그리고 하루종일 기다렸다가
첫눈이 내린 밤거리를
밤늦게까지 팔짱을 끼고
걸어본 적이 있다

너무 많이 걸어 배가 고프면
눈 내린 거리에
카바이드 불을 밝히고 있는
군밤장수한테 다가가 군밤을 사 먹기도 했다
그러나 지금은
그런 약속을 할 사람이 없다

그런 약속이 없어지면서
나는 늙기 시작했다
약속은 없지만 지금도 첫눈이 오면
누구를 만나고 싶어 서성거린다

다시 첫눈이 오는 날
만날 약속을 할
사람이 있었으면 좋겠다

첫눈이 오는 날
만나고 싶은 사람
단 한 사람만 있었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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