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치인의 숙명은 순간순간 어떤 선택을 강요받는다는 점이다. 그리고 그 선택에 대한 즉각적인 반응을 마주해야 하며 좋든 싫든 자신의 선택에 대한 피드백의 무게를 감당해야만 한다. 그러므로 대부분의 정치인에게 있어 자신을 향한 숱한 욕설과 비난은 일상의 풍경처럼 익숙할지도 모른다. 그래서일까 정치인의 평균수명은 종교인 다음으로 높다. MB나 전광훈 목사를 보더라도 '욕먹으면 오래 산다.'는 속설이 틀린 말은 아닌 듯하다.


정치인들의 선택 중 본인이 의도한 것은 아니지만 일정 기간 정치활동을 하면 자의 반 타의 반으로 얻게 되는 것이 있다. '권위'와 '존경'이 그것이다. 둘 다 비슷해 보이지만 전혀 다른 성격의 결과물이다. 이를테면 '권위'는 일정한 직책(고위직이겠지만)을 수행하는 데 필요한 물리적인 힘(권력)을 행사함으로써 타인을 공포와 불안에 몰아넣거나 강력한 반감을 불러일으키게 하는 반면 '존경'은 직책에 부여된 권한이나 권력과는 무관하게 인간 대 인간으로서 가까워지고 본받고 싶은 감정을 불러일으킨다. 박정희나 아베의 사례에서 보더라도 정치인은 권위로 인한 반감의 축적이 결정적인 사인이 될 수 있다는 것이다. 그러나 정치인 스스로가 '권위'를 선택할 수는 있지만 '존경'은 선택할 수 없다는 게 문제라면 문제다. 권력에 집착하면 할수록 '권위'는 자연스레 획득되지만 '존경'은 직책에서 주어지는 합법적인 권력으로부터 무한히 멀어지거나 그 힘에 대한 유혹을 과감히 떨쳐낼 때 획득되기 때문이다.


최근 자신의 권력을 무기로 정적을 제거하고 정신이상자에 가까운 자들을 특별한 직책에 앉힘으로써 국민들로 하여금 반감과 불안을 동시에 느끼도록 하는 굥의 행태는 '권위'에 탐닉하는 정치인의 전형이라고 하겠다. 문 전 대통령이 총살감이라는 막말을 서슴없이 내뱉는 자가 경사노위 위원장에 임명되지 않나 자위대 창립 기념일 행사에 참여한 정치인을 저출산고령사회위원회 부위원장에 임명함으로써 일본을 본받으라는 메시지를 공공연하게 표방하는 것 등은 많은 사람들의 가슴속에 그에 대한 반감을 차곡차곡 쌓는 일이 될 것이다. 위대한 정치인은 그가 속한 조직의 구성원으로부터 무한한 신뢰와 존경을 받는 인물이지 지속적인 권위를 누리는 자가 아니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31)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방구석 뮤지컬 - 전율의 기억, 명작 뮤지컬 속 명언
이서희 지음 / 리텍콘텐츠 / 2022년 10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부끄러운 이야기이지만 지금껏 살아오면서 뮤지컬을 공연장에서 직접 관람하였던 건 손으로 꼽을 정도로 그 수가 적다. 이렇게 된 데에는 시간적, 경제적 여유가 없었던 개인적 차원의 문제도 있겠지만 지금처럼 뮤지컬이 활성화되지 않았던 과거의 초라한 무대 세트와 어설픈 무대 연출, 그에 비해 상대적으로 높은 관람료 등 뮤지컬 분야의 구조적인 원인도 한몫했을 것으로 보인다. '뮤지컬 한 편의 관람료면 영화 몇 편을 볼 수 있는데...' 하는 단순 계산 때문인지 어쩌다 손에 들어오는 공짜 티켓이 아니면 뮤지컬 공연장으로으로 향하는 자발적인 발걸음은 좀체 없는 일이 되고 말았었다. 그러다 언제부터인가 고등학교 동창 모임의 송년 모임 레퍼토리가 바뀌면서 뮤지컬 관람은 하나의 정기 행사로 편입되었다. 촌놈들이 모인 자리에서 뮤지컬 관람이라니... 그것은 마치 '개발에 편자'처럼 꽤나 어울리지 않는 조합처럼 여겨졌지만 해가 거듭될수록 호평이 이어지는 기이한 결과를 낳았다. 부어라 마셔라 하던 음주 일색의 송년 모임이 뮤지컬 관람과 간단한 식사로 대체되면서 부부 동반이나 가족 전체가 모임에 참가하는 기이한 현상도 적지 않았다.


영영 기회가 없을 줄 알았던 뮤지컬과의 인연이 이렇듯 우연한 계기로 인해 나의 삶에 자연스레 녹아든 것은 내 삶에 있어 하나의 축복이 아닐 수 없다. 이와 같은 배경에는 물론 뮤지컬 업계의 성장과 경제 발전에 따른 뮤지컬 관객의 증가와 같은 사회적 변화에 편승한 우연 아닌 우연이 작용했기 때문일 수도 있겠지만 말이다. 그러나 나는 여전히 뮤지컬 애호가가 아닌 입문자의 수준에 머물러 있고, 귀에 익지 않은 낯선 제목의 뮤지컬 공연은 거들떠도 보지 않는 편견이 심한 관객에 불과하다. <방구석 뮤지컬>을 쓴 이서희 저자 역시 나와 비슷한 경험을 말하고 있다.


"이 책을 펼쳐 든 여러분께서 어느 순간 공연장에 와 있는 듯한 느낌을 받을 수 있도록, 뮤지컬이 품고 있는 배경과 서사를 생동감 있게 담아내고자 노력했습니다. 아름다운 가사와 무대 영상을 덧붙여, 문자가 가진 한계를 보완했고요. 공연장에서 직접 느낀 감동과 전율을 전달하려 했습니다. 프로덕션에 따라 달라지는 뮤지컬의 구성과 넘버는 되도록 제가 직접 감상한 공연을 기준으로 정리하였습니다. 아직 한국에 소개되지 않은 뮤지컬은 여러 자료를 통해 천천히 알아갔습니다."  (p.5 '프롤로그' 중에서)


뮤지컬 <노트르담 파리>를 시작으로 순식간에 뮤지컬의 매력에 흠뻑 빠져들게 되었다는 저자가 이 책에서 소개하는 뮤지컬은 서른 편이다. '아는 만큼 보인다.'는 말처럼 보고자 하는 뮤지컬의 무대 장치와 조명, 의상, 안무, 연출에 이르기까지 뮤지컬을 구성하고 있는 다양한 요소를 알고 나면 우리가 알던 뮤지컬의 세계는 한층 다채로운 모습으로 다가올 것이다. 뮤지컬은 하나의 종합예술이기 때문이다. 단순한 줄거리 파악이나 유명 배우의 연기를 보는 것만으로는 뭔가 성에 차지 않았던 것도 그런 까닭이었는지도 모른다.


"시대와 운명이 배반하더라도 자신의 인생을 개척해 나가는 뮤지컬 속의 인물들. 우리는 극장에서 그들의 용기와 의지를 엿봅니다. 그리고 중력을 거슬러 날아오른 엘파바처럼, 매 순간 조금씩 성장해가는 에반 핸슨처럼 나아갈 힘을 얻습니다."  (p.358 '에필로그' 중에서)


그러나 접해 보지 않은 누군가에게 뮤지컬은 여전히 낯선 장르일 뿐이다. 그러나 처음이 어려울 뿐 일단 부딪쳐 보면 뮤지컬의 매력에 쉽게 녹아들 수밖에 없다는 게 많은 이들의 전언이다. 게다가 활동하기에 더없이 좋은 가을 저녁의 뮤지컬 관람은 생각만으로도 설레게 된다. 뮤지컬을 관람한 후 극장을 나설 때의 여운은 뺨에 닿는 가을바람처럼 신선하고 부드럽다. 집으로 돌아가야 한다는 사실도 잊은 채, 혹은 자신의 집이 어느 방향인지도 잊은 채 한동안 넋을 놓을 수밖에 없는 감동의 여진이 삶의 의미를 깨닫게 할지도 모른다.


"빵 하나를 훔친 죄로 5년의 징역을 선고받은 '장발장'. 그는 이후 탈옥을 시도하다가 19년으로 형량이 늘어납니다. 그곳에서 죄수들을 감독하는 이는 '자베르'입니다. 이후 장발장은 가석방 처분을 받게 되지만 가석방 처분의 규율을 어기고 도망쳐 '마들렌'이라는 이름으로 살아가게 됩니다."  (p.206)


돌이켜보면 삶의 시간들은 순간처럼 가볍다. 그렇다고 자신의 삶을 인위적으로 길게 늘일 수 있는 방법도 여전히 찾지 못하고 있는 게 현실, 우리는 순간순간의 '지금'을 마냥 행복한 경험으로 채우는 것만이 자신의 삶을 온전히 즐기는 최선의 방책이라는 걸 앞서 살다 간 많은 이들의 경험을 통해 알고 있다. 그러나 우리 앞에 놓인 현실은 자신의 삶을 원하지 않는 전혀 다른 방향으로 이끌 때가 많은 것도 사실, 그럼에도 우리는 삶의 기쁨과 충만한 만족감을 향해 험한 가시밭길을 헤쳐 앞으로 나아가곤 한다. 뮤지컬은 그와 같은 우리의 여정을 그리고 있을 뿐이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36)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하늘이 어둡다. 아침부터 시작된 비는 빗줄기가 굵어졌다 가늘어졌다를 반복하며 끊이지 않고 내린다. 도로에 늘어선 차량들은 물방울을 튀기며 마치 미끄러지듯 나아간다. 칙칙한 도시의 풍경 속에 LED 광고판만 도드라져 보인다. 특별할 것도 없고, 달라진 것도 없는데 휴일의 풍경 치고는 꽤나 어울린다 싶게 느껴지는 건 순전히 날씨 탓이다. '가을비 한 번에 내복 한 벌'이라더니 환기를 위해 열어 놓은 베란다 창문의 좁은 틈새로 부는 소소리바람이 꽤나 매섭다. 오늘은 제576돌 한글날, 소프트파워 강국으로서의 대한민국 위상에 대해 생각해 본다.


지난해까지만 하더라도 우리나라는 문화와 예술을 선도하는 소프트파워 강국으로 인정받으며 해외에 거주하는 우리 교민들의 자부심을 한껏 높여주었었다. 그러나 한 명의 지도자를 잘 못 뽑는 바람에 우리나라는 세계 언론의 조롱거리로 전락하고 말았다. 언론을 탄압하고 표현의 자유를 억압한다는 것이 주된 이유다. 나의 여동생도 뉴욕에 거주하고 있지만 미국을 비롯한 다른 여러 나라에서 이구동성으로 들려오는 소리는 한국인이라는 게 이렇게 쪽 팔렸던 적은 일찍이 없었다는 하소연이다.


대통령의 비속어 논란이 사그라들지도 않았는데 고등학생이 그린 웹툰 한 점에 대해 문체부까지 나서서 만화진흥원에 대해 경고를 하네 어쩌네 하는 마당이니 기성세대의 한 사람으로서 창피하기 그지없다. 이에 대한 국민들의 비판 여론이 거세지자 이제는 표절이란다. 문체부 사람들이 김 여사의 논문을 읽어보지 못한 까닭에 표절이란 이런 것이다라는 사실을 모르는 듯하다. 오죽하면 원작자로 꼽히는 영국의 만평가 스티브 브라이트가 "해당 고등학생 작품이 절대 표절이 아니고, 오히려 상당한 실력을 갖춘 뛰어난 학생"이라고 극찬했다지 않는가.


한 나라의 문화가 발전하려면 '지원하되 개입하지 않는다'는 원칙이 반드시 지켜져야 한다고 말한다. 그러나 현 정부는 온갖 구설로 문화예술인이 올려놓은 국격을 깎아내리는 것으로도 모자라 그들을 억압하고 자신들의 구미에 맞게 길들이려 하는지 알다가도 모를 일이다. 이런 한심한 작태를 5년 동안 보아야 한다면 그것은 그야말로 비극이 아닐 수 없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32)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혼자서 종이우산을 쓰고 가다
에쿠니 가오리 지음, 신유희 옮김 / (주)태일소담출판사 / 2022년 9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산 사람은 어떻게든 살게 마련'이라는 말을 이따금 듣게 된다. 죽고 못 살 것 같은 각별한 사이라 할지라도 막상 한 사람이 죽고 나면 남겨진 다른 한 사람도 곧바로 따라 죽을 것 같지만 사실은 그렇지 않아서 산 사람은 나름 제 살 길을 찾게 된다는 뜻일 게다. 힘은 들겠지만 말이다. 그러나 삶과 죽음의 경계는 그 어떤 구분보다 명확하고 냉정하여 산 사람의 시간에 죽은 자의 시간이 더해지지 않는다. 말하자면 죽은 자가 살아생전에 아무리 각별한 사람이었다고 할지라도 더 이상 산 사람의 삶의 영역에는 들어올 수 없는, 영원한 아웃사이더가 된다는 의미이기도 하다. 물림이나 번복이 불가능한 이별의 절대성으로 인해 죽음은 종종 소설의 흔한 소재가 되기도 하지만 같은 이유로 인해 독자들은 매번 그 쓸쓸한 풍경에 애달파하기도 한다.


"대체 왜, 엄마의 엄마라는 사람은 하필이면 섣달 그믐날 자살 따위를 했을까. 얼른 설 연휴가 끝나면 좋겠다고 나는 생각한다. 그러면 직장에 돌아갈 수 있고, 내 자신의 일상이 정체 없이 지속되고 있다고 믿을 수 있을 터이다."  (p.29)


섣달 그믐날 밤, 엽총으로 자살을 한 세 노인으로부터 이야기가 펼쳐지는 에쿠니 가오리의 소설 <혼자서 종이우산을 쓰고 가다> 속으로 들어가 보자. 1950년대 말에 미술 관련 서적을 다루는 출판사에서 처음 만난 시노다 간지와 시게모리 츠토무, 그리고 모임의 유일한 여성인 미야시타 치사코는 회사가 망한 후에도 '공부 모임'이라는 이름의 모임으로 끈끈한 인연을 이어왔다. 물론 각자의 인생이 있다 보니 만나는 빈도가 떨어졌던 시기도 있었지만 말이다. 그러다 10년 전 간지가 아내와 사별한 후 아키타 현으로 이사를 간 뒤로는 공부 모임이 생존 확인 모임으로 바뀌었고, 그들 모두는 이제 80살이 넘은 노인이 되었다. 간지가 86세, 츠토무가 80세, 치사코가 82세.


죽은 세 노인의 이야기는 시간의 역순으로 자살 직전의 순간까지 펼쳐지고, 세 노인의 유족에 대한 이야기는 그들이 자살한 순간부터 그 이후의 시간들이 시간의 순서대로 교차하면서 펼쳐진다. 그러다 보니 산 사람들의 다양한 이야기가 어떤 특별한 주제도 없이 끝없이 이어진다. 시노다 간지의 아들과 딸 가족, 덴마크로 유학을 떠난 손녀의 이야기 등에 더해 평생을 독신으로 살았던 츠토무가 살아생전 인연을 맺고 지냈던 가와이 쥰이치를 비롯한 다양한 부류의 사람들, 그리고 치사코의 딸 로코와 그녀의 딸 도우코 및 아들인 유우키. 소설은 그들의 삶을 마치 스케치하듯 훑고 지나가지만 간지의 손녀인 하즈키와 이혼을 한 후 어린 남매를 두고 나와 이 남자 저 남자를 전전했던 로코와 그로 인해 친엄마인 로코와는 인연을 끊고 살았던 유우키 그리고 남동생만 예뻐하는 친가에서 뛰쳐나와 외할머니인 치사코로부터 도움을 받고 자란 도우코의 삶에 주목한다. 도우코는 결국 독신의 몸으로 소설을 쓰며 살고 있다.


"그게 그렇지도 않다고 도우코는 생각한다. 성인이 된 이후의 자신이 보는 한 엄마의 연애는 늘 일종의 체념이 지탱해 주고, 따라서 상처 입는 것도 비극적인 것도 오히려 상대방이다, 딱하게도."  (p.100)


에쿠니 가오리는 이렇듯 다양한 인물들을 자신의 소설 속에 등장시킴으로써 이런 삶도 혹은 저런 삶도 하나의 삶으로서 가치가 있다는 사실을 말하고 싶었던 것이다. 할아버지의 장례식 후 덴마크로 떠난 하즈키는 자신의 할아버지에 대해 좀 더 알고 싶어서 죽은 세 노인과 친분이 있었던 로코에게 메일을 보낸다. 뿐만 아니라 로코의 딸인 도우코의 소설도 재미있게 읽었노라고 말한다. 한편 이 여자 저 여자와 사귀며 문란한 생활을 이어왔을 듯싶은 츠토무의 삶은 그로부터 도움을 받았던 다양한 사람들의 기억과 애도 속에 새롭게 평가되기도 한다.


"말을 이으려던 치사코를 츠토무는 가로막는다. "촌스러운 말은 하지 않기. 선택할 수 있는 건 '언제'냐는 것일 뿐, 그건 만인에게 공평하게 오는 거니까." 치사코는 입을 다물었다. 맞는 말 같았기 때문이다. 그리고 '나는' 하고 속으로 말한다. 나는 돈은 있지만, 돈이 있어도 갖고 싶은 게 없어져 버렸어. 갖고 싶은 것도, 가고 싶은 곳도, 보고 싶은 사람도, 이곳엔 이제 하나도 없어."  (p.153)


어차피 삶은 자신의 손안에 죽음의 그림자를 그러쥐고 사는 것이지만, 그게 두려워서 죽음의 실체가 현실에서 드러나도록 자발적으로 혹은 선제적으로 조치를 취하는 경우는 드물다. 설령 자신의 삶이 고되거나 현대 의학으로는 치료가 불가능한 지병을 갖고 있다고 할지라도 죽음의 실체를 보기 위해 자신의 삶을 스스로 포기하는 경우는 많지 않다는 얘기다. 그럼에도 우리는 그 흔하지 않은 이야기를 현실에서 종종 접하게 된다. 그날의 사건 사고를 전하는 뉴스를 통해 혹은 이야기를 재구성하는 어느 작가의 소설을 통해... 그러나 분명한 것은 삶의 포기는 남겨진 사람들에게 크나 큰 상처가 되기도 하고, 어두운 그늘을 안겨주기도 한다는 사실이다. 물론 산 사람은 어떻게든 살게 마련이지만.


댓글(0) 먼댓글(0) 좋아요(39)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계절이 뒤채는 10월 즈음이면 무심히 지나칠 수 없는 것들이 더러 눈에 띈다. 가을 햇살에 몸을 떠는 물비늘과 여름내 머금었던 물기를 털고 가볍게 불어오는 바람, 하늘에 총총히 뿌려진 수많은 별들과 가을밤의 정적 등 다른 계절이라면 그냥 지나쳤을 소소한 풍경들이 가을에는 유독 오가는 사람들의 발길을 붙잡는다. 일상의 잡념을 떨치고 한동안 그렇게 멍하니 시간을 보내다 보면 때로는 왠지 모를 슬픔이 차오르기도 하고, '그래, 사는 게 뭐 별건가?' 하는 마음으로 툭툭 자리를 털고 일어서게도 된다.


최근에 있었던 이런저런 사건들을 보면서 들었던 생각 중에는 알코올성 치매 환자에 대한 지나친 염려(?)도 있었다. 체질상 술을 한 잔도 못 마시는 나로서는 알코올성 치매 환자의 고통을 직접 겪어볼 일은 없겠지만 역지사지의 심정으로 추론해 본 것이다. 예컨대 수많은 군장병들이 운집한 행사장의 단상에 서서 '부대 열중쉬어!'를 암기 후 복창하도록 강제한다거나 영유아들이 모이는 어린이집을 방문하기 전에 '아나바다'의 뜻을 숙지하도록 한다거나 하는 일은 알코올성 치매 환자들에게는 과도한 요구일지도 모른다. 게다가 며칠 전 사석에서 자신이 무심코 했던 말을 기억하도록 한다는 건 있을 수 없는 일이다. 환자가 아닌 정상인도 잊기 십상이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알코올성 치매 환자가 했던 말에 대해서는 반드시 '진상조사'가 필요하다. 그 진위를 따지기 위해서 말이다. 이를테면 자신이 '이 XX'라고 말했는지 '저 XX'라고 했는지 기억이 나지 않을 뿐만 아니라 '바이든'이라고 했는지 '날리면'이라고 했는지 그의 기억에는 전혀 남아 있지 않기 때문이다. 결과적으로 자신이 실언을 했다 하더라도 그는 환자이기 때문에 전혀 쪽 팔릴 일이 아닌 것이다.


한글날 대체휴일로 3일 연휴가 시작되는 오늘, 하늘이 유난히 높고 푸르다. 이 아름다운 계절도 금세 사라지고 황량하고 추운 계절이 다가오겠지만 올 겨울은 몸도 마음도 유난히 추울 듯하여 미리부터 걱정이 된다. 수세에 몰린 푸틴의 손가락에 달린 핵전쟁의 공포와 미국의 연속되는 금리 인상, 그리고 아무런 대책도 없는 대한민국 정부와 관료들. 가을 햇살이 서럽게 쏟아지고 있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31)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