희망의 이유 - MBC 느낌표 선정도서
제인 구달 지음, 박순영 옮김 / 궁리 / 2003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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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나의 책읽기에 작은 변화가 나타났음을 느끼고 있다.
단순한 오락이나 시간 떼움의 방식에서 벗어난 것도 그러려니와 한 인물의 삶이나 삶의 깊이 있는 통찰을 다룬 책을 읽을 때에도 전과는 달리 저자가 말하고자 하는 주제에 대하여 많은 고민을 하게 되었고, 그 깨달음을 오롯이 내것으로 만들고자 노력한다는 점이다.
전에는 단순히 나와는 관련이 없거나 애당초 내가 실천할 수 없는 먼 나라의 이야기 쯤으로 치부하기 일쑤여서, 나의 독서는 그저 지적 호기심을 충족하는 수준에 머물렀었다.
이러한 독서는 생각보다 그 폐해가 많아서 책에 대한 몰입도를 떨어뜨리거나 일회성의 독서로 끝나게 하였다.  나는 최근까지 그 사실을 전혀 감지하지 못하고 있었다.
내가 이런 피상적인 독서에 길들여진 원인은 근본적으로 나 자신에 대한 불신에서 비롯되었던 듯하다.  
나와 저자 간에 존재하는 거리감, 나와 같은 평범한 사람이 저자의 위대한 삶이나 고고한 영혼을 따르려 한다는 것이 처음부터 가능하지 않다고 판단하면 독서는 그저 독서의 수준에서 끝나고 만다.  조금이라도 나를 개선하고 저자의 삶에 조금이라도 가까워지려는 적극적인 노력이나 의지가 없으면 독서는 그야말로 지적 허영 또는 시간 떼우기에 그칠 뿐, 저자와의 교감은 기대하기 어렵다.  나는 최근에야 그 사실을 알았다.  
지금껏 많은 책을 읽었음에도 누군가 내 삶을 변화시킨 한 권의 책을 고르라고 한다면 주저하게 되는 것은 바로 그와 같은 피상적인 독서법에서 기인하지 않았을까?
나는 요즘 내게 도움이 될 좋은 책을 가려서 읽어야 한다는 생각을 갖고 있다.
그만큼 책에 대한 진지함과 진리에 대한 경외감이 깊어진 것이다.  이런 변화에는 법정 스님의 도움이 크다.  스님은 죽어서도 범인에게 그 깨달음의 한 자락을 나눠주시니 그 대자대비함이 그저 놀랍다.

1964년 이십대 후반의 젊은 아가씨가 아프리카 오지로 들어갔다.
생물학적으로 인간과 가장 흡사하다는 침팬지들의 행동을 관찰하고 이를 통하여 인간의 문화적 진화를 규명하고자 했던 그 여인은 탕가니카 호숫가 곰베 지역에 작은 텐트를 짓고 아프리카의 자연과 그 속에서 자라나는 모든 생명체에서 평화와 자유, 모든 피조물에 대한 사랑과 경이를 느낀다.  침팬지의 잔인한 공격성에서 인간에게도 공격적 유전인자가 존재한다고 말하는 그녀.  인간의 사악하고 잔인한 그 공격성은 문명의 발달과 더불어 진화하였고, 인간을 위한다는 명목으로 시행되고 있는 각종 동물실험과 환경파괴에 가슴 아파하는 그녀는 내게 묻는다.
  만약 어떤 성직자나 승려가 이런 사람들의 내적인 삶을 체로 가려내서 영적으로 습득한 것과 영적인 성공의 정도를 가려낸다면, 과연 물질적으로 얻은 것과 정신적으로 얻은 것의 비율은 어떻게 될까.(P.249)
25년이 넘는 기간 동안 과학적인 창문을 통해 침팬지를 관찰하고 기록하고 분석하면서, 그들의 복잡한 사회적 행동을 파악하여 마음이 움직이는 방식을 이해하기 위해 노력했다는 그녀는 이제 우리들에게 마음과 영혼을 통해 세상을 보는 방법에 대하여 말하고 있다.
  인간이 품성을 지닌 유일한 동물이 아니라는 것,  합리적 사고와 문제 해결을 할 줄 아는 유일한 동물이 아니라는 것, 기쁨과 슬픔과 절망을 경험할 수 있는 유일한 동물이 아니라는 것, 그리고 무엇보다도 육체적으로뿐만 아니라 심리적으로도 고통을 아는 유일한 동물이 아니라는 것을 받아들인다면, 우리는 덜 오만해질 수 있다.(그러기를 기대한다).(P.278)
세계는 ’일순간의 폭발이 아니라 한동안 흐느끼는 사이에’ 종말을 맞을 것이라 주장하는 그녀의 절망은 그녀를 인간의 탐욕에 항거하는 전사로 거듭나게 했다.
그럼에도 희망은 있다고 말한다.  인간의 두뇌와, 자연의 회복력과, 젊은이들의 열정과, 불굴의 인간정신에 거는 그녀의 마지막 희망이 꺼져가는 지구의 생명력에 작은 불씨가 되기를 간절히 바라게 된다.  우리 모두는 평범하고 일상적인 인간 존재로부터 성인으로 진화해야만 한다 외치는 그녀의 외침이 공허한 메아리가 되지 않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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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막별 여행자
무사 앗사리드 지음, 신선영 옮김 / 문학의숲 / 2007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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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린 시절 소쿠리로 새의 덫을 놓았던 적이 있다.
싸리나무로 엮은 커다란 소쿠리를 땅에 엎어놓고는 한쪽 편을 들어 그 밑에 작은 나무 막대기를 괸 후에 새가 좋아할 만한 곡식 낱알을 뿌려 놓는다.  그 괴임목에 긴 끈을 매달아 멀찍이서 지켜보고 있노라면 곡식을 쪼아먹던 새가 소쿠리 밑으로 들어가는 순간 끈을 잡아 당기면 새는 소쿠리 안에 갇히고 만다.  어린 나는 포로로 잡은 새를  의기양양하게 자랑하곤 했었다.
어른이 된 지금, 나는 미래라는 시간 곳곳에 스스로 쳐놓은 덫을 바라보며 불나방처럼 돌진하고 있다.  내가 만든 덫에 내가 잡힐 줄이야 그 어린 시절에는 상상이나 했을까.
우리는 자라면서 자신이 갇힐 덫을 미리 준비하도록 교육 받는다.
돈이 많아야 되고, 건강해야 하고, 명예와 권력을 얻어야 하고, 사랑하는 사람들이 자신의 곁에 있어야 하고, 다른 사람들이 자신을 항상 우러러 봐야 하고, 오래 살아야 하고......
그 절대 기준의 덫에 걸린 나는 자유의지를 잃고, 고통에 몸부림치고, 미래라는 시간을 항상 염려하고, 시시때때로 탈출을 꿈꾼다.  그 덫에서 풀려나는 어느 순간 나는 또 다른 덫을 준비하곤 한다.  나는 그 절대 기준의 덫에서 평생 벗어나지 못함을 알고 있다.
그것이 어찌 나만의 일이겠는가.  
현대인 대부분이 그럴 터이고, 나의 자식에게도 대물림 할 것이다. 
삶의 긴 여정을 걷노라면, 때로는 고통과 직면하기도 하고, 사랑하는 사람과의 이별을 경험하기도 하고, 뜻하지 않은 사고와도 직면하는 것이 당연함에도 나의 절대 기준에는 그런 상황은 있을 수 없다.  오직 편안함과 안락함 만이 존재할 뿐이다.  나는 그 기준에 수시로 갇혀 더 큰 고통을 맛보는 것이다.  결국 삶이란 고통이고, 미래는 두려움이며, 과거는 잊어야 할 대상이다.  그 어디에서도 삶의 아름다움과 충만감은 찾을 수 없다.

이 책은 사막의 유목민 투아레그족 젊은이가 영혼을 잃고 흔들리는 모든 현대인에게 들려주는 진실의 울림이다.  
사하라 사막에서 태어난 한 소년이 어느 여기자로부터 우연히 선물로 받게 된 생텍쥐페리의 <어린 왕자>  한 권은 그 소년의 삶을 송두리째 흔들었다.
오직 그 책을 읽기 위해 자신의 야영지에서 왕복 30km에 이르는 학교를 다니고, 온갖 고난 속에서도 <어린 왕자>의 저자를 만나겠다는 일념으로 프랑스 유학의 길을 떠났던 원시 부족의 한 소년은 태양과 바람과 모래의 땅을 떠나 상상할 수 없었던 낯선 문명과 마주했다.
많은 인파 속에서 살지만 고독한 사람들과, 많은 물건을 소유하고 있지만 가난하다고 느끼는 사람들, 엄청난 속도의 교통수단을 이용하면서도 조급함을 버리지 못하는 사람들, 섹스를 즐기지만 사랑을 알지 못하는 사람들과의 생활은 그 소년에게 충격에 가까운 일이었다.
도시의 사람들은 자신의 삶의 방향을 잃고, 끝없이 자신을 잊으려 한다.  자신을 잊음으로써 삶으로부터 달아나려는 도시인들에게 원시 부족의 젊은이는 이렇게 말한다.
  "우리는 망각이 아니라 기억을 쌓는다.  우리는 구전사회다.  따라서 우리가 잊는다면, 우리의 역사는 더 이상 존재하지 않게 된다.  과거가 지워지는 것이다.  망각은 작은 죽음이다.  진정 살아있다는 것은, 명철한 의식으로 삶에 참여하여 모든 것을 자각하는 것이다.  도피, 자신에게서 벗어남은 자신을 잃는 것이다."(P.204)
사막의 유목민에게는 너무나 당연하고 자연스러운 일이 도시의 문명인에게는 이룰 수 없는 꿈이 된 까닭은 과연 무엇일까?
내 생각에 참 삶이란 복잡하고 어려운 게 아니다.  이를 누리는 방법 또한 간단하다.  매일 아침 신선한 공기를 호흡할 수 있음에 감사하는 것, 건강을 유지하는 것, 서로 배려하고 아끼는 마음을 잃지 않는 것, 자연을 존중하며 그와 함께 살아가는 것, 온전히 시간을 사는 것, 그러한 것들이 참삶을 이룬다.(P.165)
영혼을 찾아 사하라 사막으로 향하는 문명인과 더 큰 영혼의 확장을 위해 프랑스의 도시로 향한 원시인 사이에서 나는 몹시 혼란스럽다.
법정 스님이 추천을 했던 이 책은 문명 사회의 원시 부족, 그 문명인의 필독서라고 말함에 있어 부족함이 없다.  나는 미래의 덫을 하나씩 걷어내려 애쓰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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꾸뻬 씨의 행복 여행
프랑수아 를로르 지음, 오유란 옮김, 베아트리체 리 그림 / 오래된미래 / 2004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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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특한 구성의 소설이다.
엄밀히 말하자면 독특한 문체와 표현으로 꾸며진 그런 소설이다.
비 한방울 내리지 않는 메마르고 거친 땅에서 석 달쯤 지냈을 때 맡게 되는 매케하고 칼칼한 먼지 냄새가 난다고 할까?
이 책을 다 읽고 나면 마치 장마 기간의 축축하고 눅눅한 대기 속에서도 내 옷을 털면 마른 먼지가 풀풀 날릴 것만 같은 그런 소설이다.  내가 느끼는 작가의 분위기는 그랬다.
불행하지도 않으면서 불행한 사람들이 사는 나라에서 정신과 의사를 하는 꾸뻬씨.
책에서는 중국을 제외하고 지명을 말하지 않는다.  ’세상에서 정신과 의사가 가장 많은 나라’와 같은 표현에서 그것이 미국임을 어렴풋이 짐작할 뿐이다.  이런 표현은 마치 우리가 사는 동네에서 다른 동네로 여행을 떠나는 듯한 착각을 불러 일으킨다.  그러므로 독자는 이제 독자로서의 임무를 잊고 작가 또는 꾸뻬씨와 같이 여행을 떠나는 여행자의 한 무리가 되는 것이다.
여행은 먼저 자신의 주변을 정리하는 일부터 시작된다.  사랑하는 사람과의 이별, 익숙한 일상과의 이별이 그것이다.  쿠뻬씨가 자신의 연인 클라라와 이별하듯이.
꾸뻬씨는 자신이 어렸을 때 읽었던 만화  <푸른 연꽃>에 나오는 무척이나 지혜로워 보였던 중국 노인은 행복의 비밀을 알 것만 같아 그런 노인을 찾아 중국으로 떠난다.
아, 미처 말하지 못한 것이 있다.  이 여행의 목적은 행복의 비밀을 찾는 것이다. 
성실한 꾸뻬씨는 비행기 안에서 만난 사람들에게서 얻은 행복의 비밀도 꼼꼼히 메모한다.  중국에는 그의 고등학교 친구 뱅쌍이 은행에서 근무한다.  꾸뻬씨보다 일곱 배나 많은 돈을 버는 뱅쌍은 늘 일에 묻혀 산다.  자신이 목표하는 삼백만 달러를 위하여.  뱅쌍은 꾸뻬씨에게 고급 술집에서 일하는 잉리라는 아름다운 여인을 소개해 주고 꾸뻬씨는 그 여인과 사랑을 나눈다. 
여행은 가끔 자신의 이성에서 벗어나도록 부추기는 경향이 있다.
꾸뻬씨는 한 사원에서 자신이 찾던 노승을 만나지만 그 노승은 꾸뻬씨가 여행을 마치고 다시 찾아오라고 당부한다.   꾸뻬씨는 가난한 흑인의 나라로 가는 비행기에서 자신과 같은 정신과 의사인 마리 루이즈를 만나고 그 나라에서 가난한 아이들을 치료하는 꾸뻬씨의 친구 장 미셀을 만난다.  여전히 메모는 계속된다.  우리는 그가 정신과 의사임을 주목해야 한다.
꾸뻬씨는 루이즈의 초대를 받아 그녀의 집을 방문하고 돌아오는 길에 노상강도에게 차량과 함께 납치된다.  그들의 포로가 되어 죽음에 직면했던 꾸뻬씨는 구사일생으로 살아나고 세계에서 가장 정신과 의사가 많은 나라로 향한다.  그는 기내에서 아픔을 호소하는 자밀라를 치료한다.  그녀는 자신의 병으로 서서히 죽어가면서도 다른 사람의 행복을 생각한다.  꾸뻬씨는 이제 정신과 의사가 많은 나라에서 고등학교 때 자신이 좋아했던 여자 친구 아녜스와 그녀의 남편 제이크를 만난다.  그리고 심리학을 연구하는 아녜스의 주선으로 행복을 연구하는 위대한 교수 던칸을 만나게 된다.  꾸뻬씨는 자신의 메모를 그 위대한 교수에게 보여주고 많은 대화를 나눈다.  여행을 마치고 꾸뻬씨는 다시 중국의 노승과 만난다.  여기서 잠깐 꾸뻬씨의 메모를 훑어보자.
배움1- 행복의 첫번째 비밀은 자신을 다른 사람과 비교하지 않는 것이다.
배움2- 행복은 때때로 뜻밖에 찾아온다.
배움3- 많은 사람들은 자신의 행복이 오직 미래에만 있다고 생각한다.
배움4- 많은 사람들은 더 큰 부자가 되고 더 중요한 사람이 되는 것이 행복이라고 생각한다.
배움5- 행복은 알려지지 않은 아름다운 산속을 걷는 것이다.
배움6- 행복을 목표로 여기는 것은 잘못된 생각이다.
배움7- 행복은 좋아하는 사람과 함께 있는 것이다.
배움8- 불행은 사랑하는 사람과 헤어지는 것이다.
배움9- 행복은 자기 가족에게 아무것도 부족한 것이 없음을 아는 것이다.
배움10-행복은 자신이 좋아하는 일을 하는 것이다.
배움11-행복은 집과 채소밭을 갖는 것이다.
배움12-좋지 않은 사람에 의해 통치되는 나라에서는 행복한 삶을 살기가 더욱 어렵다.
배움13-행복은 자신이 다른 사람들에게 쓸모가 있다고 느끼는 것이다.
배움14-행복이란 있는 그대로의 모습으로 사랑받는 것이다.
배움15-행복은 살아 있음을 느끼는 것이다.
배움16-행복은 살아 있음을 축하하는 파티를 여는 것이다.
배움17-행복은 사랑하는 사람의 행복을 생각하는 것이다.
배움18-태양과 바다, 이것은 모든 사람들에게 행복을 가져다 준다.
배움19-행복은 다른 사람의 의견을 중요하게 생각하지 않는 것이다.
배움20-행복은 사물을 바라보는 방식에 달려 있다.
배움21-행복의 가장 큰 적은 경쟁심이다.
배움22-여성은 남성보다 다른 사람의 행복에 대해 더 배려할 줄 안다.
배움23-행복은 다른 사람의 행복에 관심을 갖는 것이다.
꾸뻬씨는 노승에게 자신의 메모를 보여 주고 가르침을 기대한다.  그러나 노승은 그가 마음공부를 훌륭히 해냈다고 칭찬하며 같이 걷자고 권한다.
  "진정한 지혜는 이 풍경속에서 한 순간에 발견할 수도 있고, 아니면 언제까지나 깊이 감추어져 있을 수도 있습니다."  라고 말하는 노승의말에 꾸뻬씨는 자신이 노승과 함께 바라보는 자연에서 새로운 배움을 얻는다.  모든 생각을 멈추고 세상의 아름다움을 바라볼 시간을 갖는 것, 그것이 진정한 행복이라는 것을.
아, 나는 자신의 나라로 돌아간 꾸뻬씨와 그의 연인 클라라, 친구 뱅쌍과 잉리, 장 미셀, 아녜스와 남편 제이크의 뒷얘기를 하지 않았다.  나는 그들에 대해 더이상 말하지 않으려 한다.
대신에 내가 느낀 배움 한 가지를 덧붙이며 끝맺고 싶다.
배움24-행복은 결코 특별하지 않고 우리 모두가 알고 있는 평범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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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나리 2010-03-29 17:47   좋아요 0 | URL
서평 잘 읽었어요.
꼼쥐 님이 마무리한 배움 24번의 행복 이야기도 좋네요.
좋은 책을 더 빛내준 것만 같은 님의 서평을 읽으니 기뻐요.
감사합니다. ^^ 얼른 읽어봐야 겠어요.

꼼쥐 2010-03-30 08:28   좋아요 0 | URL
네 반갑습니다...
알라딘에서는 댓글 달기도, 다른 블로그를
방문하기도 불편한 구조로 되어있어서
서로 담 쌓고 지내는줄 알았는데 이렇게 제 예상을 깨주셔서
감사합니다.
 


삶이 차창밖 풍경처럼 그저 스쳐지나가는 것처럼 느껴질 때가 있다.

내가 통제할 수 있는 것이라고는 처음부터 존재하지 않았던 것처럼 말이다.

나는 때때로 이 흐린 하늘이 어서 빨리 개었으면 하고 바라는 것과, 내 옆자리에서 몇 시간이고 나에게 즐거운 이야기를 들려줄 새로운 사람이 앉았으면 하고 바라는 것과, 끼니때마다 찾아오는 허기를 달래줄 홍익회 아저씨가 카트를 밀며 나타나기를 바라는, 그다지 중요하지도 않은 유아기적 사고를 하며 무심히 창밖을 바라보고 있을 뿐이다.

그런 생각이 들 때마다 내가 지금 향하는 방향이 처음에 목적했던 곳으로 가고 있는지, 조금 천천히 가더라도 내려서 걸을 걸 그랬나 하는 생각이 잠깐씩 스치기도 하지만 나는 또 무심히 창밖을 보며 그 지나가는 풍경 속에서 작은 변화를 찾으려 애쓰는 것이다.

수도 없이 봐왔을 그 풍경이 지겹기도 하련만 나는 가끔 습관처럼 박수를 치며 감탄하고, 정신 나간 사람처럼 웃기도 한다.

그렇지만 나를 둘러싼 그 풍경에 항상 익숙한 것은 아니어서 변하고 있는 것이 내가 아니라 풍경이라고 떼쓰는 어린아이처럼 우길 때가 있다. 

나이에 따라 사람의 피부만 말라가는 것은 아닌 모양이다.

생각도, 감정도 점차 시큰둥하고 시니컬한 상태가 되면 마치 생각에서도 각질을 털어내야 한다는 강박관념에 사로잡히곤 한다.

내가 여행을 하는 것인지, 풍경이 나를 납치라도 하는 것인지 나의 여행은 한참을 제자리에서 맴돌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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할아버지의 기도
레이첼 나오미 리멘 지음, 류해욱 옮김 / 문예출판사 / 2005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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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행하게도 나는 할아버지의 얼굴도 알지 못하고, 떠올릴만한 추억도 없다.
고향 뒷산에 있는 할아버지의 산소만 기억할 뿐이다.
저자인 레이첼 레멘에게는 외할아버지와 함께 했던 추억과 어린 시절 그녀에게 마음으로 전해주신 외할아버지의 말씀이 지금도 그녀와 함께 하고있다는 것은 얼마나 큰 축복인가.
가끔 삶이 버겁고 힘겹다고 느낄 때.
그럴 때마다 지난 시절을 떠올리고 위로 받을 수 있는 대상이 있다는 것만으로도 얼마나 커다란  위안이 되고 마음 든든한 것일지.....
 그녀의 외할아버지는 카발라(kabbalah : 유대교 신비주의)를 연구하는 랍비로서 전쟁을 피해 미국으로 이민 온 러시아 이민 1세대였다.   전통적인 유대교 신앙을 간직한 할아버지와는 다르게 그녀의 부모님은 낯선 땅에서 그들을 지켜줄 수 있는 것은 전문적 지식과 능력이라고 믿었다.  의대 1학년 때 크론이라는 희귀병으로 쓰러졌을 때도 가정 간호사였던 그녀의 어머니는 기숙사에서 그녀를 돌보며 학업을 독려했었다.  할아버지의 자녀들과 손자들은 대부분 의사나 간호사였다.  세상에 깃든 거룩함을 느끼며 삶을 축복으로 느끼는 할아버지와 일상의 평범한 삶을 뛰어넘는 재능과 탁월함을 추구하는 부모님 세대 사이에서 가치관의 갈등을 느꼈던 그녀가 전문의로서 영적인 치유와 섬김의 중요성을 배우게 된 것은  의사가 된 후 35년이 지나서였다고 고백한다.  
소아과 의사를 그만두고 중증의 질병을 지닌 사람들을 치유하는 심리적인 접근 방식을 개발하고 의사들에게 그 필요성을 교육하는 일에 투신하는 선두 주자로, 20년 동안 암 등의 중병을 앓는 환자들에게 상담을 해주고 있는 그녀의 소소한 일상과 할아버지의 추억을 담은 이야기.
고통과 상실의 아픔을 겪는 환자들과 그 가족을 상담하면서 그녀가 깨달은 삶의 지혜와 짧은 이야기들이 불쑥불쑥 나의 눈물샘을 자극했다.  나는 몇번이고 터져나오려는 울음을 억눌러야 했다.

  청교도들이 누비 이불을 만들 때 누비 이불의  대가는 그가 만드는 누비 이불마다 피를 한 방울 떨어뜨린다고 한다.  인디언들은 구슬로 목걸이를 만들 때 살짝 깨진 구슬을 하나 꿰어 넣었다고 한다.  그것을 '영혼의 구슬'이라고 불렀다.  영혼을 지닌 것은 어떤 존재도 완벽할 수가 없다.  당신이 만들어가는 삶의 천에 '영혼의 구슬'과 같은 올이 하나 들어갈 수 있다면 당신이 꿈꾸었던 삶의 천보다 더 멋진 천을 만들어낼 수 있을 것이다.(P.266)

감정의 개입이 조금도 용납되지 않는,  오직 과학적 지식과 뛰어난 재능만으로 환자를 대하는 것을 교육받았던 저자가 인간의 불완전성과 삶의 신비, 삶의 축복을 깨달을 수 있었던 것은 그녀가 일곱 살의 어린 나이에 이별을 했던 할아버지가 그녀를 위해 닦아놓은 '사랑의 길'이 아니었을까?   

  섬김은 영혼의 일이다.  진정한 섬김이란 우리 안에 있는 본래의 순수한 모습으로 되돌아가는 영혼의 움직임이다.  인생이라는 긴 여정에서 선을 향한 전환은 일회적인 것이 아니라 계속해서 일어나게 된다.  어떤 전환은 아주 작고 어떤 전환은 크다.  이 모두가 매우 중요하다.  탐욕, 무절제한 열망, 무감각, 무의식의 사슬 등 많은 것들이 우리를 진정한 본래의 모습에서 벗어나게 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가 남을 섬길 수 있다는 것은 우리를 얽어매는 사슬보다 영혼이 더 강하다는 증거다.(P.298)

자신의 재능으로 봉사하기 보다는 자신의 영혼으로 고통과 상실의 아픔을 겪는 사람들을 진심으로 섬기고자 했던 레이첼 레멘은 책을 읽는 모든 독자의 가슴에서 향기를 뿜어내듯 자연스럽게 일어나는 '섬김의 꽃'을 피우려 했었나 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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