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든 기억을 잊고
딱 하루만 살아봤으면 좋겠다
저 순백의 눈발처럼
모든 집착을 버리고
그렇게 무심했으면 좋겠다

동짓달 시계 위로
눈은 내리는데...
12월의 하늘은
12월의 눈물
더하고 뺄 것도 없는
12월의 한숨

한발 다가서면
한발 물러서는
영원의 시간 속에
눈발처럼 하루가 부서진다
그 풍경 위에  또 한해(年)가 쌓일 때면

갓 태어난 아이처럼
침묵으로 빚은 그리움이
눈(雪)처럼 쌓였으면 좋겠다
숲으로 이어진
하얀 여백의 길을
처음인 양 자박자박 걸어봤으면 좋겠다
그 길을 따라 아스라히
시간의 시선에서 벗어나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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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를 서 있게 하는 것은 다리가 아닌 영혼입니다
알베르트 에스피노사 지음, 박찬이 옮김 / 열음사 / 2009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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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음에 가까이 갔던 사람들은 누구에게나 공통된 특징이 있다.
순탄한 삶에서는 결코 깨닫지 못할 자각이 그것이다.
혹자는 그렇게 말할지도 모르겠다.  그깟 깨달음이 밥을 주는 것도 아닌데 무에 그리 대단하냐고.  그러나 하나의 깨달음은 당장의 끼니를 해결하지는 못하더라도 최소한 죽음 직전에 회한 하나는 덜어줄 것이라고 나는 믿는다.  살아가면서의 실수는 생명이 지속되는 한 바로잡을 수 있지만 생을 마감하는 순간의 후회는 영원 속에 묻히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그들은 무엇을 보았고, 무엇을 경험한 것일까 하는 의문이 남는다.
나도 초등학교 1학년 무렵에 죽음을 경험했고, 구사일생으로 그 수렁에서 벗어날 수 있었다.
그 경험이 나에게, 또는 다른 사람들에게 어떤 도움이 되고 어떤 쓸모가 있는지 한동안 알지 못했다.  우연한 기회에 죽음과 정면으로 마주 선다는 것, 첫키스의 떨림처럼 강렬했던 그 경험은 온 세포에 화인을 찍어 놓은 듯 실체도 없는 기억과는 확연히 구별되는 것이었다.
그러한 경험은 언제, 몇 살 때에 겪었는가와는 무관하게 어떤 깨달음(또는 분위기)을 던져주게 마련이고, 동일한 체험자들만이 감지할 수 있는 어떤 자력장에 이끌리게 된다.

이 책의 저자는 열네 살에 암 판정을 받고 10년간의 투병을 거치는 동안 다리와 폐, 간 일부까지 절단해야 했던 시간을 바탕으로 그가 느끼고 체험한 진실, 유머, 따스함, 생의 깨달음 등을 쓰고 있다.  1973년 스페인 출생인 저자는 현재 배우이자 영화감독으로서, 그리고 라디오 프로그램 기고자로서 <카탈루냐>신문의 칼럼을 쓰고 있다 한다.  저자는 자신의 투병생활에서 얻은 교훈을 통하여 이 세상이 '노란 세상'이며, 우리 개개인은 누군가의 '노랑'이며 나만의 '노랑'을 발견하는 방법에 대해 이 책에 기록하고 있다.
자신의 내면 깊숙이 들어가 자신을 믿는 방법, 그리고 저자가 발견한 새로운 세상을 바라보는 또 다른 방식을 이해하기 위해 이 책은 그 설계도와 같은 것이며, 자칭 공업기술자라 말하는 저자는 그 설계도의 밑그림을 그린 설계자이다.

"행복과 암, 일반적으로 이 두 단어는 공존할 수 없다.  암은 내게서 한쪽다리, 한쪽 폐, 일부의 간을 빼앗아갔지만 한편으로는 암에 걸리지 않았더라면 결코 발견하지 못했을 많은 것을 알게 해주었다.  암이 내게 알려준 것이 무엇일까? 차례대로 열거하자면 끝이 없을 것이다.  암은 내가 누구인지 알게 해주었고, 내 주위에 있는 사람들이 누구인지 알게 해주었다.  또한 나의 한계를 알게 해주었고, 무엇보다도 죽음에 대한 두려움을 없애주었다."  (P.19)

저자가 말하는 '노란 세상'으로 바꾸기 위한 발견은 스물세 가지 목록으로 구성되어 있다.  병실에서 만났던 여러 사람들로부터 얻은 교훈들이 바로 그것인데 '잃어버린다는 것은 부정적인 것이 아니다'에서부터 '가장 깊숙이 숨겨진 내면을 알아야 그 본모습이 보인다', '행복을 위한 일곱 가지 조언', '나를 있는 그대로 인정하는 것보다 다른 사람을 있는 그대로 인정하는 것이 더 어려운 일이다', '누군가를 좋아하고 있음을 아는 방법' 등 결코 가볍지 않은 주제들을 간략하게 요약하고 있다.  핵심을 알고 있을 때 글이나 말은 길지 않아도 결코 주제에서 벗어나지 않으며, 듣는 사람도 정확한 의미를 전달받는다.

스페인어로 사랑(amor), 우정(amistad), 노랑(amarillo)은 모두 첫머리가 'am'으로 시작한다.
저자가 정작 말하고 싶었던 노랑은 그렇게 발견되었다. 

"당신의 삶에서 특별한 사람들을 노랑이라고 한다.  노랑은 우정과 사랑 사이에 존재한다.  노랑과는 굳이 만나거나 연락을 자주 하지 않아도 된다.  노랑과 교제하는 방법은 스킨십, 애정 표현, 포옹 등이다.  배우자 외에는 인간관계에서 거의 오가지 않던 애정 표현을 적극적으로 하는 것이다."  (P.156)

저자가 말하는 노랑은 자신을 반영하는 어떤 대상, 그 대상은 동성일 필요도 없고 얼마나 오래 사귀었는가도 중요하지 않지만 삶에서 가장 중요한 사람임에는 분명하다.  일생에서 만날 수 있는 노랑은 스물세 명이라고 저자는 말한다.  자신의 배우자는 아니지만 육체적, 정신적으로 교류할 수 있는 가장 가까운 대상인 '노랑'.  저자가 꿈꾸는 노란 세상은 온 인류가 다들 누군가의 '노랑'이 되는 그런 세상일 것이다.
책을 덮으며 질문 하나를 가슴에 담는다.
 "당신의 '노랑'은 몇 명입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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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의 눈에서 희망을 본다>를 읽고 리뷰를 남겨 주세요.
너의 눈에서 희망을 본다 - '굶는 아이가 없는 세상'을 꿈꾸는 월드비전 희망의 기록
최민석 지음, 유별남 사진 / 조화로운삶(위즈덤하우스) / 2010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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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무리 갈고 닦아도 향상되지 않는 것이 있다.
슬픔에 대한 저항이 바로 그것인데, 나는 지금도 슬픈 영화를 보거나 어려운 환경에 처한 아이들을 보노라면 시도때도 없이 눈물을 찔끔거리게 된다.
가끔씩 이런 슬픔에 의연히 또는 담담하게 대처했으면 싶을 때가 있지만 마음으로만 그럴 뿐 나는 금세 분별력을 잃고 만다.

이 책을 읽으면서도 그랬다.
나와는 일면식도 없는 아이들의 이야기.  
이런 종류의 책을 읽어보지 못한 것도 아닌데, 마치 처음 알게 된 사실인 양 슬픔이 가슴 한가득 몰려왔다.
퇴근 후에 가르치는 아이들 얼굴이 오버랩되어 짠한 마음이 더했나 보다. 

이 책은 작가가 월드비전 홍보팀에서 근무했던 3년간의 경험을 바탕으로 씌어진 글이다.
월드비전 창립 60주년을 맞아 월드비전 사업장이 있는 전 대륙(아프리카, 중남미, 동유럽, 아시아)을 두 달에 한 번씩 직접 가서 취재하고, 사진을 찍어 온 것을 책으로 엮은 것이다.
학생 때 시집을 출판했다가 보기 좋게 망했던 경험이 있어 더 이상 글을 쓰지 않기로 결심했었다던 작가는 자신의 냉소적인 문체로는 독자에게 그 감동을 생생히 전할 수 없을 것같아 출판을 고심했었나 보다.
그러나 작가도 서문에서 밝히듯이 결국 책은 발간되었고 그 과정에서 작가 자신도 많은 것을 배우고 성장했음을 고백하고 있다.

"지구촌 아이들을 만나면서 나는 서서히 변하고 있었다.  예전보다 말을 조심스럽게 하게 되었고, 사람에게 질문을 할 때 좀 더 고민하게 되었으며, 좀 더 깊이 생각하고, 좀 더 배려하게 되었다.  그리고 내가 만났던 사람들의 생활양식을 내 생활 속으로 하나둘씩 가져왔다.  점점 그들과 내가 하나가 되어감을 느꼈고, 그들의 아픔이 나의 아픔으로 되어감을 느꼈다." (P.13)

때로는, 나를 포함한 우리 모두가 죄인이라는 생각을 할 때가 있다. 
원죄설을 말하려는 것은 아니다.  살아가면서 다른 사람이 내민 도움의 손길을 우리는 몇 번이나 뿌리쳤던가.  단지 용기가 없다는 이유로, 혹은 내가 더 잘살게 되면 그때는 돕겠다는 둥 이러저러한 핑계로 그들의 간절한 눈길을 얼마나 외면했던가.  나는 이제 그런 핑계를 대지 않기로 했다.  그것은 타인의 시선으로부터 자유롭고자 함도 아니요, 존경이나 칭찬을 기대하는 것은 더더욱 아니다.  내 양심을 억누르고 있던 돌덩이를 더 이상 감당하기 힘들었을 뿐이다.  나의 작은 숙소에서 아이들을 가르치면서 나는 조금 가벼워졌다.  그리고 몸도 마음도 좀 더 자유로워졌다.  아이들 때문에 시간에 쫓기고, 구속당하면서도 전보다 더 자유롭다는 느낌을 어떻게 설명할 수 있을까?  

"물론 눈에 보이는 학교를 짓고 보건소를 짓는 것도 중요하다.  하지만 보이지 않는 곳에 이렇게 많은 힘을 쏟는 이유는, 진짜 희망은 보이는 곳이 아닌, 바로 보이지 않는 곳에서 피어난다고 믿기 때문이다.  사람들의 마음 밭에서 일궈낸 보이지 않는 배움과 고민의 시간은 결국 어떠한 사고나 자연재해도 앗아갈 수 없는 희망을 키워낸다고 믿고 있기 때문이다." (P.131)

누군가를 사랑할 수 있는 용기는 내 양심의 돌덩이를 걷어내는 일이다.
나는 그것을 경험으로 배웠다.  그리고 서로간의 관계 속에서 피어나는 끈끈한 유대감은 세상 모두가 하나로 연결되어 있다는 사실을 조금씩 깨닫게 한다.
한줌의 사랑을 줌으로써 한아름의 행복을 맛볼 수 있다면 분명 손해보는 장사는 아닐 터, 우리는 줌으로써 받는다고 했던 성 프란체스코의 ’평화의 기도’를 2010년의 말미에야 비로소 이해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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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 2010년도 딱 9일이 남았다.
아이들은 곧 겨울방학에 들어갈테고 대부분의 가족들은 특별할 것도 없는 새해의 일출을 보러 갈 계획을 세울지도 모르겠다.  다른 그 어떤 날들과 비교해도 전혀 색다르지 않은 일출을 보러 동해안의 한 지점을 향해 다들 몰려가는 이유를 나는 잘 알지 못한다.  나도  한번 일출을 보러 간 적이 있었다.  그것도 가장 많은 사람들이 찾는다는 정동진으로.  새벽의 바닷바람을 맞으며 나는 괜히 왔다는 생각을 여러 번 했었다.  그날은 더구나 구름이 많아 아침이 훤히 밝은 후에야 태양을 볼 수 있었다.

새해를 맞으며 새로운 결심을 한다는 것, 그리고 지난 해(年)를 돌이켜 본다는 것은 의미있고 유익한 일임에는 틀림없다.  다만 그것은 지극히 사적인 일이요, 차분한 마음으로 해야 하는 일이기에 오히려 여러 사람이 북적대는 일출의 명소보다는 누구에게도 방해받지 않는 자신의 서재와 같은 조용한 공간이 더 어울리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든다.

매년 이맘때면 경쟁적으로 진행되는 각종 수상식이나 2010년도 10대 뉴스 등과 같이 자신만의 2010년도 잊지 못할 사건 사고를 선정해 보는 것은 어떨까?
또는 블로그를 하는 사람들에게만 해당되겠지만 자신이 쓴 글 중에 베스트 쓰리를 뽑아보는 것도 재미있을 것이다.  책을 좋아하는 사람이라면 자신이 읽었던 책 중에 가장 기억에 남는 것을 기록해 보는 것도 좋겠다.  영화를 좋아하는 사람은 영화를, 또는 연극이나 음악회도 그렇게 순위를 정할 수 있지 않을까?  그리고 축하할 일이 있다면 내가 나에게 주는 작은 선물을 마련해 보는 것은 어떨까? 

내게도 2010년도에는 많은 일들이 있었고, 그중에는 좋았던 일뿐 아니라 안좋은 일도 있었다.
그러나 나는 나의 실수로 벌어진 안좋은 일도 소중한 추억으로 기억하려 한다.  왜냐하면 그때 내가 내린 결정은 나의 능력으로 할 수 있었던 최선의 선택이었음을 잘 알고 있기 때문이다.  자신의 삶을 망치려고 최악의 선택을 하는 사람이 어디 있겠는가.  우리는 지나간 시간의 과오를 포근히 감싸안고 따뜻이 위로할 필요가 있다.  내 자신이 스스로에게 보내는 위로의 말 한마디가 얼마나 소중한 시기인가.  우리는 그 위로의 힘으로 또 한 해를 살아갈 용기를 얻게 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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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내 생각을 차근차근 살펴보면 옛사람의 생각과 크게 달라지지 않았음을 알 수 있다.

생각의 방향이나 영역 면에서 일정한 틀을 유지하는 것은 굳어진 화석처럼 반복되는 관습 속에는 행동과 더불어 생각도 대물림되고 있음이다.

책에 비유하자면 초판에서 내용만 살짝 바뀐 개정증보판 정도라고나 할까?

이런 까닭에 과학의 놀라운 발전에 비해 인문학의 수준이 늘 제자리에서 맴도는 것은 그리 놀랄 일이 아니다.

의심의 여지없이 진실이라고 믿어온  생각들은  여전히 진실이라 믿고 따르게 되고, 타인의 생각이 내 생각인 양 수용하는 데 너무도 익숙하기 때문이다.

생각의 스펙트럼을 관찰하고 분석하는 행위, 즉 '의심'이라는 도구를 사용하는 방법은 잊혀진 지 오래다.  그것이 있었다는 사실조차 잊혀지고 있다.
그러므로 √3이 무리수임을 증명하기 어렵듯이 우리가 잘 알고 있고 당연하다 여겼던 것들은 오히려 설명하기 어렵다.  간혹 우리는 자신이 잘 알고 있는 것을 잘 설명할 수 있다고 믿는다.  조금의 의심도 없이.

잘못된 내 생각의 몇몇을 바로잡아 본다.

 1. '기적'과 '절망'의 거리는 우리의 생각처럼 멀지 않다.
    우리가 바라는 것이 생각보다 일찍 오면 '기적'이 되고, 조금이라도 늦게 오면 '절망'이 된다.  
    우리는 그 거리를 알지 못한다.

2. 시간은 항상 일정한 속도로 흐른다.
   우리는 가끔 게으름으로 뻗대면 시간이 천천히 흐를 것이라 믿는다. 
 

3. 중독은 자신이 싫어하는 대상과 마주할 용기가 없을 때 일어나는 현상이다.
   우리는 중독이 좋아하는 대상으로 끌리는 현상이라 이해한다.
   중독에서 벗어난다는 것은 좋아하는 것을 끊는 것이 아니라 싫어하는 것을 정면으로 바라볼  수 있을 때  가능하다.

4. 사랑을 지속하기 어려운 것은 일상에서 비이성적 시간이 차지하는 비중이 과도하게 커졌기 때문이다.
   이성과 감정은 늘 균형을 유지하려는 속성이 있다.

5. 우리는 돈을 경멸하는 것이 아니라 자신의 기준을 넘어선 탐욕을 미워하는 것이다.

6. 마지막이라고 생각한 순간 새로운 가능성이 열리는 것은 분산된 가능성이 한곳으로 집중되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자신이 할 수 있는 일이 많다는 것은 추락할 여력이 남아있다는 뜻이다.
   바닥을 딛지 못하는 허공에서 우리는 희망을 말하곤 한다.

7. 사랑에 욕심이 개입하는 것은 그리 특별한 일도 아니다.
   사랑하는 사람들은 서로에게 헌신할 것을 강요한다. 
   일말의 욕심도 없이 사랑할 수 있는 경우는 '신의 사랑'이 유일하다.

8. 버릇없는 행동은 예절을 지켜야 하는 까닭을 납득하지 못하는 데서 온다.
   우리는 그의 무례함만을 보고 있다.

9. 우리는 웃음을 좋아하는 것이 아니라 웃고자 하는 그의 노력을 부러워 하는 것이다.
웃음에는 항상 노력이 따른다.

10. 삶이 두려울 때는 현실이 어려울 때나 행복할 때 둘 다에 해당한다.
    우리는 현실이 어려울 때만 삶이 두렵다고 믿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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