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후에 동료들과 산행을 했다.
시무식의 연장선상에서 치러진 행사였고, 결코 짧지 않은 코스였으니 한해 동안 잘해보자는 취지가 무색하게 불평이 터져나왔다.
마뜩지 않아 하는 동료들과는 달리 걷기를 즐기는 나는 조금은 들뜬 기분으로 산을 올랐다.
등산객의 발길에 다져진 눈길을 산행의 초보자들이 오르는 것은 쉽지 않았을 터, 여기저기서 비명과 가쁜 숨소리가 끊이질 않았다.

산에서는 호흡을 고르고 가급적 말을 삼가는 것이 숲과 그곳에 사는 동식물에 대한 예의이며, 산이 내뿜는 평온한 에너지를 호흡할 수 있는 최적의 방책이다.
그러나 무례한 사람들은 거친 말과 행동으로 숲의 고요를 방해하고, 그것도 모자라 그들 위에서 군림하려 한다.  이럴 때 나무 하나하나는 저마다 모공을 닫고 사람들로부터 시선을 거둔다.
건강을 위하여 산을 오르건만 오히려 자연으로부터 나쁜 기운만 받으니 소득은 없고 손해만 보는 셈이다.

산에 오른 지 한시간쯤 지나서부터 푸슬푸슬 눈발이 날렸다.
묵묵히 걷기만 하는 내게 동료들은 한사코 말을 붙인다.  몇몇은 등산로 초입에 앉아 숫제 오를 생각이 없어 보인다.  그렇게 서너 시간을 걸었다.
새벽에도 산엘 올랐으니 오늘은 다섯 시간 남짓 걸은 셈이다.
나른한 피곤이 몰려왔다.  기분 좋은 노곤함.

퇴근 후에 가르치는 아이들은 오늘부터 목요일까지 방학이다.
쉬라고 하면 다들 좋아라 할 줄 알았는데 싫다는 녀석들도 있었다.
굳이 오겠다고 고집을 부린 두 녀석은 지금 자습중이다.
나의 숙소에도 모처럼 고요만이 가득하다. 
세상에서 가장 무거운 것이 눈꺼풀이라더니 나는 안간힘을 쓰며 밀어올리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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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제 늦은 시각이었다.
퇴근 후에 나의 숙소로 찾아든 아이들을 가르치고 있는데 한 아주머니로부터의 전화를 받았다.  자신의 아들을 맡아서 가르쳐 줄 수 없느냐며 상담을 하러 방문해도 되겠냐는 것이었다.
나는 괜찮다며 방문을 허락했다.
전화를 끊고 얼마 지나지 않아 초인종 소리가 울렸고, 곱게 차려입은 한 아주머니가 나에게 인사를 건넸다.  달리 대접할 것이 마땅치 않았던 나는 물 한 잔을 따라 건네주며 학생의 신상을 물었다.  아이들에게는 상담하는 동안 잠시 자습을 하라고 일렀다.  그러나  아주머니의 대답은 나의 예상과는 너무나 달랐다.

그 아주머니가 원했던 것은 무료로 여러 명의 아이들과 같이 배우는 것이 아닌, 돈을 줄테니 자신의 아이만 따로 가르쳐 달라는 것이었다.  나는 나의 사정을 말하며 시간도 부족하고, 나의 지식도 부족하니 받아들일 수 없다고 장황하게 설명했다.   내 여건상 그분의 아이만 거절하는 것 아닌가 하는 미안함에 말이 더 길어졌는지도 모른다.  아주머니는 노골적으로 불쾌함을 드러내다가 급기야는 지금 가르치는 학생들을 그만두게 하고 자신의 아이만 가르치면 육체적으로나 금전적으로 도움이 되지 않겠냐는 이야기를 아이들이 있는 자리에서 내뱉었다.
결코 아이들이 들어서는 안 될 말을 본의 아니게 나는 다른 사람의 입을 통하여 들려준 것이었다.  나는 너무 당황하여 제발 돌아가 주십사고 사정했다.  그분은 자신이 원하는 것을 이루지 못한 것에 대한 원망이었는지 나가면서까지 이렇게 개인적으로 가르치는 것도 불법이 아니냐며 험한 말을 하셨다. 

남의 떡이 더 커보인 탓이었을까?
나와 같은 아마추어 초보강사에게도 배울 것이 있다니...
우리는 가끔 자신이 누리는 것에 대한 감사보다는 남이 들고 있는 작은 것을 욕심내는 경우가 더 많은 듯싶다.  몹시 불안한 눈길로 "이제 우리는 더 배울 수 없는 것 아닌가요?" 하고 묻던 아이들의 힘없는 목소리가 지금도 쟁쟁하다.
  
2011년을 하루 앞둔 오늘.
오전에는 그동안 내가 바쁘다는 핑계로 미처 전하지 못했던 감사의 글을 쓰며 보냈다.
나 자신도 어쩌면 어제의 그분처럼 내가 누리는 것에 대한 감사의 마음보다는 남의 것에 대한 욕심만 부리며 1년을 보낸 것은 아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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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구가 되어 주실래요? - 쫄리 신부의 아프리카 이야기
이태석 지음 / 생활성서사 / 2009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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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부인의 도움이 절실한 아프리카나 히말라야 오지에 가서 봉사활동을 하는 성직자나  NGO 봉사대원들의 이야기를 책으로 접할 때면 그들로 하여금 그곳으로 이끌었던 힘은 과연 무엇이었을까? 하는 궁금증이 들곤 한다.
자신과 가족들을 돌보기에도 힘에 부쳐하는 나와 같은 대다수의 사람들에게 그들은 먼 나라의 이야기이거나 다른 행성인처럼 비쳐지기 때문이다.
종교적 사명감이나 인류의 보편적 양심만으로는 무언가 설명이 부족하다는 느낌이 든다.
나와 내 주변에만 집착하는 나의 편협함은 외부 영역으로 향하는 사랑의 힘에 늘 낯설고 의구심을 갖게 한다.  결국, 경험하지 못하면 그들의 이야기는 언제나 겉도는 느낌 또는 나와 상관없는 그들만의 삶으로 존재할 것이다.

이 책은 살레시오회 사제이자 의사로 아프리카 수단 남부의 톤즈라는 작은 마을에서 교육과 의료봉사를 하는 이태석 신부님의 이야기이다. 
섭씨 45도를 넘나드는 뜨거운 기후, 채소와 기본적으로 필요한 식료품들이 많이 부족한 열악한 환경, 피부 색깔만 다른 것이 아니라 문화와 사고방식의 차이들, 어느 것 하나 만만하지 않은 악조건 속에서 그들과 어울려 살아가는 이야기를 잔잔히 그리고 있다.
전쟁과 가난으로 상처를 받은 아이들을 어루만지고 치료하기 위해 음악을 가르치고, 콜레라와 말라리아 등 각종 전염병에 걸린 환자들을 치료하는가 하면 아프리카 대지만큼 매마른 주민들의 황폐한 가슴을 적셔주고 어루만지는 일이 육체적으로 견디기 힘들었을텐데 신부님의 글은 늘 자신에 대한 반성으로 끝을 맺고 있다.

"세상을 46년 동안이나 살면서 나와 너의 만남은 영혼과 영혼이 만나는 엄숙한 순간이라는 것을 왜 깨닫지 못했나 싶어 아쉬울 따름이다.  우리가 매일 수도 없이 가지는 만남들, 영혼과 영혼이 만나는 엄숙한 순간들이기에 큰 잔치를 벌여도 부족할 판인데 왜 그렇게 과장하고 미워하고 시기하고 비방하여 가치 없는 순간으로 전락시켜 버리게 되는지 정말 모를 일이다." (P.97)

반세기 동안이나 계속된 전쟁통에서 그곳의 사람들은 육체뿐 아니라 정신에도 큰 상처를 안고 산다.  그럼에도 따뜻한 인간애와 순수한 영혼이 살아있다는 것은 참으로 놀라운 일이다.  한국전쟁의 상흔 속에서도 이웃을 보살폈던 우리 부모님 세대를 생각할 때 물질적 풍요를 누리는 우리는 얼마나 영혼이 병들어 가고 있는지 반성하지 않을 수 없다.  그것을 모두 일반 국민의 탓으로만 돌릴 수 있을까?  통렬히 반성하여야 할 사람이 있다면 어쩌면 작금의 정치 지도자들이 아닐까?  금관가야의 구형왕은 많은 백성이 화를 당하는 것을 안타깝게 여겨 나라를 스스로 신라의 법흥왕에게 양위하였다 한다.  자신의 사사로운 이익보다는 백성을 끔찍이 사랑하였던 옛 선조의 모습은 우리를 숙연케 한다.

"전쟁은 무조건 없어져야 한다.  전쟁으로 희생되는 많은 아이들이 파괴되는 것을 막기 위해서라도, 도덕적 관념의 파괴를 방지하기 위해서라도 전쟁은 무조건 반대해야 한다.  아니 목숨 걸고 반대해야 한다.  전쟁을 막을 수만 있다면 지구 끝까지 가서라도 밀어붙이며 반대해야 한다.  인간 생명의 고귀함을 모르는 ’무식이’는 분명히 유죄다." (P.213)

나는 얼마 전에 있었던 연평도 사태와 남북의 정치인들의 모습을 보면서 경악을 금치 못했다.
무고한 국민들 목숨을 담보로 치킨게임을 벌이는 그들의 모습에서 ’무엇을 위하여?’라는 의구심을 떨칠 수 없었다.  자신들의 정권 유지나 어떤 이념을 위해서 전쟁도 불사하겠다면 그들은 분명 유죄다. 
지금 이 시간에도 지구의 어느 외딴 곳에서 도움의 손길을 거두지 않는 그들에게 나는 여전히 방관자의 입장이지만 신부님의 책을 읽으며 그 마음 하나를 소중한 교훈으로 얻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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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하얗게 눈이 내렸다. 
늘 그렇듯 눈이 오는 날이면 사람들은 어린애처럼 감상적인 모습으로 변한다.
직장 동료들은 대학 시절 내가 쓴 낙서장을 들고 한바탕 소동을 벌였다.
그리고 이 시에 이르러서는 다들 한마디씩 한다.  내가 조숙(?)했었나 보다고.
정확한 날짜는 알 수 없지만 대학 2학년 무렵인 듯한데 나는 왜 이 글을 낙서처럼 적었을까?
그나마 그때는 지금보다 훨씬 감성이 살아있었나 보다.  글에 리듬이 살아있다.
비록 내용은 유치하지만, 오히려 지금은 그때의 리듬을 찾을 길이 없다. 

 나에게 하는 말

무례한 시련이 찾아와도
화내지 마세요.
미리 예정된 일이었는데
당신만 몰랐더군요.
’운명’이라는 말을 떠올리면
조금 편해질까요?
꼭 그런 건 아니지만
시련 뒤에는 감추어진
선물이 있다더군요.
시간의 빛에 하루쯤,
어쩌면 조금 더 길어질 수도 있겠네요.
어둠의 고통을 그 빛에 쪼이면
마법처럼 선물이 보인답니다.

기쁨은 오래 가지 않아요.
쉽게 가버릴 기쁨이라
달갑지 않은가요?
그래도 
슬픔보단 기쁨이 좋겠네요.
다들 그러니까요.

교만함은 천성이에요.
억지로 바꾸려 하지 마세요.
겸손한 체 가장한들
의무로 기도한들
천성은 바뀌지 않아요.
어느 날 갑자기
눈물 뚝뚝 흘리며
제단 앞에 무릎을 꿇으면
그 순간에 바로
개벽하듯 달라지지 않을까요?

나를 알기 전의
행복은 소용없어요.
오히려
탐욕만 키울 뿐이죠.
봄이 오고 겨울이 오면
추위만 느끼겠지요?
겨울이 가고 봄이 오듯
행복에는 순서가 중요하죠.

사랑은 부족과 결핍의
합성어예요.
자선은 위선과 다르지 않죠.
반박은 사양할께요.
때가 되면 알아요.
더 높은 사랑이 있다구요?
그럴테지요.
하지만 나는 할 수 없으니
무슨 소용일까요?

내가 알아낸 것은
이것이 다예요.
좀 더 나이가 들면
내 글은 하얀 여백만 남지 않을까요?
지식은 사라지고
느낌만 남을테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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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음의 속도를 늦추어라
에크낫 이스워런 지음, 박웅희 옮김 / 바움 / 2004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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머리 속으로만 알고 지내던 지식을 어느 날 갑자기, 마치 전기에 감전이라도 된 듯 확연히 깨달을 때가 있다.  
좋은 책을 만나거나 누군가와 대화 도중에 듣게 된 우연한 말 한마디가 생명이 없이 묻혀 있던 지식을 한 귀절의 글, 또는 한마디의 말을 매개로 살아 숨쉬는 지식으로 만들 수 있다는 것은 참으로 놀라운 일이다.  
그것은 시간과 대상의 절묘한 조화, 나와 언어의 알 수 없는 교감으로 가능한 것인데, 이른바 ’궁합이 맞는다’는 표현이 어울릴 것이다. 
어쩌면 그 대상은 명저서나 명강사가 아니라도 충분히 가능하다고 본다. 

이 책은 내게 그런 대상이었다. 
늘 무엇엔가 쫓기는 듯 살아온 나는 온전히 한 곳에 머무를 수 없는 조급함, 알 수 없는 미래에 대한 두려움 등으로 허겁지겁 사는 것이 거의 습관으로 굳어졌었다.
이러한 습관은 나의 인간관계나 삶 전반에 있어 치명적인 악요소로 작용해 왔다는 사실을 이 책을 읽음으로써 확실히 인지하게 되었다.  모든 면에서 속도전에 내몰리는 현대사회의 구조 속에서 어쩌면 대부분의 현대인들이 그런 습관을 형성하는 것은 너무도 당연한 결과이겠지만, 그것으로 인해 어떤 피해를 입고, 어떤 장애를 경험하게 되는지 되짚어 볼 수 있는 기회는 점점 줄어든다.  결국 ’바쁘다’는 사실에 대해 ’무엇때문에’ 또는 ’왜?’라는 질문은 현대사회의 틀 속에서 금기시되었고, 반박의 여지도 없이 당연하게 받아들인다.

"우리 사회는 중요하거나 하찮은 갖가지 방식으로 우리에게 더 빨리, 더 빠리, 더 빨리 가도록 압박합니다.  바로 그 때문에 우리 모두가 하루를 설계하고 정신을 집중해서 지나친 압력을 가하지 않는 느리고 고른 속도로 우리 일을 행함으로써 혜택을 얻을 수 있습니다.  우리에게 속도를 높이라고 요구하는 상황에 맞닥뜨릴 때 우리는 되도록 빨리 평소의 침착하고 신중한 속도를 회복해야 합니다." (P.78)

저자는 이 책에서 삶의 속도를 늦추는 방법, 더 중요한 일을 할 시간을 확보하는 방법, 현재에 사는 방법을 다루고 있다.
인도에서 태어나 미국에  ’블루마운틴 명상센터’를 설립했던 저자의 생각은 인도의 문화와 미국의 문화를 서로 비교하고 어느 것이 더 좋다는 단순 평가를 하고자 하는 것은 아니다.

"나는 컴퓨터나 그밖의 현대적 이기(利器)를 사용하지 말라고 권하고 싶은 생각은 없습니다.  단지 내가 하고 싶은 말은 자비심, 친절, 호의, 용서 등이야말로 진정한 생활필수품이라는 것입니다.  진정한 인간 존재로 사는 데 필수적인 것은 이런 미덕들입니다.  그리고 이 분야야말로 우리 시대가 크게 뒤쳐져 있는 부분입니다." (P.208)

저자가 제안하는 효율적인 삶을 위한 8단계 프로그램을 간략히 소개하면 이렇다.
1.늦추기  
   하루를 일찍 시작할 것, 자신이 빨라지려는 것이 느껴질 때마다 만트람을 외울 것, TV 시청 시간을 줄이고 인간관계를 함양할 것, 느림을 나태와 혼동하지 말 것.
2.주의 집중 
   한 번에 둘 이상의 일을 하지 말 것. 어떤 활동이 사소해 보이더라도 마음을 훈련하고 있다는 사실을 명심할 것.
3.감각 기르기
   자신이 소중히 여기는 견해나 취향에서 벗어날 것.  과거나 미래에 사로잡히지 말고 몸에 좋은 먹거리를 선택하 듯 마음을 위해 읽고 보는 것을 신중하게 선택할 것.
4.남을 먼저 생각하기
   자기만의 욕구, 자기만의 바람, 자기만의 계획, 자기만의 생각에 골몰하지 말 것.서로 경쟁하지 말고 서로를 완성하는 길을 찾을 것.
5.영적 교제
   함께 있으면 자신이 향상되는 사람들과 항상 함께 하는 시간을 많이 만들 것.
6.영적 독서
  
매일 30분 정도 할애해 성구(聖句)나 종교에 상관없이 위대한 신비가들의 글을 읽을 것.
7.만트람 외기
  
만트람, 즉 ’성스러운 이름’(예를 들면 ’라마 라마’나 ’아베 마리아’ 등)을 조용히 반복하여 외울 것.
8.명상
  
매일 아침 되도록 이른 시간에 30분 동안 명상할 것.

생애분석 심리학자인 칼 구스타프 융은 마음과 마음 사이의 거친 반목과 오해 그리고 공격의 근원을 그가 고안한 <그림자>라는 개념을 통해서 이해하며 설명하고 있다. 
그림자는 나의 어두운 면이다. 그래서 의식화 하기 어렵다. 그러나 엄연히 나의 의식 기저에
존재하며, 나를 사로잡는다. 나를 사로잡는 방식은 바로 상대방에 대한 그림자의 투사이다.
이것이 반복되면 습관이 되고, 이처럼 잘못된 습관을 바로잡는 것은 말처럼 쉬운 일이 아니다.
"긴 시간을 두고 본다면 그림자를 표면에 내놓는 것을 피하기는 어렵습니다.
특수한 상황에서 그림자는 사람들에게 모습을 드러냅니다.
예를 들어 당신이 친구를 시험해 보기를 원한다면 그와 함께 만취하도록 술을 마셔보십시오.
그러면 당신은 한 마리의 짐승을 보게 될 것입니다."
  (칼 구스타프 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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